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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46)<br> 이희문·송가인·이날치밴드 공연, 신명나는 민요 현장민요의 현장 논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그 현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희문, 또 여타 실험들에서 민요가 면면히 살아 있을을 확인한다 굿판·노동판·유희판 배경이 달라지고 노래의 양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경기소리는 이희문에게 보존해야 할, 혹은 발전시켜야 할 그 무엇으로서 가창자에게 의무와 당위를 부과하는 억압 기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 성악의 음악적 텍스트는 '만들어진 전통'이 빚어낸 페르소나(persona)를 벗고, 원형으로서의 경기소리와 그 텍스트가 꽃핀 문화와 물적 토대, 환경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이행대상(transitional object)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지난 6월 24일 한국민요학회 제75차 정기학술대회, 이소영 교수(명지병원예술치유센터)가 발표한 '민요의 공연예술화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희문의 경기소리를 중심으로'의 한 대목이다. 이소영은 이 발표에서 이희문의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실험들이 역설적으로 경기소리라는 민요의 원형적 양식을 재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가 좌장을 맡아 종합토론을 진행하였기에, 뒷풀이라고나 할까, 의미심장한 몇 풍경을 소환하여 공부자료로 삼는다. BTS보다 더 먼저 해외 진출에 성공했던 사례가 '이희문과 씽씽'이다. 나도 오래전 이 영상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전통적인 음악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복식이나 배경음악 등 파격적인 연출을 통해 전혀 다른 양상의 장르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같은 도발적 실험들은 이날치밴드, 잠비아니, 악단광칠 등을 필두로 주로 판소리계열 전공자들에 의해 실행 중이다. 민요를 포함한 판소리 전공자들이 트로트나 일련의 실험적인 장르 개척에 나서는 현상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국악의 르네상스'다. 나도 일찍이 수차례 송가인 신드롬을 분석했다.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로 대변되는 사회문화사적 현상, 특히 국악이니 민요니 우리 것이니 따위의 복고적 환기 현상에 주목했다. 전통이라고 해서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요 복고라 해서 퇴행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민요의 현장은 어디인가? 이런저런 현상을 통칭하는 용어로 흔히 컨템퍼러리(contemporary)를 든다. 전통이나 기왕의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대의 감각이나 의미로 포착해내는 일련의 행위라는 함의를 지닌 용어다. 어디 음악뿐이겠는가. 한자말은 다르지만 전해서(傳) 통하는(通) 것이 전통(傳統)이라는 저간의 내 주장을 복기해둔다. 전해서 통하지 않는 것은 인습(因習)이고 장차 폐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무당굿으로 알려진 장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동시대는 물론 관련 공동체와 교섭하면서 재구성되어 온 시대적 산물일 뿐이다. 문화 자체가 늘 현대적 변용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이희문의 사례뿐 아니라 몇 가지의 논의들이 중첩되었다. 관련 언급은 차후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전체주제였던 '민요의 현장'이 과연 어디일 것인가였다. 예컨대 논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던 노동요의 현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희문의 사례에서 또 여타의 실험들에서 민요가 면면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굿판과 노동판과 유희판의 배경이 달라지고 노래의 양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심지어 나는 송가인의 트로트를 '남도트로트'로 명명하고 전통이라는 틀 속에서 분석하고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기 때문에, 두루두루 참고 가능할 것이다. 노동요의 현장과 이희문의 무대 현장, 여전히 문제는 장르나 양식에 대한 고정관념 혹은 분과학문이라는 틀거리에 대한 편협한 진단에 있다. '무대민요'와 '극장민요'를 넘어 민요의 현장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기억된 현장과 사람들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 시기 포착했던 기억된 과거만이 민요의 정체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론을 통해 내가 제안했던 몇 가지를 민요연구의 공론장에 제물로 내놓는다.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한 민요라거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요 등은 일종의 무대민요 혹은 박물관민요다. 논밭에 나가 일하는 형식을 취한다더라도 야외무대라는 맥락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획, 연출, 안무, 소품들이 마련될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배치, 역할, 무대장치, 조명, 복식 등이 면밀하게 구성된다는 점에서 극장민요다. 미장센을 치밀하게 구성한다는 점, 전통 혹은 원형 따위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연극이라는 점에서 이런 호명을 붙일 수 있다. '극장민요'라는 언설은 기어츠가 창안한 극장국가라는 개념에서 내가 따온 말이다. 19세기 인도네시아 제의정치와 권력구조를 정의한 것인데, 근자에는 북한을 수식하는 용어로 사용되어왔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민요는 본래적 배경(context)이 거세되었다. 총체적이지 않다. 문화재 지정이나 전통 발굴을 목적 삼았던 기왕의 민속예술제 따위의 민요는 그것이 갖는 전통적인 양식 예컨대 선율이나 장단 따위의 음악, 노랫말이나 문학적 형식 따위에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이다. 박물관이나 극장에 전시된 혹은 실행되는 민요의 의미가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기획되고 연출된 장르를 폄하하며 이른바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언설로 그 가치를 훼손시킬 필요는 없다. 단지 이것을 총체적 의미를 지닌 것처럼 여기거나, 컨텍스트적 맥락을 요구하는 것을 비판할 뿐이다. 오히려 변화된 현장을 주목하고 재구성된 장르 속에서 원형적인 것을 추적하는 일이 긴요하다. 문화재라는 용어를 문화유산이라는 용어로 바꾸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책의 절반 이상을 민요(風謠)로 수록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살폈던 <시경>을 여전히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희문과 송가인, 이날치밴드나 악단광칠이 노래하는 곳이 현장이다. 민요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근대의 남상기를 기점 삼는 민중성에 대한 주목, 예컨대 민족, 민속, 민예, 민화, 민요 따위의 개념에 충실했던 일정한 시기를 이미 지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선은 분출했던 시대적 수요에 대한 향수, 그때 누군가 정해두었던 그 지점에 머무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근래 교과서에서 국악을 없앤다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다행히 무마된 것같다. 하지만 극장민요와 현장을 혼동하는 착종된 시각이라면, 여전히 잠자는 파도일 뿐이다. 이렇게 질문해본다. 동요를 잃어버린 어린이들의 문제를 의제화하고 우리 사회에 피드백시켰는가? 도대체 그 많던 '어린이'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패미니즘 등으로 고군분투해온 여성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다루고 그들의 행로에 동행했는가? 혹은 비판했는가? 민요 장르는 사실 남성보다는 여성의 지분이 압도적이고 주도적임을 주목하라. 북한민요가 이미 상당하게 입수되어 있는데, 이를 소재 삼아 남북갈등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재건하거나 치유하는 데 피드백되었는가? 민요를 대체하는 실천적 현장에 대해 주목하거나 의제 삼았는가 따위의 질문 말이다. 교과서에서 국악을 뺀다니 화들짝 놀라는 안이함을 나부터 반성한다. 우리 민요 혹은 국악이 지금, 여기, 우리, 특히 다음 세대에 어떻게 기능하고 피드백되는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전통을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자들의 책무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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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의식주(衣食住).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식'과 '주'에는 많은 신경을 쓴다. '주'는 또 어떤가. 우리는 '어디에'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그에 반해 '의'는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 24시간 '의'를 몸에 걸치고 있지만, 이 옷이 과연 나에게 유해한지 무해한지는 알 길이 없다. 거의 24시간 항상 내 몸과 붙어있는 이 '의'에 우리는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는 너무나 아무런 생각 없이 옷을 대하는 우리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전 세계적으로 2조5천억 달러 규모를 자랑하는 패션업계는 이런 문제를 철저히 피해오고 있다. 화장품이나 세제, 포장 식품의 라벨에는 성분 목록이 표시된다. 그렇지만 패션 제품은 우리가 취급 허가증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재 중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인 화학적 프로필을 갖고 있다. 먹고 바르는 것에 예민한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늘고 있다.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고, 천연 화장품과 세제를 쓰고, 각종 생활용품의 원산지와 성분을 꼼꼼하게 따진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습기 살균제나 라돈 침대 같은 뉴스를 접할 때면 한층 까다로운 눈길로 장바구니를 점검한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품목이 있다. 바로 옷이다.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24시간 몸을 감싸는 옷의 성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옷은 과연 안전한가.옷의 라벨을 확인했다고? 중국산에 면 50퍼센트, 폴리에스테르 30퍼센트, 나일론 20퍼센트라고? 안타깝게도 그 라벨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패션 제품은 우리가 취급 허가증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재 중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인 화학적 프로필을 지닌다. 옷 한 벌에 때로는 5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되며, 이것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내분비 교란, 통증, 알레르기, 불임, 심지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풀풀 날리는 바지, 중금속을 함유한 아기 신발, 발암성 아조염료가 든 포근한 스웨터, 프탈레이트로 범벅이 된 화려한 슬리퍼… 새 옷을 입고 나서 어딘가 가렵거나 피로한 느낌이 든 적 있다면, 당신이 너무 민감해서가 아니라 옷이 문제일지 모른다.이 책은 우리가 매일 입는 옷에 숨겨진 이러한 끔찍한 진실을 밝히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사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이 유독한 시스템을 어떻게 함께 바꿔 나가야 할지를. 저자는 폴리염화비닐, 폴리에스테르, 폴리아미드, 폴리우레탄처럼 '폴리'로 시작하는 재료와 나일론, 아크릴 등을 피하고 실크, 캐시미어, 린넨, 양모, 알파카 등 천연 소재를 선택하라고 권한다. 또 오코텍스, 블루사인 등 안전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업체를 인증하는 단체들이 공인한 제품인지를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채도가 높거나 지나치게 밝은색 옷을 피하고 새 옷을 사면 입기 전에 무향 세제로 세탁하는 것도 위험도를 낮추는 방법이라고 소개한다. 중고 옷을 입는 것도 건강에 해로운 화학 물질을 피하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꼽는다. 1장 위급 상황: 하늘에서 울리는 독성 경보섬유업계에서는 각각의 화학물질 단독으로 사용 한도를 정해 놓았다. 개별 물질이 권장 한도 미만으로 들어 있다면, 여러 물질을 혼합한 결과 유해성이 해당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그들 기준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사용량에 따라 독성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 업계의 통념이다. 그러다 보니 각 화학물질의 안전 한도를 확인하고 사용량을 한도 아래로 유지하는 술수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지침에 따르면 적어도 테스트한 화학물질과 관련해서 유니폼은 완벽하게 괜찮아 보인다.(50쪽)2장 옷장 속의 살인자: 과학자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그동안 승무원들과 엄마들, 화학물질 민감증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여성이 합성섬유로 된 옷을 입으면 몸이 아프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에 독성이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 혹은 폴리우레탄 옷감 자체가 아니라면? 옷감에 붙어 있는 염료가 문제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걸까?(86쪽)3장 멋지고 편리한 것들의 배신: 유행은 짧고 부작용은 길다섬유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그 자체로는 위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성 성분을 방출할 수 있다. 다림질이 필요 없는 바지에 함유된 포름알데히드나 염색된 셔츠에 든 아민 성분은 의류 노동자의 독성 물질 중독을 불러오고 지역사회를 오염시킨다. 그런 다음 무해한 기능성 물질로 우리 옷에 잠시 머물렀다가, 매일매일 호흡과 피부를 통해 조금씩 인체에 흡수되어 본 모습을 드러낸다.(124쪽)4장 치명적인 컬러: 중금속 그린에서 타르 염료까지패션에서 화학물질의 핵심 역할을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의도적으로, 완벽하게 감출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스웨터나 청바지, 양말 또는 속옷의 표면에 보이지 않는 수십 가지 인공 석유화학 물질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평범한 사람들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화학 공정을 거쳐 화석연료로 만든 물질이 면 티셔츠에 들어 있다고? 말도 안 돼!말이 되는 일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화학은 그저 패션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앞서 살펴본 것처럼 패션 덕분에 존재하게 되었다. 화학이 곧 패션이고, 패션이 곧 화학이다.(163쪽) 5장 도둑맞은 생식능력: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프탈레이트, BPA, 납, 중금속 등 우리가 이야기한 대표적인 물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체내에 축적됩니다. 음식에서 조금 흡수하고, 옷에서 조금 흡수하고, 위생용품에서 또 조금 흡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상가 효과로 인한 증상과 문제가 발생하기에 충분하다고 장담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 영향을 이미 일상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피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던가요? 건조하고 가려운 피부나 무언가에 대한 천식 반응은 어떤가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아, 나는 가끔 호흡이 가빠지곤 해 하고 마는 건 아닌가요?”(182쪽)6장 당신이 너무 민감한 탓이야: 화학물질 민감증이라는 미스터리"어떤 사람은 더 이상 옷을 입을 수 없는 정도라 집에서 벌거벗고 있습니다. 증상이 진짜 심한 사람들은 흰색이나 베이지색 옷만 입지요. 색이 강한 옷에는 염료가 너무 많이 들어갔을 테니까요.” 습진이 있는 한 고객은 옷에 2퍼센트 함유된 스판덱스 성분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새 옷을 사서 햇빛과 빗속에 몇 달 동안 걸어 두거나 압력솥에 넣어 두거나, 분유와 식초 혼합물에 담가 두는 사람도 있다고 알려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화를 사서 언젠가는 신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3년 동안 밖에 둔다고도 했다.(202~203쪽)7장 내 몸이 나를 공격한다: 자가면역질환의 유행페어웨더와 이야기하면서, 옷 때문에 누군가의 삶이 망가진 무서운 이야기의 시작이 왜 항상 발진이나 두드러기였는지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발진이나 두드러기는 일종의 경고등이자 조난 신호였으며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음식 알레르기 문제로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살면서 언젠가 만성질환으로 나타나게 될 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가 말했다.(223쪽)우리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는 화학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화학 기술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특히 아무런 동의나 충분한 지식 없이 만들어져 우리가 입는 옷에 적용되는 화학 기술을 거부할 수 있다면, 최상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224쪽)8장 아주 위험한 곳: 해외 섬유 공장의 현실전적으로 생산에 집중해 문제를 볼 것인가, 아니면 특권층이라 할 수 있는 서구 소비자에 관심을 집중시킬 것인가? 그러나 양자택일의 상황이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다. 특히 화학물질에 관해서라면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티루푸르의 의류 노동자와 미국의 소비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을지라도, 피를 나눈 자매라 할 수 있다. 같은 옷에서 나온 같은 독성 화학물질을 같은 핏속에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254~255쪽) 9장 신뢰하되 검증하라: 친환경 인증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오코텍스 인증이 엄격할수록 궁극적으로는 브랜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브랜드들은 인증에 수십만 달러를 쓰고 있다. 그러니 거기서 어떤 가치를 얻어야 한다. 