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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희 명창 최경만 명인, 2월 파낙벵가페스티벌 초청무대 오른다국가무형문화재 이춘희 명창이 단장으로 가는 전통공연단이 필리핀의 대표적인 축제에서 초청공연을 펼친다.전통공연 기획단체 부지화예술단(단장 황진경)은 오는 2월 한 달간 필리핀 바기오시에서 개최되는 ‘파낙벵가 페스티벌(panagbenga Festival) 2024’에서 한국 국악팀이 단독 초청공연을 펼친다고 23일 밝혔다. 파낙벵가 페스티벌은 1990년 필리핀 바기오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1995년 2월 시작된 ‘꽃의 축제’다. 도시 전체를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하고 각종 퍼레이드와 이벤트를 연다.이번 공연에서는 이춘희 명창을 비롯해 최경만 피리 명인, 민요 제자들인 김명순·정명주·유명숙.김인숙.박영애, 모던타악그룹 ‘표선아소나타’ 등이 무대에 오른다. 전통 타악을 K팝이나 클래식, 영화음악 등과 현대적으로 결합하는 ‘표선아소나타’(단장표선아)는 현지인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타악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있다.주최측은 "전통민요와 모던 타악 공연이 함께 어우러질 콜라보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인 ‘한’과 ‘신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무대를 꾸민다"고 전했다. 부지화예술단 측은 축제 기간 거리 퍼레이드에서도 공연을 펼치며, 현지 TV 방송에 생중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바기오섬은 1938년 김산의 구술생애사가 담긴 헬렌 포스터의 "아리랑'(Song of Ariran)이 집필되어 나온 역사적 장소이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감시를 피해 출판을 위해 잠시 머물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아리랑이 불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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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이 '구례 동편소리축제' 모인다.'구례 동편소리축제'가 오는 13일부터 사흘간 전남 구례 서시천 체육공원과 구례5일시장 일대에서 열린다. 소리꾼과 고수들의 등용문인 제27회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도 같은 기간에 열린다. 축제 첫째 날인 13일 오전 10시 구례5일시장에서는 제이아이 예술단의 줄타기, 길놀이 등 전통 놀이 한마당과 송다민 환술 극단의 환희, 박정욱 명창의 배뱅이굿, 김관희 파이어 앨범 공연 등 거리예술공연이 펼쳐진다. 저녁 7시에는 서시천 체육공원 특설무대에서 한국해금앙상블의 ‘생명과 평화의 노래’ 개막제가 열린다. 특히 올해 개막제에서는 장문희 명창과 이난초 명창 등의 공연과, 최예림, 한예종 안덕기 무용단 알티밋, 월드뮤직 그룹 공명의 현대예술을 접목한 공연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둘째 날인 14일에는 오후 4시부터 박정선, 강민지, 양혜인의 동편제 판소리와 구례전국가야금경연대회 수상자들의 무대, 구례 출신 스타 소리꾼인 김산옥의 소리 등 '구례의 소리'> 공연이 펼쳐지고, 국악 인재들의 등용문이 되는 '제27회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 예선전이 섬진아트홀, 구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저녁 7시에는 '젊은국악인 & 명인명창전'이 서시천 체육공원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관람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인 최잔디․김수연 명창의 공연과 함께 열정적인 젊은 피리의 연주자 앙상블 후요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으며, 사물놀이 밴드 누모리, 노름마치, 전주판소리합창단의 관객과 하나 되는 화합의 무대를 즐길 수 있다. 최잔디·김수연 명창과 사물놀이밴드 누모리·노름마치·전주판소리합창단 등이 함께하는 '젊은 국악인 & 명인명창전'도 볼 수 있다. 마지막 날에는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 본선과 시상식이 열린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10일 "구례의 역사와 자원을 활용해 동편제의 전통을 되새기고 지역이 하나로 단합할 수 있는 소리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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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근대 전반기 대구지역춤의 전승 인맥(人脈) 고찰Ⅰ. 대구지역춤의 생태문화적 환경 대구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남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더위는 심하고 기간도 길고 봄이 짧으면서 계절의 변화가 급속한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영남북부의 교통,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다.또한 대구인들은 뛰어난 적응력과 강안한 개척정신, 의리와 결단력을 매우 중시하여 든든한 느낌이 든다. 배타적이고 무뚝뚝한 점도 있지만 애교있는 여성도 많고, 대도시라 그런지 덜 폐쇄적이고, 전통적으로 보수성과 선비정신이 높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리와 기후환경적으로 대구지역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분지기후(盆地氣候)를 이루고 있어 분지 내부의 복사열 등의 더운 기온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여 대체로 비가 적고 매우 건조하며,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덜 추운 지역이다.또한 역사문화적으로 넓게는 신라문화권에 속하며, 행정적으로는 영남북부문화권, 민속적으로는 백중문화권(단오 추석문화권), 내륙문화권이라는 광역적 성향도 기저에 깔려 있다. 따라서 대구지역만의 독특한 춤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미시적으로는 대구지역춤이며, 광역적으로는 영남춤의 성향을 지니고 있으면서, 거시적으로 한국춤계의 중요한 춤문화권과 영향력으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대시기 6.25한국동란으로 일시적이나마 대구에 중앙국립극장이 옮겨지면서 수많은 예술인과 무용들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대구에서 펼쳐지는 세계안무페스티벌과 안무학술포럼을 통해 대구지역춤의 역사와 춤인물과 인맥과 현황을 고찰함으로써 대구지역춤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춤의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고 미래춤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조선조 전통문화시대를 지나 190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 서구문명과 외래문화의 범람시기에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소멸되어가던 전통춤 전승에 수구적(守舊的)이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춤인맥을 고찰하고, 또한 시대조류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적인 근대춤 정착에 헌신한 춤인맥을 살펴 대구지역춤의 전승과 무용사적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만 심도있는 연구가 아닌 포럼이기에 아쉽지만 개괄적인 고찰에 머물 것이며, 연구방법은 문헌연구로 그간 대구춤과 관련한 학위 및 학술논문과 평문 등을 일별하여 요약문을 작성하였다. 대구지역춤 관련한 학위 및 학술논문 등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RISS)을 검색어를 통한 문헌 내용과 필자 소장문헌을 중심으로 고찰 정리하였다. 또한 대구무용계의 여명기를 개척한 1세대를 중심으로 뒤를 이은 2세대에 한하여 20세기 초중반기(개화기부터 1960년대까지) 무용인물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Ⅱ. 대구지역춤의 근대사적 배경 전통시대(조선조)의 춤은 대체로 궁중춤(정재, 일무), 민속춤(예인춤, 민간춤), 종교의식춤(불교춤, 무속춤) 등으로 전승되어 왔지만 우선 관심의 대상은 기방춤으로 궁중과 선상기(選上妓)로 활동하던 지방관기 전승의 교방춤과 기방춤으로 전승되어왔다. 대한제국시대와 한일합방의 급변속에서도 20세기(1900년대) 근대초기 관기제도의 폐지와 기생조합과 권번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며 경향 각지에서 나름의 전승체계와 색다른 공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기생조합은 1904년 10월 10일 일본공사관의 제3호 경성관령으로 비롯된 창기 창녀의 사회적 공식화부터 비롯된다. 궁내부 제도 개편의 일환으로 시행된 1905년 여악(女樂)의 폐지, 1908년 7월에 ‘향사이정조칙(享祀釐正詔勅)’으로 관기들이 소속된 태의원(太醫院)의 의녀(醫女)나 침선비(針線婢) 등이 해체되면서 관기제도가 폐지되고 그해 8월 24일에 장례원 장악과가 해체되었다. 아울러 1908년 9월 15일 기생 및 창기 단속령과 1909년 4월 경시청의 창기조합조직 명령건 제정 등에 의해 우리나라에 적용한 일제의 공창화(公娼化) 정책에 의해 설립된 전국의 기생과 창기들의 동업조합이 곧 ‘기생조합’이다. 한편 기생조합소는 기업(妓業)을 주관하는 사업체 및 운영 사무실을 지칭하는 것인데, 초기에는 기생조합 또는 창기조합이라고 불렸다가 1917년경부터 일본식으로 ‘권번(券番)’이라 바뀌었다. 한국의 근대화의 물결과 근대춤의 시작은 대체로 1900년 전후로 나타난 세계사적 물결과 주변국과의 교류에서 비롯되었으며, 국내적으로도 조선시대 말 갑오경장(1894년)과 대한제국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문화조류가 파급되면서부터이다. 1902년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협률사(協律社)가 경성에 설립되어 그해 12월 4일부터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가 공연되었다. 그후 1907년 광무대(光武臺), 단성사(團成社), 연흥사(演興社), 1908년 장안사(長安社) 등 극장이 개설되었고, 광무대에서는 관기(官妓)의 가인전목단·검무(劍舞)·남무(男舞)·무고(舞鼓)·무동·성진무(聖眞舞)·승무(僧舞)·시사무(矢射舞)·이화무(梨花舞)·전기광무(電氣光舞)·지구무(地球舞)·한량무(閑良舞)등과 같은 춤 종목은 활동사진과 함께 광무대의 무대에서 공연됐다. 1915년 결성한 경성구파배우조합(京城舊派俳優組合)과 손잡고 광무대 7주년기념공연으로 새로 선보인 고구려무(高句麗舞)·공막무(公莫舞)·첨수무(尖袖舞) 등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청년학생음악단 내한공연(1921), 이시이 바쿠 내한공연(1926), 최승희의 <세레나데> 공연(1927), 배구자의 <아리랑> 공연(1928) 등으로 무용공연 등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한국의 근대춤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한편 조선후기 대구 관기들의 활동 배경을 살펴보면, 임진왜란(1592-1598) 이후 대구지역에 감영 설치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경주-상주로부터 이어져 온 감영이 옮겨오게 되었다. 곧 1601년(선조34년)에 경상감영이 대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적 거점도시로 변모되면서 많은 국가적 지역적 행사가 많아졌다. 경상감영과 대구부(大邱府)에 소속된 관기(官妓)들의 공적(公的)인 악가무 활동이 활성화 되었던 것이다. 경상도와 관련되는 국가적 행사는 경상감영이 주관하여 이루어졌고, 대구와 관련되는 지역적 행사는 대구부 관아에 소속된 관기들이 도맡아 행사를 치루었다. 당시 경상감영과 대구부는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중구 포정동에 위치한 경상감영공원(전 중앙공원) 일대이다. 영조 43년(1736년)에 작성된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에는 경상감영의 부속건물로 교방과 취고수방(吹鼓手房)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1768년에 발간된 『대구읍지大丘邑誌』1)에 의하면, 경상감영 교방(敎坊)에는 41명의 예기(藝妓)가 있었고, 대구부에는 31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또한 1888년에 자인현감 오횡묵(吳宖黙)이 적은 『자인총쇄록(慈仁叢鎖錄)』에 의하면, 경상감영 관하방(觀下房)에는 21명의 기생이 있으며, 대구부에는 17명의 기생이 영영교청(嶺營敎廳)에 소속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아에 소속된 관기들은 악기, 노래, 춤 등 각종기예를 익혀 각종 공적인 연회에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또한 『경상도 읍지』(1832년경),『영남읍지』(1871년경, 1895년)에 대구부의 교방기생 31명과 관노 40명, 대구감영의 교방기생 35명과 관노 81명의 기록이 보인다. 그후 대구기생 향선(香仙)을 비롯한, 남수(藍水), 죽선(竹仙), 화월(花月)이 1908년경에 미국 빅타음반에 취입했음도 확인된다. 이와같은 관기들의 구성이 일제에 의해 1909년 4월부터 실질적으로 관기제도가 폐지(직제상 페지는 1908년) 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청에 소속되어 있던 교방의 관기들은 사회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사회로 진출한 관기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 바로 1910년 5월에 결성한 ‘대구기생조합’이다. 또한 1905년 경부선 철로가 개통된 이후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상업성을 가지고 자금을 투자하면서 1922년부터 ‘대구권번’으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927년 1월에는 한국인들의 주도로 관기 출신의 염롱산(廉隴山)을 권번장으로 하여 ‘달성권번’이 설립되었다. Ⅲ. 대구지역 근대춤 전승 인맥 대구 근대무용사의 대표적인 인물을 논하라 하면 주로 현대무용의 김상규, 주연희, 김기전, 정순영, 그리고 한국무용의 권명화 외 몇 분을 논하지만, 오늘날의 명맥 및 계승으로 살펴보았을 때 대구지역의 근대무용사의 기점은 대구 출신의 정소산과 전남 나주 출신의 박지홍을 들 수 있겠다. 1. 정소산의 전승인맥: 김수희, 하규일→정소산→백년욱, 최묘정정소산은 대정권번 하규일의 문하생으로 1900년대의 근대무용사의 현장에서 신무용의 거센 바람 속에서 궁중무에 대한 소중한 가치와 전통의 맥을 전승·보존하며 대구 근대무용사 맥을 이어온 선구자이며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대구지역의 한국무용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점을 마련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소산에 대한 존재감까지도 잊혀진 채 21세기 현재에 이르렀다. 