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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가 김채원 단장, 연출력과 무대 장악력에 찬사한국무용(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전수자)가로 활동하고 월광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한양대, 중앙대학교 등에서 지도자로 활동해 온 김채원 <아리 앤 랑 무용단> 단장이 ‘2016 사할린아리랑제’ 총연출과 독무 출연으로 연출력과 무대장악력을 발휘하여 사할린교민과 현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 행사는 한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회장 정은하)가 사할린주한인협회, 사할린주이산가족협회, 사할린주노인회 3개 교민단체의 초청으로 지난 12월 1, 2일 <사할린한인문화회관>과 <홈스크시문화회관>에서 8도아리랑과 춤으로 두 차례 펼쳤다. 12개 지역 아리랑 단체 37명이 펼친 8도아리랑 무대는 고려인 2, 3세와 러시아인들의 뜨거운 환영을 보였다. 1세대가 1930~40년대 고국에서 듣고 부른 곳곳의 아리랑으로 구성했다.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기연옥 안상옥 함미경 위정순 김은자 이화정 강복순), 상주아리랑보존회(김동숙 박노경 김인순 김갑태), 대구아리랑보존회(김상준 이상헌 곽노린 김선오), 영남아리랑보존회(정은하 권숙조), 성주아리랑보존회(임옥자 이금향), 서울아리랑보존회(유명옥), 구미아리랑보존회(장선주), 부산아리랑보존회(김희은), 청주아리랑보존회(강옥선), 문경아리랑보존회(송옥자 장순덕 안원규 최옥자 장순자 임이순), 아리 앤 랑무용단(김채원), 김애경무용단(김애경)이 조국의 혼을 담은 무대로 박수를 받았다. 또한 한인 징용 유적지인 ‘이중징용위령비’와 ‘망향의 탑’ 추모제의 위령제 연출도 맡았다. 이번 두 무대의 총연출과 마지막 무대인 <북을 울려라>에 독무로 출연, 탁월한 연출력과 무대장악력을 발휘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특히 현지 언론 <새고려신문>과 <한국어TV방송>의 주목을 받았는데, 현지 공연 연출팀으로부터 내년 공연의 출연 의뢰를 받기도 했다. 김 단장은 이번 출연 단체들로부터 아리랑의 다양성과 각 아리랑의 속성들을 파악하는 기회였고, 이 경험을 발전시켜 해외 동포공연 맞춤형 ‘아리랑 얼쑤!’ 팀 운영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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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명무, 호남살풀이춤최 선,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평생 춤꾼! 이렇게 부른다. 그것은 무대에서 삶이 잠잔 시간 보다 훨씬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선생을 잘 모르더라도 무용가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다. 선생의 몸에는 '춤끼'가 자르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는 일제의 식민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35년 11월 7일 전북 임실에서 유교집안의 8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두명의 형님들은 일본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였고 부친은 유학에 밝은 시골 선비여서 최 선 선생도 당연히 그런 가풍을 따라야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타고난 기질은 일반적인 학문을 공부 하는 쪽보다는 예능쪽이었다. 선생은 일찍이 그러한 자기 기질을 발견했고, 수많은 질타와 역경을 고집 하나로 이겨내며 일생을 춤꾼으로 살아오고 있다. "춤은 무당이나 하는 것이거늘 어찌 남자인 네가 춤군이 되어 집안 망신을 시키려느냐”며 무섭게 질타하는 부친의 노여움, 집안 식구들의 눈치, 동네 사람들의 비아냥이 열 살도 채않된 그에게는 너무 벅찬 부담이 됐을텐데도 그런 모든 아픔을 당차게 이겨낸 것을 보면 아마도 선생은 춤을 위해 태어난 일것이다. 오지게추운 겨울 밤에도 어머니의 옷가지를 몰래들고 마을 뒷산에 올라 달빛을 조명삼아 혼을 불사르다가 동상에 걸려 발톱이 빠지고 오한에 떨던 꼬마, 보통학교(초등학교) 학예회 때면 인기를 독차지하던 꼬마 최 선이 오늘 한국 무용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는 계기를 이룬 것은 완산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월북무용가 최승희의 수제자인 김미화 선생과의 인연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전주에 내려와 무용 강습을 하고 있던 김미화 선생이 한눈에 춤 꾼으로 뛰어난 재질이 있음을 알아보고 체계적인 무용을 가르치면서부터 선생의 춤은 탄탄한 바탕과 독창적인 예술성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의 나이 불과 열 두어살 때였다. 이때부터 선생의 춤 인생은 한번도 쉴틈없이 이어진다. 동족 상잔의 비극인 6. 25 사변중에도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며 춤을 추었고, 하반영 선생 등을 따라 전주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연극도 했다. 전쟁이 끝난 다음 해엔 마침 전주에 국악원이 개설되고 주위에서 전주국악원에 계신 추월이라는 할머니 선생이 판소리도 잘하지만 춤을 잘 추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 갔다. 그 분은 항상 단아한 모습으로 국악원의 넓은 대청마루에 계셨으며, 방이 여러곳이 있는데도 거기서 판소리도 하고 춤을 추셨다. "그 때 당시에 봤을때 돗자리를 깔고 춤을 추시더라구요. 당시만 해도 수건춤이라 것만 알았지 살풀이 라는 것은 처음 알았지요. 또한 그때는 음악이 없기 때문에 무 장단이나 장구, 북, 꽹과리 등 구음으로만 춤을 했지요." 추월 선생이 직접 장구도 치시고, 돗자리 위에서 수건춤을 가르쳤던것을 기억한다는 선생은 지금 선생이 일궈낸 호남살풀이춤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051026cholsun4.jpg소위 "수건 춤”을 배우게 되는데, 한량들이 흥에 겨워 기교도 없이 추던 그런 춤, 다시 말하면 춤의 가장 기초적인 동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왠만한 사람들에겐 그 수건 춤이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졌을 망정 선생에게는 가장 한국적인 춤, 가장 전라도 같은 춤으로 인식됐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어떤 사명감에 사로 잡혀 밤낮으로 춤다운 춤으로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 수건춤이 바로 선생을 오늘의 한국무용계 거목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남자 초립동이 춘다는 의미로 "동초(童草) 수건춤” 또는 "호남살풀이 춤”으로 불리우는 이 춤으로 최 선 선생은 지난 84년 11월 개천 예술제 특장부문에서 「호남살풀이」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안았으며, 96년 3월 전라북도 지정무형문화재 15호가 인정됐다. 그래서 이기반 시인은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리고 / 막혔던 강물이 흐른다. / 천만년 억겁에 / 쌓인 세월의 갈등도 / 원한에 사무친 시름이랑 / 철 철 철 녹아내린다. 」중략 이렇게 「살풀이춤에서」시로 찬양해 줬다. 어쨌든 최 선이 그 수건 춤에 매달리는 사이 어느 덧 그도 스무살 청년으로 성장했고, 춤 실력도 인정 받는 등 예술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는 자신감에 전주에서 처음으로 "최 선 무용연구소”를 차려 후진 양성에도 힘쓰게 된다. "6. 25 직후 무용가가 거의 없어 애로사항이 많았서요 아마 황무지인 전주에 한국 춤을 개척한것은 저 밖에 없을겁니다” 전쟁도 끝나고, 공비 소탕도 대충 마무리돼 사회질서가 잡혀가던 1954년 전주도립극장에서 「논개」「승무」 「장고춤」 등으로 첫 개인발표회를 가져 전북 무용계에 커다란 화제를 모았다. 전주도립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앞에서 자신의 춤을 마음껏 펼치고 난 그날 밤, 그는 복받치는 서러움으로 밤새껏 울었다. 너무나 거칠었던 세파를 헤쳐온 지난 날들의 그림자가 안개처럼 그의 가슴에 퍼져왔기 때문이었다. 이 첫 무용 발표후 그는 당시 서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얻고 있던 정인방 선생을 만나 정식으로 사사를 받는 영광을 안는다. 이때 서울 무대 입성과 전통 무용의 맥을 잇는 후계자로서의 위치가 굳어진 계기가 바로 정인방 선생과 만남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선생은 인정 받면가면서 한국무용 최고로 꼽히는 선생은 개인발표나 후진양성면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승무 살풀이 무당춤 등 한국 전통무용 뿐아니라 창작무용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생은 1979년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가잿골의 전설」로 대상이 없는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정신없는 국내외 공연과 발표회 등이 선생의 춤 진수를 과시하기도 했다. 80년엔 한길무용회 특별회원으로 일본 자유중국 미국등지를, 그리고 85년엔 대통령상 수상 혜택으로 미국 동남아공연을 가졌고 그 밖에도 미국 일본등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가하는 열의를 보였다. 70년대부터 무용협회 전북지부 지부장직을 맡아 오랫동안 일해온 선생은 그동안 전라예술제를 비롯, 각종무용제를 주최, 전북에 무용의 뿌리를 내리고 맥을 잇는 활동을 지금까지 펼쳐왔다. "죽을 때까지 춤을 추다 죽어야지, 우리 전통춤을 좀 더 멀리 또많이 전수, 보급하는 일이 남은 삶 내가 해야 할 일” 이라고 확신하는 선생의 춤은 현재 전북대 무용학과의 장인숙 교수, 이해인 교수, 김원(현대무용), 원광대 이길주 교수, 충남대 정은혜 교수, 서울 고선아 선생, 광주 허순선 교수, 그리고 선생의 딸 최지원 씨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 끝으로 선생은 제자들과 딸 지원 씨에게 부탁한다. 