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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집에서 우리 민속 예술 한마당 어떠세요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과 한국민속예술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헌선)가 주관하는 국내 최장수 민속축제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가 온라인에서 펼쳐진다. 195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라는 명칭으로 창설된 ‘한국민속예술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속축제다. 탈춤, 강강술래 등 180여 개 종목의 국가 및 지방무형문화재 지정, 11개 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등 전국에 산재하는 700여 종목의 우리 민속 예술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기여해 왔다.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지역 예선을 실시하지 못해 작년 참여단체가 대부분 재출전한 가운데, 영상을 촬영하여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지금까지 한국민속예술제의 주요 볼거리가 마당에서 민속의 신명을 느끼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현장성이었다면, 온라인 한국민속예술제는 관람객의 민속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해설과 현장의 소리를 담은 인터뷰 영상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해설 영상은 조선판스타 우승자인 소리꾼 김산옥과 방송인 박요한이 사회를 맡고 민속 종목 전문 해설자 김헌선, 김광희, 박정경, 이윤선 등과 출연자들이 참여해 24개 민속 종목의 실연 영상을 중계하는 형식으로 관객에게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또 올해 출전한 민속 종목별로 각 민속의 발생 배경, 공연 장면별 상세설명과 전승자 인물 탐색, 관람 팁, 사진은 물론 예술제 6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세한 설명이 담긴 안내 책자를 제작·배포해 한국민속예술제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김삼진 이사장은 "6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의미 있는 민속예술제를 온라인 개최로 이어갈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제작된 해설 영상과 인터뷰 영상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우리 민속예술을 쉽게 느끼고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 축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충청남도, 공주시가 공동 주최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한국민속예술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한다.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 영상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유튜브 채널과 한국민속예술제 누리집(www.kfaf.or.kr)에서 볼 수 있다. 해설 및 인터뷰 영상은 1월 18일부터 순차적으로 게시된다. 축제 관련 상세 정보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www.kotpa.org)에서 확인 가능하다.(문의 02-580-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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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음악서비스 '오케이쏭'에 음악창작소 채널 오픈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역음악창작소에서 발굴한 뮤지션의 홍보 활로를 위해 매장음악서비스 '오케이쏭'에 음악창작소 채널을 오픈했다고 30일 밝혔다.'오케이쏭'은 ㈜엘비케이코퍼레이션(LBK)이 전국구로 제공 중인 매장음악서비스다.콘진원은 지역 음악창작소에서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발매한 앨범을 제공하고, LBK는 '오케이쏭'에 음악창작소를 위한 별도 채널을 개설해 서비스 이용자에게 음악을 제공한다.올초 JTBC 예능 '싱어게인'에서 준우승한 경남음악창작소 지원 뮤지션 정홍일에 이어 다양한 음악창작소 발굴 뮤지션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대구음악창작소 '2020 D루키창작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밴드 '당기시오' 보컬 손진욱은 JTBC '슈퍼밴드2',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충남음악창작소 '2021 음반제작 지원사업'을 받은 'RC9(얼씨구)'는 JTBC '풍류대장'에 출연해 심사위원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국악 크로스오버 장르의 매력을 알렸다.전남음악창작소'‘2018 크로스오버 음반제작 및 마케팅 지원사업'에 선정된 퓨전 국악팀 '다온소리' 소리꾼 김산옥은 지난 11월 MBN '조선판스타'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이밖에도 부산음악창작소 '2018 음반제작지원사업'과 '2021 음반제작·프로모션지원사업'에 선정된 세이수미는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과 JTBC 드라마 '알고있지만' OST를 발매하는 등 음악창작소 발굴 뮤지션들의 다양한 활동과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콘진원 관계자는 "지역 뮤지션 활동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 경기, 대전, 인천 3개 지역에 음악창작소가 추가 개소된다"며 "앞으로도 지역 음악산업 균형발전과 창작자 지원으로 콘텐츠를 통한 ESG 사례 발굴에 앞장서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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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옥·박자희 등 '조선판스타' 국악인들 첫 국악 앨범MBN 예능 프로그램 '조선판스타'에 출연한 국악인들의 첫 국악 기획 앨범이 16일 발매됐다. 국악 전문 기획사 '메가기획'이 기획한 국악 앨범 '조선판스타 PANHORAN'에는 타이틀 ‘햇님달님’, 핫트랙 ‘어유아방아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크로스오버한 퓨전 국악 13곡이 담겼다.MBN '조선판스타'에 출연한 김산옥, 박자희, 정초롱, 김하은, 김란이, 윤예원, 조주한, 퀸(김가을, 전고은, 박혜령, 김제나, 신소을, 정이수), 박성우가 이번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타이틀곡 '햇님달님'은 소리꾼 박자희가 선보이는 국악과 클래식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곡이다. 특히 JTBC 예능 프로그램 '슈퍼밴드2' 우승팀인 밴드 '크랙실버'의 멤버 오은철이 이 곡의 작사, 작곡, 편곡을 맡았다. 더불어 박자희가 참여한 수록곡 '그대 작은 손'에는 뮤지컬 ‘창업’에 출연하는 배우 김동형이 듀엣으로 함께했다. 박자희와 김동형은 이 곡에 국악과 뮤지컬을 접목했다.핫트랙곡 '어유아방아요'는 판소리 '심청가'의 방아타령을 모티브로 힙합 요소를 가미해 재해석한 곡이다. 3대째 소리를 이어오고 있는 소리꾼 김하은이 이 곡의 작사와 작곡을 맡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을 그려냈다.‘조선판스타’ 우승자 김산옥이 참여한 '제비노정기'는 프로그램에서 김산옥과 이봉근이 함께 부른 곡을 솔로곡으로 김산옥만의 국악 판소리로 재탄생시켰다.이 밖에 퓨전국악그룹 퀸이 부른 '비상'은 힘든 여정을 통해 비상하고 싶은 국악인들의 마음이 담긴 곡이다.준우승자 정초롱의 부드러운 감성을 담은 '길', 배우 겸 국악인 조주한이 참여한 '할많하않'은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이 앨범의 음원은 16일 정오 국내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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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음식·겨울 음악회'…광주전통문화관 무등풍류뎐한해의 끝자락 '동지'를 주제로 펼쳐지는 전통무대가 광주 관객을 만난다.광주문화재단은 11일 오후 12시30분 전통문화관에서 무등산 자락서 즐기는 2021년 마지막 '무등풍류 뎐'을 선보인다고 9일 밝혔다.이번 공연은 '동지에 즐기는 겨울음식 이야기'와 '겨울 음악회'로 구성됐다.광주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이애섭이 팥죽과 붉은 팥시루떡, 동치미, 수정과, 식혜, 전약 등으로 구성된 전통 동지상을 선보이다.또 4색 경단, 곶감단지와 곶감쌈, 팥양갱 등 현대 감각의 겨울 음식들이 전시된다.이어 오후 1시부터는 민속학자 나경수 전남대 명예교수와 이애섭이 출연해 24절기 이야기, 선조들의 겨울나기 풍습에 대해 소개한다.서석당에서는 조선판스타 우승자 김산옥과 국악인 박성우가 출연, 특별한 겨울 음악회 '옛 소리와 연(聯)하다'를 펼친다.전통 판소리 춘향가와 수궁가가 연주되며 '인연' '아름다운 나라' '누가 죄인인가' '이 밤이 지나면' 등 귀에 익숙한 음악도 선보인다.이 밖에도 전통문화관 홈페이지에 신청서 접수 후 댓글을 단 참여자 50명과 한복 입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 20명에게 '나무 주방용품'을 선물한다.이번 공연은 전통문화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생중계되며, 현장 관람객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입장이 제한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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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근·조재호·조오환' 3회 대동전통문화대상 수상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예술인 등에게 수여되는 대동전통문화대상에 김학근 향토사학자, 조재호 공예가, 조오환 민속예술인이 선정됐다.대동문화재단은 3회 대동전통문화대상에 김학근 향토사학자(문화유산 부문), 조재호 도자 공예가(미술 부문), 조오환 민속예술인(공연 부문)을 각 부문별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문화유산 대상에 선정된 김학근 향토사학자는 39년간 교직에 몸담은 교육 유공자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 받았으며, 한국문화원연합회 전남지회장, 곡성문화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국 부회장 겸 광주전남 지회장을 역임했다.또 고향 곡성과 전남의 전통문화를 발굴, 보급, 확산시킨 향토사가로 활동하고 있다.미술 부문 대상 수상자 조재호 도자 공예가는 전남미술대전 종합대상, 대한민국공예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개인전 22회, 250여 차례 단체전 출품,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전남 문화재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공연 부문 대상 조오환 예술인은 2006년 전남 무형문화재 닻배 노래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으며 진도문화원 문화학교 '민요반' 지도 및 '일요 상설공연' 운영, 진도민요집 등을 발간했다. 특별상인 한우물상에는 서각예술 이진문, 전통무용 박석순, 풍물(설장구) 김용철씨 등 3명이 뽑혔다.미래인재상 청년부는 전통무용 한명선, 한지공예 천영록, 공예(도자기) 정지윤, 국악 김산옥, 금속공예 문정운, 전통공예 한준혁, 국악 이한서, 현대무용 정현미 씨 등 8명이 선정됐다.청소년 부문에는 대금 유현종, 줄타기 안시현, 국악 정단아, 줄타기 김하민 학생 등 4명이다.제3회 '대동전통문화대상' 시상식은 14일 오후 5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컨퍼런스 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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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에 어깨 들썩' 광주 12월에 신명나는 전통공연 '풍성''판소리·설장구·아리랑' 등 전통문화를 느낄수 있는 풍성한 상설공연이 광주의 겨울을 맞이한다.광주문화예술회관은 전통예술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국악상설공연이 12월 동안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5시 광주공연마루에서 펼쳐진다고 1일 밝혔다.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공연은 얼쑤가 1일과 10일 연다. 비나리협주곡, 신앉은반 설장구, 민요연곡, 사물놀이 등이 결합된 '인(人)수(水)화(火)풍(風)' 무대로 관객과 소통한다.창작국악단 도드리는 2일 같은시간 관객을 만난다. '명인·명창과 함께하는 도드리 송년음악회' 주제로 국악경연프로그램 '조선판스타' 우승자인 김산옥이 출연해 사회와 함께 '난감하네, 아리랑 광주' 무대를 선보인다.아쟁명인 김영길이 박종선류 아쟁협주곡 '금당', 제46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명창부 장원을 차지한 김병혜 명창이 판소리 단가 '강상풍월', 심청가 중 '방아타령'을 연주한다.명창과 명인이 선보이는 공연도 3일에 펼쳐진다. 광주시립창극단 예술감독인 유영애 명창과 김영길 명인, 채향순 명무가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를 무대에 올리며 판소리 흥보가 중 '가난타령'을 들려준다.4일에는 '명인과 함께하는 가야금의 향연'을 주제로 성애순 명인과 문명자 명창이 출연해 실내악과 국악가요, 가야금과 창작무,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등을 연주한다.