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2024아리랑학교, 헐버트아리랑악보비답사(주)국악신문사 주최주관으로 '국악진흥법 이해를 위한 2024아리랑학교'가 14일부터 15일까지 2일간 개최되었다. 5개 지역 전승단체 경산아리랑보존회(배경숙, 홍희연 이경숙 배혜숙 송경애),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임규익 배부근 임규익 홍순익 김영준 정종철), 안성아리랑보존회(조명숙,서명주, 양미자, 박경순, 박정미, 은희숙, 고경숙, 이정레, 이진영, 이미숙, 김순덕, 방미화, 김복식,),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 김화숙, 문강자, 정점순, 김용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유은서, 김종철,원금순,노진옥,박경숙)와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가 함께했다.
-
아리랑학교, 조명숙 경서남도잡가보유자 노익장 과시(주)국악신문사 주최주관으로 '국악진흥법 이해를 위한 아리랑학교'가 14일부터 15일까지 2일간 개최되었다. 안성향토무형문화재 제4호 '안성경서남도잡가' 예능보유자 조명숙 명창이 문경 나드리를 했다. 1945년생 80세로 13일 저녁 문경시 '숲속의 맑은 향기 팬션'에서 개최한 ‘24춘계아리랑문화학교’에 참석 1박 2일 행사에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행사는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의 진행으로 5개 지역 아리랑보존회와 아리랑학회 40여 명과 함께 각 단체 현안 검토, 김연갑 교장 특강, 지역 아리랑 교차 감상회, 문경새재 H B 헐버트아리랑비 답사 일정을 소화했다. 5개 지역 단체는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배경숙),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 안성아리랑보존회(조명숙),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 동두천아리랑보존회(유은서)이다. 조명창은 지역 아리랑 교류를 위한 안성아리랑 공연에서 손수 쇠를 치며 신명을 높여 다른 지역 아리랑 회원들의 박수와 앵콜를 받았다. 조명숙 명창은 1018년 11일 안성시로부터 향토무형문화재 제4호 ‘안성경서남잡가’라는 종목으로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경기, 서도, 남도소리를 모두 아우르는 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어릴 적부터 안성지역 권번의 문화를 체득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안성지역의 권번, 교방문화에 대한 소중한 증언자로서도 유명하다. 특희 헐버트 채보 아리랑과 1910년대 총독부 조사자료에 나오는 ‘안성지역 채록’ 아리랑을 구연하여 아리랑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2000, 기미양, ‘안성아리랑 연구’) 참가회원들과 행사 마지막인 헐버트아리랑 답사 현장에서 다음 행사 때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악속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
(주)국악신문 사할린동포장학회, 러시아 동포 청소년 장학금 전달(주)국악신문(기미양 대표이사)가 주최하는 사할린동포장학회 장학금 전달식이 25일 국악신문 주필실에서 개최되었다. 수상자는 신마이야 학생과 싸프로노브 안드레이 학생이다.신마이야 학생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1학년으로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의 선구자 공노원(전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부회장) 선생의 손녀이다. 수상 이유는 2017년부터 사할린과 한국에서 개최되는 사할린아리랑축제와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사할린아리랑'을 지속적으로 알려오고 있다. 싸프로노브 안드레이는 인천연수구 청학중학교 3학년으로 고려인 4세이다. 수상 이유는 5살부터 가라데를 시작하여, 카자흐스탄에서 가라데 유럽 챔피온을 따고 나서 한국에 이주하였다. 2020년 동경에서 열린 세계청소년가라데대회에서 세계 챔피온을 거머쥔 꿈나무이다. 국내 다문화사회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국악신문 사할린동포장학회에 장학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은 다음과 같다. 국악계 장문희(전북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김나영(아리예술단), 유지숙(향두계놀이보존회), 이희춘(진도북춤보존회), 이승한(고판사), 진미애(진미애국악원) 아리랑전승단체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김연갑(아리랑연합회), 한영숙(군포아리랑보존회), 남은혜(공주아리랑보존회), 배경숙(경산아리랑보존회), 곽동현(영남아리랑보존회), 이혜솔/김화숙(왕십리아리랑보존회), 유은서(동두천아리랑보존회), 김희은(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 김길자/김진순/서금옥(정선아리랑보존회), 황효숙(울릉도아리랑보존회),조명숙(안성아리랑보존회) (접수순) 사할린 한인협회 권경석(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장),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이병일(전 사할린한국교육원장) 일반인 김바다, 김한나, 정수현, 김니은, 이이랑, 이도은, 이아리, 노이진, 노아진 만 4세(이이랑)부터 85세까지 동참하여 1만원부터 100만원까지 성금을 보내왔다. 