영남지역의 대구를 중심으로 근대무용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소산의 무용활동에 대한 예술사적 평가는 대구 근대무용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으며, 무용의 역사를 되짚어봄과 동시에 미래지향적 예술적 가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며, 기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춤 인생과 무용사적 가치는 대구지역 근대무용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가치 척도가 될 것이며, 대구지역의 근대무용사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 할 것이다. 조선시대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아 소속의 관기들은 대구지역의 전통음악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도록 한 주역들이다. 조선시대 관기들의 구성이 일제에 의해 1909년 4월 경시청의 창기조합조직 명령건이 제정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청에 소속되어 있던 교방의 관기들은 사회로 진출하여 단체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대구의 관기 출신의 예기들이 주도적으로 1910년 5월 대구기생조합(大邱妓生組合)이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조직하여 명무(名舞) 김수희 조합장을 중심으로 결성하였다. 다만 김소희에 대한 이력사항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생년생몰 연대와 춤 경력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대구기생조합이 개설되자 김수희 조합장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한 여섯 살(1910년) 난 어린 소녀가 정소산(본명은 정유색(鄭柳色), 호는 소산(小山), 1904-1978)이었다. 정소산은 190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정사운과 상주 정진사댁의 막내딸로 어머니는 약방기생으로 유명했던 박남파 여사 사이의 1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형제들은 모두 비명에 죽었다. 정소산(유색)이도 어릴 적 몸이 약했는데, 기생이 되면 명이 길 운명이란 점장이의 말을 듣고 아버지 몰래 기생을 시키기 위해 춤을 배우게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구기생조합에서 김수희 조합장의 춤을 배운 후 정소산은 부산의 봉래권번<그림 2>, 수원의 화성재인청 등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17세(1921)에는 서울 대정권번에서 지냈다. 권번별 조합별로 조선의 예기들을 소개한 책 『조선미인보감』(1918)에는 원적과 현주소는 경성부 관철동으로 되어 있지만 경성에 머물던 주소인 것 같고, 원래 출생은 대구 중구 동성로 3가 12번지이다. 『조선미인보감』에 수록한 사진은 입적한지 1년 뒤인 18세 때 찍은 것이다.<그림 1> 원문에 보면 편모슬하의 무남독녀로 형편이 좋지 않아 권번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쁜(좋은) 이마와 발을 가졌으며 청랑한 음성으로 시조잡가를 하는 특징이 소개되고 있으며 부드럽고 착한 성품으로 처음 보아도 구면에 본 것 같고 행동과 말투가 구수하다고 정소산의 인물과 성품이 나와 있는데, 이는 대구지방의 사투리 표현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소산은 ‘다동조합’이 1918년 ‘대정권번’으로 바뀐(매일신보, 1918.1.27) 뒤 1921년 17세에 대정권번에 입적하여 당대의 명인으로 손꼽힌 인물 하규일(1867-1937)으로부터 1923년 19세에 본격적으로 궁중춤을 배웠는데, 김천흥이 전하는 하규일선생님이 가르친 궁중춤은 춘앵전, 무산향, 포구락, 장생보연지무, 무고, 선유락, 항장무, 가인전목단, 검무, 박접무와 재구성한 사고무, 성택무 등이었고, 여창가곡, 가사, 시조도 지도하였다. 하규일과 다수의 기생들이 1923년 대정권번을 탈퇴하여 그해 8월에 ‘경화권번’을 인수하여 설립한 ‘조선권번’으로 출범한 뒤에는 정소산이 직접 학감(1925년)이 되어 기녀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25년 23세 때에는 조선권번에 있던 대가 한성준(1874-1942)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그리고 1926년 이후 고향 대구로 돌아온 정소산은 1931년 3월 경북 예천에서 개최된 ‘예천대발전 신축낙성식 축하음악회’ 전단지로 대구조선정악단 일행이 출연한다는 팜플릿에서 확인된다. 달성권번 기생 신금홍을 비롯하여, 정류색(정소산)·황금주·이난향 등과 예천 기생들의 조연으로 소리와 춤을 공연하였던 것이다. 정소산은 가야금을 비롯한 춘앵무, 포구락 등 궁중정재와 살풀이춤, 승무, 장고, 법무 등을 탁월하게 추었다고 한다. 겨우 가정집 방 하나를 세내어 무용교습소라 차려놓고 가르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처음에는 궁중정재 위주로 가르쳤으나 인기도 없고 수입도 수월치 않아 살풀이춤, 승무, 장고 등도 혼합하여 지도하였다고 한다. 42세(1946)에 처음으로 발표회를 열었고, 46세(1948)에는 하서동에 ‘정소산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궁중춤 포구락, 무고, 검무 등의 전승과 보급에 힘썼다. 1969년 포구락, 검무, 무고의 궁중춤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지정 심사에 오르면서 그의 존재가 대구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심사에서는 탈락했다. 궁중춤 이외에 잘 알려진 정소산류 춤은 ‘수건춤(흥춤)과 ‘달구벌 검무’로 유명하며, 1978년 사망할 때까지 후진 양성에 힘썼다. 한국국악협회 3~5대 경북지부장, 경북 문화상(무용 부문, 1962), 문화공보부장관상,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정소산(鄭小山)(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제자로는 그의 며느리였던 최묘정(최복순)과 백년욱, 김기덕, 김해덕, 양영숙, 이윤도, 강명자 등과 타지역 박금술(서울), 이화진(산주), 문소야(익산) 등이 있는데 현재는 백년욱 만이 지역무용계를 지키면서 정소산 춤의 맥을 잇고 있다. 1955년 열 살이 되던 해 정소산의 문하에 들어간 백년욱은 정소산이 타계할 때까지 스승과 함께하면서 정소산의 춤 세계를 체득했으며 2015년 대구시 무형문화제 제18호로 ‘정소산류 수건춤’으로 지정받았다. 정소산의 작품으로는 궁중무용을 중심으로 한 궁중무, 보구락(현재 궁중무용 포구락을 말함.), 무고, 검무, 춘앵무 등이 있으며 민속무로는 소고춤, 장구춤, 바라춤, 농악, 부채춤 외 창작무용으로는 여인의 미, 화랑무, 즉흥무, 조국의 혼, 무영탑, 미선, 꽃보담 내가 예뻐, 낙랑공주, 여인의 예상, 자명고, 단오놀이, 계월향, 낙랑공주, 논개, 직녀성, 원시인의 기상, 흥취 등과 무용극인 구운몽, 논개, 신라의 노처녀 등이 있다. 그의 춤 특징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춤을 추었으며 허리를 굽힌다던지 꼬는 동작들은 없었다는 것은 유장하고 의례적인 궁중정재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강태홍의 전승인맥: 강태홍→조산월 등 35명1914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에 수록된 예인 100인은 주로 서울과 평양 중심으로 조사기록한 것이지만 몇 명 안되는 여타지방 출신 중에는 대구출신으로 조산월(趙山月)<13>, 옥화(玉花)<43>, 향심(香心)<61>, 설경패(薛瓊佩)<74> 등 4명에 대한 개인소개가 수록된 것만 보더라도 대구의 조합이나 권번출신들의 서울진출을 확인해주는 기사라고 볼 수 있다. 이어서 1918년 출간한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아오야나기 고타로(靑柳綱太郞), 지송욱(池松旭) 편저)에는 조선 예기 611명의 화보집인데, 대구조합(大邱組合) 소속 32명(28명 대구출신, 4명은 타지방출신), 김천조합 3명이나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앞서 1914년 매일신보에 기록된 조산월(趙山月)은 중복기록 되어 있어 옥화(玉花), 향심(香心), 설경패(薛瓊佩) 3명을 포함하면 35명의 인물들이 대구출신으로 춤과 가야금병창을 연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구권번의 춤공연 종목은 고무(鼓舞), 승무, 각항(各項)정재무, 검무, 남무 등이었다고 하였다. 당시 가야금과 가야금병창과 춤을 가르친 명인은 전남 무안 출신의 강태홍(姜太弘,1893-1957)으로 1911년(19세) 대구로 이주하여 대구(기생)조합에서 제자를 양성했었다. 이때 1918년 조선미인보감에 수록된 대구조합의 예기 32명중 춤 기예가 기록된 기생은 22명이다. 즉 염옥련(廉玉蓮: 23세, 정재무·남무), 이계화(李桂花: 22세, 검무·남무·각항정재무)와 김옥산(金玉山, 20세, 검무·남무·각항정재무), 도란옥(都蘭玉: 21세, 검무·승무·남무·각항정재무), 상남수(尙南秀: 16세, 검무·승무·남무·각항정재무), 안사운(安斯雲: 20세, 검무·승무·각항정재무, 이점홍(李点紅: 18세, 각항정재무), 권복경(權福璟: 21세, 정재무), 도송옥(都松玉: 18세, 정재무약간(呈才舞若干)·승무), 노소옥(盧小玉: 17세, 승무·정재무), 이도희(李桃姬: 16세, 승무·정재무, 윤월향(尹月香: 18세, 검무·고무(鼓舞)), 백금옥(白錦玉: 14세, 검무·승무), 전무선(全舞仙: 18세, 승무), 강매월(姜梅月: 19세, 검무), 최경란(崔瓊蘭: 15세, 선승무(善僧舞)), 그리고 서운향(徐雲香: 14세), 이계란(李桂蘭: 14세), 백초월(白楚月: 14세), 김산옥(金山玉: 16세), 민봉진(閔鳳珍: 16세), 허경희(許瓊姬: 15세)는 승무 한 종목과 국악종목이 기록되어 있다. 종목별로는 승무가 15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서 정재무 11명, 검무 8명, 남무 5명, 고무 1명 등으로 나타났으며, 정재무는 종목이 다양(50여종)하기 때문에 ‘각항정재무(各項呈才舞)’는 많은 정재무를 출 수 있는 능력자를 뜻하며, ‘정재무약간(呈才舞若干)’은 약간의 정재무를 출 수 있다는 뜻이다. 윤월향의 기록에만 고무를 공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무는 정재종목 중 하나로 윤월향(尹月香)이 여러 정재 중 고무(鼓舞)를 잘 추어서 기예기록에 기록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승무, 병창, 현금(玄琴), 산조, 양금, 가야금 등의 앞에 ‘선(善)’을 붙여 ‘선승무(善僧舞)’ 등으로 표기한 것은 남보다 ‘앞선다’는 뜻으로 우수한 능력자임을 표기한 것이며 ‘특(特)’ 또는 ‘특상(特上)’은 ‘특히 더 잘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또한 산조(酸調)의 한자표기가 오늘날 ‘산조(散調)’ 표기와 다름도 알 수 있다. 그밖에 김매월(金梅月)·박취옥(朴翠玉)·송홍련(宋紅蓮)·안선옥(安鮮玉)·우달경(禹達卿)·우연화(禹蓮花)·이미화(李美花)·조산월(趙山月)·최금란(崔錦蘭)·허금선(許錦仙) 등 10명은 춤 종목 없는 국악종목으로 가야금, 병창, 산조, 가곡, 현금, 양금, 잡가 등과 정자(正字), 초서(草書) 등의 서예도 기록하였다. 이상과 같이 1914년 대구출신 서울에서 활동한 이는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에 4명과 1918년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의 대구조합의 32 등 35명의 기녀들의 신상명세와 기예능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을 가르친 스승 강태홍(姜太弘,1893~1957)은 1911년(19세) 대구로 이주하여 대구조합에서 제자를 양성했으며, 그후 잠시 경주권번으로 갔다가 대구조합이 대구권번(大邱券番)으로 바뀐 후에 다시 돌아와 가르치다가 울산권번(蔚山券番)을 거쳐 1939년(47세) 동래권번(東萊券番)으로 떠났다. 당시 권번조직에서 교육을 담당한 지도자는 전국적으로 남자 재인(才人)과 창우(娼優)들이 춤과 소리와 악기사범을 맡아 지도했었다. 간혹 재능이 뛰어나나 나이가 많아 물러난 퇴기(退妓)들이 지도사범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관리자 역할을 하였다. 재인들이 지도사범으로 나서게 된 배경은 우선 어려서는 무동(舞童)으로 춤과 소리를 배워 추지만 성장하면서부터는 악사역할로 전환하여 악기연주와 수많은 춤과 소리반주를 하면서 장단변화와 춤동작 전개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지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지도력이 유명해진 재인들은 큰 고을로 모셔가는 것이 많아져 강태홍도 여러 곳의 권번을 거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부산동래에 정착하여 가르친 가야금산조(강태홍류)는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1989, 보유자 신명숙)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으며, 그 때 부산에서 강태홍의 춤을 배운 제자로는 한순서(강태홍류 춤보존회)와 김온경(부산무형문화재 제10호 동래고무 보유자, 1993) 등이 있다. 한순서(1941-)의 증언에 따르면 강태홍은 키가 작으나 흰머리에 변화무쌍하고 재주가 많으며 호쾌하고 멋있게 춤과 연기를 하였다 한다. 그래서 가야금도 다양한 기교로 배웠으며, 춤 역시도 다양하고 활기 넘치고 호쾌하게 춤을 추도록 배웠다. 특히 승무의 북가락은 지금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고 전한다. 한순서로 전승된 승무는 재인계통 승무의 특색인 승복을 벗고 떠나는 결말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살풀이춤은 여인의 한과 감정을 담아서 추는 등 "어떤 춤이 됐던 태마가 있게 추어라”라고 하였으며, "극적인 감정을 살려 추어야지 밋밋하게 추는 것은 멋없는 춤이 된다”라고 지도 하였다고 한다. 그밖에도 춤집이 크고 호쾌한 영남 덧배기가락이 물씬 밴 소고입춤, 장고춤, 바라춤, 화관무, 초립동, 봄타령, 도라지, 꼭두각시 등을 전수받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00년대 초기 대구지역춤을 전승하며 이끌었던 무용인물로는 강태홍을 대표로 꼽을 수 있고 그의 지도를 받은 대구조합과 대구권번의 35명의 기녀들에 대한 자료의 편린(片鱗)이나마 반가운 일이며 아직은 증언자 있어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강태홍은 대구를 일직 떠나 전승력을 잃었는지 대구 전승자가 어딘가에 있는지는 조사연구할 시간이 부족하여 알 수 없다. 혹시나 대구에서 근거자료가 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3. 박지홍의 전승인맥: 박지홍→ 최희선(달성권번), 권명화(대동권번)근대의 여명기인 1911년에 대구조합과 뒤를 이은 대구권번의 악가무 지도사범으로 초빙되어 지도하던 강태홍이 떠나고 뒤를 이어 1920년대 후반 지도자로 초빙된 이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박지홍(朴枝洪, 1884,1889?-1958,1959?)이었다. 박지홍은 서편제의 대가 김창환(1854-1939)의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고 사촌형님뻘인 박기홍에게 소리 더늠을 이어받으며 수행고수를 하다가 대구로 이주하였다. 건장한 체격에 미남으로 「심청가」와 「흥보가」를 잘하였다. 