겨울 추위가 본격화 되는 12월 둘째 주에는 전통예술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무대를 비롯해 사물놀이 등이 펼쳐져 관객의 움추린 어깨를 펴개한다.예술단 '예락'은 7일 미디어아트와 전통예술이 결합된 '환벽당 이야기'를 통해 문인들의 작품과 일화들을 전통예술로 표현한다.8일과 9일에는 송년특집으로 삼도 사물놀이, 달구, 춘향가, 살풀이춤, 사물놀이, 한량무, 단막창극 등을 느낄 수 있는 송년특집 무대가 선보인다. 11일에는 판소리보존회가 출연해 가야금병창, 대전소리북산조, 미산제 수궁가, 강선영류 태평무 등으로 관객을 즐겁게한다.겨울의 꽃인 눈을 느낄 수 있는 무대도 잇따라 펼쳐진다.피리정악·대취타 광주호남지부는 '천지(天地)-하늘과 땅의 소리'를 주제로 기악합주, 가야금병창, 피리독주곡, 궁중무용, 퓨전판소리극 등을 14일 연주한다.15일에는 국악단 '도드리'가 관현악곡, 국악가요, 창작무용, 장구협주곡 등을 느낄 수 있는 '송년 음악회'로 관객을 만난다.16일과 17일에는 명인과 명창의 무대가 펼쳐지며 18일에는 이봉근 광대소리꾼이 출연해 쌍채북춤, 상쇠놀음, 판굿 등을 선보인다.이어 오는 20일에는 그동안 국악상설공연을 이끌었던 민간예술단체가 출연해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판소리, 남도민요, 진도북춤, 단막창극 등으로 송년 공연을 펼친다.광주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겨울의 초입 추위에 웅크린 어깨를 펼수 있는 12월 상설공연이 될 것이다"며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은 내년에도 이어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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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름다운 동행…순천 동아시아문화도시 19일 폐막'2021 동아시아문화도시 순천'이 개막 후 190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순천시는 2021 동아시아문화도시의 마지막을 장식할 폐막식을 오는 19일 순천부 읍성 남문터 광장에서 개최한다.폐막식은 '다시, 아름다운 동행'을 주제로 2021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류를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관현악 그룹인 앙상블 보니와 순천 출신의 국악인이자 최근에 방송된 '조선판스타'의 우승자인 김산옥의 협업 공연을 시작으로, 순천시립합창단·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샌드아트의 융복합 퍼포먼스를 진행한다.이어 올해 1년간의 동아시아문화도시 성과를 담은 영상과 중국 소흥시와 돈황시, 일본 기타큐슈시의 문화공연 영상으로 꾸며진다. 남문터 광장의 밤하늘을 수놓을 플라잉 피아노 퍼포먼스와 지역문화예술인, 팝페라 그룹의 합동 공연이 이어진다.특히 퓨전국악 밴드 억스(AUX)의 크로스 오버 공연과 레이저 아트 퍼포먼스로 장내 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이 외에도 중국 돈황시의 명소인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우견돈황'공연과 일본 기타큐슈시의 문화관광시설을 배경으로 한 기타큐슈 지역 예술가의 합동 공연은 영상으로 송출될 예정이다.부대행사로는 문학·사진 작가의 교류사업인 ‘아시아아트인’과 청소년 교류 사업의 성과 사진전, 남문터 야외 광장에서 진행하는 190일간의 행사 사진전을 진행한다.순천시 관계자는 "올해 진행된 2021 동아시아문화도시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비대면 온라인 교류를 통해 이번 폐막식까지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능했다"면서 "폐막식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올해 사업이 종료된 이후로도 3국 4개 도시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폐막식 현장 관람은 선착순 입장으로 진행된다.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 14일 경과자 또는 48시간 내 코로나19 검사를 통한 음성확인 문자나 확인증을 제출한 관람객만 입장이 가능하다.한편 동아시아문화도시는 매년 한·중·일 대표 도시를 선정해 각국 연중 문화교류 행사를 개최하는 사업으로, 순천시는 중국 소흥·돈황시와 일본 기타큐슈시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2021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돼 올해 1년간 교류사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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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전해지는 전통문화' 제7회 무등울림축제전통문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축제가 광주에서 펼쳐진다.광주문화재단은 제7회 무등울림 축제가 12일부터 14일까지 무등산 자락 전통문화관에서 펼쳐진다고 8일 밝혔다.'동네방네 무등울림'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무등산권의 5개 미술관과 무등육아원과 차생원 등 2개 유관기관이 협업해 실내·야외공연, 전시·체험으로 구성됐다.개막공연은 12일 오후 4시 광양버꾸놀이보존협회가 '무등의 버꾸놀이'를 펼친다. 오후 6시 서석당에서는 최근 김산옥 국악인의 사회로 '전라도말 소리공연'이 진행된다. 전문예술인들이 판소리 '흥보가 중 놀보 아부지 유언대목'을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 신명나고 구성진 창극으로 선사한다.또 광주시 무형문화재 광산농악, 굿패마루, 지역 풍물패들이 세 그룹으로 나눠 홍림교, 성촌마을, 의재미술관 등 3곳에서 동시에 풍물을 울린다.축제기간 동안 전통문화관 주변의 5개 미술관에서는 회화작품, 샌드아트 체험 전 등이 펼쳐진다.지역 전통차의 맥을 잇고 있는 차생원에서는 가족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동화작가 오치근 선생과 함께 차를 마시며 듣는 동화이야기를 진행한다. 무무등육아원에서는 전통놀이도구 만들기와 투호 키트 나눔, 코로나극복 메시지 작성하기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또 솟을대문 앞에서는 시민들이 도자기와 마스크에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전통 그림을 그리고 소장할 수 있는 체험행사가 펼쳐진다.이번 행사는 대면과 비대면 방식으로 운영되며 관람객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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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스타', 13일부터 '난장판' 콘서트…초호화 라인업'조선판스타'에서 활약했던 14개 팀이 콘서트를 통해 관객과 직접 만난다.오는 13일부터 MBN '조선판스타' 출신 가수들이 참여하는 ‘난장(亂場):판’ 콘서트가 주말마다 각기 다른 라인업으로 진행된다.앞서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조선판스타'에서 국악의 매력을 선사한 14개 팀 김산옥, 거꾸로프로젝트, 경성구락부, 김란이, 민은경, 박성우, 박자희, 보체소리, 유태평양, 윤예원, 정초롱, 조주한, 퀸, 홍주가 그 주인공들이다.특히 '제1대 조선판스타' 김산옥의 파워풀한 보이스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여서 기대를 모은다.한편, '난장(亂場):판' 콘서트는 이달 13일부터 다음달 26일까지 서울 마포구의 스페이스브릭에서 공연한다. 티켓은 3일 오전 9시 퀸(13일)과 김산옥(14일)의 공연부터 순차적으로 '인터파크 티켓'에서 오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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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스타' 거꾸로프로젝트·경로이탈·김산옥·뮤르·정초롱 격돌'조선판스타'가 특별한 듀엣 무대를 선보인다.30일 방송되는 MBN 퓨전 국악 서바이벌 오디션 'K-소리로 싹 가능, 조선판스타(이하 '조선판스타')'에서는 1억원의 주인공을 가릴 '최종결판'이 시작된다. 이 가운데 판정단 신영희 명창과 유태평양, FT아일랜드 이홍기와 민은경이 스페셜 무대를 선보인다.'조선판스타'의 결승인 '최종결판'에서는 거꾸로프로젝트, 경로이탈, 김산옥, 뮤르, 정초롱이 격돌한다. 5팀 중 1억원을 가져갈 최종 '조선판스타'가 누가 될지 이목이 집중된다.이에 더해 이날 현장에는 탈락한 '조선판스타' 도전자들이 방문해 응원을 펼친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를 하느라 아쉽게 결승까지의 도전이 좌절된 국립창극단 소속 유태평양, 민은경, 박성우가 판정단들과 '스페셜 무대'를 선보인다. '조선판스타'의 최종결판은 이날 평소보다 20분 당겨진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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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2021 서울예술교육랩 질문의 진화’ 개최서울문화재단은 예술교육의 지속적인 발전과 가치 탐색을 위한 강연 ‘2021 서울예술교육랩 질문의 진화’를 9월 14일(화)부터 11월 17일(수)까지 온·오프라인을 통해 진행한다. ‘2021 서울예술교육랩’은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에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공존하면서 발전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예술교육의 가치와 예술교육 실천가의 역할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동시대 예술가, 실천가들과 함께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의해 대상화됐던 기계, 동물, 물질, 생태 등 다양한 요소에 한 걸음 다가가 들여다본다. 프로그램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오픈 토크(9월 14일~10월 13일)’와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감각 확장 워크숍(9월 23일~11월 17일)’으로 구분된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교육가, 기획자 등 총 18명이 강사로 참여해 예술교육 실천가의 역량 강화를 위한 강연과 대담을 나눈다. 참여 강사는 △강병수(헬로긱스 연구소장) △고아침(얼룩소, 데이터 에디터) △권병준(미디어 아티스트) △어라우드랩(김보은, 김소은) △김산하(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김연임(웹진 ‘춤:in’ 편집장) △김영주(룹앤테일, 게임 디자이너) △김화용(미술 작가, 기획자) △박동준(아카이빙 바벨) △박동희(은파산업) △배인숙(하울링 대표) △백용성(미학자, 미술 평론가) △여운승(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광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이민경(안무가, 공연예술가) △이소요(미술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임성연(무소속연구소 대표) 등 18명이다. 9월 14일(화)부터 10월 13일(수)까지 열리는 오픈 토크는 온라인 비대면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열린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의 강연인 ‘동시대 기술문화 지형과 실천적 쟁점(9월 14일)’을 포함해 총 4개의 강연과 1개의 대담을 선보인다. 프로그램당 100명씩 참여할 수 있다. 속기를 통한 문자 통역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며, 행사 종료 후 자막 해설을 포함한 발제 영상 일부를 온라인 플랫폼 ‘노션’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9월 23일(목)부터 11월 17일(수)까지 열리는 감각 확장 워크숍은 서울문화재단대학로(종로구 동숭길 122), 홍릉수목원, 연희정원 일대에서 열린다. 생태, 동물, 물질 감각을 탐색해보고, 예술교육 실천가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8개의 워크숍을 선보인다. 프로그램당 각각 10명 내외로 참여할 수 있다.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예술교육 경력이 있거나 앞으로 예술교육 활동을 희망하는 예비 티에이(TA·Teaching Artist, 교육예술가), 예술기획자, 예술교육 관련 기관 종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2021 서울예술교육랩 질문의 진화는 프로그램별로 일정과 대상, 진행 방법이 다르며, 더욱 자세한 내용은 서울문화재단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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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Br> 고개의 나라, ‘아리랑고개’도 있다!고개는 산을 모태로 한다. 산의 허리 부분에 있는 고개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거나 가장 편리한 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질러갈 수 있기에 인적자원이나 물자가 넘나들고 군사적 관문 구실도 한다. 그래서 고개 입구에는 소위 수위도시(首位都市)로 발전시키는 복합기능의 관문취락(關門聚落)이 있거나 소도시를 견인하는 수안보와 문경 같은 영하취락(嶺下聚落) 같은 형태가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를 ‘산의 나라’라고 표현하는 것은 곧 ‘고개의 나라’라고 하는 말과 같다. 우리는 산을 신성시하여 고개마루쯤에 성황당이나 장승을 세워 양편 주민들을 문화적으로 연결시켰다. 당연히 방언·가옥구조·생활양식 등 문화권 설정에 있어 자연적인 경계를 이뤄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시켜왔다. 이 같은 우리의 자연조건 덕에 적어도 어느 자연 마을이라도 고개한 곳은 갖고 있다. 집에 가려면 고개 하나는 넘어가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니 그 이름도 많게 되었다. 고개·재·목·퇴·티 같은 순 우리 말이 있는가 하면 한자어로 고개 령(嶺), 고개 상(峠), 우뚝 솟을 치(峙), 고개 재/점(岾), 고개 현(峴)과 같이 뫼 산(山)을 변으로 쓴 한자어가 있게 되었다. 