성실하고 친환경적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거나, 제품에 포함된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재정적, 법적 책임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한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누군가 자신들이 만든 옷에 문제 반응을 보이거나 옷에서 유독 물질이 발견된다면 오코텍스 인증을 가리키며 씽스의 CEO와 델타항공, 랜즈 엔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개인의 민감성이 문제입니다. 당사 제품은 업계에서 최고로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293~294쪽)10장 해독의 시간: 더 깨끗한 옷장과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많은 소비자가 천연 소재 제품을 사면 안전할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흰색 면 블라우스를 만들 때에는 얼룩 방지용 과불화화합물이나 주름 방지 마감 처리 등 매우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만일 이 블라우스를 뒤뜰에 파묻는다면 유기농 정원에 유독 물질을 뿌리는 꼴이 될 것이다.(301쪽) 승무원들은 비교적 통제된 환경에서 같은 옷을 계속 입고 생활하므로 그로 인한 증상을 판별하기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만약 일반인이 옷의 독성 때문에 피로, 불안, 불임 같은 문제를 겪는다면 이를 알아차리고 증명하기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되지 않은 산업용 화학물질이 미국에서만 4만에서 6만 개에 이르는데, 그중 어떤 것이 옷에 들어가는지 성분 표시조차 안 되고 있다. 실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옷을 만드는 제조업체나 판매하는 브랜드조차 제대로 모른다. 화학 회사가 이를 일종의 영업 비밀로 삼기 때문이다. 옷은 먹는 게 아니니 괜찮다는 착각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가 피해를 호소해도 제조사는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리콜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유아복이 아기에게 발진을 일으켰다고 수백 명의 부모가 신고했으나 카터스는 테스트 결과 제품에 이상이 없다며 일부 민감한 아기들의 문제라고 일축했고, 빅토리아 시크릿은 브래지어에 포함된 포름알데히드가 워낙 미미한 수준이라 건강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피해 여성들과의 소송에서 승리했다. 문제가 있다면 정부나 규제 기관에서 알아서 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미국에는 관련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화학물질 사용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EU에서조차 규정를 무시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패션 제품에 든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은데, 업계에서는 이 빈틈을 이용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당신이 옷을 먹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듀크대학 연구팀이 어린 자녀가 있는 124가구의 집 먼지를 분석했더니, 모든 집에서 아조 분산염료가 발견되었다. 합성섬유 염색에 쓰이는 아조 분산염료는 피부 박테리아와 접촉해 아민이라는 화합물을 방출하는데, 아민은 암을 유발하고 인간 세포에 유전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염료가 집 먼지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옷을 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옷에서 떨어져 나와 집 안 곳곳에 존재하는 이 유독 성분을 매일 들이마시고 삼킨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바닥을 기어다니고 손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성인의 최대 20배에 달하는 먼지를 흡입한다. 미국인 99.7%와 남극 동물의 혈액에도 흐르는 독성 물질자동차나 가전제품도 아니고 고작 티셔츠나 속옷에 생명을 위협하는 화학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패션과 화학이 손을 맞잡고 끔찍한 일들을 벌여 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책의 2부는 르네상스 시대의 독 묻은 향수 장갑에서 19세기 모자 제조업계에 만연했던 수은 중독, 유럽 패션계에 유행과 죽음을 동시에 몰고 온 합성염료, 도시 전체를 오염시키고 주민들을 병들게 한 가죽 산업의 흥망성쇠까지, 그 유독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살인 미스터리에 가까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표 악당 중 하나인 과불화화합물은 알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친숙한 존재다. 1940년대에 3M이 발명해 듀폰에 판매한 PFOA(과불화옥탄산)는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용품에 사용되었다. 영화 〈다크 워터스〉가 적나라하게 고발한 것처럼, 두 회사는 PFOA에 노출되면 각종 암과 선천성 결함, DNA 손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반세기 넘게 이를 숨긴 채 이익 추구에 나섰다. 2000년이 돼서야 3M은 PFOA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패션 산업은 이미 PFOA에 푹 빠진 상태였다. 과불화화합물로 처리한 옷감은 방수, 방오 기능이 탁월해 등산화부터 스키복, 수영복까지 온갖 것에 쓰이게 되었다. 그 결과 완전히 분해되지 않는 특성을 지녀 ‘영구적 화학물질’로 불리는 PFOA는 오늘날 미국인 99.7퍼센트와 남극 동물의 혈액은 물론, 빗물에도 흐르고 있다.화학물질을 온몸에 두른 채 난임 병원을 찾는 사람들‘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 듀폰이 지난 세기에 내세웠던 이 슬로건처럼, 화학은 우리 삶을 많은 면에서 더 낫게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이 책의 3부에서 합성 화학물질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환경이 현대인에게 초래하는 대표적 건강 문제로 꼽은 세 가지는 불임, 자가면역질환, 화학물질 민감증이다.남성의 정자 수가 40년 동안 50퍼센트 이상 급감했으며, 2050년까지 남성의 51퍼센트가 불임을 겪게 될 거라고 한다. 과거보다 흡연과 음주를 줄이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는데 말이다. 샤나 H. 스완 박사는 그 원인으로 "현대 사회에 교묘하게 퍼져” "우리 몸의 자연적인 호르몬 활동을 방해하는 화학물질”을 지목한다. 바로 내분비교란물질, 흔히 말하는 환경호르몬이다. 그리고 패션업계가 즐겨 쓰는 성분인 과불화화합물, 프탈레이트, 비스페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내분비교란물질은 아이를 가지려는 커플이나 부부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소녀들은 예전보다 일찍 생리를 시작하고,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질환이 점점 흔해지며, 수많은 사람이 면역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각종 자가면역질환을 앓는다. 1형 당뇨병, 크론병, 자가면역성 갑성선염 등 80가지가 넘는 자가면역질환의 공통된 특성은 무언가에 의해 활동이 촉발된 면역계가 자기 몸을 공격한다는 데 있다. 최근 10년간 과학자들은 그 무언가가 우리 환경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독소라는 데 동의했다.물론 화학물질에 노출된다고 해서 모두가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그저 ‘소수의 너무 민감한 사람들’의 문제라고 여기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응답자의 20퍼센트 이상에게 화학적 민감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학자 클라우디아 밀러 박사에 따르면, 이는 우리 몸이 아직 화석연료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에 대응하도록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장 검증에서 내돈내산 성분 테스트까지옷장 속 살인범을 추적하는 이 책의 4부는 말 그대로 ‘현장 검증’이다. 저자는 인도 티루푸르의 공장을 방문해 옷감을 염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을 조사하고, 미국 관세국경보호청 검사소에 가서 해외 배송 패션 제품의 유해 물질 검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본다. 직접 구매한 제품의 성분 테스트를 세계적인 친환경 인증 기관인 오코텍스에 의뢰하는 데 이 책의 선인세를 털어 넣기까지 한다. 준비 과정부터 심상치 않았던 테스트의 결과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24시간 우리 몸을 감싸는 옷은 과연 안전할까? 저자가 패션의 유해성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항공사 승무원들이 새 유니폼을 입은 뒤 단체로 두드러기, 발진, 천식, 탈모 등을 겪고 집단 소송을 제기한 사건 때문이었다. 어떤 승무원은 며칠 만에 호흡 곤란을 일으켜 응급실에 갔고, 또 어떤 승무원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직장을 잃고 인생이 무너졌다. 문제가 된 유니폼들에는 방수, 오염 방지, 구김 방지, 냄새 방지 같은 각종 기능과 채도 높은 색상이 적용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즉, 거의 모든 최신 화학 공정이 옷에 층층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승무원들은 비교적 통제된 환경에서 같은 옷을 계속 입고 생활하므로 그로 인한 증상을 판별하기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만약 일반인이 옷의 독성 때문에 피로, 불안, 불임 같은 문제를 겪는다면 이를 알아차리고 증명하기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되지 않은 산업용 화학물질이 미국에서만 4만에서 6만 개에 이르는데, 그중 어떤 것이 옷에 들어가는지 성분 표시조차 안 되고 있다. 실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옷을 만드는 제조업체나 판매하는 브랜드조차 제대로 모른다. 화학 회사가 이를 일종의 영업 비밀로 삼기 때문이다. 옷은 먹는 게 아니니 괜찮다는 착각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가 피해를 호소해도 제조사는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리콜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유아복이 아기에게 발진을 일으켰다고 수백 명의 부모가 신고했으나 카터스는 테스트 결과 제품에 이상이 없다며 일부 민감한 아기들의 문제라고 일축했고, 빅토리아 시크릿은 브래지어에 포함된 포름알데히드가 워낙 미미한 수준이라 건강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피해 여성들과의 소송에서 승리했다. 문제가 있다면 정부나 규제 기관에서 알아서 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미국에는 관련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화학물질 사용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EU에서조차 규정를 무시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패션 제품에 든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은데, 업계에서는 이 빈틈을 이용한다.한 업계 전문가는 "당신이 옷을 먹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듀크대학 연구팀이 어린 자녀가 있는 124가구의 집 먼지를 분석했더니, 모든 집에서 아조 분산염료가 발견되었다. 합성섬유 염색에 쓰이는 아조 분산염료는 피부 박테리아와 접촉해 아민이라는 화합물을 방출하는데, 아민은 암을 유발하고 인간 세포에 유전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염료가 집 먼지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옷을 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옷에서 떨어져 나와 집 안 곳곳에 존재하는 이 유독 성분을 매일 들이마시고 삼킨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바닥을 기어다니고 손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성인의 최대 20배에 달하는 먼지를 흡입한다.미국인 99.7%와 남극 동물의 혈액에도 흐르는 독성 물질자동차나 가전제품도 아니고 고작 티셔츠나 속옷에 생명을 위협하는 화학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패션과 화학이 손을 맞잡고 끔찍한 일들을 벌여 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책의 2부는 르네상스 시대의 독 묻은 향수 장갑에서 19세기 모자 제조업계에 만연했던 수은 중독, 유럽 패션계에 유행과 죽음을 동시에 몰고 온 합성염료, 도시 전체를 오염시키고 주민들을 병들게 한 가죽 산업의 흥망성쇠까지, 그 유독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살인 미스터리에 가까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표 악당 중 하나인 과불화화합물은 알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친숙한 존재다. 1940년대에 3M이 발명해 듀폰에 판매한 PFOA(과불화옥탄산)는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용품에 사용되었다. 영화 〈다크 워터스〉가 적나라하게 고발한 것처럼, 두 회사는 PFOA에 노출되면 각종 암과 선천성 결함, DNA 손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반세기 넘게 이를 숨긴 채 이익 추구에 나섰다. 2000년이 돼서야 3M은 PFOA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패션 산업은 이미 PFOA에 푹 빠진 상태였다. 과불화화합물로 처리한 옷감은 방수, 방오 기능이 탁월해 등산화부터 스키복, 수영복까지 온갖 것에 쓰이게 되었다. 그 결과 완전히 분해되지 않는 특성을 지녀 ‘영구적 화학물질’로 불리는 PFOA는 오늘날 미국인 99.7퍼센트와 남극 동물의 혈액은 물론, 빗물에도 흐르고 있다. 화학물질을 온몸에 두른 채 난임 병원을 찾는 사람들‘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 듀폰이 지난 세기에 내세웠던 이 슬로건처럼, 화학은 우리 삶을 많은 면에서 더 낫게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이 책의 3부에서 합성 화학물질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환경이 현대인에게 초래하는 대표적 건강 문제로 꼽은 세 가지는 불임, 자가면역질환, 화학물질 민감증이다.남성의 정자 수가 40년 동안 50퍼센트 이상 급감했으며, 2050년까지 남성의 51퍼센트가 불임을 겪게 될 거라고 한다. 과거보다 흡연과 음주를 줄이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는데 말이다. 샤나 H. 스완 박사는 그 원인으로 "현대 사회에 교묘하게 퍼져” "우리 몸의 자연적인 호르몬 활동을 방해하는 화학물질”을 지목한다. 바로 내분비교란물질, 흔히 말하는 환경호르몬이다. 그리고 패션업계가 즐겨 쓰는 성분인 과불화화합물, 프탈레이트, 비스페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내분비교란물질은 아이를 가지려는 커플이나 부부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소녀들은 예전보다 일찍 생리를 시작하고,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질환이 점점 흔해지며, 수많은 사람이 면역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각종 자가면역질환을 앓는다. 1형 당뇨병, 크론병, 자가면역성 갑성선염 등 80가지가 넘는 자가면역질환의 공통된 특성은 무언가에 의해 활동이 촉발된 면역계가 자기 몸을 공격한다는 데 있다. 최근 10년간 과학자들은 그 무언가가 우리 환경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독소라는 데 동의했다.물론 화학물질에 노출된다고 해서 모두가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그저 ‘소수의 너무 민감한 사람들’의 문제라고 여기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응답자의 20퍼센트 이상에게 화학적 민감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학자 클라우디아 밀러 박사에 따르면, 이는 우리 몸이 아직 화석연료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에 대응하도록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현장 검증에서 내돈내산 성분 테스트까지옷장 속 살인범을 추적하는 이 책의 4부는 말 그대로 ‘현장 검증’이다. 저자는 인도 티루푸르의 공장을 방문해 옷감을 염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을 조사하고, 미국 관세국경보호청 검사소에 가서 해외 배송 패션 제품의 유해 물질 검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본다. 직접 구매한 제품의 성분 테스트를 세계적인 친환경 인증 기관인 오코텍스에 의뢰하는 데 이 책의 선인세를 털어 넣기까지 한다. 준비 과정부터 심상치 않았던 테스트의 결과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5부는 저자가 숱하게 들었던 "그래서 무엇을 사라는 이야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독성 없는 옷을 고르고 관리하는 방법뿐 아니라, 누구나 안전한 패션을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제안도 담겼다. 인간에게도 지구에도 안전한 옷을 만들고 입는 세상을 향해저자의 주요 관심사는 독성 패션이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였다. 이 문제의 한쪽 끝에 서구나 한국의 소비자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 끝에는 인도나 중국의 의류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는 인도와 중국의 섬유 공장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이 안 되긴 했지만 우리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옷에 든 화학물질에 관한 이야기는 염색 공장 뒤뜰에 버려진 폐기물 더미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옷장과 피부, 우리가 쓰는 세탁기에까지 이어진다. 이 광대한 화학물질의 연결망 앞에서, 여느 환경 문제에 그러하듯 걱정하고 분노하다 무력감에 빠질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쓰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한 충격과 낙담을 경험했을 저자는 그럼에도 여전히 "변화를 요구하는 우리의 힘을 믿는다”는 말로 독자들을 일으켜 세운다. 책 속에는 충격적이고 암담한 내용이 많지만, 그 사이로 희망의 단서들 또한 존재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유해 성분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기업 대표에게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13년 만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만드는 작은 변화가 내일이나 모레, 또 그 이후에 차이를 가져올 것임을 잊지 말자. '침묵의 봄'을 출간하여 처음 DDT 살충제의 위험성을 알린 레이첼 카슨은 당시 수많은 반발과 저항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제 그의 주장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고, 그의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저자 올든 위커는 우리가 매일 입는 옷에 대해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메시지가 널리 퍼져, 인간에게도 지구에게도 안전한 옷을 입고 만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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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살까지 체조 경기장 채울래요"…아이유와 관객이 펼친 환상 호흡아이유는 지난 10여년간 쌓아온 팬들과의 호흡으로 3시간 내내 짜릿한 '듀엣 무대'를 펼쳤다. 