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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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 성료지난 9월 2일 저녁 7시,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1971년 창설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가 개최되었다. 50년을 이어 온 한양대학교 국악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축제의 장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문화의 가치를 중시하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하는 환경에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출신들의 활동이 활발함을 입증 하고 내일에도 는 전통음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한양대학교 국악과에 대해서는 설립자이신 김연준 박사의 예술교육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석사과정, 박사과정으로 이어지는 완성된 교육체계를 확립했고, 이론과 연주 능력을 겸비한 국악인들을 배출하여 국악 발전과 중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음악회는 동문 상호간 소통을 통해 새로운 국악 미래 50년을 향하는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큰 뜻에 의한 행사다. 제1부는 이인수(73) 동문의 집박으로 ‘수제천’, 문정일(81) 동문의 등채로 ‘대취타 천년만세’로 시작하여 위촉작과 개작 초연의 4작품이 연주되었다. 합주곡 4번 주제에 의한 ‘추흥팔경화책(秋興八景畵冊)’ 개작초연(작곡 김용진 편곡/지휘 선중규), 16개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 개작초연(작곡 이상규 편곡/지휘 이경은), 관현악과 소리를 위한 ‘수궁환영(幻影)’ 개작초연(작곡 서순정 지휘 이상준), 소리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빛을 더하리’ 위촉초연(작곡 박경훈 지휘 이희복)작이 연주되었다. 총 90여명이 연주에 참여하였다. 현재 국악과는 전임 5명, 강사 74명이 재직하고, 학부생 123명, 석사 44명, 박사 43명이 수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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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문화유산에 빠져들어도 좋습니다”종묘제례악, 남사당놀이, 판소리, 강강술래, 아리랑, 처용무, 농악, 줄타기, 가곡(전통 성악곡 중 한 종류), 강릉단오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나라 문화유산이다. 이들을 오는 9월 9-25일 국립중앙박물관(서울시 용산구) 내 시설(열린마당, 거울못, 극장 용)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 [류기자의 객석]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최로 진행되는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시리즈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형문화유산을 활용한 전통·창작 공연을 통해,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대중과 공유하고 전통예술의 현대화, 일상화를 지향하고자, 지난 2018년도부터 시작된 기획이다. 올해는 총 17개 공연이 선보이게 되며, 각 문화유산의 전통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전승자의 무대는 물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무대까지 다양한 형태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공연은 무료관람이며, 8월 18일부터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전통문화 원형 중심의 공연 중, 지역의 문화와 생활이 묻어 있는 귀한 공연도 눈에 띈다. 바다의 평온과 풍작, 풍어를 기원하는 제주의 대표의식 중 일부인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초감제’((사)제주칠머리당 영등굿 보존회), 풍물놀이와 무당 굿놀이 등이 혼합된 경북 김천만의 독특한 빗내 농악 12마당을 공연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사)김천금릉빗내농악보존회), 단오제의 무속의례 중 하나로 민중신앙의 핵심을 경험할 수 있는 ‘강릉단오제 단오굿’((사)강릉단오제보존회) 등이다. 그 외에도, 줄타기, 소고놀이, 버나놀이 등의 남사당놀이를 선보이는 ‘바우덕이 서울나들이’(안성시립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 판소리 다섯 바탕의 백미를 경험할 수 있는 ‘판소리 다섯 바탕 눈대목 전’(방수미 명창, 강길원 명창, 김태영 고수), 지역별 특징을 담은 아리랑과 민요를 즐길 수 있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강효주 명창, 차세대 경서도 가객, 두레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이아미 명창의 시조와 가곡을 감상할 수 있는 ‘풍류방의 노래들’, 종묘제례악, 처용무, 자진한잎과 결합한 가곡, 그리고 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정악가무’(아우프윈드), 강강술래, 처용무, 태평무 등의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고풍(古風)’(한누리 무용단), 서울대 국악과 노은아 교수의 해금연주와 처용무를 감상할 수 있는 ‘2022 위대한 유산, 해금과 만나다’ 등의 공연이 선보일 예정이다. 국악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창작공연을 경험하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줄 타는 듯 불안한 현대인의 삶을 현악, 타악, 인형, 전통춤으로 구현하는 창작연희극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광대생각)은 어린이의 취향까지 저격할만한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형극과 산대, 그림자극으로 구성된 ‘꼭두각시 산대 WALL&MOON’(남사당놀이 관악지부 예토), 강강술래를 춤이라는 메시지로 재해석한 ‘CODE-강강:술래’(판댄스컴퍼니) 등은 전통문화가 우리 삶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그 밖에, ‘다올소리와 함께 떠나는 제주음악여행’(다올소리), ‘느닷X난장앤판 '관객모리’'(사물놀이 느닷,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바로크 판소리 심청’((주)목성) 역시 각자의 색깔로 재해석한 전통을 관객과 공유할 예정이다. 올해 시리즈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행사를 축소 진행해오다, 2년 만에 전면 대면공연으로 돌아왔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전통문화공연의 경우, 각 문화유산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압축하여 밀도 있게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했고, 다수의 창작공연이 포함된 실내공연이 8회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무대 효과와 구성으로 실내공연만의 색다른 매력을 제공할 것이다. 올해 5년째 이 기획을 이어오고 있는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대외협력팀 심재흥 팀장은 이 기획에 대한 자부심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올해 공연은 누가 봐도 즐겁게 볼 수 있을만한 공연으로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이 시리즈 첫 회 시작할 때,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목들을 일반 관객 분들이 좋아하실까 걱정했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호응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종묘제례악 공연에 일반 관객 분들이 최소 3-4천분 오셨는데, 잠깐 보다 가시지 않고, 끝까지 다 보고 가시는 것을 보고 저희도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만큼 이런 종류의 공연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고 믿어요. 평상시에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비로운 경험일 수도 있고, 또 이런 훌륭한 문화가 우리 것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고정 팬 같은 분들도 생겨서, 연락 주시고 관심 보이는 분들 보면, 보람도 느낍니다. 전통공연도 이런 형태로 대중 속으로 파고 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또한 심팀장은 5년째, 공연의 장으로 함께 주관을 맡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박물관 관람 오셨다가 우연히 저희 공연을 보시고, 관심을 갖게 되시는 경우도 많은데요, 전통문화와 직접적인 연이 없는 분들이거든요, 이런 과정이 공연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전통문화 공연의 관객층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요.”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리랑 리커넥티드’는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2009년부터 아리랑의 의미와 가치를 현재의 방식으로 수용하여 제작해 온 음반 중, 가장 최근 음반인 <The Name of Korean vol.8>의 수록곡을 선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진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아리랑이란 정서와 함께 담아냈으며, 국내 및 해외 음악인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음반이기도 하다. 2020년 음반 공개 후, 처음으로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공연이며, 제작 당시,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했던 해외 음악인 중, 프랑스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과 함께, 월드 뮤직 그룹 ‘블랙스트링’의 허윤정 서울대 교수, 이아람, 황민왕, 박경소, 김율희 등의 연주로 전통음악의 최신 흐름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올해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친환경 행사를 진행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기 및 종이팩 생수를 사용하고, 생분해성 기념품 배포 및 플라스틱 물품을 수거하여 업사이클링한 물품으로 교환해주는 이벤트 등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환경의 중요성 또한 함께 공유하는 장이 될 것이다. 전통문화예술 자체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압축된 형태임을 생각한다면, 공연들 그 자체로 자연친화적이며, 관객들의 친환경 실천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공연은 사회자의 프로그램 설명과 함께 이루어지고, 관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안내책자가 배부될 예정이므로, 사전 지식이 없어도, 남녀노소 누구든 부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심재흥 팀장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한 곳에서 다양한 전통행사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행사는 드물거든요. 