특히,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문경) 이만유 회장과 전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100만원 성금을 보내주었다. (주)국악신문은 국내외 러시아 동포들에게 국악공연 체험, 한복보내기운동, 가훈보내기를 시작하면서 '국악기보내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삼정제빵소 등 여러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동포사회에 '평화의 빵 보내기', 김치보내기, 겨울방한구두 등을 보내 오고 있다. 한편 'KBS이웃집 찰스' 방송 제작팀이 장학증서 수상식을 전 과정을 촬영하였는데, 사할린 4세 신마이야 가족을 중심으로 새해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
'동두천아리랑제’, 가능성 확인되었다‘제2회 동두천아리랑제’가 지난 25일 오후 5시 시민회관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호국보훈의 달에 마련한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하는 동두천아리랑제이다. 토속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8수,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 10수.... 2곡이 발표 되었다. 동두천에는 전래되는 어러리(아라리)와 본조아리랑 선율이 불려진 것이다. 이 아리랑을 유은서 회장이 아리랑학회 자문을 받고 현지 답사를 병행하여 발굴하고 복원하여 동두천 시민들에게 지난해 제1회 동두천아리랑제에서 알렸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이후 유은서 회장은 아리랑학회에서 동두천에도 아라리가 불려졌다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경로당을 찾아서 발굴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유회장은 경기북부 지역에서 30여 년간 국악 활동을 하면서 북한강 수계를 따라서 불려지는 포천어러리, 연천어러리(아라리) 등에 주목했다. 이후 '경기아리랑에 관한 연구'로 국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동두천 관내 많은 경로당을 찾아가며 귀담아 들었던 아라리를 정리하였고, 8년 전 동두천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이담이라는 옛 지명이 담긴 이담어러리 30수를 찾았다.이렇게 동두천에도 향토민요인 이담어러리타령과 아리랑이 채록되었다. 현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에서 향토민요 ‘이담어러리타령’이 전수되고 있다. 이담어러리타령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나를넘겨주게 아리랑 고개는 열두고개 아리랑 고개로 날만 넘겨주게 올라가는 신감사야 내려오는 구감사야 구관이 명관이라고 말 전하거라 내가 넘어가는 고개는 한 고개라 우리 님 고개는 열두 고개 이담면 흐르는 물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린 날 안고 돌줄 모른다 해는 지는데 갓을 쓰고 어디를 가오 첩의 집에 가거들랑 나 죽는 꼴 보고 가소 앞집의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메러 간다 여보게 총각아 목메러 가지 말고 이내몸 시집간데로 몸살러 오게 아리랑사(史)에서 6.25전쟁과 동두천은 깊은 관계가 있다. 주한 미군 제7사단가 '아리랑', 안흥리 '아리랑다리', 동두천 위안부 모임 '아리랑'이다. 1953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주한 미군 (캠프 케이시)제7사단가가 '아리랑'이다. 특히 동두천 양공주로 불린 위안부들의 모임도 '아리랑'이고, 1964년 3월 10일 준공이 된 주한 미군 제7사단 장병들이 지어준 '아리랑다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리랑다리는 "64년 3월 10일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 안흥리에 주한 미 제7사단 장병들이 손수 지었다. 제7사단장 그레이 소장이 양주 군수에게 '아리랑다리'를 지어서 인계했다. 폭 2m, 길이 120m로 미국과 한국의 굳은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아리랑다리라고 지었다"(대한뉴스 제 460호)라고 한다. 당시 동두천에서는 2만 6천명이나 되는 주한 미군 제7사단의 단가 아리랑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미군들과 주민들이 만나면 손 붙잡고 아리랑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혹자는 출렁거려서 아리랑다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당시 미제 통조림 깡통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서 '깡통다리'라고도 불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서양속담에도 "사랑받는 아이는 이름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1967년에 '아리랑다리'라는 영화로도 나왔다. 그런데 1972년 노후한 아리랑다리를 헐고 현재는 새로운 다리를 짓고서 안흥교라는 이름을 부쳤다. 