이 중에 ‘치’는 주로 영남 지방에서 쓰이는데, 울치(蔚峙)·율치(栗峙) 팔량치(八良峙)와 같이 하나의 접미어로 이루어진 지명이다. 이에 비하여 관북지방에서는 치에 ‘령’을 중복으로 썼다. 후치령(厚峙嶺)·주치령(走峙嶺)과 같은 용례가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을 같이 쓰는 곳도 있다. 문경새재의 경우인데 조령(鳥嶺)과 초점(草岾, 억새풀 고개)과 함께 ‘새재’를 함께 쓴다. ‘조령’은 ‘새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고, ‘초점’은 ‘억새풀이 많은 고개’라는 뜻이고, ‘새재’는 죽령과 추풍령 사이의 ‘사이 고개’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고개의 이름이 만들어지는 데는 주목되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그것은 고개 너머에 있는 지역 이름을 써서 정한다는 사실이다. 의왕시 학동에 있는 ‘오매기 고개’와 ‘의일 고개’의 예인데, 고개 양편의 의일 지역에서는 ‘오매기 고개’로 불리고, 오매기 지역에서는 ‘의일 고개’로 부른다는 점이다. 이는 고개를 넘어오는 곳이기보다는 넘어가는 곳으로 인식한 결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명분을 단 이름이 생기면 그 두 가지를 함께 쓴다는 점이다. 강원도 진부 ‘헌터골 고개’와 ‘전우치 고개’의 예인데, 헌터 고개로 불리던 것이 고전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 전우치가 넘나든 고개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전우치 고개’로 더 많이 불리는 경우다. 이는 자연 지명을 쓰다가도 사연과 명분의 이름이 생기면 이를 더 많이 쓰게 된다는 경우이다. 마지막은 우리말 이름과 한자식 표현을 함께 쓰기도 한다는 점이다. 강원 이북지역 고개 이름 중에 ‘구리 고개’ 또는 ‘동현(銅峴)’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이는 구리 광산 일대의 고개를 우리말과 한자식으로 표현한 예이다. 이는 문헌 기록과 현지의 표현이 공존하는 경우의 예인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고개 이름도 있다. 많고 구구한 고개 이름 중에는 지명이 아닌 노래 이름을 쓴 경우가 있다. 바로 ‘아리랑고개’이다. 어떤 고개보다도 유명한 고개일듯한데, 앞에서 살핀 고개 작명(作名)의 패턴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리랑고개’는 어떻게 해서 탄생한 이름일까? ‘아리랑’의 어원설이 ‘백인백설(白人百說)이듯이, 이 ’아리랑고개‘의 작명 배경도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배경에 대해 궁금해했다는 점이다. 아리랑 속의 고개, 고개를 노래하는 아리랑으로 다가가 본다. ①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고나 (진도아리랑)②아리랑 고개는 왠 고갠가 넘어갈적 넘어올적 눈물이 난다 (해주아리랑) ③문경새재 넘어갈 적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문경새재아리랑)④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개 넘어갈적 넘어올적 눈물이 나네 (서도아리랑) ⑤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북간도아리랑)⑥울며 넘던 피눈물의 아리랑고개 한번 가면 다시 못올 탄식의 고개 (기쁨의 아리랑)⑦아리랑 고개는 혁명의 고개 (김산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⑧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서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영일아리랑) ①~③은 문경새재와 아리랑고개가 어떤 고개인가라고 묻는다. 세 고개는 같다고 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고개’라고 한다. ④에서 아리랑고개는 구비가 많은 ‘열두 구비의 고개’라고 한다. 곡절(曲折)이 서리고 서렸다고 한다. ⑤와 ⑧은 살길을 찾아 남부여대하여 북간도로 가는 국경이 아리랑고개라고 한다. ⑦은 혁명의 고개가 바로 아리랑고개라고 단언한다. 중국에서의 항일투쟁이란 기치가 어른거린다. 이렇게 볼 때 아리랑 스스로가 묻고 답한 아리랑고개는 일단 ‘눈물’(피눈물), ‘탄식’, ‘쓰라림’이 수식하는 고개로, ‘쓰라린 가슴으로 울며 넘는 고개’인 것이다. 결국 ‘아리랑의 고개’ 또는 ‘고개에 서린 아리랑’은 이별과 만남의 정한(情恨)이 서린 우리들의 정서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게 되는 것은 위의 아리랑에서 구체적인 지명을 들어 아리랑고개라고 한 것이 ①과 ③이다. 그 구체적인 지명이란 경상북도 문경과 충주 사이를 잇는 ‘문경새재’로서 이 고개가 아리랑고개라고 한 것이다. 비록 은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민중의 사심 없는 소리’라는 민요의 진정성에서 이런 정도의 표현은 사실에 부합될 것이다. 곧, "아리랑고개는 문경새재에서 비롯된 것이다”로 이해하게 한다. 이에 1896년 미국 선교사 H. B.헐버트가 채록한 대표 사설은 다음과 같다. "On SaiJai’s slope in Mun-gyung town/ We hew the paktal namu down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이 기록은 후렴과 곡조를 부기(附記) 한 아리랑 기록으로는 현존하는 문헌 중 최초라는 점에서 신빙(信憑) 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확인한 이 같은 결론에 대해 사실은 이미 1955년 승려 시인 유엽(柳葉,1902~1975)이 1955년 이미 ‘민요 아리랑에 대한 私考’라는 글을 통해 제시했다. 오히려 단정적인 표현이 아니기에 더욱 동의하게 된다. "고개라는 말이 공교히 곡조(曲調)의 곡자(曲字)를 ‘구비’라고 해서 고개를 연상하게 하고, 또 자연계의 ‘재’(嶺)라는 말과 통할 뿐만 아니라, 구비와 재는 돌거나 넘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경험적 기억회상작용(記憶回想作用)에서 이별의 한(恨)을 또 한 번 연상하게 함으로써 ‘문경새재’ 같은 험준하고 불상사가 많던 이야기를 빚어낸 자연계의 지리적 고개를 끌어다가 아리랑 고개인 한과 정의 정신적 고개와 결부시킨 것은 작시기교(作詩技巧)로써 있을 수 있는 ‘멋’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랑고개는 문경새재에서 비롯된 시어(詩語)이다. 만일 이 ‘아리랑고개’라는 시어가 없다면, 과연 우리는 아리랑을 이처럼 가까이 불러왔을까? 온갖 상상을 허용하는 이 ‘고개’, ‘아리랑고개’를 창출한 우리 조상들은 대단한 창조적 시심(詩心)을 소유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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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br>다시 읽는 ‘Song of Ariran’(6)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같은 곡조의 다른 곡명을 달아 세 편을 불러주었다. 앞 편에서 제시한 ‘아리랑’(Song of Ariran) ‘옥중가아리랑’(Prisoner's ballad of Ariran) ‘아리랑연가’(Love song of Ariran)이다. 적어도 1937년 이전 이렇게 시제(詩題)를 달리하여 아리랑을 재구성하여 부른 이, 특히 ‘옥중’을 쓸 수 있는 인물은 김산 밖에는 없다. 1932년 최영한(崔永翰)이 아리랑을 소재로 한 민요시의 부각을 말하며 "조선에서 조선 정조를 잘 표현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민요일 것이다. 조선문학의 정화이며 조선 시가의 원류이다.”라는 민요론, 게다가 1930년대 신민요는 "시인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민요의 정신에 입각하여 지은 노래”라는 1930년대 말 고종옥(高晶玉)의 신민요론을 뛰어 넘어 ‘시대의 노래’로 불리는 아리랑의 진면목을 보여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저의 아리랑론, 즉 김산의 아리랑 이식은 ‘저항성’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조선조말 조정의 무능함과 이에 더해진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에 대한 철저한 저항인 것이다. 김산이 님 웨일즈에게 각인 시킨 「SONG of ARIRAN」 첫 면의 ‘아리랑’에서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오래된 전래민요‘라고 그 성격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여기에서의 망명과 투옥, 그리고 국가적 굴욕이란 1937년으로부터 300여년 전이니 조선조 말로부터 일제의 침략기(Because it is beautiful and tragic it has been the favorite song of all Koreans for three hundred years.) 저항한 노래라고 한 것이다. 당연히 저항은 탄압을 동반함으로 슬프고 비극적인 처지의 노래라고 했다. 책 첫머리에서부터 이러한 성격을 분명히 강조하였다. "이 애끓는 노래가 한국의 모든 감옥에서 메아리 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Every Korean prison echoes with these haunting notes, and no one dares deny a man's death-right to sing it at the end. The ‘Song of Ariran’ has come to symbolize the tragedy of Korea.) 그러나 비극에 머무른 노래가 아님도 분명히 했다. 저항의 그 끝에서 극적인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새로운 가사를 통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 이 오래된 아리랑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It is a song of death and not of life. But death is not defeat. Out of many deaths, victory may be born. There are those of us who would write another verse for this ancient "Song of Ariran.) 그래서 그 희망을 쟁취하기 위해 극한 저항을 노래한 아리랑을 ‘위험한 노래’로 규정하여 ‘위험한 사상’만큼이나 위험하다며 탄압하였다.(The Japanese are almost as afraid of ‘dangerous songs’ as of ‘dangerous thoughts’.) 김산의 이러한 저항정신은 단순한 정치학적 약소국으로서의 저항이 아니다. 당연히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자리하고 있어 문명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우리 한반도는 언제나 일본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혹은 시베리아에서 남쪽으로 진출해 나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왔다. 수백년 동안 한국은 북방문화의 중심지였는데, 오랑캐들이 중국을 침략하는 길에 언제나 한국에 침입하여 한국의 아름답고 개화한 도시와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다.”(Our little peninsula has always been a stepping stone from Japan to China and back again, and from Siberia to the south. She was for hundreds of years the center of culture in the north, and every barbarian invasion passed over on its way to China, devastating Korea's fair cities and fields of civilization.) 이러한 자긍심에서 김산은 아리랑을 중국의 항일전선의 동지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불러주며 인식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모두에게 가르쳐 주었다. 조선의 민요 아리랑.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고 모두 울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I taught everyone to sing the song I loved best-the old Korean Song of Ariran, and we all wept after we had sung this. The Chinese liked it very much and said they would never forget it.) 특히 감옥의 일본 간수에게 까지도 아리랑을 인식시켰다. 1930년말 북경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에 넘겨져 유치장 머물던 날, "이곳에서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Here I climb again the hills of Ariran.)라고 벽에 쓰고 일본 간수가 조선인 공산당 혁명가임을 알고 ‘인터네셔날가’을 불러달라고 했을 때 대신 아리랑을 불러주었던 사실이 있다. 그 절망적인 순간의 대화에서조차 아리랑을 언급하였다. "오늘 같은 날에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뭔데요?" "조선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음과 패배의 노래입니다. 아리랑이지요." 나는 이 노래의 의미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황량한 갈색 벌판을 바라보고 광동코뮨과 해륙풍을 생각하면서 낮은 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그는 대단히 감동하여서 이제까지 들은 노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칭송을 했다. "당신 부인도 이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대로 이 노래를 알고 있지요. 만일 부인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면 당신은 부인에게 새 옷을 사주고 친절히 대해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나는 이 노래를 절대로 잊지 않겠어요.” 유치장에서의 일본 간수와의 아리랑 교류, 얼마나 극적인가. 