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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 심사위원 위촉식오는 9월 4일 일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인각사에서 주최하고, H. ART FACTORY에서 주관하는 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 심사위원 위촉식이 지난 28일 오후 1시 서울 동대문 라마다 호텔에서 열렸다.‘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 본부장인 호암 스님과 대회 조직위원장 국악인 박애리를 주축으로 판소리 부문 명창 김경숙, 명창 유수정, 명창왕기철, 명창 손양희와 심사위원 민요 부문 명창 권정희, 명창 최수정, 명창 남궁랑, 명창 유지숙이 자리를 빛냈다.대회 본부장인 호암 스님은 축사에서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는 삼국유사를 집필한 보각국사 일연의 업적을 기리고 전통음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경연 대회”라고 말했다. 아울러,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 조직위원회 대회 본부장인 호암 스님을 주축으로 대회 조직위원장 박애리와 공정한 심사를 위해 구성된 심사위원 판소리 부문 명창 김경숙, 명창 유수정, 명창 왕기철, 명창 손양희와 심사위원 민요 부문 명창 권정희, 명창 최수정, 명창 남궁랑, 명창 유지숙을 끝으로 위촉식이 진행됐다.이번 대회에는 첫 경연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국악 신동부터 신진 국악인이 주목하고 150명이 지원했다.심사위원 위촉식 후에는 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 예선 심사가 오후 2시부터 판소리 부문과 민요 부문, 유치·초등부, 중·고등부, 일반부(20세 이상) 분야로 5분 심사로 이뤄졌다. 예선 결과는 오는 8월 30일 화요일에 블로그 공지 개별 문자를 통해 공지된다.최종 본선 진출자는 총 30명으로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인각사 특설무대에서 9월 4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 대회 본선이 개최되며, 진행은 국악인 박애리가 진행한다.시상은 총합 장려상 12개, 우수상 6개, 최우수상 6개, 대상 6개 시상이며 총상금은 1840만원이다.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 대회 박문희 총연출은 "1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발판 삼아 앞으로 권위 있는 전통음악 등용문으로 정착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오는 9월 3일 토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인각사에서 주최하고, H. ART FACTORY에서 주관하는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인각사 특설무대에서는 ‘삼국유사’ 유네스코 등재 기원 화합 한마당 음악회가 개최된다. 삼국유사’ 유네스코 등재 기원 화합 한마당 음악회 진행은 개그맨 이정수와 배우 조수연으로 공동 사회로 진행된다. ‘삼국유사’ 유네스코 등재 기원 화합 한마당 음악회는 전통음악의 위상과 아름다움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마련된 음악회다.출연진은 인드라 스님, 가수 홍원빈, 가수 신나라, 가수 김태연, 가수 진성, 국악인 박애리,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이수자 권정희, 최수정, 명창 왕기철명창 왕기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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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신동들 나왔다...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대회 본선 성료지난 4일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인각사 특설무대에서 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 대회 본선이 개최됐다. 첫 경연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국악 신동부터 신진 국악인이 관심을 갖고 지원해 총 지원자 150명에서 추려진 최종 본선 진출자 30명이 향연이 펼쳤다. 판소리 부문과 민요 부문 유치·초등 3분 심사, 판소리 부문, 민요 부문 중·고등부는 4분 심사, 판소리 부문, 민요 부문 일반부(20세 이상)는 5분 심사로 이뤄졌다. 판소리(유치·초등부) 대상에는 정한솔, 최우수상에는 김선재가 차지했다. 판소리(중·고등부) 대상에는 김미나, 최우수상에는 김송아가 수상했다. 판소리(일반부) 대상에는 김설란, 최우수상에는 김현주가 거머쥐었다. 민요(유치·초등부) 대상에는 박지민, 최우수상에는 박지나가 수상했다. 민요(중·고등부) 대상에는 박세인, 최우수상에는 이서영이 받았다. 민요(일반부)에는 김민지가 대상을 수상했으며 김원주가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국악인 박애리가 경연대회 진행을 맡았으며 국악신동과 신진 국악인의 열창으로 대회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판소리 부문 심사위원은 총 5명으로 국립창극단 예술 감독을 역임하고 한양대학교 한국음악 국악과 교수인 유수정, 현 국립전통예술 중고등학교장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왕기철, 현 국립민속국악원장으로 전북 무형문화재 연합회장이자 전북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 보유자인 왕기석, 현 경상남도 판소리 보존 회장인 손양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이며 목포 제7회 전국판소리 명창 경연 대회 대통령상 수상자인 김경숙 등이 심사를 맡았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는 판소리 부문 유치·초등부, 중·고등부, 일반부 심사가 진행됐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민요 부문 유치·초등부, 중·고등부, 일반부 심사가 이뤄졌다. 민요 부문 심사위원 역시 총 5명이 맡았다. 현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7회 경기민요 이수자인 권정희,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과 교수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전승교육사인 유지숙, 현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이자 한국 전통민요 협회와 한국 정악원 이사인 강효주, 국악협회 전국 경서도 민요 경창대회 대통령상 수상자이자 중요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인 최수정, 전주 대습대회 장원이자 경기민요 57호 이수자인 남궁랑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경연 대회 중간 민요 명창 유지숙 심사위원의 축하 공연과 판소리 명창 손양희 심사위원의 축하공연, 국악인 박애리의 축하공연까지 더해져 본선 참가자들이 경연뿐 아니라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됐다. 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 심사 기준은 판소리, 민요 부문별로 동일하게 소리의 공력, 시김새, 성음, 가사, 장단으로 각각 20점 만점, 총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심사가 진행됐으며, 최종 점수가 동점일 경우 연장자가 앞 순위로 결정됐다. 시상은 판소리 부문, 민요 부문 총합 장려상 12개, 우수상 6개, 최우수상 6개, 대상 6개 시상으로 이뤄졌다. 총상금은 1840만원이다. 제1회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대회 조직위원장이자 사회를 맡은 국악인 박애리는 "이번 대회가 전통음악의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시간이었길 바란다”며 "대한민국 모든 국악 예술인과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 대회에 큰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 관람객은 "올해로 1회를 맞이한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 대회가 성황리에 끝마쳐 2회에는 권위 있는 전통음악 등용문이 돼 우리 전통음악을 널리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삼국유사 전통음악 경연대회는 일연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전통음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함”이라며 "삼국유사 전통음악경연대회를 국내 최고 전통음악대회의 등용문으로 정착시켜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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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강화 전국국악경연대회 종합대상 수상노원문화원(원장 오치정)은 9월 3일 제10회 강화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이 종합대상을 수상하였다고 밝혔다. 올해 10년돐이 되는 강화 전국국악경연대회(조직위원장:유지숙)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향두계놀이보존회가 주관한 대회로, 국악 예술의 계승발전과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독창적인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통한 민족문화의 자부심을 확산시켜 전지역의 전통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개최되고 있다. 전국 초 · 중 · 고등학교 재학생 및 만19세 이상 전국 남녀 개인 및 단체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 대회에서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은 종합대상(국회의장상, 상금 3백만원)과 단체부 금상(강화군 군수상, 2백만원)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대면 대회임에도 350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성악 일반부에서는 함문경 단원이 심사위원장상을 수상하고 문재원 단원이 참방상을 수상하여 총 4개의 상을 수상했다.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은 노원문화원 문화강좌 경기민요반 수강생으로 구성된 단체로 2007년 창단되어 15년째 전통예술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기공연을 비롯하여 흥겨운 우리 가락을 알리고 다양한 계층에서 쉽게 국악을 접근할 수 있도록 문화사각 지역을 방문하여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경숙 단장은 "국악예술단은 그야말로 ‘생활국악’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도 우리네 삶 속에 함께했던 아름다운 소리와 흥이 어우러지는 전통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소리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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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여름 산공부 가시나요?”[류기자의 시선]올여름은 무더위와 더불어 벌써 3년이 되어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위축되고 있다. 국악계 역시 크고 작은 공연이나 행사가 영향을 받으면서,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악계 선생님들은 이 여름을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들어보았다.(류정은 기자/ 인터뷰 순) 안숙선님 "도심 속 조용한 곳에서” "여름은 물론, 봄, 가을에도 산공부 떠나서 몸 수련, 기술 연마하기도 하고, 동네 분들과 어울리기도 하는데요, 올해는 너무 더워서 아직 가지 못하고, 시간 나면 10월 정도에 갈 생각 중입니다. 지금 사는 곳이 도시지만, 공기 좋은 곳이라 작은 연습실 마련해서 제자들 가르치기도 하고, 혼자 연습하기도 합니다. 시간 내서 제자들과 못다 한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많은 프로그램들 찾아서, 가을에 어떤 음악들로 여러분들 만날까 생각 중입니다. 여름에는 지치지 않도록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다른 음악도 받아들이고, 정신건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춘희님, 열린 대화로 마음 다스려 "한참 더울 때, 복날은 3대 명절이죠. 좋은 사람들 만나서 공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저는 특히, 제자들과 한 번씩 들놀이처럼 갑니다. 좋은 얘기도 나누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해요. 제자들과 격이 없이 지내요. 제자들을 큰, 중간, 어린 제자들, 세 부류로 나눠서 따로 만나요. 그러면, 저도 제자들도 대화하기도 좀 더 편하죠. 마음이 굉장히 중요해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마음이 편하게. 그래야 더위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운 것은 어쩔 수 없잖아요. 여름에 쉽게 지칠 수 있지만, 자신의 건강도 돌보면서, 사람들과 관계도 더 돈독하게 하는 지혜가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광수님, 칠순공연 준비와 ‘비나리’ 음반작업 "작년에 계획했던 칠순 기념 공연을 올해 가을에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 시기에 맞춰서 음반(비나리)도 준비 중입니다. 음반 작업 마무리 단계예요. 지금은 가을 공연을 위해 내 스스로 건강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건강해야 옆 사람들이 안전하니까. 또 운동도 하고 공부하면서 일상생활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 꾸준히 건강관리하면서, 지금까지 코로나 안 걸리고 잘 지내왔습니다. 국악인들 모두, 이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사익님, 메시지 담은 정기공연 준비 "저는 늘 아침 일찍 5시 전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30분 정도 운동합니다. 목 풀기도 하구요. 아령을 30년 이상 했어요. 그것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10월에 2년마다 하는 정기적인 공연, 메시지를 가지는 공연이 있는데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하다, 오랜만에 다시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올여름은 이것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계절을 인생으로 본다면, 여름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예요. 하지만, 삶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죠. 자연도 여름에 영글고, 가을에 열매 맺잖아요. 여름에는 덥고 힘들지만, 만물은 이때 성장합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도 여름에 힘들고 어려워도 건강 잘 유지하셔서 이루고자 하는 것에 매진하신다면, 가을, 겨울, 그 이후에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덕수님, 이열치열, 풍물정신 살리는 신나는 배움터 "전북 임실군, 필봉문화촌에서(필봉농악,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김동원, 김철기, 양진성 교수 등 분들과 함께 여름 특강 중입니다. 지금 전통무용, 경기민요, 농악, 사물놀이 등을 지도하고 있고, 2주일 정도 진행합니다. 다음 주쯤에 마무리되겠네요. 재학생, 졸업생도 수강 가능하고.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여기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에요. 이런 자연 속에서 전통예술 교육과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교육자로서, 국악인으로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곳은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80년대부터 사용했고 전국 대학 풍물동아리들도 많이 공부해온 곳입니다. 풍물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예요. 이곳의 정체성이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죠. 요즘 퓨전국악처럼, 전통 외의 것도 한 번씩은 도전해보고 싶은 열정도 있을 텐데요, 그럴수록 전통 알려고 노력하고, 그런 과정을 경험할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더운 날, 이열치열, 시원하게 설장구 한 판 치면, 그것만큼 더 좋은 것 없고, 시원한 술 한 잔이면, 천하가 내 것이죠. 이 시간을 우리 전통과 정신으로 즐깁시다.” 유지숙님, 마음과 정 나누며 소리 연마 "늘 여름에는 산공부 하러 제자들과 떠나잖아요. 공부도 공부지만, 서로 못 다한 얘기도 나누고, 한 노래나 분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도 하고요. 산공부 마치고 오늘(8/1) 올라왔어요. 충북 쪽에서 했고요, 20명 조금 안 되는 인원이 다녀왔습니다. 