호남살풀이 춤이 영원히 살아 전승 보존되고, 꽃을 피었으면 한다고. 특히 딸이 아버지의 염원과 꿈, 그리고 다 추지 못하것을 열심히 하여 아버지 보다 나은 춤을 추었으면 한다. 김호규 기자 hg1411@kukak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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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 보유자 김상용(金尙龍,)씨 88세 별세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김상용(金尙龍, 향년 88세)씨가 2004. 5. 3(월), 06:14 밀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다. ㅇ생년월일 : 1916. 7. 27ㅇ빈 소 : 한솔병원 장례식장 2층(경남 밀양시 내이동 184번지 ☎ 019-5511-3767/박동영)ㅇ영 결 식 : 2004. 5. 6(목), 11:00ㅇ장 지 : 경남 밀양시 부북면 월산리 선영 ㅇ주요경력- 1935. 1 ~ 밀양백중놀이보존회 전신인 ‘밀양보본계’ 회원으로서 故 하보경 선생께 병신춤 등 밀양백중놀이 전수- 1970. 1. 1 한국국악협회 밀양시지부 지부장(17대) 역임- 1981.10. 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수교육조교 선정- 1987. 7. 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오북춤) 인정ㅇ가족사항 : 부인, 5남 3여 ※ 밀양백중놀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낸 농사꾼들이 음력 7월15일경 지주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로서, 농사일에 직접 종사하는 농사꾼들의 어려운 농업노동이 전체 놀이에서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음. 문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전화 042-481-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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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무형문화재 제4호 화관무, ‘淸香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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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명인 추모 무대. ‘2017 명인 오마주’‘2017 명인 오마주’ 무대가 14, 21, 28일 오후 4시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에서 열린다. 작고한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삶을 조명한다. 14일은 ‘시원한 소리, 절절한 소리, 여장부 소리-고 박초월’이다. 후덕한 인품으로 많은 제자를 이끌며 예술학교를 세우는 등 후학을 위해 애쓴 미산(眉山) 박초월(1917~1983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을 기린다. 21일은 ‘한이 넘치는 소리, 삶의 여정을 12줄에 담은 춤추는 가얏고-고 함동정월’이다. 초기 산조의 맛을 담은 선율을 힘 있는 가야금 연주로 펼쳐낸 소운(昭芸) 함동정월(함금덕·1917~1994·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을 기린다. 28일은 ‘추월은 만정하고-고 김소희’다. 88서울올림픽에서 우리 소리로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한 만정(晩庭) 김소희(김순옥·1917~1995·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를 기린다. 제자 안숙선, 신영희, 김청만, 조통달, 성애순 등이 참여한다. 박초월의 제자인 김명곤(전 문화관광부장관), 함동정월의 제자 박재희(소설 ‘춤추는 가얏고’ 작가)가 명인 추모대담을 한다. 연출_양정환 한이 넘치는 소리, 삶의 여정을 12줄에 담은 춤추는 가얏고 소운(昭芸) 함동정월(咸洞庭月_1917~1994) ▶▷ 프로그램 심청가 中 황성가는 대목· 춘향가 中 탄식 / 소리_ 왕서은, 고수_ 김동현 (1930년대 Columbia 레코드 복원창) 가야금병창 <세상사>, <갈까보다> / 소리_ 하선영, 장고_ 김동현 (1930년대 Columbia 레코드 복원창) 가야금산조/ 가야금_ 성애순 외 가야금산조보존회, 장고_김동현 명인대담_ 박재희 (소설 '춤추는 가얏고' 저자) 남도잡가 <육자백이>, <흥타령> / 가야금병창_ 현의 노래 가야금병창단, 장고_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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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세계유산 관련 실무 가이드북 발간문화재청은 세계유산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과 자치단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세계유산 등재신청 안내서' 한글번역본과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의제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31일 밝혔다. '세계유산 등재신청 안내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자문기구가 공동으로 펴낸 세계유산 기초 매뉴얼 시리즈의 하나로 세계유산 제도의 개관, 등재신청 절차, 신청서 작성방법 등 등재신청 준비와 관련된 실무 지침을 제공한다. 이번 번역본 발간을 통해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자치단체, 연구기관 등에 편의를 제공하고 세계유산 등재에 관심 있는 국민에게 세계유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또 문화재청은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4일까지 바레인 마나마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결과를 정리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의제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는 2018년 세계유산위원회의 의제와 주요 논의사항, 결정문을 수록했다. 이를 통해 세계유산에 대한 정책 동향, 각 유산의 보존관리와 등재에 대한 자문기관 의견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문화재청 내부 업무자료를 편집해 공개하는 것으로 앞으로는 매년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가 종료되면 정기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이번에 발간된 2종의 자료집은 국·공립 박물관, 각 대학 도서관,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에 배포되며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도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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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섭류 설장구보존회 정기공연 - 김병섭선생 25주기 추모공연김병섭 선생 25주년 추모 설장구보존회 정기공연 해설 : 최수경 제1부1. 동해안별신굿2. 살풀이춤3. 회심곡4. 우도 소고춤5. 우도 부포놀음제2부김병섭류 설장구 김병섭(본명:김호섭)은 1922년 1월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상유마을(놋점)에서 태어났다. 설장구란 원래 농악에서 장구잽이의 우두머리를 뜻하였으며, 농악을 치는 판굿에서 우두머리인 설장구가 나와 솜씨를 보이는 것을 설장구 놀이라 불러왔다. 설장구는 전라도 우도농악권 지역에서 크게 발달하였으며, 김병섭은 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설장구를 만들어 현재까지 설장구 유파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다. 김병섭(金炳燮)1921~1987년1921년 정읍시 북면 출생1930년 김학순에게 장구 사사1935년 싱카포르 함락 기년 축제 참가1937년 징용으로 아오지 탄광으로 징용1956년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인상 수상196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개인상 수상1975년 한양대, 서울예고, 선화예고 출강1986년 서울국립극장 명무전 출연 1987년 9월 11일 향년 75세 별세 김병섭 선생은 장고 하나로 한국농악판에서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던 명인이다. 1921년 정읍시 북면에서 태어나 김학순에게 설장고를 배워 우리나라 최고의 설장고 명인으로 올라섰던 김병섭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운명적으로 농악과 만나게 됐다.