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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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현 명인, “산조는 우리 삶의 소리”[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은 오는 5월 9일과 1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이태백류 아쟁산조와 원장현류 대금산조 전바탕 '긴산조 협주곡'을 초연한다. 아쟁과 대금의 깊이 있는 매력과 국악관현악의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뜻깊은 무대로 기대를 모은다. 이에 대금연주 명인 원장현 선생을 금현국악원 연습실에서 만나 이번 발표에 대해 들었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년에 뵙고 딱 1년 만에 다시 뵙게 되었네요. 곧 있을 긴산조 협주곡과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드려보려고 합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A.반갑습니다. 그간 연주자로서 연주에 매진하고, 후학 양성에 힘쓰며 바쁘게 잘 지냈습니다. 연초부터는 동국대학교 석박사 과정 특임교수로 발령받아 강의를 나가고 있고, 공연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곧 있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기획공연에서 할 긴산조 연습에 몰두하고 있죠. Q. 이번 공연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기획공연으로 선보여지는데요, 선생님과 이태백 선생님의 긴산조가 창작악단의 국악관현악과 만나 연주된다는 게 너무 흥미롭습니다. 이번 공연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A. 말 그대로 긴산조를 협연하는 공연으로, 이태백 선생님의 아쟁 협주곡과 제 대금 협주곡 총 두 곡으로 진행됩니다. 저는 원장현류 대금산조 긴산조를 45분간 관현악단 반주에 맞추어 연주하게 될 텐데요, 전통이 근간이 되는 국립국악원이기에 이 무대가 시도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권성택 예술감독의 오랜 바람이자 열정이기도 했고요. 특히 긴산조 협주곡은 이번에 최초로 시도되기에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보통 협주곡의 경우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20분 내외로 짧게 진행되는 편인데, 이번 협주곡의 경우 45분간 연주되어 산조를 아주 전문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곡이 너무 길어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긴산조를 관현악 협연으로 선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 일생일대 큰 기회가 아닌가 싶어요. Q. 김백찬 작곡가의 원장현류 대금산조 협주곡은 2022년 초연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가지고 만들어진 협주곡은 이전부터 많이 있었으나, 김백찬 작곡가의 협연 곡은 2022년 전북도립국악원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그때는 짧은산조로 20분 정도 짧게 연주되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긴산조의 선율을 가지고 곡을 늘려, 더욱 풍성한 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Q. 짧은산조 버전의 협주곡과 긴산조 협주곡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짧은산조는 긴산조를 축약하여 짧게 보여준 산조입니다. 긴산조는 산조 장르의 원형이자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이 있죠. 짧은산조 버전의 협주곡은 20분 안으로 연주가 끝나기에 연주자로서 체력적인 소모도 덜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짧고 임팩트 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긴산조 협주곡의 경우 ‘산조’의 멋을 그대로 다 느껴낼 수 있기에 긴 호흡으로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매력으로 작용할 것 같네요. 지금껏 협주곡을 수없이 많이 연주해 왔지만 4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주하는 건 처음입니다. 물론 최초이기도 하고요. 좋은 무대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Q. 김백찬 작곡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 곡을 준비하셨을 것 같은데요, 관현악의 경우 대금산조와 어떻게 어우러지도록 고민하셨나요? 선생님께서 연주하신 짧은산조 영상을 감상 해 보았는데, 관현악에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코드 진행이 많이 녹아있어 감성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A.보통의 산조 협주곡은 산조답다고 해야 할까요? 독주 악기의 민속적 선법이나 선율을 따라 비슷하게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데 김백찬 작곡가의 곡은 달라요. 감성적이고 친숙한 선율이나 코드 등이 활용되어서 대중적입니다. 그게 참 마음에 들어요. 관현악이 대금 선율을 감싸주며 풍성하게 만들어주니 훨씬 들을 거리가 많은 느낌이거든요. 아무리 좋은 보석도 어떻게 포장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 보이지 않겠어요? 물론 그 안에서 대금산조의 원형은 살아 있어야 하기에 나는 내 산조의 이야기를 확고하게 하며 연주할 것이고요. Q. 산조 협주곡이 이렇게 길게 연주되는 시도 자체가 처음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클래식 교향곡 전 악장 길이와도 비슷한데요, 산조가, 그리고 긴 러닝타임이 어색하고 어려운 관객도 있을 것 같아요. 이 공연을 어떻게 관람하면 좋을까요? A. 산조는 인간의 소리, 우리 삶의 소리입니다. 처음엔 익숙지 않아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우리 음악이기에, 차분히 열린 마음으로 듣다 보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45분 동안 연주하는 저도, 그리고 듣는 관객분들도 큰 집중력이 필요하겠죠? 산조의 틀은 어떤 악기가 연주하든 같습니다. ‘산조’라는 장르 안에서 악기 고유의 매력을 각각 표현하는 거죠. 그중 대금산조는 특히 대나무로부터 나오는 소리가 참 매력적입니다. 그 소리 자체에 집중하여 감상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Q. 이번 공연 이후, 올해 또 계획하고 계신 공연이나 작업이 있나요? A. 8월 말이나 9월 초에 원장현류 긴산조 독주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관객들과 편안하게 소통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소박하고 작은 공간에서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또 국악협회에서 주최하는 공연이 있어 곧 오사카에 가고, 진도 국악고등학교에 가서 대금산조를 잘할 수 있는 법에 대해 특강도 할 예정입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연습과 후학양성도 꾸준히 할 것이고요. Q.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분들께 한마디 해 주세요. A. 국악은 우리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당하는 장르로 치부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음악을 우리나라 국민이 아끼고 사랑해 주지 않으면 그 역사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한식을 먹고, 한글을 쓰듯이 우리 음악도 생활 속에서 관심을 갖고 감상해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와 닿을 것으로 생각해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처럼, 국악을, 그리고 산조를 그저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있는 그대로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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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모던걸들의 춤판 '모던정동'…"자유 갈망하는 모습 담아"짤막한 머리에 화려한 드레스, 높은 구두, 그리고 커피를 마실 때 살짝 들어 올리는 새끼손가락까지. '모던걸'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신여성을 뜻하는 모던걸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여성들이 서양식으로 외모를 꾸미고 사고방식도 진보적으로 변화하면서 등장한 단어다. 낭만과 청춘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당시에는 '못된 걸'로 불리는 등 부정적 이미지도 강했다. 신인류나 다름없던 이들을 받아들이기엔 유교 문화의 벽은 너무나 공고했고 시대 역시 엄혹했다. 하지만 모던걸들은 지치지 않고 자유를 좇아 현대 여성권과 문화의 밑거름이 돼줬다.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연희극 '모던정동'은 경성을 주름잡는 모던걸들의 신바람 나는 춤판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무용을 전공한 취업준비생 유영(조하늘 분)이 100년 전 정동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돼 기생인 화선(나래)과 연실(김민선)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신작으로, 전통과 서구문화가 섞여 있던 근대 예술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냈다. 안경모 연출은 30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근대 경성은 새로운 문명과 사상이 물밀듯 들어오면서도 (전통적) 인식은 변화하지 않아 사람들의 갈증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시대"라면서 "작품을 통해 무모하리만큼 꿈을 위해 덤벼들고 자유를 갈망했던 이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숙 예술감독은 "그 시절은 암울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변화가 있던 시대"라면서 정동이 이 같은 근대 문화의 출발지로서 "많은 역사와 문화를 올곧게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구 문화가 뒤섞인 시대가 배경인 만큼 '모던정동'에 나오는 춤도 한국무용에서부터 스윙까지 다양하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화선과 연실은 장구 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다가 어느새 양장 차림으로 남자들과 짝을 맞춰 몸을 흔든다. 음악 역시 '사의 찬미' 같은 가요는 물론이고 신민요 '봄맞이', 만요 '그대와 가게 되면', 외국곡 '싱 싱 싱'(Sing Sing Sing) 등을 인용한 다채로운 곡들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무용수들의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다. 이 작품은 스토리를 해설해주는 소리꾼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은 대사 없이 70분 내내 춤과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무대까지 전해질 정도로 강도 높은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끝까지 역동성을 잃지 않는다. 안무를 맡은 정보경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무수히 흐르는 에너지에 집중했다"면서 "후반부 40분은 무용수들이 미칠 정도의 에너지를 뿜어낸다"고 설명했다. 가만히 앉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명이 나지만, 이 작품은 당시를 '낭만의 시대'로만 포장하지는 않는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문화를 탄압하는 장면이 나오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독립 의지를 담아 작사한 노래 '거국가'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안 연출은 "(등장인물들이 일제에 의해 받는 고통을) 설명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낭만과 좌절이 응축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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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풍류, 박병천의 '구음시나위'에 허튼춤 선사한 안덕기국립정동극장(대표이사 정성숙)이 '세실풍류 :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을 개최한다. 4월 한 달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총 8회에 걸쳐 열리는 이번 공연은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 온 근현대 춤꾼들의 여정을 50개 작품으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옛것을 바탕으로 늘 새로움을 창조해온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을 다룬다. 지난 23일 정동 세실극장에서 '허튼가락춤'은 진도씻김굿 보유자였던 박병천의 '구음시나위' 음악과 함께 이루어진다. 2024년 세실풍류에서 초연되는 작품으로 전통춤 중 마당춤의 인위적이지 않은 춤사위와 섬세하고 조형미가 돋보이는 기방춤을 더하여 조화롭게 구성하였다. 남성적인 형태와 음악에서 느껴지는 한恨의 정서가 깊이 밴 춤으로 이번 무대를 통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안덕기의 신(新)전통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안덕기 교수는 움직임연구소 예술감독과 세계민족무용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안덕기 무용가는 "작품을 창작할 때 한국적인 베이스를 바탕으로 가장 컨템퍼러리한 것을 지향하며, 그 경계선에서 계속 치열하게 춤을 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실풍류에서 초연되는 '허튼가락춤'을 통해 전통춤의 어법으로 춤 레퍼토리가 확장될 것을 기대합니다. 한국춤의 특징과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긴 작품을 창작하고자 하며, 한국창작춤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K-컨템퍼러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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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풍류, 동해별신굿 민속춤사위를 제해석한 조재혁의 '현~'국립정동극장(대표이사 정성숙)이 '세실풍류 :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을 개최한다. 4월 한 달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총 8회에 걸쳐 열리는 이번 공연은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 온 근현대 춤꾼들의 여정을 50개 작품으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옛것을 바탕으로 늘 새로움을 창조해온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을 다룬다. 지난 23일 정동 세실극장에서 2015 대한민국무용대상 솔로 앤듀엣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조재혁(휴먼스탕스 대표)의 '현~'은 춤 작가 12인전에서 처음 초연되었으며 국립국악원 수석연주자 윤서경(아쟁)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한자로서 '현'은 어질다, 명백하다, 즉흥적, 아득한, 통달, 좋다, 줄(string) 등의 많은 의미를 지니는데 동음의 한자어가 많기에 한글 '현'으로 표기하였다. 한자 일은 악과 몸이 일체로 하나 됨을 상징하며 어우러짐을 말한다. 아쟁의 선율과 동해별신굿 장구 장단에 맞춰 민속춤사위와 호흡 등 다채로운 몸짓으로 작품이 구성된다. 연주·퍼포머는 배호영 조봉국이 열연했다. 예술감독 조재혁 무용가는 "작품을 만들 때 전통적 요소를 재해석하여 오늘날 현대인의 감성에 다가가는 새로운 춤 예술을 창조해 내고자 합니다. 특히 작품의 주제의식과 창의적 발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주제에 맞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작품을 구성합니다. 항상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하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남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현-'은 한국의 전통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와 한국민속춤을 추는 무용가가 어우러져 현대적 해석이 투영된 창작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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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절창 정선아리랑!’#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공연이 지난 4월 26일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렸다. 20대에서 60대까지의 제자들 20명과 5명의 반주자와 함께 경기잡가, 경기민요, 강원도민요, 아리랑모음, 이렇게 4개 종목 13곡을 선보였다. ‘2024 국가무형문화유산 전승지원 기획공연인 만큼 경기12잡가 중 선유가·제비가·영변가 3곡은 일종의 보유자가 계승해야 하는 의무 곡인 셈이고, 나머지 경기민요를 비롯한 강원도 민요와 아리랑 모음곡은 제자들의 전승 실상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인 듯하다. 이 중에 이호연 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함께 전해준 소리는 12잡가 중의 '선유가'와 '영변가', 그리고 경기민요 '노랫가락'이다. 그리고 보유자가 독창으로 부른 것은 12잡가의 하나인 제비가와 강원도민요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 이렇게 4곡이었다. 이 중에 관객의 반응이나 보유자의 목성대로 구사하여 자신도 만족스로운 표정을 보여준 것은 단연 '정선아리랑'이었다. 이 정선아리랑은 보유자의 10여 종에 이르는 음반 대부분에 수록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연에서도 빼놓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 정선아리랑은 대체로 경기민요 소리꾼들이 선호하는 곡이다. 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서도 명창부가 선택하는 대표적 소리이다. 그러나 누구나 부를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잘 부르는 소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시인 신경림 선생의 다음과 같은 감상평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내게는 노래이기 이전에 내 정서의 깊은 샘”이라고 했다. 곧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소리로서, 이 정서를 표현해 내지 못하면 ’정선아리랑‘이 아니라고 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유튜브 매체를 통해 한 서양음악 전공가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독일과 유럽에서 30여 년 서양 고전음악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을 듣고 한참을 운 적이 있다.”라고 한 것이 그렇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 이 소리는 한국전쟁 말기 당시는 강원도였던 이천 지역에서 있었던 ‘육군예대’(성경린 단장) 공연에 갔다가 ‘정선 아라리’를 듣은 이창배 선생과 김옥심 선생이 돌아와 다시 짜 불러 알려진 소리이다. 