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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1)<br>원주아리랑아침에 만나면 오라버니요 밤중에 만나면 정든 님 일세 술집에 아주머닐 친하고 보니 냉수만 달래도 청주만 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감상 눈이 맞아버린 이웃사촌 남녀의 사랑과 정분난 주모와 떠꺼머리총각의 행각이 외설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슬그머니 입가에 웃음이 이는 것은 일탈이 주는 스릴에 마음이 끌린 때문일까. 사랑에 빠진 남녀의 가슴 쿵쾅거리는 감정을 글씨에 담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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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9)<br>원주어리랑, 산은 멀고 골은 깊어어리랑 어리랑 어러리요 어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도나 멀고요 골은 깊은데 누구를 보려고 나 여기 왔나. 감상 문양지에 작품을 할 경우는 바탕의 문양을 살려가며 글자를 포치한다. 글씨가 주가 되고 문양은 배경이 되기 때문에 배경은 옅어서 이미지만을 드러내야 한다. 도드라지거나 진한 그림은 부적합하다. 산수가 그려진 풍경에 소가 내를 건너는 그림 위에, 노랫말에서 ‘산은 멀고 골은 깊어’를 뽑아 돋보이게 썼다. 두메산골로 시집온 여인의 적막감을 표현하고, 오른쪽 아래에 사각의 유인(‘일어나 빛을 발하라’)을 찍어 전체 화면의 균형을 잡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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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7)춘천아 봉의산아 너 잘 있거라 신연강 뱃머리가 하직일세 싸리재 아흔 아홉구비 우리 복병 삼악산아 우리 군대를 보호해다오 동녘에 비친 달아 우리 군대 명랑하게 비추어 다오 잊지 말라 명예도 지위도 버리고 이 강산 굳게 지켜 싸워다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춘천의병아리랑을 쓰니 때는 갑진춘사월이라 한얼이종선 감상 의병(義兵)이란 나라가 외세의 침입으로 위험에 처하고 관군이 무력할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적과 싸운 민병(民兵)을 말한다. 당연히 국가의 군대가 강건하면 의병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의병은 삼국시대 이후부터 있었지만, 특히 조선조 말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수많은 외침을 겪으며 의병이 일어났다. 농사를 짓던 백성들이 의병에 참여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눈물 나는 역사는 국가가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되었느냐는 반증이기도 하다. 남이 나를 칠 때는 그만한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만만하니까 쳐들어 온 것 아닌가.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人必自侮然後 人侮之 (인필자모연후 인모지) 家必自毁以後 人毁之 (가필자훼이후 인훼지) 國必自伐以後 人伐之 (국필자벌이후 인벌지)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고 집안도 스스로 헐뜯은 뒤에 남이 그 집을 훼손하며 나라는 안에서 무너진 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치는 것이다. 국가의 허술한 경영이 백성들의 부질없는 피와 눈물을 부른다. 개인이나 국가나 자강불식(自强不息)할 일이다. 의병 나가는 자식의 안전을 삼악산과 밝은 달에 하염없이 빈다. 끝내 나라를 지켜내고 부디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미의 간절한 심정을 처연한 마음으로 옮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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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9)문전에 옥답은 어찌 되고 쪽박에 신세가 웬일인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상주아리랑 한얼이종선 감상 인생살이의 흥망성쇠는 가늠키가 어렵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수도 있고, 금송아지의 추억을 부여안고 옛날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하였으니 길흉화복의 변천은 이토록 무상한 것이다. 문 앞에 금전옥답을 두고 떵떵 거렸는데, 가세가 기울어 밥을 빌어먹게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리. 지난날을 그릴수록 가슴은 아리고 쓰리다. 우측에 세 방의 유인을 찍어 작품의 균형을 잡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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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의 "한글 서예로 읽는 우리음악사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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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5)만주나 벌판에 솥 때우는 저 영감 우리 내우야 정 떨어진 것은 때울 수가 없느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인제아리랑 한얼거사 감상 사뭇 설레고 가슴 달뜨던 사랑도 세월이 가면서 무뎌지고 서먹해진다. 