세대를 아우르는 그의 목소리는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객석의 떼창과 섞였을 때 비로소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길게 길게 말하기보다 한 곡을 목이 터지라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노래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가수가 될게요."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아이유 H. E. R 월드 투어 콘서트' 서울 공연 마지막 회차가 열렸다. 총 4회에 걸쳐 열린 이번 서울 공연은 약 1년 6개월 만에 열린 아이유의 단독 콘서트로, 예매 첫날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날로 첫 월드 투어의 포문을 성황리에 연 아이유는 한국 솔로 여가수 최초 서울월드컵경기장 입성 계획도 발표하며 끝없는 도전을 예고했다. 아이유는 2008년 '미아'로 데뷔해 '좋은 날', '분홍신', '금요일에 만나요'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당대 최고의 여성 솔로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나의 아저씨', '브로커' 등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배우로서도 성공했다. 2022년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지난달에는 '러브 윈스 올'(Love Wins All)로 발매 1시간 만에 멜론 '톱 100' 1위에 올라 음원 퀸으로서의 저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 마지막 공연은 신보 '더 위닝'(The Winning)의 수록곡 전곡을 비롯해 20여곡의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음악으로 채워졌다. '홀씨' 인트로 코러스와 함께 공연장 상공에서 등장한 아이유는 가벼운 랩과 몸짓으로 천천히 분위기를 달궜다. 남녀가 고루 섞인 객석의 떼창이 무대를 둘러쌌고, 아이유는 '잼잼', '어푸', '삐삐' 등으로 귀를 간질이는 음색을 뽐냈다. 아이유는 "공연장이 평소보다 좀 덥다. 여러분의 열기 때문인지 1부가 채 안 끝났는데도 땀이 나려고 한다"며 "감당 안 될 정도의 반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촛불을 들고 안갯속을 헤매던 아이가 아이유를 마주하는 연출로 시작된 '셀러브리티'(Celebrity) 무대는 객석을 촉촉이 적셨다. '블루밍'(Blueming) 무대에서는 "저와 함께 이 순간에 머물러달라"는 아이유의 요청에 관객들이 잠시나마 무대를 찍던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곡에 빠져들었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은 천장을 뚫을 듯했다. 이어진 '내 손을 잡아'에서는 아이유의 청아한 고음이 객석에 고스란히 전해져 쾌감을 선사했고, '관객이 될게'에서는 아이유와 관객이 마치 듀엣 공연을 펼치듯 호흡을 맞췄다. 아이유는 '관객이 될게'를 "제 행동, 말, 노래에 집중해주시고 힘을 주시는 것처럼 저도 여러분의 관객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작사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제작된 '유애나(아이유 팬덤명) 응원봉'은 아이유의 지극한 팬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즈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하바나'(Havana) 무대부터는 잔잔하고 포근한 곡들이 공연장을 감쌌다. '너의 의미'에서 반주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며 뚜렷하게 퍼지는 객석의 떼창은 몽글몽글한 감정을 불러왔다. "우리 공연의 성비가 이 정도다, 연령층이 이 정도로 다양하다,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죠. 맑고 고운 목소리 기대해봐도 될까요?" 공연 후반부에는 어쿠스틱 버전의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과 담백한 감성의 '밤편지' 등 대표곡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아이유는 특히 '밤편지'와 '무릎', '마음' 세 곡을 "관객의 목소리와 섞어서 불렀을 때 나쁜 게 걸러지고 정화되는 곡"이라고 꼽으며 "일흔한살까지 체조(경기장)를 채우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인데, 이 곡('밤편지')이 그때까지 세트리스트(곡 목록)에서 빠질 일이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이날 배우 박보검도 특별 초청해 남다른 섭외력을 과시했다. 아이유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촬영한 박보검은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적재의 '별 보러 가자'를 불렀다. 앞서 첫날 공연에는 걸그룹 뉴진스, 이튿날은 보이그룹 라이즈, 세 번째 날은 걸그룹 르세라핌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아이유는 공연 중간 9월 21~22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앙코르 콘서트 개최 계획도 깜짝 발표했다. K팝 솔로 여가수 중 첫 입성이다. 그는 "첫 월드투어를 하게 됐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다 매진되고 있다"며 "한국에서 앙코르 공연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30대에 정말 끊임없이 도전한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아이유는 '쇼퍼'(Shopper), '시간의 바깥', '너랑 나', '러브 윈스 올' 등 웅장한 곡들로 황홀한 무대를 펼쳤다. 잔뜩 달아오른 관객들은 아이유와 한 몸이 돼 소름 돋는 합창을 선보였다. 앙코른 무대 전 "고마워"라는 외침으로 아이유를 불러낸 팬들은 흥분과 아쉬움 속에 마지막 공연을 즐겼다. 중학생 때부터 아이유의 팬이었다는 한 28살 여성 관객은 "공감 가는 가사에 빠져 10년 넘게 좋아하고 있다"며 "아이유의 콘서트는 다른 팬들과 함께 떼창을 하는 매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약 6만명의 관객을 만난 아이유는 일본 요코하마, 대만 타이베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에서도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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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 美 빌보드 '핫 100' 진입 "실감안나"걸그룹 르세라핌이 신곡 '이지'(EASY)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진입했다. 르세라핌은 7일 소속사 쏘스뮤직을 통해 "빌보드 '핫 100' 입성은 늘 마음 한편에 조심스레 갖고 있던 꿈"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르세라핌은 7일 소속사 쏘스뮤직을 통해 "빌보드 '핫100' 입성은 늘 마음 한편에 조심스레 갖고 있던 꿈인데,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많은 분께서 저희의 노력을 알아주신 것 같아 뿌듯하고 영광스럽다"면서 이렇게 밝혔다.르세라핌은 최근 발매한 미니 3집 '이지(EASY)' 동명 타이틀곡 '이지'가 최신(3월 9일 자) '핫100'에 99위로 진입하면서 이 차트에 데뷔했다. 지난 2022년 5월 2일 데뷔한 르세라핌의 첫 '핫 100' 차트인이다. '이지'는 빌보드 '핫 100'에 99위를 기록했다. 르세라핌이 이 차트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르세라핌은 "이렇게 (꿈이) 빨리 이뤄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원동력이 돼 주는 '피어나'(르세라핌 팬덤) 분들께 가장 감사하다"며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팀이 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르세라핌은 이날 엠넷 '엠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KBS 2TV '뮤직뱅크', MBC TV '쇼! 음악중심', SBS TV '인기가요'에서 후속곡 '스마트'(Smart) 무대를 꾸민다. 다음 달 13일(이하 현지시간)과 20일에는 미국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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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희 "클래식 기타의 소박한 매력 알아주는 사람 많아지길""연주 때마다 손톱을 정리해줘야 해요. 소리와 직결되거든요." 지난 30일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만난 클래식 기타 연주자 박규희(39)는 손톱을 사포에 문지르며 이같이 말했다. 기타리스트에게 손톱 손질은 인터뷰에 앞서 짧은 연주를 들려줄 때조차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박규희는 다음 달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에 협연자로 무대에 서게 됐다. 원래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밀로시 카라다글리치의 협연이 예정된 공연이지만, 밀로시가 낙상사고로 다치면서 협연자가 급하게 교체됐다. 공연을 닷새 앞둔 지난 28일 협연 요청을 받았다는 박규희는 "사실 1년 전쯤에도 제안받았던 공연"이라며 "이후 소식이 없다가 다시 저에게 돌아온 공연이어서 인연을 느꼈다"고 웃었다. 협연 작품은 스페인 작곡가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이다. 기타 협주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스페인의 청량함과 딸을 유산으로 잃었던 작곡가의 생사에 대한 감정 등이 담겨있는 곡이라고 박규희는 설명했다. 박규희는 "마침 지난해 11월에 일본에서 이 곡을 공연한 적이 있어 협연을 할 수 있다고 했다"며 "그래도 단 며칠 만에 (곡에 대한 감을) 끌어올려야 해서 밤낮으로 급하게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심포니의 풍부한 사운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고, 소리가 작은 악기인 기타가 이를 뚫고 나올 수 있을지 염려되면서도 기대된다"고 공연에 대한 설렘을 내비쳤다. 박규희는 최근 일본 공연을 포함해 지금까지 30번 정도 이 곡을 공연장에서 연주했지만, 과거 연주를 망쳤던 트라우마로 무대에 서기 전 진정제를 먹는다고 했다. 그는 "제 커리어에서 최악의 순간과 영광의 순간을 같이 한 곡"이라고 했다. 박규희는 "최악의 순간은 2011년 일본 교토교향악단 데뷔 무대"라며 "당시에는 곡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너무 많이 긴장했고, 혼자 연습할 때와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출 때가 달라 연주를 망쳤다"고 떠올렸다. "제가 나오고 들어가야 할 타이밍도 어긋나고, 템포도 감을 못 잡았죠. 교토에 큰 강이 있었는데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어요." 박규희는 영광의 순간으로는 교토교향악단 공연 이후 일본에서 가진 도쿄메트로폴리탄심포니, NHK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를 꼽았다. "워낙 유명한 곡이지만, 기교적으로 어려워서 기타리스트들이 벌벌 떠는 곡이에요. 한 선배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새벽기도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연주를 하면 어려운 부분이 다가올 때마다 여전히 긴장해요." 박규희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비주류'로 여겨지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전파해온 연주자기도 하다. 기타를 취미로 배우던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세 살 때 처음 기타를 잡았고, 다섯 살부터 10여년간 국어 교사 출신인 기타리스트 리여석의 집에 살다시피 하며 한글과 기타를 함께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기타와 함께 성장한 만큼 기타리스트가 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일본 도쿄 음대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거친 박규희는 2008년 벨기에 프렝탕 기타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 아시아인 최초 우승자로 국제 무대의 주목을 받았고, 2012년 스페인 알람브라 기타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석권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현재는 한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박규희는 "클래식 기타를 가요의 반주 악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 서러움이 있다"며 "기타를 메고 택시를 타면 '저도 옛날에 밴드 했어요'라고 통기타로 생각하시거나, '노래하세요?'라며 싱어송라이터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클래식 기타는 르네상스에는 '류트'라는 악기로 있었고, 모양만 바뀌었을 뿐 항상 존재해 왔다"며 "클래식 기타를 아는 분들이 많아져서 '기타'라고 했을 때 클래식 기타를 떠올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박규희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으로 '소박함'을 꼽았다. 쇠줄을 쓰는 통기타와 달리 나일론 줄을 쓰는 클래식 기타는 가까이에서는 소리가 작게 들리지만, 멀리까지 소리가 뻗어나가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또 피크를 쓰는 통기타와 달리 오로지 손톱과 살로 연주해야 해서 연주자마다 소리가 달라진다고 한다. "클래식 기타는 소박하고 따뜻해요. 꾸며내는 소리가 아니죠. 옆에서 치고 있어도 대화에 방해가 안 될 정도로 공기 같기도 하고요. 아직도 개발되지 않는 주법들도 많아서 무한한 가능성도 있어요. 최근에는 아이유를 비롯해 대중가수들도 클래식 기타를 반주로 쓰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박규희는 한국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희망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팬데믹 기간에는 온라인 플랫폼에 기타를 잡는 자세같이 기본적인 클래식 기타 연주법을 설명한 강의 영상을 30강 정도 올리기도 했다. 박규희는 "아직 한국에서는 클래식 기타 교육 체계가 깊지 않아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며 "죽기 전에 클래식 기타 교본을 만들어서 어떻게 해야 손에 병이 안 나고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있는지 알리고 싶다"고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기타의 역사처럼 '가늘고 길게' 가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빵' 뜨지 않아도 '박규희는 항상 어디선가 좋은 연주를 하고 있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어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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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대중음악 완전 개방 20년…한국선 J팝·일본선 K팝 떼창 터졌다(서울=연합뉴스) 이태수 최재서 기자 = # 이달 17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 장내를 가득 채운 관객들이 인기 일본 밴드 요아소비(YOASOBI)의 히트곡 '아이돌'을 떼창으로 따라 불렀다. 요아소비는 "해외 첫 솔로 콘서트를 한국에서 시작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 28일 일본 후쿠오카 페이페이 돔에서 열린 K팝 간판 걸그룹 트와이스의 콘서트. 내년 7월 7만명대 규모를 자랑하는 닛산 스타디움에서의 공연 계획이 '깜짝' 공개되자 장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달 1일로 일본 대중음악의 빗장이 완전히 풀린 지 20년을 맞는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 가요계에선 '체급'이 우위에 있던 일본 대중문화 시장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K팝은 이를 보란 듯이 불식시키고 일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 차세대 인기 가수가 국내에서 공연하고 인기곡을 배출하는 등 J팝이 인기를 끌면서 K팝과 J팝이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 2004년 음악 시장 '활짝'…J팝 국내 인기는 미지근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1월 1일부로 제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하나로 일본어로 된 CD 국내 발매를 허용했다. 앞서 1999년 2차 개방으로 2천석 이하 규모의 실내 일본 대중음악 공연을 허용한 뒤 2000년 모든 일본 대중음악 공연을 개방한 데 이은 후속 조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는 일본 가수들이 제한 없이 국내에서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길이 열렸다. 이에 이전까지 음지에서 소비되던 엑스재팬, 우타다 히카루, 드림스 컴 트루 등 유명 일본 뮤지션의 CD가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됐다. 이를 두고 당시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음악 시장인 일본 음악계의 국내 영향 확대를 걱정하는 시각도 일부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2004년은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방송되고 보아가 큰 성공을 거두는 등 한류의 '바람'이 이미 불기 시작한 때였기에 1998∼1999년 일본 대중문화 1·2차 개방 때만큼 우려가 크지는 않았다. 한 가요계 전문가는 당시 "일본어 가창 음반이 들어온다고 곧바로 가요 시장이 잠식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보다 몇 배 이상 규모가 큰 일본 음반 산업자본이 들어오면 침체한 국내 음반 시장이 빈 사상태를 맞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일본 대중음악 개방의 여파는 크지 않았다. 개방 이후 나카시마 미카가 국내에서 수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고 휴대전화 컬러링 음악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삽입된 리메이크곡 '눈의 꽃'(원곡 雪の華)이 인기를 끈 데 따른 영향이 컸다. 또 2006년에는 일본 인기 그룹 아라시(嵐)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연 내한 공연을 전석 매진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일본 아이돌 그룹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 일본서 K팝 인기 폭발…국내서도 차세대 'J팝 스타' 주목 이와 반대로 K팝은 지난 20년간 일본에서 '훨훨' 날았다. 지난 2002년 보아가 일본 정규 1집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 첫 1위를 차지했을 때만 해도 관련 소식이 지상파 메인 뉴스에 오르며 대서특필 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방탄소년단(BTS) 정국,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NCT 등 숱한 후배 가수들이 오리콘 정상에 올라 이는 '예삿일'이 됐다. 일본 내 K팝 한류는 현지화에 성공한 보아·동방신기가 불을 지핀 이래 소녀시대·카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세븐틴 등으로 이어져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지난 2021∼2022년 모든 현지 가수를 제치고 해외 가수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2년 연속 연간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최고의 가수들만 출연할 수 있다는 연말 특집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는 그룹 세븐틴·스트레이 키즈, 걸그룹 르세라핌과 트와이스의 유닛(소그룹) 미사모 등이 무대를 꾸민다.