이런 탄생 배경은 생전 이창배 선생의 후원자였던 전 종로문화원 반재식 원장, ‘종로 국악로 지킴이 김뻑국 선생’의 증언이 있고, 명고(名鼓) 장덕화 선생이 김옥심 선생과 친했던 명창 이은주 선생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필자에게 전한 말로는 거의 일치한다. 이런 연유에서 음반을 통해 확인되는 정선아리랑은 네 가지 버젼이 존재한다. 전주(前奏)와 간주(間奏)의 유무, 대표사설을 "강원도 금강산~”으로 한 것과 "네 칠자나 내 팔자나~”로 한 것 등이 있기 때문이다.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하고 ‘경기제(서울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명칭을 하는 이유인 것이다. 절창(絶唱), 이 말은 ‘다시 없는 명창’ 또는 ‘비할 데 없는 뛰어난 노래’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빼어난 노래이기도 하고, 빼어난 명창을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다”나 "김옥심은 절창이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흔히 김옥심을 ‘하늘이 내린 소리’(La Voix Celeste) 또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명창’이라고 한다. 특히 그 목을 말하면서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표현은 거의 ‘정선아리랑’을 말할 때 동반되는 수식어이다. 그래서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라는데 이의가 없는 것이다. 필자의 단견으로는 동시대 명창들 간의 경기민요 절창은 이렇게 본다. 묵계월은 ‘한오백년’(CD 경기민요의 향연), 안비취는 ‘이별가’, 이은주는 ‘긴아리랑’, 김옥심은 ‘정선아리랑’(오아시스 레코드 1476 경기민요 2집)이라고 본다. 이 네 분의 경기민요 4곡은 가히 다른 소리꾼들이 그 정서를 그만큼 표현해 내기는 쉽지 않을듯싶다.(그 원인의 하나로는 이들 소리가 성창(盛唱)된 시기로 보아 한국전쟁의 민족적 수난이란 정서가 반영된 것을 들기도 한다.) # ‘2024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이호연도 정선아리랑도 절창이다. 이호연의 활동 이력이나 수상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러나 그가 해낸 공연과 음반 취입과 방송 출연 레파토리 이력을 꼽아보면 알 수 있다. 매우 실험적이었고, 파격적이기도 했다. 공연으로는 1999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통일의 소리 옥피리’ 초연을 들 수 있다. 이 공연 메세지는 야심찬 ‘밀레니엄 프로젝트-’한국의 소리가 바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전공 종목으로 전체 국악판을 견인하겠다는 뱃심은 경기 소리꾼으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음반 발매로는 2015년 발매한 광복 70년 주년 기념 발매 ‘통일아리랑’이 있다. 리딩통월드 오케스트라와 어린이 합창단을 동원한 음반이다. 이는 ‘분단 70년 남북 이산가족 예술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공연으로 전환해 4년간이나 지역 순회공연을 한 원천이었다. 국악인으로서 민족문제를 자신의 소리 주제로 반영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창작 작품을 취입, 발매하는 기획력이나 경제적 여유만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나름의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어 2008년 취입, 발매에 이은 ‘이호연 唱 경기12잡가’ 음반과 악보집을 2021년에 내놓았다. 경기민요 전승 능력과 전수 활동의 최종 결정체를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경기 12잡가 전승자로서의 의무감과 그간의 전수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있다. "우리 세대의 역할이 무형문화재 1세대 스승님들의 예능 원형을 보존, 계승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교육 과정에서 갖춘 지식을 기반으로 앞 세대에서 보존, 계승한 원형을 연구해 경기소리의 유래와 유형을 밝혀 학문으로서 정립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음반과 악보집의 신뢰를 담보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화려한 이력의 종결판을 확보했다. 지난해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사실을 말한다. "국가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종목의 전승능력,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 등의 탁월”함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1968년 이창배, 정득만 선생 사사와 1970년 안비취 선생 경기민요 전수, 1984년 제1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민요부문 장원으로 기량을 인정받고 활동. 다소 늦은 67세에 보유자 인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더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민속극장 ‘풍류’에서의 ‘이호연 경기소리 숨’ 공연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해설이 다소 밋밋했고, 음향이 너무 커서 앞자리에서 듣기에 불편한 정도 외에는 그렇다. 그러나 이 무대를 더욱 빛내준 것은 단연 보유자의 독창 ‘정선아리랑’이다. 이 소리는 1979년 한국음반의 ‘한국고전민요 제3집’(안비취 이은주 묵계월 3인 녹음)까지의 전주 형태 버젼이다. 1995년부터 연주되는 목탁소리와 합창의 인트로 버젼이 아니다. 이 버젼은 처음부터 감정을 고조시켜 다소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은데, 원래의 버젼은 후렴을 먼저 부르고 "강원도 금강산~”으로 시작하여 온전히 정서를 수용할 수 있게 하는 버젼이다. 보유자의 이번 정선아리랑은 원래의 버젼 그대로이다. 보유자가 부른 정선아리랑은 두 번째의 독창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은 중반쯤의 무대로 관객들의 호응은 준비된 상태였다. 여유와 관록이 배인 자태였다. 첫 음도 그렇고 전체적 요성(搖聲)이 매우 안정적이었다. 고음이 보유자의 특징으로 매우 청아했다. 사설의 해석도 담담하여 오히려 전달이 쉬웠다. 보유자에게 따르는 목성 평가, '청아 담백'이 충분히 전달된 정선아리랑 무대였다. 절창, 이호연, 그리고 정선아리랑! 그 여음이 오래갈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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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만나 보는 '제94회 남원춘향대전'[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로 손꼽히는 남원춘향대전(남원춘향제)이 오는 5월 10일(금)부터 5월 16일(목)까지 7일간 남원시 광한루원 일대에서 열린다. ‘춘향, Color 愛 반하다’라는 주제로 올해 94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다채로운 콘텐츠와 공연예술 프로그램, 다양한 볼거리를 포함하여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만족도 높은 축제를 지향하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기존에 5일간 진행되던 것을 7일로 늘리며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축제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 하여, 민속악을 중심으로 국악의 활성화에 앞장서는 남원의 대표 전통예술 기관 국립민속국악원 김중현 원장님(남원춘향대전 운영위원장)과 남원춘향대전 총괄을 맡은 이영규 팀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원장님, 팀장님. 이렇게 뵙고 인터뷰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곧 있을 춘향국악대전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요. 그 전에 먼저 원장님과 팀장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 안녕하세요. 저는 국립민속국악원 원장 김중현입니다. 국악원 원장직을 통해 국악 공연과 연구, 교육 사업 등에서 총괄 책임을 맡고 있어요. 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춘향국악대전 운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 안녕하세요. 이번 제94회 춘향국악대전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이영규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맡아 준비하고 있고요, 이제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아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Q-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제 94회 남원춘향제는 최장수 전통문화축제로 꼽힌다고 들었습니다. 춘향국악대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춘향국악대전은 그동안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가장 오래된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일제강점기 시절, 문화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지역민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만든 축제라는 데에도 의의가 있어요. 공연예술부터 다양한 행사나 먹거리 등으로 관람객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은 축제입니다. Q- 이번 축제는 기존의 5일에서 일주일로 늘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역대 춘향제와 다르게, 올해 남원춘향제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나 기획도 있나요? 이- 이번 춘향국악대전은 무엇보다 ‘춘향전 속 주인공이 되어보자’는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한복을 입고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2월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복 기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요. 현장에 한복 대여소를 운영 할 예정이라, 관객들이 모두 무료로 한복을 빌려 입을 수 있어요. 직접 가져오셔도 좋고요. 한국의 문화를 맘껏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Q- 춘향전 속 주인공이 되어 모두가 한복을 입을 수 있다니, 정말 색다르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요. 춘향전을 모티브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이- ‘춘향전’의 가치는 ‘사랑’이잖아요. 사랑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고, 춘향의 사랑에는 특히 용기와 헌신, 희생이 드러납니다. 이는 서양의 고전적 사랑과는 또 다른 동양적, 한국적 의미가 도드라져요. 이에 춘향의 사랑을 주제로 하여 보다 세계적인 축제로 확산시키고자 춘향전을 모티브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남원춘향제에서 개최하는 미인선발대회인 ‘글로벌 춘향선발대회’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절개를 지킨 춘향의 사랑을 또 다른 K-Culture의 문화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올해는 특히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일본, 캐나다 5개국에서 동시 개최하여 글로벌 축제로써의 한 걸음을 딛어냈습니다. Q- 이번에 국립민속국악원과 춘향국악대전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요. 국악원에서 맡고 있는 공연이나 행사도 있나요? 김- 우리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춘향제 초청공연으로 5월 12일, ‘남원에 새봄이 들어’라는 창극을 선보입니다. 총 41명의 단원이 출연하고요,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장원급제한 후 남원에 돌아와 춘향과 만나는 장면을 그려 낼 예정입니다. 춘향국악대전은 공연예술제이기에 남원시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입니다. 우리 국악원도 이에 함께 연계하여 더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Q-국악인들의 축제인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도 빼놓을 수 없겠는데요, 특히 일반부 종합 결선과 판소리 명창부 결선에서는 청중평가단의 평가가 들어가는 것이 독특합니다. 이렇게 일반인 청중을 평가단으로 세우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 청중평가단의 평가를 포함하여 공정하게 꾸려나가겠다는 의지입니다. 춘향국악대전은 오랜 역사와 함께 실력 있는 국악인들이 거쳐 가는 등용문이기도 하죠. 공정한 심사를 위해 먼저 지역 쏠림이 없도록 지역 안배를 합니다. 또 심사위원 검증위원회를 두어, 예술마루에 등록된 심사위원을 최종 선발하게 됩니다. 논란 없이 최대한 공정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Q- 펼쳐지는 공연을 보니, 판소리 춘향가와 전통 음악, 창작 국악, 관현악, 농악을 비롯하며 중국과 일본의 전통 공연까지 진행되더라고요. 역시 전통을 중시하고 사랑하는 남원의 특색이 많이 묻어납니다. 관객들이 국악 무대를 많이 즐기나요? 이- 전통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이기에 더욱 신경 써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남원과 우호 관계를 맺은 중국과 일본의 전통 공연을 초청하여 선보임으로, 국가 간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또 남원 분들은 귀명창이 참 많으세요. 그래서인지 국악과 전통예술 공연에 늘 관심이 많고 즐겁게 잘 즐기십니다. 김- 맞아요. 추임새도 정말 잘 해주시고, 국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게 느껴집니다. 국악원에서도 토요일마다 완창 판소리를 개최하는데, 남원 관객분들은 그 긴 시간을 늘 끝까지 다 들으시고, 반응해 주시죠. Q- 지역 인구가 소멸해 가고 있고, 도시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지역 축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성 있는 축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 무엇보다 지역 문화가 활성화되는 게 크겠죠. 외부 관광객들이 이 축제를 통해 남원의 문화를 알게 되고, 관광지를 구경하기도 하며 관광산업이 발전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5월 10일부터 11일,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춘향제 100년, 지역축제 진화와 혁신’이라는 주제로 전문가분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텐데, 그때 지역축제산업과 로컬관광에 관하여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이 축제를 통해 남원이 발전하는 것 외에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자 하는 긍정적 효과가 보입니다. 문제로 대두되던 바가지요금이나 비싼 식품 가격에 대해서도 시에서 개입하여 근절시키고자 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여 더 나은 축제로, 관광지로 만들고자 노력하죠. 남원은 지금까지 체류형 관광지가 아닌 잠깐 들렀다 가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하지만 남원춘향제를 통해 이 지역이 더욱 홍보되고, 주변 상권을 살릴 수 있다면 더욱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될 수 있겠죠. Q- 그 외에 올해 춘향국악대전에서 색다르게 펼쳐지는 행사나 기획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이- 11일부터 12일까지, 주민 4,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형 퍼레이드 공연인 대동길놀이가 펼쳐집니다. 춘향전 속 명장면을 연출하는 퍼레이드형 놀이인데요. 예를 들어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이나 이별,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돌아오는 장면 등을 구성하여 펼쳐냅니다. 자발적인 주민 참여형 커뮤니티를 만들어, 시민이 직접 준비한다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죠. 그 외에도 남원시에서 활동 중인 농악단의 대규모 농악 공연을 광한루에서 매일 볼 수 있다는 것과, ‘판락’이라고 하여 판소리와 락(Rock)의 콜라보 공연, 한복을 입고 하는 EDM 파티, 공군 에어쇼 등 볼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Q-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가 참 많은 것 같아 더욱 기대되는 축제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김- 국립민속국악원은 춘향테마파크 안에 있습니다. 그만큼 국악원에서도 춘향 관련 전시나 교육 등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남원에 들르셔서 축제를 즐기고, 그 김에 국립민속국악원도 방문하신다면 더욱 즐겁고 알찬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는 1,500여 개 정도인데요, 보통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게 주가 됩니다. 춘향국악대전에선 먹고 마시는 것 외에도, 한복을 입고 춘향전의 주인공이 되어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색다른 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난장’이라는 야시장을 통해 막걸리 축제를 병행할 예정이에요. 특히 이번에는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와 협업하여 맛있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남원 막걸리와 함께 즐길 수 있으니 꼭 놀러 오셔서 좋은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춘향테마파크와 광한루원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남원은, 어딜 가든 춘향과 몽룡이의 사랑 이야기가 곳곳에 묻어났다. 춘향의 사랑을 주제로 관객 모두가 춘향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춘향국악대전’. 가장 오래된 ‘최초의 지역축제’인 만큼 그 준비 과정 또한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 가치를 드높이고 관객들에게 더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더 나아가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대표 지역축제로써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가 와 닿았다. 더욱 발전하기를 함께 소망하게 되었다. 푸르른 5월, 조선시대로 돌아가 춘향이, 또 이몽룡이 되어 색다르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춘향아 이리와 업고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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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연희극 ‘新칠우쟁론기’[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남산국악당에서 아트플랫폼 동화의 ‘연희 데카당스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모던연희극 ‘新칠우쟁론기’가 펼쳐졌다. 