세월의 흐름에 감정의 모서리가 닳아 긴장감이 사라지고 바람도 색이 바랬다. 친한 관계일수록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니, 매사 익숙함은 타성을 부르기 때문이다.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던 부부도 그 가까움으로 해서 관계가 뜨악해지는 것이다. 우리 내외의 정도 떨어진지 오래. 늙어 가면서 젊어서의 사랑이 더욱 그립다. 땜장이 할아버지의 손을 빌려서라도 소원해진 사랑을 잇고 싶다. *거사(居士):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여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말하며, 같은 의미로 처사(處士), 초부(樵夫), 어부(漁夫), 산인(散人) 등이 있다. 출가하지 않았으면서 법명을 가진 재가불자를 일컫기도 한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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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왜 '제야의 종'이 울리지 않나?(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매년 12월 31일 자정을 맞아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리는 '제야(除夜)의 종' 타종 행사. 1953년부터 이어온 한국을 대표하는 새해맞이 행사다. 조선 태조 때 도성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걸 알리기 위해 종을 쳤던 것과 한 해의 마지막 날 각 사찰에서 108번 종을 치던 불교행사 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제야'(除夜)는 말 그대로 '섣달그믐날 밤'을 뜻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어둠을 걷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강원·전북·경남·부산 등 전국 주요 지방자치단체는 새해를 맞이할 때 타종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제주에선 타종행사를 하지 않는다. 제주목관아에 '종'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제주시청 한얼의 집에서 대형 북인 용고(龍鼓)를 치며 새해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야의 용고 타고' 행사를 연다. 과거에도 제주에 종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최해산(崔海山)이 1434(세종 16년)년 제주안무사로 부임한 당시 불에 탄 제주목관아를 수리하고 다시 지은 경위를 새겨 넣은 '홍화각기'(1435년, 弘化閣記)에 목관아 외대문 2층 누각에 종과 북을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최해산은 고려말 우리나라에서 화약을 최초로 만든 최무선(崔茂宣)의 아들이다. 당시 외대문은 일종의 '종루'(鐘樓, 종을 달아둔 누각) 역할을 했으며, 새벽과 저녁에 종을 쳐서 통행 시간을 알리고 성문을 여닫았다. 종은 제주성 서남쪽 20리 밖에 있다 허물어진 절간 묘련사에서 가져왔다고 전한다. 실제로 탐라순력도의 여러 그림에는 외대문에 종과 북이 그려진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1847년(헌종 13년) 이의식 목사가 종에 금이 생기자 이를 녹여 화로와 무기로 만들었는데, 그 이듬해 부임한 장인식 목사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전라남도 영암 미황사에 있는 큰 종을 사들여 다시 매달았다고 한다. 외대문과 종은 1916년 일제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일제가 헐어버린 제주목관아를 복원한 지 20년이 넘도록 '종'이 복원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곤 한다. 서울 보신각 타종 행사처럼 제주에서도 타종 행사를 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제주목관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 역사문화를 연구해 온 강문규 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은 "제주목관아를 복원하고도 정작 관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종 복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송구영신의 시기가 되면 제주와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서 타종행사가 열리고 있다"며 "탐라의 종이 다시 울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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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3)서방인지 남방인지 어서 잠들어라. 보리밭에 섰는 총각 찬이슬 맞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 주게. 감상 사랑이 떠나면 마음에 찬바람이 쌩쌩 분다. 세상 가장 높은 담이 돌아누운 여인의 등이란다. 이미 서방이랄 것도 없다. 동방이든 남방이든 알 바 아닌 것. 눈이 맞아 정분 난 옆집 총각만이 절박하다. 바람난 여인네의 달뜬 숨소리가 물씬 느껴지는 아리랑을 민체로 가로쓰기 하였다. 가로쓰기에 대하여 서예는 통상 오른쪽에서 부터 세로로 써 내려간다. 