지난 6일 동두천아리랑보존회원들과 함께한 동두천아리랑답사에서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에서 관내 역사 유래에 대한 지명이나 시설을 적극 발굴하여 안흥교를 다시 아리랑다리로 복원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 아리랑다리를 지어주고 1971년 3월 2만명의 미군들이 철수하면서 제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미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코리아라는 나라는 전쟁 페허 속에서도 남녀노소가 모였다 하면 아리랑을 부르면서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설명하면서.....(주한 미군 제7사단에 3대가 복무한 마이클람부라우 박사(손자) 증언) 당시 동두천은 지나가는 개들도 입에 파란 달러를 물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급작스럽게 자본 집중과 유입으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1950년 전쟁이후 동두천이야말로 아리랑이 가장 많이 불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군가로 불린 아리랑은 자연스럽게 미군들과 위안부들에 의해 불려져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계적 뮤직션들이 아리랑 음반을 발매하고, 미국 동포들까지도 아리랑을 애국가처럼 불렀다. 지금도 6월 보훈의 달 뉴스에서 한국을 다시 찾는 미군 참전용사들은 의례적으로 당시를 기억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유은서 회장은 "새로 작창한 동두천아리랑에는 동두천 미군 기지촌의 애환이 담겨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반 강제동원이나 속여서 끌려온 어린 여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들의 한을 아리랑으로 정화하고 치유하시기를 바라며...."라고 설명하면서 어느새 울컥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함께 눈물이 고였다. 작년에서부터 그분들을 무대에 모시려고 수차례 청을 드렸는데 아직까지는 만나주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세상인데...아직까지 그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보존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오늘을 동두천아리랑제 개최일로 정례화 하기로 하였다. 식전행사로 풍물패 밝달이 지신밟기와 풍악을 울려 신명과 흥을 올렸다. 이어 동두천에서 전래되고 있는 향토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이 첫 막을 열었다. 동두천아리랑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우리낭군 먼동이 트면/모랫말가고요 아낙네들 신천물/빨래터에서 놀고요 저기가는 기차는/검은연기만 나고 이내가슴 타는데도/검은연기가 나네 동산올라 구경하니/길가는행인왜모르나 천하일색 나하나와/놀다가지못하고 고추당추 맵다해도/시집같이나 매울소냐 못살겠네 영죽겠네/이내시집은못살겠네 자재암 풍경소리는/ 바람따라 울리고 소요산 공주봉에는/ 바람소리 좋구요 만경창파방을삼고/연화수다가 옷을입고 이리떠도 둘이나둥둥/저리떠도 둘이쌍쌍 꽃이야 곱다마는/가지 높아서 못꺾었나 꽃은 꺾어/머리에 꽂고/잎은흝어다 입에물고 미군부대 앞마당에는/민들레꽃 고운데 꽃답던 이내청춘/어느새 시들어졌네 아리랑다리는 깡통강통/깡통다리라네 아리랑다리는 출렁출렁/출렁다리라네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회장과 회원들이 지난해 동안 갈고 닦은 가량을 펼쳤다. 2019년 함양산삼엑스포에서 음반으로 발매된 '황석산아리랑'(작곡:양평수, 소리:유은서)도 함께 선보였다. 한국무용 '살풀이'(이해영예술단), 변검, 동동구루무(송해문화예술진흥회), 한국무용 '강원도아리랑'(늘춤무용단), 인형극 (정승재)이 펼쳐졌다. 이어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과 이병일(특별회원), 회원들이 소극으로 꾸며서 배역을 맡고 들려준 왕십리아리랑과 사할린아리랑을 생생한 감동으로 선사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사할린에는 왜왔나 왜왔나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많은 남화태 징용왔네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안성경서도잡가 보유자)과 회원들이 1911년에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안성아리랑을 선사했다. 조명숙 명인은 안성권번이신 어머니를 따라서 70 평생 노래만 불렀다. 뛰어난 공력으로 무대를 신명나고 신나게 만들어서 초청 단체 중 가장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관객으로 오신 귀명창들에게 전화가 왔다. '귀한 소리 들었다고" 동두천 시민들에게 서울경기 지역과 사할린에서 향유하고 있는 아리랑들을 선보였다. 안성아리랑, 동두천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사했다. 