이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에 2022-2024년 선정되어 2023년 초연되었고, 이번 무대에서 내용과 안무 등이 강화되어 새롭게 선보여졌다. ‘新칠우쟁론기’는 조선시대 고전소설 ‘규중칠우쟁론기’를 오늘날 시대상에 맞게 재해석한 국악 가족 뮤지컬이다. ‘규중칠우쟁론기’는 규방의 부인이 바느질할 때 없어서 안 될 일곱 가지 도구를 의인화하여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新칠우쟁론기’에서는 바느질 도구 일곱 가지 대신 노트북과 휴대폰, 명품 가방 등 현대인이 가치 있게 여길법한 소지품 일곱 가지를 대입하여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공연 시작 전 객석에서는 밝고 그루비(Groovy)한 연주곡이 배경으로 흘러나왔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밴드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중간중간 효과음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판소리가 묻어났다. 이 음악 구성은 무대가 끝날 때까지 전반적으로 끌고 가는 장르로 작용했다. 극이 시작되고, 노란 조명과 드라이아이스 안개 속에 여덟 명의 배우가 나와 진지하고 엄숙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극이 어떻게 펼쳐질지 보여주는 서곡이었다. 이후 천년을 산 하루살이가 사람 몸으로 들어가며 과연 사람의 욕망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며 본격적인 무대를 열었다. 주인공 나사랑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만대호의 산책로를 걷다가 갑자기 몰아친 돌풍 때문에 소중한 소지품을 호수에 빠뜨린다. 그녀의 소지품은 ‘휴대폰’, ‘노트북’, ‘명품 가방’, ‘반지’, ‘손수건’, ‘화장품’, ‘열쇠’로 총 일곱 가지였다. 나사랑이 그 물건들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할 때에 그에 걸맞은 효과음이나 어울리는 음악 장르가 흘러나왔다. 명품 가방을 소개할 때는 사랑스럽고 도시적인 느낌의 시티팝(citypop)과 대중음악이, 노트북을 소개할 때는 일렉트로닉(Electronic)한 전자음악 사운드가 주가 된 현대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상황에 맞게 직관적인 음악을 활용하여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한 연출이 섬세하게 다가왔다. 또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조명이나 효과음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공연은 여섯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연주자(고수), 세 명의 앙상블로 구성되었다. 특히 세 명의 앙상블을 맡은 배우들은 소리꾼들이 소리를 하거나 배우들이 연기할 때 옆에서 그에 어울리는 춤을 선보였는데, 극을 지루하지 않게 유쾌하게 끌어주고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어 마치 이날치 밴드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연상되기도 했다. 무대를 관통하는 음악 또한 밴드 음악 기반에 힙합 비트와 전자 사운드가 주를 이루며 대중적이고 유쾌한, 독특한 효과를 드러냈다. 일곱 가지 소중한 물건을 호수에 빠뜨린 나사랑은 만대호의 2인자인 하수인과 절대 권력 강회장을 만나고, 기존 회사에서 받는 연봉의 열 배를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일곱 가지 물건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요구를 듣게 된다. 이에 나사랑의 일곱 가지 물건은 나사랑에게 선택받고자 각자를 어필하고, 다른 물건들과 다투기도 한다. 원작 ‘규중칠우쟁론기’에서 바느질에 필요한 물건들이 각자의 쓰임새를 뽐내던 것과 비슷한 연출이었다. 상황에 걸맞은 음악이나 효과음이 끊임없이 등장했고, 배우들은 대중적인 단어를 사용하거나 언어유희를 하며 유쾌하게 극을 끌어갔다. 이러한 유머 구성과 과장된 몸짓이나 연기 톤 등은 진지함을 띠고 있는 극이라기보다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그 타깃(Target)이나 컨셉(Concept)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타깃이라기에는 대사나 흐름이 어렵게 느껴질 것 같았고, 중·장년층이 즐기기엔 인터넷 용어가 많이 활용되고 극적 진지함이 떨어져 지루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청소년층이 즐기기에 무난한 무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용이나 흐름이 장면 전환 등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끊길 때가 많아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또 음악이 배우들의 소리보다 커서 균형이 안 맞았고, 자막이 띄워져 있지 않아 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조금 더 완성도 있는 섬세함과 탄탄한 맥락을 가지고 극을 끌어 나갔더라면 더 좋은 공연이 되었을 것 같다. 음악의 경우 경기민요 ‘늴리리야’나 춘향가 중 ‘사랑가’ 가사를 활용한 곡을 대중적으로 만들어 부르거나, 판소리 어법으로 된 뮤지컬 같은 노래를 불러내며 전통에 기반을 둔 극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대중적이며 전통적인 새로운 색을 내려고 한 것과, 통일성 있는 음악 장르로 극을 끌어간 진행은 좋았지만, 흐름이 깨지는 갑작스러운 감정과 음악의 변화, 뚝 끊기는 듯한 노래의 마무리 등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新칠우쟁론기’는 우리가 세상을 살며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탐욕과 물질이 아닌 그 이면의 가치, 그리고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전 소설 ‘규중칠우쟁론기’라는 소스를 가지고 이 시대에 맞는 극을 만들어낸 아이디어나, 대중적인 음악과 춤, 유쾌한 대사를 사용한 시도는 훌륭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극의 주제나 본질이 흐려진 느낌이었고, 극의 진행이나 흐름이 어색하게 흘러 주제가 크게 와 닿지 않아 아쉬웠다. 덜어낼 것과 더할 것을 균형 있게 조절해 그 가치를 드러낸다면, 남녀노소 모두가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더욱 훌륭한 무대로 거듭날 것이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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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채치성 예술감독을 만나다[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는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된 채치성 예술감독님을 만났다. 그는 국악방송 사장, KBS 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 KBS 라디오 국악 프로듀서 등을 지내며 기획력과 단체 운영 역량을 인정받아 온 국악계의 원로다. 감독님이 꾸려나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방향성과 국악 및 국악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취임 축하드립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지난 11월부터 감독직을 맡게 되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왕 오게 되었으니 더욱 잘 이끌어서 명실상부한 악단으로 자리매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 중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보는 데 치중하고 있어요. 악단 연주 일정은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올 9월까지 기획되어 있었기에, 저는 올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연주나 행사를 기획하여 시작하게 됩니다. 10월 2일에 진행될 공연에서는 제가 직접 작곡하고 지휘한 곡도 연주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늘 색다르고 다양한 관현악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어 항상 흥미로운데요, 이 악단을 앞으로 어떻게 꾸려 나가고 싶으신가요? 감독님께서 이끌기를 원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방향이나 음악적 가치 등이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 국립단체이기에 우리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전통음악이 뿌리 깊게 근간이 된 가장 한국적인 무대를 더 많이 기획하고자 해요. 지금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현대적인 음악 어법이나 타 음악 장르와의 협업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관현악을 통해 대중적이고 다양한 색채를 선보였고, 단원들의 기량 또한 많이 향상되었는데요. 이를 발판 삼아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연주 기획을 많이 하되, 그 바탕에는 우리 음악을 잊지 않고 두고 싶습니다. 우리 장단과 우리 선율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관현악곡을 무대에 올려, 국립 악단으로써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싶어요. Q. 정오의 음악회나 관현악시리즈 등 정기적으로 선보이는 대표 시리즈가 있다는 것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런 시리즈는 어떻게 준비되나요? 관객들의 반응이 참 좋다고 들었습니다. A.정오의 음악회는 오랜 인기와 함께 늘 매진입니다. 대중들이 아주 좋아하는 시리즈인데요. 대중에게 익숙한 연예인이나 국악인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들려주며 관객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이 시리즈가 장기간 흥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관현악시리즈 또한 다양한 관현악곡을 조명하고 연주하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입지를 단단히 만들어 주는 데 한몫을 하고 있죠. Q.혹시 또 다른 시리즈나 새로운 공연이 계획되어 있나요? A. 6월에 계획된 야외 음악회 ‘애주가(愛酒歌)’라는 공연이 있습니다. 음악에 소량의 시음을 곁들이는 공연인데, 전통주를 마시며 전통음악을 관람하는 참신한 공연이라 아마 많은 분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또 국립합창단이나 창극단 등 국립극장에 소속된 전속단체들과 함께 합동하여 선보이는 브랜드 공연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Q. 감독님은 오랜 기간 국악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잖아요. 작곡뿐 아닌 방송 쪽에서도 국악 콘텐츠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1981년, KBS에 입사하여 PD로 활동한 것이 저의 첫 방송 생활이었습니다. 30분짜리 국악 관련 방송을 맡아 진행했기에 국악 음반 자료가 필요했는데, 그 당시엔 방송용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월요일마다 KBS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을 불러 음악을 녹음해 아카이빙을 쌓았죠. 그렇게 방송 시간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그 녹음 자료가 지금까지 쓰이니, 방송계와 국악계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국악방송에 재직하면서부터는 오로지 국악에 몸 바쳐 왔습니다. 국악 맞춤형서비스 등의 새로운 시도에도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이제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생중계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해요. 그렇게 되면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우리 음악도 멀리 뻗어져 나갈 것입니다. Q. 그렇다면 국악의 대중화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A. 대중성과 전통을 잘 엮어서 우리 음악이 어렵지 않다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 어법에 맞는 연주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 음악에 대해 이해하고, 우리 음악의 맛을 잘 살린 콘텐츠를 언론에 노출, 홍보하며 대중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음악은 충분히 생활화가 가능하고, 참 재미있으니까요. Q. 감독님께서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국악을 경험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어릴 때부터 국악을 접했기에, 그 경험의 소중함을 잘 아는데요. 곧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음악회 ‘별별 땅땅’이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A. 음악 교사직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학생들에게 단소를 만들어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이 지금까지도 그때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고 해요. 그만큼 어릴 때 음악언어를 알고 경험하는 게, 교육이 아주 중요합니다. ‘별별 땅땅’은 단원들이 소규모로 연주하고, 아이들이 국악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놀이 형태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해주는 공연입니다. 국립극장은 어린이 공연이 참 많습니다. 이 공연도 장기 공연인데, 많은 분이 믿고 찾아주셔서 늘 감사하죠. Q. 선생님께서 만드신 곡 ‘꽃분네야’가 생각납니다. 그 곡은 선율도 참 좋지만, 가사도 정말 정겹고 아련한 느낌이 들어요. 국악가요라는 장르가 그 곡으로 인해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곡을 만들 때 가장 치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꽃분네야’를 통해 우리 정서를 담은 대중가요를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작곡, 작사를 할 때 우리 음악과 우리 말 어법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가사를 쓸 때 그 점에 가장 치중하여 작업합니다. 영어는 관사가 앞 박이지만, 우리말은 반대죠. 강세와 문장의 어법을 막무가내로 쓰지 않고, 문장이 말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적으로 장단이나 선율 등 한국적인 정서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Q.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님으로서, 또 국악 분야의 원로로서 앞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예술감독직을 수행하며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공연을 많이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서울에 자리하고 있지만, ‘국립’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악단입니다. 그 이름답게, ‘찾아가는 국립극장’ 프로그램처럼 서울 외의 지역에 가 공연한다든지, 문화소외계층이 국악을 경험할 수 있게끔 다양한 무대를 더 많이 기획하여 꾸리고자 해요. 그리고 무대를 영상으로 남기거나 송출하는 영상화 사업에도 힘을 많이 쏟을 예정입니다. 채치성 예술감독님이 인터뷰 내내 강조하던 것은 ‘가장 한국적인 우리 음악’이었다. 우리 음악이 가진 독자적인 묘미, 아름답고 가치 있는 그 매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목소리에는, 오랜 시간 국악계에서 국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그의 열정과 사랑이 묻어났다. 앞으로 채치성 예술감독님이 이끌어 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굳건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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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새로운 춘향가- ‘틂:Lost&Found’[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학로극장 쿼드의 ‘쿼드초이스’가 다채롭고 실험적인 무대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쿼드초이스'는 동시대적 가치를 담은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 프로그램으로, 기존 전통 음악 장르의 경계를 허문 예술가들이 그 무대를 꾸렸다. 대학로극장 쿼드(QUAD)는 블랙박스 공연장으로, 무대의 모양에 따라 자유자재로 객석 변형이 가능한 유연한 공간이다. 그 가변성은 무대와 객석이라는 형식에 갇히지 않고 관객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쿼드초이스’는 총 세 번의 공연으로 진행되었으며, 그중 소리꾼 김율희, 전통타악 연주자 황민왕, 전자음악 기반 전통예술가 Jundo가 펼친 새로운 우리 소리의 판, ‘틂:Lost&Foun’ 무대를 관람했다. ‘틂:Lost&Found’의 ‘틂’은 ‘노래를 튼다’라는 의미와 ‘기존의 판을 틀어서 새롭게 조망하자’는 의미다. 전자 음악 예술가 Jundo는 ‘전통 판소리에 있는 판의 개념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조성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이 무대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 ‘상황과 장면’을 뜻한다. 이들은 블랙박스 공연장 쿼드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이 시대의 새로운 ‘판’을 만들어 냈다. ‘전석 비지정석으로 운영되며 공연 중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들어선 무대는 블랙박스 공연장답게 검고 다소 어두웠으며, 희고 긴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천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대 형식이 아니었기에 연주자들의 무대가 한 군데에 모여있지 않았고, 사각형의 각각 마주 보는 면에 황민왕이 연주할 타악기와 Jundo가 연주할 전자 기기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중심부와 주변부에는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사각형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앉고 싶은 곳을 찾아 앉고, 무대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흰 천으로 사방이 가려진 구석의 사각 공간에서 ‘만첩청산’이 흘러나왔다. 김율희의 소리와 황민왕의 북 반주에 맞추어 시작된 노래였다. 곧이어 ‘사랑가’가 불렸다. 편안하고 몽글몽글한 사랑 노래에 맞추어 조명 또한 밝은 네온 느낌으로 변화했다. 사각 공간을 뒤덮고 있는 흰 천이 따스한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빛으로 인해 두 연주자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나 부채를 활용한 멋스러운 발림과 북을 연주하는 모습을 독특한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사랑가의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가사와 함께 Jundo의 전자 음악 사운드가 얹어졌다. 울림 가득한 리버브(Reverb) 사운드가 신비감을 조성했고, 공간감이 가득한 앰비언트(Ambient) 형태 위의 소리가 점점 강해지며 종이 천이 한 번에 떨어졌다. 연주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판소리와 전자 음악은 A key에 맞추어 안정적으로 섞여 들었고, 몽환적이면서도 힘 있는 느낌을 자아냈다. 이어 김율희는 구석의 사각 공간에서 나와 관객들이 앉아있는 공간으로 올라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관객 친화적’ 구성이었다. 관객들은 소리꾼의 노래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관람할 수 있었고, 김율희는 관객들에게 짧게 말을 걸거나 유쾌하게 소통하며 편안하게 무대를 끌어 나갔다. 