박귀희(朴貴姬)가 그에게서 판소리와 단가(短歌)를 배웠고, 박초향(朴初香)이 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박동진(朴東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이 「흥보가」를 배웠다. 일제강점기 대구에는 대구기생조합(대구권번), 달성권번과 대동권번 세 곳이 있었다. 1927년 문을 연 달성권번은 대구시 중구 상서동에 소재해 있었고, 해방 후 대동권번은 1940년 전후로 설립되어 대구역 교동시장 근처에 있었다. 이때 달성권번에서 가무를 가르친 사람은 박지홍 외에 채승호(채찬복의 형)가 있었다. 달성권번에서는 춤, 시조, 가곡, 창 등을 공통적으로 익히도록 하였다. 박지홍이 창, 기악, 춤을 지도하였고, 박녹주가 판소리와 춤을 지도했다. 특히 춤에 특출한 기생들은 따로 입춤, 검무, 살풀이춤, 승무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대동권번 역시 기본 춤, 시조, 창 등을 공통과목으로 하고 춤으로는 입춤, 살풀이춤, 검무, 승무, 소고춤 등을 가르쳤다. 한편 해방 이후 나주에서 온 살풀이의 대가 박지홍(朴枝洪)에 의해 중구 교동(교동상가백화점 자리)에서 사설 대동권번(이후 남산동에 경북국악원 개설)이 생겨 대구지역에 전통음악교육의 맥을 이어나갔다. 아울러 달성공원 주위와 서문시장 등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 사설 기생교육단체가 여러 곳 생겨 대구지역 전통음악을 유지하게 되었다.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대구지역 전통음악예술의 원천은 일제강점기 대구기생조합을 비롯한 대구권번과 달성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광복 후 대구의 대동권번에서 ‘기생들의 시험’을 실시하여 뽑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광복 후 두 번째의 기생시험을 1948년 9월에 실시하여 응모자 84명 중 60여 명이 합격되었다고 한다.이와 같이 가무를 하려는 기생이 되려면 이 권번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고, 그들이 3년간 수업을 받으면 요정을 출입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았다. 수업과목은 춤·시조·풍류·가야금병창 등이었다. 소리·춤·기악 등 악가무를 동시에 지닌 박기홍에서 박지홍으로 이어지는 달성권번, 대동권번의 춤이 대구지역 권번춤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음은 의미로운 사실이다. 이러한 박지홍 권번 교육은 최희선, 권명화에게 계승되어 현재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전통 춤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최희선은 1929년 대구출생(2010.10.12. 작고)으로 10세 후반 명인 박지홍에게 전통춤을 배우며 무용계에 입문하여, 상경하여 1945년 장추화 무용연구소에서 춤을 배우고, 한영숙에게 전통춤 사사하고, 1950년 6.25 전쟁 이후 대구에 내려가 박지홍의 춤을 배우고 청구대학에서 공부하며 무용 활동을 하였다. 예그린악단 무용부장이었던 그녀는 1957년 제 1회 최희선 무용발표회를 시작으로 1958년 청구대학 강당에서, 1959년에는 서울국립극장에서 『승무』, 『부채춤』, 『화랑무』, 『장고춤』 등의 한국무용을 선보였다. 권명화는 1934년 경북 김천출생으로 6.25전쟁 중 피난간 대구에서 절집의 풍악소리에 사로잡혀 영남 최고의 풍류객 박지홍을 만나 1950년부터 사사 받고, 그에게서 배운지 6개월 만에 대구극장에서 열린 무용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55년 박지홍 고전무용학원 강사가 되었다. 일제의 관할에 있었던 만큼 크게 번성하였던 달성권번은 해방이 되면서 곧바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대동권번은 해방 후에도 얼마간 존속되어 오다가 1950년 화재로 인해 없어졌다고 전한다. 박지홍이 운영하는 대동권번은 그해 남산동 포구당(포교당) 폐기된 절을 기녀와 회원들이 모은 돈으로 임대하여 ‘경북국악원’이라는 이름으로 권번의 역할을 대신하였는데 이때 김천에서 6·25한국동란으로 피난해온 권명화 가족이 피난하여 세든 집이 박지홍의 경북국악원 이웃집이어서 담너머로 연습하는 악가무를 보고 따라 흉내 내다가 용기를 내어 직접 찾아가 입회를 하여 전수를 받았다. 권명화가 전승하고 있는 춤은 승무, 살풀이춤(대구시무형문화재 제9호), 입춤, 소고춤, 검무 등과 경산자인단오제(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의 여원무를 비롯하여 단오굿 일곱거리의 부정굿춤, 산신축원굿춤, 천왕굿춤, 칠성굿춤, 대감굿춤, 장군굿춤, 대신굿춤, 해원굿춤이 있고, 축원춤으로 산거리춤(방울과 부채), 지전춤, 선비춤(한량무), 바라춤, 선녀춤, 오방신장춤, 장군칼춤 등이 있으며 건들바위 치성굿’도 복원하여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91년, 여수)에 출품한 적도 있다. 일제강점기 대구지역의 무대 예능화 된 전통춤은 박지홍을 정점으로 한 달성권번, 대동권번 등 두 개의 권번을 통해 전승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말 궁중 여령춤을 계승하고 있는 정소산(1898-1975)으로 그 맥이 이어져왔다. 따라서 권번이나 기생을 제외하고는 대구지역 전통춤의 역사적 맥락을 말하기란 어렵다. 박지홍은 대구에서 계속 연구소를 운영하였는데, 1958년 제1회 전국 민속경연대회에 경북 대표로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제1회 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공연한 작품은 쾌지나칭칭나네, 하회별신굿, 경산옹헤야, 함창모내기놀이, 안동놋다리였다. 당시의 출연진은 신장대에 박지홍, 먹중과 분네에 최희선, 초랭이에 김경자, 양반에 채승호, 선비에 채찬복 등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 당시의 제일 극장에서 앵콜 공연을 준비하다가 장구채를 잡은 채로 과로로 쓰러져 며칠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마침내 운명하였다. 이 시기의 대구의 전통춤은 기방춤으로 일컬어지는 박지홍류와 궁중무인 정소산류로 크게 대별됨을 알 수 있다.4. 김상규의 전승인맥: 김상규→최영자, 이숙재, 주연희, 서진은 등 대구에서 현대무용이 시작된 시기는 1930년대로 볼 수 있다. 일본의 현대무용 개척자인 이시이바쿠(石井幕)는 우리나라에서도 현대무용의 씨앗을 뿌린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시이 뒤를 이어서 최승희, 조택원, 조용자, 김상규, 김한일, 장추화, 박용호 등 많은 한국의 무용가들이 활약하였다. 대구에서의 현대무용 공연은 1935년 최승희가 대구 공회당에서 한 것이 효시였고, 1936년에 조택원이 같은 장소에서 도불(渡佛)고별공연을 한 것이 그 다음이었다. 중국에서 일본군을 위문하기 위한 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던 이시이가 귀국도중 대구에 들러 1944년 7월 하순에 대구 공회당에서 공연을 하였다. 같은 해 최승희와 조택원도 대구공회당에서 무용공연을 가졌으며, 8.15광복 직전에 이시이의 문하생 조용자도 대구 공회당에서 발표를 가진 바 있다. 그는 1947년 현재의 대봉동 전신전화국 자리에 대구 최초로 무용연구소를 차려 활동하였다. 해방 된 이듬해인 1946년에는 발레를 전공한 한동인과 정지수가 키네마에서 공연을 했고, 그 해 가을 장추화, 이석예도 발표회를 가졌다. 1947년에는 이시이 문하생인 박용호와 조용자의 무용공연이 만경관과 키네마에서 있었다. 또한 경북여고를 졸업한 뒤에 신성무용소를 열어 후학을 지도 한 김선화가 키네마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대구여중 무용교사였던 하복조와 경북여고 무용교사였던 주연희가 찬조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지금의 대구 현대무용을 존속케 하는 역사적 효시에는 김상규(金湘圭, 예명 技波, 1922-1989)가 있었다. 김상규는 1922년 5월 25일, 경북 군위군 군위면 금구동 134번지에서 안동 김씨 집안의 부농한 아버지 김병호(金怲鎬)와 어머니 정직영(鄭稷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상규는 누나인 김무숙이 태어나고 5년 만에 낳은 자식이어서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으며 한 번은 엿장수가 "엿 사시오?”하며 가위를 "쨍강쨍강” 치자 동생(상규)이 "거기에 맞춰 춤추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누나 김무숙이 말하였다. 또 마을에 남사당패 거리나 서커스단의 공연이 오면 하루도 빠짐없이 구경하며, 이들이 떠날 때면 동네 어귀 멀리까지 따라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성대다가 울면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그 당시 김상규의 마음속 우상은 연희패들이었고 자신도 언젠가는 이들과 같은 연희패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대구로 유학하여 수창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1931년 9월16일 대구극장에서 공연한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을 보면서부터 무용에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법학공부해서 판검사 돼서 오겠다고 핑계를 대고 14세(1935)에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와세다중학교를 다니면서 저녁에 이시이바쿠 연구소에 가서 신무용을 배웠으며, 동경전기학교(현 대학승격)를 졸업한 뒤 1941년 와세다대학 문학부와 1943년 동경음악과를 수학해 다방면의 관심을 보여주었고, 1946년 10년의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능분야에 뛰어난 김상규는 영화, 연극, 음악, 회화부문까지 다방면에 재능이 있어 골고루 습득하였다. 농촌의 자연미와 순박성, 넉넉함의 감수성은 무용가로 활동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성들도 사회적 인식을 깨기 힘든 시절에 남성무용수로 향토 대구의 현대무용을 개척하고 뿌리 내리게 한 선구자로 평가할 수 있다. 김상규는 조택원, 최승희, 이시이 등의 공연을 보고 무용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판검사가 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에서 다년간 수련을 하고, 대구로 돌아와 신무용 보급을 한 인물이었다. 1945년 8.15광복이후 정치적 혼란기를 거친 다음 대구무용계도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김상규는 1946년 귀국 후 바로 신무용연구소를 개소하였고, 1949년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하고 만경관에서 가진 그의 ‘김상규 신무용 발표회’라는 타이틀의 첫 발표회에는 최희선, 최미연, 박근숙 등 20여 명이 출연하였으며, 이는 대구지역에서 자생한 신무용의 첫 보급이라 할 수 있겠다. 1950년 7월에는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문총구국대가 결성되어 김상규가 무용분과위원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이 무렵 문하생으로는 김화심, 최영자, 문명희, 이빈화, 박득남, 김경자, 주연희, 박득순, 장성자, 박근숙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얼마 후 문총구국대 경북지대는 해체되고 1951년 12월 19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경북지부가 발족되었으며, 무용위원장은 김상규가 맡았다. 1951년부터 김상규 무용발표회가 국립극장(키네마극장, 현 한일극장, 전쟁 중에 중앙국립극장이 대구로 옮겨짐)에서 자주 열렸고, 이때의 출연자들로는 이월영, 최미연, 이빈화, 최영자, 한순옥, 장일, 문영희, 백운향, 박득남, 박득순 등이 있었고, 김경자, 이숙재, 백년욱 등이 어린나이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김상규는 전쟁이라는 혼란과 모든 공연운영비를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1952년 4월 14일에서 15일(오후 1시, 7시)까지 대구문화극장에서 제2회 김상규 신무용발표회를 가졌으며, 휴전될 무렵인 1953년 6월 4일에서 6일(오후 1시,3시 30분,7시)까지는 전쟁 때문에 대구로 무대를 옮겼던 중앙국립극장(현 한일극장)에서 제3회 김상규 신무용발표회를 했다. 뚜렷한 연습장 하나 없이 초․중․고등학교 강당이나 창고, 업무가 끝난 사무실 또는 옥상 등을 이용하여 연습하였으며 미제 내의를 검정으로 물들여 연습복으로 입고, 제대로 된 무용화 없이 맨발로 시멘트 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하였다. 그리고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습과정을 거친 후 공연을 하기 위해서 모든 운영비(의상비, 무용수들과 악사들의 숙식비, 조명비 등)를 개인이 책임졌기 때문에 많은 관중이 몰려 들었음에도 그 경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무용가와 무용가를 둔 집안은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김상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품 발표회를 해마다 열다 보니 논밭을 팔게 되고 결국은 집까지 팔게 되어 셋방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활형편은 어려워도 대구에서 인정받는 향토계의 춤꾼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대구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남성무용수로 작품세계는 끝없이 폭을 넓혔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춤을 사랑하고 향토계에 예술세계의 밑거름이 되도록 터전을 닦았다. 1956년 이후의 대구무용계는 여전히 김상규의 독무대였다. 김상규는 1951년 제1회 김상규 무용발표회를 가진 이후 1955년 제5회, 1957년 제 6회 무용발표회를 가졌다. 김상규 문하생이었던 김상아, 구숙자, 주연희, 장성자, 서차애 등이 키네마에서 열린 제 6회 김상규 무용발표회에 출연하였다. 개인발표회가 없었던 1956년에도 경북예술제에 찬조출연하여 『아뜨리에의 환상』, 『성당의 아침』등 화려한 무용의 향연을 베풀었다. 김상규는 무용인으로는 처음으로 1957년도 경상북도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혈육으로는 대구 가톨릭대 무용학과 교수 김소라가 있으며, 1989년 작고할 때까지 100여편의 작품을 안무하였다. 손꼽히는 제자로는 최영자, 백운향, 박덕남, 박덕순, 백년욱, 이숙재, 김상아, 주연희, 서진은, 장성자, 오애리, 정선자, 김예숙, 이명주, 박성실, 김미연 등이 있다. 김상규의 작품세계는 첫째, 자신의 삶과 주변을 투영시켜 만든 작품으로는 「동심」,「처녀총각」,「애기와 어른」,「형제」,「명상」,「봄노리」,「젊은 날의 추억」,「봄처녀」,「파동」,「새싹」,「무영탑」,「파랑새」,「악몽」,「마음의 생태」,「망상」,「환희」,「월야」,「춘일서정」,「휴식의 환각」,「길손」,「목선」,「소녀시절」,「사의 유혹」,「화염」,「희망의 언덕」,「들국화 피는 시절」,「나그네」,「잃어버린 마음」,「가면무」,「고혼」,「애상곡」,「사슬을 끊고」,「가을의 회상시곡」,「의용」,「가로등」,「건망증」,「완행열차」,「기억을 기다리는 거울」,「은방울」,「초원의 동심」,「지평선」,「개구리의 합창」,「산소결핍」,「고목의 노래」,「수련」,「원색의 회량」,「가면의 생태」,「장미의 꿈」,「푸른 언덕」,「타임」,「작품B」 등이 있고, 둘째, 우리 전통적인 문화와 겨레의 민족성을 다룬 작품으로는 「활양」,「아리랑 삼조」,「황진이」,「향토의 인상」,「태공망」,「살풀이舞」,「건설」,「전설의 환상」,「마음의 생태」,「힘」,「호걸무인」,「검무」,「희생」,「기원」,「유상무상」,「순국의 처녀」,「백홍」,「타령조」,「산소결핍」,「이 흙이 있는 한 절망은 없다」,「수련」,「민족의 흥」,「전진」,「회귀」,「산하」등이 있으며, 셋째, 삶 자체를 불교에 의지해 온 평소의 모습과 심오한 종교관과 사상을 다룬 작품으로는,「창조의 신」,「정불국토」,「무영탑」,「기원」,「유상무상」,「탈속」,「남방의 서정」,「성당의 아침」,「재생」,「아잔타의 꿈」,「관음보살」,「보리수」,「생명의 향연」,「휘데아스의 꿈」,「니르바나」,「원색의 회량」,「간다라의 벽화」,「정각」등 1949년부터 1976년까지 13회에 걸쳐 100여 편을 발표하였다. 