아리랑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아리랑의 대동성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어제의 ‘북방문화의 중심지 문명국 조선’이 오늘의 중국과 일본의 소용돌이에서 슬픈 노래이지만 언젠가는 상생의 노래로 부를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SONG of ARIRAN」 속의 아리랑은 저항성(抵抗性), 대동성(大同性), 상생성(相生性)을 지닌 노래인 것이다. 이는 곧 아리랑이 지닌 정신으로, 이 때문에 아리랑은 보편 가치를 지닌 노래이다. 바로 김산이 발견한 이 영롱한 ‘아리랑정신’은 그의 투철한 혁명성 못지않은 빛나는 유산인 것이다. 「SONG of ARIRAN」은 김산(金山/1905~1938)으로 표기된 장지학(張志鶴) 또는 장지락(張志樂), 가명 장지락·리철암·류정화·한국류·류허·한산으로 쓴 인물의 생애와 그가 지닌 혁명정신과 그가 지닌 아리랑 정신이 무엇인가를 기록한 값진 책이다. 주인공 김산은 사회주의 혁명가·항일독립투사·아나키스트·국제주의자·민족주의자라는 다양한 평가를 받는 문제적 인물이다.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공산혁명이란 민족해방운동의 한 이념적 무기로서 인식하는 과정과 마르크스주의 이론 자체 차원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독점적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치적 실천 활동(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동시 추구)에 목적을 갖게 되었음을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만주·북경·광동 지역에서 조선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 활동하였기에 늘 일제의 눈을 피해 활동해야 했다. 아시아의 제국주의적 광풍을 중국 공산당 혁명 성공의 결과로 조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활동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일원이지만 결코 "작은 약소국 조선이 흘린 피가 결코 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금처럼(like salt in water)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견지하였다. 이에 의해 조국에서 일제를 물리치고 새로운 질서에서 평화롭게 동아시아 국가로 함 산다면 모든 종교와 이념이 지극히 도달해야 할 상생의 실천인 것이다. 이러함에서 3.1운동으로 조국을 떠나기 전부터 인식한 아리랑의 속성을 주목하여 담론화 하며 절실한 동지로 삼았다. 그 결과 아리랑에 대한 혁명적 해석, 곧 ‘혁명을 견인하는 극한적 극복의 노래’로 입론하여 함께하였다. 그리고 인간적 교류의 처지에서 불의에 저항하나 크게 하나 되어 대동하고, 끝내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상생의 질서를 실천하는 노래임을 「SONG of ARIRAN」 에서 외쳤다. 김산은 아리랑정신의 지혜로운 발현자이며, 동시에 아리랑정신의 투철한 실천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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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br>다시 읽는 ‘Song of Ariran’(5)1930년대 중국 내 항일공산혁명 전선에는 아리랑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결과의 하나가 1940년 9월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정규 국군인 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광복군아리랑’이 공식 군가로 불린 사실이다. 1939년 1월 창립된 한국독립당 당군(黨軍)과 기타 독립군 및, 지청천, 이범석 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성립된 군대로 이들에게 이미 아리랑이 공유된 결과이다. 이는 곧 김산이 님 웨일즈에게 아리랑을 불러주고 그 의미를 설명해 준 1937년 상황이기도 하다. 제21회에서 제시한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한국의 오래된 전래민요 아리랑’과 함께 ‘Song of Ariran’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1961년의 ‘한국과 김산의 생애에 관한 주해-나의 연안 비망록’에 두 편의 아리랑이 더 있다. ‘아리랑옥중가’와 ‘아리랑연가’이다. 충분히 님 웨일즈가 김산으로부터 듣고 영감을 받았을만한 노래이다. 김산으로서는 두 번의 투옥과 중국공산당의 질시(嫉視) 속에서 채화하여 간절하게 심연에 두었던 아리랑이었던 것이다. ‘Song of Ariran’ 앞 부분의 진술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대목이 있다. 아리랑고개는 조선왕조의 폭정에 저항한 이들의 처형장으로 서울에 있는데, 이 고개를 오르는 사형수들에 의해 불리는 노래라고 하였다. 아리랑고개를 구체적 처소로 기록한 것은 이 기록이 처음이다. "젊은이 중의 한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민중에게 알려지자, 그 뒤부터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름으로서 자신의 즐거움과 슬픔에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 애끓는 노래가 한국의 모든 감옥에서 메아리 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죽음만이 남게 될 뿐이라고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진술에서 아리랑은 지배자의 '억압'에 대한 피지배자의 ''저항의 노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죽음'이란 표현은 저항의 의미를 극명하게 강조한 것이다. 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아리랑고개’의 의미를 설명하고 아리랑을 불러 주었음을 알게 한다. 그 기억의 재현이 바로 다음의 ‘옥중가아리랑’이다. 김산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옥중가아리랑'(Prisoner's ballad of Ariran)이다. 옥중가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첫번째 고개를 넘어간다. 내 들던 막걸리는 어디 있나/이제는 한강에 펌푸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재판장 고개를 넘어간다 금시계줄은 어디로 갔나/쇠수갑은 맞지를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감옥행 고개를 넘어간다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며/나이제 생사갈림길에 서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련다 아리랑고개에 간이역하나 지어라/집행인기차를 기다려야 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그대 열두고개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열세고개를 넘으리니 Prisoner's ballad of Arira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re are twelve hills of Ariran And now I am crossing the first hill. Where are the wine and beer I used to have? Now it's the Hankiang Pump for me.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 of my court trial. Where is my wristwatch band of bold? These steel hand'cuffs do not fit so well.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 that leads to prison. Now I stand on the frontier of life and death, Waiting for the sentence of doom. Ariran, Ariran, Arari O! Soon I'll be crossing the last hill. Make a new way-station on the hills of Ariran, For I must await the executioner's trai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last of the hills of Ariran. Comrades, comrades, my comrades! I know you will not stop at the twelfth hill, Ariran, Ariran, Arari O! You will cross the thirteenth hill of Ariran. 이 옥중가는 조선의 정치범들이 자주 부르는 노래로 "1921년 투옥된 한 조선 공산주의자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이 사설은 죄수 경험을 여러 단계로 말하고 있다. 즉 경찰에 의한 체포,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 ‘한강 펌프’라고 명명된 물고문, 사형선고의 기다림, 그리고 다른 혁명가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종래의 열두 번째 고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승리 즉 아리랑의 열세 번째 고개를 쟁취할 것을 뜻하는 마지막 구절 등이다. 1921년, 어디에서, 공산주의자 누가 작사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김산이 처음으로 투옥되기 이전에 아리랑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한다. 1930년말 북경 경찰에 체포되고, 이후 일본영사관에 넘겨지는 상황을 진술한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월 10일 아침 여덟시에 형사가 ‘오늘밤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오. 내일이면 천진으로 이송될 것이요. 오늘밤이 친구나 부인을 부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하고 말했다.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군요.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합시다.’ 그날 밤 나는 휴식도 취할 수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았다. 나는 벽 위에다가 ‘이곳에서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고 쓰고 내 이름을 서명하였다. 나는 아침 일찍 경찰서로 끌려갔다.” 김산 스스로도 ‘이곳에서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썼다는 사실에서다. 이상과 같은 ‘Song of Ariran’의 진술에서 비록 20년 후에 발간된 ‘한국과 김산의 생애에 관한 주해-나의 연안 비망록’에 수록된 다음의 ‘아리랑연가’ 역시 김산이 님 웨일즈(Nym Wales)에게 불러준 아리랑인 것이 분명하다. 이 노래에 대해서도 "남녀가 번갈아 부르는 이 노래는 많은 절로 되어 있다. 그 가사는 약 2백여년 전에 씌어졌다.(This song has many verses, sung alternately by men and girls. The verses was written about twenty years ago.)”라는 코멘트(Comment)를 한 것도 이를 알려준다. 아리랑연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구비/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떠나는 님은 잡지를 마라/못보다 다시 보면 달콤하거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에 물새는 못사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에 별들도 많은데/구름 뒤에 날보고 웃는 이 누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Love song of Arira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 of Ariran. There are twelve hills of Ariran And now I am crossing the last hill. Never hold back a parting lover- Absence makes reunion sweet. Ariran, Ariran, Arari O! No waterfowl can live on the hills of Ariran. Yet if my lover lets me go freely, Before walking ten li my foot will be sick.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 moon comes up and the stars come out-- who is that laughing at us behind the clouds?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sl of Ariran. 이 ‘아리랑연가’ 3, 4절은 영화 ‘아리랑’ 주제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설이다. 그러므로 이 4절의 ‘아리랑연가’는 영화 주제가의 곡조로 불린 것이다. 물론 앞에서 살핀 두 편 모두 같은 곡조이다. 3음보 2행 1련에 2행 후렴의 형식에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자가 북경에서 살고 있는 김산의 장자 고영광(84·高永光) 선생을 초청하여 가진 리영희 대기자와 함께 한 김산서훈기념 간담회에서도 직접 모친으로부터 들어 배웠다며 불러 확인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은 김산이 처음 투옥되는 1930년 말 이전에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가 중국의 항일전선과 조선의 감옥에서도 불렸다는 사실이다.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주제가 ‘아리랑’은 이미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까지도 한민족 공동체를 상징하는 노래로 전형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노래였다는 것이 된다. 이런 사실에서 1941년 발행된 ‘Song of Ariran’은 아리랑史에서도 평가를 받는 기록물인 것이다.