자진모리장단의 빠르고 유쾌한 느낌의 ‘신연맞이’가 불렸다. 풍성하고 힘 있는 전자 음악 사운드에 타악기 연주가 가미되어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을 풍겼다. 황민왕이 구음으로 노래하며 장구를 칠 때는, 전자 음악의 플럭(Pluck, 음의 지속이 짧으며 리드미컬한 연주에 자주 사용되는 신스 기반 음악)사운드가 장단의 리듬꼴을 함께 연주했다. 전통 악기와 전자 음악이 장단을 통해 한데 어우러지며, 매력적이고 독특한 느낌을 자아냈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변화무쌍한 춘향가의 노래가 몇 곡 불린 후, 주황빛 조명 아래 황민왕의 솔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양손에 궁채를 잡고 즉흥적으로 장구를 연주했다. 딴딴한 음색의 시원한 소리가 공간을 풍성하게 울렸고, 섬세한 다이내믹 연주가 감탄을 자아냈다. 곧이어 빗소리와 함께 녹음된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감성적이고 편안한 목소리로 전해진 춘향의 서글픈 이야기는 고어(古語)가 아닌 요즘 사용되는 언어로 이루어져 더욱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웠다. 내레이션 위에 김율희의 목소리가 마이킹되지 않은 상태로 얹혀 불리다가, 내레이션과 음량이 교차되며 점점 커져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대가 흘러도 사랑의 본질과 가치는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었다. 곧이어 새 소리와 함께 아침이 밝고, 울렁거리는 신스(Synth)사운드 위에 마이너한 코드가 쌓이며 황민왕의 아쟁 연주가 시작됐다. 아쟁 연주는 화려하기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했고, 함께 연주된 전자 음악은 점차 다이내믹하게 발전하며 축축한 공간감과 함께 영화음악 같은 효과를 주었다. 그리고 편안한 비누향이 공간을 감쌌다. 향기 분무를 통한 후각적 연출이 음악을 더 따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70분간 관객들은 공간과 음악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느껴볼 수 있었다. 소리꾼의 이동에 따라 관객들도 자리를 바꾸어 가며 관람했고, 자유롭게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네모난 블랙박스 안, 모든 공간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퍼포먼스는 새로운 시각과 시선으로 춘향가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쉬웠던 것은 짧은 시간 동안 춘향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흐름이 모호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레이션이나 악기 솔로 등이 중간중간 나열되는 부분은 무얼 표현하는지 쉽게 알기 어려웠다. 춘향의 이야기를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한 색다른 시도는 좋았으나, 조금 더 뚜렷하고 통일성 있는 서사가 있었더라면 더욱 완성도 있는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곡인 ‘어사출두’를 노래할 때, 김율희는 모두 영상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자고 유도하며 관객들과 유쾌하고 신명 나는 판을 만들어 냈다. 관객들은 서리와 역졸이 되어 음악에 참여했고, 다 함께 일어나 리듬을 타며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이 시대의 새로운 춘향가를 즐겼다. 오감의 활용, 화려하고 분위기 있는 조명, 대중적인 전자 음악 사운드와 전통 예술이 만들어낸 무대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판,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현대적 전통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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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악단의 조화로운 하모니, ‘하나 되어’[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4일, 국립국악원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118명으로 구성된 연합 관현악단 무대 ‘하나되어’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올렸다. 국악계의 화합을 상징하는 이 공연은 지난해 11월 기획된 공연으로, 세 악단이 모여 국악관현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모였다. 이번 4월 무대는 지난 1월 31일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2월 22일 서울 KBS홀에 이어 세 번째 마지막 연합 연주회로 꾸려졌다. 공연은 연주단의 특색을 담은 관현악곡 1곡과 협주곡 5곡으로 구성됐다. 지휘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권성택 예술감독, KBS국악관현악단의 박상후 상임지휘자, 전북도립국악원의 이용탁 예술감독이 2곡씩 번갈아 맡았으며, 협연자들 역시 각 악단의 단원들이 번갈아 가며 나와 기량을 펼쳤다. 예악당 무대는 115명의 연주자로 가득 채워졌다. 첫 무대는 박범훈 작곡가의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로 열렸다. 경기민요 뱃노래를 주제로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분위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풍성하고 시원시원한 타악기와 관악기 소리가 상쾌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특히 많은 연주자로 이루어져 확대된 편성의 국악관현악이었기에 더욱 풍성하고 새로운 음향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이용탁 지휘자의 지휘는 확실한 다이내믹과 강약이 돋보였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곡을 끌어가 편안한 감상을 선사해 주었다. 이어 황해도 철물이굿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정면 편곡의 ‘소리와 관현악을 위한 바람과 나무와 땅의 시’가 연주됐다. 박상후 지휘자의 지휘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유지숙 예술감독,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인 김민경과 장효선의 협연으로 펼쳐졌다. 황해도 지역에서 봄이나 가을에 축복을 기원하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재수굿인 ‘철물이굿’을 바탕으로 구성된 곡으로, 세 소리꾼은 굿과 관련한 의복을 입고 노래했다. 유지숙 예술감독의 선창으로 시작된 이 무대는 관객들에게 덕담을 전하고 복을 기원하며 축원하는 노래로 꾸려졌다. 관현악 반주는 대중적이고 편안한 선율과 코드 진행을 활용하여 푸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 위에 자연스럽게 얹힌 서도 소리는 경쾌하고 흥겨웠다. 서정적이고 대중적이나 뻔하지 않은 코드 진행을 이끈 베이스라인은, 발현악기의 튕기는 음으로 진행되어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무대 위에는 복채를 넣는 함이 있었다. 많은 관객이 무대 앞으로 나와 복을 빌고, 복채를 함에 넣은 후 흥겹게 춤추며 기뻐했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친숙하고 신명 나는 무대로 꾸려져 관객 친화적이고 경쾌한 느낌이 가득했다. 유지숙 감독의 재치 있는 입담과 관객과의 대화는 친숙하고 편안한 감상을 끌어냈으며, 박상후 지휘자가 품속에서 복채를 꺼내 함에 넣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복을 비는 모습은 기분 좋은 웃음을 자아냈다. 세 번째로 연주된 곡은 토마스 오스본(Thomas Osborn) 작곡의 ‘해금 협주곡 벌시스(Verses)’였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수석을 맡고있는 조진용 연주자가 해금 협연을 맡았다. ‘벌시스(Verses)’는 한국의 시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잔잔한 물결과 얼어붙고 격정적인 파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식 안에서의 물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곡이다. 리듬을 다양하게 쪼개고 늘리며 매력적인 사운드를 선보인 이 곡을 통해 관현악의 색다른 느낌을 느껴볼 수 있었다. 기존 국악관현악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음색 간의 조화보다는, 지금껏 시도되지 않던 악기 간의 어우러짐, 악기들의 색다른 표현이 많이 시도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현대적이고 독특했다. 해금 독주는 개방현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높고 낮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해금의 얇지만 강하고 단단한 소리가 곡을 감쌌고, 특이한 주법을 구현하거나, 기묘하고 오묘한 선율을 활용하여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을 동시에 발산해 해금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의 서정미 수석 단원이 작·편곡한 ‘관현악을 위한 3중 협주곡 무산향(舞散響)’은 원장현 대금 명인이 구성한 독주곡 ‘춤산조’를 관현악곡으로 새롭게 편곡한 곡이다. 경쾌하고 화려한 동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관현악단과 협연자들이 맛깔스러운 민속악 느낌을 흥청스레 연주했다. 풍성한 관현악과 빌 틈 없는 독주 악기들의 깔끔한 산조 연주가 짜임새 있게 어우러져 흥겨움과 편안함을 선사해 주었다. 이어 경쾌한 굿거리 위에 정겹고 익숙한 경기제 태평소 선율이 박지중 연주자의 연주로 이어졌다. 여유로운 태평소 선율과 함께 연주된 관현악은 서정적으로, 그리고 민속악적으로 자연스레 얽혀 들어갔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장단 속에서 호탕하고 멋스러운 태평소의 기교가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최지혜 작곡의 ‘3개의 현악기를 위한 산조 협주곡 시절풍류’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2022년 국립국악원 위촉 곡으로, 가야금, 거문고, 소아쟁의 산조 가락에 맞는 관현악으로 구성되었다. 국악기의 대표 현악기 세 대가 독주 악기로 연주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뜯고 튕기는 현악기의 독특한 사운드가 ‘산조’라는 주제 안에 하나 되어 어우러져 독특하고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관현악은 대중적인 베이스 코드 진행을 활용하여 곡의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끌고 가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음악 같은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 안에서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미지가 그려졌다. 이 시대에 맞는, 이 시대의 풍류였다. 연합 관현악단 무대 ‘하나되어’는 세 악단이 하나로 화합하여 함께 하모니를 이루어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었다. 115명의 연주자는 서로 다른 악단 단원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고 조화로운 무대를 만들어냈고, 세 명의 지휘자가 만들어 낸 지휘 스타일은 각기 달랐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악단 연주자들과 지휘자들은 이 공연을 통해 서로 교감하며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음악적 성장 또한 이루었다고 한다. 화합하며 하나 되는 이런 무대적 기획을 통해, 국악관현악이 다방면으로 활성화되고 발전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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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세실풍류, 51명이 근현대춤 100년사 선보인다국립정동극장이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온 근·현대 춤꾼들의 100년 여정이 담긴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온 춤꾼 51명의 무대가 이번 달 매주 화·목요일 여덟 차례 공연이 이뤄진다. 배구자·최승희·조택원 등 신무용 시기 춤부터 2000년대 이후 컨템퍼러리 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화해 온 우리 전통춤에서 신무용의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다. 근대 신무용이 등장한 1920년대부터 전후 무용학원 시대, 국립무용단 창단기, 1970년대 춤의 새로운 도화선이 됐던 한국창작춤, 현재의 컨템퍼러리 작품들까지 100년을 관통하는 우리 춤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근대 신무용기는 시대적 흐름과 함께 새로운 개념으로 한국창작춤의 태동을 알리는 시기였다. 4일과 9일에는 1920년대 신무용을 조명한다. 지난 4일 1920년대 서양 문화의 도입과 함께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를 바탕으로 새롭게 탄생했던 신무용이 선보였다. 배구자·최승희·조택원의 작품을 김선정·노해진·안나경·최신아·국수호·김형남·김호은이 무대에 올랐다. 신민요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무대화하며 신무용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배구자와 신무용의 성행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함으로써 신무용 시대를 연 최고의 무용가 최승희, 조택원의 작품을 오늘날 새롭게 재현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맛깔스런 해설로 흥겹게 진행되었다. 1920년대 신무용 선구자 '배구자의 '에여라 노아라' 민요춤을 김선정이 재현했다. 객석은 첫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1920년대 뮤직박스에 이끌려 시간이동을 하게 된다. 막이 오르자 어두운 무대 배경에는 서서히 배구자의 춤자태를 보여주는 사진이 나오고,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용가는 잠시 그대로 배구자의 몸짓을 흉내 내고 정지 되어 서 있다가 춤을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백년전 불려졌던 민요는 오늘날 불려지면서 지금 시대에서 느껴지는 정서보다는 다르게 젖어들었다. 소박하고 정겨웠다. 일상복을 입는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이웃집 처녀가 집안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제 멋에 못이겨서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다. 첫 무대는 많은 박수를 받으면서 다음 무대가 더욱 기대되었다. 다음은 '배구자의 타령춤'을 노해진이 재현했다. 무대 배경에 나온 배구자가 입은 무용복과 똑같이 재단을 해서 만든 옷인데, 배구자는 색동무늬가 박힌 옷을 입었고, 무용가는 화려하고 커다란 꽃이 그린 무늬가 박힌 무용복을 입었다. 노해진은 배구자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려는 집중력 있는 연기력과 호흡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물 흐르듯이 시간이 흘렀다. 일단 타령조로 불린 무용곡이 신났다. 따라서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타령조라고 붙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구자는 1936년 직접 부른 도라지타령, 천안삼거리 곡이 담긴 음반을 낸 가무악에 능한 예술가다. 이 두곡을 엮고, 배구자의 영상, 사진, 기사자료를 참조하여 만든 신민요춤이라고 소개가 되었다. 무용을 보여주는 동안 무대에서 나오는 영상에는 미국 자택에서 인터뷰하는 100세를 맞이하는 배구자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1928년 발표한 아리랑은 조선인이 만든 최초의 신무용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아리랑이 그 당시 최고의 유행가라는 것이 입증된다. 그만큼 배구자는 시대의 트랜드를 읽을 줄 아는 한국 근현대무용의 선구자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1937년부터 1941년까지 유럽, 남미, 미국 등 15개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세계적 무용가 반열에 오른 최승희의 대표 작품 '초립동'과 '검무 격'은 안나경 무용가, 쟁강춤은 북한출신 최신아 무용가가 재현했다. 최승희는 현대무용 계열의 창작춤은 주목받지 못하다가 1934년 일본에서 조선풍 소재 창작춤을 발표하면서 대성공을 이루고 대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1937년 동경에서 초연된 '초립동' 춤을 1995년 김백봉이 새로이 안무한 작품을 안나경이 무대에 올렸다. 신명나는 밀양아리랑 선율에 맞추어서 빠른 템포로 추었는데, 허공에 들었다 났다하는 발동작을 앙징맞게 연출하며 누나같은 색시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천진난만한 어린 신랑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출하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최승희의 상장적인 춤이라고 하는 쟁강춤은 북한무용을 대표하는 무용이다. 최승희의 쟁강춤은 무희춤이라고 불리는데, 최승희의 '무희' 춤을 바탕으로 여러 명의 무용수가 나오는 군무이기 때문이다. 쟁강춤은 손목에 '쟁강, 쟁강' 소리를 내는 쇠팔찌를 걸고 흥겨운 리듬을 울리면서 추는 춤이며, 본 작품은 지난날의 '쟁강춤'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재형상하여 훌륭한 무대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특색있는 춤이다. 북한출신 최신아 무용가가 최승희 직계 제자답게 시원시원하게 보여 주었다. 1987년 파바다가극단에서 최승희 직계제자 김응범 선생에게서 쟁강춤을 배웠다. 남한 지역 전통 춤사위는 대개 느린 템포로 정중동을 표현한다. 여기에 북한 춤사위는 러시아 예술의 영향으로 남한보다 훨씬 빠른 템포를 유지한다. 한 시간이 넘는 무대를 남한춤만 채우기보다는 북한춤도 함께 보여주면 음악적 바란스가 안정적이라고 본다. 무대는 지루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외동포들에게 전통 춤사위만 보여준다면 러브콜이 없는 무대로 기억될 것이다. 2019년 러시아 사할린아리랑제 무대에서 최신아가 선보인 쟁강춤으로 러시아 동포사회와 시민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오늘 무대에서도 연기력이 뛰어난 최신아는 쟁강춤을 완벽하게 선사했다. 그 댓가로 우뢰와 같은 관객의 박수를 선물로 받았다. 검무 격(格)은 검무는 신라 시대 때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던 검무를 모티브로 1934년 창작된 최승희의 대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검무가 원형을 잃어버리고 검의 움직임만을 주로 담은 섬약한 모습 무사(武士)의 검무, 즉 검술의 무도정신을 이어받은 움직임들로 창작했다. 작품 '검무_격格'은 김백봉이 최승희의 원작 '검무'를 1995년 격(格)이라는 부제로 안무 발표한 작품이다. 무예를 닦는 무인의 기백과 그 속에 깃든 기혼(氣魂)의 이상경(理想境)을 하나의 격의 경지로 표현했다. 안나경은 최승희의 춤사위를 체화하고 자신있게 보여주었다. 신라를 상징하는 금관악기와 금색이 도는 금으로 만든 신발 등 화려한 금색 치장은 신라에서 숭상하는 검을 숭상하는 검도정신을 춤으로 형상화했다. '조택원의 가사호접(袈娑胡蝶)'을 국수호가 재현했다. 전문가에 의하면 그 시설 조택원의 춤사위를 잘 표현했다라고 평했다. 원로 무용수답게 완숙한 선과 호흡을 선사하여 기장 큰 박수를 받았다. 조택원의 가사호접(袈裟胡蝶)은 조택원이 1935년 경성공회당에서 가진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의 제목은 '승무(僧舞)의 인상(印象)'이었으나 이후 시인 정지용에 의해 '가사호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창작춤을 위해 처음으로 음악을 작곡한 작품이었고, 작곡은 김준영이 맡았다. 작품은 속세를 동경한 승려가 심산유곡을 버리고 새벽녘에 사바세계로 내려오며 시작된다. 