총 10개 단체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박형덕 동두천시장, 김승호 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회 김경수 지회장, 김성보 대한노인회 동두천시지회장, 동두천여성단체협의회 윤한옥 회장, 동두천농업협동조합 목현균 조합장, 동두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형남선 센터장,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 회장,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 이무성 화백, (주)국악신문 관계자,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 등 300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시민들에게 "동두천아리랑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은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인자"라고 전했다.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김승호 회장은 "이제 두 돐을 넘은 동두천아리랑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지역 전통문화 창달을 위해 온 김경수 동두천국악협회장의 배려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한편 동두천 전통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는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 김경수 지부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늦었지만 동두천 지역 아리랑의 발굴과 복원작업을 통해 동두천의 역사성을 '동두천아리랑'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지난 2012년 12월에 세계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과 함께 향토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아리랑을 통해서 지역문화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비영리 문화단체다. 또한 아리랑 3대 정신(저항, 대동, 상생)을 계승한다. 지난 12월 등재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선에 세운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에 동두천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유은서 회장은 "이번 동두전아리랑제를 위해 동두천아리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아리랑답사를 회원들과 수행하면서 더욱 아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내년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주제의식을 구축하고,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다듬어서 소극으로 동두천아리랑을 올려보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제2회 동두천아리랑제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고 동두천시, 동두천시의회,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주)국악신문, 동두천예총,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동두천농업협동조합이 후원한다.
-
13회 왕십리아리랑제, 제주아리랑부터 사할린아리랑까지지난 3일 왕십리아리랑보존회가 주최주관하는 제13회 왕십리아리랑제가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6월 보훈의 날을 맞이하여 보훈 가족 50여 명과 성동구민 등 300여 명이 객석을 채워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45명이 무대에 오른 이번 공연은 1부 이산의 노래, 2부 해원의 노래, 3부 상생의 노래로 구성되어 7개 지역 아리랑과 경기민요, 전통춤으로 구성되었다. 특별출연으로 김명남 명창이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선사했다. '왕십리아리랑'은 순수 창작곡이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장 이혜솔 명창이 작사하고, 양금 연주자 윤은화가 작곡했다.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사랑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 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한양도성 동쪽 십리 응봉산 정기. 세세년년 우리 삶터 희망의 샘터. 살곶이벌 응봉기슭 응방의 옛터. 역사문화 오래오랜 우리의 터전. 인류유산 아리랑은 우리의 자랑. 슬기로운 매사냥도 인류유산이래요." 첫 막은 '왕십리아리랑으로 열었다. 1부에서 '이산의 노래' 사할린아리랑은 소극으로 엮어내어 대일항쟁기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가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당하는 고난과 슬픔을 아리랑에 담아낸 이산의 아픔을 형상화 하였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우리 조선은 따뜻한데 그 땅에 못가고 내 여기 사나 우리 영감님은 어데로 갔나 나만 혼자 두고 자기만 갔네 강제징용의 땅 사할린에서 한인 1세대들이 고국을 그리며 부르는 망향의 노래 ‘사할린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3연은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땅으로 이중징용 가는 대목이다. 