한글, 한문서예가 모두 같은데, 글자의 흐림이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쓰기에 무리가 없고 전체적인 조화도 자연스러워 오래 전부터 그리 써온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가로로 쓰고 읽기 때문에 서예적 필사는 낯이 설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가로쓰기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서예는 읽기에 편한 것보다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이라서 보편적으로 세로쓰기의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전통의 방식을 따라 작품을 한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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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69)동학란노래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수많은 군사를 어데 두고 전주야 숲에는 유시했노 봉준아 봉준아 전봉준아 양에야 양철을 짊어지고 놀미 갱갱이 패진했네 동학란노래를 쓰다. 계묘년가을 한얼이종선 감상 *진개남: 김개남(金開南)이다. 전봉준과 더불어 동학란을 이끌었다. *유시(遺屍): 시체가 되다. *패진(敗陣): 패전. 전투에서 지다. *놀미: 논산, 갱갱이: 강경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이후 민씨 정권과 고종은 친청 정책을 펼치며 새로운 국면을 모색했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나라는 혼란하였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항거하여 고부군의 동학도들과 농민군들이 쟁기와 낫 등 농기구를 들고 집단으로 무장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움직임은 곧 중앙정부의 탐관오리들에 대한 분노로 증폭되어 '보국안민'과 '폐정개혁'을 기치로 내건 농민들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1894년 3월 동학혁명으로 폭발되어 관군과 농민 사이의 전면전으로 발전하였다. 동학란, 동비의 난, 갑오농민운동으로 불린다. 동학농민운동은 교조 신원운동에서 시작되어 고부 봉기, 그리고 제2차 전주성 봉기에 이어 서울로 쳐들어가 부패한 정치가들과 외세를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는 데 있었지만, 관군과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12월 패배함으로서 동학 농민군의 봉기는 결국 실패하였다. 이 노래는 동학란 실패에 대한 백성들의 회한을 담고 있다. 고체로 가로쓰기 하였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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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68)할미성 꼭대기 진을 치고 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 임진왜란노래 오라베 상투가 왜 그런가 병자년 지내고 안 그런가 병자호란노래 조선시대 두 전란을 겪으며 부른 아리랑을 계묘년 황화지절에 쓰다. 오거서루주인 한얼이종선 감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년)에 일본이 침략한 전쟁으로 7년간 이어졌다. 일본은 보름 만에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했고,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신했다. 병자호란은 1637년에 청나라가 일으킨 채 두 달도 안 걸린 전란이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나아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항복 의식을 치렀다. 전쟁은 백성의 목숨뿐만 아니라 삶을 피폐시킨다. 백성은 이유 없이 고단하고 알 수 없는 채로 간난을 겪는다. 통치자의 무능은 백성을 슬프게 하고 도탄으로 밀어 넣는다. 백성은 잠결에 이를 맞아 대책 없이 허둥댔고 치욕은 오롯이 백성의 몫이 된다. 이순신이 영웅이 된 것마저도 백성은 서글픈 것이다. 두 전란의 노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할미봉: 경상남도 함양에 있는 바위산 봉우리로서 할미봉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으로 전쟁의 격전지였다. 전쟁 통에 병사들이 먹을 쌀을 쌓아놓은 합미성(合米城) 이란 말이 할미성으로 변했다고 한다. 할미성은 문경, 남원, 용인, 성주, 철원, 포천, 거창 등 여러 곳에 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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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64)태평만사가 농부의 마음이로다. 밭을 깊이 갈고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공이 이루어지는 것일세. 호미 들어라 호미 들어라 한결같이 앞을 향하여 아로롱 아로롱 감상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에게 정사(政事)에 대해 묻자 공자가 "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 대답하였다. "임금은 임금 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 하며, 아비는 아비 노릇 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 하는 것.” 이라는 것이다. 각각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면 나라는 저절로 굴러 간다는 뜻이다. 당연히 농부의 공은 제 때에 밭을 갈고 잡초를 뽑아 농사를 잘 짓는 것으로서만 이루어진다.