김병섭은 자신의 나이 열 한 살 때 자신의 형이 수리조합에서 돈을 빌어서 농악기를 장만하면서 농악을 접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김학순을 스승으로 사흘 만에 기본가락을 배울 만큼 김병섭은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김병섭은 사흘 만에 기본가락을 웬만큼 터득할 만큼 배우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김학순 씨도 김병섭의 타고난 재주에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나흘 만에 작파(作破)할 수밖에 없었다. 손자가 장고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김병섭은 몰래 숨어서 사흘 동안 배운 가락을 혼자서 연습을 해야만 했다.대동아 전쟁 때 일본인에 의해 싱가포르 함락 기념축제에서 장고잽이로 나서기도 했던 김병섭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징용에 끌려 나가 아오지 탄광에서 스물다섯 살 때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이 되자 마을마다 농악을 다시 쳤고 서울에서는 농악경연대회도 열렸다. 특히 일본군은 당시 정읍농악단의 명성을 알고 기념축제를 하라고 악기를 내주기까지 했으며 정읍마을 농악대회를 불러모아 굿을 하라고 해서 장고를 신나게 쳤다는 기록도 보여 당시 정읍농악의 인기가 우수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이승만 정권시절 그는 새로운 삶을 맞는다. 이승만 정권은 농악을 장려, 해마다 농악경연대회를 열었고 재주 있는 잽이 들은 이곳 저곳에 불려 다니면서 솜씨를 뽐냈다고 한다. 당굿이며, 풍장이며, 걸궁이 쉼 없이 이어졌고 잽이 대접도 푸짐해졌는데 이 때 그의 솜씨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게 된다. 이 시기에 정읍을 중심으로 전북 일원에서 그의 가락은 가장 높은 경지의 수준을 보여주게 된다.이렇게 한창 장고잽이로서 유명해졌을 때, 남원국악원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여성들로만 구성된 여성농악대를 만들었다. 이 여성농악대가 순회공연을 하면서 성공을 거둑자, 흥행만을 목적으로 한 여성농악대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결국 남자들은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들은 농악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김병섭은 그러한 여성농악대만을 지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여성농악대는 처음부터 농악의 원형과는 관계없이 흥행만을 노렸기 때문에 변질된 농악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여성농악대가 자취를 감추자 전통농악은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 후 전국민속경연대회가 생겨나서 자유당 때 하던 농악경연대회를 그곳에 합류시켰다고 한다. 1956년 전국농악대회에서 정읍농악으로 개인상을 수상하며 중앙무대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 김병섭은 1963년과 1964년에 개최된 제4회와 제5회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정읍우도농악이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며, 1956년에 이어 1964년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설장고로 개인상을 수상해 명인반열에 오르게 된다.그러나 이 전국민속경연대회는 원형보존보다는 우선 눈에 잘 띄게 하는 것이 관심을 더 쏟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그나마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여러 지방의 특색 적인 농악의 원형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생전에 몹시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한다.김병섭은 정읍을 벗어나서 1968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김병섭을 서울로 불러들인 사림이 바로 한국인이 아닌 평화봉사단원로 활약했던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미국인은 김병섭의 장고솜씨를 보고 그에게 매달려 서울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때 김병섭은 식구들을 고향에 둔 채로 올라와 서울 안국동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미국인과 동료들에게 장고를 가르쳤다.서울로 올라온 후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김병섭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한양대와 서울예고, 선호예고 등에 나가 후학들을 지도하며 동암동에 있던 김병섭 농악연습소에서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한다.그의 가락은 전라우도 농악 즉 정읍농악의 진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명인으로 추앙 받을 만큼 튼튼했다. 혼자서 할 때는 설장고와 둘이 할 때는 쌍장고라 하는데, 그의 장고잽이놀이는 느린굿거리, 활발한 동살풀이, 구성진 구정놀이, 흥겨운 덩덕궁이, 격렬한 다르래기로 가락을 달고 맺고 풀면서 몰아간다. 김병섭은 한국 농악사에서 장고잽이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은 전통문화유산에 밑거름이 된다. 특히 그의 장기였던 고깔 설장고는 우도농악의 최고로 꼽히는 김도삼의 제자 김학순, 백남길에게서 배운 정확한 계보를 갖고 있어서, 설장고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온 명인 김병섭, 당시 젊은 세 사람 이정범, 전사섭,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향토적인 가락을 발전 시켰으나 그 내용과 형식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김병섭은 자신만의 독특한 가락을 근저로 정읍농악우도농악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산파(産婆)역할을 했다.김학순으로 이어졌던 설장고를 이정범이 이어받았고, 또다시 김병섭이 이정범의 전통을 이어냄으로써 정읍우도농악 설장고의 전승구조를 이어내는 가교 역할을 하게 한 인물이 설장고 명인 김병섭이다. 특히 김병섭은 설장고를 체계화하는데 큰 힘을 경주 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병섭의 장고가락을 악보로 만들기 위해 음악을 전공한 외국인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세계가 이해가 된다. 그것을 계기로 김병섭은 점차 학구적인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어 농악을 정립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돈암동, 동대문, 종로5가 등 여러 곳으로 농악연구소를 이전하면서 장고교습에 심혈을 기울였다.김병섭 선생은 1987년 9월 11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이라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제 김병섭은 떠났지만, 김병섭의 고깔 설장고는 우도농악의 최고로 꼽는 김도삼 제자 김학순, 백남길에게서 배운 뚜렷한 계보를 갖고서, 설장고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온 명인으로서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고 있다.정읍에서 배운 정읍우도 설장고를 중앙무대에 수놓고 세계적 인물들에게 가르쳤던 선구자적 예술인생은 이제 전국 각지로 펴져 나간 후학들로 꽃을 피우고 있어 김병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농악사 속에서 예혼(藝魂)을 불태우고 있다.김병섭은 자신의 설장고가 앞장서기만 하면 대낮의 장도 파해버릴 정도로 기량면에서 최고를 구가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천하의 김병섭”만이 쳐낼 수 있는 가락과 사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전에 이순을 넘겨서도 일단 설장고만 잡으면 신명을 몰아오고 놀음판은 그의 독무대가 되어 버리고 만다.판굿놀이의 변화가 다양하고 흥겨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전설적인 김병섭의 설장고가 그립다. (국립국악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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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한국국악포럼 창립학술대회국악계와 문화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진들로 결성된 한국국악포럼이 창립기념으로 12월 2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 간담 회의장에서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창립기념 학술대회는 김승국 상임대표가 "국악의 진흥과 창의적 성장을 위한 방안”이라는 제목의 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2017년 7월 11일 창립된 한국 국악 포럼은 국악 정책개발, 국악 청년 일자리 창출, 국악의 국민 행복기여 등을 목표로 하여 만들어진 단체이다. 