가사를 벗어 던지고 환희와 광란의 춤을 추던 승려는 지쳐 쓰러져 생각한다. 불교에 의지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가사를 집어 들고 산에 가려 해보나 이미 파계승이 되어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도,뒤로도 갈 수 없는 승려는 가사를 집어 던지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가사호점은 승려의 파계와 귀의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희열을 한국의 춤사위로 표현하고 있다. 조택원의 만종'을 김형남·김호은이 재현했다. 만종이라는 명화를 재해석하여, 신선한 스토리를 상상하게 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춤사위가 아름다웠다. 남과 여의 호흡이 잘 어울어져서 펼쳐지는 큰 원 속에서 마치 두마리 나비가 사랑을 찾아서 희롱하는 모습은 객석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조택원의 만종은 19세기를 풍미한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만종'과 프레데리크 쇼팽의 '야상곡'에 영감을 얻어 창작된 2인무다. 조택원의 집 2층에 살고 있던 음악가 김생려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 엘만이 피아노곡을 바이올린곡으로 편곡한 쇼팽의 '야상곡'을 밤낮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연주를 듣던 조택원은 마침 방에 걸려있던 밀레의 그림 '만종'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만종은 1935년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조택원의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경건한 기도를 드리는 부부가 '야상곡'에 맞춰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비길 데 없는 평화와 고요, 비현세적인 경건함과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조택원의 머리에서 춤을 추었고, 상상을 실현하여 작품 '만종'이 창작되었다. 한편 9일에는 신무용 2세대 김진걸·김백봉·최현·황무봉·최희선·송범의 작품을 정민근·안귀호·정혜진·김혜윤·윤미라·손병우·김장우·최영숙이 선보인다.11·16·18·23일에는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새로운 한국춤을 모색했던 1970년대 이후의 한국 창작춤을 만나볼 수 있다. 무용 전문 조직체와 교육기관이 설립되며 더욱 다채롭고 창조적인 춤이 등장했던 시기다. 당대를 대표하는 김매자·배정혜·국수호·문일지의 작품 등 창작춤 24편이 4회에 걸쳐 공연된다. 25·30일에는 한국 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컨템퍼러리 춤꾼들의 작품 12편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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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혜의 '시간의 얼굴' 작품전, 16일 개막칠순을 넘어서는 길목에서 중견작가 김경혜(영남이공대 명예교수) 작가의 열번째 작품전이 오는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대구시 중구 슈바빙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되는 총 50여 개 작품전의 주제는 '시간의 얼굴'이다. 전통 한지와 먹으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표현했다. 30여 년전 파리 유학 중에서부터 구상해 왔던 작품전이다. 한지라는 캠퍼스에 한지를 오려 부치고 먹을 입혔다. 한지를 보면 볼수록 시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재질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한지 작품전을 준비하는 김작가가 한달 전 대구시 작업실에서 이 작품을 보여 주면서, 우리는 아직도 전통문화예술에서 가져 올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관객의 입장에서 출품작을 감상하면서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Q.이번 작품 주제에 대해 설명하신다면 A. 50여 개 작품명은 '존재와 시간'이고, 하나 하나는 시리즈입니다. 주제는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존재'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거스를 수 없죠. 이제, 비로소 시간이라는 길위에 서있는 나 자신과 마주 앉아 나는 누구인가? 왜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가를 묻게 되었는데, 하이데거(M.Heidegger)말처럼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존재를 되새기며, 인간의 존재는 시간아란 개념에 대해 생각하는 근원이며,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실려서 흘러가는 존재이죠. 그러나 인간은 한쪽 발은 영원성에 담그고 다른 한쪽 발은 시간성에 담그고 있는 이중 구조의 존재이죠. Q.이번 작품은 크게 흰색 한지의 면과 검은 먹으로 표현한 선이 대비되어 주제가 강렬하게 강조되네요 A.이번 작업은 시간 속에서의 존재를 표현해 보았죠. 존재를 근원으로 한지를 선택하여 접고 잘라서 운명을 표현했고. 삶이라는 것을 가늘고 긴 실로 단순한 선과 형상으로 작업해 보았다. 정리하면 존재를 상징하는 공간은 면으로, 삶은 가변성 있는 선으로 표현했다. 검은색과 흰색은 크게 존재의 빛과 그림자로 대비되는 효과를 내고 있죠. Q.이번 작품은 주제를 먼저 선정하고 '한지'를 택하셨는지요, 아니면 한지에 꽂히셨는지요. A.새로운 것을 경험하려고 떠났던 유학 시절에 나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방황을 가라 앉혀 준 것이 한지였다. 목판화를 찍으면서 선명하고 투박했던 그 맛! 특히 검은색 한지는 진중하면서도 무언가를 가득 품고 있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고 무궁한 깊이가 있다. 언젠가 한지를 제재로 표현하고 싶었죠. 그러다가 칠순이 넘으니 인간이라는 존재와 주어진 삶의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지와 연결되었죠. Q. 관객으로서 이번 작품 중 (위 사진) 이 작품이 눈에 가장 처음 들어왔습니다. 제가 느끼는 건데요. 반쪽 얼굴 모습은 사람의 존재와 고뇌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빨간 색실로 한올 한올 꿰맨 작품에 대헤 설명해 주세요. A. 금방 찢어질 듯이 얇은 한지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한 올의 실은 삶의 지평에 서 있는 우리들의 존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질이다. 시간의 길 위에서 수많은 얼굴을 만났다. 자신에게는 너그럽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냉철함에 놀라서 몸서리쳐졌고, 삶과 죽음이란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성에 막연하고 두려웠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태의 변화 속에서도 그들의 얼굴은 숭고하고 경이로웠다. 한편으로 반쪽 얼굴의 형상은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마스크를 쓰고 사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얼굴은 규칙적인 도형이 반복되는구조를 빨간색실로 연결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이 아닐까. Q. 반쪽 얼굴은 그런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하고, 삶과 죽음이란 경계를 표현한 것인가요. A. 존재, 즉 인간의 빛과 그림자, 선과 악을 표현하지요.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다행히 인간이란 존재의 시간 앞에 누구나 공평하지요. 신앞에 선 인간은 시간성에 대해 거부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야지요. 그래서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죽을 힘을 다해서 할뿐이지요. Q. 작품을 설명하시면서 20세기 독일 철학을 대표하는 실존주의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운운하셨는데, 이번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A. 하이데거의 '시간성(時間性)'을 표현하고 싶었죠. 현존재의 존재의미가 과거·현재·미래의 삼상(三相)의 통일인 시간성으로서 제시했죠. 인간 하나 하나가 시간적·역사적 존재라고 설명하죠. 제가 이 부분에서 한 단면을 잘라서 제 나름대로 확대해석한다면, 개인 하나 하나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거죠. 그만큼 사람들은 삶 앞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거죠. 특히 지나가는 시간앞에서... Q.색상이 다른 4개의 한지가 잘려서 부친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요. 언뜻 두툼한 누비한복이 떠올랐습니다. (위 사진) A. 전통한복에서 모티브를 받은 작품이지요. 작품 구조는 면과 선을 표현했죠. 의식의 저편의 기억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먹을 갈고, 드로잉하고, 종이를 접고, 자르고, 붙이면서, 시간의 무한성과 유한성을 형상화 했죠. 접은 한지의 사각면은 무한한 시간(세월)의 중첩을 표현하고, 한땀 한땀 한줄로 박음질을 한듯한 세로 선으로 접힌 주름은 지금 이 시간에 실존을 느끼는 동시에 정지된 시간의 흔적, 즉 유한성을 한지에 표현하고 싶었죠. 장승의 얼굴에 영감을 받고 장승을 주제로 한 작품전을 가졌던 김작가는 영남이공대에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상업미술을 기반으로 한 복합미술 장르를 지도하면서 민속학이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예술 콘텐츠에 눈뜨게 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야 세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2010년 안동국립대학교 민속학과에서 '조선후기 생활판화의 미의식과 기능'에 대한 연구(지도교수 임재해)로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민속학과 현대미술을 연결해 보고자 대학에서 학생들과 많은 실험을 시도해보고 지도해왔다. 많은 재학생들에게 전통에 대한 재해석 확장에 큰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유럽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 당시 한국 전통문화예술을 모티브로 한 주제작품은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할 때다. 서양화가 전공자 김작가는 파리 유학 중에 한국 전통문화를 그리워했다. 이때 김작가는 전통한지의 예술성과 다양성에 꽂히고 만다. 한민족은 오랫동안 전통 한지라는 재료로 만든 문필도구, 가구, 밥상, 장신구, 한복, 신발 등을 실생활에서 누려왔다는 것을....그리고 여기에 재질의 질과 색상 등 변화가 무한하고 바라만 봐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고 감상하게 된다. 이후 김작가는 한국에 돌아와서 한지 작업에 몰두하여 왔다. 한지와 모더니즘 작품을 연결시켜 보고자 많은 시도를 해왔다. 민속학을 기반으로 재해석하여 내놓은 이번 작품전에서 관객들이 신선한 영감을 받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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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III ‘한국의 숨결’[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29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III ‘한국의 숨결’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이날 공연에서는 국내 합창음악의 선두 주자인 국립합창단과 함께 우리 전통의 정서를 담은 한국적 색채의 ‘시조 칸타타’와 장르 간 경계를 허문 현대적 색채의 ‘천년의 노래, REBIRTH’ 두 곡이 선보여졌다.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박상후 지휘로, 국립국악관현악단 72명과 국립합창단 54명, 소프라노, 테너, 정가 가객 등 130여 명이 무대를 가득 채워 웅장한 합창을 들려주었다. 1부에서는 이영조 작곡의 ‘시조 칸타타’를 소프라노 이유라, 테너 신상근, 정가 하윤주의 협연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칸타타(cantata)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cantare)에서 유래한 용어로,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기악 반주에 독창·중창·합창이 어우러진 성악곡이다. ‘시조’는 문학이자 음악의 한 갈래로, 조선 시대 유행한 시조에는 당시의 시대적인 정서와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두 장르가 결합한 ‘시조 칸타타’는 이영조가 새롭게 만든 장르로,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태어난 두 성악 장르가 조화를 이루어 각각 고유의 어법을 지닌다. 이영조 작곡가는 "한국 전통음악이라는 우리만의 진솔한 맛을 서양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악곡 형식의 그릇으로 담아낸 곡”이라고 밝혔는데, 그 말처럼 전통적이면서도 서구적인 매력이 함께 존재하는 무대였다. ‘시조 칸타타’는 ‘자연’, ‘사랑’, ‘효’ 세 갈래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무대를 꽉 채운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합창단의 웅장하고 화려한 합창과 합주로 무대가 시작됐다.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균형 있게 나뉜 성부가 자아내는 온전하고 편안한 화성 진행 안에 노래와 연주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관현악 연주는 전통 음악 어법이나 음계가 다양하게 활용되기보다는 서양 음악적 스케일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빠르고 화려한 패시지로 연주되기도 하고, 서정적인 화성 진행이 다양하게 활용되기도 했다. 소프라노의 고음과 대금의 청소리가 함께 연주해 질러낸 부분은 국악기와 합창의 어울림에 대해 고민한 작곡가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음악은 자연 안에 거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경외감이 드는 웅장함을 자아냈고, 이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룬 곡이 솔리스트들의 노래로 불렸다. ‘봄’은 웅장하면서도 힘 있는 3박으로, 한국 가곡 느낌이 나는 합창과 연주로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계면조의 꺾는음을 사용하는 등 전통 어법이 녹아든 한국적 색채가 묻어났고, 합창단의 노래는 레퀴엠(Requiem)이 연상되며 엄숙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 해금과 아쟁, 스트링의 장난스런 활놀음으로 분위기가 밝게 전환되며 소프라노 이유라의 솔로가 얹혔다. 그는 ‘지지배배’ 등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경쾌하고 빠른 패시지로 노래해 성악의 매력을 선보였다. 대금과 소금은 마치 플루트와 피콜로의 음색을 따라 하는 듯한 표현으로 연주했고, 오페라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이 떠오르며 유쾌하면서도 밝은 봄의 따스함이 그려졌다. ‘여름’은 느리고 애절한 느낌 가운데 테너 신상근의 아련한 음색으로 시작됐다. 이 곡은 소리북이 곡을 이끌어가며 장단으로 박을 잡아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느린 시조를 서양 성악으로 노래하는데, 그 위에 소리북 특유의 채편 소리가 얹히니 신선하고 새로운 판소리를 듣는 듯했다. 이어 연주된 첫 번째 ‘가을’은 피리의 서정적이고 전통적인 독주로 시작하여 부드럽고 평온하게 흘러갔고, 그 위에 가객 하윤주가 ‘월정명’으로 시작하는 가사를 얹어 노래하기 시작했다. 정가 특유의 표현이 묻어나며 전통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냈는데, 관현악 또한 흔들고 꺾어내며 힘 있는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바로 이어진 두 번째 ‘가을’은 합창단의 남성들이 유니즌(Unison, 몇 개의 악기 혹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같은 음 혹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일)으로 앞서 불렸던 ‘월정명’의 가사를 받아 노래했다. 그들이 불러내는 선율은 정가의 표현을 그대로 흉내 내 꺾고, 흘리고, 시김새를 활용하여 전통적인 색채를 표현하였다. 서양 음악적인 화성 진행이 사용되고 각 성부마다의 매력을 다르게 주어 노래하니 마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는 것처럼 엄숙하고 신성한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그 선율 진행은 전통 가곡다웠기에 더욱 묘하고 매력적이었다. 지조 있고 절개 있는 대나무를 표현하듯 웅장하고 화려하던 ‘겨울’은 영화음악 같기도, 현대음악 같기도 했다. 오묘하고 독특한 화성 진행은 어디로 튈지 모를 느낌을 주었고, 반음계와 다양한 텐션(Tension, 기본 화성 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비화성음을 쌓는 것)을 활용함으로써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 파트 ‘사랑’은 테너 독창자가 부채를 들고 노래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랑을 비유 대상으로 표현한 이 곡은 춘향가 중 사랑가가 연상되었는데, 테너 음색으로 판소리처럼 노래하니 더욱 색다르고 특이했다. 서양음악적인 음악 진행과 전통 음악 어법의 조화야말로 한국적 칸타타의 가장 큰 매력임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효’의 첫 번째 곡 ‘하늘 땅’은 세 명의 솔리스트(소프라노, 테너, 정가 가객)가 함께 주고받으며 노래했다. ‘효’를 주제로 한 우리 시조 안에서 서로 다른 음악적 표현과 음색이 한데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마지막 곡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셨으니’에서는 부모를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이 합창으로 깊이 드러나, ‘효’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를 예술적이고 평온하게 표현하였다. 2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석학인 이어령 선생이 조감해 온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가사와 음악으로 담아낸 ‘천년의 노래, REBIRTH’를 만날 수 있었다. 2021년 ‘천년의 노래, REBIRTH’에서 위촉 초연된 작품으로, 시대의 지성이었던 이어령 선생의 한국 문화론이 담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한국인의 신화’, ‘뿌리를 찾는 노래’, ‘한국인 이야기’ 등에서 발췌한 내용이 노랫말로 엮여있다. 앞서 1부에서 연주된 ‘시조 칸타타’가 고전적이고 전통적이었다면, ‘REBIRTH’는 조금 더 대중적인 표현이 가미된 느낌이었다. 우효원 작곡가는 이어령 선생의 많은 저서 속에 담긴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이야기와 깊은 성찰의 언어를 총 5개의 악장에 담아냈다. 편종과 오션드럼(Ocean Drum), 목탁, 정종 등의 특수 타악기가 자아내는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 거문고를 시작으로 악기들이 점점 들어오며 발전됐다. 하나의 동일한 리듬 형태의 리프를 반복시키며 커진 음악은 평화로운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이 그려지는 듯했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전통적이고 평온하게 그려냈다. ‘흙, 바람, 눈물’과 ‘MEMENTO MORI’(죽음을 생각하라)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흙, 바람, 눈물’에서 합창단이 가사의 내용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내는 다이내믹은 곡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예를 들어 ‘악운’이나 ‘가난’ 같은 부정적 단어는 강렬하고 세게 질러내다가도, 내 땅이라 다짐한다는 긍정적인 가사는 간절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불러냈다. 