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세상은 어지럽고 백성은 정치로 패를 가른다. 요(堯)임금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는 고사도 있다. 사십 여 년 전 스위스 여행 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대학에서 신입생들에게 대통령 이름을 적으라 했더니 20명 중 네 명 만이 답을 했는데, 그 중 한 명은 직전대통령을 써 냈다는 얘기를 듣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온 나라가 정치로 시끄러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글자에도 저마다 직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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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62)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 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를 의지하여 지향 없이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 달라 만물이 숙연한데 해 저무는 저녁놀을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눈앞에 온갖 것이 모다 시름뿐이라. 감상 ‘斫來無影樹 憔盡水中泡’ (작래무영수 초진수중포) 그림자 없는 나무로 장작을 패고, 불로 물거품을 태우려 하다니. 지내 놓고야 헛된 줄을 아는 이 어리석음이여. 젊은 날 세속 명리를 좇다가 늙어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청려지팡이에 의지하여 저녁놀을 바라보는 심정이 처연하다. 때 늦은 후회를 시전지에 섬뜩한 필치로 그렸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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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61)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맹이로 다 나간다. 남산 우에 고목나무 나와 갓치만 속 썩는다. 아리령 아리령 아라리요 아리령 띄여라 노다 가세 감 상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구절은 진도나 밀양 등 여러 지역의 아리랑에 등장한다.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만큼이나 즐겨 인용 되었다. 민요의 경우 첫 구절은 노래의 형성배경과 그 노래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담고 있다. 이 노래도 문경의 박달나무가 경복궁 중수를 위해 무분별 공출된데 대한 상실감과 조정의 수탈에 대한 문경지방의 공동체적 저항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저항의식은 이 시대의 부역과 공출에 대한 사회상을 나타내면서 전국에서 공유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성들의 상실감은 남산의 고목나무처럼 속으로 썩어 들었으니, 이로 하여 문경아리랑은 당시 전 국민이 공감하여 부른 유행가였던 셈이다. 백성들의 뒤틀린 심사를 글씨에 담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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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57)어히야 배들 두드리며 흥겹게 노래 부르며 즐겨보세 녹두잎 바람에 날리니 일기는 상쾌하고 벼꽃이 물에 적시니 들녘이 풍요롭다. 호미 쉬어라 호미 쉬어라 옥 같은 산이 스스로 조수에 비치어 붉도다. 감상 태평성대(太平盛代)에 시화년풍(時和年豊)이라, 사람마다 제 자리에서 제 일을 하니 나라는 태평하고 하늘이 도와 일기마저 순조로워 모든 게 풍요롭다. 십팔사략(十八史略) 제요편(帝堯篇)에 실린 글이다. ‘요임금이 하루 평복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가 실제 천하가 태평스러운지 살펴보았다. 한 노인이 불룩한 배를 하고 땅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는데, ‘해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잠을 자네.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해먹으니 내게 임금의 힘이 무슨 필요이랴’라 하였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 이 노래가 격양가(擊壤歌)이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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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48)가지 많은 낭구는 바람 잘 날 없고 자식 많은 우리 부모 맘 편할 날 없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작품감상 옛날 우리부모는 자식을 주렁주렁 많이도 낳았다. 예닐곱은 보통이고 열이 넘는 집도 있었으니 입에 풀칠이 어려운 지경에서 웬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고, 나고 죽는 일을 자연의 이치나 하늘의 뜻쯤으로 받아들였던 듯하다. 대개의 자식들은 다 커서야 어버이의 신고(辛苦)를 겨우 헤아렸고, 돌아가시고 나서야 후회로 가슴을 쳤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구절이 있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멈추지를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뒤늦은 불효자식의 한탄을 표현하는 말로서 줄여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한다. 