제자들끼리도 큰 제자들, 작은 제자들은 평소 서로 만날 시간이 없어서, 처음에는 서먹서먹 하다가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나이 상관없이 서로 담소도 나누고, 모르는 것은 언니에게 물어서 하기도 하구요. 서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제자들에게 1대1로 발성 지도 같은 평소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것들에 집중했습니다. 또 바빠서, 어려워서 얘기 못했던 것들, 고민들 얘기 나누기도 했어요. 어린 제자들이 의젓하게 규칙적인 생활 하는 모습도 너무 예뻤어요. 여름에는 힘나는 시간이 제자 보는 시간이죠. 삶의 활력소에요. 못 봤던 제자들 내면의 모습도 보게 되요. 특히 한 제자가 후배들 인성교육하려고, 타로 점을 보면서 대화했는데, 서로의 마음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산공부가 자기 수련기간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마음과 정을 나누는 시간인 것 같아요. 제 모든 삶이 제자와 연결되니까, 제자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죠. 그러니 서로를 다지게 하는 시간은 큰 의미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많은 제자들 한 명 한 명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제가 처지면, 제자들도 처질 수 있으니까 1-2일 잠깐 쉬었다, 이 좋은 분위기를 모아서 다시 수업 하려고 합니다. 선생의 숙명이지만, 제자들 커가는 보람에 행복합니다. 제자들에게도 늘 노력해야 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유영대님, 산공부 찾아 국악인들 응원 "국악인들이면 산공부는 기본적으로 하시는데요, 도회지 떠나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잠자는 시간 빼고, 공부에 매진하는 기간이죠. 제 취미가 산공부하시는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2-3일 정도 함께 있기도 하면서, 애쓰시는 국악인 분들 격려도 합니다. 앞으로 몇 분의 선생님들 산공부에 찾아 뵐 예정입니다. 예술가에게 여름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9월에 그 결과가 바로 나옵니다. 기악, 성악, 모든 분야 관계없이, 충실하게 보내야 좋은 결실이 나기 때문이죠. 모든 우리 국악인들이 올여름, 의미 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원장현님, 제자들 지도와 가을 공연 준비 "집, 연구실에서 연습하고, 제자들 가르치고, 때때로 공연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적당한 운동 하면서, 제 때 식사하고, 걷기 운동이나 산책하면서,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올 10월에 공연 계획이 잡혀 있고, 8·9월에도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 준비 중입니다. 모든 국악인 분들, 코로나 잘 이겨내셔 가을까지 건강 잘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병욱님, 마리소리골에서 세대 넘나드는 국악교육 "제가 있는 마리소리골에서 소리 체험 프로그램 진행 중입니다. 어르신들에서 학생들까지 참가 연령도 다양합니다. 오늘은 학생들 수업이었는데, 기타를 통해서 국악을 배웁니다. 제가 국내 최초로(1988) 기타 연주로 전통음악을 작곡했거든요. 기타가 다른 나라에서는 민속 악기라서, 나름의 전통과 민족혼이 있다는 면에서 우리 국악과 통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기타를 통해서 국악을 접하고, 어떻게 굿거리장단을 표현할 수 있는지 같은 것도 배우게 됩니다. 여기는 한국음악의 산실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곡을 만들었고. 국내 최초 국악기박물관이기도 하죠. 여기 있는 악기들은 우리 자신이고, 독창적인 것들이니까, 아이들에게 우리의 얼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교육적으로 정말 의미 있는 곳이에요.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왜 소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민요 한가락은 부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민요가 독창적이라 해외에서 인정받고, 외국인들 관심도 상당히 높습니다. 또 외국에서 인정받는 대표적인 한국문화가 한, 아, 비(한글, 아리랑, 비빔밥)라고 합니다. 한글이 그 우수성으로 과거 세계문자올림픽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외국에서는 아리랑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멜로디라고도 하고, 비빔밥은 재료들이 어우러져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내는 것으로 ‘융합’, ‘단결’ 같은 가치와 연관되기도 합니다.” 이소라님, ‘논매기소리’ 포함한 서적 출간 "올해 책을 3권이 나올 예정인데, 한 권은 이미 나왔고, 8월에 한 권, 나머지는 연말에 나올 예정이에요. 지금 정신없이 바쁩니다. 그래도 먹는 것은 세 끼 시간 맞춰서, 저녁은 가볍게 먹고, 제시간에 먹으려고 합니다. 20-30분 걷기도 하구요. 이렇게 더울 때, 일하는 것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올해 나오는 책들은, 100년 후에 후손들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작업해 놓은 것 중에는, 후손들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아요. 1980년대에, 1900년대 생분들 음원 녹음한 것들도 있고요. 올해 총 결산 한 것이죠. 음원과 함께 나올 예정이에요. 2000년대 초반 녹음했다면, 찾기 어려운 자료들도 있어요. 책이 1000페이지가 넘습니다. 두꺼워서 그런지. 지금 연구자들은 잘 안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에 있으니, 구입하지 않더라도 관련 연구하시는 후배들은 꼭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이 중에, '논매기소리'가 제일 중요한데. 삼한시대 부족국가와 연결되는 노래거든요. 70이 넘은 선배가 1년에 책 3권 쓰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후배님들도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종실님, 9월, 경남 산청 기산국악제전 준비 "저는 경남 산청, 기산 박헌봉 선생을 기리는 ‘기산국악당’에 있습니다. 토요 상설공연(연 20회)을 기획, 준비하고 있는데요, 3년째 우리 국악계 젊은 명인, 명창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날씨 때문에 한 달 쉬고, 가을에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지방이지만, 작년에 이생강 선생님도 공연하셨고. 대나무 숲 야외공연장도 갖추고 있어요. 산청군에서 예산 지원받아서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재작년에는 국악인들이 코로나19로 어려운데도, 비대면으로 지속적으로 공연(토요상설 공연) 해왔어요. 기악, 성악, 등 다양한 분야로요. 비대면이라도 꾸준히 공연할 수 있던 것은 국악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죠. 9월에 기산국악제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국악한마당 공연, 전국 국악경연대회, 박헌봉 국악상 시상 등을 준비 중입니다. 기산 선생님의 국악 운동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시대에 국악 발전을 위해 애쓰신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국악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을 어렵게 하지만, 국악인들은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명감 가지고, 어려울수록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위기를 극복하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명곤님. 적절한 재충전이 창조력·영감의 원동력 "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9, 10, 11월 예정된 공연 준비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자연이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휴가 잡아서 자연 가까이에서 쉬기도 하면서. 작품 구상하고, 집필한다던가, 대본 쓰고, 연출 준비하고, 그런 작업들 하면서 조용히 지냅니다. 도심에서 체력 소모하기보다는, 여름이니까 자연을 더 가깝게 느끼면서, 휴식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체력 보충하고 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집중해서 쓰잖아요. 공연, 창작 등은 계절에 관계없이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가끔씩은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습니다. 에너지 너무 소진하지 말고 충전해라. 다음 작업 위해서. 에너지 생기니까. 그래야만 창조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쉬어야 할 기간에는 쉬어라.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임웅수님, 광명농악, 경기도무형문화제 대축제 준비 "가을에 광명농악대축제, 경기도 무형문화재 대축제가 예정되어 있어서 전국 국악인들은 모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국악협회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장기간 끌고 오고 있기 때문에, 지정된 사업을 원활하게 할 수 없어서, 국악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빨리 국악협회가 재정비되고 국악인이 주체가 되어, 전통문화의 기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어렵게 생활하는 국악인들이 건강관리 잘하셔서 이중고 삼중고가 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초복, 중복, 말복을 넘기는 절기는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전해주신 옛 어른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풍습이 아닌가 싶어요. 보양식뿐만 아니라 심신을 다스리는 여러 방법으로 더위를 잘 견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국악인들, 정갈한 곳에서 산공부도 하시면서, 전통문화가 가진 신명으로 혼을 깨워서, 곧 다가올 가을에 지역 문화예술 축제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장문희님, 배우며 쉴 수 있는 지혜 "저는 어제 광주MBC 국악 프로그램 촬영을 제자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또 얼마 전에, 제자가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서 기쁜 일이 있었고요. (제가) 작년에 (전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 지정을 받게 돼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동초소리(동초제 판소리) 발판을 넓히려 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국립극장에서 심청가 5시간 완창을 준비하고 있고, 7월 30일부터 특별 하계 연수를 계획하고 있어요. 몇몇 학생들만 데리고, 이달 30일부터 2주 정도, 이모님(이일주 국창) 전수관에 들어가서, 소리의 본질이나 깊이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려고 합니다. 저는 공연하는 사람이고 주어진 일만으로도 바쁘지만, 늘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3년 정도 전에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소리 공부를 하면서 온몸을 긴장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허리가 안 좋아지기 시작해서, 혼자 조용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요가를 시작하게 됐어요. 다도에도 관심을 가져서 보이차 마신 지도 오래 됐구요.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온몸으로 순환이 되면서, 조용히 자신과 대화를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점이 좋습니다. 그냥 무조건 쉰다고 잘 쉬는 건 아니고, 결과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면서, 한 가지씩 배워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책도 읽으면서, 조용히 자기 성찰하면서. 그렇게 보내는 것이 의미 있게 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펼쳐 놓은 그 마디마디에는 지난 세월 담아온 국악에 대한 열정과 자신만의 소신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늘 그렇듯, 자신의 자리에서 열정을 쏟아 내고 있었으며, 국악을 진정 사랑하고, 동료들을 보듬어 주고,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도 묻어났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국악이라는 완전체의 큰 울타리를 지켜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올여름은 3년이 넘는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지만,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명장들의 열정은 여름날보다 더 뜨거웠다. 국악계, 그리고 선후배와 제자들에게 다가올 가을, 의미 있는 결실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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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국립국악원에서 서도소리 어우렁더우렁2, 펼친다(사)서도소리보존회가 중심어 되어, 오는 7월 16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약당에서 '어우렁 더우렁2-북녁의 소리 한마당이 펼쳐진다. 국악을 분류할 때 지역적 기반으로 보자면 서도소리, 경기소리, 남도소리, 동부소리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서도소리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전승된 소리를 말하고 경기소리는 경기와 서울지방에서 전승된 소리를 말한다. 남도소리는 물론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전승된 소리다. 국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국악’하면 "서편제 같은 거요?”하고 되묻는다. 물론 그렇다. 서편제는 국악의 한 종류다. 남도소리 중에 판소리가 있고, 판소리의 한 유파가 서편제다. 그러니까 서도소리나 경기소리 할 때의 ‘소리’는 큰 범위에 속한다. 이 속에는 민요, 좌창, 입창, 시창, 재담소리(판소리) 등이 모두 포함된다. 북한에서 전승되던 서도소리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자라는 의미에서 기획된 공연이 바로 이 공연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도 "서도소리는 서도지역(황해도와 평안도)에서 불리던 소리로 시창, 민요, 잡가, 입창, 노동요 등 다양한 소리로 전승되고 있으며, 서도지역이 가진 역사성과 문화적 특질이 녹아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서도소리는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전승되고 있으나 북한이라는 지역적 한계 등으로 오늘날 전승이 취약한 상황입니다.... 서도소리의 문화적·예술적 가치가 다음 세대에까지 지속되어 널리 알려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 코로나19 대유행의 어려움에도 후학들과 전승·보존을 위해 노력해오시고, 이번에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많은 서도소리 애호가 및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정기공연을 열게 되었"다면서 "공연을 통해 지난 2년여 간의 코로나19 스트레스를 푸시면서 힐링하시고 신명나는 시간이 되길"기원하였다.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광숙, 이춘목 명창, 서도소리 배뱅이굿 예능보유자 김경배 명창.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 3호 놀량사거리 예능보유자 이문주, 한명순 명창,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승교육사 유지숙 명창, 평안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 평북농요 예능보유자 박민희 명창,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승교육사 박준길 명창 등 서도소리의 별들이 모두 출연한다. 이들의 제자 130여 명이 함께 출연한다. 이들 소리꾼은 모두 월남하여 서도소리의 씨를 부린 서도소리의 전설인 고김정연, 고오복녀 명창의 제자들이다. 이 공연을 총 연출하며 진두지휘한 서도소리보존회 이춘목 이사장은 "서도소리의 보존 및 전승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아울러 전승 보전과 대중화를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쏟을 것”을 기약했다. 