감정적인 노래와 연주는 마치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하나의 극을 보는 듯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어령 선생이 자주 강조했던 ‘MEMENTO MORI’는 존 노의 테너 독창으로 함께했다.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다이내믹이 인상적이던 그의 음색은 죽음의 본질과 두려움을 노래하며 모두에게 다양한 생각을 안겨주었다. 성대한 합창으로 희망을 노래한 ‘노래여, 천년의 노래여’는 우리나라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던 이어령 선생의 마음이 가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득한 추억을 그리는 듯 고요한 소아쟁의 음색과 대중적이고 단정한 코드 진행, 풍성한 연주와 음악적 빌드업에 마음이 차올랐다. 음악의 절정에 이르러 타악기 연주자들이 사물놀이를 연상시키는 합주를 하며 우리 민족의 흥을 깨워냈고, 대금의 서정적인 아리랑 선율로 이어지며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의 선율로 구성된 ‘환희의 아리랑, REBIRTH’가 연주되었다. 4중창 성악가들이 합세하여 다 함께 부르는 아리랑이 무대를 감쌌다. 각 성부의 조화가 새로 편곡된 아리랑 선율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노래했고, 모두가 흥겹게 부르는 ‘판’을 만들어냈다. 한국인의 한과 흥을 물씬 느낄 수 있던 무대였다. ‘시조 칸타타’는 ‘자연’과 ‘사랑’, ‘효’를 주제로 합창과 독창, 국악관현악이 어우러지게 구성되었다. ‘천년의 노래, REBIRTH’는 한민족의 삶, 한과 흥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이 두 무대는 과거의 선조들로부터 현재의 우리, 미래의 세대가 살아갈 이 땅에서의 모든 감정과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아리랑 부를 때 너와 나 되네, 쓰리랑 부를 때 우리가 되네’라는 가사처럼, 함께 살아왔고 함께 살아갈 이 땅의 우리가 더욱 지켜나가고 그려나갈 것에 대해, 그리고 국악관현악과 서양 합창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보여준 ‘함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 정서가 살아 숨 쉬는 동시에 서양 고전 형식이 조화롭게 그려나간 이번 무대처럼, 배려하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갈 우리의 삶과 예술을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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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생 60여년,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한상일(1955~)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는 국악에 입문한 지 올해로 60여 년을 맞는다. 때 맞춰 지난 1월 25일 서울문화투데이 신문에서 선정하는 제15회 문화대상에서 국악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국립창극단을 대형화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했으며, 우리 민요 아리랑의 보급에 큰 기여를 해왔으니 만큼 수상은 당연해 보인다. 한 감독을 3월 30일 오전 창덕궁 근처에서 만났다. 창덕궁의 건너편에 있었던 옛 국악학교 터와 창극 연출가 허규(1934~2000) 선생이 운영하던 북촌창우극장에 대한 추억이 아련한 곳이다. 한 감독이 배우고 공연했던 시간들이 켜켜이 밴 공간들이었다. 한감독의 음악 인생은 아버지 한범수(1911~1984) 선생에게서 비롯됐다. 해금과 대금 연주에서 ‘한범수류’를 만든 장인이셨다. Q. ‘한범수류’는 어떤 특색을 가졌나요? A. "진양은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가락을 짰고, 중모리에는 바리에이션을 넣었어요. 대개 산조는 판소리 어법을 많이 차용하는데 선친은 판소리 어법을 배제한 채 기악을 판소리의 아류가 아닌 개성을 갖춘 독자적 영역으로 만들었죠. 독립곡 형태의 양식을 갖는 잘 짜인 산조였어요.” 한 감독은 출생지인 충남 부여에서 옮겨와 서울서 살던 9살 무렵부터 선친에게서 악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적(소금)에 입술을 갖다 대고 ‘빈 병 불 듯이’ 소리를 내는 법부터 배웠다. 맨 처음 부른 곡은 아리랑이었다. 유일하게 알던 곡이었던 까닭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들어보시더니 ‘재능이 있다’ 느끼셨는지 ‘한번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본격적인 교육은 배문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전문 과정이니 만큼 선친은 곡의 음악적 성격과 그에 합당한 표현법에 관한 이론을 먼저 설명하신 후에 연주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이론 먼저 기능 나중’식 교육법이었다. 산조곡은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12주기와 24주기 식 기승전결법을 배웠다. 기자는 연주가 스토리를 가진 채 청중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아버지의 도제식 교육으로 소금과 대금을 사사한 후에 서울국악예고와 추계예술대학에 진학해 피리를 전공했다. 왼손잡이여서 대금 연주는 접었다. 다른 연주자들과 대금 잡는 방향이 거꾸로여서 합주에 지장을 준 때문이었다. 이후 한상일은 작곡의 길에 들어서 중앙대 대학원 작곡 과정 석사를 거쳐 1987년 국립창극단 기악부 초대 지휘자로 임명되면서 창극에 전주곡을 비롯, 간주곡과 엔딩곡 등을 작곡해 기악 연주를 가세한다. 소리꾼과 고수 2인의 무대인 판소리와 달리 창극에는 출연자가 많이 등장하고 다양한 연기가 표출되는 만큼 기악 연주의 역할이 절대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는 이 획기적 시도로 창극의 사이즈를 대형화시키는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여기서 그는 국악관현악단 창단의 필요성에 몰입한다. 서구의 오페라나 발레처럼 노래와 춤에 걸맞은 관현악단의 기악 연주가 더해짐으로써 창극 공연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기왕에는 연주자들이 재량껏 즉흥연주로 채우던 부분을 악보에 근거한 연주로 체계화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95년 1월 1일 마침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됐다. 이 공로로 그는 2000년 국무총리 표창과 200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후 모교인 서울국악예술고(현 국립전통예술고)에서 5년간 교사 생활을 했고, 동국대학교에서 20여 년 간 한국음악을 가르치면서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동국대에서 1년 정도 재직했을 때인 1999년 문화부에서 연락이 왔다. 초대 박범훈 단장에 이어 제2대 국립국악관현악단장으로 일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기관을 창설시킨 주역이었으니 만큼 자연스러운 주문이었다. 동국대 강의가 걸림돌이 됐으나 ‘강의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는 한 교수의 다짐과 설득에 당시 송석구 동국대 총장이 흔쾌히 응해주면서 그는 겸직을 할 수 있었다. 한 단장 재임 시절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그의 창의력 넘치는 작곡과 연주 지휘에 힘입어 창극, 무용 등의 장르와 동반 성장하며 "한국음악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맥’과 ‘강강술래’, ‘대(代)’ 등이 그의 분신들이다. 그는 특히 강강술래의 매력을 잊지 못한다. 진도 아낙들이 힘든 시집살이의 슬픔과 고된 노동의 괴로움을 노랫말과 군무로 씻어내는 놀이문화여서 전국화시켜 국민놀이로 승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애와 한을 해학과 긍정으로 바꾸는 지혜와 의지가 표출되는 놀이인 까닭이다. 강강술래의 다양한 버전을 작사작곡해 각계각층에 전파하고 싶어 한다. 기자 역시 대립과 갈등이 있는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강강술래 놀이가 확산되면 모순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강강술래의 아리랑화(化)’일 터이다. 한상일 감독의 이력 가운데 특이한 부분은 박사 코스였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한 때문이었다. Q. 왜 갑자기 동양철학을 공부하실 생각을 하셨는지요? A."원래는 예악학(禮樂學)을 공부하고 싶어서였어요. 전통음악을 하다 보니 예악의 뿌리와 이론적 배경을 알고 싶었죠” 그러나 기대와 달리 유학대학원에서는 사서삼경을 비롯한 경전 해석만 배웠지 예악에 관해서는 공부할 길이 없었다. 책도 교수진도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는 결국 판소리가 어떻게 체계화됐는지의 과정을 연구해 그걸로 학위를 취득했다. 억지춘양으로 배운 것들이었지만, 경전 공부가 한국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고 깊게 만들어준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소리에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하면서 세계인이 좋아할 만한 소리를 개발하기 위해 전통악기를 개량하는 시도에 힘을 보탰던 것도 그런 영향이었다. 국악의 보전과 계승, 창작 지원 그리고 해외 진출을 돕는 ‘국악진흥법’이 지난해 6월 국회를 통과해 올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국악인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현역의 한상일 감독도 환영을 표한다. Q. ‘국악진흥법’은 국악인들의 오랜 숙원이지요. A.-"네, 국악인들이 오랫동안 바라던 거여서 기대가 큽니다. 우리 국악사에 선을 긋는 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국악의 날’을 제정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길이 간직해 나갔으면, 하는 희망도 피력한다. 일반의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능할 것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Q.국악이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A."국민들로 하여금 국악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여건 조성이 중요합니다. 일본이 학교 졸업식 같은 행사에 반드시 ‘사미센’ 연주를 동반하고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에도 일본 음악을 삽입하는 걸 볼 때마다 부러움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그런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어요” 한 감독은 대중매체가 좀 더 국악 프로그램 편성에 시간을 할애하는 게 큰 힘이 되는 만큼 정책 차원에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피력한다. 아울러 교육 과정에도 국악 악기 연주 코스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한때 베네수엘라의 불우 청소년 계도 프로그램이던 ‘엘 시스테마(El Systema)’를 도입해 청소년 국악기악단을 운영하던 중 지도 교수의 운영비 횡령 사건으로 중단 돼버린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 프로그램의 부활을 기다린다. 기자는 국악진흥책 시행을 계기로 세계로 뻗는 K-pop의 흐름에 K-국악도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우리 가요가 한국음악 전공자들의 가세로 탄력을 받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까닭이다. 세계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와 노래, 춤을 바탕으로 하는 킬러 콘텐츠가 나올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한상일 감독의 아리랑에 대한 관심도 깊다. 생애 첫 피리 연주곡이 아리랑이기도 했지만, 아리랑이 국악의 대중화와 보급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한민족의 정신이라고 여기는 까닭이다. Q.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A."우리 민족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아리랑에 의지해 살아왔습니다. 아리랑을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선교사이던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의 표현처럼 ‘한민족에게 쌀과 같은 필수불가결한 존재’ 혹은 고난 극복의 수단으로 보고 싶은 겁니다” 한상일 감독은 1989년 무렵 (사)아리랑연합회 창립에 일조하며 임원을 맡으면서 아리랑의 보급과 대중화에 이바지해 왔다. 특히 발굴과 보존 및 아리랑의 가치 구현에 관심이 크다. 19세기부터 중앙아시아와 사할린 등지로 내몰린 동포들이 한국을 이루는 요소들 즉, 겨레의 글 한글과 겨레의 민요 아리랑에 의지해 고난의 세월을 견뎌 왔음을 아는 까닭이다. 그들은 낯선 환경에서도 그곳 풍경을 담은 아리랑 노랫말을 우리말로 지어 불렀다. 그들에게 한글과 아리랑은 등대의 불빛처럼 어둠 속에서 앞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범민족 차원에서 북한에 존재하는 아리랑도 수집해 보존할 생각도 펴고 싶어 한다. 한 감독은 아리랑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음원을 제작하는 공헌을 했다. 대표 아리랑을 모아 일류 장인들과 연주했다. 올 6월 대규모의 아리랑축제를 상정해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행사가 성사 된다면 수 천 명의 전국 생활국악인들이 대규모 인간띠를 만들어 대합창을 이뤄내는 순간 대한민국은 용트림을 하며 에너지를 뿜어댈 것이다. 우리 속의 편협과 미움을 떨쳐내는 벅찬 경험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자 한상일 감독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라고 말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가 여생의 계획으로 ‘아리랑 정신의 구현’을 버킷 리스트의 맨 윗부분에 올려놓고 있는 까닭이다. 한 감독은 자기에게도 그 기회가 닿기를 갈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일본이 "일제 강점기에 한국의 아리랑을 가져가 30여곡의 ‘일본판 아리랑’을 작곡했다.”라는 일본 매체의 보도를 접하면서 문화는 창조의 힘만큼이나 보존능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게 된다. 단단히 움켜잡지 않으면 놓치게 마련이다. 한상일 감독의 아리랑 보존과 전승 노력에 절로 박수를 치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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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제' 나래솔 "클래식 새로운 맥락에서 들어보세요"클래식 작곡가 10명의 스타일로 편곡한 생일 축하 노래, 방탄소년단 정국의 노래에 맞춰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는 법, 장난감 피아노 연주로 매긴 작곡가 순위…. 베토벤, 모차르트 등 고전 레퍼토리를 주로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이목을 끄는 이가 있다. 바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크리에이터인 나래솔(33·Nahre Sol)이다. 그는 유튜브에 클래식 음악을 흥미롭고 새로운 시각으로 소개하거나 피아노 연주력을 향상할 수 있는 연습법 등을 담은 콘텐츠들을 올린다. 구독자가 70만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나래솔은 올해 처음으로 통영국제음악제에 참가해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그는 다음 달 6일과 7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오픈 보더스'(Open Borders)를 주제로 공연한다. '열다'(Open)와 '경계'(Borders)라는 상충하는 듯한 개념을 결합한 이번 공연은 그동안 나래솔이 장르를 넘나들며 구축해온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나래솔은 31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새로운 청중과 만나 내 음악을 공유할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공연에서는 바흐의 음악을 재즈, 블루스로 재해석한 '라운드 어바웃 바흐', 아르헨티나 탱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퍼스트 탱고', 피아노와 전자악기를 사용한 여러 가지 양식의 즉흥연주 등을 들려준다. 나래솔은 "저는 경험과 새로운 해석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새로운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며 "오늘날 음악가들이 장르, 문화, 시대를 넘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도록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을 여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통과 혁신의 '혼합'으로 고전과 동시대, 동양과 서양이 만나게 된다"며 "관객들은 서로 섞이지 않은 형태의 음악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나래솔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튜브 콘텐츠에는 클래식 음악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넘쳐난다. 대표적으로 클래식 작곡가 10명의 스타일로 편곡한 생일 축하 노래는 나래솔이 직접 곡을 편곡하고 연주한 콘텐츠다. 바흐 버전은 교회 음악 느낌이 물씬 풍기고, 리스트 버전은 극적인 효과가 돋보이며, 드뷔시 버전은 차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흘러간다. 영상에 대한 반응도 "편곡이 아니라 원래 작곡가들의 곡 같다", "한 학기에 배울 음악 이론을 20분 만에 마쳤다" 등 폭발적이다. 나래솔은 이런 콘텐츠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음악에 대한 저의 사랑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면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기 위한 아이디어들"이라며 "사람들에게 친숙한 선율과 오늘날의 주제를 활용해 (클래식 음악과의) 유사성이나 다채로움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콘텐츠들이 주목받으면서 나래솔은 지난해 6월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공연장 엘프 필하모니의 '상주 크리에이터'로 위촉됐다. 클래식 공연장이 작곡가, 연주자들을 상주 음악가로 두는 일은 흔하지만, '상주 크리에이터'는 클래식계에서는 낯선 영역이다. 나래솔은 상주 크리에이터가 된 데 대해 "지금까지 제가 해온 새로운 방식의 공연, 교육, 연주를 인정받는 느낌이었다"며 "굉장히 신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겸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상주 크리에이터는 '음악 작업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허무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음악과 예술이 살아있고, 진화하는 형태라고 믿어요. 과거의 풍부한 전통을 흡수하면서 현재의 혁신과 문화의 교류로 형태를 잡아가죠. 저는 저 자신을 그 연속체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가능성에서 영감을 받습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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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주자 시리즈 ‘국악관현악-공존(共存)’[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2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2024 명연주자 시리즈 ‘공존(共存)’ 무대가 펼쳐졌다. ‘명연주자 시리즈’는 동시대 최정상의 연주자들을 조명하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대표 레퍼토리 공연으로, 2022년부터 시작되었다. 