김승국(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상임대표), 김용우(소리꾼), 김호규(국악 신문사 대표), 임웅수(경기무형문화재 광명농악보유자), 이병옥(용인대학교 명예 교수), 양종승(한예종 객원교수), 장선애(예원예술대학교 교수), 최상화(중앙대학교 교수), 하응백(㈔한국 지역 인문자원연구소 소장), 한상일(동국대학교 교수) 등 공동대표들이 참가할 예정이며, 국회 교문위 소속의 김병욱 의원(더불어 민주당)이 주최하고, 한국국악 포럼이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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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임방울국악제 대상 정혜빈씨제27회 임방울국악제(주최 조선일보사·광주광역시·SBS)에서 소리꾼 정혜빈(35·사진)씨가 대통령상(임방울대상·상금 4000만원과 순금 40돈 트로피)의 영예를 차지했다. 방일영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최우수상(방일영상·상금 2000만원)은 오민아(45)씨가 받았다. 20~23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열린 임방울국악제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恨)을 소리로 달랬던 임방울(1905~1961) 명창의 예술혼을 기리는 국악 축제다. 명창부·일반부·학생부 총 72명에게 1억9800만원을 시상하는 국내 최대 국악 경연 대회다. 23일 폐막식 및 시상식에는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김동찬 광주광역시의회 의장, 마재필 광주은행 부행장, 김중채 ㈔임방울국악진흥회 이사장, 김민배 TV조선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제 27 회 임방울국악제 명창․부 수상자 명단 임방울대상(대통령상/4,000만원부상:임방울상(순금40돈)정혜빈심청가중 곽씨부인 유언대목 최우수상(방일영상/2,000만원)오민아심청가 우수상(광주은행장상/500만원) 김선영춘향가 준우수상(진흥회이사장상/300만원)김문희춘향가 판소리 일반부 : 4명 최우수상(문화부장관상/400만원) 서의철적벽가 중 적벽대전 우수상 (진흥회이사장상/250만원)송은주흥보가 중 흥보비는디 준우수상 (진흥회이사장상/150만원) 김근희심청가 중 눈뜨는대목 장려상 (진흥회이사장상/100만원)이진주춘향가 중 초경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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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대통령상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 대통령상은 일반부 윤도희 수상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회(회장 백경임) 주최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된 제43회 대통령상 전국 탄금대 가야금 경연대회가 큰 호응을 받으며 마무리되었다. 우륵선생의 위업을 이어받아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계승발전 시킴으로써 가야금 보급과 젊은 연주자의 발굴 및 육성에 뜻을 지닌 제43회 대통령상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는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충주시 문화회관에서 열렸으며, 약 300여명의 신청자가 전국각지에서 참가하여 실력을 뽐내었다. 이번 대회에서 대통령상인 일반부 대상은 서울시 서초구 윤도희(34)님이 수상하였으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인 대학부 대상은 단국대학교 2학년 이현주(21)님께서 수상하는 영광을 가졌다. 올해 대통령상을 수상한 윤도희님은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충주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는 제49회 우륵문화제 개막식에서 축하공연을 선보인다. 제43회 대통령상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에 대한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과 호응 아래 2020년도에 개최될 제44회 대통령상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가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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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완산전국국악대제전. 대상에 한채완씨(사)완산국악제전진흥회(이사장 조소녀)가 개최한 ‘제24회 완산전국국악대제전’에서 한채완(명지대2)씨가 일반부 판소리 부문 대상(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 지난 17일과 18일 전주한벽문화관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최고 영예인 판소리부 일반부 대상을 포함해 총 10개 부문에서 4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판소리 대상에 이어 일반부 기악부문 종합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으로는 김민지(청주시립국악단)씨가 이름을 올렸다. 신인부 판소리 부문 대상(전주시장상)에는 도영실(대전 서구)씨, 기악 부문 대상(전주시장상)에는 정유미(대전 서구)씨가 수상했다. 고등부 판소리 부문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에는 이우현(국립전통예고2) 학생, 기악 부문 종합대상(교육부장관상)는 김현서(전주예고2) 학생, 중등부 판소리 대상(전북교육감상)에는 이현빈(홈스쿨), 기악 대상(전북교육감상)에는 장서윤(국립전통예술중3), 초등부 판소리 대상(전북교육감상)에는 이규희(장서초4), 기악 대상(전북교육감상)에는 이다인(능동초5) 학생이 수상했다. 이 밖에도 지도자상에는 판소리 부문에 모보경 명창, 기악 부문에 김일구 명창이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지난 1996년 제1회 판소리 경연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열리고 있는 대회에서는 판소리와 기악 등 총 2개의 종목에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신인부, 일반부 등 총 10개 부문으로 나눠 경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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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상주민요경창대회 영예의 대상에 홍순득제10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가 오는 11월 7일과 8일 이틀간 상주시 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상주문화원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대회는 명창부와 일반부, 신인부, 학생부로 나뉘어 11월 7일 예선을 거쳐 11월 8일 본선 경연을 펼쳤다. 홍순득 씨는 이날 경기소리 중 ‘예선 제비가, 본선 방아타령’을 불러 대상을 수상, 3백만원의 시상금과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묻자. "어릴 때부터 소망하던 우리 소리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행복한 시간들이 모여서 오늘과 같은 큰 결실을 맺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소리를 좋아하시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때부터 유명하신 명창 선생님들의 LP판을 들으며 우리소리에 대한 꿈을 키워왔습니다. 5~6세무렵부터 LP판을 들으며, 그 소리를 따라했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혼자서 장구를 치며 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동네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른들의 요청으로 소리를 했으며, 그런 저를 동네어른들께서는 무척 아껴주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우리소리를 무척 좋아하시긴 하셨지만, 딸이 소리길로 들어서는 것은 극구 만류하셨습니다. 공부나 얌전히 하다가 좋은집안에 시집이나 갈것이지 무슨 소리냐며 딸의 소망을 끝내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소리에 대한 꿈을 접을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만류로 오랜세월을 마음에만 묻고 지내다가 제가 성인이 되고서야 제 갈길을 갈수 있었습니다. 30대가 되어서야 전문적으로 소리공부를 시작할수 있었고, 김국진 선생님께 15년간 경기민요와 휘모리 잡가를 사사받았으며, 현재는 미추홀국악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소리와 함께 할수 있었던 30여년의 세월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행운이며 행복이었습니다만 이렇게 큰상을 수상하게 되어 더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국악인으로써 우리소리를 사랑하며 우리의 국악을 널리 알리고 후학양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도움을 주시고 힘을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현재 인천국악협회 현재 이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홍순득 씨는 1991년부터 2003년까지 무형문화제 19호 선소리산타령 이수했으며, 김국진 선생님에게 경기민요와 휘모리 잡가를 전반을 사사받았다. 