공연들 보시면서, 진짜 우리의 새로운 전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께서 전통은 고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와서 보시면, 그렇지 않다는 것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음악, 특히 판소리의 경우도 음악 자체에 서사가 있어서 주는 감동이 있고, 그것을 실제 음악인이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들을 때 느끼는 감동은 서양음악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심팀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행사로서, 이후에 여건이 허락된다면, 각 종목의 원형을 가감 없이 대중에게 보여드릴 수 있 기회를 기약하기도 했다. 원활환 행사 진행을 위해 예약 관람을 장려하고 있다. 예약자에 한해서 소정의 친환경 기념품을 제공 받을 수 있고, 야외공연의 경우, 예약자는 보다 나은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된다. 행사 현장 관계자는 특히, 예약 후 관람하지 않는 ‘노쇼(No Show)’는 다른 관객의 관람 기회 가져가는 것이므로, 성숙한 관람문화 정착을 위해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장소별 공연시간대를 살펴보면, 열린마당 공연은 오후 2시, 극장 용 공연은 오후 5시 혹은 저녁 7시 30분, 거울못 공연은 오후 6시이다. 또한 실내공연(극장 용)은 36개월 이상, 그 외 공연은 전체연령이 관람 가능하므로, 가족,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시간대에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에 따르면, 무형문화유산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인간과 주변 환경, 자연의 교류 및 역사 변천 과정에서 공동체와 집단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공동체 및 집단에 정체성과 지속성을 부여하며, 문화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 증진시키고, 공동체간 상호 존중 및 지속가능발전에 부합한다.” ‘2022 위대한 유산, 오늘을 만나다’를 통해, 이런 훌륭한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민족적 동질감은 물론, 세계 문화강국으로서의 뿌리를 확인하고, 역사를 초월한 문화적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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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공연[류기자의 객석] 서울시 노원구에 중심을 두고 국악의 생활화를 실천하고 있는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공연이 8월 20일 오후 5시,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성황리에 종료됐다. 주요 공연 장면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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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국악 현장] (上)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생활국악 현장 주목여전히 우리에게 국악은 즐기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국악 자체는 우리 삶과 문화에 녹아 있고, 즐겨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악에는 분명 지금의 우리가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유전자가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에 중심을 두고 국악의 생활화를 실천하고 있는 예술단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의 활동과 단원들의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유이다. 생활 국악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확인해 본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무더운 8월 어느 오후, 서울시 노원문화원 연습실 복도부터 들려오는 경쾌한 가락.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신명나는 가락과 동작에 맞춰 춤추고 소리 한다. 소리와 춤은 몸에 배인 듯 자연스럽지만, 눈빛에 힘이 있어 진지하고, 표정은 살아 있다. 전문 국악인들의 연습실을 연상케 하지만, 이들은 이 곳 노원구에 터를 잡은 지, 수십 년이 되어가는 토박이 분들이며, 평균 연령 60-70대의 비전문가로 이루어진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이다. 이들의 연기와 동선을 꼼꼼하게 살피는 김덕수 명인과 이태훈 연출가, 이경숙 단장, 이창순 안무가, 그리고 연출부와 변사 역할 등의 젊은 예인들도 함께 하고 있다. 이경숙 단장(중요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제57호 이수자)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 올해 15주년을 맞는 이 단체는 국악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좀 더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전하고자, 해마다 전국의 소외계층(장애인)을 찾아 공연해 오고 있다. 또한 지역 주민들만으로 구성되어 풀뿌리 생활국악을 몸소 보여주는 것은 물론, 전문 국악·예술인과의 협업 및 세대가 어우러진 공연으로 예술적 기량과 완성도에서, 해마다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 국악예술단이다. 창단 15주년 기념공연 ‘마들향기 바람에 흩날리고’를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다. 이경숙 총괄, 김덕수 예술감독, 이태훈 구성·연출의 이 공연은, 그 동안 예술단 공연의 주요 부분은 물론, 김덕수 명인, 진유림 명무 등의 참여로 창단 15주년 기념의 의미와 함께 더욱 풍성한 무대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1부에서는, 예술단의 유산가, 장기타령, 김덕수 명인과 ‘사물놀이 한울림’의 문굿, 진유림 명무의 독무, 창작 소리극(경기민요가 중간에 많이 들어가서 소리극이라고 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심청전’ 주요 부분 등이, 2부에서는 예술단의 노래가락, 청춘가, 태평가, 진유림 명무의 ‘청어람 우리춤연구회’의 공연, 창작 소리극 ‘변강쇠전’, 김덕수 명인과 ‘사물놀이 한울림’의 판굿 등이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은 8월 20일(토) 오후 5시,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이루어진다. 노원문화예술회관 앞, 전통 휠체어 70대가 비전문인들로 구성되어 15년 동안 이어온 이 단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경숙 단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노원구에 장애자 분들이 많이 계세요. 문화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 분들은 국악을 접할 기회가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 분들을 위한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김덕수(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재능기부 하시겠다고 해주셨어요. 저와 참가자 분들이 자비로 준비했어요. 공연 6개월 후에,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공연을 (김덕수)선생님과 다시 했는데, 극장 앞에 전동 휠체어가 70대 정도가 있었어요. 김덕수 선생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공연 후에 ‘이선생님 대단하시다. 앞으로 재능기부 하겠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약속해 주셨어요. 그리고 당시 이노근 노원구청장님께서 저에게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 해주셔서, 그때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서 1년에 1회 정기공연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이후, 김덕수 선생은 ‘소리극’(창극)을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인 이단장은 주민들을 직접 지도했으며, 창단 2년 차부터 이태훈 연출가, 이창순 안무가도 합류하게 되었다. 이단장은 비전문가들과 함께 지금까지 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우리 것, 우리의 뿌리, 나만이라도 아껴보자’는 마음으로 쉼 없이 달려왔고, 문화생활은 물론, 전통문화가 닿기 힘든, 특히 장애인 분들을 찾아 전국 곳곳 안 간 곳이 없다고 한다. 이 단장은 봉사를 위해 찾아가는 공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신을 밝혔다. "공연을 하러 백령도까지도 갔어요. 비용은 늘 저희 자비로 합니다. 마시는 물까지요. 봉사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것만으로 만족하니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았어요.” 김덕수 예술감독은 인상 깊었던 곳에 대해서도 말했다. "강원도 정선에 지체장애자 무의탁 노인 분들께 1년에 정기적으로 2회 공연하고 있어요. 이단장님은 공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물도 꼭 챙겨 가세요. 그리고 한번은, 정선 군수님, 원주교구 지학순 교주님께서 오셔서 격려해주셔서 힘이 많이 됐죠.” 뿐만 아니라, 공연에서, 이은관, 안숙선, 이정희, 장덕화 명인은 물론, 장사익, 고(故) 송해 선생 등 당대 최고 예인들의 지원으로 공연의 완성도는 한층 더 높아졌다. 공연 당시 송해 선생의 한 마디는 지금 더 큰 힘이 되고, 감동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 국악이 노원예술단처럼만 움직여줬다면, 우리 국악은 안 죽었을 거예요.” 전통음악,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 교육의 장 지역을 중심으로 전통음악이 생활에 녹아 공유되고, 세대 간 전해지는 것은 우리 음악이 명맥을 이어온 방식이다. 김 명인은 이러한 문화의 향유 방식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예술단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주민들 스스로 공유하고, 혹은 먼저 접하신 분들이 전해주시고, 그것에 감동 받은 예인들이 함께하고, 젊은 예인들도 합류하면서 우리 음악을 중심으로 진정한 화합으로 가는 형태예요." "지금 저 분들(단원들) 표정 보세요. 생기 있잖아요. 정말 행복해서 하시는 거예요. 또 이 공연 하면서, 한예종 학생들, 그 외 젊은 예술인들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는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도 있고, 부모, 조부모 세대 어르신들 보면서 인성교육 되죠. 또 어르신 분들은 손자·손녀뻘 되는 친구들과 함께 하시면서, 마음으로 크게 힘도 얻으시죠. 운동량도 많아지니 건강에도 도움 되시고요. 결국, 이렇게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나 기획들이 생활 속 문화 컨텐츠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축구가 대중화 됐듯이, 전통문화도 대중화 될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생활문화 복지가 아닌가 싶어요. 전통문화 두레, 나눔 정신을 실천하면서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삶이잖아요. 