올해 3회차에 접어든 명연주자 시리즈는 ‘공존(共存)’을 주제로 하여 동서양의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주제가 함께 했다. 올해 선정된 명연주자는 이지영(가야금/서울대학교 교수), 양성원(첼로/연세대학교 교수), 이나래(대금/서울시국악관현악단 수석) 총 세 명이었으며, 지휘는 앙상블 밴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상욱이 맡았다. 첼리스트 양성원이 협연한 ‘첼로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미제레레(Miserere)’로 무대가 열렸다. 양성원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와 제 4대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첼리스트이다. 그는 쾌자를 연상케 하는 퓨전 정장을 입고 들어와 연주를 시작했다. 발현악기들의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어 음을 내는 방법)를 발판 삼아 첼로의 부드럽고 서정적이면서도 힘 있는 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미제레레(Miserere)’란 아름답고 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종교적인 단선율 성가이다. 이번에 연주된 김성기 작곡가의 ‘미제레레(Miserere)’는 라틴어 ‘미제레레(Miserere)’의 억양을 이용한 주제를 바탕으로 그의 사상과 감정을 담았다고 한다. 본래 성가곡은 반복적이며 단순하게 진행되는데, 그와 같이 이 곡에서도 ‘F, Ab, G, Eb’으로 구성된 네 개의 음과 동일한 형태의 리듬이 첼로 독주와 관현악 반주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그 테마를 가지고 변형, 발전됐다. 첼로는 격정적이고 열정적으로 활을 긋다가도, 여리고 부드러운 소리로 간절한 감정을 노래했다. 관현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로 활용되었는데, 마이너하고 엄숙한 느낌을 주었다. 양성원 연주자가 연주하는 첼로 연주에는 강한 카리스마가 존재했다. 중후하고 우직한 저음으로 시작해 화려하고 힘 있게 달려가는 다이내믹한 연주에는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특별함이 존재했고, 자유로우나 어딘가 종속되어 있는듯한 종교적인 느낌이 과하지 않은 진지함과 웅장함을 선보였다. 안현정 작곡가의 ‘대금 폴로네이즈를 위한 A Beautiful Life’는 17세기 폴란드의 춤곡 ‘폴로네즈’를 바탕으로 한 대금 협주곡이다. 새소리와 오션드럼(Ocean Drum)이 내는 파도 소리가 어우러지며 자연 친화적인 무대가 열렸고, 그 위에 대금 연주자 이나래가 대금으로 만들어 낸 바람 소리가 얹어졌다. 관현악은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으로 하나둘 점점 커지며 웅장하게 음악을 열어냈다. 이 곡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고픈 마음을 담아냈다. 어떤 부분은 밝고 긍정적으로 표현된 반면, 어떤 부분은 마이너한 진행에 반음과 계면조의 꺾는음을 활용하며 비장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카덴차(Cadenza, 악곡이 끝나기 직전에 독주자나 독창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며 화려한 부분)에서 이나래는 농음을 과하게 떨어주거나,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으로 연주하기도, 화려하고 빠른 패시지를 깔끔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독주 부분이 끝난 후에는 곡의 초입에 나왔던 새소리 효과와 함께 화려하고 유쾌한 폴로네즈 리듬이 밀고 당기는 리듬으로 반복되었다. 관현악과 독주 대금은 화려하고 웅장하게 곡을 끌어 나갔고, 반음 음계가 반복되며 긴장감을 주다가도 풀어지며 생동감 넘치게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세 번째 무대는 이지영 명인의 가야금 협연 무대로,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가 김만석이 새롭게 편곡한 ‘서공철류 가야금산조 협주곡 - 心授(심수)’가 초연되었다. 이지영 명인은 곡의 초입, 다스름 연주를 통해 꿋꿋하고 장중하며, 호방하고 힘 있는 터치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굴려 내는 시김새나 진하게 떨어내는 농현을 통해 그의 음악적 깊이를 도드라지게 나타내었다. 가야금 산조가 장단 순서대로 진행되는 동안, 관현악은 악기군별로 번갈아 가며 가야금 가락을 유니즌(Unison, 몇 개의 악기 혹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같은 음 혹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일)으로 연주하거나, 대선율(어떤 선율 성부에 대위(對位)하는 다른 성부)로 받아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장단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이지영 명인의 섬세하고 유려하며, 힘 있는 연주는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휘모리장단에서 그가 보여준 깔끔함과 다이내믹한 조화로운 연주는 큰 감동을 전해주었다. 관현악 반주는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코드나 베이스 하행 진행 등을 활용하여 화성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음악적으로 풍성함을 만들어 낸 것은 좋았으나, 관현악에 모든 소리가 집중되다 보니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가야금 산조의 민속적인 색채가 묻히고 돋보이지 못하기도 해 아쉬움이 남았다. 관현악과 독주 악기 간 조화로움을 꾀어 균형 있게 만들어 냈다면 더욱 민속적이며 신선한 무대가 되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연주력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던 관현악곡 ‘메나리 토리에 의한 국악관현악- 감정의 집’이 연주되었다. 최지혜 작곡가의 작품 ‘감정의 집’은 한국의 크고 작은 강이 갖는 생명력과 정화의 이미지를 서사적으로 펼쳐낸 곡이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대표 국악관현악 곡이기에 더욱 기대하는 마음으로 관람하였다. 무대는 ‘라솔미-’하고 흘러내리는 메나리토리의 대표 어법을 모든 악기가 함께 연주하며 웅장하게 열렸다. 이 곡은 악기군별로 갖고 있는 특징과 매력을 잘 드러내고, 음악의 기승전결과 구성이 뚜렷하여 완성도가 높았다. 악기 단독으로 연주하기도 하고, 두세 종류의 악기가 하나의 군으로 묶여 균형 있는 조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곡은 크게 두 악장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빠른 패시지에 오묘하고 익살스러운 테마 악장은 ‘3+3+2’ 소박이나 장단을 중심에 두고, 거문고와 아쟁이 저음부에서 반음이 반복되는 리프를 연주했다. 그리고 그 위에 악기들이 번갈아 가며 주제 테마를 연주하고 점점 발전돼 갔다. 악기 고유의 특징적인 음색이 도드라졌고, 농현이나 농음, 시김새 등이 짙게 표현되어 전통적이며 예술적인 느낌을 주었다. 생황과 소금이 중심이 되어 연주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또 다른 악장은 마치 영화음악 같았다. 대피리 등 저음 악기가 다양하게 활용되며 음향적으로 풍성했고, 화성적으로 대중적인 코드 진행이 사용된 동시에 선율은 메나리토리 어법과 시김새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현대적이고 전통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꽃밭에서 뛰어노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지며 모두를 추억에 젖게 만든, 아름다운 무대였다. 동서양의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주제가 함께한 이번 공연에서는, 동시대 최정상의 음악가들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조화로운 연주와 함께 음악적 몰입감을 느껴볼 수 있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보여 줄 다음 명연주자 시리즈를 기대하며, 국악관현악의 발전을 더욱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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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 ‘두아-유월의 눈’[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2일부터 22일, 국립정동극장은 대표 기획공연 사업 ’창작ing’의 두 번째 작품, 소리극 ‘두아:유월의 눈’을 무대에 올렸다. ‘두아:유월의 눈’은 13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고전인 관한경의 『두아원』을 판소리의 상상력과 연극의 놀이성을 결합하여 소리극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채노파에게 맡겨진 주인공 ‘두아’가 겪는 삶과 운명,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국악 뮤지컬, 낭독극, 라디오드라마 등 전통예술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창작물들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판소리 단체 ‘타루’가 개발했고, 서정완 연출이 연출을, 김한솔 작가가 각색으로 참여했다. ‘두아:유월의 눈’은 2022년 영등포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이번에 2024년 국립정동극장 세실에 다시 오르며, 무대와 음악은 다양하게 변화했다. 소리꾼들이 유랑극단의 광대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의 개성을 더욱 강조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무대디자인의 구성 변화가 있었고, 작곡가 손다혜가 이번 공연부터 새롭게 합류하며 기존 3명의 연주자가 4명으로 늘어나 풍성한 연주를 선보였다. 무대는 아치형으로 둥그렇게 만들어져, 그 안에는 커다란 둥근 달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무대 중앙 뒤편에 놓여있었다. 음악 반주를 맡은 악사들은 양옆으로 나뉘어 자리했고, ‘타루극장’이라는 푯말을 걸어둠으로써 이 무대가 연극판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이윽고 공연을 끌어 나갈 소리꾼들이 각자 북과 소고, 징 등 타악기를 들고 무대로 나와 악기를 치며 공연이 어떻게 펼쳐질지 비나리 형태로 노래했다. 비나리 장단 안에서 한 명이 소리하면 뒤에서 타악기 반주로 받아주는 방식을 사용했고, 그 후 한 명씩 각자가 맡은 역할을 소개하는 주제 노래를 부르며 경쾌하게 무대를 열었다. 그리고 신명 나는 노래가 끝나는 동시에, 악기가 그 끝을 물고 들어가 서정적이고 으슥한 분위기로 본격적인 무대를 열었다. 배우들은 유랑극단원들로, 각각 배역을 맡아 공연하는 컨셉으로 무대가 진행되었다. 그들은 본인 파트를 연기할 때가 아니면 원형 무대에 둘러앉아 다른 배우들이 소리하고 연기하는 걸 보고, 추임새를 하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무대를 둘러싸 악단과 배우들이 둘러싸도록 배치한 건 굿판을 따라 한 방식이라고 한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들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동료 배우의 연기와 소리를 응원해 주고, 공감하며 집중했다. 그 장면은 마치 소리판에 민중들이 둥그렇게 모여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흥과 한을 공유하는 정겨운 모습처럼 그려졌다. 비록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무대를 끌어가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6월, 두아가 억울하게 형장으로 끌려가는 내용으로 막이 열렸다. 결말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이 이야기가 결국 비극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어두운 내용이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유쾌하고 쉽게 그려져 나갔다. 연극배우들이 연기 하는 설정이라 그런지 빠른 전개로 진행되고 늘어지지 않아 집중력 있게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감상 포인트 중 하나는, 각 배우들이 맡은 역할의 독특한 특징이 도드라졌던 것이다. 다리 한 쪽이 불편한 채노파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과장된 몸짓으로 걸어 다녔고, 욕심 많고 아들에게 꼼짝 못 하는 장려아 아비는 과하게 높고 얇은 음색의 뒤집어지는 목소리를 내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어린이극을 자주 올리는 타루답게, 보고 듣는 연극적 요소에 신경 써 남녀노소 모두가 편안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게끔 하였다. 무대의 연출 기법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였다. 두아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유월에 눈이 내리는 장면은 부채로 눈꽃을 날리듯 표현하였고, 그 눈을 빗자루로 쓸어 치웠다. 죽음으로 향하는 자들은 모두 무대 뒤 달처럼 동그란 조형물이 빨갛게 변할 때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풍성한 완전한 ‘극’이었다. 원작 작가 관한경은 『두아원』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억울한 처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두아를 그 누구도 도와주거나 편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각색을 맡은 김한솔은, 두아가 너무나 가여워 두아에게 단 한 명이라도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을 주고자 채노파 캐릭터를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가져왔다고 한다. 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 어떤 가족보다도 끈끈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두아는 채노파가 고문받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거짓을 고해 죽었고, 채노파는 두아가 죽은 뒤 하루도 빠짐없이 제사를 지내주며 그리워한다. 이렇게 누군가가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지켜주고 울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는 걸 그려낸 따스한 연출이었다. 이 공연은 소리극인 만큼, 연기와 함께 ‘소리’로 이루어진 장면이 많았다. ‘타루’는 공동 작창을 통해 소리꾼들과 함께 극본을 분석하고, 작품 속 소리의 흐름을 논의해 나간다. 이들이 만들어 낸 창작 소리는 일반적으로 불리는 다른 작창 기법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기존 판소리가 지니고 있는 고정적인 길에 가사를 붙이는 형식으로 만들기보다, 가사 전달에 더 큰 의미를 두어 작창하였다.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는 데에 힘을 쏟았고, 그러다 보니 노래하듯, 혹은 시를 읊듯 소리를 하여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극적이었다. 타루가 만들어 낸 소리에는, 독자적이고 독특한 흐름과 색채가 확실하게 존재했고, 그 소리의 이면을 통해 다양한 생각거리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단은 소리꾼들이 노는 ‘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악기들은 대부분 장단에 맞추어 음악을 진행해 나갔다. 엇박으로 이루어진 긴 프레이즈의 굿 장단에 맞추어 피아노와 기타가 리듬꼴을 연주한 부분은 우리 장단을 다양하게 표현하고자 한 음악적 연출이 도드라졌다. 피아노와 기타는 적재적소의 장면에 등장해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장려아가 음식에 독을 타는 장면에서는 피아노가 마이너(Minor)한 화성으로 스타카토(staccato, 음을 하나하나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연주법)를 활용해 장난스러우면서도 기묘하고 음산한 느낌을 주었고, 두아와 채노파가 슬픈 마음으로 함께 노래할 때는 피아노와 기타가 서정적인 선율을 연주해 감정적으로 몰입하게끔 해 주었다. 그 외에도 두아가 억울하게 곤장 맞는 장면은 악기 ‘박’으로 표현한다거나, 도올이 등장할 때는 ‘나발’을 불고, 두아의 죽음 이후 두천장이 부임해 오는 장면은 ‘나발’을 부는 등 특수 국악기를 다양하게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두천장은 두아가 죽어서야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억울함을 하늘에 얘기하는 것이 두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지만, 무대에서는 결국 두천장이 두아를 도와 그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원작 『두아원』이 쓰인 지 900년이 지난 지금,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세상에는 부조리함과 슬픔이 만연하다. 역사는 돌고 돌며,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은 끊이지 않는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두아를 위해 손 내밀 수 있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 소리꾼은 공연의 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뒤 이야기 뉘 알소냐. 이 세상에선 다른 결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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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열의 ‘피아노 춘향(春香)’[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15일과 16일 이틀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고영열의 피아노 병창 ‘춘향(春香)’ 무대가 열렸다. ‘피아노 치는 소리꾼’이라는 타이틀로 유명한 고영열은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하여 ‘피아노 병창’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클래식, 팝, 재즈, 월드 뮤직 등의 여러 장르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국악의 다양성과 대중성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JTBC ‘팬텀싱어 3’에서 ‘라비던스’의 멤버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대중들의 인지도를 높였으며, 이후 국내외 유수한 국공립 단체와의 다양한 협연 무대, KBS ‘불후의 명곡’, ‘열린음악회’, MBC ‘복면가왕’ 등에 출연하며 국악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3월 21일, 앨범 ‘춘향(春香)’이 발매 될 예정이다. 고영열은 이 앨범에 대해 "피아노와 목소리를 동시녹음하며 제 혼과 춘향과 몽룡의 혼이 담겨있는 앨범”이라고 밝혔다. 또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제가 생각한 가장 의미 있고, 멋있는, 많이 알았으면 하는 대목들로 구성해 보았다’고 전했다. 앨범명과 동일한 이번 공연 ‘춘향(春香)’은 춘향가의 눈대목(판소리의 중요한 대목)을 한데 모은 앨범으로, 고영열이 선정하고 새롭게 재해석해 구성하였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춘향가를 직접 편곡해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했으며, 80개가 넘는 춘향가 대목 중 대중적으로 그리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대목의 선율과 가사에 특히 집중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따뜻한 봄 날씨가 싱그러운 주말, 남산국악당에는 많은 관객이 자리했다. 