인천국악협회 지회장 이순희 선생에게는 경기 12잡가, 손삼화 한국무용 선생에게 소고춤 등을 사사 받고, 황해 큰소리 예술단 부단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상주문화원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시민들을 위한 식전 행사로 민요합창단과 강원도정선아리랑 물박장단공연이 펼쳐졌으며, 초청된 국악 명인, 명창 공연과 제2회 문화원민요합창단 정기발표회도 함께 가졌다. (김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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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전국민요경창대회 대통령상에 염창순 명창선소리산타령 소리꾼 염창순 씨가 한국국악협회(이사장 이영희)가 주최한 제10회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명창부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선소리산타령 이수자인 염창순 씨는 이번 경연에서 선소리의 넓은 음역을 고루 소화해 내며, 치켜 떨어주는 창법과 꿋꿋하게 뻗어내는 창법 등 다양한 선소리 특유의 음악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소리 입문 40년 만에 얻은 쾌거로 자신을 지금 이자리에 서게 해주신 황용주 선생님과 그의 아내에게 이 영광를 돌린다는 염창순 씨는 "큰 상을 받게 되어 어깨가 무겁고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도 국악발전에 더욱 노력하며 후학들을 양성하겠습니다”며 교육에 대한 열의를 비쳤다. 경기도 구리시 예총회장으로 오랫동안 구리시 문화예술을 이끌어온 염창순 명창이 우리 음악과의 만남은 까까머리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이니 40여년 동안 소리 길을 걸어 왔다. 왕십리에 살던 어린시절 뚝섬 유원지에서 풍물패들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장구치고 소리하는 모습이 좋아 따라 다니던 염 명창에게 끝없는 소리길을 소개해 준 것은 이웃집 아저씨 였다. 당시 종로 5가에 있던 선소리산타령보존회(대한민속예술학교)를 소개해 준 것이 국악과 인연이 맺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 인간문화재 故 김순태 선생과 그에게 영원한 스승인 황용주(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 선생을 만나 소리를 배웠다. 그러나 염 명창의 집안은 조상대대로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내려온 가풍으로 부모의 절대적인 반대가 심했다. 소리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었으나 그는 길을 다녀면서도 춤 추고 노래 하고 깡통을 두들기며 다녔다 한다. 어려서부터 하는 짓이 끼가 있어 보였던지 안따깝게 여기던 외할머니가 부모님 몰래 소리공부를 할 수 있는기회를 마련해 주고 학원비를 주셨다. 이렇게 부모 몰래 배운 소리는 KBS 민요 백일장에도 출연하고, 군악대에도 입대 할 수 있었다. 군악대에서는 소리 하길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염 명창에게 배뱅이굿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끼를 발휘할수 있는 최고의 무대로 기억이 남는다 한다. 이때 같이 근무 했던 친구들이 망부석을 부른 가수 김태곤, 가수 한세일 그리고 사물놀이 김덕수 씨가 있었다. 제대를 하고 난 염 명창은 군악대에서 놀았던 재능에 25세에 겁도 없이 국악 흥행무대에 뛰어 들었다. 흥행 첫 무대로 양평극장을 대관하고 이은관, 이은주, 지연화, 윤평화 선생들과 단원 30여 명의 구성하여 2일간의 공연을 하였다. 적자는 났으나 관객은 많아 보람으로 시작된 공연 등은 사연도 많고 돈도 벌었다고 한다. 영예의 대통상을 황용주 선생님과 아내(이숙자)에게 돌린다는 염 명창은 묵묵히 자신에 길을 걷도록 내조해준 부인이 고맙고 또한 인연을 맺게 해준 스승에게 더욱 감사를 드린다 한다. 또한 이번 상을 계기로 그동안 청년 염창순부터 지금까지 지도와 도움을 아끼지 않은 이은관, 안비취, 이은주, 묵계월, 최창남, 고춘자, 지연화, 윤평화 선생님들과 선·후배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한다. 가족으로는 한국국악협회 구리시지부장으로 활동하는 부인 이숙자 씨와 제2회 복사골 전국국악대전에서 고등부 대상을 수상한 딸 염주희(서울국악예고 3년)가 있다. 김호규 기자 hg1411@kukak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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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영예의 대통령상은 정은하 명창제4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대통령상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정은하 명창이 수상했다. 21세기 지역문화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 선현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는 민요의 계승발전 및 보급을 위해 개최된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가 지난 4월 25일에 상주문화예술회관에서 상주문화원 주최로 열렸다. 이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참여한 가운데 영예의 대상인 대통령상은 명창부에 출전한 정은하 명창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국악의 발전과 민요의 보급 및 전수에 앞장서는 국악지도자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다. 토속부는 박경자씨(포항)가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소감으로 "지방전래민요와 향토민요 등을 발굴하여 이를 보급하고 전수 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인부는 이춘학씨 외 8명이 차지하였으며 "뜻밖의 장원을 받게 되어 대단히 기쁘며, 수상을 계기로 더욱 소리공부에 전념하여 국악보급과 발전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차세대 국악지도자가 되겠다"고 한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명창부 차상(경북도지사상) 김미숙 차하(상주문화원장상) 유상호 장려상(상주문화원장상) 유춘랑 ▶ 일반부(통속) 차상(재경상주향우회장상) 심재둘 ▶ 신인부(토속) 차상(상주시장상) 김영숙 ▶ 고등부 장원(경상북도지사상) 양수진, 차상(상주시장상) 서지선 ▶ 중등부 장원(상주교육장상) 심현희, 차상(상주문화원장상) 이나라 ▶ 초등부 장원(상주문화원장상) 황상은, 차상 김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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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국악인 모집 합니다"우리 도서관은 신진국악인 "新 판놀회"는 실력을 겸비한 개성있는 신진예술가들을 발굴하여 새로운 무대를 제공하고 관객과 가까이서 소통하는 공연 입니다.돈화문~ 종로 3가 에 이르느 국악로에 자리한 국내최초 국악특화도서관 '우리소리 도서관' 에서 여러분의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일 정 : 2020년 2월 27일 ~ 3월 20일 주최, 주관 : 종로문화재단기 획 : 우리소리도선관후 원 : 종로구내부 심사 : 2020년 3월 24일(예)심사 결과 : 2020년 3월 25일 / 개별통보참가 자격 : 평균연령 만 35세 이하의 단체(5인 이하) 및 개인공모 분야 : 전통국악 및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곡공연 장소 : 우리소리 도서관 5층 야외공연장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99)공연 일자 : 2020년 5월 2일, 9일, 16일, 23일 중 1회선정 대상 : 8개팀( 개인포함)신청 방법 : 종로문화재단 자체 선정기준에 의거한 서류 및 영상심사심사 기준 : 음악적 역량(40 %), 작품의 예술성 및 창의성(30%), 공간과의 적합성(30%)공연단체특전 * 공연리플렛, 배너 제작 및 홍보 * 소정의 출연료 지급 * 우리소리도서관 국악 관련 사업(공연, 교육 등) 우선섭외유의사항 * 제출자료는 반화하지 않음 * 기재내용이 허위로 판명될시, 심사 대상에서 제외 및 지원취소 * 러닝타임 30분 공연 구성 필수 * 크라우드펀딩(텀블벅) 진행필수 # 진행방법 등 자세한 사항 선정 후 안내예정 * 무대와 객석 간의 구분없는 야외공연장이므로 전자악기를 제외한 악기편서지향참가서류 - 공연참가신청서 1부(종로문화재단 홈페이지 다운로드) 및 연주동영상 woorisori@jfac.or.kr / 메일제목(신판놀회) 공연지원서 개인/단체명 표기필수 우리소리도서관 070 - 4550- 5014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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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기획자양성프로젝트 사업저희전통문화재단에서 2019 전통예술기획자양성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현재 전통예술기획 <입문과정>의 참가자 모집이 진행중에 있다(~10.4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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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립예술단 단원 모집 1월 23~26일포천시립예술단 단원 모집 응시원서 다운로드 1. 모집인원 - 시립예술단원(비상임) 1) 무용수: 7명 2) 판소리: 1명 3) 기획․홍보: 1명 2. 응시자격 - 지방공무원법 제31조의 규정에 의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 - 응시연령은 공고일 현재 만 55세 이하인 사람 - 병역법에 의한 병역을 필하였거나 면제 받은 사람(남자) - 전문대학 이상 졸업 또는 졸업 예정자(2017년 2월) - 기획․홍보 응시자는 관련 분야 전공 및 유경험자 우대 3. 