김광숙 명창은 "서도소리의 큰 스승이었던 김정연, 오복녀 선생님은 수심가 한 마디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갈 수 없는 그리운 고향을 꿈속에서 다니셨다”고 회고하면서 "깊은 떨림의 멋을 지닌 서도소리”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 공연에는 영변가, 서도비나리, 놀량사거리, 개성난봉가, 함경도 애원성, 배뱅이굿, 연평도난봉가, 난봉가, 풍구타령, 농사타령, 방아타령, 산염불, 양산도, 신고산타령, 긴아리, 야월선유가, 잦은배따라기 등 좌창과 시창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민요가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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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 명반유람 94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이 음반은 2016년 필자가 제작하여 고향에 기증한 음반으로 필자에게는 명반이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한 장의 아리랑 음반으로 소개한다.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14권 7호)에서 김지연이 쓴 글 ‘조선의 민요 아리랑 II'(조선민요의 연구 3)에 다른 26개의 아리랑과 더불어 ‘창녕아리랑’이 언급되어 있다. 2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창녕에 ‘창녕아리랑’이 불러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몇 년전에 이 사실을 알고, 혹시나 창녕의 어르신 중에 누군가 ‘창녕아리랑’을 부를 수 있나 싶어 수소문하였지만, 아는 분이 없었다. 그래서 새로 곡을 만들기로 하였다. 먼저 국악계에서 제일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함현상:영화 <귀향> 음악감독)를 선정하고, 작사는 창녕에 살고 계시는 시인(성기각 선생)을 창녕군으로부터 소개받아 2006년 4월경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창녕의 풍광을 음악에 담기 위해 8월에는 작사자의 안내로 작곡자와 같이 창녕군 전체를 일주하였다. 필자도 고향이 창녕이지만 창녕을 이렇게 자세히 다닌 적은 없었다. 노래 가사에 창녕군의 13개 읍.면을 넣기 위해 각각 읍.면의 가사를 총 16절 가사에 담았다. 창녕에 내려오는 토속민요 가사도 넣고, 영산에 계신 지종 스님이 부른 아리랑 가사 중에서 일부를 차용하고, 어린이들이 부르게 쉬운 가사도 넣고, 마지막으로 1930년 조선의 민요에 실린 2절 가사도 활용하였다. 작곡은 1930년 가사에 실린 ‘쾌조’라는 표현을 살려 빠르고 즐거운 노래로 만들어졌다. 반주는 국악방송예술단이 수고해주었다. 노래는 젊은 소리꾼이 부르도록 하였고, 토속민요는 아마추어소리꾼들이 부르게 하였다. 어린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어린이용 ‘창녕아리랑’도 수록하였다. 노래 곡 외에 반주곡도 담아 누구나 앞의 아리랑을 듣고 적절한 반주에 맞추어 즐겨 부를 수 있도록 하였다. 음반 한 장에 70분이 넘는 음악을 담을 수 있다. 남는 공간에 1929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1926년 10월 1일)이 음반으로 나오기 전에 발행된 오선보 악보로 남겨진 아리랑을 보너스 음원으로 담았다. 유지숙 명창이 부른 이 6곡은 국내 처음 음원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2007년에 발굴하여 소개한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이 음악이 담긴 6개의 에디슨실린더 원통음반은 현재 미의회도서관에 있음) 11곡도 같이 담았다. 창녕향우회에서 제작비 일부를 부담하여 3,000매를 무료로 배부하였다. 한 장도 판매한 적이 없지만, 현재는 중고시장에 쉽게 구할 수 있다. *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CKJCD-016&page=1 * 국악음반의 자세한 내용은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kr)를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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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국악대축제 ‘굿보러가자’ 30일 무료 공연해남군은 대한민국 명품 국악공연‘굿GOOD 보러가자’를 오는 30일 오후 7시 해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개최한다. ‘굿보러가자’는 국악인 박애리의 사회로 국가무형문화재와 지역전통예술인 등 대한민국 최고의 명인을 만날 수 있는 국악 공연이다. 김일구(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김청만(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보유자), 유지숙(국가무형문화재 서도소리 전승교육사), 유정숙(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이수자), 구미 무을농악(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김주홍과 노름마치, 광대놀음 떼이루, 연주가 이호윤,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이 무대에 올라 전통·퓨전국악 등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공연 예매는 오는 22일 오전 10시부터 네이버를 통해 선착순 1인 4매까지 할 수 있으며, 입장권은 무료이다. 온라인예매가 어려운 어르신 등을 위해 일부 좌석은 전화예매도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재재단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한국문화재재단과 해남군이 주관하고 문화재청 후원으로 진행된다. 아울러 공연 부대행사로 ‘찾아가는 인생사진관’전시를 진행한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해남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어르신 30여명을 대상으로 프로필사진을 촬영했으며, 굿보러가자 공연 당일 문화예술회관 로비에서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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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두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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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 창립 40주년,명인명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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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19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고가 마사오는 감수성이 민감한 유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고가 마사오는 고가 마사오 예술대관『古賀政男藝術大觀』의 회고기에서 "큰 형의 가게에 60여명의 조선인이 있었는데, 나는 이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고 1년 전인 1977년 <저 꽃 이 꽃>이란 노래에 대해 ”만일 내가 유소년 시절을 조선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이러한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한국의 정서와 전통음악이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음을 시인하였다.(김열규 글 참조) 그리고 한 때는 ‘아리랑’도 본인이 작곡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내 취소하고 사과한 사건도 있었다. 고가 마사오는 약 11년의 기나긴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면서 음악가로서의 소질과 재능을 키워나갔다. 한국 전통의 민요나 판소리, 풍물 장단과 대중가요 등이 그의 음악적 형성에 큰 밑바탕이 되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가 마사오의 음악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도 마치 예전에 즐겨듣던 곡으로 착각할 정도로 멜로디가 친근한 곡이 많다. 그것은 당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가 마사오의 처지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어려운 생활의 연속으로서, 마치 식민지 조선의 백성과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조선의 음악에 더욱 호감을 갖게 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은, 후일 고가 마사오의 음악에 한국의 정서나 가락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소리바위 글 참조) 전수린과 고가 마사오는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교를 다져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친교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으며 양국을 오가며 만날 때는 서로 포옹까지 하였다고 하니 꽤 친교가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계가 어쩌면 서로에게 음악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가 마사오의 작곡이 먼저 작곡한 전수린의 곡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일본의 유행가와 한국의 유행가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태동하고 성장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18회에서는 후지야마 이치로에 의해 도입된 크루너 창법과 소위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로 불리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창법들이 가미되어 엔카의 창법이 갖춰지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 떤다)는 악보에서는 표기할 수 없는 미묘한 억양이나 장단 같은 국악의 시김새를 의미하는데, 한국의 전통성악이나 트로트에서 표현하는 ‘꺾기’ ‘뒤집기’ ‘흔들기’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창법을 잘 표현한 가수들이 미소라 히바리 등 한국계 일본인 가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성악에는 어떤 독창적인 특징적 요소가 있는 것일까?. 최근에 트로트 경연 방송에서 심사위원인 마스터들의 심사평에서 ‘꺾기’, ‘흔들기’, ‘떨기’, ‘뒤집기’ 등의 용어가 나온다. 이러한 용어는 발라드 음악이나 록음악, 혹은 재즈와 팝음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장르의 대중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트로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용어들이다. 이러한 트로트 창법의 기교(국악에서는 시김새라고 표현)는 민요나 판소리에서의 대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꺾기’는 반음 위의 음에서 그 음으로 빠르게 흐느끼듯 내려오는 기교를 말하는데, 판소리와 민요 등 어느 장르에서나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슬픈 음악인 계면조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뒤집기’는 방울목, 치는목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사람들은 요들송 표현 같다고 하여 요들목이라고도 부른다. 요들송의 기교처럼 긴 한음 소리에 살짝 힘을 빼고 요들목을 소리에 얹으면서 소리를 뒤집는 기교를 말한다. 노래를 할 때 이러한 뒤집는 시김새를 적절히 사용하면 화사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무 대목에서나 분별없이 사용하면 음악에 대한 격도 떨어지고 듣기 역겨운 음악이 된다.(서도명창 유지숙 글 참조) 트로트를 부룰 때 국악의 성악을 전공한 사람은 일반가수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기교들을 자유자재로 더 깊이 표현할 수 있지만, 오히려 트로트를 부를 때는 국악적 요소를 빼느라고 힘들어 한다. 자칫 트로트가 민요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악의 성악 전공자가 트로트를 부르게 되면 맛깔스러움을 느끼게 하는데 그 이유는 가창력, 바로 복식호흡을 통한 호흡법 등 소위 공력을 통한 수련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해 본다. 노래할 때의 좋은 호흡은 고음, 중음, 저음은 물론 강약, 그리고 굵게 떠는음, 가늘게 떠는음 등 노래의 다이내믹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트로트는, 트로트라는 용어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독창적으로 개발된 세계에서 유일한 대중가요 스타일의 현대 민요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중 트로트와 관련한 이야기는 19회로 마무리를 하고 20회부터는 K-POP과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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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연리지’요 ‘비익조’, 두 제자의 몸 한 목소리서천으로부터 망향의 아픔이 담긴 구슬프고 해맑은 소리가 들린다. 서도소리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힘겹게 살다간 오복녀 선생의 소리이다. 북녘에 고향을 두고 낯선 땅에서 서도소리의 꽃을 피운 오복녀 선생을 회상하며 두 제자 김광숙, 유지숙 명창이 마음을 모았다.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대금 소리에 오른 오복녀 선생의 환한 모습, 이어 추모시 ‘서천으로 날아간 기러기 명창’이 자막으로 흘렀다. 고요함 속에 관객들의 시선은 멈췄다. "가을하늘 높이 날던 기러기 자매 보일 듯 잡힐 듯 휴전선 넘어 가슴에 봉숭아 물 못내 그리운 고향마을 궁초댕기 그 시절 사연~” 네 마디의 유려한 시문이 마지막으로 흐를 때 제자 김광숙 명창이 등장한다. 차분하고 운율이 살아있는 명확한 음성이다. "청매화 피던 날 홀연히 가신 서도소리 어머니 겨레의 명창” 절절함과 자랑스러움을 담아냈다. 그리고 ‘관산융마’가 헌가(獻歌)로 올려졌다. 이에 무대 우측으로 16살의 어린 복녀가 화답이라도 하듯 ‘공명가’가 등장하였다. 제자 유지숙 명창이 수심가를 올렸다. 뛰어난 표현력과 애조 띤 음색을 선생은 반갑게 반겼을 것이다. 관객들도 고운 자태와 절제미를 가슴에 담았다. 오늘과 미래의 서도소리 주인공들인 ‘제자의 제자’들이 대거 출연하여 오뉴월 들풀 간은 풍성함을 보였다. 여기에 서도소리를 떠받치는 이춘목과 한명순 명창도 함께하여 무대를 빛냈으니 크게 흡족해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크게 흡족해하셨을 것이 또 있었다. 제자 ‘김광숙과 유지숙’, ‘유지숙과 김광숙’이 한목소리로 같은 스승에 대해 회고하는 모습이다. ‘둘이며 하나’인 두 제자는 한목소리로 이번 공연조차도 스승님이 베푼 자리가 아니냐며 은혜에 답했다. 그리고 스승님이 소리를 연마하기 위해 무용, 가곡, 일본 노래까지 배우는 입문 시절의 열의를 회고하고, 스승님이 주신 비취반지를 불러내 변치 않는 빛을 확인시켰다. 이는 두 제자가 처음의 시절로 돌아가 안기며 그때를 안고 살겠다는 절절한 제자의 흠모를 표한 것이다. 같은 스승에서 나온 같은 제자임을 확인하였다. 아니 스승님에게 확인시켜준 것이리라. 하늘에서 얼마나 흡족해하셨을까. 비유로 부연하면 이는 두 제자가 한 선생의 유업 계승을 위하여 한 몸의 목소리를 낸 것이니 연리지(連理枝)요 비익조(比翼鳥)의 애틋한 형상이 아니겠는가.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 다시 전승케 하라는 유업을 실천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한 몸이 되고, 서로 더하는 이번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서천에서 초겨울의 신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새로운 계절을 맞으라는 천기이다. *취재 후기 다음은 주최 측이 보내온 두 분에 대한 자체 인터뷰 자료이다. #김광숙 선생님 "오직 서도소리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일평생을 바치셨던 선생님의 뜻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으며, 생전 아낌없는 사랑으로 소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더욱 그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앞으로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 올곧게 서도소리를 전승하고, 전통 서도소리의 원형에 기반한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서도소리를 더욱 확장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북녘땅에 서도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날을 기다리며, 선생님의 그 애절하고 간절한 바람을 꼭 이루어드릴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유지숙 선생님 "추모 공연을 준비하며 선생님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서도소리를 지키며 전승하시려 했던 바람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철이 좀 더 있었더라면 든든하게 힘이 되어드렸을 텐데~. 