이태훈 연출가 역시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보람과 감동을 얻는다고 한다. "비전문가 분들이라 상대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이 분들이 접해보지 못한 우리 가락에 빠져들게 하는 보람이 있어요. 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주시고 계셔서 그런 모습에 감동 받고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조직이나 모임이 오래 지켜져서 전통예술, 예술인들이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만의 소신으로 쉽지 않은 길을 지역주민인 단원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의 신임과 존경을 받으며 15년을 증명해 온 것 자체로 이단장의 간절한 바람은 충분히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것이 없어지는 것이 가슴 아파요. 없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모두 이어가서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고, 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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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HIP’ 결합의 ‘국악bar4’지난 15일 인사동의 복합 문화 공간 코트(Kote)를 방문했다.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인사동 Kote 입구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곳에서 열린 ‘국악bar4’는 ‘국악bar’의 4년째 주최를 알리는 말로, 국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한군데 모여 전통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이다. 네트 워크가 끈끈한 만큼 외부인과의 화합이 어려운 국악계의 저변 확대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행사는 박종원, 노호태, 이반희, 최원철, 장준익의 기획 하에 진행되었다. 코트의 건물 중 큰 마당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1층 계단 앞에서 방역 체크를 하고 나서 공연과 네트워킹 파티가 주최되는 2층으로 올라갔다. 국악 바(bar)의 공연은 연주자와 관중의 소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대와 객석이 가까우며, 한정된 인원 70명만 예약 받는다. 무더위가 기승함에도 불구하고 총원 70명이 모두 모였다. 인스타그램에서 국악bar의 소식을 접한 그들은 새로운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우리 음악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은 국악bar 시리즈 주최자이자 세종여권케이스를 디자인한 제품 디자이너 박종원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Q. ‘국악bar’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A. 처음에는 미국의 재즈바 문화와 한국의 전통 국악을 엮어서 젊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 다양한 국악 공연인이 많다. 국악bar는 이 아티스트들과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콘텐츠 공간이다. Q. 국악bar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전통 디자이너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대표님을 만났다. 그때 대표님은 내가 전통 디자이너로써 인터뷰한 콘텐츠를 보시고 연락을 주셨다. 처음 만난 날 대표님은 "미국에서 국악을 즐기다 왔다. 미국의 문화와 한국의 전통을 결합시키면 재밌을 것 같다.”라는 말을 전하며 나와 함께 의논한 결과 나온 아이디어가 국악bar이다. 신기하게도 처음 만난 날 국악bar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Q. 어떻게 운영이 되나? A. 체계적으로 운영 되는 곳은 아니고 각자 사회에서 맡은 일이 있지만 그 중에서 다른 디자이너, PD 친구들이 모여서 운영한다. 국악bar를 하자고 얘기가 나오면 모여서 한 달 정도 준비한다. Q. 4년간 이어왔지만 지난해에는 운영이 되지 않았는데, 코로나의 영향인가? A. 작년에는 코로나가 심해서 행사하기에 좋지 않았다. 코로나가 잦아들고 이전 시즌과 다른 공간 Kote에서 다시 시작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Q. 어떤 콘텐츠가 있는가? A. 핵심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은 팀을 불러 이벤트성으로 진행하는 국악 공연과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네트워킹 파티 혹은 애프터 파티가 있다. 이전 국악bar에서는 국악 EDM DJ를 불러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네트워킹 파티를 진행했었다. Q. 국악bar4가 성공적이었나? A. 70명 좌석이 매진 됐다는 것만으로 국악bar의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매진이 될 만큼 국악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의도와 맞게 성공했다고 본다. 끝나고 나서 성공했다고 확신을 한 건 공연 팀조차 함께 남아서 공연과 파티를 즐겼을 때이다. 사실 행사라 하면 공연이 끝나면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Q. 참여한 사람들의 성향은 어떤 편이며, 그 중 국악인은 몇 프로로 추정되나? A. 확실히 전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일부만 국악 전공자였다. 그 외에도 예술 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공감하고 즐겼던 것 같다. Q. 장소 선정의 기준이 무엇인가? A. 장소는 우선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고 공연하는 곳에서 음식과 음주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하고 있다. 그 기준에서 예술가가 설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고 있다. Q. 3차에 비해 장소, 분위기 등 전체적으로 만족했나? A. 3차는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진행했다. 국악bar의 컨셉을 유지하기에 ‘KOTE‘라는 복합 문화 공간이 인사동 거리라 전체적인 분위기나 흐름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Q. 국악 bar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즐기고 싶은국악을 좋아하는 비전공인이 많다는 것을 국악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알리는 것이 목표이다. 국악bar를 통해 ‘Hip’한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공연 입장과 함께 bar에서 전문적으로 제작된 술을 받을 수 있었다. 1부 ‘줄헤르츠’ 2부 ‘김율희, 서영도’가 공연했다. 줄헤르츠는 가야금, 거문고, 아쟁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이번 공연에서 인도 음악 음계를 사용하거나 거문고를 타악기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2부에서 공연한 김율희는 루프스테이션(Loop station)을 사용해 라이브로 노래를 녹음하여 반주로 삼는 등 색다른 무대로 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율희와 함께한 서영도의 기타는 노련함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서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관객들이 웅성웅성했지만 이내 독특하고 창의적인 공연에 매료되었다. 인터미션 시간에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혹은 술잔을 부딪치며 낯선 이들과 자유롭게 어울렸다. 취재에 응해준 사람 중 80프로는 국악 비전공자였으며 인스타그램 또는 소수의 사람들이 속해 있는 전통 커뮤니티에서 국악bar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운영진들은 국악bar4의 대성공에 만족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박종원 매니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남녀노소 국악 공연과 파티로 연결하고, 국악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국악bar입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국악인들과 파티를 벌여오다 이렇게 코트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수준 높은 공연과 먹고 마시는 파티가 준비되어 있으니 함께 해주세요!(인스타그램 계정 아이디: gugak_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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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자의 객석] KBS 국악한마당, 그 ‘마당’에 없는 것공연은 국악과 현대음악이 어우러진 신명나는 리듬과 함께 시작했고, 연이은 안숙선 명창의 무르익은 소리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세월만으로도 감동이지만, 연륜과 기교까지 시청자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국악 신동 김태연에서,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걸출한 스타 국악인 박애리, 남상일까지 출연자와 야외무대는 ‘전남 영광’이라는 지역의 시원한 하늘을 품고 완벽에 가까웠다. 전남 영광의 ‘법성포 단오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10주년을 기념하는 ‘KBS 국악한마당’이 지난 6월 18일 방영되었다. TV를 통해 시청한 기자는 이 잘 차려진 밥상 같은 공연을 즐기고, 때로는 감동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작은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밴드 AUX의 오프닝 무대는 전자기타 연주에 낯선 어른들까지도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특히, 두 번째 노래 ‘까투리’는 감각적인 편곡과 작사, 태평소의 현란한 기교, 그리고 시원한 보컬이 어우러져, 우리 음악이 이렇게 세련되게 변신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TV 앞 시청자까지 어깨가 들썩일 정도라면, 현장의 객석에서는 일어나고도 남았을 분위기였을 것 같다. 하지만, 화면에 비춰진 어느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없었다. 아마 프로그램의 성격상 자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점이 매우 아쉬웠다. 우리 전통음악은 궁중음악이 아닌 이상, 민초들 사이에서 불리고, 즐겨왔던 우리의 희노애락이 담긴 노래가 아닌가. 그것이 재주꾼들을 통해서 발산되고, 관객과 함께 하는 무대라면, 관객들도 함께 어깨를 들썩이고, 한 번쯤은 일어나서 어깨춤을 춰 줘야 노래의 맛을 진정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해는 저물어 어두워지고, 화려한 조명과 그래픽은 무대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가끔 화면에 비치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굴의 깊은 주름과 관람을 위해 한껏 멋을 내주신 매무새도 눈에 들어온다. ‘오랜 시간 딱딱한 의자에 앉아계셨을 것 같다. 공연이 끝나는 실제 시간은 아마 어느 늦은 저녁이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오제’와 ‘전남 영광’이라는 지역을 지켜온 분들이 바로 이 분들이다. 