원서교부 및 접수 - 공고기간 : 2017년 1월 2일(월) ~ 2017년 1월 26일(목) - 접수기간 : 2017년 1월 23일(월) ~ 2017년 1월 26일(목) (평일 09:00~18:00) - 원서교부 : 포천시청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및 포천시청 홈페이지www.pcs21.net 고시·공고란 - 접 수 처 : 포천시청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 접수방법 : 방문 접수 및 우편접수(우편접수는 마감일 우편 소인분 까지 유효) ※보내실 곳: (우487-801) 경기도 포천시 중앙로 87 포천시청 문화체육과 문의: 포천시청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31)538-2783/ 포천시립예술단 (031)538-2368 4. 제출서류 - 응시원서(소정양식) 1부: 최근 6개월 이내 촬영한 반명함판 사진 2매 부착 - 이력서 1부: 자기소개서 첨부 - 최종학교 졸업(예정) 증명서 1부 - 경력 및 재직 증명서(해당되는 자) 1부 - 주민등록초본(남자는 병역사항 기재) 1부 - 응시수수료: 5,000원 상당액의 포천시 수입증지 첨부 (응시원서 지참필, 포천시청 본관 1층 민원실에서 구입) - 기획․홍보 응시자는 공연 기획 제안서 1부 5. 전형일시 - 일시: 2017년 2월 3일(금) 10:00 ~ - 장소: 포천반월아트홀 전시동 2층 포천시립예술단 무용실 6. 전형방법 - 1차 서류심사 - 2차 실기 및 면접 7. 실기심사 내용 * 모든 실기평가는 필요부분까지 심사 후 중단될 수 있음. 모집 부문 실 기 면 접 비 고 무용 1. 개인작품 (3분 이내) 인성, 친화성 1. 개인작품 - 개인 작품 의상, CD 2장 지참. 2. 따라하기 2. 따라하기 (여)상의-검정레오타드 하의-검정색 긴풀치마, 검정타이즈, 흰색 코슈즈. (남)상의-검정레오타드 하의-검정연습복바지, 흰색 코슈즈 판소리 1.단가 1곡 * 자유 작품의상 2.판소리 1대목 기획/홍보 1.면접 * 공연기획 제안서 1부(매수 제한 없음) 8. 합격자 발표 및 임명 - 1차 전형: 2017년 2월 1일(수) 개별 통보 - 최종 합격자 발표: 2017년 2월 10일(금) 예정 - 발표방법: 포천시청 홈페이지 게시 및 합격자 개별 통보  9. 근무 조건 - 근무조건: 주 3회(월, 수, 금/10:00~15:00) - 비상임 - 위촉기간(예정) 위촉일~2017년 12월 31일까지(12월 평가 후 재위촉 가능) 10.기타사항 -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으며, 기재된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선발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 전형결과 적임자가 없을 경우 모집정원에 관계없이 선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응시자는 전형당일 전형시작 30분 전 접수증 및 신분증 지참하고 전형장소에 입실하셔야 합니다. (우편 접수자는 당일 접수증 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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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정동극장 경주사업소 상설공연 <Silla : 바실라> 출연자 모집공고(안)전통예술의 명품화, 대중화,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재)명동정동극장의 2015년 공연을 함께 이끌 출연자를 모집합니다. 국내외 관객들에게 역동적인 한국의 미를 알리는 일에 함께 앞장설 젊은 예술가들의 의미 있는 도전을 기다립니다. 1. 모집개요 가. 작품개요○ 공연명Silla : 바실라○ 공연기간 및 장소2015년 3월 18일~3월 22일  극장 용(서울) 2015년 4월 6일~OPEN RUN  경주엑스포공원 문화센터 대공연장○ 작/연출/안무이희준/최성신/김혜림○ 기획/제작정동극장 나. 모집부문   ○ 2015년 정동극장 경주사업소 상설공연 출연진(무용 및 움직임) 다. 공연출연 및 연습기간   ○ 채용시 ~ 2015년 12월 2. 전형일정 및 방법 가. 지원자격   ○ 무용 및 움직임, 연기 전공자 또는 전공에 준하는 경력이 인정되는 자      (전공 : 한국무용, 현대무용, 무예, 서커스, 뮤지컬, 연극, 세계민속무용 등)   ○ 해당 공연의 연습 및 출연이 가능하며, 결격사유가 없는 자(해외공연 포함) 나. 모집부문 및 모집인원   ○ 모집분야 : 출연자 (무용을 비롯한 각종 움직임 가능자)   ○ 모집인원 : 남 0명, 여 0명 다. 전형일정   ○ 원서 접수기간 : ~2015년 1월 31일(토) [도착분 한함]   ○ 오디션 일시 및 장소 : 2015년 2월 1일(일) 11:00~  서울 정동극장 연습실   ○ 합격자발표 : 2015년 2월 2일(월) 라.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상단 첨부파일 내려받기) 및 자기소개서 1부     * 양식은 홈페이지 www.jeongdong.or.kr 에서 다운로드   ○ 기타 증빙 자료(경력/포상 등, 해당자에 한함) 마. 접수방법 : 이메일접수 silla@jeongdong.or.kr 3. 심사방법 및 전형과제 가. 오디션 심사 방식 : 실기 및 면접 심사 나. 전형과제   구분 : 자유안무   시간 : 1분 30초   내용 : - 장르불문(전통, 창작, 현대무용 등)한 본인 창작작품         - 연기적 요소가 표함된 동작으로 표현           - 음악 : 개인준비(복장점검 시 CD 제출) ※ MP3/핸드폰 연결 불가 다. 복장 및 유의사항   1) 의상은 몸의 움직임이 잘 표현될 수 있는 심플하고 단순한 연습복(검정, 흰색 중 택1)    - 상의는 소매없고 쇄골이 보이는 민소매 또는 끈나시 형태의 레오타드    - 하의는 움직임에 무리가 없는 연습복    - 여자 한국무용 지원자의 경우 풀치마 내 속바지 착용 금지(타이즈 착용 가능)   2) 머리    - 남자 : 자유    - 여자 : 앞가르마 혹은 단정하게 빗어 넘겨 뒷머리는 망으로 고정 또는 따음머리   3) 신발    - 한국무용의 경우 코슈즈    - 타 장르는 맨발 혹은 단화    - 굽슈즈, 운동화 착용 금지   4) 화장 : 진하지 않은 평소화장   ※ 위의 제시 사항 및 금지사항을 어길 경우 응시 자격 박탈 및 불합격 처리 4. 기타사항 가. 참가신청서 제출 시 다른 양식이나 변형된 신청서는 접수받지 않습니다. 지원신청서 상의 기재 착오    혹은 연락 불능으로 인한 불이익은 지원자 책임입니다. 나.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으며, 추후 허위 사실이 발견 되면 합격이 취소됩니다. 다. 자세한 오디션 시간은 개별연락을 통해 알려드립니다. 라. 정동극장(서울 연습실)은 주차가 불가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마. 문의사항은 모집공고 내용을 숙지하신 후 이메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silla@jeongdong.or.kr (문의는 이메일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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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기산추모국악제전,16일 산청군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산청군 단성면 출신으로 국악계의 큰 스승인 기산 박헌봉 선생의 높으신 뜻을 기리기 위한 ‘제2회 기산추모 국악제전’이 16일 산청군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전국의 국악관계자와 군민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린다. 이번에 개최되는 제2회 기산추모국악제는 추모제례를 시작으로 판소리, 기악, 풍물, 민요 등 4개 분야에서 경연을 벌이는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국악명인을 초청하여 공연을 펼치는 특별국악공연 등이 펼쳐진다. 특별국악공연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형문화재 및 국악인들이 다수 참여하며 춘경판소리 보존회장인 최동철씨의 해설 및 사회로 남도시나위, 판소리 공연, 가야금병창, 뺑파극, 남도민요, 각설이 공연 등 평소 군민이 접하기 힘든 공연이 전개된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기산박헌봉선생국악문화현창사업회(이사장 박추자)는 국악을 민족예술로 부흥시키고 체계화하는데 기여한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고 국악문화의 발전을 위해 지난 해 7월 31일 국악문화현창사업회를 발족하고 지난 해 10월 제1회 기산추모 국악제전을 개최했다. 기산 선생은 1906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학을 배우고 신학문을 접했으며 식민지시대에 한학을 하면서 국악 부흥을 주창했다. 선생은 국악교육을 근대적 교육방법에 의해 개편하고 1945년 국악국립원 창설 주도 및 원장 역임, 1960년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문화예술고)를 설립해 초대교장으로 취임했으며 1964년 한국최초로 국악예술학교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 등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민족음악을 체계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국악의 경전이라 불리는 ‘창악대강’을 완성 출판하여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등 평생을 국악발전을 위해 노력해오다 1977년 5월 별세했다. 기산박헌봉선생국악문화현창사업회는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국악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기산추모국악제전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제전 행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 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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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임명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의 위원과 전문위원 임기가 4월 25일자로 만료됨에 따라 2년 임기의 후임 위원과 전문위원을 새로 위촉했다. 