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www.arirang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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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br> 다시 읽는 ‘Song of Ariran' (4)님 웨일즈는 김산과 22차에 걸친 인터뷰 이후 중일전쟁 발발로 난징이 함락되어 활동이 여의치 않자 집필을 위해 중국 연안을 떠나 필리핀 바기오 섬으로 간 것이 1937년 말이다. 이후 집필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존데이(Johnday) 출판사에서 ‘Song of Arirang’을 발간한 것은 1941년이다. 이 시기 아리랑사 국면에서 보면, ‘아리랑’은 이미 전형성(典型性)을 획득하고, 한국(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아이덴티티 표출 기능을 하며, 다층성과 잠재성을 지닌 메타문화(meta culture)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책의 헌사격인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오래된 전래민요 5절 아리랑’이나 20여 회의 명징한 아리랑 진술들은 동북아시아 조선(Korea)의 국제적 질서를 담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거대한 공산혁명 광풍 속에서 결코 바닷물 속의 소금 같이 녹아 버리는 존재가 아닌, 조국 혁명을 이루려는 한 조선 청년의 빛나는 투혼을 그려내기도 했다. 거기다 아름답고 슬픈 노래지만, 죽음을 넘고 넘어 끝내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는 활화산 같은 열정을 추동하는 민중의 노래임을 발현해 냈다. 1930년대 말 동아시아적인 정황의 공식적이면서 지극히 비공식적인 탁월한 기억과 기록의 합체인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김산은 1930년 베이징 경찰에 체포되고, 이어 1933년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형을 산 것을 빌미로 1938년 캉성(康生)에 의해 트로츠키주파이자 일본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총살당했다. 님 웨일즈는 남편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 1905~1972)와 17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한 개인 사정으로 활동을 하지 못했고, 미국 정계의 반공주의 강세로 책은 묻히고 말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 어디에서도 읽혀질 수 없었다.(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으나 마오쩌둥이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공산혁명을 이루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극동의 교두보인 중국을 공산세력에 내주게 된다. 이에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이 때문에 님 웨일스의 이 책은 미국 대중에게 보급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3년 후에나 존재가 드러난다. 2차 대전이 후반기로 치닫던 1943년 그 해 7월, 김구선생은 장제스(蔣介石,1887~1975)를 만나기 위해 고단한 여정을 보내야했다. 장제스를 설득하여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의제화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장제스는 11월 카이로(Cairo)에서 루즈벨트와 처칠과의 회담에서 종전 후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사실을 명문화 하였다. 그런데 이 회의에 참석한 루즈벨트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Song of Ariran’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시 김구선생은 장제스와의 만남을 위해 오가는 과정에서 아리랑(광복군아리랑)을 불렀을 것이고, 루즈벨트는 낮선 ‘Ariran’에 의아(疑訝)해 했을 것이다. 이렇게 김구선생과 장개석와 루즈밸트는 역사적인 카이로회담(Cairo Conference)에 아리랑이 접속했던 것이다. 이 같은 아리랑은 빛나는 사실이다. 항일혁명 전선에서 그 열기를 북돋워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경 임시정부 특별간행물 ‘중국혁명에 희생된 조선의용군 추도’에 당개 최고의 중국 시인 애청(艾靑)의 추도사에도 아리랑이 언급될 정도이다. 애청은 당시 ‘광서일보’ 편집자로 활동한 조선의용대원 김창만을 만나면서라고 했다. 1988년 발행된 ‘애청시선집’에서 "애청은 조선혁명가들에 대하여 경모의 심정을 품고 있던 가운데서 아리랑을 배워 근 5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사를 잊지 않고 부른다.”라고 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증언을 이었다. "우리는 주저 없이 스스로를 전쟁에 바치기로 맹세했다. 무한히 광대한 대지 위에서 우리와 중국의 형제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투쟁한 지 어언 5년이 되었다. 아리랑의 노래 소리가 화남(華南)에서 화북(華北)까지 울려 퍼지고, 우리의 족적은 중국 전장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런 아리랑의 동지적 유대는 1935년 중국 공산당에서 음악적 명성을 얻은 정부은(정율성,鄭律成, 1914~1976) 같은 뛰어난 조선인 음악가에 의해 항일혁명 의지와 결합시키는데 성공한 결과다. 아리랑은 중국 형명군들에게도 조선의 힘 있는 노래라는 사실을 인식시킨 것이다. 바로 이런 정황들이 1930년대 ‘김산 아리랑’의 배경인 것이다. 한편 이 시기 만주와 조선과 일본 속의 또 다른 아리랑 상황은 이와 배치되기도 한다. 시대상이 직조한 탁류에 휩쓸리고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중반에는 엔카풍(演歌風)‘아리랑夜曲’이 일본과 조선에서 유행하고, 1940년에는 일본 히비야공원(比谷公園)에서 ‘한일합방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만주에서는 총독부의 이주 정책 홍보를 위한 ‘만주아리랑’이 불렸고, 조선에서는 ‘애국아리랑’이나 ‘아리랑술집’ 같은 친일적이고 자폐적인 가요(歌謠)가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주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얼시구 춤을 추네//젖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에/오족의 새살림 평화롭네”라는 정책 선전가(宣傳歌)이고, ‘아리랑술집’은 "눈물로 미뤄다오 한숨도 미뤄다오/조각달 내 신세가 타관에 두고//잔속에 노래 실어 부르자 부르자/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자탄가(自歎歌)이다. 뿐만 아니다. 총독부의 동원에 ‘악극(樂劇)류 아리랑’ 작품들이 여러 공연단체들에 의해 산업전선을 돌고 있었다. 이런 탁류에 비해 중국 연안 항일전선 상의 김산에게는 그 격렬함만큼 주옥같이 빛나는 아리랑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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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br>다시 읽는 ‘Song of Ariran' (3)지난 회에서 1930년대를 산 세 지식인, 영화감독 나운규, 정치학자 고권삼 그리고 ‘독립혁명가’(1984년 번역자가 규정한 표현) 김산의 아리랑관(觀)을 대비하였다. 나운규는 독립운동가이며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이 그리는 아리랑은 남성적이고 의협적(義俠的)이라고 했고, 고권삼은 일제의 본토에서 식민지 조선의 정치사를 입론하는 입장에서 아리랑은 비폭력적이고 순치(順治)된 이들의 노래라고 했다. 그리고 김산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했는데, 이는 1910년대로부터 30년대 격동의 조선이 겪는 파고를 몸으로 부대끼며 실천한 자가 아니면 토로할 수 없는 아리랑관이라고 규정하였다. 과연 김산의 이 같은 진술은 ‘Song of Arirang’ 속에 어떻게 구체화 되었고, 그 의미와 깊이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Song of Ariran’의 님 웨일즈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문장 안에서 많은 열쇠말(K-word)를 담고 있다. ‘남자(김산)’, ‘연안(延安)’, ‘1937년’, ‘도서관’, ‘영문책자’, ‘명단’인데, 이 책 속의 아리랑을 맥락적인 이해를 돕는 키워드이다. 이 중에 1937년이란 시점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김산에게는 인생과 진술의 최종의 시한(時限)이고, 님 웨일즈에게는 1941년 초 인쇄에 넘기는 기간인 3년간이란 집필의 시작 시점이다. 맥락적 이해의 중요한 단서인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연안에서였다. 그곳에 머물러 있던 1937년 초여름 어느날, 나는 루쉰(魯迅)도서관에서 영문 책자를 빌려간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고 있었다.” 김산과의 우연한 만남, 국민당에 포위를 당한 중국공산당 본부가 있는 연안, 두 사람의 지식욕이 강하여 독서 범위가 넓은 상황을 알려주는 노신도서관, 영어 해독과 소통이 가능한 사이라는 점, 중국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많은 조선인들의 존재, 이런 정황 속에서 아리랑이 언급되었고, 이들 간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선 책명으로부터 접근해 본다. ‘Song of Ariran’에는 표제(表題)로서, 노래 가사를 통해서, 노래의 역사와 기능에 대한 진술 부분에서 ‘아리랑’이 등장한다. 우선 책명을 ‘Song of Ariran’으로 한 점이 주목된다. ‘Ariran’이 노래라고 부연한 것과 표기의 문제이다. 이는 님웨일즈가 김산이 희곡 작품명이나 상호명 ‘아리랑’을 말한 것과 구분하여 표기한 결과이다. 그리고 표기에 있어서는 모두 일반적인 표기인 ‘아리랑(Arirang)’이 아닌 ‘아리란(Ariran)’으로 표기한 문제이다. 이는 당시 일본의 표기를 따른 것으로 본다. 일본은 ‘란(Ran)’을 ‘란’과 ‘랑’으로 함께 발음한다. 이 역시 님웨일즈가 표현한 것으로 본다. 아마도 당시 님 웨일즈가 중국, 필리핀, 미국에서 집필에 참고한 자료가 모두 일본 측의 것이거나 일본어 표기 자료였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님웨일즈를 만나고 그의 자료를 검토한 김연갑 선생이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코네티컷주립대 도서관에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님 웨일즈는 여건 상 중국과 필리핀, 그리고 미국에서 관련 자료를 참고했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결국 ‘Song of Ariran’이란 표현은 김산의 ‘공식 기억(Official Memory)’이 아닌, 이를 듣고 옮긴 님 웨일즈가 재해석한 표현인 것이다. ‘Song of Ariran’의 목차 앞에는 5절의 아리랑이 수록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면에 길지 않은 글이나 경구가 담긴 경우는 주인공이나 독자에게 전하는 필자의 헌사(獻詞)일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책의 아리랑은 님 웨일즈가 김산과 한국인에게 보내는 헌사임이 분명하다. 이런 사실에서 이 별면 돌출은 님 웨일즈가 이 책의 이름을 ‘아리랑’으로 삼은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리랑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한국의 오래된 전래민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 간다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가면 다시는 못오는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 삼천리 강산만 잃었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a(Ariran)"로 시작하는 것들은 크게 발음하고 마지막 음절에 악센트를 붙여서 아-리-란(아-리-랑)으로 강하게 발음한다.) Song of Ariran(Old Korean folksong of exile and prison and national humiliatio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re are tweleve hills of Ariran/ And now I m clossing the last hill. many stars in the deep sky/ Many crimes in the life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Ariran is he mountain of sorrow/ And the path to Ariran has no returning.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Oh, twenty million countrymen/ where are you now? Alive are only three thound li/ of mountains and rivers.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Now I am an exile crossing the Yalu Rive/ And the mountains and rivers of three thounsand li are also lost.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pronounced with broad "a's" and accented on the last syllabe, thus, A-ree-ran) 이 책에서 아리랑 가사를 독립적으로 표기한 것은 이 자료가 유일하다. 그러나 다음 회에서 살피게 된 ‘아리랑2’에서는 두 편이 더 있다. ‘아리랑옥중가’와 ‘아리랑연가’가 그것이다. 이를 연관 지어 볼 때 김산이 님 웨일즈에게 아리랑을 진지하게 불러 주었고, 이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올린 "김산이 부른 아리랑-Song of Ariran 속의 아리랑에 관한 진술(2005년 자료집)”에서 제시했듯이 다양한 내용의 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5절 형태의 아리랑을 한 편으로 볼 때 1930년대 당대 잡가집이나 창가집이나 민요조사 자료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이는 많은 아리랑 가사에서 나름의 주제대로 재정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사항에서 확인이 된다. 