그 분들을 격려해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은 해질녘에서 늦은 저녁까지 딱딱한 의자에서 박수까지만 허용되는 객석에 앉아계셨을 것 같다. 무대의 출연자만이 주인공인 것 같고, 무대와 객석 사이 거리는 너무 멀고, 물과 기름 같은 느낌마저 들어서 안타까웠다. 공연이 너무나 훌륭하여 더욱 안타까웠다. 전통문화를 예술 그 자체로 보고, 그 자체로 즐기는 것 역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대중이 좀 더 즐길 수 있는 역동적인 무대는 그것 못지않은 양적, 질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생각한다. 옛 분들은 음악을 어떠한 방식으로 즐겼을까? 고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 공간은 여럿 우루루 모인 너른 마당에, 재주꾼 몇 명이 한바탕 판을 벌려 놀이와 춤으로, 때로는 서사를 더하여, 그네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던 애환을 공유했던 장이었을 것이다. 그 예술적, 문학적 매력으로, 역사적 가치로 인해 서민에서 양반으로, 혹은 다른 이들에게 전해져 문헌으로, 기록으로 남겨졌을지언정, 그 시작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그 노래의 주인은 단연 시대를 짊어졌던 땀 흘리는 백성들이고, 서민들이다. 명창의 소리만으로도 울림을 주었던 흥보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복 없는 놈은 계란에도 유골이라더니...”, 슬쩍 지나가는 이 익살스런 표현은 돈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슬픔마저 웃음으로 위로하는 해학이 숨어 있으니, 바로 앞에서 들었으면, 무릎을 치고,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웃음 한 줌 나왔을 대목이다.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은 노래 속, 사랑, 슬픔, 희망, 시대적 아픔 중, 어느 이야기와 함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면,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를 이해하고 추억하는 것은 물론, 현재 우리 삶을 이야기 하는 또 다른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난장앤판’의 공연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지만, 관객과 호흡하기에는 그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쉬웠다. 그때의 방식으로 판이 벌어지고, 노래가 불리기를 바란다. 한바탕 벌어진 놀이판은 시끌벅적하게 함께 웃고, 울고, 노래하며, 어깨를 들썩이던 이들에게 하루의 고단을 떨쳐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랬듯이 지금의 우리도, 시원하게 한바탕 판 벌어지는 무대에서, 우리네 애환이 담긴 노래 가락에 공감하고, 힘들지만 내일을 살아내는 우리를 위로하는 무대를 기대한다. 그 마당에서 민초들이 춤과 이야기와 가락으로 함께 느꼈던 그것을, 지금의 우리 역시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는 한의 정서를 가진 한민족 아니던가. 그것이 우리 전통문화 계승, 발전의 또 다른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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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찬란한 궁중문화의 품격, ‘종묘제례악’의 감동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종묘제례악의 장쾌함과 마주했다. 조선왕실의 품격과 장중함에 스며드는 순간이다. 국립국악원은 지난 22일 송년 공연으로 종묘제례악을 예악당 무대에서 올렸다. 한국적인 송년 공연문화 정착을 위해 기획 되어 24일까지 진행 중인 특집 프로그램이다.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어 올해로 20주년을 맞아 의미를 더하였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의 건국 이념과 철학을 담아낸 찬란한 궁중문화다. 조선왕조 역대 제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국가 제례 행사로 치러진다. 이때 사용되는 음악이 종묘제례악이다. 음악은 악(樂), 가(歌), 무(舞)가 연행되는 전통예술로 조선왕실 최고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세종이 만들어 아들인 세조가 제례 절차에 맞도록 수정하여 종묘제례악으로 제정했다. 역대 제왕의 문덕과 무공을 찬양하는 보태평 11곡, 정대업 11곡이다. 음악과 함께 의식무용이 수반된다. 줄지어 서서 추는 일무로 가로세로 여덟 줄로 64명의 무용수가 춤을 춘다. 문덕을 찬양하는 문무는 오른손에 꿩의 깃털로 장식한 적과 왼손에는 대나무로 만든 약을 들고 춘다. 무공을 찬양하는 무무는 오른손에 창과 칼을 들고 춤을 춘다. 종묘제례는 음악도 조선시대에는 국가 음악전문 기관인 장악원이 담당하였고, 오늘날에는 국립국악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이번 송연 공연에서 실내 공간의 장점을 살려 양질의 풍부한 음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야외 공간에서는 감상하기 어려운 섬세한 선율과 음색으로 프롤로그에서는 연주에 미디어를 입혀 몰입감을 높였다. 이날 무대는 일무를 앞쪽에 배치하여 궁중 의식무용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일무원의 복식은 2005년 종묘의궤 기록을 통한 고증 작업으로, 일무를 추는 동작 등을 고려하여 파란 남주의를 착용하였다. 종묘제례악은 한국 궁중예술의 정수로써 악무와 복식 모든 면에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종묘제례악은 조선 의례의 정점에 위치하며, 조선왕실 최고의 품격과 위엄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을 무대화한 콘텐츠로 의미 있는 송년의 시간을 선사해드리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새해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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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연리지’요 ‘비익조’, 두 제자의 몸 한 목소리서천으로부터 망향의 아픔이 담긴 구슬프고 해맑은 소리가 들린다. 서도소리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힘겹게 살다간 오복녀 선생의 소리이다. 북녘에 고향을 두고 낯선 땅에서 서도소리의 꽃을 피운 오복녀 선생을 회상하며 두 제자 김광숙, 유지숙 명창이 마음을 모았다.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대금 소리에 오른 오복녀 선생의 환한 모습, 이어 추모시 ‘서천으로 날아간 기러기 명창’이 자막으로 흘렀다. 고요함 속에 관객들의 시선은 멈췄다. "가을하늘 높이 날던 기러기 자매 보일 듯 잡힐 듯 휴전선 넘어 가슴에 봉숭아 물 못내 그리운 고향마을 궁초댕기 그 시절 사연~” 네 마디의 유려한 시문이 마지막으로 흐를 때 제자 김광숙 명창이 등장한다. 차분하고 운율이 살아있는 명확한 음성이다. "청매화 피던 날 홀연히 가신 서도소리 어머니 겨레의 명창” 절절함과 자랑스러움을 담아냈다. 그리고 ‘관산융마’가 헌가(獻歌)로 올려졌다. 이에 무대 우측으로 16살의 어린 복녀가 화답이라도 하듯 ‘공명가’가 등장하였다. 제자 유지숙 명창이 수심가를 올렸다. 뛰어난 표현력과 애조 띤 음색을 선생은 반갑게 반겼을 것이다. 관객들도 고운 자태와 절제미를 가슴에 담았다. 오늘과 미래의 서도소리 주인공들인 ‘제자의 제자’들이 대거 출연하여 오뉴월 들풀 간은 풍성함을 보였다. 여기에 서도소리를 떠받치는 이춘목과 한명순 명창도 함께하여 무대를 빛냈으니 크게 흡족해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크게 흡족해하셨을 것이 또 있었다. 제자 ‘김광숙과 유지숙’, ‘유지숙과 김광숙’이 한목소리로 같은 스승에 대해 회고하는 모습이다. ‘둘이며 하나’인 두 제자는 한목소리로 이번 공연조차도 스승님이 베푼 자리가 아니냐며 은혜에 답했다. 그리고 스승님이 소리를 연마하기 위해 무용, 가곡, 일본 노래까지 배우는 입문 시절의 열의를 회고하고, 스승님이 주신 비취반지를 불러내 변치 않는 빛을 확인시켰다. 이는 두 제자가 처음의 시절로 돌아가 안기며 그때를 안고 살겠다는 절절한 제자의 흠모를 표한 것이다. 같은 스승에서 나온 같은 제자임을 확인하였다. 아니 스승님에게 확인시켜준 것이리라. 하늘에서 얼마나 흡족해하셨을까. 비유로 부연하면 이는 두 제자가 한 선생의 유업 계승을 위하여 한 몸의 목소리를 낸 것이니 연리지(連理枝)요 비익조(比翼鳥)의 애틋한 형상이 아니겠는가.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 다시 전승케 하라는 유업을 실천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한 몸이 되고, 서로 더하는 이번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서천에서 초겨울의 신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새로운 계절을 맞으라는 천기이다. *취재 후기 다음은 주최 측이 보내온 두 분에 대한 자체 인터뷰 자료이다. #김광숙 선생님 "오직 서도소리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일평생을 바치셨던 선생님의 뜻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으며, 생전 아낌없는 사랑으로 소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더욱 그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앞으로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 올곧게 서도소리를 전승하고, 전통 서도소리의 원형에 기반한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서도소리를 더욱 확장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북녘땅에 서도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날을 기다리며, 선생님의 그 애절하고 간절한 바람을 꼭 이루어드릴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유지숙 선생님 "추모 공연을 준비하며 선생님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서도소리를 지키며 전승하시려 했던 바람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철이 좀 더 있었더라면 든든하게 힘이 되어드렸을 텐데~. 선생님의 큰 울타리가 좋아 마냥 철없던 시절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생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한마음으로 따뜻하게 기리며 한 자손임을 다시 알게 한 것은 너무나 소중한 행사였습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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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마을에 “아리랑꽃을 피웠습니다”13일 토요일 오후 3시, 초겨울의 청명한 날씨에 하숙마을 한옥에서 아리랑꽃이 피었다. 어린이 6명과 회원 30여명, 그리고 장고춤 여성 3인의 단촐한 출연이었지만 무대는 화려했다. 첫 무대는 남은혜 명창, ‘숙세가’와 ‘은개골아리랑’으로 꾸몄다. 환호와 큰 박수가 있었다. 지난 달 29~30일 러시아 카잔지역 초중고 교사 대상 ‘마스터클라스 세미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우리 민요의 맛을 알린 공로에 대한 감사의 박수였다. 이어진 화려하고 신선한 무대는 어린이 6명이 꾸몄다. 본조아리랑과 늴리리야를 불렀다. 서민호 박고은 오하연 박세아 장다은 김나림 지유리 강소율 어린이들이 꾸민 무대로 이름과 모습에서 향기를 발했다. 관객들은 첫눈을 맞이하듯 반겨주었다. ‘국악의 미래’ 출현을 축하해 준 것이다. 윤명숙 허경자 김옥빈 최규필이 꾸민 여성 ‘장고춤’은 이색적인 무대였다. 남성적인 ‘북춤’과 대비되는 여성 춤의 고아한 맛을 잘 전달해 주었다. 30여명의 회원들의 네 번에 걸친 무대는 흥겨운 경기민요로 꾸몄다. 