그가 30년 이상을 향토 무용계에 독보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주변의 시선에 어려운 점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시절부터 여성도 아닌 남성이 무용계에 뛰어들어 지역무용계에 토양을 이루어 낸 공은 인정받아야 할 일임에 분명하다. 5. 정막(정순영)과 김기전의 전승인맥 김상규와 별도로 대구 현대무용의 역사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로는 정막(鄭漠, 본명 鄭淳永, 1928-2012)과 김기전(金起田, 1935-) 부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950년 무용교육에 뜻을 두고 원화여고에서 정막 무용연구소로 출발했다고 언급한다. 정막은 1947년 겨울, 서울 명동의 문교부 인가 함귀봉이 설립한 조선 교육 무용연구소에 첫 발을 디딘 것이 무용예술의 입문이었고, 6.25사변을 통해 무용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현학선이 1953년 부산극장 종군극작가단 신작무대에 <인어의 정설>로 출연하고, 그해 8·15경축무용제에 중앙국립극장(전쟁으로 대구이전)에서 송범, 김진걸, 이인범과 함께 출연하였다. 그리고 1954년에 중앙국립극장(대구)에서 정막의 안무로 제1회 개인발표회를 가졌다. 김기전은 1935년 동경에서 태어나 1940년 여섯살 때 고향인 함경남도로 돌아갔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부산으로 피난 가서 경남여고와 부산대에서 공부하고 경기여대를 수료했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발표회 무대에 자주 섰다. 피난시절 이인범발레연구소에서 공부하고 1952년 임천수 국보오페라단에 1954년까지 단원으로 활동했다. 1954년 7월 육군 군예대(KAS)에서 무용 활동을 시작하였다. "초․중․고등학교 강당이나 창고, 업무가 끝난 사무실 등을 이용하여 연습을 했고, 미제 내의를 검정색으로 물들여 입고 다시 변형시켜 한번 더 입고, 3번은 활용했다.”며 당시의 열악했던 연습과정을 피력하고 있다. 1958년 12월에는 경북무용협회가 결성되어 키네마에서 창립공연을 하였는데, 정소산, 정막, 최희선, 현학선, 박금슬, 문소조 등이 출연하였다. 이 단체는 경북문화단체 총 연합회로 흡수되었다. 현학선도 이때 처녀무용발표회를 가져 향토무용계를 고무시켰다. 1961년 대구바레아카데미를 창설하고 부인 김기전과 대구지역에서 현대춤과 발레를 교습하여 춤인재를 양성하였다. 김기전은 국내 최초로 대구시립현대무용단을 설립하여 초대(1981~1988년) 안무자로 대구 현대무용계를 직업무용단으로 이끌어왔다. 정막은 춤 실연자이자 춤 연출자, 안무가로서, 그리고 춤 교육자, 이론가, 평론가로서 대구, 경북지역 춤문화의 구심체였다. 2000년에 이르러 (사)대구시민문화연구소를 차려 대구지역 춤문화를 비롯하여 시민문화 향상에 매진해온 일은 중앙중심의 무용편중에 대한 대항마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무용공연에 관계되는 모든 운영비(의상비, 무용수들과 악사들의 숙식비, 조명비등)를 개인이 책임졌기 때문에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으나 그 경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따라서 재정적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실정이었다. 춤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무용가들이 세인의 눈총을 받으며 춤을 춘 배고픔 속에서도 민족혼을 고취시키고 춤 예술의 지평을 여는 창작 무용들을 계속 발표하였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좋은 환경의 무용세계를 후배 무용가들에게 물려주게 된 계기가 마련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Ⅳ. 결언- 근대전기 대구지역춤의 인맥적 특징과 의의 근대의 여명기라 할 수 있는 1960년 이전 대구지역춤의 전승인맥을 고찰하면서 살펴본 대구춤의 문화사적 가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정소산, 강태홍, 박지홍, 김상규 등 춤 명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구지역춤을 발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여‘춤의 고장을 수립’하였다. 대구인들의 뛰어난 적응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은 근대 혼돈의 역사 속에서도 대구의 전통적 춤기반을 이어받아 전승하였고 새로운 현대춤도 정착시켜나갔다. 2) 각자 독자적인 춤정신과 다양한 춤방식으로 대구춤을 범한국적이고 세계적인‘안무도시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대구지역 전통춤의 자체전승을 비롯하여 타지역춤의 유입전승, 궁중춤을 민속춤으로 이동한 계층전승, 외래전승, 창조전승 등의 각자 다양한 전승원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대구지역 전통춤(교방 및 기방춤, 민간춤, 종교의식춤)을 꾸준히 계승한 자체전승을 비롯하여, 타지방무용인(박지홍, 강태홍)들을 초청하여 대구 전통춤으로 정착시킨 유입전승, 수준높은 궁중춤을 대구민속춤으로 정착(정소산)시킨 계층전승, 국제무대로 진출하여 현대춤을 세계적인 현대춤 도시(김상규)로 도약시킨 외래전승, 근현대 무용가들의 창작정신으로 대구현대춤(김상규, 정막, 김기전)을 발전시킨 창조정신 등으로 대구춤계를 주도하였으며 후대에 대구출신 무용가들이 경향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3) 대구감영과 대구부 예기(藝妓)들의 뿌리깊은 교방춤과 전통춤 등‘역사춤의 혈통 계승’으로 근대춤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이바지하였다.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1736)(1768),『경상도읍지』(1832년경),『영남읍지』(1871년경, 1895년)에 보이는 대구예기들의 교방춤과 1908년경에 미국 빅타음반에 취입까지 이어진 예기들의 후예의 피가 흐르고 있다. 4) 6·25동란으로 북한지방과 수도권 피난민이 대구로 집결하였고 임시 중앙국립극장 설립으로 ‘춤공연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당대 최고급 명무공연과 춤인적 교류가 활발하였다. 5) 대구지역춤에는 영남춤의 보편적 특징, 영남북부춤의 중심적 특징, 대구의 향토춤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영남춤의 요람(메카)’으로 발돋음하였다. 민간전승의 민속춤은 오랜 역사속에 뿌리내리며 정착된 전통문화이기에 생태적으로 영남권춤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불어 영남북부권의 거점도시로 영남남부와 다른 영남북부권춤의 특성도 지니고, 대구만의 향토춤도 여전히 전승되어 왔다.결국 대구는 근원적으로 한국전통춤 중에서 광역적인 영남춤의 성향을 지니면서 대구만의 지역민속춤의 특색을 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일제강점과 서구문화의 홍수와 6·25 한국동란으로 인한 대구집중화 현상 등 급변하는 역사와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구지역춤은 지역화, 탈지역화, 범한국화, 중심화, 국제화 등으로 중앙무대와의 교류가 활달하게 전개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20세기 근대전기의 대구춤의 문화사적 가치나 의의를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있다. 물론 한국근대사의 범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1960년 이전의 한국사회는 근대춤의 ‘여명기’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혼란기’이며 ‘전란기’이기에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전통문화의 ‘쇠퇴기’이며 외래문화의 ‘범람기’의 시련을 겪었다. 따라서 대구춤 역시 비켜갈 수 없는 운명으로 현란했던 관아의 교방춤과 권번춤은 역사의 뒤안길(박지홍, 정소산)로 접어들어 몇몇 춤꾼(최희선, 권명화, 백년욱 등)과 몇 가지 춤만이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었다. 시대조류에 따라 한국춤은 전통춤과 창작춤을 동시에 표현하는 어려움에서도 꿋꿋이 맥(백년욱, 주연희 등)을 이어 왔다. 현대춤과 발레는 대구(김상규, 최원경, 김기전, 구본숙)는 물론 서울 등지로 진출(이숙재, 김복희, 박인숙, 백현순, 이화석, 김용철, 손윤숙)하여‘춤의 고장’의 토양에서 성장하여 대구출신다운 유명 무용가들도 많은 점 또한 이를 반증하는 것들이다. 이제 많은 중견무용가들(박연진, 임혜자, 이정일, 김현옥, 장유경, 김희숙, 박현옥, 김소라, 강정선, 김죽엽, 최두혁, 오레지나, 채명)과 수많은 신진무용가들(김순주, 김나영, 김명란, 김현태, 김희경, 노진환, 박미향, 박정희, 박종수, 변인숙, 안지혜, 우혜영, 유연아, 이경화, 이수연, 이승대, 장 오, 장현희, 장혜린, 전효진, 조은희, 최석민, 최윤영, 추현주, 편봉하)등이 대를 이어 대구춤의 정신과 전성기를 향해 매진하고 있어 밝은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고 본다.(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 세미나에서 발제된 원고) ) 참고문헌 계명대 한국학연구소(2011). 영남의 지역예술연구.金宅圭·朴大鉉 編譯(1997). 大丘邑誌, 대구광역시.김영희(2006). 개화기대중예술의 꽃, 기생, 민속원.김죽엽(2010). 정소산의 작품활동을 통한 무용사적 고찰: 대구활동을 중심으로, 영남 악가무 재조명, 서울:한국국악학회.김죽엽(2011), 대구 근대무용사의 선구자 정소산의 정재가 대구무용사에 끼친 영향, 음악문헌학, Vol.- No.2, 한국음악문헌학회.김죽엽(2013). 대구 근대무용사의 선구자 정소산의 존재적 가치인식론, 한국무용학회 13권 2호.김채현·김영희·이종숙·김채원·조경아(2015,). 한국춤통사, 보고사.김천흥(2005). 우리춤이야기, 민속원.노동은(1995). 한국근대음악사1, 한길사.대구시사편찬위원회(1995). 대구시사. 대구시.대구예총(2012). 대구예총50년사. 대구: 동연합회.박민우(2013), 김상규 생애를 통한 무용사적 고찰,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석사학위 논문.박성실(1997), 韓國近代舞踊史에 나타난 金湘圭의 춤 硏究 : 敎育者的 成長科程을 中心으로, 中央大學校 大學院.박연진·장유경(1993). 대구 한국무용 30년사, 한국무용연구 11집, 한국무용연구회.박연진·장유경(1993). 대구예술 삼십년사. 대구: 대구예총.박황(1974). 판소리소사. 신구문화사.배연형(2011). 한국유성기음반 : 1907-1945, 권5. 한걸음 더.손태룡(2001). 每日申報音樂記事總索引:1910.5.30.-1945.8.15. 民俗苑.손태룡(2005). 달성권번의 음악사학적 조명, 향토문화 제20 특집호, 대구향토문화연구소.손태룡(2012). 대구지역의 기생단체 연구, 한국학논집 46,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송기영(2011). 정소산의 예술 활동이 대구 근대 무용사에 끼친 영향, 모드니 예술 5집,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송방송(2003). 京城放送局에 출연한 藝妓의 공연활동, 한국근대음악사연구, 민속원.송방송(2007). 증보한국음악통사, 서울: 민속원.宋芳松(2012). 한겨레음악인대사전, 서울: 보고사.송방송·이진원(2007).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 민속원.안제승(1984). 한국신무용사, 승리문화사.윤미라(2000). 대구 달구벌 입춤의 전승과 변형에 관한 연구, 대한무용학회 제28호.윤현숙(2007). 대구지역 무용의 흐름에 관한 연구,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이규리(2004). 朝鮮後期 外方官妓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이병옥(2011). 영남춤의 생태민속학적 고찰, 한국무용연구, 29권 2호, 한국무용연구학회,이병옥(2013). 한국 전통춤의 분류와 양식적 특징: 정병호의 분류법 검토를 중심으로, 공연문화연구 27권.이숙영(1995). 지역문화 예술로서 현대무용의 활성화 방안 : 광주,대구,부산 지역 공연관람자를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이숙재(1999). 技波 金湘圭 삶과 예술, 그리고 작품세계의 재조명, 한국 근대춤 인물사(1), 송수남 엮음, 현대미학사.이은주(2007). 춤 33인, 푸른미디어.정순영(2013). 대구춤 60년사, 사단법인 다다.주연희·구본숙(1993). 대구예술 삼십년사. 대구: 대구예총.채명·박정희(2010). 춤신을 만나다 권명화, 대구동구팔공문화원.채희완(2013). 춤창작과 비평에 예술공학 시스템을 도입함, 대구춤 60년사, 정순영 저, 사단법인 다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1998).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 민속원.錄音文獻學會(昭和11). レコド文化發達史.<광무대(光武臺)>(한겨레음악대사전, 2012.11.2. 도서출판 보고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48646&cid=42607&categoryId=42607.<한국근대의 음악원형>(http://music.culturecontent.com) 참조.<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대정권번(大正券番)>(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지방의 권번>(기생 이야기-일제시대의 대중스타, 2007. 7. 5, ㈜살림출판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87073&cid=42967&categoryId=42967.<조선 기생>, 연예인이 되다 – 역사채널e 2016.06.14. http://blog.naver.com/eunayoon715/220725445504.『매일신문』. 1958.8.10.『동아일보』. 1958.8.13.『매일신문』. 1958.8.9., 9.1.『매일신보』. 1972.11. 16.『매일신보』. 1914.1.28.-6.11.『대구시보』. 1948.9.23.월간 대구문화. 2007.4월호.이생강 면담, 2013, 면담자: 김죽엽.한순서 전화면담, 2016.7.13. 면담자 : 이병옥.한순서 면담, 2010~2013, 장소: 강태홍춤연구소, 면담자: 이병옥.권명화 전화면담, 2016.7.16.~18(3회), 면담자: 이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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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취임 연주회 '건·곤·감·리' 개최대구시립국악단 제210회 정기연주회 ‘건·곤·감·리’가 오는 7일 오후 7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다. 이날 공연은 지난 7월 부임한 신임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제8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의 취임 연주회다. 