하나는 후렴의 위치와 형태이다. 후렴을 먼저 부르고 사설을 부르는 방식은 본조아리랑의 전형이다. 또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2행 3음보 가사도 1926년 개봉 영화‘아리랑’ 주제가의 후렴이다. 이는 1930년을 전후하여 정형화된 것이다. 둘은 총 5절의 가사 배치 문제이다. 제2절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는 주제가‘아리랑’에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주제가 이후에 첨부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5절은 주제의 서사를 염두에 두고 재구성 한 것이다. 즉, 1절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한 것과 마지막 5절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 삼천리 강산만 잃었구나”라는 데서 조국 산천을 떠나 압록강 건너 중국으로 왔다는 처지를 제시하고, 그 ‘마지막 고개’에는 잃어버린 삼천리 땅을 두고 왔다는 분통을 표현한 것이다. 비극적이지만 이는 현실이고, 김산은 이를 분명히 직시하고 아리랑을 부르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님 웨일즈는 이 아리랑을 통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조선의 한 청년을 거대한 중국혁명 대열에서 발견하고 주목한 것이다. 마지막은 노래에 대한 두 곳의 부연(敷衍)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필자가 처음으로 주목하고 번역한 부분인데, 곡명 밑의 것과 5절 마지막 문장이다. 전자는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한국의 전래민요”라는 부분이다. 이는 이 노래의 성격과 기능을 표현한 것이다. 김산이 처음으로 일제에 넘겨져 투옥된 1930년 11월 20일 이후의 경험을 통해 구성된 것임을 알려 주고, 김산이 아리랑을 부르는 이유를 알린 것이다. 후자는 "a(Ariran)"로 시작하는 것들은 크게 발음하고 마지막 음절에 악센트를 붙여서 아-리-란(아-리-랑)으로 발음한다.강하게”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이는 진술자와 기록자가 매우 진지하게 묻고 답한 결과이다. 이 시기 아리랑 가창에 대한 주(註)를 부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검토에서 ‘Song of Ariran’ 속의 아리랑 진술은 진술자 김산과 기록자 님 웨일즈 간의 진지하고 긴밀한 관계에서 이뤄진 결과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정연한 진술이었든, 아니면 정연하게 정리한 것이든 그 결과는 분명 주옥같이 빛나는 ‘아리랑’ 한 편인 것이다.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www.arirang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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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br> 다시 읽는 'Song of Ariran'(2)80년 전인 1941년 뉴욕 존데이 출판사에서 발행된 ‘Song of Arirang’은 1965년 일본에서 안도지로의 역으로 ‘アテテソ-한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라는 이름으로 처음 번역되었다. 이어 1987년 마쓰데라 이오꼬 번역으로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11판까지 발행했다. 그리고 1972년 미국 파나 프레스에서 ‘Song of Arirang’재판이 발행되었다. 중국에서는 1987년 연변역사연구소에서 한국어판 '백의동포의 영상'으로 발간되었고, 중국어 번역본은 홍콩 난유애 출판사에서 ‘白衣同胞 影像’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에서야 아리랑이란 표제로 발간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986년 보유판 '아리랑 2-김산 생애 보충'이 발행되었다. 김산에게는 자신의 격한 항일 투쟁적 삶이 적국 일본에게 먼저 전달된 셈이다. 역설인가 당연지사인가? 필자는 2007년에 음반 ‘김산아리랑’(신나라 뮤직) 제작에 참여했다. 이 때 ‘Song of Arirang’소재 김산 구술의 ‘아리랑’ 관련 기록을 꼼꼼히 분류한 바 있다. 그 결과 이들은 대부분 1930년 초부터 중반에 이르는 기간의 정황에서 진술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첫 번째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1930년 11월 "나는 일본 감옥에서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과 심리상태에 대한 압력을 최악의 방법으로 실험 받았다고 진술했다. 나에게 그 이상의 어떤 시련이 또 있었겠는가?”로부터 두 번째 체포되었을 때, 형을 마치는 1934년 4월 전후가 된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김산은 영화 ‘아리랑’이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 동포사회에까지 상영되어 반향을 일으키는 정점인 1930년을 전후하여 체험하고 인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에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In Korea we have a folksong, a beautiful ancient song which was created out of the living heart of a suffering people. It is sad, as all deep-felt beauty is sad. It is tragic, as Korea has for so long been tragic. Because it is beautiful and tragic it has been the favorite song of all Koreans for three hundred years.”(김산) 이 명징한 아리랑 인식의 결정체, 김산의 진술 중 하나이다. 과연, 이 시기 이 땅의 지식인 중 누가 ‘민요 아리랑’, ‘노래 아리랑’, ‘그 넘어의 아리랑’을 인식할 수 있었을까? 다행히 여기에 꼽을 수 있는 이가 있긴 있다.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한 사람, 영화감독 나운규(羅雲奎.1902~1937)이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견주기는 격이 떨어지지만 정치학자 고권삼(高權.1901~?)을 한 사람 더 꼽을 수 있다. 이 두 사람에게 견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진술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 "우리의 고유한 기상은 남성적이다. 민족성이랄까 할 그 집단의 정신은 의협하였고 용맹하였던 것이니, 나는 그 패기를 영화 위에 살리려 하였던 것이외다. 아리랑고개, 그는 우리의 희망의 고개라. 넘자 넘자. 그 고개 어서 넘자. 이런 일관된 정신을 거기 담지(擔持)한 것이 얼마나 표현되었는지 저는 부끄러울 뿐이외다. (중략)영화가 문화사업의 하나라면 민중을 끌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백 리 밖에서 아무리 기를 흔들어야 그 기가 민중의 눈에 보일 리가 없다. 언제나 우리는 민중보다 보(步)만 앞서서 기를 흔들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나운규) 나운규가 작고하기 1년 전인 1936년, 영화 '아리랑'의 감독 당시를 회고한 대목 중 일부이다. 영화 ‘아리랑’을 고개를 넘는 활기찬 패기를 넘는 남성상을 그리려 했지만 그런 역할을 했는가를 스스로 회의하고, 영화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밝힌 것이다.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을 통해 민중들에게 가파를 현실을 극복하자고 추동한 것이다. # "비폭력 비협동의 理想의 정치적 가치는 문화적으로 진보할수록 더욱 빛나는 것이다. 조선의 ‘아이롱(아리랑)主義’는 근본적이요 적극적인데 더욱 가치가 있다. 이 <아이롱主義>는 정치사상에 있어 위대한 존재요 또 조선의 정치사를 빛나게 하는 문화적 요소다.(중략) ‘아이롱主義’의 철학은 평화주의이다. 평화가 없고는 건설이 없고 건설이 없고는 문화가 없고 문화 없는 데는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평화의 使徒요 인류평화의 指導者이다.”(고권삼) 정치학자 고권삼이 1933년 일본 발행한 ‘近世朝鮮興亡史’로부터 1947년 서울에서 발행한 '朝鮮政治史'에 기술한 ‘아리랑主義’ 중 일부이다. 정치학자임으로 정치적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1933년이란 시점의 ‘평화’와 ‘행복’은 천황 지배하의 순응에 따른 것임으로 친일적인 사고의 결과이다. 거기다가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강사와 제주도에서 좌악계열 정치가로 활동(1949년 월북하여 생사불명) 하면서도 이 친일적 인식을 수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든 나운규는 영화론과 민중론을 투영해, 고권삼은 정치론을 적용해 아리랑의 성격을 재규정한 의미있는 인물들이다. 모두 풍전등화의 1910년대 초에 때어나 민족적 수난의 극점에 이르는 1930년대를 자신만의 길에 투신하여 굴곡진 삶을 산 이들이기에 아리랑을 남달리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산 이로 유독 진지하고 실천적인 아리랑론을 진술한 김산은 언제 아리랑을 체험하여 옹골게 인식하게 되었을까?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www.arirang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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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br>다시 읽는 'Song of Ariran'(1)금년은 아리랑에 관한 책으로 매우 의미있는 ‘Song of Arirang’이 간행된지 80년을 맞는 해이다. 아리랑 역사의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아리랑’을 표제로 한 책은 10여종에 이른다. 1945년까지의 상황으로는 1930년대 초 창가집류가 5종으로 ‘映畵名曲아리랑唱歌’(1930), ‘아리랑民謠集’(1930), ‘現代映畵아리랑唱歌集’(1931), ‘아리랑民謠集’(1931), ‘현대유행신아리랑창가(’1932)가 있고, 1935년 이후 일본어 표기 의 ‘朝鮮民謠アリラン’(1935년 김지연)과 소설 ‘ありらん峠’(1938년 김문집)가 있다. 그리고 영어로 쓰여진 ‘Song of Arirang’이 있다. 이중에 마지막의 영어로 쓰여진 것은 1941년 의외의 미국에서, 의외의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스(Nym Wales. 본명: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조선인 김상의 생애를 전기체로 쓴 책이다. 창가책 5종은 (사)아리랑연합회 소장자료로 서지사항이 밝혀졌고, 일본어 표기 중 김지연의 ‘朝鮮民謠アリラン’에 대해서는 필자의 연구논문이 있고, 김문집의 단편집 ‘ありらん峠’ 역시 최근 연구논문(동의대 신용주)이 발표되어있다. 그러나 ‘Song of Arirang’에 대해서는 그 유명세에 비해 서평에 머무르는 듯하다. 필자는 학부 졸업논문으로 ‘Song of Arirang’ 소재 아리랑 연구‘를 제출하면서 이 책을 탐독했다. 2001년 스터디 모임 ‘아리랑아카데미’에서 백선기(소설가 김팔봉의 서랑)선생과 김연갑선생으로부터 님 웨일즈 방문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주인공 김산(1905~1938)의 아들 고영광 선생을 초청, 부친의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식 참석을 도운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그동안 책을 통해 풀지 못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예컨대 저자 님 웨일즈가 노벨상에 두 번(1981~2)이나 노미네이트(nominate)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Song of Arirang'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인지의 여부였다. 결과는 중국 속의 조선인 항일투쟁가들을 기록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고발했다는 평가로 문학상이 아닌 평화상의 후보지명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님 웨일즈는 김산에 대해 단순한 취재원이었을 뿐인가라는 의문이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의문이었을 것인데, 직접 만난 두 분과 고영광선생의 증언으로는 3개월 간 22회의 ‘밀회 같은 인터뷰’이었을 뿐이고, 고매한 열정의 혁명가를 격려하는 관계였을 뿐, 연인 관계까지 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1938년 10월 19일, 중국 공산당 사회부장 캉성(康生)의 명령으로 처형되었을 때, 그 죄목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다. 이는 아들 고영광에 의한 복권(1983년) 신청과 심사 과정에서 밝혀졌는데, ‘반혁명죄와 간첩죄’였다. 즉, 트로츠키(Leon Davidovich Trotsky)파라는 이유와 일본 경찰에서 큰 고초 없이 풀려난 것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간첩죄로 몰렸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복권 심사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공산당 문서에서는 "변명하지 않는 미련한 자”란 기록과 일본 기록에는 "결코 변절하지 않을 놈”이란 기록이 나와 결국 무협의로 복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다. 일본의 이회성 작가나 중국의 고영광 등에 의해 자료가 발굴되면서 해결되었으나, 정작 ‘아리랑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였다. ‘아리랑 문제’란 김산이란 인물 연구와 Song of Arirang이란 텍스트 연구의 근본 문제인데, 결정적으로 과연 김산은 언제, 어떤 계기에 아리랑을 접하고, 가슴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이다. 