선생님의 큰 울타리가 좋아 마냥 철없던 시절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생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한마음으로 따뜻하게 기리며 한 자손임을 다시 알게 한 것은 너무나 소중한 행사였습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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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만의 神算한 ‘2021 서도 樂 천수바라’지난 11일 토요일 오후 5시, 같은 날자, 같은 시간에 ‘같으면서 다른’ 공연이 있었다. 서울의 민속극장 ‘풍류’에서 ‘서도 樂 천수바라’가, 또 하나는 평택시 ‘지영희홀’에서 지영희국악관현악단 공연이다. 같은 것은 제자 최경만과 박범훈이 스승 지영희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공연이란 점이다. 이번 공연 기획자 삼현육각 피리 종목 예능보유자 최경만은 ‘2021 서도 樂 천수바라’ 인사말에서 "서울 경기지역의 음악을 정리하시고 국악을 위한 후학양성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故 지영희 선생님께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선생님의 올곧은 음악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라고 하였다. 추모와 공연 취지를 표한 것이다. 제9회 지영희국악관현악단 공연 초연작 ‘지영희 찬가’를 작곡한 박범훈은 "하늘이 열리고 땅이 솟구쳐/ 한반도 허리춤 평택 고을 포승땅/ 한줄기 빛으로 온 만능재인 지영희~”라는 가사를 선율로 수놓았다. 역시 스승을 추모하고 예찬한 것이다. 한 제자는 피리와 호적을, 또 한 제자는 피리와 작곡을 내리 받아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 피리 예능보유자와 작품집의 저자로, 또 한 제자는 작곡가, 지휘자, 교육자로 최고의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두 제자로부터 추모의 대상인 지영희(본명 지천만, 1909~1979)선생은 피리, 대금, 호적, 단소, 해금, 북, 장고 등 거의 모든 전통악기 연주에서 명인의 경지에 이른 재인이요, 교육자이다. 그리고 1973년 11월, 고도의 기예와 예술성을 갖춘 연주 종목인 ‘시나위’를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하고 그 보유자가 되었다. 해금산조와 피리산조를 완성하여 ‘산조의 대사’로 명성을 날리기도 하였다. 특히 서울국악예술학교 설립 시부터 참여하여 후학을 양성하여 그 직계로 최경만과 박범훈 등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선생은 개인적 사유로 1974년 부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 성금연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에 대해 1975년 5월 문화공보부는 두 분의 종목 보유자 인정을 ‘해외 거주’라는 사유를 들어 해제시켰다. 이 결과는 결국 종목 보유자 해제를 넘어, 종목의 전승과 보존 자체를 단절시킨 것이다. 두 제자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함께 이를 안타까워한 것이리라. ‘서도 樂 천수바라’ 공연은 최경만, 진유림 그리고 유지숙을 중심으로 6작품을 선보였다. 최경만은 스승에게서 전수한 가락에 자신의 더늠으로 완성한 ‘호적풍류’로 공연 마지막을 장식했다. 승무와 살풀이 이수자인 진유림은 7차례의 춤사위 변화로 조화를 이룬 ‘승무’를 정연하게 보여주었다. 유지숙은 간단명료, 거두절미의 진행 솜씨와 함께 ‘회심곡’을 선사했다. "회심곡이 서도소리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마음 조려 마쳤다”는 아니리로 작품해석의 자신감과 친화력을 보여주었다. ‘2019 경기 樂 천수바라’에 이은 이번 ‘2021 서도 樂 천수바라’는 기획자 최경만의 호적 중심 반주음악 진수 ‘천수바라’의 취지를 명료하게 무대화 한 공연이다. 추모와 기량 발휘, 그리고 전승의 여러 뜻을 담은 신산(神算)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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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녀 명창 추모시] 서도소리의 진수를 체득한 유일한 대가가을하늘 높이 날던 기러기 자매 보일 듯 잡힐 듯 휴전선 넘어 가슴에 봉숭아물 못내 그리운 고향마을 궁초댕기 그 시절 사연 애달파 멍이 되어 뚜루룩 낄룩 해맑은 서도창도 목이 메더니 통한의 분단 녹슨 철조망 망향노래 인이 박인 기러기 하나 어느날 나래 접어 구름 밖을 떠나고 외 남은 기러기 외로움 곱절되어 하염없이 때도 없이 창공을 날아 아스라이 고향 땅 두고 온 가락 오동의 복판 장고의 북채, 터져라 울렸지 신명껏 두드렸지, 대 잡아 신 내린 듯 ‘눈물은 겨워 대동강 우덕에 백운탄(白雲灘)되고 한숨은 쉬어 모란봉 위에 딴 봉을 돋히네‘ 봄 구름 자욱한 노을 진 하늘가로 늦은 한배 긴아리에 서리서리 엉킨 한 고향노래 불렀지, 이산의 아픔 심금 울려 읊었지, 시대의 서름 조개는 잡아 젓 저리고 가는 님 붙잡아 정들이 듯 아, 붙잡아 정들일 서도의 예인 아직도 오위들 가슴속엔 관서의 속 멋 여울 되어 달빛 되어 무늬져 흐르는 데 정매화 피던 날 홀연히 가신 서도소리 어머니 겨레의 명창 위의 추모시는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의 오복녀 선생에 대한 추모시다. 11월 7일 오후 7시,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김광숙서도소리전수소’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낭송된다. 출연자는 다음과 같다. 김광숙, 이춘목, 한명순, 유지숙, 유춘랑, 오희연, 이현정, 김민경, 박준길, 이나라, 강미경, 민명옥, 정연경, 정미야, 오세정, 전효정, 김준식, 류지선, 김유리, 김무빈, 박지안, 임수아이다. 연주자는 장구 강형수, 피리 이호진, 대금 김선호, 해금 김기범, 가야금 김나영이다. 공연은 滿堂 오복녀 선생의 추모 20주기를 맞아 선생의 간절한 바람이었던 서도소리의 보존과 발전의 뜻을 기리며, 동시대의 서도소리인들이 지향해야 할 예술혼과 가치를 조명한다. 그리고 서도소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노래하다. 생전 선생의 서도소리 즉, 과거의 서도소리와 선생의 서도소리 전승에 대한 열망과 바람으로 이 시대에 남겨준 김광숙·유지숙 두 명의 서도명창이 걸어 온 소리의 길 즉, 현재의 서도소리를 돌아본다. 그리고 내일의 서도소리 즉, 미래의 서도소리의 방향성을 재고하여 이를 무대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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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국악공연 '씻김', 28일 온라인 중계…김호규 1주기 추모한국문화재재단이 오는 28일 오후 7시 기획공연 '씻김'을 온라인 중계한다.우리나라 최초 국악 전문 신문 '국악신문'을 창간한 언론인이자 국악인 고(故) 김호규의 1주기를 추모하며 그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전통예술 국악공연이다.'소상씻김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인 '진도씻김굿'의 한 종류로 죽은 망자의 원한을 풀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1년 탈상(어버이의 상을 마침) 굿이다.망자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준다는 의미로 씻김굿이라 부른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춤이나 음악에서 예술적 요소가 뛰어나, 전통 사자의례를 넘어 예술 공연으로 변모해 왔다.이번 공연은 진도씻김굿 보존회가 진행하며, 추모의 주인공 고(故) 김호규 선생 아버지인 '명인 김병섭류 설장고 보존회'가 무대를 준비했다.더불어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과 그의 제자들이 펼치는 '수심가와 산염불, 자진염불', 진도씻김굿 이수자 및 승무 이수자 강은영이 펼치는 북춤 등 각종 국가무형문화재 진수들이 펼쳐진다.김호규는 1959년 전북 익산에서 우도 설장고 명인 고(故) 김병섭(1921~1987)의 3남 2녀 중 2남으로 출생했다. 1994년 9월 7일 '국악의 해'와 '한국방문의해'를 맞아 우리나라 최초로 국악 전문 신문 '놀이문화'를 창간했다.이후 8호부터 '국악신문'으로 제호를 변경, 25년간 꾸준히 293호까지 발간하며 전통문화 홍보에 기여했다. 후학들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을 위해 2016년부터 3년간 국악로전통문화학교를 설립, 운영하기도 했다.이 외 농악명인전, 차세대 명인전, 전국 국악 경연대회 등을 개최하며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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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대사로 위촉된 최경만 명인-유지숙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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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사설 오복녀 명창 소리, ‘소스라쳐 절감’하자우리 국악계는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다. 바로 ‘추모(追慕)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이 스승의 덕과 공로를 그리워하여 정성으로 올리는 제의(祭儀)의 일종이다. 올해의 이 추모 공연은 ‘서도소리’·‘대동강 물 맛본 소리’라는 키워드로 상징되는 오복녀 선생 추모공연을 두 제자 김광숙과 유지숙이 마련한 행사다. ‘滿堂 吳福女 선생 20주기 추모 공연-서천에서 불어온 만당의 바람...’이다. 이미 본보가 보도한 대로 11월 7일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개최하는데, 두 제자의 슬픔을 넘은 공경의 제의이다. 이런 추모 공연은 고인이 된 예인을 회상(回想 recall)하여 행하는 행사이다. 회상은 기억된 것을 다시 떠올려 생각해 내는 일, 심리학은 이를 ‘뇌 속에 저장된 정보의 재생’이라고 한다. 오복녀라는 기억, 이를 기억하게 하는 그 단서는 무엇일까? 바로 이 단서를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은 이미 1999년 제6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오복녀에 대한 축사에서 제시한 바 있다. 한 좌장은 이제 통일이 되어 고향을 가도 옛 듣던 가락, 옛 놀던 연희들을 만나기란 거의 난망이고, 그래서 안타깝고 허망하다고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명창의 이력을 간결하게 내세웠다. 서도지방에서 태어나 서도의 정서와 풍물을 온전히 체득한 가객으로, 노래 속에는 자연히 서도 예술의 맛과 멋이 진솔하게 배어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예찬하였다. 수심가나 긴아리에 묻어나는 애잔한 정한이 그러하고, 난봉가나 산염불에 스며 있는 따듯한 삶의 체취가 그러하며, 초한가나 공명가 등을 통해서 펼쳐내는 담담한 인생 경륜이나 고담들이 그러하니, 한마디로 노래 속에 서도적인 삶이 있고 서도적인 인생살이가 내밀하게 농축돼 있다고 하였다.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에게는 위안이요 추억이라고 하며 문화적인 정체성과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는 고맙고도 절실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거듭 내세웠다. 그래서 오 명창이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서도소리의 명맥을 실낱같이 이어가며 힘겹게 달려가는 성화 봉송자와도 같다고 칭송했다. 그리고 이렇게 맺었다. 바로 회상의 단서를 제시해 주었다. "오 명창의 서도소리는 음악의 차원을 뛰어넘는 시대적 의미망을 지닌다. 이런 상황을 떠올릴 때 우리는 재삼 오복녀 명창의 존재 의미와 그 음악의 존귀함을 깊이 통찰하고 소스라쳐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22년 전 생전의 축사가 영서(永逝) 20년을 지난 오늘, 국악계 큰 어른이 ‘소스라쳐 절감’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오복녀 명창을 회상하게 하는 단서이지 않겠는가. 1913년 12월 평양에서 태어났다. 16세 무렵 장금화 선생으로부터 서도소리를 시작하여, 하규일 선생에게 배반(盃盤)치레를 하고 가인으로 활동하였다. 2001년 1월 타계할 때까지 70 성상을 서도소리 원형 보존과 전파에 기여하였다. 이 가을의 마지막을 서도소리로 빛나는, 그리고 두 제자를 계승자로 남긴 한 예인을 회상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뜻깊을 듯하다. 혹시라도 소스라쳐 절감하여 영감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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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당 오복녀선생 20주기 추모기념공연만당 오복녀(吳福女) 선생의 추모 20주기를 맞아 서도소리의 보존과 발전의 뜻을 기리며, 동시대의 서도소리인들이 지향해야 할 예술혼과 가치를 조명하는 무대가 마련 된다. ‘서천에서 불어온 滿堂의 바람...’공연이다. 예술감독 김광숙, 연출 이재성, 극작 홍석환이 맡는다. 이 무대는 ‘김광숙서도소리전수소’가 주최하고 크라운해태가 후원한다. 서도소리 명인들이 총 출동한다. 김광숙, 이춘목, 한명순, 유지숙, 유춘랑, 오희연, 이현정, 김민경, 박준길, 이나라, 강미경, 민명옥, 정연경, 정미야, 오세정, 전효정, 김준식, 류지선, 김유리, 김무빈, 박지안, 임수아 등이 출연한다. 연주는 장구 강형수, 피리 이호진, 대금 김선호, 해금 김기범이 맡는다. 공연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 ‘바람...서천에서 일다’에서는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선생의 추모시 낭송이 무대를 연다. 이어 ‘어린복녀’가 등장하고, 제자 김광숙과 유지숙이 서사를 이끈다. 서도소리 전승에 대한 열망과 바람으로 이 시대에 남겨준 김광숙·유지숙 두 명창의 선생님에 대한 회고, 그리고 미래를 무대화 하였다. 조개는 잡아 젓 저리고 가는 님 붙잡아 정들이 듯 아, 붙잡아 정들일 서도의 예인 아직도 오위들 가슴속엔 관서의 속 멋 여울 되어 달빛 되어 무늬져 흐르는 데 정매화 피던 날 홀연히 가신 서도소리 어머니 겨레의 명창 제1장 ‘바람...서천에서 일다’는 선생이 서도소리에 처음 입문하던 어린 시절, ‘어린 복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두 제자 김광숙과 유지숙이 등장, 좌담으로 선생의 예술혼을 회고한다. 이어 관산융마, 수심가·엮음수심가, 몽금포타령, 개성난봉가, 연평도난봉가, 산염불, 잦은염불이 이어진다. 제2장 ‘바람...울림으로 꽃 피우다.’는 소리의 길을 걷고 있는 어린복녀, 그리고 다재다능했던 예술인으 로서의 선생의 모습이 재연된다. 이어 선생의 생전 영상으로 만나는 애창곡 <개타령>이 긴아리, 자진아리, 풍구타령, 날찾네, 방아타령, 양산도 등으로 이어진다. 제3장 ‘바람...멈추지 않겠습니다.’는 ‘서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선생이 걸어온 격정의 시대와 꿋꿋 함, 그리고 소리, 그 역경과 곧은 소리가 ‘소녀 복녀의 노래’로 재탄생 한다. 초연작 ‘소녀 복녀의 노래’가 초로인생, 긴난봉가, 잦은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로 이어져 무대를 여민다. 이번 20주기 공연은 지난 2011년 선생의 10주기 추모공연에서는 ‘대동강으로 날아간 기러기 명창을 기리며’ 라는 주제로 개최에 이은 공연이다. 이 번 20주기는 "선생의 생전 바람이 우리의 바람이 되어 현실화 되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를 주제로 하였다. 민요학계에서는 경기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라고 한다. 그러나 유독 서도민요는 ‘서도소리’라고 한다. 이는 경기의 잡가나 남도의 판소리와는 또 다른 특징과 멋을 지녔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가을, 오복녀선생을 추모하며 제자들이 꾸미는 서도소리의 향연을 누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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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예술을 이해하는 키워드(2)멋, 속에서 배어나는 난숙한 일탈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로 ‘멋’이라는 말도 빼놓을 수 없다. 대상을 보는 느낌이 좋아서 전적으로 공감할 때, 우리는 ‘멋있다’ 혹은 ‘멋지다’라고 표현한다. 이 멋이라는 개념 또한 간결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이라는 단어가 한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하다. 멋에도 농도의 차이가 있다. 흔히 어설픈 멋은 ‘겉멋’이라 하고, 농익은 멋은 ‘속멋’이라 한다. 겉멋은 경멸의 대상이고, 속멋은 상찬의 대상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멋은 ‘속멋’이다. 멋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가늠해 보기 위해서 내 나름의 주관적인 윤곽을 더듬어 본다. 흔히 우리는 올곧게 뻗은 나무보다는 구부정하게 휘어 자란 소나무가 멋있어 보인다. 똑바로 흘러가는 강줄기보다는 한 번 휘청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에서 멋을 느낀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진 들녘에서도 봉긋 솟은 언덕이 있어야 제격인 듯싶고, 비스듬히 내려 뻗은 기와지붕에서도 살짝 위로 향한 상승곡선이 있어서 근사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멋을 유발하는 근원은 상도常道나 정형定型에서 약간 벗어나는 경지임을 알 수 있겠다. 