무대에는 피아노 한 대가 우직하게 덩그러니 서 소리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고영열이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본인이 피아노 병창을 하게 된 계기와, 이번 공연, 그리고 춘향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후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법을 함께 익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북을 치며 소리를 공부해 나갔다고 한다. 더불어 피아노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얹는 작업을 하여, 자연스레 장단과 화성의 조화 가운데 소리를 연주하는 피아노 병창 소리꾼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이번 공연에서 노래에서 그림이 보여지는 판소리 ‘이면’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가 해석하고 그가 그려내는 춘향가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관람하였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함께 무대가 밝혀지고, 고영열의 목소리로 방자와 몽룡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그의 아니리는 일반 판소리 아니리와는 사뭇 달랐다. 마치 시를 읊는 듯 차분하고 잔잔하게 소리의 배경을 전하고, 이야기하며 따스한 감상을 끌어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피아노 선율은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따스한 봄 같았다. 아련한 옛사랑의 추억을 그리는 듯한 그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약 70분간 고영열은 쉬지 않고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했다. 그의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가사와 피아노의 조화로움, 그리고 집중도 높은 연기였다. 두 번째로 불린 ‘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은 낭만적이고 대중적인 피아노 코드와 선율이 덧입혀져 그 아름다운 가사가 더욱 도드라졌다. 하얗고 붉은 꽃이 만발하게 피었다는 뜻의 ‘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은 춘향이 그네 타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상되었다. 또 몽룡이 춘향이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순간이 따스하고 사랑스런 피아노와 고영열의 음색으로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였다. 특히 ‘백백홍홍난만중’ 후렴구를 반복할 때에 반복적인 피아노 패턴을 다이나믹하게 변화 주어 연주함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그의 음악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곡 중 하나인 ‘사랑가’가 불렸다. 3박으로 구성된 왈츠 패턴으로 피아노가 발랄하게 연주되고, 그 위에 고영열의 고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봄의 왈츠가 연상되듯 리듬을 타다가도, 풍성한 피아노와 질러내는 소리의 반복에 집중력이 더해졌다. 특히 고영열 특유의 낮고 발라드틱한 목소리는 음악에 흠뻑 빠지게 해 주었다. 그는 사랑가를 부를 때 노래 속의 감성을 더 잘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감성은 그의 연극적 연기가 잘 덧입혀져 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그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냈고, 피아노 코드 진행과 노래의 기승전결을 달리 줌으로써 풍성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다. 고영열은 피아노 반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앞서 경쾌하고 따스하던 사랑가가 끝난 후에 불린 ‘이별가’는 슬프고 아린 느낌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몽룡이가 떠나는 장면, 춘향이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라며 질러내는 부분은 그가 표현하는 슬픔의 감정이 마음 깊이 전해졌다. 이어 춘향이가 구슬프게 우는 부분은 소리의 전통적 어법을 활용한 구음으로 질러내 슬픔을 구사해 냈다. 이 때 왼손은 피아노의 패턴을 연주하고, 오른손은 연기하듯 뻗어냈는데, 마치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다. 원래는 빠르고 경쾌한 장단으로 불리는 ‘돈타령’은 서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으로 편곡되어 고영열의 새로운 해석 기법이 돋보였고, ‘쑥대머리’는 하행하는 코드 진행을 통해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피아노 연주 구성이 비슷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3박 왈츠 진행과 보이싱(피아노 연주에서 코드의 구성음을 배치하는 방법)은 거의 동일하여 뒤로 갈수록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았고, 같은 선율에 가사만 달리 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색다른 진행을 꾀한 곡도 있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대부분 뉴에이지 느낌의 서정성을 토대로 연주되었는데, 어떤 곡들은 재즈나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마이너(Minor)코드 진행에 이국적인 그루브를 겸하여 창의적인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또한 모두 거의 동일한 분위기나 패턴으로 이루어졌고, 장단 요소나 전통 음악적 어법이 피아노에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더 다양한 패턴이나 새로운 화성/리듬적 요소가 가미된다면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무대보다 더 확장된 그만의 독보적인 음악이 되리라 생각한다. 소리꾼 고영열은 2020년 월간객석 인터뷰를 통해 ‘뿌리가 흔들리면 그 어떤 음악도 다양하게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도 계속 전통적인 판소리를 연구하고 연습한다’고 전했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들으며 그 모든 게 본인의 자양분이 된다고 밝힌 그의 이번 ‘춘향(春香)’ 공연은, 한 폭의 그림 속 동화 같은 춘향과 몽룡을 마주하듯 꿈결 같고 아름다웠다. 이 시대의 감성이 덧입혀져 새롭게 해석된 고영열의 춘향과 더불어, 앞으로 그가 새롭게 만들어 갈 우리 음악이 어떤 빛을 발하며 감동을 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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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의외의 원류? ‘일본아리랑’에 놀라한국을 대표하는 음곡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노래다. 각종 스포츠 대회나 정상회담 만찬회 등 공식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연주되어 국가에 준하는 음곡으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아리랑'에는 각지에서 노래를 이어온 순민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가요가 있지만, 잘 알려진 것은 후자다. 행사 때 연주하는 것도 다 이쪽이다. 대중가요로써의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히트 영화 '아리랑' (나운규 감독·주연)의 주제가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이후 한일 양측에서 편곡하거나 가사를 바꾸거나 해서 많이 제작되었다. 가사에 있는 "나를 버리고 가실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이별과 모정은 한일 양측의 정서에 딱 맞아떨어져서 사랑받았다. 이 아리랑을 둘러싸고 얼마 전 서울에서 세미나가 있어 뜻밖의 사실을 마주했다. 영화‘아리랑’으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전쟁 전·후를 통해 ‘아리랑’의 이름이 붙은 노래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제작 발매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국 연구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판매된 관련 레코드는 300종 이상이며 그중 일본인이 일본어로 부른 것은 200종에 달해, 한국의 4~5배나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32년에 고가 마사오 편곡으로 아와야 노리코의 ‘아리랑의 노래’가 나왔고, 그 외에도 ‘아리링고우타(小唄)’, ‘도도이쓰(都々逸)아리랑’, ‘아리랑자장가’ 등 각종 ‘아리랑’이 나왔으며, 당시 신문은 도쿄 번화가에서 아리랑 노래가 나오고 있다고 ‘아리랑붐’을 전할 정도였다. 이는 종전 후에도 이어져 스가와라 쓰즈코에게는 6종류나 되는 ‘아리랑’이 있으며, 고마도리 자매의 ‘아리랑부두’를 비롯해 미야코 하루미, 니시다 사치코, 미야기 마리코, 아이조지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가수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이것은 이제 ‘일본아리랑’이다”라고 놀라움을 자아냈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조선)에 대해 오래전부터 차별이나 편견,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좋은 것은 좋다’고 평가하며 선호해 온 것이다. 한류붐이나 K팝도 놀랄 일이 아니다. 동시에 일본은 옛날부터 문화적 수용성이 높은 사회였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산케이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객원 논설위원, 2024/2/12 =한류 의외의 원류? ‘일본아리랑’에 놀라-번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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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이 있다’: 소리극 ‘체공녀 강주룡’[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소리극 '체공녀 강주룡'이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체공녀 강주룡’은 제2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박서련 작가의 장편소설을 판소리로 각색한 공연으로, 고공농성을 이끈 노동운동가 강주룡의 이야기를 여덟 명의 소리꾼이 그려냈다. 이 공연은 지난해 초연 이후 1년 만에 재공연되었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창작 활동을 하며 시대와 삶을 노래하는 전통공연예술단체이다.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한 노동 환경에 대해 조명해 온 그들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을 바닥소리의 언어로 풀어내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체공녀(滯空女)’라는 말은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을 가리키는 말로 당시 신문·잡지에서 두루 쓰였다. 강주룡은 독립운동하던 남편을 여의고 고무공장 여공으로 일하다가, 임금이 삭감되자 파업을 주도하며 맞선 여성 노동운동가다. 해방을 외치던 중 일제 경찰의 간섭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강주룡은, 1931년 광목을 찢어 만든 줄을 타고 12m 높이 을밀대로 올라가 ‘여성해방’과 ‘노동해방’을 외쳐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공연은 강주룡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창작 판소리로 그려냈다. 창작집단 LAS의 대표 연출가 이기쁨이 지난해에 이어 연출을 맡았고, 김봉순 안무가가 안무를 담당했다. 음악은 김승진 음악감독이 참여했는데, 건반과 기타,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등 서양악기를 주로 활용하였다. 국악기 연주자로는 북과 장구 등 타악기를 담당하는 고수가 유일했다. 무대에는 가운데 중심축을 기준으로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고, 둥그렇게 이동시킬 수 있는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좌측 편에는 악사들이 자리했다. 무대가 열리고, 강주룡 역을 맡은 강나현 소리꾼이 나와 인사한 후 또 다른 강주룡들을 무대로 불러들였다. 이 공연의 독특했던 점은, 강주룡이 여러 명으로, 일인다역을 맡아 연출됐다는 것이다. 소리꾼들은 강주룡이 되었다가, 주변인이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냈다. 다섯 살 어린 남편에게 시집가는 스무 살 강주룡을 기점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인생이 조명되었다. 모든 삶을 다 살아온 마지막 강주룡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을밀대에 올라앉아 1막의 강주룡, 2막의 강주룡, 3막의 강주룡이 겪는 서로 다른 일련의 사건과 감정을 지켜보았다. 여러 나이와 여러 모습의 강주룡이 시간과 때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표현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에서는 강주룡이 한 사람으로 표현되었지만, 공연에서는 극이라는 특성상 더욱 상상력이 가미되어 새롭고 신선한 방법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더욱 깊이 있고 색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 것에서 아주 큰 것이 난다. 난다. 난다. 날아오른다.” 모든 소리꾼이 함께 합창하는 서막으로 무대가 열렸다. 크게 여겨지지 않던 여성 강주룡이 결국 한 마리의 용처럼 차올라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암시한 힘찬 노래였다. 악기는 풀 세션(Full Session)으로 다 함께 합주했다. 타악기를 제외한 모든 악기는 서양악기였지만, 굿거리장단이 중심이 되어 강세를 표현하고, 힘차고 경쾌하면서도 우직한 분위기를 조성해 냈다. 공연은 시간의 흐름으로 빠르게 전개되었다. 이 무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무대장치였다. 강주룡이 겪는 일련의 사건이 하나하나 지나가고, 장면이 바뀌면서 중앙에 놓여있는 구조물은 배우들에 의해 시계방향으로 반복해서 돌아갔다. 이 장치는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살아온 강주룡의 삶의 궤적을 모티브로 하여 상징화하였다고 한다. 다섯 살 어린 신랑을 맞고, 남편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독립군 임시기지에서 생활하던 젊은 강주룡의 시절을 그린 1막에는, 아련하지만 밝고 사랑이 가득한, 그리고 힘이 있던 그의 청춘이 묻어있었다. 사랑을 지키고자 노력하면서도, 또한 독립군으로서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드는 그의 용기는 훗날 그가 을밀대 위에서 보여 줄 용기와 맞닿아 있었다. 1막은 강주룡이 남편 뜻에 따라 독립군을 떠나며 끝이 난다. 그들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강주룡은 본인이 느끼는 슬픈 감정을 모두 쏟아 내는데,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던 을밀대 위 나중의 강주룡이 ‘너, 그렇게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럴 걸 생각만 했지’라고 정정한다. 그러자 젊은 강주룡은, ‘아, 그랬던가’하고는 할 말을 삼킨 채 남편을 떠난다. 결국 평생을 후회하고 힘들어하게 된 그의 잊지 못할 절절한 슬픔은 아마 많은 이들 또한 겪어 보았을 순간이리라. 그 가슴 아픈 사연은 관객 모두를 눈물짓게 했고, 과거의 강주룡과 현재의 강주룡이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은 그 어떤 연출보다도 깊이 와 닿았다. 2막은 독립군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잃고, 억울하게 구치소에 갇힌 강주룡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정종 소리와 장구의 동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말하듯 슬픔의 감정을 노래하는 판소리적 연출이 훌륭했다. 강주룡은 구치소에서 나온 후 홀로 평양으로 가 평원 고무공장에 취직한다. 공장에서 그는 동무들을 만들고, 언젠가 모던걸(modern girl)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즐겁게 살아가고자 한다. 극은 전체적으로 슬픔과 안타까운 요소로 많이 진행되었으나, 그 안에 유쾌함과 재미를 유발하는 대사, 노래, 음악 효과 또한 지속해서 드러내 지루하지 않은 무대를 꾸려나갔다. 특히 음악의 경우, 앞선 서곡에서 그러했듯 계속해서 장단을 중심으로 연주되었는데, 기타의 스트로크(Stroke, 기타 줄 전체를 아래 혹은 위로 치는 것)기법으로 장단의 강세를 표현하거나, 5박으로 이루어진 엇모리장단을 활용하는 등 전통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다. 바이올린은 피치카토(Pizzicato, 연주 시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서 발현악기처럼 연주하는 방법)로 가야금 음색을 흉내 내 한국적인 느낌의 경쾌함을 주기도 했다. 또 판소리 선율을 따라 연주하거나 다양한 시김새를 표현해,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음색과 전통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지게끔 하였다. 강주룡은 공장에서 일하며 비인간적인 대우와 폭력에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파업단의 연설을 듣는다. 이때 강주룡은 ‘동지’라는 단어에 뜨겁게 반응하는데, 이전에 독립운동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속해있는 공동체의 더 나은 날을 위해 강주룡은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3막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불꽃처럼 운동에 앞장서는 세 번째 강주룡은 이전의 강주룡보다도 더욱 힘이 넘치고, 물러섬 없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는 기본권과 인권을 지켜내는 것과, 모두가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그의 확고한 투쟁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다 함께 팔짱을 끼고 함께 연대하며 나아갔다. 계속해서 넘어지고, 또 고꾸라지더라도 그들은 다시 일어났다. 물론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도, 걱정도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용기 있게 결단하며 나아갔다. 소리북 한 대의 단순하지만 힘 있는 반주와 함께 큰 소리로 외치며 노래하는 소리꾼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강주룡은 을밀대에 올라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무대는 그의 사망에서 시간을 거꾸로 되감아 을밀대에 올라앉은 강주룡을 그려냈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주체적인 여성 강주룡은, 불공평하고 참담한 이 세상에 우직하게 맞섰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90여 년 전 강주룡이 처했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누군가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린 아직도 불평등과 소외,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대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수많은 강주룡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계속해서 꿈꾸며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