군밤타령, 방아타령, 태평가, 청춘가, 양산도, 신고산타령, 뱃노래, 경복궁타령으로 흥을 돋워 주었다. 남성회원들은 지게 작대기 장단으로, 여성회원들은 채질과 물래잦기로 옛 정취를 자아내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무대는 전 출연자 대합창 본조아리랑으로 맺었다. 아쉬운듯한 90분 공연이었다. 특히 어린이들의 출연은 여운을 주는 무대였다. 무대도, 출연자도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어우러진 무대, ‘아리랑으로 꽃을 피운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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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가을 하늘, 바다보다 푸르네가을 하늘이 바다보다 푸르다. 세종대왕을 길벗 10월호가 표지로 반기며 가을 정취를 담은 소식들을 전한다. 한글 관련 이야기를 시작으로, 특별화보는 도쿄 패럴림픽에서 사투를 벌이며 경기를 치른 선수들의 표정을 실었다. 피스메이커에서는 창경궁에서 출발해 ‘거리의 천사들 섬김의 집’에서 1박을 하고 최전방 갓바위 마을을 거쳐 봉오동 삼거리를 지난 뒤 비래바위를 바라보는 만산동계곡을 향한 여정을 담았다. 실린 사진은 청명한 하늘과 짙은 녹음으로 상쾌함을 전해주고, 윙크하는 나무조각상은 우습기도 하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사진과 이야기들도 많다. 오늘은 힐링투어 ‘용머리 해안과 하멜’, Poem ‘허수아비’를 소개한다. # 용머리 해안과 하멜표류기, 산방산과 추사 김정희 ‘하멜표류기’가 발간되기까지 하멜에 얽힌 이야기와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을 소개하였다. 용머리 해안에 들어서기 전에 만난 것은 스페르웨르호 상선 모형의 하멜상선전시관이다.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일본으로 가던 중 난파돼 표착한 곳이 용머리 해변이다. 선원 64명 중 생존자 36명은 조선에서 13년간 억류 생활을 하였다. 서울로 호송 된 뒤 전라도 여러 곳으로 분산 수용되고 탈출하기 까지 억류 생존자는 16명이었다. 8명은 탈출하고 2년 후 조선 정부의 인도적인 배려로 나머지 8명도 석방되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하멜은 조선에서 13년간 억류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여 ‘하멜표류기’를 완성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깊은 인상과 풍부한 경험을 잘 살려 기록하였다.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최초의 책으로 사료적 가치도 높다. 1980년 한국과 네덜란드는 우호증진을 위해 산방산 해안에 ‘하멜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용머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이다. 약 1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다. 오랜 기간 파도에 화산체가 깎여나간 형태가 마치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아 용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파도가 심해 입장 불가로 돌아서야 했지만, 용머리 해안을 처음 마주 하였을 때는 7년 전이다. 당시엔 만조나 파도가 심하면 제한이 있는 것조차 몰라 쉽게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이번에 세 번째인데 처음 와 본 동생이 해안 길을 걸어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는 해안 길 너머를 한참 바라보며 사진 속에 남겨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해안 길에서 올려다 본 것은 산방산이다. 정상은 푸른 난대림이다. 유일한 회양목 자생지이기도 하다. 1966년 천연기념물 제182-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산방산에 얽힌 전설과 설화도 많다. 남서쪽 기슭에 있는 산방굴은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던 곳이라고 한다. 용머리해안 근처에는 추사관과 추사적거지가 있다. 추사는 55세 되던 해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게 되고, 위리안치(圍籬安置)형을 받아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8년 3개월의 제주 유배생활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남겼다.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 때도 가을 하늘은 푸르지 않았을까. # ‘허수아비’ 정직한 신념, 긍정과 인내 가을이 깊어갈수록 벼는 노랗게 익는다. 초록빛 벼를 지키는 시 ‘허수아비’ 읽었다. 어릴 적 보았던 허수아비가 떠올라 반가웠다. 참새는 멀찌감치 달아났나보다. 허수아비의 얼굴과 옷이 깨끗하다. 황금빛 열매로 맺게 하는 정직한 신념을 소망하며, 시인 서성환의 시를 읊어본다. 허수아비 아름다운 혼들의 녹색 합창 흥겹게 어우러지는 빛나는 벌판 생명의 신비를 모두운 힘찬 함성들이 열매로 맺히는 활기로 가득하다 고된 사역 속에서도 패배를 모르는 정직한 신념들이 영그는 초록빛 바다 모가지 팬 벼처럼 우리의 불굴의 소망이 떼비둘기같이 함께 솟구쳐 오른다 아직 다 이룬 것 아닌데 가야 할 길 멀어도 이룬 꿈 바라보는 기쁨 마음에 넘쳐 즐거운 마음으로 동화되어 간다 인생을 긍정하고 인내로써 황금물결 환상에 손짓하며 나아가는 웃고만 서 있는 사나이 허수아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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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7월에 보고 듣는 ‘고흐와 브람스’푹푹 찌는 7월을 월간지 ‘길벗’이 전하는 초록빛 소식으로 시작한다. 옅은 미소를 안겨 줄 싱그러운 그늘 같은 이야기들이다. 먼저 무릉도원으로 이끄는 봉래산의 절경에 감탄하며 한참을 머물렀다. 별을 아는 자가 세계를 다스린다는 별 이야기에서는 솔깃하고, 식도락의 짜장면은 침샘을 자극하며 저녁 메뉴로 낙찰된다. 평화누리길의 논과 하늘은 청명하고 평화로운데, 담겨있는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딱 봐도 사랑하는 사이인 배도라치의 순진무구한 눈과 사랑스러운 포즈에서는 안타깝던 마음과 함께 세상 근심이 녹아내린다. 아리랑으로 읽는 세상은 글을 읽기도 전에 배경색과 무늬가 아리랑이라고 말해주는데, 아리랑은 사물이 아니라 형상을 표현할 수 없지만, 아리랑 페이지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는 묘한 매력도 있다. 작년 여름 명화의 감동을 미디어아트로 본 적이 있다. 사방의 모든 벽면과 바닥에서 그림이 펼쳐지고, 영상에 의해 그림은 살아 움직이며 실제 크기보다 몇 배나 커진 대형 명화를 볼 수 있었다. 빛과 음악이 어우러져 또 다른 감상으로 접했던 거장 고흐의 명화였다. 그림과 함께 흘러나온 음악 중에 브람스의 곡이 있었는데, 이번에 길벗에서 고흐와 브람스가 만났다. 길벗에서 고흐는 두 번 만났지만, 추억을 선물받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고흐와 브람스를 소개한다. 사람을 그리는 고흐, 사진보다 더 닮은 인물화, 듣는 자가 말하는 자보다 크다. ‘명화 속 사람들’의 초상화 주인공들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주제로 고흐의 초상화와 정물화 속에 숨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고흐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풍경화와 정물화를 습작의 과정으로 삼기도 했다. ‘성경이 있는 정물’은 탁자 위에 성경책과 촛대, 소설책이 있는 그림이다. 목사였던 아버지가 죽은 뒤에 그린 것으로 이사야 53장이 펼쳐진 성경책은 갈등 관계였던 아버지를 상징한다. 노란빛의 에밀졸라의 삶의 기쁨은 독서광이기도 했던 고흐 자신이다. 신성한 빛을 발하며 살겠다는 촛대와 이사야의 고난과 에밀졸라의 기쁨은 애정과 화해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정물화다. 고흐는 사람의 현실과 현실 그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정물에 사람을 그렸다. 습작과 무명의 시간이 지나고 특별한 사람들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화방을 운영하던 탕기 영감이다. 당시 고흐는 동생 테오와 일본판화에 심취해 있어서 영감의 가게에서 제법 사 갔고, 돈도 자주 빌렸다. 고흐는 인물화가 사진보다 더 닮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그림에는 강조되는 부분이 있었다. ‘탕기 영감의 초상화’에서는 영감의 수고를 나타내는 중수골이 튀어나온 흙색의 손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저녁 먹기 전 일과를 알 수 있는 나무뿌리 같은 손이 강조되었고, 영감의 손과도 닮아있다. 사진과 거울보다 그림이 그 사람을 더 닮았다니. 고흐의 눈은 보이지 않는 삶의 진실을 보는 눈을 가졌나 보다. ‘카페 탕부랭에 앉아 있는 아고스티나 세가토리’의 그림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다. 맥주잔의 손잡이 위치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맞은편에 앉아 있다. 그 사람이 고흐이고 맥주잔이 고흐를 상징하는 정물이라고 한다. 맥주가 가득한 것은 다독가였고 그림에 관해 세세히 기록했던 고흐의 이야기보따리를 표현한 것이다. 성경 앞에 소설책과 세가토리 앞에 놓인 맥주잔으로 고흐는 자신을 작은 정물로 투여했고, 아버지와 세가토리는 주인공이 되어 큰 사람으로 그렸다. 오늘날 고흐가 살아있다면 초상화의 주인공은 옹이와 나무뿌리 같은 손을 가진 자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일 것이라 한다. 주어진 삶의 하루하루를 충실히 쌓고, 말하기보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브람스의 목소리와 헝가리 무곡 1번, 베토벤과 나란히 3B, 브람스 풍의 교향곡 고흐는 갔지만 고흐의 그림은 남아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이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연주되는 수많은 곡을 그 당시 작곡자의 연주로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먼 옛날에도 녹음 기술이 있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녹음 기술이 생기기 전에 살았던 작곡자들의 실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날 악보나 여러 자료로 그들이 남긴 곡은 연주되고 즐길 수 있다. 1877년에 녹음기를 발명했으니 19세기 활약한 요하네스 브람스는 녹음을 남길 수 있었다. ‘Music’ 편에서는 브람스가 직접 연주한 헝가리 무곡을 주제로 브람스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헝가리 무곡’의 탄생 배경, 베토벤 교향곡보다 발전된 음악적 성과를 거둔 교향곡, 자유와 고독으로 녹여낸 베토벤과 비교 불가 교향곡, 세 곡의 이야기다. ‘Music’은 QR 바코드가 있어 읽으면서 청음도 가능하다. 브람스는 녹음 제안으로 헝가리 무곡 1번을 연주했다. 음질은 열악하지만 브람스가 직접 연주한다. 이 곡을 선택한 건 각별히 아꼈음을 말해 준다. 어린 시절 브람스는 가난했다. 19세 때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노 반주를 맡아서 여행하며 앙코르곡으로 집시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후에 연주한 선율들을 악보 화하여 피아노 편곡의 ‘헝가리 무곡’으로 출판된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던 그는 과거의 음악적 유산들을 탐구하며 고전주의 형식을 지향했다. 브람스는 앞 시대를 살다간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는데,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발자국을 의식하며 20년의 산고 끝에 첫 교향곡을 완성하게 된다. ‘교향곡 1번 C단조 4악장 피날레’는 베토벤 9번의 피날레를 연상시켰다. 