혁명에 대한 신념만큼이나 돋보이는 아리랑에 대한 명징한 표현들은 단순한 이해 정도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지식인들, 이광수도, 최남선도, 김소운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모든 서평이나 김산을 언급하는 이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에는 "님 웨일스라는 탁월한 기록자가 연안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장지락(김산의 본명)은 그의 다른 무수한 동지들처럼 홍진에 묻혀 사라졌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무수한 동지들’ 중에 이토록 아리랑을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인물은 오직 김산 한 사람뿐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유난히도 높고 깊은 고개를 넘고 넘은 그의 생애에서 알 수 있다. 1917년 개신교 계열 중학교에 진학, 3.1 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3일간 구류 처분을 계기로 도일하였다. 1922년 상해로 가 김성숙을 만나 마르크스주의를 배우고,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베이징 지부에 입당하고, 공산주의 잡지 ‘혁명’을 간행하고, 1926년 ‘혁명동맹’ 편집을 맡아 선언문을 작성했다. 1927년에는 황푸군관학교 교관을 맡으며 1930년까지 홍콩, 상하이, 베이징 등지에서 활동하다 베이징 경찰에 체포, 일본 영사관으로 넘겨진 뒤 조선에서 심문을 받다 다음해 4월 풀려나 다시 베이징으로 가서 사범학교 교사로 생활했다. 1933년 4월 중국 국민당 경찰에 붙잡혀 다음해 탈출하였다. 이후 잠시 철도 노동자로 일했고, 1936년 7월에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하고, 8월에는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발되었다. 1937년에는 항일 군정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일본어, 한국어를 강의하였다. 님웨일즈를 만날 때까지의 이 굴곡진 역정을 김산 말고 산 이가 또 있는가. 분명 이 파란의 과정에서 김산은 아리랑을 접하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계기는 언제, 어디서였을까?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 www.arirang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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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br> 아리랑 말, 말, 말#1 우리 가요 트로트, ‘아리랑’이라고 하자 최근 공연 중 소신 발언으로 화제를 끌고 있는 가왕 나훈아는 25년 전 공연 중 아리랑을 언급하여 화제를 일으켜서 자극을 받았다. 우리의 대중가요 트로트를 ‘아리랑’으로 명명하자는 주장이었다. 1995년 광복 60주년 기념 <나훈아 코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팝송, 프랑스는 샹송, 이태리는 칸조네, 일본은 엔카가 있는데 우리는 ‘트로트’라고 한다. 이제 ‘한국은 아리랑이라고 하자” 잠시 화제는 되었지만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해 실현되지도 못하고, 이후에도 더 이상 주장도 하지 않아 잠복된 ‘아리랑 말’이다. 그러나 이는 실현 여부를 떠나 아리랑의 상징성을 이슈화 했다는 점에서 기억할만한 발언이다. #2 아리랑은 한국인의 진언(眞言) 직지사 방장 관응(觀應)스님의 설법 중 아리랑을 언급하여 신문에 대서특필 된 바 있다. 1929년생으로 세수 94세, 법랍 75세로 입적한 스님이다. 오랫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는 스님으로 알려지신 분이 속세의 아리랑을 언급한 것이다. "한국인은 타고 나기를 아리랑을 배우지 않아도 안다. 그래서 아리랑은 마치 진언이다. 진언은 그 뜻을 묻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곧 전부인 것이다.” 법문(法門)이란 말이 진리를 깨친 분의 가르침 또는 ‘진리(眞理)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문(門)’이라는 뜻이니 아리랑을 법문의 한 방편으로 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아리랑 말’ 중 기억되는 말이다. #3 "아리랑 엄마” 세계적인 전위 예술가 백남준 선생(1932~2006)은 작고 직전 피아노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주변인들 증언으로 나이가 들면서 ‘아리랑’과 ‘엄마’란 말에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그에게 아리랑은 엄마였고, 엄마는 아리랑이었다. 흔한 표현으로 '아리랑으로 쓰고 엄마로 읽는'것은 아닐까. 한국인 심성의 원초성을 확인시켜 주는 말이다. #4 아리랑은 한국의 창(窓) 1994년 'Song of Arirang'의 저자 님 웨일즈(Nym Wales/본명 Helen Foster Snow)를 만난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의 취재기에 나오는 말이다. 미국 자택에서 님 웨일즈를 만났을 때 단문의 대화에서 김산의 생애를 말하는 대목에서 ‘Korea'와 ’Arirang'를 동일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리랑으로 한국을 알고 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취재기에는 님 웨일즈의 말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Arirang is the window of Korea.” #5 아리랑은 옛 노래이지만 오늘의 노래. 1960년대를 장식한 세계적 듀오 그룹 싸이먼 앤 가팡클(Simon & Garfunkel) 못지않는 남성 화음을 구사한다는 자부심으로 이름한 우리나라 에스 지 워너비(SG WANNABE)의 <아리랑>이 나오면서 언급된 말이다. ‘아라리’도 있고 ‘아리랑’도 있고, 자신들의 ‘아리랑’도 있음을 표현한 ‘아리랑 말’이다. 가요 아리랑 중 기억되는 <아리랑>이 생성한 ‘아리랑 말’이다. 에스 지 워너비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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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그래픽 노블 外아리랑(님 웨일즈·김산 원작, 박건웅 만화, 동녘)=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일대기를 다룬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그래픽 노블로 옮겼다. 역사적 사건을 주로 그려온 박건웅씨가 만화를 그렸다. 김산은 한국의 체 게바라였다. 민족을 위해 의학을 공부하러 중국에 갔다가 아나키스트, 마르크스주의자로 변모했다. 판화 느낌의 그림이 매력적이다. 바르트의 편지들(롤랑 바르트 지음, 변광배·김중현 옮김, 글항아리)=단어(기표)와 의미(기의) 사이에 일대일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부정한 끝에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던 기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의 편지 모음. 미간행 원고도 보탰다. 그가 평생 시달렸던 문학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바르트 애호가를 위한 책이다. 뉴노멀의 철학(김재인 지음, 동아시아)=5년 전 메르스 사태 때 『삼성이 아니라 국가가 뚫렸다』를 썼던 철학자 김재인씨가 인공지능, 기후변화,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뉴노멀 상황에 맞춰 새로운 규범과 제도 발명에 필요한 새로운 철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문학자들도 자료를 비교평가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등 과학과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박정수 지음, 오월의봄)=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다 장애운동판, 즉 ‘장판’에 뛰어든 저자가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푸코의 이론을 바탕으로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장애등급제가 근대인간학의 사유 체계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밝히고, 정신병원 등이 어떻게 자유를 박탈하는지 지적한다. 내 인생의 사방연속무늬(류소영 지음, 강)=시로 먼저, 소설로 나중에 등단해 두 권의 소설책을 냈지만 그동안 가면을 쓴 채 글을 썼다는 각성 끝에 생의 굴욕, 허세, 성애에 대한 생각을 녹인 소설집이다. ‘마흔, 십일 주년 결혼기념일, 레스토랑’이 대표적. 평범한 부부 사이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바오밥나무와 방랑자(민병일 지음, 문학과지성사)=시인 민병일씨의 동화집. 사람의 심장 안에는 별의 흔적이 있어 지금은 가스 덩어리나 운석으로 어지러워도 언젠가 초신성 폭발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리라고 믿는 마음을 위한 글모음이다. 인격화된 바오밥나무가 방랑자들과 대화하는 형식이다. 24편을 선보인다. 나는 모든 순간이 그립다(임헌문 지음, 마인드큐브)=시집 제목을 비틀면 ‘그리워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KT 매스총괄 사장 등을 지낸 지은이의 첫 시집. 자연(然), 사랑(戀), 인연(緣), 세 갈래로 나눠 그리운 것들을 노래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부지런함이고 절절함이며 기다림, 갈구함이라고 썼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국 영화의 공간(양경미 글·사진, 미다스북스)=영화를 촬영한 현장, 영화 속 공간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영화 평론가 겸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 소장인 저자가 멜로 영화의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영화와 공간, 감독 이야기를 풀어냈다. ‘번지점프를 하다’ ‘편지’ ‘봄날은 간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고래사냥’ 등 11개 영화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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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 기념 특별전시 ‘獨立이 맞습니까'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활약한 역사인물 유묵과 서지자료를 만나는 귀한 전시회가 구로구청(구청장 이성)과 독립투쟁기념관 준비위(위원장 김명성)가 마련했다. 전체 ‘동학혁명과 창의’, ‘순절과 순국’, ‘3.1혁명과 임시정부’, ‘의열과 무장투쟁’, ‘교육계몽과 통일’이란 5개 주제다. ‘동경대전’(東經大全)은 최재우의 동학경전으로 1880년 인제 초판본으로 희귀자료이다. 후계자이자 동학의 2세 교조 최시형이 비밀리에 간행한 것이다. 민생의 보국안민(輔國安民)·광제창생(廣濟蒼生)을 꾀하는 사상적 근대화를 촉진시킨 가치가 큰 유물이다. ‘머슴 의병장’으로 ‘파청대첩’ 의병장으로 알려진 안계홍의 의병활동에 대한 기록 담산실기(澹山實記)도 있다. 다양한 계층에서 의병활동을 했음을 알게 하는 실기로 기우만 등의 활동도 기록되어 주목되는 자료이다. 이만도(1842~1910)의 유묵(簡札)이 눈에 든다. 의병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즉, 첫째 일어나 왜적을 쓸어낸다(擧義掃淸). 둘째 때를 기다려 뜻을 지킨다(去之守舊). 셋째 뜻을 이루지 못하면 목숨을 끊는다(致命自蜻)를 실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병을 일으키고, 은거를 했고, 끝내는 목숨을 끊었다. 이준(李儁/1859~1907)열사의 강직함을 담은 유묵 7언시편도 전시되었다. 매천 황현(黃玹/1855~1910)의 유묵으로 스승 왕사각의 제문도 나왔다. 일반적인 간찰체가 아닌 정갈한 서체가 매천의 다양한 서체의 면모를 보게 된다. 박열(朴烈/1902~1974)의 편지와 1편 1점도 볼 수 있다. 1922년 옥중에서 암파문고 편집자에게 보낸 것으로 "초지일관해서 굽히지 않는 강력한 힘을 갖고~”라는 초구처럼 당시 견고한 의지를 내보인 편지다. 곽재기의 유묵도 있다.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대종교 초대 교조이며 독립운동가인 나철(羅喆/1863~1916)의 유묵 쉽지 않은 유물이다. 희귀 자료로 독립선언서 2종을 볼 수 있다. ‘大韓獨立宣言書’로, ‘자전거 독립운동연구가’로 국내에 소개가 된 연변 故 김용권 선생 유품이다. 대한독립의군부 조소앙이 작성하고 39명이 연서한 독립선언서이다. ‘大韓國民議會宣言書’도 주목된다. 흔히 ‘제2독립선언서’로 통하는 것으로, 1919년 3월 17일 연해주에서 설립된 대한국민의회 선언서이다. 서지자료로는 서로군정서 영수증, 김산의 'Song of Arirang', 3.1운동 계보도, 영화‘아리랑’ 감독 나운규 관련 자료, 이광수와 양기택 판결문 등도 전시되었다. 일부 전시품 협찬은 리준만국평화재단/ 한국학연구소/ 아리랑학교 등이다. 자료 출품과 기획총괄을 맡은 독립투쟁기념관 준비위 김명성 위원장은 연변 역사학자 강용권 선생의 1992년 사료조사일기의 "싸우는 조상, 조사하는 후손, 세기는 이렇게 역사로 남는다”를 인용하며 "순국선열과 독립투쟁에 몸바친 독립유공자들의 혈묵들을 모신 독립투쟁기념관 건립을 염원한다”고 강조했다. 