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지난 4월 22일, ‘아리랑’을 주제로 부다페스트의 복합문화공간(Magvető Café)에서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 강연은 해외문화홍보원(KOCIS, 원장 김장호)과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원장 인숙진, 이하 문화원)은 '코리아 살롱 1.5' 라는 제목으로 총 4회에 걸쳐 진행되는 인문 예술 강좌 중 첫 번째 회차이다.
강연에는 45년의 역사를 지닌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자 ‘아리랑의 연구자’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김연갑 선생이 강연자로 나서, ‘아리랑은 한국의 창窓’이라는 주제로, 아리랑의 역사와 세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위상, 해외 전파와 디아스포라 아리랑, 민요에서 모든 장르로 확산된 문화로서의 아리랑, 그리고 한류의 원류로서의 아리랑의 의미 등을 정치, 외교, 문화예술 영역의 역사적 사건과 함께 풀어갔다.
강연 후에는 민요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음악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음악집단 ‘민요밴드 bob(비오비)’의 공연으로 현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헝가리에서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5월의 초입, 강연자 김연갑 이사장님과 민요밴드 bob를 함께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얼마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국악을 널리 알리고 오신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헝가리에서 아리랑에 관해 강연을 맡아주신 김연갑 이사장님께 질문드릴게요. 이사장님께선 옛날부터 아리랑의 보편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 오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 외국인 대상의 강연은 이번이 몇 번째였나요?
A. 한러수교 직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구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주최의 아리랑 행사로부터, 일본, 중국, 사할린, 그리고 이번 헝가리까지, 이렇게 다섯곳에서 강연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중국, 사할린은 청중이 대부분 교민이어서 통역 없이 했는데, 레닌그라드와 헝가리는 통역을 통해 했습니다. 이 두 곳은 부담이 컸습니다. 아리랑은 우리 현대사와 식민지 상황, 그리고 남북 분단 체재 등을 이해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통역을 통한 강연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번 헝가리 행사로 이를 더욱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에 대해 책임감과 함께 대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는 민요에서 모티브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민요밴드 bob그룹 여러분께 질문드릴게요. 대중적이면서도 한국적인 bob그룹의 헝가리 공연 반응이 참 뜨거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마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A. 헝가리의 원어가 아닌 우리 오리지널 민요를 보여드렸기에, 헝가리 대중분들에게 이 음악이 잘 와닿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었어요. 하지만 역시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는 걸 다시금 느끼고 온 공연이었습니다. 관객분들 모두 음악에 집중하여 귀 기울여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놀랐고, 큰 에너지를 받고 왔습니다. 관객분들이 음악에 임하는 자세가 매우 진지했어요. 매너가 참 좋으셔서 오히려 연주자로서 감동하였던 시간이었습니다. 타국의 민요와 전통음악이 외국인분들이 받아들이고 해석하기에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음악. 우리의 전통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Q. 김연갑 이사장님께서 진행하신 아리랑 강연의 반응도 참 좋았다고 들었는데요, 옛날과 비교했을 때 해외에서의 우리 국악과 아리랑에 대한 입지 변화가 있나요?
A. 당연히 차이가 있지요. 2000년 이전만 해도 외국에서의 반응은 6.25 전쟁과 관련한 아픈 사연을 연관 지어 말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아리랑이 나오는 록허드슨 주연의 ‘Battle Hymn’(전송가)같은 영화를 본 세대들이 많았으니까요. 이 반대 현상은 베트남의 경우지요. 파월 장병들의 위문공연 등을 통해 아리랑이 월남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88올림픽 경기와 월드컵 대회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통해서 한국의 위상을 아리랑이 대신하게 되었어요. 특히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등재 이후 유럽에서는 아리랑을 ‘탁월한 보편성’을 지닌 노래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 분명하게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Q. 이사장님께서 아리랑을 널리 알리고자 하시는 이유와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A. 아리랑은 한국인의 창조 정신을 입증하는 노래입니다. 90여 종에 1만 3천여 수의 노랫말을 가진 민족공동체 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근대사 속에서의 기능 또한 특별합니다. 민중적 비애와 한(恨)에 의한 비극적 정조(情調)의 수렴제로, 권력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저항적 민중 의지의 발현체로, 고통과 모순을 극복한 미래 의식의 추동체로, 상상되고 가치화 되어 불리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리랑은 식민지를 거친 나라나 남북 분단과 같은 분열 상태에 있는 민족공동체에는 보편적 가치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본조아리랑 같은 경우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변용이 가능하여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치와 특성을 세계인들과 함께하고자 해서입니다.
Q. 이사장님의 끊임없는 노력만큼 아리랑이 앞으로도 더욱 위상을 떨쳐 세계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bob그룹이 이번 헝가리 공연을 위해 준비하셨던 레퍼토리는 어떤 것이었나요?
A. 이번 헝가리 공연에서는 전통민요 아리랑을 비롯하여 전통/창작을 구분 지어 소개해 드렸어요. 원래 저희 팀은 창작음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공연을 계기로 전통민요를 근간으로 만든 작품활동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평창아리랑과 본조아리랑을 공연했고, 음성군에서 전해지는 토속민요를 가지고 편곡한 ‘깨끼저고리’를 연주했습니다. 또 밴드식으로 편곡한 ‘경복궁타령’, ‘한오백년’을 모티브로 재즈 편곡한 기악곡 ‘섬머타임(Summer time)’을 선보였어요. 그리고 K-POP 가수 태연의 ‘아이’를 편곡한 곡과 민요 ‘권주가’를 모티브로 한 ‘주술’이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닐리리야’까지 연주함으로 헝가리 대중분들과 음악으로 즐겁게 소통했습니다.