한스 폰 뷜로는 "드디어 베토벤 교향곡 10번을 얻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또한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3B라고 최초로 지칭하여 오늘날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3B’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는 베토벤과 자주 비교 대상이 되었지만 19세기 음악계는 브람스의 교향곡이 베토벤의 교향곡을 한 걸음 발전시킨 음악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 베토벤과 비교되지 않은 단 하나의 곡이 있다. 4번 E단조다. 바로크풍의 파사칼리아와 변주곡 형식으로 베토벤의 전형인 장조의 환희에서 벗어나 단조의 어두움을 띄고 있다. 자유롭고 고독하게 살다간 브람스는 이 곡으로 브람스만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대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는 "독일 음악의 세계적 유효성을 한 번 더 분명하게 만인 앞에 보여준 마지막 음악가”라고 예찬했다. 혹 클래식이 따분하다면 헝가리 무곡 5번을 들어보라. 브람스와 제목은 몰라도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더위와 코로나는 여전하다. 불편하고 어려움은 있지만, 오늘은 고흐의 그림을 보며 브람스의 음악으로 잠시나마 위로받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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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전통의 재발견’[국악신문] 국립국악원_창작악단(사진=국립국악원 제공) 지난 14일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기획한 ‘전통의 재발견’이 예악당에서 펼쳐졌다. 이번 공연은 전통원형의 기악과 판소리, 정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작하여 협주곡과 국악관현악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전통과 창조가 융합하여 독창적이고 신선하며, 새롭게 창조된 국악이 전통의 가치와 소중함을 더욱 발견 할 수 있게 해준 공연이다. 국악관현악 ‘산곡’ 시작은 타악기가 울리고 난 후에 여민락 가락이 연주된다. 느린 템포로 평온함과 장엄함이 동시에 울려펴진다.서양악기 더블베이스와 첼로는 가장 저음으로 연주되고 국악기와 이질감이 없어 이러한 구성만으로도 첫 곡부터 전통의 재발견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산곡’은 여민락 가락에 여러 개의 타악기 장단이 반복적으로 넘나들고, 신명 나는 사물놀이 가락도 더해진다. 느리고 빠른 장단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곡이다. 마지막은 도입부와 같이 여민락 가락으로 마무리된다. 작곡자는 우리나라 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었을 삶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했다. 소금을 연주 할 때는 마치 깊은 산 속에서 산새를 즐기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조용히 연주 하다가 음향이 점점 커지고 짙어지며, 절정에 다다르듯 올라가서는 다시 하강하더니 이전보다 더 고조된 클라이맥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느리고 빨라지며 음향이 잔잔하고 커지기를 반복하는데 산의 굴곡과 4계절의 빛깔을 지닌 아름다운 산을 떠올리게 된다. 여민락은 세종대왕이 만든 곡으로 ‘백성과 더불어즐기자’라는뜻을 지니고 있다. 용비어천가의 일부 사설을 노래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현재는 관현악곡의 형태로 연주되고 있다. 전곡을 연주하는데90분정도나‘산곡’은 전통음악에 현대를 접목하여 장중한 전통미와 국악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참고로 영화(2005) ‘왕의 남자’에서 여민락이 연주된다. 영화에서는 여민락을 연주하는 악사와 궁중무용을 추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천년만세 삼중 협주곡 ‘인애’(초연) 신비롭고 아름답다. 희망이 가득한 순수하고 맑은 세상으로 인도한다. 그곳에서는 슬픔과 미움, 고통이 없는 기쁨과 화합의 세계이다. 전통음악인 ‘천년만세’는 세 곡을 이어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길이가 길지 않고 밝고 경쾌하다. 흐름은 보통빠르기-빠르기-보통빠르기로, 이번에 초연된 ‘인애’는 이 전통 가락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통을 재창조 하였다. 관현악과 어우러지는 가야금, 해금, 거문고의 삼중 협주와 관현악 연주 없이 각각 연주하는 흐름을 볼 수 있다. 후반부도 경쾌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하며, 어두움이 걷힌 희망의 빛이 있는 세상으로 이끌면서 마무리된다. 국악관현악과 이중창 가곡 협주곡(초연) 뛰어난 창의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전통의 재발견’ 답다. 국악을 딱딱하고 고루하게 여기는 사람들조차 이 작품을 만나면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곡은 판소리와 민요보다접할 수 있는 비중이 작다.국악 전공자나 국악 관련자와 관심 있는 자 외에는 국악을 접하기 어려워하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통음악의 중요성의 아쉬움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라져 가는 옛것을 이중창 가곡 협주곡을 통해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 작품이라고 여긴다. 처음부터 사로잡는다. 관현악 연주에 두 명의 남창 소리가 울린다. 한 명의 남창이 언락으로 처음부터 내어 지른다. 꿋꿋한 절개와 기개가 넘치는 소리꾼은 힘이 있고 묵직한 소리로 관중들의 몸에 파고든다. 이어 선비 같은남성이 저음의 소리를 내며 이중창이 시작된다. 넋을 빼놓는 신세계로 인도한다. 두 명의 남창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와 절제로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간다. 다시 듣고 싶은 곡이다. 한국음악에 화성이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국악관현악에 의한 이중창 가곡협주곡’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대풍류 협주곡 ‘신 대풍류’ 관현악에 피리와 대금, 해금의 협주곡이다. 시작은 힘이 있고 비장함이 흐른다. ‘신 대풍류’는 대풍류 가락에 시나위를 더하여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하며 웅장함이 공존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곡이다. 대풍류는 관악기 중심의 민속음악 합주곡으로 오늘날 좁은 의미로 지영희 선생이 남긴 염불풍류를 의미한다. 참고로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가 그린 ‘무동’에 대풍류 그림이 있다. 삼현육각의 악사와 춤추는 아이를 볼 수 있다. 판소리 협주곡 ‘저 멀리 흰 구름 자욱한 곳’ 심청가의 눈대목 중에서 범피중류를 관현악 연주와 여성 2중창으로 선보이는 곡이다. 가사와 구음으로 2중창의 화려한 조화를 보여준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번 판소리 협주곡은 전통과 현대가 만났다. 서양의 갈라 오페라보다품위와 절개가 있고, 지루하게 여길 수 있는 판소리를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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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전국 공주아리랑 민요 경창대회 성료(사)공주아리랑 보존회(회장 남은혜)가 주관하는 제7회 전국 공주아리랑 민요 경창대회가 26일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띤 경연 속에 충남 공주 충남역사박물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서울 경기지방에서부터 영남, 호남까지 전국의 민요 향유자들이 참가했다.공주아리랑은 긴, 자진, 엮음아라리로 부르는 토속아리랑의 조건을 모두 갖춘 아리랑이다. 선율은 충청도 공주지방의 지역성을 담보하고 있다. 정적이면서도 높고 낮음이 적은 편이다. 이번 경연은 공주아리랑, 경·서도민요, 지역아리랑 세 부문으로, 명창부, 일반부, 단체부(4인이상), 학생부(초,중,고)로 나누어 실력을 겨뤘다.명창부 대상은 국회의장상, 금상에 충남도지사상, 은상에 국회의원상, 동상에 공주문화원장상 , 장려상에 (사)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상, 특별상에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장상이 주어졌다.이밖에 일반부, 신인부, 단체부, 학생부 등 공주시장상과 공주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등 각 부분에 걸쳐 시상됐다.대회를 주관한 남은혜 (사)공주아리랑 보존회장(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이수자)은 "이번 대회를 통해 문화도시 공주의 이미지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공주아리랑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저변도 확대해 나가는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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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나의 소박한 ‘아리랑論’여전히 아리랑 고요한 새벽 풀잎에 잠시 앉아 해를 불러들이고 이슬은 소리 없이 스며들어 푸른 빛 주고 가네 우리 가슴에 이슬이 물들고 청청한 노래되니 이전에도 지금도 찬연하게 파고든다 사람의 육신은 끝나도 아리랑 넌 여전히 반짝이며 한없이 빛나겠지 "이슬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잎사귀에 물든대요. 그래서 더 짙고 푸르대요. 그런 이슬처럼 아리랑이 우리 가슴과 이 땅에 물든 것이지요. 잠시 반짝하고 유행하는 노래가 아니라 이전에도, 지금도 계속 불려 지지요. 밝게. 밝다고 해서 슬픔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리랑은 기뻐서 부를 수 있지만, 당연히한과 슬픔도 담아 부르지요. 그래서겠지요. 빛나는 노래예요. 아리랑은~."(어느 화요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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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나의 ‘이 한 장의 사진’매달 초면 기다려지는 월간 잡지 ‘길벗’이 도착했다. 6.25 발발 71주년, 6월 호국보훈의 달 특집호이다. 눈을 멈추게 하는 사진들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미얀마와 중동, 코로나19에 대한 화보로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도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동시도 담겨있다. 전쟁 사진에 눈길이 멈춘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종식되지 않은 분단국가의 아픔을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는 문명을 누리며 살지만, 사진은 그 날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해 준다. 그동안 한국전쟁을 말하며 ‘가슴 아프다’는 말을 쉽게 한 것이 부끄럽다. 한 장의 한국전쟁 사진, ‘전쟁 중에 하는 야외수업’ 모습이다. 하늘을 지붕 삼아 돌밭 위 벽돌의자에 아이들의 수업모습이다. 우측에는 색깔 없는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위태롭게 보이고, 집 뒤의 민둥산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칠판 하나와 벽돌의자가 교실 흉내를 내고 있다. 천막조차 없는 야외 학교다. 