상도나 상궤常軌에서의 일탈, 일상성이나 정체성停滯性에서의 일탈, 속박성이나 규격성에서의 일탈, 진부한 관행이나 상투적인 인위에서의 일탈, 그것은 곧 한국의 멋을 창출해 내는 지렛대들임에 틀림없다. 무용의 춤사위에서는 고요한 한 동작의 끝부분에 가서 살짝 강세를 주곤 한다. 허공으로 큰 포물선을 그리던 수건을 마지막 순간에 살짝 잡아채는 살풀이춤의 율동이 그렇고, 속으로 물결치는 내면의 흥을 간간이 어깨로 들썩 표출해 내곤 하는 한량무閑良舞의 춤사위가 그렇다. 고요한 정靜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다가 사뿐하게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동적動的인 변화로 흥을 돋우고 정서적 클라이맥스를 마련하는 것, 그것은 마치 서예에서 끝을 살짝 반대 방향으로 삐치는 운필運筆의 묘미처럼 전형적인 일탈의 예이자 멋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음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모체가 되는 기본적인 악흥으로 일관하던 악곡이 어느 대목에 가서는 전혀 이색적인 분위기로 살짝 탈바꿈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악곡의 진미와 유현幽玄한 멋을 한층 실감하게 된다. 서사적인 가락들로 일관하다가 좀 더 서정적인 수심가愁心歌 가락으로 끝을 여미는 서도잡가西道雜歌의 돌출성이 그 예며, 구수한 사설로 흘러가다가 창부타령 선율로 한층 흥을 돋우는 경기잡가京畿雜歌의 종지형이 그 예다. 판소리 연창에서 간간이 튀어나오는 재치 있는 재담이나 질펀한 육두문자들이 그러하고, 유장하게 노래해 가던 선율을 단칼에 동강내듯 아무 예비 없이 종지하는 평시조의 창법이 그러하다. 조용히 흘러가는 거문고의 음향 속에서 간간이 투박하게 대모玳瑁, 공명통을 보호하기 위해 씌운 가죽를 내려치는 술대거문고를 뜯는 가는 막대의 타현음打絃音도 일종의 음악적 일탈이랄 수 있고, 부드럽고 유순한 대금 가락에 짐짓 청공淸孔에서 울리는 갈대청의 파열음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수법 또한 일탈의 멋 부리기에 다름 아니다. 모르긴 해도 일탈이 빚어낸 한국의 멋으로는 전통음악의 엇몰이장단만 한 게 없을 것이다. 엇몰이의 ‘엇’이란 삐뚤거나 어긋난 상태를 가리킨다. 엇시조가 그 좋은 예다. 마흔다섯 자의 정형시가 아니라 그보다 사설이 좀 길게 첨가된 시조가 엇시조다. 정형시조에서 어긋난 시조인 셈이다. 일종의 일탈이다. 따라서 엇몰이장단이란 곧 일상적인 장단과는 달리 일종의 변용을 추구한 이색적인 장단임을 알 수 있다. 정규적인 장단에서 짐짓 어깃장을 부려 본 장단이다. 이 어깃장 장단의 속멋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멋의 핵심이자 진수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엇몰이장단의 멋을 알면 이는 이미 한국 문화의 멋의 진미를 터득한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엇몰이 장단의 리듬을 그 변화형과 함께 서양의 음표로 소개한다. 긴 가로선의 밑부분 음표는 장고나 북의 왼쪽 면을 왼손바닥으로 치는 리듬이고, 윗부분의 음표는 오른손으로 장고채나 북채를 들고 우측면의 중앙이나 변죽을 치는 리듬이다. 양손으로 각자의 무릎을 치며 따라 해 봐도 엇몰이장단의 윤곽이 잡힌다.(속으로 〈라 쿰파르시타 La Cumparsita〉의 리듬도 연상해 가면서) 우선 엇몰이장단에서는 자유자재의 원숙미가 넘친다. 분명 그것은 통상적인 규칙성에서의 일탈임에도 괴리감이 느껴지거나 격格이 깨지지 않는다. 득도의 경지에 이른 예인藝人의 일필휘지가 신품神品이 되듯, 그것은 탈선하듯 어깃장스럽게 짚어 가는 고법鼓法인데도 오히려 난숙한 흥과 멋이 넘친다. 해탈한 고승의 무애無碍의 세계랄 수도, 혹은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해도 결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에 비견될 수도 있다 하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 멋을 유발하는 일탈의 개념이란 일단 원숙과 노련을 전제한다고 하겠다. 설익은 멋을 위한 억지의 이탈이나 거역을 위한 의도적인 탈선이 아닌, 속에서 배어나는 난숙한 일탈, 그것이 곧 한국의 멋을 양조釀造시키는 효모酵母로서의 일탈이라고 하겠다. 예컨대 때가 되어 숙성되면 석류가 익어 터지고, 밤송이가 무르익어 알밤이 떨어지듯이, 난숙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오는 일탈, 바로 그 자연성과 완숙성이 멋의 원천인 일탈의 본질인 것이다. 한편 멋과 풍류風流는 상친관계相親關係가 아닐 수 없다. 일탈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관념적인 틀에서 벗어나고 진부한 일상성에서 탈피해 무소기탄無所忌憚의 해방감을 누리는 경계, 세속의 영욕을 떠나 거문고와 함께 기인처럼 살다 간 신라시대 물계자勿稽子의 행적과 같이 예술의 경지를 넘나드는 유어예遊於藝의 세계, 명산대천을 찾아 가악歌樂으로 인생을 다듬어 가던 화랑花郞들의 경우처럼 인위의 구각舊殼을 벗고 합자연적인 섭리를 좇아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이 처세하는 달관의 경지, 끼니가 없어도 음악으로 자적自適했던 백결百結의 일화처럼 바다만큼이나 넓은 도량의 낙천적인 세계관, 바로 이런 경지로의 감성적 혹은 정신적 일탈에서 오는 흥취와 자족이 풍류의 본 모습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멋과 풍류적 흥취를 빚어내는 일탈은 노련미의 결정체이자, 새로운 창조의 동인動因이라고 하겠다. 나뭇등걸에서 새순이 일탈하여 새로운 거목이 되고, 작은 씨앗에서 새싹이 일탈하여 새 생명을 만들고, 동일한 산조지만 개인적인 시김새나 더늠으로 일탈하여 새로운 자기류의 음악을 형성해 내는 사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일탈은 곧 새로운 세계, 새로운 생명체로의 창조과정임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일탈이되 이질감을 느끼지 않음은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기 때문이며, 일탈이되 소멸이나 파괴가 아님은 진眞·선善·미美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연계되기 때문이며, 일탈이되 치졸稚拙이나 겉멋이나 부조화로 전락되지 않음은 곰삭은 원숙미와 풍류적 기품氣稟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탈이 빚어내는 한국의 멋은 생명순환적인 창조의 원의지原意志에 다름 아니고, 우리 존재를 긍정해 주는 삶의 진체眞體이자 원형질이며, 한국적 자연관이나 인생관에서 발효된 희한한 향취의 미적 감흥이요 문화적 정서지대라고 하겠다. 결국 음악을 통해 본 우리의 멋은 난숙한 일탈, 풍류적 일탈에서 오는 일련의 ‘일탈의 미학’인 셈이다. 한국 문화를 표상하는 미적 개념의 마지막 단계는 운치韻致이다.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흥은 청년기에, 멋은 장년기에, 운치는 노년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정서적 흥취를 있는 그대로 발랄하게 드러내는 흥이 혈기 방장한 청년기를 닮았다면, 자신의 감성을 십분 숙성시켜서 은유적으로 넌지시 드러내는 멋은 산전수전 겪어내며 인생의 내면을 음미해 가는 장년기에 흡사하다. 이에 비해 흥도 아니고 멋도 아니면서 격조 있는 미감을 표출하는 운치는 영락없이 결삭고 곰삭은 삶의 지혜들이 응축된 노년기의 풍취를 대변한다. 운치라는 개념은 우선 품격과도 통한다. 품격이 높아야 운치가 생긴다. 또한 귀티가 있어야 한다. 단아하고 고급스런 분위기가 있어야 운치를 느낀다. 뿐만이 아니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절조節操도 있어야 하고, 고도로 정제된 균제미均齊美가 있어야 한다. 또한 티 없는 창공처럼 속기俗氣가 없어야 하고, 경중미인鏡中美人의 표정 같은 맑음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몇 가지 요건들이 용융되어 더없이 우아하고 청초한 고품격의 예술미를 담아내고 있는 게 곧 운치의 세계다. 운치라는 한국 문화 특유의 미감을 확인하려면 전통사회의 선비문화를 일별해 보는 게 상책이다. 그만큼 선비문화 속에는 운치라는 개념의 미감美感이 두루 편재해 있다. 조선시대 평균적인 선비의 일상을 한번 되돌아보자. 온돌방 기름 먹인 장판 위에는 화문석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는 선비의 서안書案이 놓여 있다. 의관을 단정히 한 선비는 보료방석에 앉아서 서안에 놓인 경전을 읽어 간다. 고요히 앉아서 천하를 주유하고 천지를 요량해 보는 것이다. 깨우침의 희열이 있을 때는 잠시 끽다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은은한 차향이 중후한 고서들의 서권기書卷氣와 어우러지며 묘한 분위기의 운치를 더해 준다. 드디어 밤이 되자, 사위는 고요하고 무주공산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른다. 교교한 달빛이 완자무늬 창호로 새어 들면 분위기는 한층 정감적이다. 서가에 기대 놓은 거문고를 가져다가 줄을 고른다. ‘싸랭 덩 딩 슬기둥’ 하고 술대로 유현遊絃과 대현大絃을 애무하듯 아는 가락을 탄주해 본다. 심산유곡의 낙락장송이 우줄우줄 춤을 추듯, 고색창연한 음향이 잔물결을 이룬다. 때마침 창밖에는 산들바람이 지나가는지 하얀 창호지에는 벽오동 잎새들이 달빛에 어른대며 맞장구를 친다. 이래저래 주인공은 달빛에 취하고 거문고에 취하고 그윽하게 밀려드는 난향蘭香에 취해서, 이내 벽에 걸린 산수화 속의 풍경들과 물아일체가 되어 반신선半神仙이 되고 만다. 지난날 선비들의 서재에는 으레 문방사우가 갖춰져 있었다. 글 읽는 선비들의 네 가지 필수품으로, 붓과 먹과 벼루와 종이가 곧 그것이다. 심오한 경전에 몰입하다가 자못 한유閑裕한 흥취라도 일게 되면 지체 없이 지필묵을 마련하여 일필휘지로 유어예의 몽상여행을 떠나 보기 일쑤였다. 이럴 때 즐겨 그리던 전형적인 소재가 매·난·국·죽의 사군자였다. 이들 사군자는, 몸체는 단순해도 개성은 뚜렷하다. 매화와 난초는 그윽한 향기로 선비들의 총애를 받았고, 국화와 대나무는 굽히지 않는 오상고절의 지조로 선비들의 상찬을 받았다. 한결같이 선비의 품도와 절조를 닮은 자연물들이다. 생각해 보면 사군자가 선비적인 성향을 닮은 게 아니라, 평생을 벗 삼아 온 이들 사군자의 개성이 그처럼 운치 있고 지조 있는 선비 기질을 조성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사군자와 선비의 일상은 떨어질 수 없는 바늘과 실의 관계였다. 지금까지 전통문화를 꽃피워 온 선비생활의 몇 가지 편린들을 더듬어 보았다. 이들 몇몇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예술적 향취가 다름아닌 운치다. 비록 선비생활의 단면을 통해서 운치의 개념을 그려 보았지만, 기실 운치의 미감은 전통문화의 도처에 스며들어 있다. 서화가 그렇고, 가구가 그렇고, 도예나 건축 등이 모두 그러하다. 특히 윤기가 자르르 한 자개장의 단아하고 고졸한 귀티는 가히 세계적 보물감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운치라는 화두를 가지고 한국의 고급스런 전통문화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한결 정확하게 그들의 진수를 포착해 볼 수 있다. 그만큼 운치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화두다. 한국 속담 중에 ‘오동나무 씨만 보아도 춤을 춘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의 기질을 아주 정확히 집어낸 표현으로, 한마디로 흥이 많다는 뜻이다. 잘 알다시피 오동나무는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드는 재료다. 그 같은 악기의 재료인 나무의 씨앗만 보고도 그 나무가 자라서 악기가 되어 멋들어지게 뽑아낼 가락을 연상하며 미리 춤을 추게 된다니, 도대체 얼마나 흥이 많기에 그러하겠는가. 실로 기막힌 신명기의 소유자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한국인의 기질은 이지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다. 냉철한 지성보다는 따뜻한 감성을 선호한다. 머리의 기능보다는 가슴의 효용에 친근감을 느낀다. 요즘에 와서는 20세기 후반 서구 문화의 본격적인 수용을 통해서 이상적인 균형을 이뤄 가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의 전통문화는 주로 감성을 기반으로 한 감성의 문화였대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여기 가슴속 깊은 심저心底에 용암처럼 고여 있던 감성이 어떤 계기를 만나 화산처럼 분출하는 것이 다름 아닌 흥이요 신바람이다. 이 역동적이고 원색적인 흥이나 신바람이 서서히 내면화되면서 은근한 흥으로 변용된 감성이 곧 멋이다. 한편 운치란, 감성의 텃밭에 뿌리를 두었으나 감성의 색깔이 크게 희석되고, 오히려 지성적 미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단아하게 정련된 경지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한국 문화, 특히 전통예술에서 본질처럼 드러나는 몇 가지 개념어들을 소개했다. 흥과 멋과 운치가 곧 그들이다. 이 세 가지 어휘가 내포하는 미적 개념 간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숙성도에 따른 편차 또한 크다. 공통점이란 물론 삼자 모두 예술적 감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름이 있다는 것은 미적 질감의 섬세한 차이를 말한다. 한국 전통예술의 미적 질감의 진행과정은 흥에서 멋으로, 멋에서 운치로 이행한다. 물론 주관적 견해다. 이미 언급했듯이, 흥이 감성의 원색적인 표출이라면, 멋은 이를 감싸서 내면화시킨 단계라고 하겠으며, 운치는 지성의 체로 감성의 원료를 걸러내어 한 단계 더 승화시킨 경지라고 하겠다. 이 같은 설명은 결코 이들 간의 질적 우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축적돼 가는 숙련미와 그에 따른 개성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앞서의 비유로 말한다면, 노년기가 장년기보다, 장년기가 청년기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바와 마찬가지다. 각각의 단계마다 모두 개성이 있고 특질이 있다. 흥과 멋과 운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흥과 멋과 운치는 한국의 전통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키워드이자 길라잡이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복잡한 안내서를 읽을 필요 없다. 이 세 가지 낱말의 개념만 몇 번 음미해 보자. 동트는 새벽처럼 한국 전통예술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지금까지 국악신문 독자들에게 귀한 글을 보내주신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이지출판사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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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고뇌의 소리 무대 오른다국립국악원은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민속악단의 정기공연 '홀로, 독(獨)'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선보인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이 비대면 시대, 홀로 된 예인들의 빛나는 예술혼을 엿볼 수 있는 무대이다. 이번 공연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시행에 따라 '홀로'가 된 예인들의 깊이 있는 '독공'의 시간과 그 고뇌를 담은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민속악단의 정체성과 각 단원들의 예술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기획했다. 3일간에 걸쳐 민속악의 다채로운 장르를 소개하는 이번 공연은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는 '판소리'(13일)를 시작으로 민속음악의 기악 독주 장르인 '산조'(14일)와 앉은 자세로 홀로 연주하는 '민요·가야금병창·연희'(15일)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의 첫 무대는 단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이야기를 전하는 '판소리'로 문을 연다. '판소리'는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에게 눈물과 웃음을 선사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음악으로, 소리꾼은 자신의 인생을 여러 인물에 투영하며 관객과 소통한다. 13일 무대에 오르는 민속악단의 조정희, 염경애, 이주은, 유미리, 양명희, 정회석 명창은 판소리의 주요 대목인 '눈대목'이 아닌 소리꾼으로서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대목인 '장기(長技)대목'을 전한다. 민속악의 기악 독주곡 형태인 '산조'로 마련되는 14일 무대는 민속악단 연주자들의 음악적 색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으로 꾸며진다. 이번 무대에서는 순수한 '산조'를 시작으로 '산조 병주', '산조 삼중주', '산조 사중주', '산조 합주' 무대가 차례로 선보인다. 기악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산조'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드러내고, '병주'부터 '합주'에 이르는 연주를 통해서는 민속악단 예인으로서 '전통'을 조화롭게 지켜가는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문경아의 '가야금산조'를 시작으로 한민택(거문고), 김정림(해금)의 '산조 병주', 원완철(대금), 배런(아쟁), 이선화(거문고)의 '산조 삼중주', 윤서경(아쟁), 이재하(거문고), 이여진(가야금), 백다솜(가야금)의 '산조 사중주'에 이어, 민속악단 기악단원 15명의 '산조 합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정기공연의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고요히 앉아 세속의 괴로움을 벗어나 평온한 마음으로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좌망'을 주제로 앉아서 연주하는 가야금병창과 민요, 연희 장르의 음악을 모아 선보인다. 