한편, 이번 공연의 사회는 우리나라 1세대 국악 평론가인 윤중강이 맡는다. 공연의 첫 문은 춤과 관현악 '축연무'가 연다. 박범훈 작곡의 국악관현악곡 '축연무'에 대구시립국악단 한국무용팀의 창작무가 곁들여진다. 이 곡은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고, 경쾌한 리듬에 고양된 악상이 이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춤으로 축하의 의미도 더한다. 그 다음으로 '뱃노래'는 한·중·일 삼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민족악단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창단 음악회 때 초연된 곡이다. 우리나라 민요 '뱃노래' 가락을 주선율로, 나발·북·징 등이 존재의 힘에 대해 묘사하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국악가요 무대가 준비된다. MBN '조선 판스타'에서 최종 우승한 '김산옥'과 국립창극단 부수석 '민은경'이 무대에 오른다. 민은경은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아리요' 등을 준비하며, 김산옥은 '상사몽', '아름다운 나라', '열두달이 다 좋아'를 들려줄 예정이다. 송가인의 친오빠 조성재가 이끄는 '우리소리 바라지'가 타악협주곡 '무취타'를 대구 초연으로 선보인다. 이어 평소 접하기 힘든 개량민속악기 장새납 협주곡도 선보인다. 북한의 개량 민속 악기인 '장새납'은 태평소(새납)를 개량하여 길이를 늘이고, 키(Key)를 단 것이 특징으로, 오보에·색소폰·태평소의 음색을 조합한 것 같은 독특한 음색을 낸다. 한국개량악기협회장 이영훈 한국 개량악기 협회장이 '열풍'과 '용강기나리'를 통해 관현악의 민족적 색채를 살려냄과 동시에 민족목관악기 장새납의 익숙한 듯 낯선 매력을 전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타악 협주곡 '무취타'가 장식한다. '무취타'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무속장단을 활용하여 표현한 타악곡으로, 중견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가 무대에 선다.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는 "연주자로, 지도자로 오랜 시간 익히고 쌓은 경험을 토대로 대구시립국악단의 발전과 또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우리 대구시의 전통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며"다른 곳은 국악관현악단인데, 대구시립국악단에는 무용단이 있어 '가무악일체' 공연이 가능하다. 성악(판소리)도 인턴 단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계약이 만료되면서 함께 못하고 있다. 추후 여건이 된다면, 가무악일체의 단체로서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이어서 "이번 '건·곤·감·리' 무대에서 '가무악(歌舞樂)일체'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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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민족음악교류협회, 퓨전 판소리 ‘풍류판스타’ 13일 개최아시아민족음악교류협회 퓨전 판소리 공연 '풍류판스타'가 13일 오후 6시 담양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개최된다.11일 담양군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아시아민족음악교류협회 주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와 담양군이 후원하는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민간 예술 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으로, 길지 않은 공연 시간과 화려한 무대효과로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기획됐다. 1부는 전통국악공연으로 구성, 한국 최고의 명인 명창 명무들의 무대로 관객들에게 한국 전통음악의 깊은 심금을 울리는 성음의 공연을 선보인다.2부는 다양한 방송매체 오디션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두 소리꾼의 협업 무대로 전통 소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적 장르를 교차한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특히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조선판스타 우승자 김산옥과 가야금 명창 소리꾼 임재현의 듀엣 무대를 편성해 관객에게 역동적이고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사한다.이병노 담양군수는 "담양문화회관에서 진행하는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문화 접근성을 확대해 지역 문화 격차를 해소하겠다"며 "군민과 관광객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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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978년 중국 인민출판사 발행 ‘정률성가곡선(鄭律成歌曲選)’최근 광주에 ‘정률성기념공원’ 설립 계획으로 보훈부와 광주시가 격돌하고 있다. 정률성은 김산과 연결되는 인물로 주목된다. 다음 김연갑의 ‘한국아리랑문화’에서 인용한다. "김산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은 어떤 계기에 획득하게 되었을까? 하나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을 수 있다. 나운규와 같은 자연스런 계기이다. 둘은 일본과 중국 등의 항일단체나 모임 등에서 듣고 인식했을 수도 있다. 특히 영화‘아리랑’에서 깊게 인식하는 계기였을 수도 있다. 당시 의식있는 이들이 영화‘아리랑’을 통해 민요 아리랑의 저항성과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의 힘에 영향을 받은바가 크기 때문이다." 셋은 음악전문가로부터의 학습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세 번째로, 1933년부터 중국에서 활동한 정율성을 남경에서 만나는데, 이로부터 아리랑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다. 정률성은 12억 중국인에게는 익숙한 ‘연안송(延安頌)’과 ‘팔로군행진곡(八路軍行進曲)’으로 중국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1914년 전남 광주 출신으로 중국 현대음악의 대부로, 중국에서 1976년 작고 후, 중국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물이다. 1939년 영안에서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인정된 노래다. 이 노래를 비롯해서 무려 360곡을 작곡했다. 이 중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항일가요 ‘연안송’은 ‘중국 아리랑’으로도 통할만큼 유명한 노래다. 정률성은 1936년 5월 1일 ‘5월문예사’ 창립대회에서 ‘의용군행진곡’을 부르고 중국어로 설명하고 ‘아리랑’을 불렀다. -제가 이번에 부를 노래는 중국 가요가 아닌 조선의 노래 ‘아리랑’입니다. 이 노래는 조선 사람들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즐겨 부르는 민족의 노래입니다.- 이상의 사실에 대해서는 주취도의 증언이 있다. "나청이 청년학생들의 심리를 틀어잡는 연설을 하고, 정률성이 ‘아리랑’이라는 비장한 곡조의 조선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는 전투적인 친선이 맺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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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문화재단, 국악과 재즈의 어울림,서석당에서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이 오는 12일 토요일 국악창작무대‘퓨전국악 재미난 노래’를 서석당에서 진행한다.이날 공연단체 ‘화양연화’가 연주할 프로그램은 국악 창작연주곡과 우리소리를 재미나게 편곡한 노래 곡들로,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협연을 선사할 예정이다. 당일 약 60분간의 공연은 9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였다. 대금, 비올라, 피아노, 베이스로 구성한 △꽃길을 시작으로, 뮤지컬 드라마 ‘벽속의 요정’ OST로 1월부터 12월까지 모든 달의 매력을 흥겨운 리듬으로 읊어 나가는 창작국악가요 △열두 달이 다 좋아, 음악을 그리는 다섯 개의 줄처럼 우리도 다양한 모양으로 점과 선을 이어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노래한 △오선지, 춘향가 중 사랑가를 모티브로 한 △내 사랑아,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한 △난감하네, 이어서 △얼씨구나 좋다 △어느 날 △퓨전 아리랑이 뒤이어 펼쳐지며, 마지막 곡으로는 국악과 재즈세션으로 편곡한 △아름다운 나라로 마무리한다. 이날 공연에는 토요상설공연의 사회자 △김산옥이 소리꾼으로서 오랜만의 무대를 펼칠 예정이다. 화양연화 팀은 △강윤숙(피아노/리디안팩토리 대표) △김보람(가야금/제23회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 우수상) △한수정(베이스/베이스/소리바다BEST K-MUSIC AWARDS 블루카펫 퓨전국악팀 연주) △이지유(대금/퓨전국악팀 화양연화, 퓨전국악팀 라부 소속) △정선희(비올라/여순1019-동백지다 총괄기획) △윤영훈(장구,드럼/NS재즈밴드 소속) △판소리 김산옥(소리/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장원, MBN조선판스타 우승) △권선아(태평소/퓨전국악 그리샤 대표)로 구성된 지역 국악 단체이다.다음주 19일(토) 오후 3시에 열리는 8월 토요상설공연 연희ㆍ무용 무대는 지역청년무용단체 더문댄스컴퍼니의 ‘우리 춤으로 바라본 사계’로 서석당에서 준비하고 있다.공연은 현장 관람이 가능하며, 전통문화관 유튜브를 통해서도 실시간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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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재즈가 하나로…순천만정원박람회 크로스오버 공연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을 품격 있게 채울 세계적인 재즈 그룹 '지리(CHIRI)'의 크로스오버 콘서트가 26일과 27일 오후 7시 오천그린광장에서 열린다. ‘지리(CHIRI)’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배일동 명창과 호주의 재즈 드러머인 사이먼 바커,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스콧 팅클러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이다. 판소리 드럼 트럼펫 피아노 연주가 더해진, 동·서양의 선율을 결합한 퓨전 음악을 선사한다. 어떠한 가림막도 없이 탁 트인 잔디 광장에서 펼쳐지는 '지리'의 공연은 배 명창의 소리와 재즈 연주가 있는 그대로 전해져 관람객에게 더 큰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은 1시간가량이며, 즉흥적인 소리와 연주도 더해질 예정이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24일 "박람회장에서 지리의 공연과 함께 서서히 저무는 노을, 그리고 화려한 경관으로 물들어가는 밤의 정원이 주는 매력도 같이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일동 명창은 순천 출신으로 순천만정원박람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를 중심으로 모인 ‘지리(CHIRI)’는 판소리와 재즈를 한 데 엮어 새로운 음악 장르를 선보이며 국내는 물론이고 호주, 미국, 이집트 등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6월 오천그린광장에서 최백호&동화락 콘서트(2일 오후 4시), 남상일·박구윤·김산옥 공연(3일 오후 5시), 나윤선 콘서트(7일 오후 7시)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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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현악 차세대 지휘자 2인, 작곡자 4인 만나다국악관현악을 이끌 젊고 참신한 2명의 지휘자와 4명의 작곡자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과 함께 푸른 열정과 서로의 색다른 음악적 해석을 더한 공연으로 관객을 찾는다.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 창작악단(예술감독 이용탁)의 기획공연 ‘청춘, 청어람’은 지휘자 발굴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악관현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2019년부터 시작한 창작악단의 신진 예술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특히 올해는 국악관현악 작곡가까지 공모를 확장해 신진 지휘자와 작곡가의 열정 넘치는 무대를 11월 11일(금), 12일(토) 양일간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선보인다. 젊은 예술가들의 신선한 에너지가 집결하는 국악과 현악 무대 지난 5월에 진행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재훈, 유숭산 지휘자는 최근 국악관현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과 색다른 음악적 해석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차세대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35세 이하의 젊은 작곡가들의 국악관현악 작품도 공모해 김산하(잎맥의 길), 조희원(신시), 김준호(국악관현악을 위한 인왕제색도), 최민준(대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해치)이 이번 공연의 작곡자로 선정되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이들의 공연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협연곡 1곡과 관현악곡 3곡을 포함하여 총 7곡의 국악관현악 작품으로 구성된다. 11일에는 이재훈, 12일에는 유숭산 지휘자의 지휘로 각자의 해석을 통해 색다른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국악관현악을 빛낼 차세대 지휘자 이재훈, 유숭산 11일 무대에 오르는 이재훈 지휘자는 타악을 전공하고 현재 청주시립국악단에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재원이다. 