벽돌의자가 어딘가. 선생님의 수고였을까? 아니면 아이들과의 합작일까? 아마도 벽돌의자는 쓰러진 집이거나 건물의 기둥이었을 것이다. 볼품 없는 야외 교실이지만 친구와 가족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재잘거리며 이야기도 나누는 곳일 것이다. 뿐이겠는가. 선생님의 재미난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곳이기도 하고, 수업에 오지 못한 친구의 슬픈 소식을 듣는 곳일 것이다. 시선은 계속해서 사진에 머문다. 생각도 그 속으로 달린다. 배경은 폐허, 잿빛 옷에 고사리 손의 아이들. 열 명쯤의 까까머리 남자아이들의 수업 모습. 흑판에는 "유엔(UN) 평화~"라고 써있다. 선생님은 하얀색 상하에 모자까지 써서 권위(?)를 보인다. 그런데 앞 줄 세 아이가 팔을 들고 있다. 분명 선생님의 질문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산수 문제였을까? 국어 문제였을까? 아니면 피난 중 포화로 가족을 잃었는가를 물은 것은 아닐까? 아니, 이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80대의 이 분들이 지금 내 이웃으로 함께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러 저러한 생각은 급히 오늘의 내게로 달려 온다. 이 한 장의 사진, ‘역사 속의 한국전쟁’을 비로소 ‘나와 함께하는 역사’이게 해 주었다. 나도 ‘이 한 장의 사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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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삼례에 “책의 꽃이 피었습니다”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만났다. 기대한 탓일까? 그동안 사진으로 봤을 뿐 대면하는 건 처음이다. ‘고서 사랑’, ‘책의 남자 박대헌’. 본보에 연재하고 있는 그 분이다. 매주 보내오는 원고에는 오타 한 자 없다. 올곧게 지켜가는 고서에 대한 신념이 담긴 진지한 글 속에는 가끔 웃음도 있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고집쟁이 어른이 아니다. K선배로부터 성품에 대해 들었던 터라 만나고 싶었던 분이다. 삼례역에서 걸어 5분, ‘삼례+책+마을’이다. 역에서 가깝게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삼례책마을 찾는 방문객들은 가는 길만큼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 듯하다. ㄷ자형으로 잔디를 품고 있다. 평화롭고 사랑스런 풍경이다.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와 주위에 있는 모든 건물이 책마을 덕에 빛나 보였다. 선생은 ‘고서점 호산방’ 주인이며 ‘삼례책마을조합’ 이사장으로 이곳을 일구고 지키는 분이다. 선생과 악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쯤 일찍 왔다. 점심을 먹고 나면 맞아떨어질 것 같아서다. 삼례책마을 전경을 얼른 한눈에 넣고는 작은 도로를 건너 이름이 고운 ‘새참누리’ 식당으로 갔다.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데, 몇 명의 일행이 들어왔다. 이곳을 잘 모르는 듯 한 일행과 그들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한 중년.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중절모를 썼다. 크지 않은 체구에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몰두해 온 듯한 어깨와 나지막한 목소리까지 직감적으로 만나야 할 분임을 알았다. 연재 담당 기자로서 짧게 몇 번 통화한 선생의 목소리도 낯설지 않았다. 그들이 들어올 때 내가 앉은 자리를 지나게 되니 혼밥 하는 이가 있다는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나를 등지고 있었지만 나를 의식한 듯 보였다. 그래선지 얼마 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첬다. 순간 나는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 분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로 맞아주었다. 짧은 순간 사진으로 기억되는 전혀 다른 선생의 모습을 지워 버렸다. 다 먹어가던 참이었지만 식사하는 선생의 뒷모습이 혹시나 혼자인 나를 신경 쓰는 거로 읽혀져 바로 식당을 나왔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식당 밖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인사는 생략되었다. 바로 오전에 올 줄 알았던 일행과 같이 움직여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말수가 적고 전문적인 말만 할 줄 알았는데 유머가 배고 세심한 배려에 내가 그린 모습과 달랐고 훨씬 좋았다. 선생의 안내를 받으며 처음 만난 일행과 함께 삼례책마을을 둘러보았다. 책마을은 일제강점기 쌀을 수탈해가려고 지었던 양곡창고를 개조해 박물관과 고서점, 전시관을 갖춘 것이라고 한다. 화려하고 높은 건물의 규모가 아니라 역사의 현장을 허물지 않고 책마을로 탄생시켜 더 귀하고 가치 있어 보였다. 삼례역이 가깝게 있는 것도 일제가 쌀을 빠르게 운송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3가지 테마의 전시를 선생의 설명으로 볼 수 있었다. 먼저 '프랑스와 예술의 혁명' 전시다. 미라보 다리 시로 알려진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와 연인 마리로랑생’에 관한 전시와 ‘나폴레옹과 조선 서해안 항해기’, ‘근대 프랑스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 되어 있다. 그 중에 폴 세잔의 작품도 있다. 나: 아폴리네르가 왜 좋아요? 선생: 나보다 잘 생겼잖아요. 두 번째로 ‘요정과 마법의 숲 그림책 미술관’이다. 1940년대 영국 동화작가 그레이브스와 나오미 헤더 그림책이 출간되지 않은 미간행 원고의 전시다. 마지막으로 ‘문자의 바다 전’이다. 기원전의 자료까지 희귀하고 진기한 작품들이다. 알 수 없는 문자, 그 뜻과 깊이를 알지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자료가 반갑기도 했다. 세 곳의 전시를 안내 받은 뒤 책방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 곳을 들어서면 책이 2층까지 쌓여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온 몸이 지식으로 채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백석’을 검색하기도 했다. 여유를 갖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저서를 찾아보고 싶었다. 이 소망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세계의 고서, 그림, 음반 등 많은 양과 희귀한 자료들.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선생의 혜안이 부럽다. 영월책박물관에서 오늘의 완주삼례책마을에 이르기까지 많은 난제도 있었다. 그러나 삼례에는 비로소 선생으로 하여 책문화 도시가 형성되고, 이것은 삼례뿐 아니라 우리나라 지역 문화에 퍼지고 있다. 마당에 서니 선생이 흘린 땀으로 일구어진 ‘책의 꽃’이 삼례에서 피어 나고 있음을 5월의 신선한 바람이 알려 주었다. 전시관을 이동하면서 틈을 타 카메라를 내밀면 선생은 쑥스러워서 소년처럼 미소를 지었다. 사진 속의 또 다른 분이다. 무뚝뚝한 표정을 지을 것만 같은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겉으로는 강한 듯 하지만 속은 여린 중년이다. 삼례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호랑이가 잡아 가면 어쩌나~”하면서. 오랜만에 듣는 옛날 이야기로 마지막까지 웃음을 주었다. 창밖 점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 5월말의 삼례 책꽃 향기는 계속 서울로 가는 길까지 따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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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얼쑤! 우리가락 ‘더 콜라주’‘더 콜라주(The Collage)’는 국악이 서양음악과 만난 콜라보 영상 중에 가장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지난 5월8일 전주MBC 얼쑤!우리가락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전주세계소리축제’와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토’의 컬래버레이션 무대가 방영 되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한국전통음악 협연 영상 컨텐츠로 제작된 것이다. #화초장타령 ‘화초장타령’은 판소리 ‘흥보가’의 한 대목으로, 부자가 된 흥부 집에 놀부가 와서 화초장을 얻어 가지고 가는 길에 부르는 대목이다. 중중모리 장단을 서양악기와 만나 아쟁과 바이올린 을 더하여 편곡한 곡이다. 아쟁산조를 기반으로 하여 중반에 화초장 타령 멜로디가 나온다. 중후반은 바이올린 솔로와 아쟁 솔로가 함께 어우러져 마무리 된다. 시작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영상이 펼쳐지면서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배경 영상은 러시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와 러시아의 전경, 한국의 단청과 문고리 등 양국의 풍경을 담고 있다. 영상과 함께 동서양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무대 중앙에 앉은 아쟁 연주자의 소리가 더해지는 순간 절정에 이른다. 흐트러짐 없고 반듯한 선비의 모습의 명인. 서양악기에 아쟁의 소리는 선명하고 돋보인다. 동서양이 마치 하나인 듯 조화롭다. 곧은 절개와 위엄을 지닌 채 그 어떤 것도 개방하고 수용하여 재창조 되는 융화의 미가 잘 드러나는 연주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연주에 영상미까지 빼어나 여운을 주는 무대였다. '화초장타령’을 몇 번 되돌려 보았다.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연주이다. 수많은 컬래버레이션 영상 중에 ‘더 콜라주’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 영상을 꼭 보길 추천한다. #엇모리볼레로 우리 춤 중에 가장 고풍스럽고 우아한 태평무와 본고장 러시아의 화려한 발레가 만났다. 음악은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곡에 엇모리를 기반으로 연주된다. 3박자와 2박자의 반복에 엇모리가 얹어져 동서양의 춤을 볼 수 있는 무대이다. 타악기를 시작으로 저음의 현악기가 더해지고 이어 또 관악기가 합쳐진다. 이때 금박의 붉고 푸른 한복치마가 너울거리며 버선발이 사뿐 거리는데 또 다시 전율이다. 이어 기품 있는 무용수의 모습이 드러난다. 러시아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한국무용수는 우리의 춤사위를 선보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한 한복의 자태와 입술을 다물고 미소 짓는 얼굴에는 범접 할 수 없는 기개가 느껴진다. 초반부터 넋을 빼놓는다. 서양의 멜로디에 태평무가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묘한 조합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이어 러시아 발레가 등장한다. 버선발이 이렇게 우아하다니. 클로즈업 된 버선발이 보일 때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레는 현란한 발의 움직임과 태평무에서는 발의 버슴새에 주목했다”고 한다. 공감한다. # A Dream I Never Dreamed 4명의 설장구 명인과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로 우도농악의 꽃 오채질굿 장단을 모티브로 편곡한 무대이다. 비장하고 장엄한 울림의 오케스트레이션이다. 단원들의 영상을 뒤로하고 네명의 설장구 연주자가 앉아 있다. 이어 플루트와 장구가 함께 하는데 너무 잘 어울렸다. 선율이 매우 아름답다. 한 명씩 장구가 들고나다 4명이 함께 연주를 한다. 이들은 의상도 각기 다르지만 조화롭다. 친숙하고 편안한 장구가 우아하고 품격 있게 돋보인 창조적인 무대다. #아리랑 오케스트라 아리랑 연주에 세 명의 여류 명창이 구음 시나위를 더한다. 