가고 아니 계신 어버이를 그리며 선면에 고체로 눌러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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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46)무산대중 살린다더니 목메기 송아지 다 끌어가네. 공산은 빌 공자 공산인지 살만한 살림살이 다 가져가네. 자주독립 시킨다더니 신탁통치가 웬 말이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광복군 아리랑 불러보세. 작품감상 36년의 일제강점과 해방, 열강의 신탁통치와 분단, 동족상잔의 6.25전쟁 등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는 광복군이 있다. 한국전쟁이 촉발한 이념의 갈등 속에서 백성들은 헷갈려 했고, 무산대중(無産大衆)을 위한다는 허구뿐인 공산(共産) 이데올로기에 허둥거렸다. 광복군들은 늘 춥고 배가 고팠으며, 쫒기고 쫒으며 벌판에서도 졸렸다. 그들은 피와 땀을 흘리며 외로웠고, 그들은 외로울 때마다 아리랑을 불렀다. 그러다가 어느 여럿은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이 토대 위에 지금의 우리가, 대한민국이 서 있는 것이다. 6.25전쟁 73주년을 맞아 그 때 그들이 불렀던 광복군아리랑을 먹먹한 가슴으로 다시 불러 본다. 고체로 엄숙하게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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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44)아리아리 스리스리 닭기 아라리요 대굴대굴 굴려라 잘두 넘어 간다. 너는 죽어 아무것도 되지 말고 구월국화 물봉숭애 홍려수가 되구 나는 죽어 봄 나비가 되잔다. 작품감상 후렴구가 여느 아리랑과는 색다르다.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 저승에서나 나누잔다. 임이 죽어서 국화로도 피었다가 봉숭아로도 피고 여귀 꽃으로도 피면 자기는 나비가 되어서 철 따라 피는 꽃을 찾아 마음껏 사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끝없는 갈망을 노래했다. *홍려수: 홍료화(紅蓼花)- 붉은 여뀌 꽃 본 노래를 고체로 가운데 두고 후렴구와 낙관을 좌우로 배치하여 안정을 꾀했다. *불긍거후루(不肯車後樓)는 필자의 당호이다. ‘다른 이의 수레 뒤를 쫓지 않겠다.’는 뜻으로, 독창적인 창작의지를 담고 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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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41)空山明月 공산명월이 해 달 거치루 더 밝지 말구 계수나무 그늘 거치루 은은히 져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루 나를 넘겨주소. 작품감상 사랑은 은밀하게 오고 간다. 밝은 빛은 반짝 금 새 사위지만 은은한 빛은 더디 진다. 뜨겁지는 않더라도 은근하여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길 기원하는 것이다. 빈산에 뜬 달을 전서체로 형상화하고 노랫말을 민체로 흘려 밑에 두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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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37)태기산 곰치 나물은 나지미 맛만 같으면 병자년 그 숭년에도 봄 살아가리. 노랑대가리 얼키 설키에 지붕박 상투 어린 낭군 언제나 키워서 내 낭군을 삼나. 어리어리랑 스리스리랑 어러리가 났네 얼었다가 녹아 지니는 봄철이로구나. 작품감상 아리랑의 노랫말은 민간에서 제 멋으로 만들어져 불렸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달랐고, 생활환경이나 지식 정도에 따라 용어의 수준도 갖가지였다. 더러는 이 말 저 말 뒤섞여 문맥이 얼크러지기도 하는데, 여러 가지 한을 한꺼번에 터뜨리다 보니 그럴 만도 하였으리라. 이 노래도 노랫말이 어지럽다. 나지미는 친숙하다는 일본말인 듯하고, 노랑대가리 지붕박 상투도 귀에 설다. 흉년을 곰치 나물로나 넘겨야 하는 아낙의 절박함과 봉두난발의 철부지 어린 신랑에 대한 속절없는 젊은 아낙의 기대가 아리다. 얼었던 대지가 녹는 봄이 되면 형편이 좀 나아지려나. 후렴구의 가락을 따라 민체로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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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32)아라린가 질아린가 용텬인가 거름손이나 하는 놈은 제자품 팔고 말주먹이나 하는 놈은 전중이 가고 글자나 하는 놈은 긔장질 하고 일주먹이나 하는 놈은 치도판 간다 아라린가 지라린가 용텬인가 작품감상 용천(뱅이): 문둥이 거름손: 일손-농사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 제자품 팔다: 저자거리(시장)에서 짐꾼으로 품팔이 하다. 전중이: 징역살이 기장(記帳)질: 장부에 세금이나 채무 따위를 적는 일 치도판: 치도곤(죄인의 볼기를 치는 곤장)을 치는 곳. 세상만사 인간사는 알 수가 없다. 인과 연에 따라 과보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하게 산다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인과응보도 매번 명쾌하지 않다. 사람마다 쓰임새가 있어서 뭣 좀 할 만한 사람이 그만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능력이 엉뚱하게 쓰이는 경우도 많다. 