더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해 지휘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는 한양대학교 박사과정에서 지휘를 공부하며 음악적 폭을 넓히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음악 오케스트라 ‘바론’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있으며, 국립국악관현악 ‘지휘자 프로젝트’에도 선발되어 차세대 지휘자로 주목받고 있다. 12일 선보이는 유숭산 지휘자는 서양 클래식을 전공했다. 바이올린, 피아노 등 악기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지휘, 작곡까지 영역을 확장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로 정치용을 사사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국악지휘를 전공하고 있다. K-arts국제작곡콩쿨 1위, 김해가야금경연대회 작곡부문 대상 등을 수상하며 작곡 실력도 겸비한 그는, 지휘자로서 작곡가와 폭넓게 소통하며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활력이 될 작곡자 김산하, 조희원, 김준호, 최민준 음악적 해석 더한 두 지휘자의 서로 다른 색다른 무대 지휘자와 함께 올해 처음 선발한 신진 작곡가는 김산하, 조희원, 김준호, 최민준으로 국악계에서 보기 드문 젊은 작곡자다. 공연 첫 날인 11일에는 이재훈의 지휘로 김산하와 조희원의 작품이 연주된다. 김산하 작곡의 ‘잎맥의 길’에서는 잎에서 뿌리까지 흐르는 나무 속 물을 음악으로 만날 수 있고, 조희원의 작품 ‘신시(神市)’에서는 환웅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도읍지 ‘신시(神市)’를 소재로 신화적 서사를 들려줄 예정이다. 둘째 날인 12일에는 유숭산의 지휘로 김준호와최민준의 작품을 소개한다. 김준호의 ‘인왕제색도’에서는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음악적으로 그려내고, 최민준의 ‘대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해치’에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전설 속의 동물 ‘해치’를 표현한다. 각 작곡자의 작품 외에도 황호준 작곡의 ‘바르도’ 작품은 이틀 모두 선보여 두 지휘자가 각기 표현하는 음악적 색채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이재훈 지휘자는 미묘한 장단의 변화를 활용한 감정적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표현으로, 유숭산 지휘자는 풍부한 화음의 주제 선율을 조화롭게 섬세하게 표현해 각자의 음악적 색채를 짙게 드러낼 예정이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연주로 접할 수 있는 이번 ‘청춘, 청어람’은 오는 11월 11일(금) 오후 7시 30분과 12일(토) 오후 3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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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61)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사단법인 임방울국악진흥회에서는 산호주와의 러브스토리를 임방울의 생애사로 공식화하고 있다. 임방울이 일약 스타로 등장하자 고향인 광주의 송학원에서 기관장들이 환영파티를 열었고 여기서 소년시절의 연인 김산호주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요릿집 송학원은 결혼생활을 청산한 산호주가 운영하고 있었다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연정이 불타올라 두문불출 2년여를 함께 지내게 된다. 전속계약을 한 레코드사에서 난리가 났겠다. 이내 선천적인 목조차 상하게 되자 낙심한 방울은 지리산 토굴로 독공에 들어간다. 그리움에 사무친 산호주가 수소문하여 찾아가지만 방울은 만나주지 않는다. 결국 깊은 병에 든 산호주가 죽게 되어서야 만나게 되었고, 애달픈 마음으로 '추억'을 지어 불렀다는 것 아닌가. 천이두의 주장대로라면 이 사건 이후부터 추억은 쑥대머리와 거의 유사한 빈도의 레퍼토리가 된다. 진흥회에서 공식화한 '추억'의 녹음은 1930년 콜롬비아 레코드이고, 1933년 오케 레코드에서는 추억(亡妻를 생각함)이라는 제목으로 김종기가 장고 반주를 한다. 최동현의 연구에 의하면 '추억'의 첫 음반은 단가 '편시춘'과 함께 1932년 10월 콜롬비아에서 발매된다(Columbia 40370). 1934년 1월 시에론(Chieron 151)에서는 '사망처(죽은 아내를 생각함)'로 발매되었고 1934년 2월 오케에서 발매한 '추억'에는 '작사 임방울'이라는 표기가 있다. 문제는 최동현의 지적처럼 '사망친난 단가'가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부인의 죽음을 애달파한 이 노래가 추억과 유사하다는 것이 쟁점이다. 한편 문순태의 '팔도명인전'(전남매일신문, 1975. 12월)에 의하면 임방울이 유성준 문하에서 공부하던 시절 화순의 여섯 살 연상 월향이라는 기생과 사랑을 하게 된다. 눈치 챈 유성준에게 야단을 맞고 지리산 토굴로 들어가 독공을 하여 본인 스타일의 소리를 완성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임방울이 열네 살 무렵 스승으로 모시는 공창식의 스토리 또한 유사하다는 점이다. 박유전, 이날치, 김채만 등의 서편제 소리를 계승한 공창식이 인기를 독점할 무렵, 어느 재상의 첩이던 보영이라는 여자와 불타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랑의 농도가 너무 심하였던지 극도로 몸이 쇠약해진다. 이후 능주로 내려오게 되었고, 보영으로부터 맨발로 도망쳐 나왔다 해서 '맨발의 공선생'으로 불려졌다 한다. 모두 김산호주 스토리와 같은 구성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송학원 주인이었다는 김산호주가 어린 시절 연인이었는지 장성하여 맺은 인연인지, 본명이 아닌 기명(妓名)인지, 월향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유명한 소리꾼들은 모두 망처가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임방울의 여성편력을 일정한 서사에 얹어 스토리텔링한 것일까? 임방울이 유명해지자 후대의 누군가가 각색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서가 사실은 대표곡 쑥대머리와 상통한다는 점만큼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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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60)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천이두의 '명창 임방울'(위대한 한국인7, 한길사, 1998)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광산 김씨네 농가로 거슬러 오른다. 임방울이 고용살이를 했던 것일까? 주인집 딸 산호가 등장한다. 방울과는 동갑내기, 소리꾼으로 성공하지 못한 채 소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 임경학이 아들을 농사꾼으로 만들려고 고용살이를 보낸 풍경이 묘사된다. 여차여차하여 방울은 산호네 집을 떠나게 되고 박재실 문하에서 소리공부를 시작한다. 박재실은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등 당대의 최고 소리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선생이다. 시대의 요청이었을까. 임방울은 공창식 등 선생들에게 사사받으며, 타고난 천구성과 수리성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각종 레코드 취입은 물론 전국 순회공연을 도맡아 하던 때의 대표곡이 쑥대머리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웅얼거렸을 노래 쑥대머리의 유행을 일제강점기의 나라 잃은 풍경에 대입해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이몽룡을 기다리던 옥중 춘향이의 심정이, 광복을 기다리던 조선 사람들 마음의 투사라는 뜻이다. 이 상실감의 정서는 해방이 되고나서도 이어진다. 어쨌든 대성공을 거둔 방울이 고향으로 돌아와 연인 산호주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순애보의 레퍼토리가 작동된다. 각기 혼인한 사이지만 사랑했던 연인, 송학원이라는 요릿집을 운영하던 산호는 이미 병들어 있다. 문순태 등이 채집한 정보를 보태면, 임방울은 산호주와의 사랑을 뿌리치고 동굴에서 소리를 연마해 성공한다. 판소리 예술을 위해 산호주를 거부한 셈이다.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들 속에 러브스토리의 결말이 애처롭다. 결국 산호가 임방울을 연모하며 죽었다는 것 아닌가. 천이두가 쓴 임방울 전기는 사실일까 소설일까. 내용 전반이 산호와의 사랑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측면을 보면 소설에 더 가깝다. 김산호주와의 러브스토리는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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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의병정신 기리는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2022년 경상북도 선정 공연지원사업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가 14일 구미강동문화복지회관 천생아트홀과 24일 대구 어울아트센터 함지홀에서 전석 무료공연으로 막이 오른다. 구미시가 주최하고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가 구미시에서 매년 주관하는 제14회 '구미의병아리랑제'의 일환으로 '왕산 허위'의 의병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창작 소리극이다. 행사의 취지와 목적은 구한말 대표적인 의병장이자,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 왕산 허위선생의 구국헌신을 통해 이룩한 숭고한 의병정신을 계승하고, 허위선생과 함께 이름없이 스러져간 의병들의 의병활동을 전국에 알리려는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왕산 허위의 의병활동과 함께 구미에 설립된 '왕산허위기념관'과 대구지역 달성공원 내 소재한 ‘왕산허위선생 순국기념비’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왕산 허위’ 의병장의 존재와 허훈·허겸·허위 3형제가 구국운동에 나서는 의로운 봉기를 기리기 위해,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가 창작 아리랑 '구미의병아리랑'을 통해 부각된다. 국권 회복에 투신한 일가족의 희생과 활약상이 제시된다. 줄거리는 허위선생의 업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허위는 형제 중 포부와 경륜이 남달랐다. 허위는 김산에서 거의하여 뜨거운 의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1896년 4월 7일 충청북도 진천에서 ‘의병을 급속히 해산하라’는 국왕의 봉서를 받는다. 이에 허위는 "호남 3월에 오얏꽃 날리는데/ 보국하려던 서생이 철갑을 벗는다/ 산새는 시국 급할 줄은 모르고/ 밤새도록 나를 불러 불여귀(不如歸)라 하네.”라고 통분한다. 이러한 허위의 의병정신의 혼을 아리랑 선율에 담았다. 구미의병아리랑(작사 작창:배경숙)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야/아리랑 어얼싸 아라리요(후렴) 여봐라 우리네 대장군 나셨다/13도 창의대진 군사장이시다 노래하라 외쳐라 우리네 의병장/기린다 우리는 왕산허위 대장군 나시니 구미땅 임은동이요/서시니 경술년 30조호령이다 오얏꽃 날리는 3월이 오면/밤새도록 노래하라 그립다 하여라 1904년 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조인되고, 일제의 침략 야욕이 드러나자 전국에 ‘배일통문’을 돌려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고 전국민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또 친일매국단체인 일진회가 조직되자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였며 이듬해 3월 일제의 압력으로 4개월 동안 헌병사령부에 구금되었다 강제로 귀항 조치를 당했다. 1907년 9월 경기도 연천, 적성, 철원 등지를 무대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친일매국분자를 소탕하는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국 각지의 의병 1만여 명이 모여 '13도 연합의병창의군'(13道聯合義兵倡義軍)을 결성하였다. 1908년 12월 전국 의병장들의 통합 의병 부대인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 군사장(軍師將)을 맡았다. 1908년 5월 통감부에 30여 개의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투쟁하던 중 6월 11일 경기도 포천에서 체포되어 9월 18일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21일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외세에 대항한 구국항쟁을 펼친 위대한 삶이었다. 임규익 회장은 "이번, 구미 지역 정신문화를 계승하는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는 구미와 대구 지역을 순회하는 2회 공연으로 마련하였다. 왕산 선생의 숭고한 애족정신과 가족과 후손들의 만주 항일투쟁의 이야기 일부를 창작 민요극에 담아내려고 한다." 이어 "예와 충절의 상징인 금오산의 인문정신은 인류무형문화유산 '구미아리랑'에 담았고 창의군의 외침과 왕산의 호령을 창의가 '왕산의병아리랑'에 담았다"라고 전했다. 영남민요의 실기와 이론을 전공한 배경숙 예술감독은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의병정신을 기리고자 구미의 허위 의병장의 의병활동을 재조명하고자 마련한 소리극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당시 의병은 왜구의 총칼에 죽으면서 "우리는 외적으로부터도 적이고, 조국으로부터도 적이었다고" 울부짖으며 스러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어느 시대에서든 외세에 대항하여 가족과 나라를 지키려는 의병은 전국에서 불같이 일어나 봉기했다. 말 그대로 ‘의로운 군인’(義兵), 의병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특히 구미 선산 칠곡지역에는 이름없이 죽어간 의병들이 많다. 이러한 숭고한 의병정신을 의병아리랑의 사설에 담아서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완성한 소리극을 통해 의병정신을 시민들과 청소년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영남지역에서 전래되어 오고 있는 방아타령,맷돌질소리,물레소리,나물노래 등의 영남민요가 여느 지역 민요하고는 다르다. 영남조로 내지르는 투박미와 억양의 야생성이 이채롭다. 특히 당시 민중의 한과 생활상을 전통소품인 지게와 목발, 절구, 물레, 맷돌, 꽃상여 등을 통해 재현하는 무대는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다. 총괄기획에는 김강수. 작·연출에는 김필범이 맡았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14일과 24일 구미 왕산허위기념관 탐방과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 공연 관람을 위한 단체 신청이 20명까지 모집을 한다. 