Q. 외국인을 대상으로 토속민요를 활용한 음악도 하신 게 신기합니다. 토속민요는 통속민요와 달리 잘 기록되고 전해지고 있지 않아 편곡에 어려움을 느끼셨을 법한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나요?
A. 토속민요 ‘깨끼저고리’의 경우에 음성군에서 구전으로 전래되는 민요를 복원해서, 민요의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는 '후렴구'를 가지고 작업했어요. 정확한 선율이나 리듬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시집살이 애환을 담고 있는 가사가 남아있어서, 시집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토속민요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게 확실히 어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대중분들께 친숙하게 우리 토속민요를 들려드리기 위해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답니다.
Q. 민요를 중심으로 두고 작업할 때 가장 염두에 두고 작업하시는 건 어떤 부분인가요?
A. 기존에는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민요가 갖고 있는 특유의 느낌을 전해주려고 노력했었어요. 그리고 요즈음은 민요에서 모티브만 따 와서 새로운 가사를 창작하고, 다양한 변화를 통해 현대인들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방향으로 작업을 해 나가고 있어요. 음악적인 코드나 선율 등의 경우도 모두 함께 회의하며 발전시키고,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Q. 전통음악을 중심에 두고 서양악기로 음악을 만들어 나가며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A. (드럼) 장단이나 리듬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녹여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드럼세트에 꽹과리를 얹는다든지, 다른 창작국악팀은 어떻게 장단을 사용하는지 항상 살펴보며 공부하고, 음악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기본 장단 외 변형 장단까지도 살펴보며 장단을 활용하기도 하고요. 제가 국악 전공이 아니다 보니 조금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은, 무엇보다 민요. 소리에 리듬을 자연스레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금) 저희가 처음 모였을 때는 실용음악의 칼박에 맞추는 리듬과 국악에서 맞추어 나가는 호흡이 조금 안 맞아 합주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계속 함께 음악을 하다 보니 서로 듣고 호흡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서로의 소리를 알고 이해하다 보니 우리만의 호흡이 생겼달까요?
(건반) 코드 진행 같은 경우 무엇보다 민요에 너무 많은 코드의 변화를 넣을 때 원곡을 헤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대중적이면서도 깔끔한 코드 진행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특징적인 섹션이나 실용음악적인 색을 자연스레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전통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Q. 이번 공연에서 헝가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bob그룹의 음악적 고민이 궁금합니다. 우리 아리랑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셨나요?
A. 사실 처음에는, 한국의 아리랑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오자는 취지가 가장 컸어요. 우리 민요와 전통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공연을 가서 함께 아리랑 강연을 듣고 공연하다 보니, 그저 아리랑과 우리 전통음악을 기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한국의 전통음악을 매개로 그들의 마음 안에 어떠한 위로와 정서를 남기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음악만이 가진 애환이나 흥과 신명 등의 특징적인 정서를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참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젊은 창작 국악팀으로서, 어떤 가치를 두고 음악을 만들어 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bob그룹은 어떤 음악을 하는 팀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A. 저희는 민요를 중심으로 두고 음악을 하는 팀이기에, 아무래도 ‘민요’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민요는 옛날 대중들의 음악이잖아요. 그 당시의 대중음악을 지금도 대중들에게 편하게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어디서든 흘러나오는 K-POP이나 클래식처럼 저희의 음악도 어디서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 전통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언젠간 대중분들도 참 편하게 좋아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들었을 때 좋은 음악. 무엇보다 이걸 가장 많이 추구하는 것 같아요. 사실 대중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게 저희의 꿈이자 목표에요. 저희의 음악이 국악이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그냥 하나의 ‘음악’으로 인식되어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편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저희가 연주하면서도 신나고, 편하고 즐거운 게 먼저겠죠? 늘 저희가 즐겁고 좋은 음악을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모두가 좋아하는 음악을 오래오래 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bob그룹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이번 헝가리 공연을 계기로 해외 공연을 조금 더 가려고 많이 알아보고 있습니다. 외국의 대중들에게 우리 전통음악을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또 늘 저희가 음악 작업을 하며 깰 수 없었던 틀이 있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대중적인 음악’만 고려하지 않고, 진짜 대중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더 많이 듣고 공부하며 bob만의 음악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새로운 작·편곡 방향을 시도하며 앨범 발매도 할 예정이니,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이사장님의 앞으로 계획과 준비하시는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사할린아리랑제’를 3년간 하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것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가 다시 할 수 있으려나 했지만, 또다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중공연을 하지 못하게 되어 올해에도 못 갈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네요. 또 2012년 중국과의 아리랑 갈등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어 가장 긴밀했던 연변 교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를 복원하는 일이 급합니다. 마지막은 코로나 이전 9회까지 해 온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중단되어 크라운 해태와 논의를 통해 재개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마음은 너무나 바쁜데 지난 10월에 코로나를 앓은 후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걱정입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다시 준비하며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김연갑 이사장님의 오랜 세월 아리랑을 향한 사랑이 보여주는 뜨거운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져감을 공감했고, 그러한 단심이 이번 헝가리 행사에서도 빛을 발했다고 본다.
bob그룹과 인터뷰하는 내내 느낀 것은, 무엇보다 이들의 팀 분위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서로를 허물없이 편하게 대하며 음악적인 것들을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공유했다는 것이 모두의 대화에서 드러났고, 함께 더 즐겁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명맥을 더 널리 이어 나갈 김연갑 이사장님, 국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악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좋은 음악’ 그 자체를 대중들에게 더 많이 들려주고 싶다는 bob그룹, 앞으로 보여줄 그들의 멋진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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