이번에 위촉된 문화재위원은 9개 분과 109명으로, 전임 위원보다 24명이 늘었으며 전문위원은 22명 증원된 195명으로 확정됐다. 증원 이유에 대해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의 전문적인 조사ㆍ심의를 담당할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가 신설(14명)되고, 국보지정심의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경륜 있는 원로학자를 중심으로 국보지정분과위원을 별도로 위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존 위원과 전문위원 중 70% 정도가 유임됐으며, 나머지 30%는 위원회 출석률, 위원회 활동 실적, 건강 등을 고려해 교체했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박물관분과위원회는 박물관 등록 업무가 지난해 1월 이후 시·도로 이양됨에 따라 기능과 역할이 축소돼 지난 15일자로 폐지됐다. 무형문화재분과위원장으로는 김광언(인하대) 씨가 선출됐다. ▶ 무형문화재위원 = 권오성(한양대) 김철호(국립국악원장) 김광언(인하대) 김명자(안동대) 박대순(전 서울역사박물관) 박성실(단국대) 박현수(영남대) 박호성(성신여대) 백영자(한국방송통신대) 양선희(세종대) 윤근(중앙대) 이필영(한남대) 임돈희(동국대) 조흥동(국민대) 최태현(중앙대) ▶ 무형문화재전문위원 = 김승국(국악교육연구소장) 고부자(단국대) 권상오(신라대) 김명숙(이화여대) 나경수(전남대) 박경하(중앙대) 박재희(청주대) 박진태(대구대) 배영동(안동대) 서도식(서울대) 서옥경(경원전문대) 서한범(단국대) 손태도(한국문화연구소) 신응재(목원대) 심연옥(고대직물연구소장) 윤열수(가회박물관장) 이소라(전 문화재청 전문직원) 이수자(전 안성기능대학장) 이창식(세명대) 이칠용(한국공예예술가협회) 이효지(한양대) 임옥수(전주대) 임장혁(중앙대) 장경희(한서대) 장정룡(강릉대) 전경옥(고려대)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조효숙(경원대) 주강현(우리민속연구소장) 채희완(부산대) 최공호(전통문화학교) 최광식(고려대) 최종호(전통문화학교) 하종철(한국전통공예산업진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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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우리춤 강습회"모집분야 : 진도북춤, 소고춤, 설장고 일 시 : 소 고 춤 2004년 7월 31일 ~ 8월 2일 <2박 3일> 진도북춤 2004년 8월 2일 ~ 8월 4일 <2박 3일> 설 장 고 2004년 8월 4일 ~ 8월 7일 <3박 4일> 장 소 : 상공회의소 북부연수원 참가자격 : 무용교사, 학원장, 무용전공자, 학생, 풍물전공자, 일반인 등 참가비용 : 7월 1일 부터 50명 선착순 마감 참가금 : 25만원(2박 3일 숙식 및 수업료 일체포함> 제일은행 128 -20 -016969 김호규 <참가자 이름으로 입금요망> 강사진 : 소고춤 /김묘선 명무,진도북춤 / 박병천 명무, 설 장 고 / 황혜경 명인 문 의 : 국악신문사 02) 922-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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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국방부(國防部)는 상관이 없는가. - 교육부는 더더욱 아닌가 -본지고문 하 정 효 국악의 본적과 주소를 보자. 본적은 조국(祖國)이요, 주소는 국가(國家)이다. 그래서 국악은 조국의 국악이자 국가의 그것인 것이다. 이것이 국악의 고향이자 객지인 것이다. 여기서 국악의 객지ㆍ주소를 놓고 , 이를 국가악(國家樂)으로 본다면 그 소속은 국가의 원수인 대통령의 직속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국민의 소속으로 본다면 국회의 직속이 되는 것인가 하면, 또 이를 국군의 국악이라 한다면 그 소속은 국방부에 귀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국악을 문화부에만 소속시키고 있다. 잘하는 일인가. 국악을 문화과목으로 편성한다면 그야 문화부 소관이 맞다. 그러나 문무겸전(文武兼全)에 있어, 이쪽에 문화(文化)가 있다면 저쪽에는 반드시 무화(武化)가 있는 법이다. 흔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일컬어 문화의 문덕(文德)과 무화의 무위(武威)를 고루 갖춘 성웅이라 부른다. 국악을 문화 쪽이라 할 때는 당연히 예산이나 지원은 문화부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문화의 저쪽에 있는 무화에도 소속이 된다고 했을 때는 당연히 국방부가 그 재정과 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어쩌다가 이 시대가 문화만 알았지 무화는 모른 체 했단 말인가. 또 오늘이 문무 양면에 걸친 국악을 문화과목으로만 안 나머지, 무화의 과목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는가 말이다. 문화국가와 무화국가를 놓고 본다면, 전자는 평화시대를, 후자는 전쟁시대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적대성을 기본으로 하는 국가시대에 살면서 어찌 침략이 없는 우호의 시대만 기대하고 산단 말인가. 문화는 평화에서 꽃이 피고, 무화는 전쟁에서 불꽃을 토하는 법이다. 국악은 단순히 문화나 평화시대에만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무화나 전쟁시대가 온다면, 거기서도 그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선(善)과 악(惡)이 있다 하자. 선이란 발산하지 못하면 악으로 변하는 것이고, 악이란 폭발을 하고 나면 선으로 달라지는 법이다. 선을 발산하거나 악을 폭발시킬 때, 그 아슬아슬한 영역을 담당하는 과목이 곧 국악이기도 한 것이다. 그간 국악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한때는 방치상태였으나 이제는 국가와 지방단위로 문화재를 지정하고 예산을 배정하여 각종 축제에 지원까지 하고 있다. 국악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달리지자 예능단체도 축제행사도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민심의 동향에 영향을 주게 되자 이제는 국가무형동력의 진원지가 되기까지 한다. 여기에 각종 국가기관도 생기고, 심지어는 전국 행정 단위로 “문화재단”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각종 공연단체들을 동 재단에서 관할, 예산 편성에까지 관여하고 있다. 이때 절실한 것은 주권 국민 영토 국가에 있어 국악을 ①주권국악 ②국민국악 ③영토국악 ④국가국악으로 분류, 그의 예능과 역할을 각 부서에 배당시킨다면 국가무형동력의 국가적인 발전은 어떠하겠는가. 사실은 국악의 인재양성과 예산지원 및 각종행사를 행정 입법 국방부가 나서서 각 부처별로 인력과 재력을 분담 동원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문화부 교육부 국방부 등 국가차원에서 국악의 입체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악이란 단순 전통 악만이 아니다. 알고보면 국악을 전통 악이라 말하기 보다는 국가성립요소 전반에 해당하는 이른바 대통악(大統樂)이라 해야 할 것이다. 또 평화와 전쟁이 뒤섞이고 있는 현실일수록 문화부 교육부 국방부는 국악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국악지원에 관한 법률은 문화 쪽에서 교육부와 국방부 그리고 국가차원에서 직접지원이 가능하도록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문화부 교육부 국방부 그리고 대통령 직속기구로까지 보장과 지원의 입체 다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악은 국가무형동력의 실체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문화 교육 국방부서의 제도적 지원과 실질적 육성을 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문화의 세계선도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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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5도 무형문화재 연합회 발족이북5도 무형문화재 연합회 이북5도 무형문화재 연합회 발족 이북5도 무형문화재 연합회가 지난 4월 1일 발족했다. 이북5도 무형문화재는 2013년 5월 현재 총 13개 종목이 지정되어 있다. 그 현황을 살펴보면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1호 <만구대탁굿>, 제2호 <서도소리>,제3호 <놀량사거리>, 제4호 <최영장군당굿>, 제5호 <화관무>,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평양검무>, 제2호 <향두계놀이>, 평안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청자백자 결자기술>, 제2호 <영변성황대제>, 제3호 <평안도 다리굿>, 함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돈돌나리>, 함경북도 무형문화제 제1호 <애원성>, 제2호 <두만강뗏목놀이소리> 등이다. 지난 4월 1일 이북5도청에서 모인 이북5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은 이북5도 무형문화재의 복리증진과 권익보호 그리고 상호 친목도모, 기예능의 증진과 활성화를 목적으로 연합회를 결성한 것이다. 