가야금병창에는 박현숙(심청가), 위희경(적벽가), 천주미(심청가)가, 서도민요에는 유지숙(수심가, 엮음수심가), 김민경(배따라기)이, 경기민요에는 채수현(바위타령), 김세윤(유산가)이 각각의 곡을 자신만의 음악적 어조로 전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의 마지막은 8명으로 구성된 사물놀이 앉은반이 '삼도 풍물굿'을 전해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예술감독 취임 이후 첫 정기공연을 올리는 지기학 예술감독은 "홀로 갈고 닦으며 무대에서 당당히 빛을 내는 민속악단 단원들의 시간들을 반추하고자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히며 "홀로, 독은 단절된 홀로가 아니라 '나'의 진정한 확장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단원들의 고뇌를 담은 무대"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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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樂락 9회 김혜란 - 경기민요(태평가,한강수타령,노들강변,군밤타령)국악樂락 9회 김혜란 - 경기민요(태평가,한강수타령,노들강변,군밤타령) 공연을 통해 일반 대중과 국악이 만나 우리음악을 즐겁게 즐기는 고품격 국악콘서트 "국악樂락" 방송일자: 2013년 1월 12일(토) 10:00 ch19 TV조선, 2013년 1월 12일(토) 20:10 국악방송 출연자: 김혜란, 유지숙, 최진숙, 민속악단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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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보급아리랑’ 첫 재현, TV조선 ‘ㄱ(기역)을 기억하다’에서일제강점기 학생들의 브로나드운동(농촌 귀향 계몽운동)의 중심 활동인 한글보급운동의 실증 자료인 ‘문자보급아리랑’이 70여년만에 처음으로 재현, 방송을 탄다. 25일 저녁 8시 TV조선 특집 ‘세종에서 BTS까지-ㄱ(기역)을 기억하다’에서 공개된다. 이 자료는 1930년대 아리랑의 전형성을 활용하여 한글을 보급하는 선전가로 농촌계몽운동사나 아리랑사에서 중요한 국면을 보여준다. 이번 재현은 서도소리 이수자 김한나의 소리로 재현된다. 1930년대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을지로 3가 전통 철물공구 시장 골목을 무대로 촬영했다. 소리꾼 김한나는 ‘서울경기지역아리랑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사)영남민요연구회와 평안남도무형문화재 제2호 향두계놀이(회장 유지숙)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재현 ‘문자보급아리랑’ 사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 강산에 방방곡곡새살림 소리가 넘쳐나네에-헤 에헤야 우렁차다글 소경 없애란 소리 높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아리랑 고개는 별고개라요이 세상 문맹은 못 넘긴다네공중에 가고 오는 저 비행기산천이 우렁찬 저 기차는우리 님 소식도 알겠건만문맹에 속타는 이 가슴아한밤이 대낮된 오늘날에도눈뜨고 못봄은 어인일이냐배우자 배우자 어서 배우자아는 것 힘이요 배워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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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23: 한국전통음악연구회의 창단, 최경만 명인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몇 해 전 프랑스 아비뇽 축제 총감독인 다르시에가 방한했었다. 축제 기간에 한국의 전통예술가를 초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비디오나 실연實演을 통해 정악합주며 무용이며 무속이며 여러 장르를 살펴봤다. 그때 그는 이매방의 승무를 보고, 저것이 어떻게 전통이냐고 했다. 미국의 전위무용가 머스 커닝햄을 능가하는 ‘현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진부하리만큼 늘 보는 승무가 아방 가르드적 현대성을 갖췄다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문화가 다르면 미적 안목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는 사실을 그때처럼 깊이 실감한 적이 없었다. 제 나라에서 홀대받는 국악이 나라 밖에만 나가면 생각외로 상찬賞讚을 받는 이유도 퍼뜩 알만 했다. 그때 일을 계기로 나는 학생이나 후학들에게 소신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나라 밖의 광활한 세계를 활동무대로 설정하라는 당부가 그것이다. 답답한 동굴 속에만 갇혀서 자기를 알아 달라고 칭얼거릴 일이 아니다. 밖을 보면 쌍수로 환영할 드넓은 무대가 있다. 마침 시대의 조류도 다채로운 개성을 존중하며 다원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는 세상으로 진입했다. 한국 음악 특성이 세계 속의 개성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지평과 개연성이 그만큼 확대된 것이다. 야망을 품고 정진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신나는 문화 환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내내 인도 음악가들이 동양 음악의 대명사인 양 지구촌을 누비고 다녔다. 어려서부터 익힌 공용어인 영어로 자신들의 음악을, 서서히 동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서구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다기화 되어 가는 국제 상황과 국악의 함수관계가 새삼 머리에 맴돈 것은, 마침 범상치 않은 공연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튼실하게 내실을 다진 인재들의 모임인 ‘한국전통음악연구회’가 세밑에 선보일 창단 음악회가 그것이다. 우선 많은 분야의 단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모임체를 구성했다는 점이 각별해 보인다. 중견 연주가들이 무언가 시대적 조류를 실감한 나머지 의기투합된 것만 같아 더욱 기대가 앞선다. 이들의 젊은 패기와 음악적 열정이 하나로 응집되면 국악계에 괄목할 만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이들의 예술적 의지가 세계로 분출되면 명실공히 한국 음악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다. 분명 이 단체는 그렇게 될 소지가 크다고 나는 믿는다. 연합체를 구성한 단체들의 면면을 보아도 그렇고, 또한 그들이 지닌 음악적 기량이나 예술적 의지 또한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조직의 성패는 지도자의 역량이 관건인데, 이 연합체를 이끌 최경만 회장의 인생 경륜이나 음악적 성취는 세상이 다 인정하는 바이니 더욱 그러하다. 최경만 명인은 민속음악의 산실이라고 할 국악예술학교 출신이다. 한두 살 선후배 관계이긴 하지만 훗날 국악계 중진들로 활동하고 있는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과 최태현 교수, 김영재 전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 등이 모두 비슷한 세대의 재사들이다. 최 명인의 전공은 피리이고 경기토리의 대가였던 고 지영희 선생의 수제자인데, 민속악 계통의 피리 연주에는 군계일학으로 뛰어난 명불허전의 고수다. 내가 국립국악원장으로 재직 당시 중평衆評에 의해 특채를 한 단원은 마당놀이의 지운하와 피리의 최경만, 딱 두 사람 명인뿐이다. 한편 최경만 명인의 배필 역시 같은 국악원 연주단원인 서도소리의 대가 유지숙 명창이다. 그러고 보니 최 명인 부부는 경서도 소리의 합작품인 셈이다. 통일의 물꼬도 이곳에서 발원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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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 KBS국악한마당 ‘지평선 황금평야 김제’ 특집 다시보기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의 고장이자 농경 문화가 살아 숨쉬는 황금평야의 고을, 풍요의 고장 김제에서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무대를 전해드립니다. #국악한마당#김용우#박애리#이윤아#현승훈#김소라#이끌림연희창작소#국악그룹동화#BOB#유지숙#월하정인#깨끼저고리#이매방류살풀이춤#한국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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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1편집고문 사진작가 정범태(鄭範泰) 편집진용의 확립은 신문사 사세의 안정과 방향성의 확정을 보여준다. 지난 회에서 살폈듯이 편집국장 직제를 두고 지면 혁신을 하는 등의 변화는 40호 발행을 전후로부터 이뤄졌다고 하였다. 이를 입증하는 하나의 아이템(Item)이 제40호부터 역대 국악인들의 활동상을 담은 <명인> 연재이다. 제100호 까지 연재하고, 이어 <정범태의 사진으로 보는 명인명창 이야기>로 개재한 장기 기획물이다. 이의 집필은 편집고문 정범태(1928~2019) 사진작가이다. 선생은 1928년 평북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 쇼센 전문학교를 중퇴했다. 중국 톈진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5년 해방이 되어 귀국해 당시 외삼촌이 쓰던 일제 카메라 ‘웰미’를 만진 것이 사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 중 사진담당 군속으로 근무하며 전장을 누비게 되었다. 1956년에는 본격적인 사진작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조선일보 사진기자로 입사하여 한국일보, 세계일보의 사진기자로 69세인 1997년까지 40여년간 현장을 기록했다. "셔터를 누를 힘이 있는 한 정년이란 있을 수 없다"와 "사진은 자체가 기사이므로 독립성이 있어야한다.”는 지론을 견지하며 작업했다. 이 지론과 열정은 1960년대 4.19와 5.16 등 격동기 서민 삶에 대한 테마와 기록성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사진의 대표적인 작품을 남겼고, 1962년 4월에는 한국일보 필화사건으로 경기고등군법회의에서 2년형을 받아 복역하기도 했다. 작품 중 대표작으로는 ‘생과 사’, ‘열쇠장수’, ‘말과 마부’, ‘고물상과 노인’, ‘결정적 순간’ 등이다. 또한 1958년 미국 ‘US카메라’, 일본 ‘아사히카메라’, 영국 ‘런던타임스’, 스웨덴 ‘포토’ 그리고 1959년 11월 프랑스에서 개최된 제3회 파리비엔날레에서 입상하였다. 1962년에는 일본 세계사진년감, 1993년과 1995년 한국기자상, 96년에는 한국사진기자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명창명인전’(문예원), ‘한국의 명무’(한국일보사), ‘춤과 그 사람’(전10권, 열화당),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 사람’(이규원 공저, 현암사), ‘한국명인·명창전’(문예원), ‘명인·명창’(깊은샘) 등이 있으며, 사진집으로 ‘정범태 사진집 1950-2000’(눈빛)이 있다. 이 중에 민속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초점을 맞춘 작가이다. 선생이 춤에 대해 빠지게 된 것은 지리산 빨치산토벌대에 종군하면서라고 전해진다. 예향 남원에 자리 잡고 종군하다가 우리 춤의 정신에 빠져든 것이다. 선생은 실존적 상황 앞에 놓인 하층민의 삶을 주로 기록했다. 허무나 비애가 아닌 건강한 활기와 의지의 분위기를 포착하였다. 인간 내면의 마음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는데, 곧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역사를 쓴 것이다. 기록과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진에는 언제나 진한 휴머니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상과 같은 활동에 대한 평가를 받아 2005년 화관문화훈장을 서훈했다. 국악과 민속춤과의 인연은 1946년부터 1955년까지 우리나라 1세대 명창명인들과 교류하며 국악을 접하고 1990년대 들어 국악계 대표 인물들의 생애와 활동을 전신사진을 곁들여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국악신문 표3면을 장식하는 것으로 부터다. 또한 "음악·춤·소리·인물 자료들은 우리 문화를 아끼는 슬기로운 이들에게 값있는 양식이 될” 것이라며 자료를 공유하는 ‘풍류방’을 신문사를 통해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 연재는 2001년 '韓國의 名唱名人傳'에 재수록 되었다. 이 책은 중고제 명창 김창용을 시작으로 서도소리 유지숙 명창까지 "원형에 가까운 분들” 85명을 수록했다. ‘머리말’에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석들’이라며 경의를 표하였다. "오랜 세월 슬픔과 기쁨을 한 몸에 보듬은 채 우리 것을 향한 열정과 사랑으로 메마른 이 땅의 한을 풀고 흥을 심어 이를 지키며 갈고 닦아온 움직이는 보석들이다.” 이 같이 국악인들을 존경과 따뜻함으로 기록한 정범태 선생은 1996년부터 10여년간 고문과 집필자로서 함께했다. 이는 우리 국악의 위상 정립은 물론 국악신문의 방향설정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다. 역시 국악신문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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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으로 남북을 잇는 최신아예술단국악신문은 새로운 코너로 ‘Pick인터뷰’를 마련했다. 이 코너를 통해 더 원활하게 국악인들의 의미있는 활동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두번째 인터뷰어는 함경북도 청진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북도예술단에서 활동한 최신아예술단 최신아 (1969년생)단장을 국악신문 객원기자 기미양 선생이 인터뷰했다.(편집자 주) 기미양-안녕하세요, 먼저 통일부에서 통일교육위원으로 위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최신아 선생님, 북에서 대한민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나요? 최신아-네, 감사합니다. 아마도 북한에서 오신 분들 중 통일교육위원으로 임명을 받은 사람은 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온지 10년이 안되었지만 제가 이룬 성과 중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입니다. 2012년 봄에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처음에 와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Q.북한에서 한국에 온 이유는? A. 저는 함경북도 예술단 예술 감독을 26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탈북을 했습니다. 우연히 중국에 나왔다가 인터넷에서 남한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한 땅에 평양예술단이 있다고 해 보니 진짜 순수한 북한예술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짦은 순간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첫째 남한에 가서 진짜 최승희 무용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둘째 북한에서 예술가는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저의 이름을 걸고 나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셋째.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귀멀고 눈멀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자유민주주의가 있는 남한에서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Q.중국에서 직접 한국에 왔나요? 오면서 힘든 고비를 어떻게 넘겼나요? A. 네, 저는 2009년 북한에서 여권을 떼고 중국에 와서, 태국으로 넘어가서 3개월 후 한국에 가기 위해 죽음의 사선을 넘고 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펼칠 수 없는 순수한 예술을 위해, 저희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났는데, 당시 검열이 너무 심할 때인지라 검열관이 내 앞에 서자 갑자기 말문이 막혀서 벙어리 역활을 했는데 그게 통하더라고요. 하늘이 도우셨다고 기도를 하면서... 곤명으로 와서 산을 6시간 타고 죽기 살기로 태국으로 건너 갔습니다. 거기서방콕을 거쳐 한국으로 무사히 입국하였습니다. 가파른 산 비탈길을 넘어야 하는데 당시 중국에서 만나서 같이 도망을 나온 어린 친구가 더는 못가겠다고 그냥 여기서 죽겠다고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포기할 때, 같이 죽더라도 한국에 가야 한다고 그 친구를 부추켜서 붙잡고 오느라 땀이 어찌나 비처럼 쏟아지는지....간신히 고개를 넘고 넘어 태국까지 무사히 건너왔습니다. 거기서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드디어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자유의 나라로 왔습니다. Q.나중에 큰 따님 강나라는 북한에서 어떻게 탈출했나요? 남겨진 북한의 딸은? 가슴 아픈 질문을 드리네요. A. 제가 한국에 와서 3년 만에 맏딸을 데려왔는데요. 늘 가슴 한구석에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갈망하던 끝에 브로커를 통해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아직 오지 못한 막내딸 때문에 밤에도 제대로 못자고 있지만 함께 살 그날만 그려봅니다. 맛있는 음식 먹을 때마다 목구멍에 잘 안 넘억갑니다. 