우리님 따라서 사할린에 왔는데, 다시 나만 혼자 두고 일본 해저 탄광으로 끌려가는 이산의 고난을 고하고 있다. 2부 '해원의 노래'에서는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회장과 박옥희가 제주아리랑을 선보였다. 이때 제주해녀의 복장을 한 장경숙(제주아리랑연구회장)의 제주 해녀의 고난과 역경을 몸짓으로 표현하며 제주아리랑을 함께 불러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내었다. 이어 김용자, 최순이, 박연춘이 상주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을 연곡으로 불러서 신명과 흥을 돋구웠다. 관객들이 후렴을 따라서 부르면서 손뼉을 치고 발을 굴리면서 추림새를 던져주었다. 얼쑤, 좋다! 3부 '상생의 노래'에서는 대일항쟁기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한 호국선열을 추모하는 의미로 만든 '아무르아리랑'이 소극으로 펼쳐져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무르아리랑 넘어간다.(후렴) 원수하고는 같은 하늘아래 살수가 없어, 팔걷고 뛰어나와 의병되었네, 동양평화 하자하자 외치는 소리 하늘땅 온세상 진동하누나 다섯발 내디뎌 도적 쓰러지니동양평화 대역사 시작되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아무르아리랑) 이 아리랑은 이혜솔 회장이 2018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열리는 안둥근의사추모제에 한국대표로 초청되어 헌정한 의병아리랑이다. 국내 거주하고 있는 광주 고려인문화원 및 고려인합창단,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이 사는 인천, 김포, 양주 등에서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알려오고 있는 의병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오고 있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소극으로 만들어서 무대화 하여 레파토리화 하고 있다. 성동구 거주하는 한 보훈가족(75세)은 "보훈의 날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주는 '아무르아리랑'이 가슴에 와 닿는다. 주말이라서 마침 손자들과 같이 와서 더욱 의미가 깊다. 감사하다"라고 이회장의 손을 두손으로 잡아주었다. 휘날레가 끝났는데도 관객들이 계속해서 '앵콜'을 외쳐 주었다. 주말이라서 가족과 함께 온 모습이 화기애애하다. 전국아리랑공연연합회에서 축시를 보냈다. "우리 왕십리아리랑은 아리랑은 역사와 민족을 노래한다. 아리랑은 우리가 사는 땅을 노래한다. 왕십리아리랑은 서울의 역사를 노래한다 왕십리아리랑이 탄생한지 5년 이제 ‘아리랑의 아리랑’으로 자리한다 왕십리아리랑은 오늘의 우리 아리랑이다 구아리랑 긴아리랑 본조아리랑 정선아리랑 왕십리아리랑은 서울의 아리랑이다 이혜솔과 그들은 왕십리아리랑 전승자들이다 발표회를 하고 축제를 펼친다 제주도에서 정선까지 또 사할린까지 동포들과 외국 손님들과 우리들과 함께한다 아리랑의 역사를 아리랑의 위상을 아리랑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막내 아리랑이다"
-
(135)아카시아꽃/ 이해인향기로 숲을 덮으며 흰 노래를 날리는 아카시아꽃 가시 돋친 가슴으로 몸살을 하면서도 꽃잎과 잎새는 그토록 부드럽게 피워냈구나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 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추천인: 김화숙(국악인) "그렇다. 누군들 젊은 날의 그리움이 수북하지 않을까만, 칠순을 넘기는 갈 길이 급한 이에게는 더 수북할 것이다. 그 청신하고 푸르른 꽃 내를 어찌 이 나이라고 잊으리이까!”
-
금강사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 아리랑 얼쑤!천주평화연합 주최,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가 19일 오전 경북 풍기에 위치한 금강사에서 개최했다. 대한불교도법황종 금강사와 (사)한국종교협의회 등이 함께 아리랑 한마당을 통해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이번 행사에는 이현영 UPF 한국회장, 대한불교조계종 팔공총림 방장 임담의현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종정 혜경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총무원장 도봉스님, 전법주사 노형 대종사, 대한노인회 김동진 상임이사, 세계불교도연합 총재 도룡국사, 박성만 경상북도의회 의원, 김주영 영주시의회 의원을 비롯하여 UPF의 평화대사, 평화운동가 약 300여명이 참석했다. 또한 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도 참석했다. 행사를 주관한 UPF는 UN경제사회이사회 ‘포괄적 협의 지위’를 가진 글로벌 NGO로써 국내에서는 17개 광역시도 및 232개 시군구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신통일아리랑’에서 펼쳐진 아리랑은 6월 1일 ‘의병의 날’과 7월 27일 정전 70주년을 의미화 한 의병아리랑을 중심에 배치하고 7개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전승하는 토속아리랑을 함께했다. 경상도 지역 '대구아리랑'에서부터 사할린에서 불렸던 '사할린아리랑'까지 7지역 단체에서 12종의 아리랑을 선보였다. 