문의처는 070-4447-436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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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아리랑 창단 10주년 기념음악회광야의 아리랑- 작곡 황호준 아리랑랩소디 - 작곡 이지수 민요연곡 - 소리 이지원, 이송연 아리랑환타지 - 작곡 김기범 바람의노래 - 작곡 홍정의 / 마림바 김지향 가난한사랑노래 - 작곡 박승희 / 바리톤 오세민 넬라판타지아 - 작곡 엔리오 모리꼬네 / 장새납 이영훈 열풍 - 작곡 정상진 / 장새납 이영훈 쑥대머리 - 작곡 박승희 / 소리 김산옥 이순신 다시 이땅을 - 작곡 황호준 / 노래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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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그룹 프로젝트 앙상블 련....‘광주 판스타’광주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루트머지에서 주최, 주관하는 이번 음악회는 문화예술도시 광주에서 열리는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국악 콘서트이다.이번 콘서트 ‘광주 판스타’에서는 광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광주 국악 그룹들이 총출동한다. DJ춘디, 서희선 소리꾼과 함께하는 "EDM 어사출두”를 시작으로 제13회, 제15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수상한 바 있는 실력파 국악 그룹 프로젝트 앙상블 련의 "심방곡”, 창작국악부터 전통음악까지 넓은 음악적 스팩트럼의 루트머지 창작음악 "새타령”, 그리고 2021년 화재의 국악 오디션 MBN의 ‘조선 판스타’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고 대중성까지 겸비하게 된 ‘1대 조선판 스타’ 소리꾼 김산옥이 들려주는 "황홀한 고백”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선보일 예정이다.그 중 루트머지의 신곡 "루트머지와 함께 놀아요”는 분주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지친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두고 어릴적 꿈꿔왔던 염원을 이루고자 세상에 나와 노래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연은 오는 18일 18시 30분이며 광주 비엔날래 야외공연장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이날 비엔날레광장에서는 광주 북구청에서 주관하는 "미디어파사드 지역작가작품전"과 어린이 문화예술 체험프로그램인 "비엔날레 아트클래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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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23일 올해 첫 무대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이 올해 첫 정기연주회를 갖는다.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추진하는 시리즈 연주회 중 하나인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3’가 오는 23일 오후 7시30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펼쳐진다.올해로 세번째를 맞는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 시리즈는 광주와 전남 일대의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된 전통예술을 발굴해 작품으로 개발하고 무대화해 시민과 함께하는 공연이다.이번 공연에는 시립국악관현악단 한상일 지휘자의 지휘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기명창 김영임과 대한민국 최초 퓨전 국악 오디션 ‘조선판스타’ 우승자인 김산옥 등 국악계 스타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어서 티켓팅부터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첫 무대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류’(작곡 조원행)이다. 시립국악관현악단만을 위한 위촉 작품인 ‘류’는 새로운 흐름의 한국음악을 관현악을 통해 풀어낸 곡이다.이어 국악관현악으로 ‘진도 들노래’를 들어본다. ‘진도 들노래’는 전남 지역의 농요 중 하나로, 봄철 논을 갈고 못자리에 모가 자랄 때 농민이 품앗이 하면서 선창과 제창으로 부르던 노동요이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국악가요와 경기민요가 연달아 관객과 만난다. 먼저 국악인 김산옥이 ‘조선판스타’ 무대에서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던 ‘인연+이별가’와 ‘Hit Me+제비노정기’ 등 국악과 인기가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곡들을 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명창 김영임은 국악관현악곡과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을 붙여 김영임만의 소리를 ‘한’으로 풀어낸 오케스트라 ‘한’을 시작으로 세마치 장단의 경쾌한 느낌을 주는 ‘해주 아리랑’과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어업노동요인 ‘뱃노래’ ‘잦은뱃노래’ 등을 잇달아 들려준다.공연의 피날레는 타악협주곡 ‘신모듬 3악장’을 사물광대와 협연으로 장식한다. 경기 이남지방의 무속 음악에서 비롯된 ‘신모듬 3악장’은 신명나다·신바람 등의 ‘신’과 어울린다·모으다 등의 ‘모듬’이 합성된 것으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창작곡이다. 민속악장단의 역동성에 바탕을 둔 이 곡은 태평소와 사물놀이의 신명난 가락에 잘 담겨 있다. 흥과 신명을 사물놀이로 더욱 고조시켜며 마지막 정점에서 끝을 맺으면서 전체적 타악 가락 구성이 충정·전라·경상도 등 삼도의 흥겨운 가락이 특징이다.한편,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의 올해 첫 공연인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3’ 공연은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공연 안전 수칙을 준수하며 운영된다. 티켓은 광주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와 티켓링크에서 예매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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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남도국악원·전통문화관 토요상설공연28일 오후 3시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에서는 문명자 무형문화재를 초청해 ‘수궁가’ 공연을 올린다.국악인 김산옥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무대는 김서윤·김혜인 광주시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이수자의 단가 ‘중장망혜’로 문을 연다.이어 문명자 광주시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가 수궁가 전 대목을 고품격 가야금병창으로 펼칠 예정이다.문명자 보유자는 수궁가 초입 ‘용왕이 병이 들어 탄식하는 대목’부터 ‘토끼가 수궁에서 살아나와 좋아라고 노는 대목’까지 가야금병창으로 소리하고,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김청만이 함께한다.이번 공연은 현장 관람이 가능하며, 전통문화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도 실시간 생중계한다. 문의 062-670-8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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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문명자 가야금병창,광주전통문화관 서석당가야금병창과 오케스트라 무대가 광주에서 잇따라 펼쳐진다.광주문화재단은 28일 오후 3시 전통문화관 서석당에서 토요상설공연 '무형문화재 문명자 가야금병창-수궁가'를 선보인다.국악인 김산옥이 사회를 보는 이번 무대는 광주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이수자 김서윤·김혜인의 단가 '죽장망혜'로 문을 연다.이어 문명자 광주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가 '수궁가' 전 대목을 연주한다. 문명자 보유자는 수궁가의 초입 '용왕이 병이 들어 탄식하는 대목' 부터 '토끼가 수궁에서 살아나와 좋아라고 노는 대목'까지 가야금병창으로 들려준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김청만이 함께한다.공연은 현장 관람이 가능하며 전통문화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실시간 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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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아 가야금산조·정상희 판소리 무대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은 오는 30일 오후 3시 토요상설공연 판소리·산조 무대에 김한아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정상희 '동초제 흥보가 눈대목'을 선보인다고 밝혔다.국악인 김산옥의 사회로 진행되는 첫 무대는 김한아 씨의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다. 가야금산조 중 가장 화사하고 경쾌한 가락으로 구성돼 농현의 기교가 요구되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는 여느 산조보다 조의 구분이 뚜렷하고 변화무쌍하며, 장단의 다채로운 변화가 특징이다. 가야금 연주와 산조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번 무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 광주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김동현 교수의 장고와 함께한다.김한아 씨는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박사 출신으로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단원과 광주가야금연주단 단장, ㈔한국가야금연주가협회와 ㈔최옥삼류가야금산조보존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이어지는 무대는 정상희 씨의 동초제 흥보가 눈대목이다. '가난타령부터 흥보 첫째 박 타는 대목'은 가난한 흥보가 신세를 한탄하며 울음을 우는 대목과 은혜를 갚기 위해 제비가 물어온 박 씨를 심어 그 박에서 온갖 보물이 나와 부자가 되는 내용이다. 동초제 판소리는 유성준, 송만갑, 정정열에게 사사한 동초 김연수(1907-1974) 선생이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동초제 흥보가는 평민들의 삶의 소리와 우람한 소리가 서로 융합되어 다채로우며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설이 정확하고 동작과 너름새가 정교하며 장단의 부침새가 다양하다.고수 박상주 씨는 전주대사습놀이 명고수부에서 장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로 현재 정읍시립국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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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광주 국악 상설 공연'광주문화예술회관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과 함께 관람하기 좋은 기획공연 '즐거운 樂'을 포함해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 할 수 있는 국악상설공연을 준비했다고 26일 밝혔다.5월의 첫 국악상설공연은 3일 국악그룹 각인각색 팀이 액운과 잡귀를 물리치고 마을의 무사와 안녕을 가져다주는 '사자탈춤'을 시작으로 재담꾼의 익살스러운 재담과 함께 아슬아슬한 '버나놀이'를 펼치고 관객과 함께 버나 주고받기도 하는 체험 등 신명나는 무대를 선보인다.5일에는 루트머지 팀이 어린이날을 맞이해 '어린이 국악극 천개의 이야기'라는 볼거리가 풍성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과 국악 라이브 연주 '아주 먼 옛날'을 시작으로 국악 요정 캐릭터와 함께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7일에는 기획공연 '즐거울 樂Ⅰ'을 주제로 어릴 적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작창과 컨츄리 음악을 가야금과 접목시킨 '어머니와 고등어' 등 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의미 있는 공연을 마련했다.13일에는 '즐거울 樂Ⅱ'로 조선판스타 제1대 우승자인 김산옥의 대표곡인 '떳다 보아라'와 국민가수 이선희의 명곡인 '인연' 춘향가 중 이별가를 덧대어 국악적으로 편곡한 새로운 버전의 '인연' 등 국악과 현대의 감성에 맞춰 만들어진 전통국악을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형식으로 공연한다.18일에는 작곡그룹 촉이 '달 봉우리 빛나는'을 주제로 광주에서 전해지는 아사에 관한 설화와 월봉서원, 두 개의 소재를 엮어 만든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연출한 창작가무악극을 무대에 올린다.이 공연은 이승과 저승의 사잇길에 머물며 길 잃은 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아사'가 조선시대 비운의 유학자 '기대승'과 5·18민주항쟁 때 죽은 광주일고 학생 '이원준'이 그 길을 함께 지날 수 있도록 돕는 이야기이다.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두 사람이 사잇길에서 만나 생기는 재밌고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국악 선율과 함께 그려냈다.이 밖에도 5월 한 달간 광주시립예술단(국악관현악단, 창극단)과 민간예술단체 13개 팀이 새로운 레퍼토리를 더해 한층 짜임새 있는 판소리·사물놀이·단막창극 등 다채로운 국악 공연을 선사한다.광주문화예술회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시민이 어디서나 국악공연을 즐기도록 매주 화~토요일 오후 5시 광주 공연마루 공연장에서 국악상설공연을 운영하고 있다. 또 매주 토요일에는 온라인 공연과 병행해 유튜브로 실시간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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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의 만개한 로즈무도회' 곡성세계장미축제코로나19 영향으로 중단됐던 전남 '곡성세계장미축제'가 3년만에 화려한 장미 꽃망울을 터트린다.곡성군은 다음달 21일부터 6월 6일까지 17일동안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곡성세계장미축제'가 펼쳐진다고 20일 밝혔다.