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도 운이 좋게 20년을 달려왔으니 후배들은 40년도 가능할 정도로 K-콘텐츠의 수명이 길어질 것"이라며 "후배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니 포기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 K팝 한류 만큼 열기가 뜨겁지는 않지만 일본 가수들도 최근 국내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990년대 마니아층을 거느린 엑스재팬, 라르크 앙 시엘, 아무로 나미에 등 유명 J팝 가수보다는 후배로, 2000년대 이후 데뷔한 요아소비, 이마세, 레드윔프스 등이 그 주인공이다. 요아소비는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OST '아이돌'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엠카운트다운'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아이브, 르세라핌, 에스파 등 유명 K팝 스타들이 '아이돌 챌린지' 영상을 올린 점도 인기를 거들었다. 이달 열린 이들의 내한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이 밖에 이마세의 '나이트 댄서'는 국내 톱스타도 뚫기 힘들다는 멜론 '톱 100' 차트 상위권에 진입해 'MMA 2023'서 수상했고, 밴드 레드윔프스도 내한 공연 티켓 전석을 팔아치웠다. ◇ K팝, 일본서 '진출' 넘어 '현지화 그룹'으로 새 도약 가요계에서는 한류 태동기에 이뤄진 일본 음악 개방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며 체질 강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2004년은 J팝이 동아시아에서 이전만큼의 인기를 잃고 퇴조하던 때였고, 동시에 우리 음악과 드라마가 조명받기 시작하던 시기"라며 "일본 음악이 양성화되니 오히려 일본 음악을 암암리에 따라 하던 부분도 사라졌다. 음악 개방을 통해 한국 음악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것"이라고 짚었다. K팝은 이제 '일본 진출'을 넘어 일본인 위주로 구성된 현지화 그룹을 통해 또 다른 도약 중이다. JYP의 니쥬와 하이브의 앤팀(&TEAM)이 이미 데뷔해 성과를 냈고, SM도 내년 일본 거점의 'NCT 뉴 팀'(가칭)을 정식 데뷔시킨다. 한 대형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틱톡이나 유튜브 등 글로벌 SNS를 활용한 K팝 특유의 콘텐츠 마케팅 전략이 일본에서의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일본 문화와 정서를 고려한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며 "현지에 기획사를 설립해 일본인 멤버가 포함된 그룹을 결성하고,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접목해 완성도 있는 음악과 비주얼을 선보이고, 현지 언어로 팬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결집력을 높이는 것이다. 일본 음악 시장이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다 보니 주요 기획사들이 현지화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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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매장 음반이 가장 많이 판매된 아이돌은 ‘세븐틴’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2023년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현장 판매가 가장 많았던 케이팝(K-POP) 아이돌은 ‘세븐틴’(부석순 포함)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과는 2023년 1월 1일부터 12월 18일까지 판매량을 집계한 것으로, 전국 55개 지점 판매량을 합산했다. 그룹에서 분리돼 개별 활동을 하는 유닛, 솔로의 판매량은 각 그룹에 포함해 집계했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앨범을 오프라인 중고매장에서 판매한 10개 그룹은 1위 세븐틴(SEVENTEEN)(부석순 포함)(21%, 이하 전체 판매량의 점유율), 2위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15%), 3위 엔시티(NCT DREAM/127/NCT)(13%), 4위 아이브(IVE)(10%), 5위 뉴진스(NewJeans)(9%), 6위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8%), 7위 르세라핌(LE SSERAFIM)(4%), 8위 방탄소년단(BTS)(솔로 활동 포함)(3%), 9위 에스파(aespa)(3%), 10위 (여자)아이들(2%)이었다.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의 ‘이름의 장 : FREEFALL’이었으며, 10대 구매자가 27.2%를 차지해 30~40대가 주를 이루는 인터넷서점 구매자와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매장 관계자는 ‘중고매장에는 온라인 주문이 여의치 않은 10대 고객들이 음반을 사기 위해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알라딘 중고매장에서는 새 음반을 판매하고 있으며, 매장에서 음반 구매 시 한터차트와 써클차트 등에 판매량이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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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가톨릭 청년 100만명 온다…용인시의원, 시 차원 대비 촉구(용인=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국내외 가톨릭 청년 신자 수십만명이 참석하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경기 용인시도 시 차원의 TF를 구성해 대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김희영 용인시의원은 18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용인은 많은 천주교 문화 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스토리 있는 문화 사업을 구상해야 할 때"라고 발언했다.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신앙 대축제로,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이 젊은이들의 신앙을 독려하기 위해 1984년·1985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전 세계 젊은이를 초대한 일을 계기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적게는 수십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의 가톨릭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올해 리스본 대회에는 15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 의원은 "2027년 서울 대회에는 수십만에서 100만명의 청년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올해 잼버리 공식 참가자인 4만5천명의 10배가 넘는 규모"라고 말했다. 이어 "용인에는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고 불리는 김대건 신부의 사목 활동로인 '청년 김대건 길'이 있다"며 "세계청년대회 참가자들이 천주교 성지 순례 과정에서 용인의 명소를 탐방할 수 있게 자원봉사자 양성과 숙소 마련, 방문자 쉼터 재정비 등 천주교 유산 명소화 사업을 이른 시일 내에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의원은 ▲ 은이성지 등 종교 문화 역사지 문화재 등록 ▲ 로마 교황의 용인시 방문을 위한 추진위원회·TF 구성 ▲ 안성시와의 협력체계 구축 ▲ 체계적인 프로그램 개발 ▲ 문화 관광 생태계 구축 등을 시에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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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해외춤기행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역사문화와 동아프리카 부족춤마사이족에 밀려 산속 땅굴에 사는 차가족 마을과 킬리만자로 동아프리카 여행 6일째(1월10일) 6시 기상하여 조식하고 7시 반에 중형버스로 짐은 지붕 위에 싣고 케냐를 떠나 탄자니아로 가는 대장정에 올랐다. 12시에 탄자니아 국경에 도착하여 비자 발급(50불)을 마치는데 2시간이나 걸려 2시에 출발하였다. 4시간 만에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MT.Kilimanjaro, 5896m) 등정을 준비하는 거점도시 모시(Moahi)의 YMCA호텔에 도착하였다. 장장 11시간이나 걸린 장시간 버스여행이라 모두들 지쳤다. 1월 11일 7일째 아침 6시 반에 호텔조식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킬리만자로 등정팀(140달라)과 수영 및 휴식팀, 씨티투어팀(50달라)에서 선택하는데 나는 씨티투어팀, 4명이 합류하였다. 킬리만자로 등정 입구인 마랑구(marangu, 1970m) 게이트에 가까이 올라가니 바나나나무숲을 이루고 있는 밀림지대가 나타났다. 협곡에 폭포가 있어 절벽 같은 흙 계단을 한참동안 꼬불꼬불 내려가니 폭포가 보였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협곡밀림 속의 진풍경이었다. 다시 올라오는 길에 차가족들이 가내농업으로 바나나와 커피를 경작하는 곳을 들러 잠깐 살피고 차가족(Chagga족-농업, 커피, 사이잘삼(麻), 사탕, 옥수수, 바나나) 동굴 속 생활을 볼 수 있었다. 200년 전 마사이족들이 쳐들어와 소와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가기 때문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살게 되었는데, 방과 부엌, 곡식 창고와 외양간 등과 죽은 가족들을 조상신으로 모시고 목각 모습으로 세워 놓고 영원히 함께 사는 것처럼 살고 있었다. 그 길이가 몇 km씩 연결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 지상으로 통풍구를 뚫어 공기와 햇빛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또한 지상에는 차가 하우스라는 삼각형 움집에 나무에 바나나잎과 풀잎을 얹어놓고 살고 있었다. 이어서 킬리만자로(아프리카 대륙에서 최고 높이, 세계 다섯 번째 높이. 뜻은 ‘빛나는 산’ 혹은 ‘하얀 산’) 등정의 관문인 1800m 위치에 있는 마랑구 게이트에 다다라 소풍처럼 도시락을 먹고 기념촬영을 하고 오후 4시경에 숙소로 돌아왔다. 옛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환상의 잔지바르섬으로 1월 12일(8일째) 7시30분 모시(Moahi) YMCA호텔에서 탄자니아 옛 수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평화의 땅. 현 수도: 도도마Dodoma)으로 12시간을 버스로 달려왔다. 터미널 공용버스임에도 비용을 더 주니 다른 아프리카 승객이 있음에도 호텔까지 와서 짐까지 실어주었고 다르에스살람 터미널에서도 승객을 내려주고 팁의 위력으로 우리의 숙소 이코놀로지(Econolodge)호텔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리무진 장거리 대형버스로 아래층 짐칸이 커서 승객들은 2층 버스를 탄 기분이었고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 에어컨 혜택을 맛보았고 승차감도 좋았다. 그런데 이코놀로지호텔은 우리 예전 여인숙 수준으로 5층은 옥상층이라 밤12시가 되어도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열대야가 심했다. 하는 수 없이 일층 로비로 내려오니 모두들 쇼파에 앉아 카톡을 하고 있었다. 1월13일(9일째) 7시30분에 식사하고 짐정리를 다시 하면서 배낭여행은 배낭은 큰 것으로 하고 여행가방은 대형 아닌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갈 때도 첫날 나이로비 썬라이즈(Sunrise) 호텔에 큰 가방은 맡기고 배낭에 3일 동안 외출분을 나눠 들고 가야해서 공간이 부족했는데 역시 다르에스살람에서도 큰 가방 맡기고 작은 배낭으로는 한계가 있어 먹거리와 옷 종류를 별도로 비닐 백에 담아 물 끓일 포트까지 담아들고 나섰다. 페리호를 타고 잔지바르(Zanzibar: 검은 해안)로 떠나기 전에 환전하는데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육수가 줄줄 흘렀다. 페리호 승선 11시30분까지 1시간이 남아 일행 몇몇이 해변 씨푸드 시장으로 택시타고 나가 오징어를 사서 데쳐 아주 맛있게 먹고 승선했다. 엄청 더워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생전에 이렇게 맛있는 데친 오징어 별미가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윽고 잔지바르에 도착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햇볕에 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숙소배정을 마치자 바닷가로 나갔다. 여기저기에 씨푸드 노점상들이 눈에 띄었다. 문어, 갑오징어, 소라, 게 등을 즉석에서 구워 팔고 있어 문어를 주문하고 사탕수수를 즉석에서 수동기계로 짜내는 주스를 사먹었다. 그리고 즉석에서 구워 만든 문어피자를 먹으니 고소한 버터 맛에 한 끼 밥이 되었다. 잔지바르 노예무역전시장과 잔지바르 전통춤 공연 1월14일 10일째를 맞았다. 오늘은 잔지바르의 식민지시절 노예감옥소와 노예로 팔려나가던 슬픈 역사를 간직한 프리즌섬(Prison island)에 배를 타고 나갔다. 인도양의 쪽빛바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석양에 해떨어질 때까지 시원함과 씨푸드를 만끽했지만 오늘도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 속을 쳐다보며 일행은 작은 섬 모래사장에 내렸다. 먼저 바다거북과 공작새가 서식하는 곳에 가니 백오십년 이상 된 대거북(Giant Tortoise)부터 어린 거북까지 수많은 거북이들을 사육하고 있었다. 짝짓기를 하면서 내는 소리가 공룡소리 같았다. 노예감옥소와 쇠사슬 고문장과 경매장, 곧바로 바닷가로 승선시켜 팔려나가던 부둣가가 슬픈 아프리카인들의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잔지바르로 배를 타고 돌아와 바오밥나무 그늘아래 식당이 사람들이 많아 찾아와 먹는 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식후 프리즌 박물관에 가서 노예의 역사와 생활, 문화 등 사진과 그림을 곁들인 전시관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생존하며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내력이 전시되어 아이러니한 그들만의 자존감마저 느꼈다. 다시 스톤타운(Stone Town)이라는 미로의 집들과 상점들을 둘러보다가 예전 성곽 안에서 공연이 있다하여 5 달러를 내고 공연을 관람하였다. 〈zanzibar school of acrobatic sports〉단의 주최로 잔지바르 음악과 전통춤, 그리고 아크로바틱 조립체조와 텀블링, 무술대련체조 등이었다. 1월15일(11일째) 조식 후 9시 셔틀버스로 능귀(Nunggui)로 출발하였다. 해안도로를 따라 1시간 30분 달려온 능귀는 유명한 휴양지로 에메랄드빛 바다와 백사장과 별장들이 즐비하였다. 드디어 일행들은 수영복차림으로 백사장에서 돛배를 타고 처음엔 엔진으로 출발했다. 한참 해안선 따라 절경을 감상하고 물안경, 구명조끼, 오리발을 착용하고 바다 속으로 풍덩풍덩 빠져 물고기들을 관찰하며 수영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돛을 내려 낙조에 낭만이 깃들어 모두 숙연해지고 있었다. 올드 팀들만 모여 유명한 씨푸드 맛집을 찾아나서 랍스타와 킹피쉬 등과 맥주와 와인을 곁들여 늦은 저녁을 즐겼다. 오늘은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여유있고 낭만적인 하루를 즐겼다. 탄자니아 국립박물관과 부락박물관의 부족춤 1월16일(12일째) 10시에 다시 잔지바르로 셔틀버스를 타고 떠나 중간쯤에 스파이스 농장에 들러 여름과일, 향신료 재배농장 견학과 향내체험을 하고 과일시식에 이어 식사에서도 다양한 과일을 나눠줘 먹고 식사도 맛있게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2시 잔지바르 선착장에 도착하여 고속페리 티켓을 받아 입국사증을 받고 기다렸다가 승선하였다. 같은 국내에서 입국사증을 받는 것은 현재의 탄자니아로 탄생하게 된 1964년 이전에 탕가니카(수도 다르에스살람)와 잔지바르가 각기 독립국가에서 통합한 역사의 잔재로 남아있는 것이다.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하자마자 몇 명만이 탄자니아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역시 탄자니아 동물화석과 인류진화를 밝혀주는 인류화석, 그리고 수많은 암각화와 노예매매로 끌려가고 핍박받던 시기의 자료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1월17일(13일째) 30도가 넘어 찌는 듯한 여름 날씨는 일행들의 행동반경을 위축시켜 휴식이나 가볍게 재래시장을 다녀오는 정도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시내근처에 부족춤도 보여주는 부락박물관이 있다하여 주소를 가지고 몇몇이 택시를 타고 나섰다. 하지만 주소지에는 부락박물관(Village museum)이 없어진지 오래고 외곽 멀리 옮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되돌아왔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동아프리카 마지막 여정을 그냥 끝낼 수 없는 아쉬움이 뇌리 속에 맴돌고 있어 다시 용기를 내어 혼자서 새로 찾은 주소를 가지고 입장료보다 열배나 많은 택시비를 지불하면서 부락박물관을 찾아갔다. 허름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박물관이지만 별도공연비까지 지불했다. 박물관 내부와 소수부족 가옥을 민속촌처럼 전시한 마당 한구석에는 가족팀 같은 공연자들이 반주악기를 설치하고 이동식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원으로 배치한 가운데 앉았다. 관객은 나 혼자지만 캠코더와 사진촬영 준비를 마치니 드럼과 실로폰 반주에 맞춰 광란의 요동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참을 보고 있을 때 서양인 관객들이 10여명이 입장하여 함께 감상을 하였다. 한 가족들이 다양한 춤을 선보이기는 하는 것 같지만 여러 부족의 특성을 찾아볼 수 없는 춤들이어서 아쉬웠다. 1월18일 23명중 30일간 여행팀 18명은 기차로 서아프리카와 빅토리아폭포와 남아공 희망봉을 거쳐 귀국하는데 중간 귀국자 5명은 다르에스살람 공항에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에서 환승하여 19일(15일째) 저녁7시25분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하였다. 동아프리카 춤의 특성 동아프리카 춤은 다른 지역 춤보다 동작이 폭발적이고 격렬함이 특징이다. 그들의 외향적 문화기질을 잘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남성들의 뜀뛰기춤, 발차기춤, 여성들의 전신요동춤, 엉덩이춤 등이 동아프리카의 춤 패턴에 속한다. 또한 동아프리카춤의 반주악기는 아주 다양하지만 그중 타악기 종류가 가장 많으며 복잡한 리듬과 2박자와 3박자의 중복되는 리듬도 많아 아프리카 춤의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아프리카 춤의 일반적인 특징은 빠른 비트의 타악반주와 광란에 가까운 몸짓으로 흥미진진하며 원초적인 무형식으로 표현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춤의 근원적 특성도 활력과 삶을 고양시키는 수단과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는 부족 간의 적대적인 환경과 맹수와 수렵의 위험 속에서 삶을 보호하고 삶을 증대시키는데 주로 관여한 부족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원래 춤이란 사회적 문화적 연관뿐만 아니라 신앙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춤은 한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동시에 그 집단의 사회구조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연결고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프리카 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축제에는 사냥, 수확, 출생, 성인식, 결혼, 질병과 치유, 죽음 등이 포함된다. 중요한 축제나 의식 때 아프리카 부족들의 춤에는 트랜스(trance) 또는 심할 경우 엑스터시(ecstasy) 지경의 열광적인 주술적 샤머니즘적 춤에서부터 장례식 때의 차분한 춤까지 다양하다. 