그동안 이북5도 무형문화재들은 다른 시도 문화재들과 같은 지정절차를 밟고 보유자(보유단체)로 지정되었으나, 관련 법의 미비로 전승지원금을 비롯한 여러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문화재청에서는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여 국회에 상정하였고, 이 법은 올 6월에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법에는 이북5도 도지사가 문화재를 지정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며, 이 조항에 근거하여 이북5도 문화재들은 전승지원금을 비롯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북5도 문화재들은 연합회 회장으로, 본지 편집위원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하응백 박사를 만장일치로 추대하였으며, 하응백 박사는 연합회의 목적에 맞게 회를 잘 이끌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또 연합회는 평안도 다리굿보존회 총무인 유운종 씨를 총무로 선임하였으며, 정관에 따라 김동명(이북5도 위원회 위원장, 함경북도 지사), 최종민(동국대학교 교수, 이북5도 문화재전문위원), 양종승(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북5도 문화재전문위원), 김승국(노원문화회관 관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고문으로 추대할 예정이다. 이북5도 무형문화재 연합회는 5월 중에 전체 총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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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華城)’과 ‘화성재인청’의 복원은 함께 추진되어야한다.조선조 공연예술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재인(才人)은 여러 명칭으로 존재해왔는데 예컨대, 광대(廣大), 창우(倡優), 화랭이, 산이 등의 명칭으로 불리어졌던 집단이다. 재인청(才人廳)은 이들을 관장하는 행정기구로 신청(神廳), 악사청(樂師廳), 광대청(廣大廳), 화랑청(花郞廳)이라고도 불렸으며 경기, 충청, 전라도에 있었다. 재인청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경기도창재도청안(京畿道唱才都廳案)〉〈경기재인청선생안(京畿才人廳先生案)〉 등을 통해 1784년에서 1920년까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재인청 가운데 ‘화성재인청’은 수원에 있던 집단으로 전국적인 재인청 가운데서도 그 존재와 의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집단적 기구였다. 재인청의 재인들은 평상시에는 자기 고장에서 굿 등을 통하여 백성과 접촉하면서 기예능으로 먹고 살다가, 국가적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서울로 동원되어 공연에 참가했다. 이들은 땅재주, 솟대타기, 줄타기, 방울받기, 만연어룡지희, 대접돌리기, 무동, 불토해내기, 판소리 단가, 판소리, 12가사, 가곡, 검무, 각종 가장(假裝) 동물춤, 우희, 유희, 홍패고사 등을 연행하였으며 조선조 공연예술사의 중심이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 중 많은 종목들이 재인청을 통해 전승되어온 것이며 일부 종목의 전승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고증을 통하여 반드시 복원되어야 한다. 경기도와 수원시는 조선조 정조대왕이 축조한 수원 ‘화성(華城)’ 내부에 해당되는 수원 도심 한복판 66만평에 이르는 시가지를 1조4000억원을 들여 2018년까지 원형을 복원하는 대역사(大役事)를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와 수원시는 수원 ‘화성’의 복원은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에 비견되며 ‘화성’이 복원되면 수도권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장담하고 있으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완성될 수원 ‘화성’은 건축물의 복원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도 함께 복원되어야 진정한 복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선조 공연예술의 중심이었던 ‘화성재인청’의 복원이야말로 그 시대의 문화를 복원하는 것이다. 수원 ‘화성’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덩그러니 유형의 건축물만 보고 간다면 복원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관광객들이 수원 ‘화성’을 방문하여 건축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수준 높은 전통예술을 체험 할 수 체계가 마련되어야 진정한 복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난 해 화성재인청복원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홍윤식, 집행위원장 /김승국)가 결성되었으며,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화성재인청’ 복원을 위한 1차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화성재인청’ 복원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올 11월에도 2차 학술회의가 예정되어 있으며, 향후 복원을 위한 연구조사활동을 거친 후 에 상설공연장, 전통예술 체험관 등이 포함 된 ‘화성재인청’을 복원하여 수원 ‘화성’과 연계하여 한국 전통 무형예술의 메카로서의 역할은 물론 수원 ‘화성’이 국제적인 문화체험 관광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업을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화성재인청’복원사업은 당연히 경기도와 수원시가 추진하고 있는 수원 ‘화성’ 복원 사업 계획의 틀 안에서 병행되어 추진되어야 하나, 현재는 전혀 연결체계 및 재원 지원체계가 전혀 수립되어있지 않다. 경기도와 수원시는 지금이라도 수원 ‘화성’의 온전한 복원을 위하여 ‘화성재인청’복원사업에 관심을 갖고 연계 체계 및 재원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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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 문화/국악 예산 이렇게 적어도 되나...국가 발전의 기본과제는 무엇인가. 국악, 국어,국군,국사가 아닌가. 여기서 국민의 자주,자유,자립, 자활이 발상되지 않는가. 또 이들 4대 과목에서 주권 / 국민 / 영토 / 국가가 존립하지 않는가. 특히 한 국가에 있어 국악은 자주문화를, 국어는 자유문리를, 국군은 자립문명을, 국사는 자활문사(自活文史)를 낳지 않는가. 또 이들 네 과목을 인체에 비유한다면, 국악은 머리에, 국어는 가슴에, 국군은 허리에, 국사는 손발에 해당하지 않는가. 바로 이들의 체계가 확립되었을 때 그 나라의 경제/교육/과학/정치가 제 궤도에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이들 국가 4대 과목 중에서 그의 머리는 바로 국악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정부는 국악을 문화관광부의 예산계정과목인 문화예술/관광/체육/문화재/기타 문화 및 관광부문 중에서 문화예술과목 속의 일개 분과로 쳐 박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이 나라의 자주와 주권 및 경제 그리고 머리가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사실 국악의 국가적인 비중은 국악 / 교육 / 국방 / 행정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산도 이들 4개가 같은 비중으로 편성되어야 국가가 세계무대에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예산의 비중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무시된다면 국가라는 거대한 배는 침몰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회의 예산처방은 그렇지 못하다. 금년을 보면 총예산 1백 44조 8천여억 원 중에서 교육은 28조여 원이고, 국방은 약 21조원이었으며. 행정은 26조원이었는데, 국가역사의 머리에 있는 자주주권의 수호자인 국악예산은 단돈 삼삼팔억원이었을 뿐이다. 물론 한국문화의 사령탑인 문화관광부에는 고작 1조 2천억 원이 배정되었을 뿐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거기다 국악원에 있어서도 국제적으로 내 놓을 극장하나 반반한 것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보아도 국가극장만은 웅장거대하다. 돈 가방을 든 국빈들이 한국을 찾아왔다 치자. 그들을 데리고 욕망의 불길을 태워 줄 곳이 어디겠는가. 노래방인가 술집인가.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국가공연장이 있어야 한다. 사실 국빈수용 세계수준의 극장하나도 없이 무슨 세계시대를 경륜하겠는가. 그것이 대한민국 국악극장이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 극장이 있는가. 장충동 국립극장인가. 서초동 국립국악원인가. 이런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국악우등생인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에게 내년도 국가예산중 문광예산만은 최소 20조를, 국악 분야 예산은 적어도 15조 정도를 지향 책정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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