구로구민회관 1층 전시실, 저녁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2029-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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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박록주기념 제5회 전국국악대전 수상자 명단명창박록주기념 제5회 전국국악대전 수상자 명단 < 일반부 > 종 합 대 상 : 정주희(서울대) 종 합 최우수상 : 양지석(중앙대), 인천공간사물놀이 부 문 최우수상 : 서은애(영남대), 설지영 우 수 상 : 정주희(전남대), 이종철(서울대), 김성경, 조수미, 공상 준 우 수 상 : 이계순, 박혜련(한양대), 한진희, 성미진, 신청 장 려 상 : 남은진, 김산옥, 이희명(중앙대), 김소현(부산대) 윤제희(한국예술종합), 이창하(추계대), 김세미 노연정(계명대), 신명풍무악, 해모수 < 고등부 > 종 합 대 상 : 심상윤(국립국악고)-판소리 부 문 최우수상 : 이소연(국립국악고), 김도란(서울국악예고), 김미라(경북예술고), 장수미외7명(서울국악예고) 우 수 상 : 김귀리(충남예고), 최지나(국립국악고), 최진영(국립국악고), 배소연(계원예고), 마루(경남예고) 준 우 수 상 : 정지혜(서울국악예고), 김남욱(충남예고), 박준섭(전주예고), 여영민(현일고), 작은등불패(등불의집) 장 려 상 : 박수진(서울국악예고), 홍준표(경북예고), 이신정(국립국고), 최연성(서울국악예고), 정은혜(전주예술고), 김경회(서울국악예고), 최소라(브니엘예고), 송진호(혜화여고) 버슴새(울산아카데미), 수성예술진흥회(대구동부고) *수상자는 판소리, 기악(관악), 기악(현악), 무용, 사물놀이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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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문화예술발전 『문화훈장』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에 대한『문화훈장』서훈자와 『제40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상)』및『200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장관상)』수상자 등을 선정, 발표하였다. 올해 서훈대상자와 수상자는 전국의 문화예술단체, 지방자치단체, 대학 및 일반국민으로부터 후보자 추천을 받아, 각 분야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의, 선정 및 정부 공적심사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하였다. 문화훈장 서훈대상자는 총 25명으로, 작고시인 故 김윤식(예명: 김영랑)에게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오세영,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최종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박광진, 서양화가 한백유(예명: 한묵) 등 4명에게 은관문화훈장, 국립국악원 원로사범 정재국,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빙교수 故 김형표(예명 : 김진걸), 한국전쟁 중 문화재를 보호한 前 공주경찰서장 故 차일혁, 무대의상 디자이너 윌라 김, 前 한국문화원연합회장 권용태, 앙드레김 아뜨리에 대표 김봉남(예명: 앙드레 김), 前 이화여대 미술대학 교수 故 이종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이만방, 등 8명에게 보관문화훈장, 서강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 안선재, 안동문화원장 김준식, (사)한국화랑협회 원로회원 박주환, 망운암 주지 박만식(법명: 성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윤철, 만화가 김산호 등 6명에게 옥관문화훈장,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구자흥, 前 서귀포문화원장 김계담, 청주문화원 고문 박영수, (주)디자인파크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김현, (주)비오에프 배우 배용준, 한국영상프로덕션 대표 박공서 등 6명에게 화관문화훈장을 각각 수여한다. 한편, 올해로 40회째가 되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자(단체)는 문화부문에 (주)PMC프로덕션 대표 송승환, 문학부문에 시인 홍성란, 미술부문에 경원대학교 교수 서기흔, 음악부문에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임헌정, 연극·무용부문에 극단 물리 대표 한태숙, 대중예술부문에 부천만화정보센터이며 대통령 상장과 부상으로 상금 1천만원을 각각 수여한다. 아울러 장래가 촉망되는 20~30대의 젊은 예술가들을 선정하여 ‘93년부터 시상해오고 있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의 수상자는 전통예술부문에 국악인 조주선, 문학부문에 소설가 김애란, 미술부문에 조각가 정연두, 디자인부문에 보석 디자이너 박은선, 음악부문에 작곡가 최명훈, 연극부문에 연출가 장유정, 무용부문에 무용가 임혜경, 영화부문에 영화감독 민규동, 대중예술부문에 가수 장나라 등 9명이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상패와 부상으로 상금 5백만원을 각각 수여한다. 금년에는 문화예술분야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사기진작과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문화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한 유공 공무원을 발굴하여 함께 포상한다. 수상자는 순천시 기적의도서관 허순영 관장, 종로구청 재무과 이미경, 태백시 문화시설관리사업소 이수원,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박인선, 영월군청 도시개발과 안성자, 울산광역시 문화예술과 신형석 등 6명이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이 수여된다. 서훈 및 시상은 10월 18일(토) 오후 4시 청주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는 ‘2008년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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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머지 <“국악, 새로운 흐름을 입히다.”> 9.22루트머지 “국악, 새로운 흐름을 입히다.” 1. 일시 : 2016년 9월 22일(목) 7시 30분 2. 장소 :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3. 주최 : 전석 2만원 4. 문의 : 010-3610-0767 5. 공연소개 월드뮤직그룹 ‘루트머지’가 이번달 22일(목) 7시 30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국악의 새로운 흐름을 입힐 연주를 하게 된다. ‘네오아리랑’ 5번째 시리즈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매년 진행해온 ‘네오아리랑 시리즈’는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각기 다른 색의 아리랑을 더욱 대중적이고 친숙한 아리랑으로 재탄생 시키는 시간을 마련하여 새로운 세대의 민족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도전이다. 루트머지는 가야금 연주자이자 그룹 대표 홍윤진과, 소리 박혜진, 박혜선, 해금 김현경, 대금 임황철, 국악타악 김희성과 재즈 건반·작곡 김현화, 보컬 최강, 드럼 황성훈, 베이스 조중현 작곡 이상민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로 구성됐다. 소리 김산옥과 랩 이상철은 이번 공연의 게스트로 함께 참여한다. 이번 공연 연주곡으로는 박경훈 위촉곡 ‘하늘을 날다’, 최진경 위촉곡 ‘이화우 흩 뿌릴제’, 이상민 편곡 ‘씻김’, 이수정 위촉곡 ‘삼포세대’ 루트머지 편곡 ‘방아타령, 김현화 위촉곡 ‘Viaggio’, 최강 위촉곡 ‘춘면곡’, 김호주 편곡 ‘소로코스(Sorokos)’와 광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을 그린 ‘Don’t Forget !’, ‘산(散)’ 등 루트머지의 대표곡들과 가야금의 초연곡들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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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국악방송 ‘내일로 가는 우리음악’ 3회 공개방송 11.29-12.12광주국악방송의 주력 프로그램 ‘내일로 가는 우리음악’ 3회 공개방송 광주지역 핫 플레이스인 ‘스토아 어바나’에서 개최 매일 밤 11시 광주 국악방송 젊은 감성, 미래를 향해 뻗어가는 프로그램 ‘임 웅의 내일로 가는 우리음악’ 이 스튜디오를 벗어나 애청자들을 만난다. 국악인들의 초청해 음악과 삶의 이야기를 듣는 토요 코너 ‘새파란 우리음악’을 확대하여 공개방송으로 진행한다. 광주광역시 동명동의 카페 스토아 어바나(STOA urbana)에서 젊은 국악인들을 초청해 그들의 음악과 예술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광주시민, 애청자들과 직접 나누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대부분의 국악공연이 일반적으로 공연장에서 열리는 것과 달리 이번 공개방송은 젊은 층이 선호하는 카페에서 선보인다. 이번 공개방송의 주인공인 젊은 국악인들은 카페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대이다. 또한 음악과 함께 운치 있고 멋있게 인생을 즐기려는 풍류인들이 모였다는 풍류방, 오늘날에는 카페가 그 역할을 일부분 담당하고 있다. 카페 ‘스토아 어바나’에서 열리는 공개방송을 통해서 현대적인 감각과 어우러지는 우리음악의 조화를 경험하면 현대도 전통도 모두 우리 삶 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는 젊은 민속악회 ‘여음’의 씻김굿으로 야외무대를 가득 메운 방청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따뜻한 마무리를 지었다. 앞으로 남은 2회 공개방송에서는 자유로운 산조를 통해 소통하는 , 세계 속에 빛나는 우리 전통예술 연희의 다양한 볼거리와 흥겨움< 12월 12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 세계 속에 빛나는 별 우리음악-김주홍과 노름마치>이 있다. 우리음악이 흐르는 따뜻한 이야기를 삶 속에 더욱 가깝게 나누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1월 29일(토) ‘도시 서원에서 몸과 마음을 씻다’ 공개방송 성료 11월 29일 스토아 어바나 카페에서 진행된 ‘도시 서원에서 몸과 마음을 씻다’는 공개방송은 세월호 희생자와 망자를 위로하고 산자에게 복을 더하는 민속악회 ‘여음’의 씻김굿과 함께 진행되었다. 야외무대를 가득 매운 방청객들과 함께 젊은 국악인들의 음악과 꿈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민속악을 주제로 단체를 결성한 ‘여음’은 “대부분 젊은 국악인들이 창작음악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어서 전통 민속악을 주제로 팀을 꾸린다는 게 실험처럼 보이지만 젊으니깐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급변하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가는 다부진 젊은 국악인들의 꿈과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12.05.(금) 저녁 7시30분 '아정한 선배님, 새파란 후배님 ON-SANJO' (남미선 해금 연주자, 김선호 대금 연주자, 민속악단 ‘하늠’) 국악인의 공통 언어 산조위에 선배와 후배가 만난다. 서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광주가 고향인 해금 연주자 남미선과 대금 연주자 김선호, 그리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국악인들이 모인 민속악단 ‘하늠’이 그 주인공이다. 처음 국악을 시작했을 때, 산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지금 연주하는 산조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젊은 후배와 사회에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는 다른 삶의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산조를 연주하며 소통하고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12.12.(금) 저녁 7시30분 ‘세계 속에 빛나는 별 우리음악’ (김주홍과 노름마치) 전 세계에서 우리 음악의 위치는 어디쯤 왔을까? 올해 스페인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월드 뮤직 엑스포 2014 WOMEX에 공식 쇼케이스팀으로 선정되어 동시대의 국악팀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단체는 단연코 ‘김주홍과 노름마치’이다. ‘김주홍과 노름마치’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과 스페인 현지 언론 및 관객들로부터 ‘상상을 뛰어넘는 팀’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번 공개방송에서는 ‘김주홍의 노름마치’와 함께 세계 속의 우리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음악을 나누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획 행사를 통해 청취자에게 다가갈 예정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악방송은 세계 음악 속에서 우리 음악의 자리를 확인하고, 문화의 융·복합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라디오 방송국이다. 광주 국악방송은 ‘빛고을 상사디야 (진행 : 윤희철, 김산옥), 온고을 상사디야 (진행 : 정진권, 방수미), 내일로 가는 우리음악 (진행 : 임 웅), 아침이 오는 소리 (진행 : 손혜원), 좋은 아침 좋을시고 (진행 : 정회천)’ 로컬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호남지역의 우리음악과 소식을 청취자에게 전하고 있다. 광주 국악방송에서는 다채롭고 의미 있는 기획행사를 통해 시민들과 청취자들을 직접 만날 예정이다. ‘임 웅의 내일로 가는 우리음악’ 3회 공개방송뿐만 아니라 ‘빛고을 상사디야 (주 중 14:00-16:00방송)’에서도 ‘청춘 靑春, 푸르른 날들에 고함’이라는 공개방송을 12월 18일 16:00부터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지음홀에서 개최한다. 강연 형식으로 진행되는 토크 콘서트에서는 강연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삶의 이야기와, 교훈 등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선사할 예정이다. 호남권 청취자들에게 우리음악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흥을 선사하고 전통과 현대를 이어가는 가교가 되고자 노력하는 광주국악방송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