그리하여 중앙아프리카 수도 방기지방의 반다족 가자(gaza)춤은 소녀들의 성인식 때 한데 어울려 격렬한 동작으로 트랜스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계속 춘다. 또한 베냉 솜바(somba)족의 풍년제 ‘쿠브워티(kubwoti)’는 마을의 청년들이 농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형태의 상징물을 머리와 등에 걸치고 나무껍질에 붉은 칠한 옷으로 치장하여 흥겹게 춤을 춘다. 또한 다산, 성공적인 사냥, 비, 풍작 등 희망적인 춤들은 기우제의 레인 댄스(rain dance)에서처럼 일반적으로 상징적 주제와 부합되는 모방적인 춤 패턴을 포함하고 있다. 춤들의 일부 혹은 전부에 나오는 기본적 패턴(pattern)은 추상적(abstract)이거나 모방적(mimetic)인 것이다. 많은 춤들은 단순히 사회적 표현 충동과 움직이고 리드미컬하게 운동하고 스스로 즐겁게 하려는 집단적인 욕구로부터 기인한다. 그래서 저녁에 중부 아프리카의 음부티(Mbuti) 피그미족은 북을 치고 동시에 한발 한발 뛰며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밤새껏 춤을 춘다. 동아프리카 마사이족 문화와 춤 마사이족이란 좁게는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있는 그레이트 리프트밸리 지역에 사는 유목 마사이족을 말하나, 넓게는 케냐의 삼부루족, 탄자니아에서 반유목생활을 하는 아루샤족과 바라구유족도 포함해서 나타내기도 한다. 이들은 남자 중심의 사회이며 모든 씨족은 남자들이 우선권, 결정권을 가지고 움직인다. 또한 일부다처제로서 씨족외혼이 이루어지며 같은 연령집단에 속한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Swapping)이 있다.마사이족과 가축과의 관계는 탄생신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은가이(Ngai, Enkai)와 킨동오이(Kindongoi)라는 신이 하늘나라에서 마사이족을 지상으로 내려 보낼 때 소와 양, 염소를 같이 내려 보냈다는 것이다. 소를 중시하는 마사이 전사는 소를 약탈하고 다른 종족으로부터 이를 지키는 것이 임무로 긴 창으로 상대를 위험하며 용맹함을 과시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사이족은 타고난 전사로서 호전적이고 용맹해서 노예상인들에 끝까지 저항하여 죽거나 죽이거나 하자 마사이족 노예사냥을 포기했기 때문에 마사이족이 노예로 끌려간 경우도 거의 없었다. 보통 마사이족의 남자들은 열두 살에 이르면 할례와 성인식을 치른다. 그리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병사촌에 들어가 일정 기간 창과 칼로 야생동물을 잡는 방법, 소를 기르는 방법 등을 배우며 부족을 지키는 전사로 태어난다. 오늘날 마사이족이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 남자의 성인식이나 여성의 할례, 다른 부족의 가축 약탈 등의 전통은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마사이족의 전사들을 '모란(Moran)'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에게는 가사를 면제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지만, 마을에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모여야 할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도 나가야 한다.케냐나 탄자니아 마사이족 남성들은 막대기를 들고 차례로 돌아가며 하늘 높이 뛰면서 춤을 추고, 여자들은 무릎만 살짝 구부린 채 춤과 노래를 부른다. 남자들이 껑충껑충 하늘로 뛰는 춤을 추는 데에는 용맹을 과시하면서 하늘과 가까워지려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 남성미를 과시하여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몸짓이라고도 한다. 젊은 전사들의 점핑춤(adumu, 또는 aigus)은 일렬로 투스텝으로 전진하며 원무로 돌다가 멈추고 한두 명이 점프를 시작하기 위해 중앙으로 들어가 점핑춤을 추는데 발뒤꿈치가 땅바닥에 닿지 않게 춘다.은노토(Eunoto)는 10살 또는 그 이상에서 전사의 성인식에서 행하는 노래와 의식춤이다. 이때는 젊은 여자들도 가장 화려한 의상을 입고 함께 추며, 전사(moran)의 어머니들도 아들의 용기와 대담성을 찬양하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젊은 남녀들의 집단춤은 서로 줄을 서서 부드러운 저음으로 "하 우아"라고 내뱉으며 하체를 밀어냈다 당긴다. 여자들은 남자들 앞에서 서서 골반을 튀게 하고, 남자들과 대등하게 "오이 요요”라고 화음으로 맞춘다. 노래를 부르며 숨을 내쉴 때 머리를 앞으로 기울였다 들이쉴 때 뒤로 살짝 젖히며 가벼운 목춤을 춘다. 동아프리카 춤기행 후기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내내 인류역사 700만년의 여정을 겪으면서 생사의 갈림길을 넘고 넘어 포식자인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요람의 땅이었는데 오늘날 궁핍한 원시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래서인지 아프리카의 춤과 음악은 원시시대처럼 생존의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사냥 나가기 전에 사냥성공을 기원하면서 절실하게 수렵춤을 추었고, 사냥성공 후에는 배고픔을 해결한 기쁨의 춤을 추고 노래 부른 것도 알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미래는 어두운 것만은 아니었다. 광활한 대자연과 자연 그대로의 동물들, 원시춤과 음악,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 대륙 같은 긍정적인 요소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해주었던 마력의 힘을 지닌 그들만의 다양한 춤과 음악이 있었기에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과 친근함을 느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인 미지의 세계는 한층 더 새롭게 다가왔으며 기회만 된다면 또다시 문화탐사를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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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19)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노래 '부용산'이다. 박기동이 노랫말을 쓰고 안성현이 지었다. 안치환과 윤선애가 불러 세간에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다. 지난해 본 지면을 통해 '산동애가'를 다루면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다. 부용산 가사를 빼닮은 절명(絶命)의 노래라는 카피를 붙였던 이유가 있다. 마디마디 포개진 혹은 다 말하지 못했던 굴절의 역사, 사람들이 전율하는 선율과 장단 행간에 겹겹이 쌓인 질곡을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그 중심에 월북이란 오명을 달고 있는 안성현이 있고 좌익이라는 딱지를 달고 평생 감시 속에서 살았던 박기동이 있다. 박기동은 천재 문학소녀를 위해 초빙될 만큼 출중한 문학인이었다. 안성현은 가야금산조의 중흥조라고 하는 안기옥의 아들이기도 하다. 훗날 박기동은 <부용산>이라는 책을 냈다. 나주문화원에서는 <안성현 백서>를 출간했다. <백서>에 의하면, 김 종 시인 등 숱한 연구자들에 의해 광폭의 추적과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가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부용산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해방 직후 1948년, 지금의 목포여자고등학교 전신인 항도여중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있었다. 천부적인 문학소녀였던 모양인데 당시 교장이던 조희관이 이 학생을 위해 박기동을 교사로 초빙한다. 당시 목포는 수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폭발되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근대문학의 시작을 목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다종의 문학인들이 배출되었고 각종 문예대회가 열렸으며 예술공연이 펼쳐졌다. 박기동의 <부용산>(삶과꿈, 2002)에 의하면, 미네르바 다방 등지에서 박화성, 조희관 등 문학인들, 시인들, 평론가들, 음악가, 미술가 등 예술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문학을 논하고 시대를 말하며 노래를 불렀다. 각종 다방이며 술집이며 공적 공간들이 르네상스기의 살롱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항도여중 예술제>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박기동과 함께 안성현도 채용되었다. 가야금의 중흥조 안기옥의 아들이어서인지 천부적인 작곡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부임한지 8개월여 뒤 김정희가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팔방년 열여섯 나이였다. 안성현은 박기동의 습작노트에서 '부용산'이라는 시를 발견하고 곧바로 곡을 붙인다.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육자배기 선율에 얹어 절절한 심중을 담아낸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 <부용산>이다. 물론 이 시는 박기동이 항도여중에 부임하기 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썼던 습작이다. 여수 돌산이 고향인데, 큰누이 박영애가 어린 나이에 벌교로 시집갔다가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방년 스물 넷 꽃다운 나이였다. 안성현이 곡을 붙이자 박기동은 마지막 구절을 상여 나가는 소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노래를 제망매가에 견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배금순이라는 상급학생에 의해 초연된 이 노래는 항도여중 학생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애틋한 사연들이 날개를 달고 스토리텔링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빨치산, 월북, 좌익감시 등 파란만장한 분단의 시절들이 눈물과 핏물 속에서 구겨지고 찢겨지며 오늘에 이른 것,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다. 부용산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해방 직후 1948년, 지금의 목포여자고등학교 전신인 항도여중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있었다. 천부적인 문학소녀였던 모양인데 당시 교장이던 조희관이 이 학생을 위해 박기동을 교사로 초빙한다. 당시 목포는 수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폭발되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근대문학의 시작을 목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다종의 문학인들이 배출되었고 각종 문예대회가 열렸으며 예술공연이 펼쳐졌다. 박기동의 <부용산>(삶과꿈, 2002)에 의하면, 미네르바 다방 등지에서 박화성, 조희관 등 문학인들, 시인들, 평론가들, 음악가, 미술가 등 예술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문학을 논하고 시대를 말하며 노래를 불렀다. 각종 다방이며 술집이며 공적 공간들이 르네상스기의 살롱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항도여중 예술제>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박기동과 함께 안성현도 채용되었다. 가야금의 중흥조 안기옥의 아들이어서인지 천부적인 작곡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부임한지 8개월여 뒤 김정희가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팔방년 열여섯 나이였다. 안성현은 박기동의 습작노트에서 '부용산'이라는 시를 발견하고 곧바로 곡을 붙인다.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육자배기 선율에 얹어 절절한 심중을 담아낸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 <부용산>이다. 물론 이 시는 박기동이 항도여중에 부임하기 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썼던 습작이다. 여수 돌산이 고향인데, 큰누이 박영애가 어린 나이에 벌교로 시집갔다가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방년 스물 넷 꽃다운 나이였다. 안성현이 곡을 붙이자 박기동은 마지막 구절을 상여 나가는 소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노래를 제망매가에 견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배금순이라는 상급학생에 의해 초연된 이 노래는 항도여중 학생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애틋한 사연들이 날개를 달고 스토리텔링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빨치산, 월북, 좌익감시 등 파란만장한 분단의 시절들이 눈물과 핏물 속에서 구겨지고 찢겨지며 오늘에 이른 것,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다. 누이와 제자의 죽음을 애달파했던 상여소리 제망매가(祭亡妹歌) "죽고 사는 길이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 우리 향가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월명사(月明師)의 제망매가다. 누이의 죽음을 다룬 노래여서 '위망매영재가'라고도 한다. 양주동이 해석을 하였는데, 연구자들에 따라 약간씩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월명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제사하였더니),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지전(紙錢)이 서쪽으로 날아가 없어졌다. 하늘을 감응하게 하고 귀신을 감복시켰다는 향가의 주술력을 말하는 것이다. 박기동의 <부용산>에서도 향가의 전통을 승계한 숨결들이 포착된다. 한 가지에서 난 잎들이 가을 낙엽이 되어 떨어지나 우리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 누이는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마치 낙엽처럼 날아가 버린다. 월명사는 미타찰(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세계) 곧 종교적 초월을 빌어 누이와의 재회를 염원하는데 박기동은 부용산 봉우리 휘감아 도는 바람결을 통해 누이의 흔적을 좇는다. 안성현은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을 이 심상에 포개어 마치 남도의 만가(輓歌)같은 선율을 직조해 낸다. 어디 이것이 노래에 그치겠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월명사의 낙엽이기도 하고 벌교 부용산 봉우리를 맴도는 바람결 자체이거늘. 금지곡 <부용산>은 오래도록 우리 곁을 떠나있었다. 민족동란 전후기에 월북하거나 이른바 산사람이 된 이들이 많고 그들에 의해 많이 불리었기 때문에 문제 삼았던 것일 뿐이다. 새삼스럽게 <부용산>을 소환하는 것, 안성현의 월북은 월북대로 냉정하게 평가하되, 향가에서 김소월로 혹은 박기동으로, 고려가요에서 안성현의 선율로 이어지는 얼개는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굴절의 시기를 거치며 쌓은 우리의 내공이 탄탄하다는 점에서 <부용산>은 보다 널리 불릴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자신감이 교착된 남북의 물꼬를 트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부용산>은 남도의 육자배기다 박기동이 글을 짓고 안성현이 곡을 붙인 <부용산>은 한마디로 말하면 남도의 육자배기다. 육자배기의 전형적인 떨고 밀고 꺾는 선율로 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도전통의 시김새들이 새록새록 들어있다는 점도 그렇다. 죽음을 앞둔 빨치산들이 고향에 두고 온 누이며 부모며 형제자매들을 그리며 불렀던 한의 노래였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에서도 남도의 어느 옴팍진(오붓한) 다방에서 이 노래를 숨어 부르던 이들이 있었다. 좌익이라서가 아니라 이 노래 자체가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얼개나 음악적 결은 거슬러 올라 향가에 닿고 굽이쳐 올라 육자배기에 닿는다. 나주시립국악단 윤종호 감독은 늘 그렇게 주장한다. 단조 즉 마이너 기반의 계면조가 <부용산>뿐만 <엄마야 누나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어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요 <엄마야 누나야>는 김광수가 작곡한 것인데, 본래 안성현의 곡 <엄마야 누나야>는 전통음악 계면조 기반의 곡으로 사뭇 다르다. 가곡풍의 <부용산>을 굳이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를 남도창법의 계승으로 풀이하지 않으면 법고창신의 큰 줄기를 놓치는 잘못을 범하고 만다. <엄마야 누나야>뿐만 아니라 김정호의 <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노래들, 내가 이름 붙여둔 송가인이나 김태연의 '남도트로트' 창법에 이르기까지 <부용산>류의 법고창신에 대해서는 차차 고를 달리해 다루기로 하겠다. 오늘 막걸리 한잔 마시며 <부용산>을 불러봐야겠다. 1971년경 목포 예술인 공연 장면. 목포예총 제공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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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현 금현국악원 원장 등 11명 '서울시 문화상' 수상서울시는 서울의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시민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제72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자에 국악 부문 수상자인 원장현 금현국악원 원장 등을 선정하고 20일 시상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서울특별시 문화상은 1948년 제정된 이래 한국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수여해 왔으며 지난해까지 총 730명의 문화예술공로자가 수상했다. 올해는 학술, 미술, 국악, 무용, 연극, 대중예술, 문화산업, 문화재, 관광, 독서문화, 문화예술후원 11개 분야에서 11명의 수상자가 선정됐다. 수상자는 첫 여성 대한수학회장을 지낸 이향숙 이화여대 교수(학술)를 비롯해 '한강 르네상스 화보집' 등을 통해 서울의 모습을 기록해온 박병혁 문화예술그룹 ism 대표(미술),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탄생시킨 명인 원장현 금현국악원장(국악), 장광열 국제공연예술 프로젝트 대표(무용),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연극), 민희진 어도어 대표(대중예술), 히든어스 '서울의 탄생'(KBS·문화산업), 김기호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문화재), 전춘섭 ㈜세계투어 회장(관광), ㈔청송교육문화진흥회(독서문화), 효성화학㈜(문화예술후원)이다. 학술 부문 수상자인 이향숙 이화여대 교수는 대한수학회 최초의 여성회장으로 선출돼 여성과학기술인의 위상을 제고하고, '공개키 암호 연구개발'을 통해 국내외 암호학계 활성화 및 후속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술 부문 수상자인 박병혁 문화예술그룹 ism대표는 '명인명촌 화보집', '한강 르네상스 화보집' 등을 통해 서울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서울쪽방촌 예술프로그램 '쪽방촌 사람들'을 추진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국악 부문 수상자인 원장현 금현국악원 원장은 '원장현류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대금산조, 거문고, 태평소 등 국악 보존에 힘써 왔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활동 및 한국문화재재단 '한국의 집' 음악감독을 역임하며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활약해 왔다. 무용 부문 수상자인 장광열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는 20여년 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 교류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서울 국제 즉흥 춤 축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시켰다. 