친근하고, 구성지고, 청아하다. 서양의 화음과는 다른 묘미를 준다. 후반부, 태평소가 절정을 이룬다. 우주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메마른 대지에 생명을 불어 넣은 무대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와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토’의 ‘더 콜라주’ 공연. 미디어시스템의 장점을 살린 감동적인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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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장문희 보유종목 '심청가', 남원의 5월 수놓다# "장문희의 동초제 심청가 5월 8일(토) 오후 3시 국립민속국악원 예음헌, 국립민속국악원 주변에 붙은 광고문은 5월 8일 3시에 바뀐다.” # "2021년 남원의 5월은 44살 5월 장문희이다, 청신한 연록의 장문희는 5시간 20여분 후인 8시 20분 지금, 진록으로 변한다." 서울행 KTX 시간에 쫒기며 남긴 내 취재노트 메모이다. 이제 장문희를 다시 만난다. 고참 기자의 동행 강권으로 남원행을 단행, 광한루를 거쳐 공연장에 도착한다. 만석이라 부득이 발표자를 팔아 좌석을 받아 입장한다. 취재 목적이지만 발표자를 만나지 않는다. 완창 발표의 부담감을 걱정해서다. 공연장은 ‘거리 두기’로 60명이 만석, 나긋한 아니리조 해설이 부동자세를 풀어준다. 유영대 고려대 교수, 2004년 전설의 ‘대사습놀이 역사 상 심사위원 7인 전원 만점’ 그 주인공과 심사위원 한 분의 조합이니 취재기자로서는 분명 행운이다. 발표자 장문희, 여린 화장기에 다소곳한 너름새로 등장한다. ‘장문희에 최적화’ 한 고수 두 분 조용수/조용복과 함께. 객석의 박수에 물려 나직한 아니리로 시작한다. "송나라 원풍 만년에~ ”, 분명 첫마디는 촉촉하다. 눈시울에도 번진다. 그래서 아니리를 지나 자진모리 ‘곽씨부인 어진행실’ 시작까지 만감을 담아낸다. 당연하지 않은가. 오늘이 어느 날인가. 제도적 공식 지위 ‘심청가 보유자’ 지정 받은 이튼 날이요, 그 종목 완창 발표를 하는 날이니. 또 무슨 날인가. 강원도 인제와 전라북도 전주라는 거리만큼의 그리움으로 사셨던 어머니, 연로하여 쇠잔하여 모시지 못한 소리의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이 겹쳐지는 어버이날이니. 여기에 자기세계로의 출발 순간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이 뿐인가. 첫 심청가 완창회 때 초등학교 친구들의 눈빛. 제10회 동아콩쿠르 학생부 판소리 금상수상으로부터 제1회 공주전국명창·명고대회 판소리 명창부 대상 수상까지 친지들의 노심초사. 13회, 24회, 30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의 국악계 격찬,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 그랜드 마스터 선정과 ‘명창대첩 광대전’의 우승에 이어진 대중들의 호응. 완창 음반 ‘장문희 심청가 동초’와 싱글 앨범 ‘이화우 흩뿌릴 제’의 발매 성가. 이는 성취요 자긍심인 동시에 부담이니 말이다. 아, 스승의 단호한 당부도 들려온다. "겉목은 쓰지마라. 야무지게 뒤집어 봐” 만감의 순간이다. 자진모리 곽씨 부인 삯바느질 대목이 간결한 고수의 추임새로 시작된다. 발표자의 소리길이 터지는 순간이다. 아니리는 단출하다. 이런 저런 소리꾼들은 아니리를 쉴 참으로 삼는지라 너스레를 더해 맥락을 흐트리지만 발표자는 단 두 번만 자신의 이름을 대고 고수 팔 걱정한다. 발림 절제, 정돈된 아니리, 설음으로 짜간다.‘어린 심청’, ‘효녀심청’, ‘황후 환생 심청’ 서사를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장단 치며 짜간다. 곽씨부인 유언 대목 시작해서 부친과 하직하고 임당수에 투신한다. 또 한 번의 절창 ‘범피중류’로 눈물지으며 용궁으로 간다. 달고 맺고 풀어낸다. 세 시간의 연창, 발표자는 고수 팔 허리 걱정한 듯 윤기 오른 목을 잠시 내려놓는다. 귀 명창 객석은 박수에 추임새로 화답한다. 잠시의 휴식 지나 다시 새 고수 등장한다. 중모리 진양 잔잔히 물결 타고 두 시간여를 내 달린다. 용궁에 당도한다. 승상부인 세 번 등장, 그립고 안타까워 망사대 올라 화상 보며 시를 짓는다. 드디어 절절한 사연 쌓아 모친상봉 하고나서 왕후가 되는 대목을 지난다. 그리고 절절하게 도화동 부친 눈떴을까 헤아리며 "추월은 만정허여~” 기러기에게 간절한 안부를 전차한다. 절절하고 매혹적이다. 5시간 20여분 동안, "도화동 백성들은 세역을 없앴으니 천천만세를 부르더라~”로 여민다. 너름새 정교하고 부침새 다양하다. 사설 명료하게 전달하니 무겁고도 깊어 진지하다. 동초제 심청가 장문희는 감동이다. 동초 김연수(東超 金演洙), 운초 오정숙(雲草 吳貞淑), 난석 이일주(蘭石 李一珠). 동초제(東超制) 문파는 사백 장문희(詞伯 張文姬)가 잇는다. 가계로는 서편제 대가 이날치의 후손으로, 그 아래 손자인 명창 이기중이 있었으니, 그 딸이 명창 이일주다. 그 제자가 장문희니 소리 맥을 갖는다. 장문희는 사승 계보나 가계보로나 분명한 내력을 갖는 전통 판소리 명문 후예이다. 심청가만이 아니다. 이렇게 ‘5월 남원을 심청가로 수놓은 장문희’를 정리하며 두 분에게 전화를 한다. 해설을 맡았던 유영대 교수와 고참 기자에게. -세속적인 질문입니다. 2004년 심사 때 ‘99점’ 만점을 주셨는데, 이 번 발표는 몇 점을 주실 수 있는지요? 유교수-"100점은 신의 영역이니, 99.999 만점이요!” -선배님은 어떻게 봤어요? 선배-"많은 판소리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할 장황후 탄생을 봤지!” 망설임 없는 두 대답, 5월의 화창함보다 더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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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아들의 낙서가 장식된 테이블 '밥상'최근 봄 햇살 속에서 책 한 권을 읽었다. 이명선의 ‘밥상’이다. 가족과 함께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로 평범하게 보낼 수 있었던 날이야말로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내용은 연도별로 구분하였다. 엄마의 울타리를 그리워하는 딸과 아내, 엄마, 여자의 일상을 사실적인 묘사로 간결하면서 쉽게 읽을 수 있게 말한다. 첫째로 자식을 키우면서 함께 했던 일들과 아들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다. 아들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은 어떤 번거로움과 수고도 감내할 수 있으나, 못 온다는 전화에 그만 맥이 풀어진다. 아들이 쓰던 물건을 정리하면서 "고맙고 행복했다”라는 글에 가슴이 뭉클하고 어머니의 섬세한 사랑이 전해진다. 자식을 키우면서 어머니가 기뻐하고 서운할 때가 언제인지 조금은 알게 된다는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둘째로 자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엄마도 한 발자국 나서면 여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눈에 띄는 사람들의 패션을 보고 유행하는 흰 운동화를 사 신겠다는 아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가 아닌 ‘나’라는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 ‘세월이 가도 엄마도 역시 여자구나’라는 공감을 주고 소녀 같은 귀여움에 소리없는 웃음을 짓게 한다. 셋째로 딸이 되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그린다. 인간은 태어나 부모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만남 속에서 남편과 자식을 만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식들은 재가하고 부모도 떠나보내면서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기에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밥상’은 테이블에 아들이 칠한 낙서마저 장식이 되는 엄마의 사랑이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고 엄마의 정성을 먹고 나누는 밥상에는 잔잔한 감동과 웃음이 담겨있다. "아이들이 세상을 잘 살아 내길 지켜보고 조금이라도 그들의 울타리가 되고 싶은 게 내 꿈이라고 말하면 너무 시시한 것일까?” 이명선 저자는 영어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최근에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라는 번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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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길벗’, 희망의 봄을 만나다아직은 겨울의 미련이 남아 있지만 햇살이 내뿜는 입김은 확연히 포근해졌다. ‘길벗’ 3월호가 봄의 향기를 담아 찾아왔다. 눈길을 사로잡는 선명한 사진들이 반듯하면서 자연스럽고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아 단숨에 빠져들게 한다. 겨울과 봄 사이에 피어 있는 꽃들, 푸르름의 절정인 대나무 숲 길, 사랑스런 동백꽃, 섬진강에서의 눈, 명화 속 사람들 등, 정성을 다한 알찬 내용들. 몇 가지만 소개하기엔 아쉬울 정도다. 먼저 ‘맛있는 봄바람’을 소개한다. 봄나물 삼총사 쑥과 냉이 달래를 앞세운 ‘식도락 맛의 전령들 봄 밥상’에서는 육지와 바다의 봄 밥상으로 입맛을 자극한다. 야산의 잔설에서 냉이와 달래를 캐는 아낙네의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고, 등산 가방에 가득 담긴 고사리로 한 달은 봄맛을 만끽할거라는 글에 산나물 캐러 떠나고 싶게 한다. 땅에서 반기는 봄나물뿐이랴. 가장 먼저 봄을 맞는 제주 바다의 방게와 보말, 배말, 감태 ,벌교 꼬막. 기장의 멸치, 태안의 바지락, 섬진강의 재첩과 벚굴까지 민물과 봄 바다의 전령들도 한상 가득이다. 육지와 바다 그리고 민물의 봄 밥상을 푸짐하게 소개하고 있는 글이다. "살아낸다는 것의 슬픔과 외로움을 그나마 달래주는 게 음식이라고 보면, 미각과 비감은 배와 등의 관계처럼 하나의 몸을 이루며 삶의 모순을 모두 껴안는다.” 봄 전령을 따라가면 봄바람 밥상에 배가 불러 봄기운의 힘이 솟는다. 봄바람은 키 작은 풀꽃에서도 전해준다. 두 번째 글로 ‘풀빛세상이야기 작지만 우주를 품고 있는 개구리발톱’이다. 개구리에게 발톱이 있나? 한 뼘도 안 되는 여린 식물로 옅은 분홍빛을 머금은 순백의 앙증맞게 핀 꽃, 작지만 우주를 품었기에 깔보지 말라고 한다. 안타까운 전설 속 이야기에서 우리 조상들이 개구리에게 발톱을 달아 주었다고 한다. 작은 풀꽃에 감탄하고 어릴 적 함부로 대했던 개구리를 떠올리며 미안함에 용서를 빈다. 순수한 고백이 풀꽃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워 나도 용서를 빌어 본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지난 날 신발 밑창만 만져주던 풀과 들꽃들아 무심코 뭉개버리며 밟고 가서 미안하다고. 화해와 용서로 평화를 염원하는 풀빛세상이 남북에도 오길 고대하며 마지막으로 ‘길 위의 인생 최승희를 잇는 탈북 무용수 최신아’를 만나보자. 사진만 봐도 누구라도 제압하는 눈빛, 시원하게 드러나는 윗니와 곱게 올라간 입 꼬리는 생기와 기운이 넘치는데 영락없는 무용수다. 실제로 그녀의 춤을 보면 "춤 동작에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는 글에 공감한다. 전설적인 무용수 최승희의 계보를 잇는 최신아는 북한에서 태어나 26년 동안 무용수와 무용감독으로 활동했고 김일성, 김정일 앞에서 공연을 했을 정도로 북한에서는 유명한 무용가였다. 처음 접한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를 보았고 백댄서들의 춤이 체제의 차이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갈구로 힘든 여정을 거쳐 한국으로 망명한다. 낯선 환경과 아는 이 없는 한국에서 ‘아리랑’이 매개가 되어 망명한지 3년 만에 재기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최승희 춤을 보전하여 춤으로 세계와 교감해 나가고자 하는 그녀의 바램을 응원한다. (덧붙여 본보에 1월 23일 최신아 이메일 인터뷰 기사가 게재 되어있다) "없던 희망도 생길 듯이 여겨질 정도로 봄은 긍정과 생명의 계절이 된다”는 글에 힘을 얻어 감사하며 이 봄과 손잡고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