멋있는 옷도 사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꿈에서는 가끔 만나서 붙잡고 울고...자식 그리운 것은 말을 다 할 수 있을까요? Q.북한에서 무용가로만 활동하다가, 처음에 남한에 적응하기 얼마나 어려웠나요? A. 한국에 와서 3년 동안은 막막했습니다. 무용을 포기하고 자신을 치유하고자 하루종일 창가에서 십자수를 시작했습니다. 힘들게 한국에 왔지만 하나원을 나오니 직업이 없는 실업자가 되더라구요, 그래도 북한에서는 완벽한 무용가였지만 여기서는 그걸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무용을 포기하고 집에서 십자수를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식당에 나가서 알바로 생활비를 벌면서 살았습니다. 첫번째로 답답한 것은 이질화 된 남한의 문화극복이었습니다. 남한에서는 언어 소통도 힘들고 무엇을 사려고 해도 말(표현)이 너무 달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없었습니다. 북에서 온 사람 중 주유소에서 전화 받는 일을 하다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1달도 못 버티고 식당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분도 많습니다. 돈을 북한에서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빈손으로 왔는데 저희한테 주어진 것은 오직 실업과 빈곤이었습니다. 좌절도 했고 다시 북에 가고 싶은 생각을 하루에도 열 번씩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남한에 와서 예술 활동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거든요. 지금은 SNS를 통해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Q.탈북후 다시 무용가로서 기회가 주어진 것은 언제인가요? 대한민국에 와서 꿈은? A. 제가 2015년도에 7월에 한통의 전화가 오면서 그때부터 무용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국악방송국에서 진행하는 '국민대통합 아리랑'공연에서 전국 순회 공연에출연하면서 저라는 사람을 알리게 했고, 그로부터 최신아예술단 창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강남문화재단이 주최하는 759회 목요상설무대에서 ‘아리랑 아라리요 북에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게 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지역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기획공연을 통하여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습니다. Q. ‘최신아예술단’을 창단하시게 되는 계기가 궁금합니다. 소개도 해주세요 A. 최신아예술단은 2015년 11월에 창립됐습니다. 2012년 4월에 하나원 나와서 3년후 국악방송국 모 간부가 방송출연에 나와달라고 해서 북한에서 경력을 밝히고 난후 국민대통합 아리랑에서 장구춤을 선보인 후 격려와 용기를 받고 결심을 했습니다. 저의 이름 세 글자를 걸고 최신아예술단으로 만들어 현재까지 공연하며 오고 있습니다. 전통무용을 전공으로 한 대학 졸업생들로 오디션을 통해 5명의 인원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현재는 무용을 전문으로 배웠던 분들도 계시고 또 대한민국의 살풀이 이수자분들도 계시고 초등부 학생들도 계시고 취미반도 있고 성인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용을 정말 너무나 하고 싶었는데 체격이 안되거나 여러 가지 조건으로서 못했던 분들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 저에게 배우러 오기 때문에 "최신아 무용연구소”라 하면 정말 대한민국에 없는, 한 동작 한 동작 체형에 맞게 연구하면서 배워주는 연구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문하생들은 글로벌하게도 중국 유학생부터 조선족, 일본, 캐나다, 그리고 한국분들. 탈북인들을 대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에서도 많이 오고 계십니다. 이제는 최신아무용연구소로 발전시켜서 현재는 예술단과 무용연구소를 겸하고 있습니다. 우선 남한에 오신 북한 출신 예술가들과 소통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북한무용이나 최승희무용에 대한 연구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Q.처음 남한에서 섰던 첫 무대는 언제 어떤 무대인가요? 이후 특별한 무대는 A. 영광스럽게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아리랑 명인 이춘희 명창과 남도잡가 신영희 명창과 함께 하는 '2015국민대통합 아리랑 순회공연'을 성료하고, 2016년에는 괌에 초청돼서 북한무용을 보여주는 특별한 공연을 했고, 2018년에는 인도에 가서 ‘남북의 아리랑’ 주제로 투어공연을 하면서 북한무용의 진수를 알려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최근 사할린 동포들과 함께 하는 2019년 제3회사할린아리랑제입니다. Q.기사를 검색하니 최근 해외공연으로 사할린에 갔는데? 어떻게 해서 사할린아리랑제에 가게 됐나요? 북한 출신은 안보상 북한과 가까운 사할린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A. 그해 4월 이미시문화서원(좌장:한명희) 주최로 열린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추념 음악회'에 최신아가 이끄는 최신아예술단이 출연해서, 선보인 최승희의 '장고춤'을 사할린 동포들이 본 것이 이번 초청의 기회가 됐습니다. 그 중 한 가족이 고향이 북한이라고 합니다. 이후 사할린 동포사회에서 꾸준히 아리랑을 알려 온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사할린아리랑제추진단장)에게 사할린 동포들이 부탁해서, "사할린 동포들이 최신아 씨를 무조건 초대해달라고 했다"고 전해 듣고 가게 되었습니다. 가보니 북한이 고향인 분들이 적지않게 계시더군요.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났지만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시는 고난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Q.2019사할린아리랑제 공연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이었나요? A. 사할린아리랑제추진단 기획 측에서 북한의 대표적 무용 '쟁강춤' 선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북한 고유의 민족성이 담긴 쟁강춤은 북한 무용의 꽃입니다. 귀신을 쫓고 복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손에 부채를 들고, 손목에는 방울을 달아 '쟁강쟁강' 소리가 나는 '쟁강춤'은 최승희의 '무희춤'으로부터 이어져 온 대표적인 북한무용입니다. 남한 전통무용에 비해, 러시아 예술만 접해 온 동포들에게 우선 북한무용은 박자나 호흡 속도가 러시아 무용과 거의 비슷합니다. 사할린아리랑제에서 한국 전통무용과 북한무용이 한 무대에서 이루어져서 감동이었습니다. 한국무용가 영덕에서 오신 김옥순 무용가의 전통무용의 정적인 살풀이춤과는 대조적이어서 조화가 되었다고 봅니다. 다음에도 또 와 달라고 했습니다. 저 자신도 관객의 호응과 열기가 전해져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Q.70년 동안 우리는 남과 북이 갈라져 있다. 북한 무용가로서 사할린아리랑축제에 다녀왔는데, 예술가로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A. 북한무용가로서 최승희 선생님이 최초로 사할린에 공연 갔는데, 제가 또 두 번째로 최승희 선생님의 뒤를 이어서 사할린에 가서 공연하고 왔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통일에는 동포사회의 역활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가족은 북과 남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북에 공부하러 간 자식들을 마음대로 오고가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만나는 길은 남북통일 밖에 없다. 우리는 갈라져 있지만 하나의 민족이다"라고 하시면서, 저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거리셨습니다. 남북을 잇는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북한무용을 알리는 길도 통일에 기여한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한무용을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꿈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북한에서 무용가 입문경위 Q.언제부터 무용을 시작했나요? 계기는? A. 저는 평양에서 알아주는 예술가의 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배구를 좋아해서 초등학교에서는 스포츠 소조 활동을 하였습니다. 저희 학급이 2중 영예 붉은기 학급이 되어 배려로 평양학생소녀궁전 가야금 소조에 다니게 되었는데 제가 손가락이 아프다고 복도에 나왔다가 신명나는 장단소리가 나서 호기심으로 찾아 간 곳이 무용소조였습니다. 그러다 그 다음 해 우리 가족은 청진으로 추방을 당해서 지방으로 내려와 예술대학에 월반으로 입학해 본격적인 무용가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3살입니다. Q.해방후 남과 북은 민속예술도 이질감이 생겨났습니다. 북한 민속무용은 전통적 민족무용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시대의 목적에 따라서 재창조 되어 민족적 색채를 지닌 현대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무용은 빠르기나 호흡이 전통무용보다 훨씬 빠릅니다. 재창조 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체제 나라 중 영향을 받았나요. A. 북한은 1950년 이후 가장 영향을 받은 무용은 우쿠라이나 발레입니다. 남한은 현대무용 하는 분들이 따로 있고 발레 하는 분들이 따로 전통 무용하는 분들이 따로 있어요. 남한은 더운 지역이다 보니까 빨리 추면 덥지 않아요. 그러니까 온유하게 천천히 부드럽게 그냥 우아하게 부드럽게 춤을 추지만, 북한은 아주 추운 지역이어서 가만히 있으면 춥기 때문에 항상 뛰어야 되요. 러시아처럼 발 동동 구르며.... 그런 식으로.... 춤이 역동적이고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경쾌한 춤이 나왔기 때문에..... 전래되는 놀이문화를 봐도 남과 북의 차이점이라 하면 남쪽은 따뜻해서 온화하고 부드러운 춤사위가 살아있고, 북한은 추위가 강하니 강렬함과 역동적인 춤사위가 다른 것 같습니다. 북청사자놀음이나 밀양백중놀이를 비교해 봐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Q.(남한과 비교해서) 북한무용의 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북한무용은 당의 문예정책에 의해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 내용'을 주입시킨 시대적 변용에 의해 새로이 창출되었다고 하는데, 예를 든다면? A. 그래서 전 인민에게 노동을 장려하는 천리마 운동을 하는데 신나는 박진감 있는 박자가 어울리지요. 남측이 계승하고 있는 전통무용은 전혀 어울리지 않지요. 북한은 "인민의 민족적인 생활풍습과 정서가 짙게 반영되어 있는 예술형식의 하나”로 무용예술을 정의하기 때문에 민족무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남한무용이 자신의 의도와 감성을 표현하기 위함이라면, 북한무용은 당에서 내려온 문예정책 안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예술적 사고의 확장을 위한 다양한 주제나 느낌을 표현하는 활동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로 이루어진 예술무용에 대한 심미안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북한무용이 탄생한지 올해로 70년이 됩니다. 북한학으로 보지 않고, 시대적 문화변용(Acculturation)에 의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Q.북한무용을 한마디로 한다면? A. 북한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최승희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남북이 갈라지고 나서 북한은 사회주의로 길을 가면서 예술도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러시아 예술을 수용했습니다. 1950년대부터는 우리 전통무용을 근간으로 한 우크라이나 무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빠른 반주에 맞추어서 동작을 크게 하면서 우화함과 세련된 춤동작을 창작하여 왔습니다. 추운 지방의 특성을 살려 경쾌함과 역동적이며 빠른 톤으로 춤동작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북한 무용수들은 발레에서부터 모던댄스는 기본동작으로 배우고, 한국 전통무용을 전공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1960년대는 발레 기본과 최승희 선생이 정리한 '조선무용기본'을 통해 무용수들을 훈련해 왔지만, 1970년대 이후부터는 변화가 일어나서 '민속무용기본'을 만들어 무용수들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춤 연구가 정병호 교수는 북한무용에 대해서 "대체로 움직임이 기계적이고 절도가 있으며 동작이 크고 빠른 동작이 많으며, 목이나 손목 동작은 유난히 각을 많이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Q.무용가로서 가장 존경하는 무용가는 누구인가요? A. 제가 가장 존경하는 무용가는 예전에도 현재도 '최승희'선생님이십니다. 일제강점기 조선무용을 전세계에 알린 세계적 예술가이십니다. K-한류 1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동양인으로서 일단 쭉 뻗은 큰 키와 섬세한 맵시, 서구적 마스크와 유연한 품세를 그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나와서 더욱 자세하게 알게 된 보살춤 같은 창작작품은 환타지를 넘어 신비주의를 보여줍니다. 북한 무용의 발달 과정은 최승희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일제시대부터 이어 온 신무용으로서 조선민족무용과 서양식 무용을 근간으로 당의 목적과 필요성에 의해 재창조 되고 있다. 1960년대 와서는"민족적인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으라”는 당의 문예정책에 부합하는 민속무용으로 개발되었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혁명수행을 위한 수단으로 북한무용을 이끌어온 '피바다식 가극무용'이 공연되면서 지금의 북한민속무용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Q.북한에서 무용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A. 저는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을 모시고 무대를 한 적도 있습니다. 북한 전국무용대회 솔로(독무) 무대에서 15년 동안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1등을 해야 하는 성격입니다. 다행히 달리기 수영 등산 등 대회에서 늘 상위권을 할 수 있는 체력을 타고 났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하죠. Q.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무용을 사제자로 전수받은 탈북 무용가 최신아라는 타이틀이 붙고, 이병옥교수가 최단장을 최승희 무용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해주셨는데, 무용가로서 자신의 소개 부탁드려요? A. 탈북 무용가 최신아라는 타이틀은너무 과분한 말씀입니다. 북한무용 자체가 최승희 선생님의 무용정신을 이어 받았기에 거기에 저도 포함되어 있던 것 같습니다.저는 북한에서 예술대학을 졸업하였고, 그후 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한 26년간 활동하다가 남한에 온 지 11년이 됐어요. 최승희 춤 중 가장 자신있게 출 수 있는 춤은 사당춤, 장구춤, 쟁강춤입니다. Q.북한에서 최승희 무용은 누구에게 배우셨나요. 스승이 ‘최승희 무용’을 가르칠 때 최승희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셨나요? 북한에서의 최승희 무용가에 대한 평가는? A. 저희 담임 선생님이 최승희 선생님의 제자다 보니까, 최승희 선생의 사당춤을 배워줄 때 한마디 한마디 하실 때마다 최승희 선생님이 이런 표정을 짓고 이렇게 춤을 이런 형식으로 쳤다는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그래서 북한에선 최승희 선생님에 대해 세 글자만 불러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세 글자 외에는 그 누구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쉽지 않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희 때는 최승희 선생님이 활발하게 활약을 했다는 내용도 잘 몰랐어요. 남한에 와서 많이 알게 되었고 북한에서는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Q.남과 북의 춤을 비교하신다면 어떻게 다른가요? 무대에서 북한과 남한의 관객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요? A. 남쪽은 무용은 워낙 더운 지방의 특색을 살려 우와하고 부드러운 춤을 추지만 북쪽의 춤은 강한바람과 추위를 이겨내는 고구려 정신으로 경쾌함과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습니다. 북한은 형식적 박수를 치고, 남한은 자연스럼 감성에서 나오는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공연후에 꽃다발도 안겨주고 사인도 해달라고 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남한 춤사위는 화려하고 우와함이 있다면 북한은 화려하고 우와미가 있고, 거기에 다이나믹(역동성)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있는 퍼포먼스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남한 무용가의 시선은 무대에서 자기도취형이랄 수 있고, 북한 무용가의 시선은 반드시 시선을 관객과 눈이 맞추어야만 합니다. 