공연예술전문지 '객석'에서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활발한 춤 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극 부문 수상자인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은 예술의전당, 디큐브 아트센터를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서울의 연극·뮤지컬 등 문화인프라 발전과 향상을 위해 힘써왔고 정부 등 관련 예술기관 위원 활동을 통해 공연예술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대중예술 부문 수상자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걸그룹 '뉴진스'의 총괄 프로듀서로 케이팝과 대중예술의 발전과 세계화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문화산업 부문 수상은 KBS 히든어스 '서울의 탄생'에 돌아갔다. 2023년 방영된 KBS의 다큐멘터리로 1억7000만년 역사의 서울 화강암의 형성과정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국내 방송 최초로 8K 제작 및 심도 깊은 취재로 과학적 정확성을 높여 서울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문화재 부문 수상자인 김기호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로서 조선 철종조 왕실경공장으로부터 내려져온 금박장을 5대에 걸쳐 전승 중이다. 북촌에 공방을 열어 운영하는 등 우리나라 전통 공예의 전승과 보존에 기여하고 있다. 관광 부문 수상자인 전춘섭 세계투어 회장은 국제적인 행사 대행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앞장서고 있고, 서울국제관광박람회인 SITM 개최를 위해 힘써 한국 관광의 발전을 견인하는데 기여했다. 독서문화 부문 수상은 청송교육문화진흥회에 돌아갔다. 한국 최초의 점자도서관을 설립 및 운영하고, 점자 교육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해 시각장애인의 독서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문화예술후원 부문 수상은 효성화학에 돌아갔다. 장애예술인 창작 레지던시에 입주한 장애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문화복지 향상에 기여했고, 장애·비장애인 공존을 위한 사회적 공감을 형성하는데도 힘썼다. 한편 올해 '제72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은 지난 6월19일부터 8월11일까지 공모 접수를 진행, 14개 분야 총 88명의 후보자 접수를 받았다. 후보자는 일반시민과 문화예술 관련 전문가 및 기관·단체·협회·대학 등이 추천했다. 심사는 14개 분야별 전문가 각 5명씩 총 70명으로 구성된 예비심사위원회에서 최종 수상부문의 예비후보자를 선정하고, 분야별 위원 및 서울시의원 등 16명으로 구성된 최종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를 진행해 최종 수상자가 선정됐다. 심사는 최근 10년간 문화분야 발전 기여도, 서울시민(지역) 문화생활 향상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한편, 최근 2년 이내 시장 및 장관급 이상 표창 수상자는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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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 잇는 가을날의 ‘정자음악회’국가지정 보물 제 2054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보정’에서 전통 국악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가 마련됐다. (사)한국전통문화연구회 영암지부(예술감독 정선옥)는 10월 3일 오후 3시 영보정(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정길 10-8)에서 2023 남도문예 르네상스 ‘亭 the 琴(정더금)’ 공연을 선보인다. 전남도와 영암군이 주최하고 (사)한국전통문화연구회 영암지부가 주관하는 이번 공연은 영암의 대표적 향악집회소이자 전남도 8대 정자 중 하나로 선정된 ‘영보정’에서 꾸며진다.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선생으로부터 한성기·김죽파·김병호 선생으로 이어져 온 가야금산조의 맥을 잇고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가·무·악·희 정자음악회다. 섹소폰을 연주하는 달마지밴드의 ‘영암아리랑, 처녀농군, 진또배기’를 시작으로 영암향교 여성유도회와 한국전통문화연구회 학생 가야금연주단의 세대가 어우러진 무대인 ‘아리랑, 반달, 홀로아리랑’, 산조의 본향임을 알리는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젊은 소리꾼 서의철군의 ‘판소리 흥보가 中 ’화초장‘, 무용 ‘한량무’, 서양음악과 가야금의 콜라보인 ‘바리소리 콜라보’, 무용 ‘진도북춤’, 마지막으로 ‘장타령’을 들려준다. 가야금 정선옥 조한 김다희 오은수 최지혜 김효빈과 (사)한국전통문화연구회 영암지부 학생 가야금연주단(최보윤 외 14명), 영암향교 여성유도회(박공심 외 17명), 달마지 밴드, 소리에 서의철, 무용에 임상욱, 문다솜, 바리톤 김용원 등이 출연한다. 정선옥 예술감독은 "마을사람들의 휴식처이자 화합의 중심이 됐던 정자에서 천년의 소리 가야금과 함께 판소리, 무용으로 흥겨운 국악에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즐길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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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홍주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에는 최유리 씨홍성군은 제19회 홍주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13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1일 밝혔다.군이 주최하고 홍주전통예술보존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는 전통무용, 기악, 성악, 풍물연희 분야에 총 200여 팀이 출전하여, 학생부, 일반부, 전공부가 19일 예선을 통과한 본선 진출자가 다음날 20일 오전 9시 경연순서 추첨 후 본선에서 경연을 벌렸다.대회 결과 최유리 씨(서울)가 전공부 무용분야 대상(국무총리상)과 상금 5백만원을 받았다. 일반부 대상은 박신의 씨(전북도립국악원)가 수상했다. 조휘찬(서울)은 학생부 종합대상(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총 48명이 상장을 받았다. 주최측은 "홍성은 우리나라 판소리 비조인 최선달 선생과 구한말 명성을 날린 김창용 선생, 홍주의 명고명무인 한성준 선생,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중 하나인 결성농요의 본고장으로 앞으로도 홍주 전국경연대회를 통해 유능한 신인을 발굴 육성하여 국악 인구 저변확대는 물론 국악인들의 등용문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19회 홍주전국국악경연대회 수상자명단(52명) 전공부 상 격 종 목 성 명 주 소 (소 속) 종합대상 (국무총리상) 무용 최유리 인천시 (숙명여대) 종합최수우상 (문체부장관상) 성악 김효슬 서울시 (이화여대 2) 대상 (충남도지사상) 기악 강태훈 서울시 (서울대 대학원) 연희 신꽃봉 충북 (타악연희단 꼭두) 최우수상 (홍성군수상) 무용 김주연 부산시 기악 황진호 대구시 성악 김준현 광주시 (전남대 3) 연희 박미림 경기도 (타악연희단 꼭두) 우수상 (홍성군의회 의장상) 무용 김나영 부산시 (부산승무전수교육생) 기악 유서정 광주시 성악 정윤아 경기도 (동국대 1) 연희 박미경 경기도 장려상 (이사장상) 무용 정선영 서울시 (홍성군립무용단) 기악 김란희 서울시 성악 박신웅 전남 (전북대 1) 연희 김연주 충남 (타악연희단 꼭두) 일반부 상 격 종 목 성 명 주 소 (소 속) 종합대상 (국회의장상) 기악 박신의 전북 (전북도립국악원) 종합최수우상 (충남도지사상) 무용 이수현 부산시 (한양대 대학원) 대상 (충남도의회의장상) 성악 이인재 경기도 (다산국악학원) 연희 고은별 전남 (풍류) 최우수상 (홍성군수상) 무용 김정호 서울시 (KTA컴퍼니) 기악 김현재 경기도 성악 정지선 경기도 (고양 상여회다지소리) 연희 천제구 경기도 (오름) 우수상 (홍성군의회 의장상) 무용 안정아 광주시 (르블랑무용학원) 기악 심서영 전북 (전북대 3) 성악 이점숙 인천시 (유상호 국악원) 연희 이장호 강원도 (추계예술대 3) 장려상 (이사장상) 무용 장흥주 대전시 (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 기악 최세론 서울시 (한양대 1) 성악 김명자 경기도 연희 박민선 경기도 (풍류) 학생부 상 격 종 목 성 명 주 소 (소 속) 종합대상 (교육부장관상) 연희 조휘찬 서울시 (우신중 1-4) 대상 (홍성군수상) 무용 김지은 부산시 (부산예고 2-10) 기악 양은진 전북 (한국전통문화고 3-4) 성악 강재희 서울시 (방산고 3-3) 최우수상 (대회장상) 무용 박준범 부산시 (브니엘예고 2-1) 기악 박지원 경기도 (국립국악고 2-4) 성악 이인해 서울시 (국립국악중 3-1) 연희 박소현 전북 (국립전통예고 2-6) 우수상 (홍성군교육장상) 무용 남가영 경남 (부산예고 2-10) 기악 황유진 서울시 (국립전통예고 2-3) 성악 홍채원 경기도 (여울초 6-3) 연희 박영환 서울시 (국립전통예고 3-3) 장려상 이사장상 무용 배채원 경남 (부산예고 2-10) 신예원 충남 (불당고 1-9) 기악 신재원 충남 (충남예고 2-2) 유다윤 서울시 (국립국악고 2-4) 성악 김서원 서울시 (국립전통예고 3-3) 한예슬 서울시 (이수초 6-5) 연희 김건 충남 (국립전통예고 3-5) 송희원 서울시 (국립전통예고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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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잼버리 지원, 세종썸머페스티벌 추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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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홍콩'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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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새만금 잼버리서 'K-컬처' 홍보…'국립민속국악원' 등 체험 행사문화체육관광부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158개국 4만3000여명 스카우트 대원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K-관광 체험행사를 펼친다. 문체부는 대회 참가자를 비롯한 내외국인들이 세계잼버리 현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인 델타 구역에 '한국관'을 설치했다. 한국관은 한복과 한국어를 체험하고 K-관광에 대한 주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대회 시작일인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한국문화 체험관'을 운영한다. 한국어와 K-컬처 콘텐츠를 모바일 앱, 가상현실 기기 등을 통해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다. 메타버스 세종학당과 한글 부채 만들기, 한국 전통놀이 등 체험 행사도 진행한다.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한국전통문화전당은 세계 청소년들과 방문객들이 전통 한복을 입고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한복문화 체험관'을 운영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곤룡포와 관복, 군복 등 특수 한복도 전시하고 침선 시연과 국악 공연도 펼친다. 한국관광공사는 '한국관광홍보관'을 운영한다. 잼버리 로고와 K-관광 사진으로 디자인된 기념 엽서를 쓰고 1년 후에 받을 수 있는 '느린 우체통' 행사를 연다. 광화문과 첨성대, 제주 돌하르방 등 다양한 관광 소재를 자유롭게 채색할 수 있는 대형 컬러링 월도 운영한다. 한국 여행 시 유용한 '1330 관광통역안내서비스'도 체험할 수 있다.오는 6일 오후 8시에는 '문화교류의 날' 대미를 장식하는 'K-팝 슈퍼 라이브'가 새만금 잼버리 대집회장에서 열린다. 문체부는 이번 대회를 기념하고 '2023~2024 한국 방문의 해'를 홍보하기 위해 K-팝 공연을 준비했다. 그룹 '아이브'와 '스테이씨', '엔믹스' 등 K-팝 아티스트 11개팀이 무대를 선보인다. 행사는 KBS 1TV를 통해 같은 날 오후 9시40분부터 방송된다. 출연진은 아이브(IVE), 스테이씨(STAYC), 에이티비오(ATBO), 엔믹스(NMIXX), 싸이커스(Xikers), 제로베이스원(ZEROBASEONE), 피원하모니(P1Harmony), 앤팀(&TEAM), 베리베리(VERIVERY), 이채연, 아이키이다. 이외에도 대회 참가자들이 다양한 영외 활동을 하면서 K-컬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국립전주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 국립민속국악원, 태권도원, 국립무형유산원 등 문화시설 전시 관람 및 K-컬처 체험을 뒷받침하고 김제 금산사,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에선 참가자 9000여 명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2일 참가 대원들이 모두 모이는 새만금 잼버리 첫 행사인 개영식에 참석한다. 박 장관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에서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K-컬처가 '너의 꿈을 펼쳐라'라는 대회 구호와 함께 매력적이고 역동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문화교류의 날'에 지구촌 청소년들이 K-컬처를 온몸으로 즐기고 체험하면서 꿈을 키우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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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베르베르, '꿀벌의 예언' 출간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4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전 세계 3천만 부, 한국어판 누계 3천 쇄를 돌파한 신화적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꿀벌이 사라지고 인류 멸종의 위기가 닥친 30년 뒤의 지구를 목격한 르네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모험을 떠난다. 인류를 구할 방법이 적힌 고대의 예언서 <꿀벌의 예언>을 찾아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르네와 그 일행은 과연 예언서를 찾아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르네가 다녀온 30년 뒤의 미래는 겨울임에도 지구 온난화가 극심해져 기온은 43도가 넘고, 전 세계 인구수는 150억 명에 달하는 충격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꿀벌까지 사라지면서 식량이 부족해 곳곳에서 폭동이 벌어진다. 인간들은 식량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핵무기까지 동원해 세계 대전을 벌이고 있다. 미래의 르네는 현재의 르네에게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에 쓰여 있다는 걸 알려 주고, 르네는 인류를 구할 실마리가 적혀 있는 예언서를 찾아 전생의 자신을 찾아간다. 놀랍게도 예언서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던 전생은 무려 1천 년 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출정한 십자군 기사였고, 르네는 전생의 자신과 함께 예언서에 얽힌 거대한 모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다. 출판사 열린책들에 따르면 베르베르는 오는 26일 방한해 7월6일까지 머물며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이번 방한은 베르베르 작가의 데뷔 30주년이자 신작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 출간을 맞아 이뤄졌다.'꿀벌의 예언'은 '고양이 3부작' 이후 첫 작품으로 꿀벌의 멸종이라 소재를 통해 역사와 시간, 현재를 사는 우리의 책임에 대해 묻는다. 꿀벌이 사라지고 제3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한 참혹한 미래를 배경으로 주인공 르가 이를 막기 위해 시간 여행을 벌이는 모험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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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포로감시원 참전 실화 연극,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7월 개막"1942년 5월, '매일신보'에 군속 채용 선전 기사가 실렸다. 지원 자격은 일본어 사용 가능자, 보통학교 졸업자 이상의 학력자란다. 집안의 기둥인 형님과 어린 아우들을 전장으로 보낼 수는 없다. 급여도 많이 주고 2년 근무 만기라는데, 집안을 대표해 내가 다녀오는 것이 맞겠지."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한 연극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가 7월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 오른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스무살 무렵의 최영우가 일제 치하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참전하여 겪었던 실화를 적은 것이다. 그의 육필원고를 외손자가 발견하면서 종이책으로 나오게 됐다. 이 작품은 라이브필름 퍼포먼스라는 공연 형식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 기술융합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원작의 내용 중 주인공 최영우가 전쟁 종료 후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전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전범 재판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극 중 최영우의 직책인 포로감시원은 아직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강제동원 피해자 중 하나로, 작품은 당시 최영우가 겪어야 했던 고뇌와 후회, 체념을 통해 참담한 역사의 파도 속에서 그 어떤 이름도 남길 수 없었던 무명의 조선인 청년들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극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그들이 느꼈을 억울하고 복잡한 심경에 공감하며 새로운 시각과 해석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의 제작을 맡은 극단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는 이머시브 시어터를 비롯한 장소 특정형, 관객 참여형 연극 등 장르의 한계를 벗어나 작품을 창작하는 단체로, 이번에는 실감콘텐츠 개발 전문 프로덕션이자 영화제작사인 ㈜파란오이와 합작해 ‘라이브필름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형식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무대로 옮겨온 작품은 라이브필름 퍼포먼스라는 형태로 선보인다. 연극과 영화가 융합된 장르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기존 형식과 이들의 모습을 사전 콘티와 편집을 통해 실시간 재구성해 스크린으로 구현하는 영화 형식을 결합했다.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 기술융합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2022년 브런치ⅹ밀리의 서재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에서 130:1의 경쟁을 뚫고 선정된 르포르타주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가 라이브필름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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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이고, 기록적인 ‘36첩 궁중무용 공연’ 마무리6시간 동안, 36첩의 릴레이 궁중무용 공연. 