지난 2019년 이후 3년만에 열리는 이번 축제는 축제는 '골든로즈 시즌2-장미 무도회'를 주제로 진행된다.기존보다 2배 넓어진 7만5000㎡ 부지에 장미정원이 펼쳐졌으며 중국, 로마, 그리스, 프랑스, 영국 등 각 나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세계 정원이 새롭게 조성됐다.중앙무대에서는 축제 개막을 알리는 임창정과 육중완 밴드의 특별 공연이 진행되며 개막을 알리는 미니 뮤지컬 '물랑루즈' 공연, 팝 가수 비욘세와 브루노마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로즈 갈라콘서트가 펼쳐진다.주말에는 6070장미콘서트, 댄스팀 '미스몰리'의 공연, 김범수 등이 출연하는 장미 소울 콘서트가 열린다.6월 3일과 4일에는 이번 축제의 대표공연인 장미무도회가 진행된다. 탱고와 왈츠 공연이 펼쳐지며 관람객은 무료로 대여되는 드레스를 입고 참여할 수 있다. 축제 마지막 날인 6월 6일에는 국악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 김산옥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이 밖에도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일렉, 성악, 댄스, 트롯, 버스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지속된다.곡성군 관계자는 "곡성세계장미축제는 그동안 만족도와 화제성이 높은 축제였다"며 "3년만의 부활인 만큼 이번 축제는 화려한 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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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카, ‘방방곡곡페스타-희망의 다리를 놓다’ 성료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코카카)가 마련한 일상회복 힐링콘서트, ‘방방곡곡 페스타-희망의 다리를 놓다’가 20일부터 22일까지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특별기획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된 이번 페스타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선정 단체 중 민간예술단체 14개 단체뿐만 아니라 국내 정상급 예술인의 공연으로 구성돼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 백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일(일) 소극장 공연에는 전문 공연 해설자 김이곤의 진행으로 천하제일탈공작소, 연희공방 음마깽깽, 우리소리 바라지, 음악공장 노올량, 김계희 밴드, 우리음 연구소, 아프리카 타악그룹 아냐포가 출연했다. 21일(월)에는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진행으로 극단 초인, 극단 즐거운 사람들, 문화창작집단 공터 다, KCO 첼로 앙상블, 타펠 무지크, 아카시아, 비르투오조 트롬본 앙상블 등이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아나운서 손범수와 뮤직엔터테이너 송사비의 진행으로 열린 22일(화) 대극장 공연에는 2021년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선정 단체인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김광현), 국수호디딤무용단, ‘드라마틱 클래식(협연: 플루트 이예린, 바이올린 김현정)’,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국악인 이희문과 밴드 OBSG4BS, 국악인 김산옥, 바리톤 김주택,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민우혁 등이 출연하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날 공연 티켓은 오픈한 지 10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이번 페스타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해 진행했으며, 공연 실황은 예술방송 아르떼TV, 코카카 공식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코카카 이승정 회장은 "이번 방방곡곡 페스타는 우울감과 불안감이 큰 코로나 시대에 생업에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에게 희망의 무대를 제공하고 국민의 일상 회복에 도움이 되고자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코카카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예술인 일거리 창출과 국민 문화예술 향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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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카, ‘방방곡곡페스타-희망의 다리를 놓다’ 성료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마련한 일상회복 힐링콘서트, ‘방방곡곡 페스타-희망의 다리를 놓다’가 20일부터 22일까지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특별기획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된 이번 페스타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선정 단체 중 민간예술단체 14개 단체뿐만 아니라 국내 정상급 예술인의 공연으로 구성돼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20일 소극장 공연에는 전문 공연 해설자 김이곤의 진행으로 천하제일탈공작소, 연희공방 음마깽깽, 우리소리 바라지, 음악공장 노올량, 김계희 밴드, 우리음 연구소, 아프리카 타악그룹 아냐포가 출연했다. 21일에는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진행으로 극단 초인, 극단 즐거운 사람들, 문화창작집단 공터 다, KCO 첼로 앙상블, 타펠 무지크, 아카시아, 비르투오조 트롬본 앙상블 등이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아나운서 손범수와 뮤직엔터테이너 송사비의 진행으로 열린 22일 대극장 공연에는 2021년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선정 단체인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김광현), 국수호디딤무용단, ‘드라마틱 클래식(협연: 플루트 이예린, 바이올린 김현정)’,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국악인 이희문과 밴드 OBSG4BS, 국악인 김산옥, 바리톤 김주택,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민우혁 등이 출연하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날 공연 티켓은 오픈한 지 10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이번 페스타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해 진행했으며, 공연 실황은 예술방송 아르떼TV, 코카카 공식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코카카 이승정 회장은 "이번 방방곡곡 페스타는 우울감과 불안감이 큰 코로나 시대에 생업에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에게 희망의 무대를 제공하고 국민의 일상 회복에 도움이 되고자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코카카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예술인 일거리 창출과 국민 문화예술 향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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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회복 힐링콘서트 '방방곡곡 페스타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코카카)가 일상회복 힐링콘서트 '방방곡곡 페스타-희망의 다리를 놓다'를 20일부터 22일까지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다.'코로나로부터의 일상 회복, 예술이 응원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문화예술로 위로하고, 연이은 공연 취소와 연기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됐다.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에 선정된 민간예술단체 중 15개 단체와 국내 정상급 예술인들이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친다.20일 오후 5시 소극장 공연은 전문 공연해설자 김이곤이 진행을 맡는다. 무용단 두아코(DoArT&Co)의 'Silence: 무거워진 몸', 전통연희 풍물 단체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오셀로와 이아고', 전통인형극 단체 연희공방 음마깽깽의 '꼭두, 80일간의 세계일주', 전통 민속악단 우리소리 바라지의 '바라지-비손' 등이 공연된다.다음날인 21일 오후 7시 소극장에서는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진행으로 극단 초인의 연극 '스프레이', 극단 즐거운 사람들의 놀이극 '반쪽이 이야기', 문화창작집단 공터 다의 창작극 '아도가 남쪽으로 온 까닭은', 실내악단 KCO 첼로 앙상블의 '사계, 냉정과 열정 사이', 비르투오조 트롬본 앙상블의 'Trombone Odyssey', 고음악 단체 타펠 무지크의 '왕의 귀환' 등의 공연이 열린다. 22일 오후 7시 대극장 공연은 아나운서 손범수와 뮤직엔터테이너 송사비의 사회로 진행된다.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김광현)는 서곡 '희망의 초원' 등을 연주한다. '드라마틱 클래식(플루트 이예린, 바이올린 김현정 협연)',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아디오스 노니노', 국악인 이희문과 밴드 OBSG4BS의 '아리아리' 등도 연주된다.또 이날 특별 초청 프로그램으로는 '조선판스타' 우승자인 국악인 김산옥, 바리톤 김주택,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민우혁의 무대가 펼쳐진다.모든 공연은 무료로 운영되며, 행사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진행된다. 공연 종료 후에도 MBN에서 3월12일에 방송되며, 아르떼TV, 코카카 공식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이번 공연은 코카카가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특별기획프로그램' 일환으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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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입기·민속놀이 체험·국악''한복입기·민속놀이 체험·국악' 등 광주전통문화관 개관 10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광주문화재단은 융·복합 전통문화예술 프로그램 '2022 무등풍류 뎐'의 2월 첫 무대가 12일 펼쳐진다고 9일 밝혔다.'시민과 함께하는 전통문화관 10년 시민 동락(同樂)'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무대는 개관 10년을 되돌아보는 '시민 사진 전시', 임인년 나쁜 기운을 밀어내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세화시연·나눔' '축하공연' 등이 선보인다.전통문화관 곳곳에 시민이 촬영한 전통문화관 사진 20여점과 미술 작가의 예술성이 담긴 작품이 전시된다.또 조성숙 작가의 달달(月)한 공존, 오방(五方) 새 흔들개비, 소원 성취 의자, 류종원 작가의 자연 속에 스며들다, 최순임 작가의 꿈, 염원, 백자달항아리, 장건우 작가의 소원 들어주는 무등산 호랑이 할매 등 14점의 작품이 18일까지 펼쳐진다.행사 당일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복 체험 행사가 진행되며 행사 관계자에게 인증하면 선착순 50가족에게는 '쌀 2㎏’을 나눔한다.전통문화관 문간채에서는 광주시지정 무형문화재 탱화장 송광무가 직접 그린 임인년 세화를 만날 수 있으며 선착순 20명에게 증정한다. 현장에 온 선착순 20명에게는 송광무 탱화장이 직접 그린 세화 작품을 선물로 증정한다. 너덜마당에서는 전통연희놀이연구소의 진행으로 제기차기, 윷놀이, 굴렁쇠 굴리기 등 정월대보름 민속놀이 체험을 할 수 있다.서석당에서는 광주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의 판소리와 남도민요, 중견 실내악팀 '전통국악앙상블 놀음판'의 제석거리, 거문고와 춤의 향연 무대, 창작국악팀 '첼로가야금'의 운하·바다소리 등 다양한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휘날레는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출연해 남도민요 '육자배기'와 '진도아리랑'으로 불려진다. '2022 무등풍류 뎐' 2월 무대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대면과 비대면 행사로 진행된다.전통문화관은 광주지역 무형문화재 보존과 전승, 후진 양성, 지역 대표 전통문화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12년 2월 9일 개관했다. 사회와 해설은 국악인 김산옥씨와 이윤선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 맡아 공연을 더욱 맛깔나게 꾸밀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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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 24개 민속 종목 중계국내 최장수 민속축제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를18일부터 안방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62회 한국민속예술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지역 예선을 실시하지 못해 지난해에 참여한 단체가 대부분 재출전한 가운데, 영상을 촬영해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해설 영상은 '조선판스타' 우승자인 소리꾼 김산옥과 방송인 박요한이 사회를 맡고 민속 종목 전문 해설자 김헌선, 김광희, 박정경, 이윤선 등과 출연자들이 참여했다. 24개 민속 종목의 실연 영상을 중계하는 형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195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로 창설된 '한국민속예술제'는 탈춤, 강강술래 등 180여개 종목의 국가 및 지방무형문화재 지정, 11개 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등 전국에 산재하는 700여 종목의 우리 민속 예술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기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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