관객을 끌고 가는 것이 첫째입니다. 북한 무용은 첫째가 관객을 의식해야만 합니다. 소통이 안되면 완성된 작품이 아닙니다. 그래서 북한은 얼굴표현이 아주 중요합니다. 연기력이 있어야 합니다. 관객의 호응을 못 받으면 무대에 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선전 선동의 기본이라고 하죠. Q.북한에서 전통무용 살풀이. 태평무를 배웠다는데 북한무용 춤사위 기본동작에 어떻게 반영되나요? A. 북한무용 춤사위 기본동작에는 살풀이 태평무를 위한 동작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앉기동작과 수건춤 동작, 뿌리치기 동작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문예정책에 의하면 북한의 무용은 이러한 민족무용을 근간으로 발전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무용 의상도 전통한복을 기초로 창작됩니다. Q.최신아씨가 북한 대집단체조 공연에서 맡은 역할은? A. 저는 1993년 전승 40돐기념공연 대집단체조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원조)에서 '기러기떼 날으네' 출연과 동시에 예술감독 역활을 맡았습니다. 작품은 '빈터에서 우리는 자랐다'와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에서 무용수로 참여하였습니다. Q.북한에서 30여년 무용을 하면서 무용가로서 북한 무용가의 자질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A. 무용가라 하면 ‘종합예술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용가라고 하면 첫째 선율에 맞추어서 몸을 움직여야 하기에 음악을 받아들이는 음악적 청음(귀명창)이 발달해야 하고, 기본적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장단(박자)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전통무용에서부터 발레, 현대무용을 배워야만이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이론적 단계까지 공부를 해서 무용론, 초리론, 무용표기법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해서 소화를 해야만 아래 후배를 이끌 수 있습니다. 육제적으로는 체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매일 하루도 안 쉬고 혹독한 연습을 해야만이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그 어떤 장르의 예술인들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단련해야만 무대에서 제대로 된 작품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대부분 북한 무용가는 가무악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장구 같은 악기 연주는 필수입니다. Q.주목되는 아리랑 작품이 있는데(아리랑환타지.서울아리랑) 어떤 계기로 만들었나요? A. ‘아리랑환타지’작품은 제이케이앤컴퍼니에서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앙상블과 함께 아리랑환타지 작품을 콜라보로 하자는 제안이 들어와서 보내준 음악을 듣고 결정을 했습니다. 20일 만에 창작하여 여수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선율에 세계인이 인정하는 신명나는 장구를 메고 장구춤을 형상화 했습니다. 남북의 통일된 모습을 상상하며 기쁨과 상생을 상상하며 화려한 부채와 신명나는 장구춤으로 창작하였습니다. 서울아리랑 작품은 국악방송 15주기기념 ‘기적의 아리랑’ 공연에서 소리아밴드와 함께 콜라보로 창작하여 만든 춤입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이 담긴 긴부채를 꽃처럼 묘사해 행복한 모습을 서울아리랑 음악에 맞추어 춤을 창작하였습니다. Q.'서울아리랑' 작품을 하시면서 직접 부른 가사를 알려주세요 A. ‘그리운 강남’이라고 1930년대 나온 음악으로 아리랑을 부르며 고향으로 갈 그날을 그리며 창작하였습니다. 가사는 ‘정이월 다가고 사월이라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 가세’입니다. 여기서는 장사익 선생이 잘 부르는 곡이더군요. 이미 널리 알려져서 강남아리랑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래서 서울아리랑 창작무의 주제곡으로 선정했습니다. Q.한국에 나와서 창작하신 무용작품들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A. 무용작품도 시, 소설과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주제와 내용을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창작을 합니다. 대충이라는 단어는 안 통하는거죠. 그래서 그 어떤 동작을 넣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작품을 쓰는 것처럼...시놉시스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짜고, 주인공(배역을 맡은 무용수)들이 내용을 숙지하고 무용으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하나의 창작작품이 탄생을 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며칠동안 잠도 안자고 안무를 구상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구상과 몸짓이 떠오르죠. 한국에 와서는 창작작품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남한의 아름다우면서도 우아한 살풀이, 부드러운 선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역동적이면서 격동적인 무용을 배합하여서 5개의 작품을 창작하여 무대에 올렸습니다. Q.북한에서 가장 자신있는 당신의 레파토리(대표) 작품은? 지금 제자들과 무대에 오른다면 보여주실 수 있는 총 작품은 얼마나 되는가요. A. 북한에서 가장 자신있는 작품은 장구춤, 쟁강춤, 사당춤, 나의초소, 도라지춤, 물동이춤 등등입니다. 제가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은 북한에서 배운 장고5인무. 쟁강춤, 사당춤, 장고춤과 제가 남한에서 발표한 창작무 서울아리랑, 아리랑환타지, 그리운강남, 임진강, 삼색부채춤, 매직춤입니다. 어림 잡아 10여 작품입니다. TV조선 '모란봉 클럽'에 출연했던 본인 작품 아리랑환타지가 유튜브에서 인기입니다. 이후 인기있는 작품은 역시 ‘서울아리랑’과 ‘아리랑환타지’ 작품입니다. 무용곡은 남북이 애창하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입니다. Q.현재 인기가 좋은 매직춤(사계절춤) 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어떻게 만든 것인가요? 남한에 와서 처음 안무를 맡은 작품이 있나요? 창작작품에 따라서 의상 디자인도 직접 구상했다는데 자세한 설명 듣고 싶어요. A. 제가 대한민국에 처음 도착하여 국정원에서 이 음악을 듣고 가사도 좋고 곡도 좋아서 제가 한국에서 무용을 한다면 꼭 이 음악 한국의 사계절을 담고 싶었서 창작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남한에 와서 남원한복패션쇼에서 안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창작작품은 제가 디자인을 하고 의상사에게 맡겨 완성합니다. Q.최근 북한 예술가 중 가장 인기있는 모녀라고 하는데, KBS와 MBC, 전주 얼쑤 우리 가락과 부산 KBS 가요 1번지토크쇼, 남도 국립국악원공연. 최근 강나라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실제 자문위원이었고, 어머니는 함경북도 예술단 예술 감독을 맡은 모녀가 MBN ‘대한민국 팔도명물인증쇼&에 나왔다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방송을 통해 북한문화예술을 어떻게 전달해 주고 싶으신지요? A. 제가 방송을 통해 알려줄 것은 우리의 문화예술의 뿌리는 하나다라는 것과 북한의 전통을 알아야 통일을 대비해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북한무용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무대에서 다이나믹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속도감이 빨라서 한국무용과는 차이가 나죠. 무대에서 정적인 한국무용과는 대비가 되어서 관객들의 호응이 높습니다. 일단 신선하고 새로운 장르이니만큼.......... Q.'이북5도무형문화재'는 황해도·평안남도·평안북도·함경남도·함경북도 북한 지역에 있는 5개 지역을 기반으로 한 19개의 종목문화재를 가리키는데, 현재 이북5도무형문화재 제1호 애원성에서부터 만구대탁굿, 돈돌날이, 두만강뗏목놀이소리, 제2호 평양검무 제3호 부채춤, 평안도 다리굿, 제4호 화관무. 제4호 평북 농요평안도 등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신청한 종목은 무엇인가요? A. 제가 3년전에 북한의 전통무용으로 "최승희 류 평양 장구춤” 종목을 신청했습니다. 평양장구춤은 최승희선생님의 장구무용을 북한의 최고 춤꾼인 홍정화 선생님이 승화 발전시켜 오늘날에는 공훈배우, 인민배우 급수시험작품으로 진행되고 있는 난이도가 높은 무용작품입니다. 앞으로 쟁강춤도 북한의 무형문화재로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 황해도무형문화재 제4호 화관무 2020 정기공연이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지난 1월 20일 비대면 동영상 공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Q.개인적으로 첫째. 앞으로의 계획은? 둘째, 통일부 통일자문위원으로서 통일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실건지요? A. 아마도 무용가로서 무용은 제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몸이 허락할 때까지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북한에서도 살아봤고, 남한에서도 살아 봤잖아요. 아마 저는 통일되면 남과 북에 예술인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남과 북의 무용을 승화 발전시켜 우리의 문화예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과 현재 운영하고 있는 최신아무용연구소가 발전되어 특수한 문화적 요건에 의해 탄생한 북한무용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북한무용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한반도 민족유산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서 통일후 남북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한걸음 뚜벅 나아갈 것입니다. Q.마지막으로 통일부 통일자문위원 최신아 선생에게 한가지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사할린은 북한지역과 지정학적으로 오고 가기 쉬운 북러관계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 이후 북한 노동자들이 나와서 돌아가지 않고 눌러 앉아 있는 북한 출신 실향민들이 사할린 동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합동공연을 한다면 가장 1순위가 사할린입니다. 지정학적 특수한 여건에서 남북이 제3지역에서 합동공연을 할 수 있는 1순위 지역입니다. 그런 성격의 남북공연이 60년만에 사할린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18년 광복절 기념 남북한합동공연이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개최되어 다녀왔습니다. 공식 행사명은 '광복 73주년, 남부사할린과 쿠릴열도 해방 73주년 기념 우정의 날'입니다. 사할린 동포 강제동원 80주년을 기리기 위해 사할린주한인협회가 주최하는 남북러합동공연 행사입니다. 남측에서는 국립국악원과 국립남도국악원, 북측에서는 삼지연악단과 모란봉악단 단원으로 구성된 통일음악단, 사할린동포의 아리랑무용단, 사할린의 에트노스예술학교 학생들이 출현했습니다. 북한에서 나온 3000명의 노동자 중 많은 북한 사람들도 함께 한 광장은 인산인해로 열기와 박수 소리가 가득 메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은 체제 선전가를 부르게 되니, 남측의 경고가 반복되어도 김일성 3부자를 우상화 및 찬양하는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결국 북측의 예측불허 공연으로 행사진행이 불발되어 남한 측 공연단은 무대에서 모두 철수하는 급작스런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무대는 북한 선전선동가 일색으로 끝났습니다. 무대 앞에서는 현란한 북한 공연이 이어져서 북한공연팀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고 흥이 오른 관객들은 무대 잎에 나와서 부르스를 추고, 무대 뒤에서는 남과 북 공연 대표팀이 고함을 지르고 큰 싸움까지 붙었습니다. 모든 일을 추진한 사할린한인협회는 북측 공연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고 싸우고 나서는 북한 공연팀을 이동시키는 리무진 버스도 철수시켰습니다.,,,,그날 대한민국 신문방송은 모두 '사할린 남북합동공연 불발'이라고 전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남북공동 행사가 제3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A. 네, 방송과 신문지면을 통해 사할린에서 몇십년만에 모란봉악단이 와서 국립남도국악원과 함께 콜라보 공연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북합동공연이 불발이 되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남북이 함께 하는 공연에서 감자기 북측에서 김정은 체제 선전가를 부르는 무대에서 남측 국립국악원과 국립남도국악원 공연팀이 무대에 같이 설 수는 없지요. 왜냐하면 사전에 국가 체제에 관한 선전가는 안 부르기로 합의를 보았는데, 북측이 그 합의를 준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남측의 민간단체가 함께 했다면 그 공연은 함께 해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국립기관과 민간단체가 함께 공연을 했다면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했을 겁니다. 1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사할린까지 날아가서 국민혈세를 쓰고서 그냥 오다니 말도 안되는 남북 국제행사입니다. 민간단체 공연팀이 같이 갔다면 예정대로 무대에서 남북이 아리랑을 대합창으로 휘날레는 했을 겁니다. 즉 국민들 앞에서 대의명분은 서는 거지요. 북한에서 나온 노동자들과 사할린 동포들이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우리는 하나인데... 당시 기사를 보니 "사할린다민족협회 아코뺜 싸르키스 조리코비츠 회장은 사전 리허설을 보고 직관적으로 "사할린에서 남과 북이 만나 아리랑을 함께 부르니 하나의 민족이다"고 외쳐 기립 박수를 받았다.”라고 했는데. 예를 들어 제가 참가한 사할린아리랑제추진단이 정례화 하고 있는 사할린아리랑제와 같은 민간단체가 매년 사할린에서 열리는 아리랑축제와 함께 했다면..남북러가 참가하는 공연 타이틀은 이름값을 했을겁니다. 그리고 후일담으로 국립국악원에서 오프닝 무대의에서 유지숙 명창이 부른 '애원성' 같은 북한지역 서도민요는 현지 관객의 취향에는 맞지 않아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이나 북한 노동자들은 전통민요의 멋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트롯트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북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2호 아리랑은 다 좋아합니다. 영천아리랑은 북한 민요음반에 첫 번째 인기곡목입니다. 밀양아리랑도 좋아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북한과 러시아는 박자 빠르기가 남한과 확연하게 다릅니다. 처음 들어보느 낯설고 느린 전통민요 코드는 맞지 않습니다. 남북합동공연에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야합니다. 차라리 남측에서 처음에 유지숙 명창이 아리랑 메들리를 부르거나, 북한이 좋아하는 영천아리랑이나 북한 최고 유행가 '휘파람'을 불렀다면 중간에 타협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관객은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 동포들과 북한 노동자입니다. 그들의 취향에 대한 배려가 먼저입니다. 2018년 사할린아리랑추진단이 한국에서 사할린한인협회와 MOU를 맺고(<사할린아리랑제, 北 예술단 참가 추진···현지 한인협회 MOU> 뉴시스, 2018-06-19)두 단체는 "한민족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아리랑의 기능을 활용, 올해 제3회 사할린아리랑제에서 사할린을 거점으로 삼는 아리랑로드를 확장하기로 했다. 급변하는 국제관계에서 북한 동포들과 아리랑공동체를 공유한다는 취지다. 금년 사할린아리랑제는 러시아는 물론, 남북 합동공연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할린아리랑추진단은 2018년 사할린을 세번 오가며 남과 북이 유네스코에 공동등재 된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주제로 하여 남북합동 공연을 같이 하자고 사할린한인협회에 제안을 했죠.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 결국 성사가 안 되었죠. 공동주최가 안되어도 한꼭지 무대를 주었다면, 국립기관 단체 공연팀이 공연 도중 철수를 해도 민간단체는 탄력성을 가지고 남북합동 공연은 마무리 되었을 겁니다. 적어도 불발이라는 기사는 안나가겠죠.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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