궁중무용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효명세자에게 올리는 궁중잔치 조진찬·오진찬·야진찬 공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는 개교 30주년을 맞아, 2023년 5월 20일과 21일 이틀간 국립국악원 예악당(20일)과 창경궁 문정전(21일)에서 5차례에 걸쳐 총 36첩 공연을 올렸다. 20일에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조진찬(오후 2시, 23첩 정재), 오진찬(오후 6시 30분, 4첩 정재와 5첩 창작), 야진찬(오후 8시 30분)을 열고, 21일에는 창경궁 문정전에서 야진찬(4첩 정재)을 오후 4시와 7시 30분에 2회를 펼쳤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선 제 23대 왕 순조대(1790~1834)에 효명세자(1809~1830)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1828년 모친인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축하하기 위해 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와 1829년 부왕인 순조의 즉위 30년 및 보령 40세를 축하하기 위해 연 "기축년 자경전 야진찬”에서 올려진 궁중무용을 전승한다. 또한, 궁중정재의 꽃 춘앵전과 무형문화재 지정종목 중 3종(일무, 학연화대합설무, 처용무), 그리고 현대에 맞춘 창작무 5종(정재! 꿈의 길을 열다, 月下, 空, 八, 포!구!rock!)도 공연되었다. 효명세자는 궁중연향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인물로서, 현대 개념으로 평가해보자면 "예술경영자”이자 "혁신적 융합 예술가”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문헌에 전하는 정재가 총 53종인데, 효명세자 대리청정 시기에 창작된 궁중무용이 23종이므로 약 43%에 해당한다. 이번 공연 "효명, 그대를 위한 연향-효명전집”은 궁중무용의 르네상스 시대를 다시 열고자 하는, 즉 오늘의 효명세자가 되고자 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교수 및 학생들이 롤모델인 효명세자의 창작정신을 본받고, 현대인들에게 효명세자의 예술적인 면모를 알리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왕직아악부의 마지막 궁중무용 계승자인 심소(心韶) 김천흥 선생로부터 오랫동안 궁중무용을 사사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은영 교수의 지도를 통해서, 세대를 넘어 전승한 전통예술원 무용과 학생들의 창조적 계승을 목표로 하는 교과과정을 이루는 자리가 되었다. 이 공연은 궁중정재의 보전·계승·창조 작업으로, 우리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조선 후기의 궁중잔치와 궁중무용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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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무용 36첩…'효명, 그대를 위한 연향'한국예술종합학교가 6시간 동안 36첩의 릴레이 궁중무용을 펼친다. 궁중무용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효명세자를 주제로 한 공연이다.한예종 전통예술원 무용과는 개교 30주년을 맞아 오는 20일과 21일 5차례에 걸쳐 '효명, 그대를 위한 연향–효명전집'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2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조진찬(오후 2시, 23첩 정재), 오진찬(오후 6시 30분, 4첩 정재와 5첩 창작), 야진찬(오후 8시 30분)이 열린다. 이어 21일 창경궁 문정전에서 야진찬(4첩 정재)이 두 차례 진행된다.조선 제23대 왕 순조대(1790~1834)에 효명세자(1809~1830)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1828년 모친인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축하하기 위해 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와 1829년 부왕인 순조의 즉위 30년과 보령 40세를 축하하기 위해 연 '기축년 자경전 야진찬'에서 올려진 궁중무용을 감상할 수 있다.궁중정재의 꽃 춘앵전과 무형문화재 지정종목 중 일무, 학연화대합설무, 처용무, 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창작무 5종도 공연된다.한예종은 "효명세자는 궁중연향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인물로, '예술경영자'이자 '혁신적 융합 예술가'였다"며 "우리나라 역사에서 문헌에 전하는 정재가 53종인데, 효명세자 대리청정 시기에 창작된 궁중무용이 23종이므로 약 43%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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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9) <br> 김백봉 명인의 '부채춤' 춤사위(2)부채춤 '김백봉부채춤'은 세계인들에게 한국무용의 대명사로 잘 알려졌다. 한국무용'의 르네상스를 개척한 김백봉에 의해 1954년 창작된 양손에 접부채를 들고 추는 춤이다. 부채춤은 평안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국 전통춤의 근 현대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꽃피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춤이다. 김백봉 부채춤의 형태적 특징은 중후함, 유연함, 탄력성을 들 수 있으며 부드러운 곡선과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춤사위 그리고 한국적 정서가 깊게 묻어나는 부채춤만의 독특한 예술미학적 기법 등이 그 춤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굿거리와 자진모리장단으로 이루어진 반주음악은 흥겹고 경쾌한 리듬이 약동적인 춤사위로 창출되며 八字형과 之字형으로 태극선과 포물선상의 곡선을 만들어가는 부채사위의 기본적 구조는 자연의 이치를 근본으로 삼아 묘사된다. 1992년 한국무용협회에서 명작무 2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등록되었다. 김백봉 명인은 부채춤'과 '화관무' 창시자로 한국 무용계를 이끌었다. 한 평생 춤과 함께 해온 고인은 근·현대 한국무용 역사의 산증인이다. '화관무', '부채춤', '산조', 만다라', 무용극 '심청', '춘향전' 등 평생 600여 편이 넘는 창작춤을 만들며 한국 신무용의 형태와 기틀을 다졌다. 1954년 신무용 부채춤을 발표했으며,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부채춤을 처음으로 선보여 전 세계에 한국 전통춤의 미를 알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는 2000명의 무용수가 대형 군무 ‘화관무’를 선보였다. 김백봉(金白峰, 본명-김충실, 金忠實) 평양남도 기양, (1927-2023)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화체육관광부) 학력 사항 ∙ 1937 평양사범부속국민학교 졸업 ∙ 1939 평양 명륜실업여학교 졸업 ∙ 1943 동경 쇼인고등여학교 졸업 ∙ 1966 서라벌예술대학교 무용과 졸업 ∙ 1965 대학 부교수 자격취득 (학사1018-154) ∙ 1983 미국 Union University 명예 이학박사 취득 수련과정 ∙ 1939~1943 동경 최승희무용연구소 ∙ 1946~1950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 (무용창작법 전공) 주요 수상 ∙ 2004.06 한국무용협회 ≪서울무용제≫ 특별공로상 ∙ 2005.01 무대예술전문인협회 2004년을 빛낸 무대예술인상 ∙ 2005.10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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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8) <br> 김백봉 명인의 '부채춤' 춤사위부채춤 '김백봉부채춤'은 세계인들에게 한국무용의 대명사로 잘 알려졌다. 한국무용'의 르네상스를 개척한 김백봉에 의해 1954년 창작된 양손에 접부채를 들고 추는 춤이다. 김백봉 선생이 1947년 스승이었던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의 '무당춤'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민속무용 ‘부채춤’은 오랜 역사적 기간에 각이한 생활적 계기와 정황들에서 추어진 ‘부채춤’들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재형상한 무대예술작품이다. 부채춤은 한국무용사의 근·현대 과정에서 서양식 무대로 옮겨지는 변모과정을 거쳐 예술적으로 새롭게 창출되어 발전한 작품이다. 부채는 단순한 춤의 소도구나 장식품이 아닌 춤의 주제이고 모든 춤사위를 유도해 내는 기동인起動因이다. 부채춤이 표현하고 추구하는 미의식은 우리 춤의 전통적 깊이와 현대적 미의 오묘한 조화를 들 수 있다. 이 춤의 매력은 민속악 반주에 부채를 접고 펼 때의 마찰음과 부채를 펼쳐 들었을 때의 포물선, 의상이 만들어 내는 곡선, 부채를 펼쳐 들 때 시원스레 뻗은 팔의 선, 바람을 가르며 빙글빙글 휘돌아가는 부채의 움직임이 밝고 화사하다. 독무의 부채춤이 군무로 재구성되어 발전하게 된 것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이다. 1992년 한국무용협회에서 명작무 2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등록되었다. 김백봉(金白峰, 본명-김충실, 金忠實) 평양남도 기양, (1927-2023)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화체육관광부) 학력 사항 ∙ 1937 평양사범부속국민학교 졸업 ∙ 1939 평양 명륜실업여학교 졸업 ∙ 1943 동경 쇼인고등여학교 졸업 ∙ 1966 서라벌예술대학교 무용과 졸업 ∙ 1965 대학 부교수 자격취득 (학사1018-154) ∙ 1983 미국 Union University 명예 이학박사 취득 수련과정 ∙ 1939~1943 동경 최승희무용연구소 ∙ 1946~1950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 (무용창작법 전공) 주요 수상 ∙ 2004.06 한국무용협회 ≪서울무용제≫ 특별공로상 ∙ 2005.01 무대예술전문인협회 2004년을 빛낸 무대예술인상 ∙ 2005.10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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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 부채춤·화관무 만든 무용가 김백봉 별세한국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끈 김백봉(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무용가가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고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 ‘부채춤’과 ‘화관무’의 창시자로서 한국 무용 르네상스의 최정점을 이룩한 무용가이다 "김백봉을 제외하고 한국무용을 논할 수 없고 특히 군무(群舞)는 그의 영향으로 이뤄졌다”(송범 전 국립무용단장) 학계에서는 20세기 한국무용의 개척자가 최승희, 조택원, 한성준이라면 한국무용 르네상스의 정점에 김백봉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1927년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다. 1943년 최승희 무용단원으로서 일본·만주·중국·동남아시아 각국을 순회 공연했다. 최승희는 고전 무용의 현대화를 이끈 시초로 한국 무용계의 전설로 꼽히는 인물이다. 김백봉은 1944년 스승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동생 안제승(1928~1998)과 결혼했다. 1946년에는 최승희와 함께 평양에서 최승희 무용단 제1무용수겸 부소장, 상임안무가로 활동했다. 198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으며 서울시 문화상, 캄보디아 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20세기를 빛낸 예술인'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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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97)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일제강점기 야마다만키치로우(山田萬吉郞)라는 일본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여를 무안지역에 살면서 가마터와 분청사기를 연구했다. '미시마하끼메(三島刷毛目)'란 이름의 책이다. 무안문화원에서 무양향토문화총서 9호로 '야마다만키치로우가 바라본 무안분청사기 귀얄문'(2020년)이라는 번역본을 출간했다. '삼도'는 분청(粉淸)을, 쇄모(刷毛)는 귀얄을 말한다. 분청은 조선시대 자기의 하나다. 청자에 백토로 분을 발라 다시 구워낸 양식이다. 회청색 혹은 회황색을 띤다. 귀얄은 풀이나 옻칠할 때 쓰는 솔의 하나로 수수붓이라고도 한다. 주로 돼지털이나 말총을 넓적하게 묶어서 만들기에 그 문양이 투박한 느낌을 준다. 책의 목차들을 보니 무안의 분청, 무안출토 분청 고찰, 무안분청을 통해서 본 조선도자기 등 모두 무안지역의 분청사기를 추적하고 분석한 글들이다. 무안지역이 분청사기의 중심이었다는 뜻일까? 하지만 당시의 무안분청은 광주군(광주시), 보성군, 나주군, 함평군, 무안군 등을 포괄하는 광역 개념이다. 고유명사처럼 사용했던 무안분청은 사실상 영산강 일대의 분청이었던 것이다. 이들 지역을 포괄하는 맥락으로 호명하였으니 영산강 분청사기의 핵심이 무안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안분청일까 영산강분청일까? 조선 분청사기의 성립과 삼도(三島, 미시마)의 발산 조선분청사기의 요모조모를 개괄적으로 풀이해둔 연구가 있다. 「조선분청사기 '귀얄문'에 나타난 직관적 '즉흥성'에 관한 연구」(방창현, 이헌국, 2014)가 그것이다. 여기 그 성과를 간략하게 요약해두고 공부자료로 삼는다. 고려시대에는 상감청자가 유행했다. 상감(象嵌)은 금속이나 도자기, 목재 따위의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서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금, 은, 보석, 뼈, 자개 따위를 박아 넣는 공예기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감청자와 나전칠기가 발달했다. 근대기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었던 자개농이 상감기법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조선전기에는 분청사기가 발달한다. 청자의 시문기법을 계승한 양식이다. 분청사기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학자들이 미시마(Misima, 三島)라고 부르던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고유섭(1905~1944)이 잡지 '조광(朝光)' 1941년 10월호에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언급하며 분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분청의 기법은 화장토(clay slip)를 도자기에 바른 후에 장식하는 기법이다. 조선에서 자생한 고유양식은 아니고 중국 육조 후기인 6세기 월주요(越州窯)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문기법이 조선의 것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삼강기법이나 분청 즉 귀얄기법은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은 조선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종 이후에는 주로 국가에 진상하는 공납용으로 제작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전국에 자기소 139개, 도기소 185개 등 모두 324개의 도자소'에서 대부분 분청사기를 생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5세기 중반 지배층 사이에서 백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관요라는 관청이 설치되고 백자의 수요가 급증하자 분청사기의 생산은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일본으로 끌려간 사기장들에 의해 분청의 기술이 일본에 소개되고 전수된다. 16세기 후반 야마노우에소지(山上宗二)는 조선의 분청 다완(찻그릇)을 천하제일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선호하던 양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분청의 기법은 상감, 인화, 박지, 철화, 조화, 덤벙, 귀얄 등이 있는데 이 중 귀얄기법을 가장 선호하였던 것 같다. 무안분청의 세계관과 서민예술로서의 미학 무안분청의 세계관을 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위 논문을 쓴 방창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무기교의 기교'라는 맥락으로 분청의 세계관을 분석한다. 이것이 회화로 바뀌면 달마도처럼 직관적인 표현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과감한 생략과 절제, 무욕과 해탈, 여백의 미를 톺아낸다. 작위적인 기교가 없으니 도교적 세계관과 통하는 것이요 무욕의 심미안을 표상했으니 불교적 맥락과 통하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공(空), 도교에서의 자유의지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이 심미관이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양식으로 분청사기에 표현되었으니 그 융숭깊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일본의 지배층을 통해 세계 최고의 다완(tea bowl)로 인정받은 조선의 분청사기, 특히 무안분청이 일본의 차문화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김인규에 의하면 미국과 캐나다의 도예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는 조선의 다완을 동양미의식을 넘어 종교와 사상의 차원으로 끄집어 올린다. 오래 전 내가 도쿄 외곽의 야나기무네요시 생가를 꾸며 만든 민예박물관을 찾았을 때 놀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면 현관 가운데 딱 한 개의 옹기만 놔두었다. 남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질그릇, 그것도 약간 비대칭인 투박한 항아리 말이다. 야나기가 종교와 사상으로 확대시킨 분청과 옹기는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무안분청의 기능을 배태한 영산강 유역의 흙과 불과 땔감과 무엇보다 이 예술적 미감을 표현해낸 남도사람들을 상고해보면 양반예술과 대비되는 서민예술의 그윽함을 추적해볼 수 있다. 여기 표현된 도교적 자유의지나 불교적 공(空)의 심미안은 영산강 사람들의 생태적이고 호방한 세계관의 지향 속에 생성된 것들이다. 내식으로 말하면 남도풍류와 남도 미학의 발흥이다. 어찌 무안분청이 뿌리 없이 생겼겠는가.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일 것이다. 영암의 도기와 해남의 초기청자, 강진의 청자, 무엇보다 영산강유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옹관까지 거슬러 오르는 장대한 줄기, 그 속에서 발현되는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작품들과 세라믹산업의 세계들 말이다. 남도인문학팁무안분청에서 생활도자 세라믹산업까지 강진청자, 여주백자와 함께 무안분청을 우리나라 3대 도자기 발상지라 한다. 무안과 목포는 분청과 옹기 등 생활자기, 강진은 청자 중심지다. 이외 해남은 초기청자의 발상지, 영암은 도기로 특화되어 있다. '목포대학교헬스케어도자명품화사업단(단장 조영석 교수)'에 의하면 무안지역 도자산업벨트는 전국 최대의 생활도자클러스터다. 양질의 점토와 풍부한 땔감, 무엇보다 영산강을 활용한 해상운송로의 특질을 배경삼아 발현했던 무안분청이 목포의 행남자기로 이어지며 오늘날 생활도자클러스터를 이뤘던 것이다. 행남자기가 이전해가긴 했지만, 도자기의 일관 체계를 갖춘 전국 유일의 특성화지역이고 10인 이상의 도자업체 중 전국의 55%, 전남의 80%가 무안지역에 집중해있다. 전남도에서 역점을 두고 실천하고 있는 남도문예르네상스 조성사업 중 하나가 도자와 차라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도자기산업은 인공치아는 물론 세라믹 일반으로, 건축물에서 첨단공업제품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차의 중흥조이자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무안군 삼향 출생)와 관련되어 있으니 도자산업과 차산업은 일석삼조의 콘텐츠이자 향토산업인 셈이다. 지역문화 창발과 재구성의 임무를 맡은 곳은 어디일까. 