세상사가 고르지 않다는 얘기다. 불만은 이 지점에서 터진고 만다. 선하게 살수록, 상대적으로 능력이 떨어질수록 일그러진 현상은 푸념과 욕설로 표출된다. 그러지 않고는 마뜩치 않은 세상을 견뎌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라리도 지랄이 되고 문둥이 꼬락서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민체와 고체로 써서 작품의 조화를 꾀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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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31)동강난 고향의 혈육을 찾아서 넘어서는 부르고 부르고선 넘고 삼천리의 어느 고개고갠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어리랑 고개로 넘어가자. 작품감상 국토의 분단은 우리 민족의 아물지 않은 상처다. 분단의 상처가 깊을수록 통일의 염원은 간절하다. 눈물로 지새운 70년 세월! 잃어버린 고향의 그리움과 이산의 한을 아리랑으로 달랬다.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를 넘었고, 고개를 넘어가며 또 아리랑을 불렀다. 아! 이 강산에 또다시 봄이 왔건만 아직도 통일은 멀기만 한 것인가. 민체를 흘려 써서 얽히고설킨 마음의 타래를 나타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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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사설 (129)三角山 몰랑에 비 오나마나 어린 家長 품안에 잠자나마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씨고 날 예워 주소 작품감상 *몰랑: 산봉우리 삼각산 뾰족 봉우리에 내린 비는 이내 마르고, 제 구실 못하는 나이 어린 신랑은 성숙한 새색시의 타는 속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새댁은 먹어도 허기가 지고 늘 목이 마르다. 아리랑을 부르며 여성의 욕망과 한을 안으로 삭이는 수밖에. 대놓고 들어낼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듯 민체로 한 자 한 자 눌러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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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사설 (127)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시아버지 죽어서 좋댔더니 왕골자릴 떨어지니 또 생각난다 시어머니 죽어서 좋댔더니 보리방아 물저노니 또 생각난다. 시집살이 고단할 땐 밉기만 하더니만 일철 나서 안 계시니 사뭇 그립네 청주아리랑을 쓰다. 한얼이종선 작품감상 노마지지(老馬之智) 오랜 연륜을 통해 일의 두미를 터득하고 있는 노인들의 지혜를 말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은 굉장한 노하우인 것이다. 있을 땐 고마움을 모르다가도 일철이 되면 시부모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시집살이 고됨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리움만 사무친다. 고체로 음률을 실어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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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사설 (124)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아이고데고 허허 어어 음음 성화가 났네 에 작품감상 ▸청허휴정(淸虛休靜)의 삼몽사(三夢詞)란 시가 있다. 主人夢說客 客夢說主人 今說二夢客 亦是夢中人 어느 사람이 주인과 나그네가 등장하는 꿈 얘기를 한다. 꿈속에서 주인이 나그네에게 ‘나는 간밤에 이런 꿈을 꾸었소.’ 라고 하니 그 말을 들은 나그네가 ‘나도 지난밤에 저런 꿈을 꾸었다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휴정은 ‘지금 꿈속 두 사람 얘기를 하는 그대도 역시 꿈속의 사람이야‘라고 일갈한다. 화자의 꿈에 나오는 주인의 꿈이 一夢이고, 나그네의 꿈이 二夢이며. 생시에 꿈꾼 얘기를 하는 화자도 꿈 속 사람이니 三夢이다. 지금 꿈속의 두 사람 얘기를 하는 이 사람은 자신이 꿈 속 사람인 줄을 모를 뿐이다. 전생, 금생, 후생 삼계(三界)가 공인 줄을 알지 못하니 금생이 꿈인 줄을 어찌 알 수 있으리.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생애가 봄날의 한 바탕 꿈인 것을,,,,, 색즉시공 공즉시색! 무념하게 고체로 옮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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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사설 (122)백년을 살자고 백년초를 심었드니 백년초는 어딜 가고 이별초만 남았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작품감상 사람은 행복도 즐거움도 영원하길 바란다. 소중한 것일수록 항상 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세상 무상한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일수록 쉬이 곁을 떠난다. 어제 밤비에 핀 꽃이 오늘 아침 바람에 지고 마는 것처럼. 글씨에 운율을 실어 뜻밖의 이별로 스산해진 마음의 갈피를 표현하고, 왼쪽 하단여백에 낙관을 해서 작품 전체의 균형을 잡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