영산강 토대의 유구한 무안분청을 토대삼고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 첨단산업까지 이끌어내는 곳 아니겠는가. 남도의 르네상스 그 중흥의 역사를 선도해나갈 클러스터, 목포대학을 중심으로 한 관학산업계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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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BAO VY(르 바오 비)의 '시조'를 만나다지난 2022년 전국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에서 부문별 장원자 중,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시조부 장원자 유나영 학생(12세, 충북 청주시 운동초). 외국인인 듯한 외모, 더구나 국악 중에서도 쉽지 않은 시조 부문에서 당당하게 장원을 차지해 스승과 함께 한 기념사진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기자는 가족, 스승과 함께한 나영 학생을 충북 청주시에서 만났다. 처음 만난 기자에게 수줍어하면서도, "기사는 (인터넷에) 어떻게 나오는 거예요?"라며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크고도 동그란 눈빛으로 호기심 어린, 세상 궁금한 것이 많은 당찬 소녀였다. 방학이지만, 시조 외에도, 태권도, 가야금 수업, 학습과외 등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며, 작년 큰 상의 감동이 여전히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는 감성 풍부한 소녀이기도 했다. 나영 학생의 모친은 베트남인, 부친은 한국인이다. 첫째인 나영 학생을 포함하여 5살, 11개월 자녀 3남매를 두었고, 작년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이때 나영 학생 역시 ‘유나영’이라는 대한민국 이름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다. LE BAO VY(르 바오 비), 시조를 만나다. 부부는 베트남에 정착할 계획으로 맏이로 태어난 르바오비(LE BAO VY, 나영 학생의 베트남 이름)를 베트남에서 출산했으나, 자녀 교육을 위해 한국 거주를 결심했다. 2019년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부부의 가장 큰 과제는 8세 첫째 아이의 교육이었다. 아이가 처음 시조를 배우게 된 때를 회상하며, 부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가 한국말을 모르는 상태라, 말 배우러 갔어요. 저도 일을 하고 있어서, 한국말을 가르쳐줄 상황도 못되고요. 또래 친구들이 안하는 것을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특기를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마침 예전에 시조를 배우셨던 어머님께서 시조가 좋은 것을 아셔서 추천하셨고, 아이를 돌봐주실 수 있었어요.” 할머님은 소위 말해서 국악 애호가이다. 심금을 울리는 국악의 멋에 매료되어 배운지 30여년이 된다. 그 동안 가야금에서 시작하여, 민요, 장구 등 판소리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배웠으며 크고 작은 공연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말이 서툰 며느리를 대신해 첫째 손녀의 교육활동을 도울 수 있는 가족이었다. 할아버지 또한 자동차로 손녀의 등·하원을 도우시는 등 조부모님 모두 손녀의 배움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또한 코로나가 성행하면서, 아이가 한국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고, 시조수업만이 유일하게 말을 배우고,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 하얀 도화지 같은 나영이, 시조 스승을 만나다. "처음에는 너무 느려서 답답했어요.” 나영 학생이 처음 시조를 접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8살 소녀에게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녀는 노력 끝에 3년 후, 전국대회 학생부 장원을 차지했고, 그 과정에 스승 이명숙 (충북 무형문화재 제26호 석암제 시조창 이수자) 명창의 도움이 컸다. 명창은 이상래 선생(충북 무형문화재 제26호 석암제 시조창 보유자)으로부터 전수조교까지 인정받아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2011년 영동난계국악제 시조부문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청주에서 오랜 기간 일식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작년까지 9년간 (사)대한시조협회 청주지회 지회장을 지냈으며, 시조 교육과 봉사활동을 통해 청주의 시조를 지켜온 명창이다. 스승은 나영 학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인터넷 통해서 귀로 먼저 들어요. 따라하거나, 소리는 예쁘지만 멋에 취해서, 안 좋은 습관이 들어 잘 안 고쳐질 수가 있어요. 그런데, 나영이는 하얀 도화지 같았어요. 하라는 대로만 해서 정확하게 갈 수 밖에 없었죠. 시조는 호흡이 길잖아요. 어른들은 숨차서 다 못해요. 그런데 나영이는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잘 따라왔죠.” 한글과 시조를 병행 지도 나영 학생은 시조를 배우는데 결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한글 지식이 전무 했던 것이다. 때문에 스승은 한글과 시조를 병행해서 수업했다. "가사의 뜻을 모르고 가르치면, 아이가 이해할 수 없잖아요. ‘30분은 한글을 가르쳐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30분은 시조를 가르쳤어요. 처음 ‘녹양이 천만사인들(천만산들)...’ 43글자(시조창 부분) 가르칠 때, 한글 수업에서는 ‘ㄱㄴㄷ’을 가르쳤어요. 처음에 그림 그리듯이 따라하게 하고, 그렇게 발음, 글자 가르치고, 또 쓰게 하고, 다 하면, 자음, 모음을 붙이면서, ‘가, 나...’ 되도록 가르치고. 글자를 가르친 다음에 문장으로 넘어가는데, 저도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 때, 할머님께 학습지 지도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또한 이명숙 명창은 주변의 자연을 활용하여 나영 학생이 단어와 문장의 뜻을 최대한 이해하도록 도왔다고 했다. "예를 들어, ‘녹양이 천만사(千萬絲)인들(푸른 버들가지가 천 갈래 만 갈래 실올같이 드리웠으나)’을 가르칠 때, ‘ㄴ’에 모음 ‘오’하고, ‘ㄱ’ 붙이면 ‘녹’이야.’ 라고 말해줬어요. 또 마침 근처에 수양버들 나무가 있었어요. ‘하나, 둘... 천개, 만개가 있어.’ 그렇게 설명하면서 평시조를 가르쳤어요.” 이 명창은 아이가 명석하여 받아들이는 것도 빠르고, 배우고 성취하려는 욕구도 상당하여, 아이 스스로 시조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시조 하면, 말이 ‘녹양이...’만 해도 세 글자로 십 몇 초를 가잖아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호흡도 길어서 지루해해요. 그런데, 한 수를 배우고 나면, 자기가 스스로 좋은 점을 느끼고 빠져들어서 그 맛을 알게 되요.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겠다고 해요.” 나영 학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터득한 시조 부르기의 재미를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재미있었어요. 또 ‘녹양이... 탐화봉접...’(가성으로 넘어가는 부분) 할 때나, 지름 시조에서(첫 음부터) 소리 지르면 기분 좋아요. 속이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풀려요. 또 요성(음이 떨리는 부분)할 때 뭔가 느낌이 좋아요” 볼펜 물고 발음 익혀, 느린 지도의 성과 시조창의 기본 중 하나인 ‘정확한 발음’을 위해 스승은 볼펜을 물고 연습하도록 지도하기도 했다. 노력 덕에 이제는 누구보다도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며, 그것은 나영 학생의 장점이 되었다고 밝혔다. 스승은 성과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한꺼번에 많이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해야 몸에서 반응해서 진심 우러나오게 되는데, 나영이를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어요. 입에 볼펜을 물고 연습하게 한 것도 시간이 걸리고 힘들지만, 정확한 발음을 할 줄 알고, 구강구조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늦어도, 나중에 더 빨리 이해하고 속도가 납니다. 그것을 나영이를 가르치면서 확인했어요. 이제는 구강구조를 설명할 때, 손모양만 보여줘도 제 말을 알아듣고 발성이 달라져요. 예전에 구구절절 설명했던 것을 이제는 한 동작, 한마디면 바로 알아들어요. ” 시조를 배운 지, 3년 만에 장원 2020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시조부 장려 2021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시조부 차상 2021 (사)대한시조협회 통영지회 전국시조창경연대회 질음시조부 장원 2021 전국 정가경창대회 초등부 대회장상 2022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시조부 장원 위 내용은 나영 학생의 주요 수상 내역이다. 2019년 8세에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고, 9세에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시조부 장려상, 10세에 차상, 11세가 되는 작년에 장원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그 외의 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쓸며 받은 상장만 20여 개가 된다. 국악에 영재성을 보인 것일 수도 있지만, 학생 본인과 스승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스승은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운 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큰 대회를 보내려고 결심했을 때에는 지도자로서 자존심도 있기 때문에 아이와 열심히 준비했어요. 한번은, 대회 일주일 앞두고, 아이가 기대한 만큼 안돼서, 저도 저녁 영업을 안 하고 아이와 밤까지 연습했어요. 아이도 울면서 원하는 대로 끝까지 해내려고 하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은 안 간다고, 안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나영이는 그렇게 연습하고도 늘 밝은 얼굴로 제게 왔어요. 그리고 나영이는 실전형, 무대체질이요. 연습할 때 보면 조마조마 한데, 무대에서 잘 해내더라고요. 그게 큰 강점이에요.” 실제로 나영 학생의 시조창을 들어보면 발음과 음정이 상당히 정확하다. 또한 어린이 음성 특유의 낭랑함까지 더해져 성인 시조창과 또 다른 시조의 느낌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작년에는 1년 6개월 만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 후에, 기존 이름 LE BAO VY(르 바오 비)에서 ‘유나영’이라는 대한민국 이름으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이 명창은 작년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지원곡(엮음지름시조 ‘푸른산중 하에...’)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저는 제자들에게 자신만의 특징을 선보일 수 있는 곡을 가르치려고 해요, 서로 다른 곡을 지도하죠. 그러면 제자가 10명이면, 10명이 서로 다른 10곡을 다 습득하게 되요. 누가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책 한권을 한다는 생각으로, 저도 더 공부하게 되고요. 지도자로서의 제 자존심이죠. 작년 전주대사습 대회에서 나영이가 장원한 곡도 대회에서 많이 하지 않는 곡이라서 혹시나 몰라서 악보를 가지고 갔는데, 심사위원 분들께서 아무도 그 곡을 모르셨던 거예요.” 스승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열과 성의를 쏟아 시조를 배워 나가는 제자를 보면서 국악인으로서 큰 보람을 얻는다고 전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외국문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나영이는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스스로도 좋아서 하고, 저도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마중물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 그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다문화 가정의 나영이, 국악으로 정체성 키워 나영 학생은 큰 상을 받고난 후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을 받고 나서 꿈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 됐어요. 신문을 보니까 진짜였고, 볼도 꼬집어보니까 진짜였어요. 눈물이 엄청 났어요.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요.” 나영 학생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나라로 건너오면서 문화적, 사회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통음악을 배우고 그것에 열정을 쏟으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자신과 가족, 그리고 스승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큰 상을 받은 후에는,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싸인 해달라고’ 하는 친구도 있을 정도로 주위 또래와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국악 영재, 어린 장원자의 어려움 11세라는 이른 나이에 ‘장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부친은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주대사습대회(학생전국대회)라는 큰 대회에서 장원을 하니까, 다른 대회에서는 잘 해도 상위권 상을 받지 못하더라고요. ‘기회균등’이라는 차원을 이해는 하지만, 아이가 아직 어려서 대회 준비하고, 성취하는 보람으로 배우면서 실력을 키워왔고, 시조도 아직 배울 것이 많은데,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을 명확하게 찾지 못했어요. 교육적으로도 더 많은 지원을 해주고는 싶은데, 주변에 예술중학교도 없고, 예술 고등학교는 있어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 너무 먼 얘기고요. 시조 하나만으로 더 깊게 배우게 하고 싶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를 시켜요. 가야금, 민요... 다양하게 해서 여러 길을 터놓고 있는 중입니다.” 어린 나이에 국악에 영재성을 보이는 경우, 주변에서 해당 분야를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교육 체제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부친은 초등학교의 국악교육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학교에서 국악 수업도 많이 줄어드는 것 같고, 방과 후 국악수업도 많이 줄었더라고요. 예전에는 나영이가 상 받으면 학교에 연락 드리기도 했는데, 자주 받아서인지 몰라도 이제는 상을 받아도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지방 영어대회에서 1등 하면 ‘와~’ 하는데 말이죠. 교육적인 환경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는 해요.” 모친 역시, 첫째 딸이 국악을 계속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국악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부모는 주변의 자문을 얻어, 나영 학생이 분야를 확장하여 가야금(민요)도 배우도록 했다. 신경애 선생님(청주국악원)으로부터 가야금, 민요를 배우고 있으며, 새롭게 대회를 준비 중이다. 또한 가야금 선생님을 통해 요양병원 등에서 봉사활동으로 공연을 하며, 무대에 서는 경험도 꾸준히 이어가려고 한다. 나영 학생은 때때로 손을 잡아주시며 격려하시는 어르신들의 따뜻함에 공연의 재미를 느낀다고도 했다. 시조 스승 이명숙 명창 역시, 대회 준비보다는 예고 입학 준비를 목표로 시조창 연습과 함께 지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여 수업 중이다. 스승의 조교로서 지도자의 역할을 했을 때 경험하는 배움과 성취감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 될 것임을 염두한 것이다. 또한 올해 8월 즈음에 예정된 (사)대한시조협회 청주지회 행사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도 전했다. 나영, 국악교육의 살아있는 증거 나영 학생은 베트남에서 건너 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생에게 시조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언어이고 노래였다. 그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영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음악적, 문학적 맛을 느끼며 흡수했다. 또한 자아를 실현하는 매개체로 삼으며,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만들어가기도 했다. 이것은 누구든 처음부터 국악에 익숙한 환경에서 시작한다면, 충분히 국악을 즐기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실하(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판소리와 관련한) 국악 대중화의 측면에서, 국악 교육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판소리는 예술성이 뛰어나지만, 그 예술성을 인지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동양음악이나 판소리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판소리가)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초·중·고 시절 서양음악 일변도의 음악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은 악론(음악이론)이 전혀 다릅니다. 서양음악 이론을 아무리 잘 알아도 그것을 바탕으로 동양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중도일보. 2021.10.04. ‘10년간의 취재기록23-초중고 서양음악 일변도의 음악교육이 문제’) 이것은 국악교육의 총체적 문제와 다르지 않다. 또한 범람하는 대중문화 사이에서 국악의 입지가 좁아진 가운데, 그나마 주목받는 판소리가 이 정도라면, 그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시조의 경우, 문화·교육적인 지원에서 더욱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국악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나영 학생은 자신의 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재미있어요. 여러 나라에 국악을 알리는 국악인이 되고 싶어요.” 스승 이명숙 명창 역시 제자의 미래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전했다. "나영이는 시조를 배우면서 마음 속 깊이 전통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됐잖아요. 다른 나라에 가서도 우리 것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고, 나중에는 저처럼 후진양성까지 할 수 있는 국악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나영 학생은 국악을 공부하고 있지만, K-pop역시 좋아하며, 춤도 따라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끼를 가진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10대이다. 시조에서 시작한 예인으로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더 많은 사람들이 격려해주고, 그 꿈이 더욱 넓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아직 서툰 한국말이지만 또박또박, 나영 학생은 자신의 당찬 꿈을 담아 국악신문 독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저를 많이많이 사랑해주세요. 열심히 연습하고, 나중에 소리를 잘해서, 사랑을 많이 받는 국악인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