첫 무대는 경산아리랑보존회가 준비한 산뜻한 ‘화전놀이아리랑’으로 열고, 휘날레는 탁월한 보편성을 지닌 '본조아리랑' 대합창으로 여몄다. 2006년 창립한 경산아리랑보존회(이사장:배경숙)은 경산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경산아리랑체와 경산아리랑전국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영남지역 구전민요와 함께 경산아리랑을 스토링텔링 작업으로 완성한 소극은 전통에 무게를 실은 무대화를 통해 현대적 계승에 힘쓰고 있다. 2003년 창립한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이사장:곽동현)는 2003년부터 매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대구아리랑제(통상20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영남 지역에 25개 지부와 함께 영남아리랑축제 및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상 20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2년 창립한 (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기연옥)은 기우만 의병장 직손으로서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을 기리는 '윤희순의병아리랑' 등을 소극과 뮤직컬로 무대화 하여 국내외 순회공연을 통해 널리 알리고 있다. 2019년 서울아리랑패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 창립한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전은석)는 영천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영천아리랑제와 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산10회)를 개최하고 있다. 일년에 100여 차례 경로당 위문공연을 해오고 있다.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임규익)은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 허위 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2016년 창립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사장: 이혜솔)는 경기서울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 아무르아리랑, 아리랑코로나, 연꽃아리랑 등을 스토링텔링 작업을 통한 무대화에 힘쓰고 있다. 사할린아리랑보존회 지도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2020년 창립한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유은서)는 휘날레에서 본조아리랑을 선창했다. 6월 25일 동두천아리랑제를 열 예정이다. (사)아리랑연합회는 이번 금강사에서 펼친 아리랑 한마당을 시작으로 신통일한국을 추동하는 힘의 노래가 아리랑임을 다양한 곳에서 전개하기로 하였다.
-
인류문화문화유산아리랑비 건립 100일 기념...아리랑 공연
-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제10대 신규 임원 취임신규 임원은 전국 7개 지회를 통해 선출된 이사 15명과 총회를 통해 선출된 감사 1명으로 총 16명이다. 이사는 △성동문화재단 윤광식 대표이사 △인천서구문화재단 이종원 대표이사 △수원문화재단 김현광 대표이사 △포천문화재단 이중효 대표이사 △강릉아트센터 김규만 관장 △춘천문화재단 최연호 이사장 △세종시문화재단 김종률 대표이사 △당진문화재단 당진문예의전당 김이석 관장 △대구오페라하우스 정갑균 관장 △안동문화예술의전당 김화숙 관장 △부산문화회관 이정필 대표이사 △경남문화예술회관 김정수 관장 직무대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서현석 대표 △GS칼텍스 예울마루 이승필 관장 △완주문화재단 향토예술문화회관 이재정 관장이다. 감사는 문경문화예술회관 엄원식 관장이 맡는다. 이사는 이사회에 부의된 사항을 심의·의결하고 이사회 또는 이사장에게서 위임받은 사항을 처리하며, 감사는 코카카의 업무 및 회계 상황에 대한 감사 등의 직무를 수행한다. 또 코카카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서현석 대표와 부산문화회관 이정필 대표이사를 비상임 부회장으로 선출했다. 이승정 회장은 "전국 문예회관의 연합 기구로서 새로운 임원들과 함께 국민과 문예회관, 예술인을 잇는 코카카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코카카는 전국 문화예술회관의 균형 발전 및 상호 간 협력 증진과 공연예술 유통, 국민의 문화활동 지원 등 문화예술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1996년 설립됐다.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등 전국 224개 문예회관을 회원 기관으로 두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유관 기관이다.
-
봄소풍 같은 아리랑비 건립 100일기념 공연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신선하고, 강물과 구름은 유유히 흘렀다. 15일 12시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 기념비 앞. 정성스런 제물이 차려지고 제문이 낭송되었다. "2022년 12월 5일 정선군과 정선아리랑보존회, 아리랑연합회와 40개 보존회가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을 다짐하여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오늘 비 건립 100일을 맞아 ‘자발적 전승’, ‘형질 전승 유지’, ‘생활 밀착 활동’, ‘공동체 결속 기여’라는 창조적 계승 실천의 자리로 모였습니다. 원류로서의 정선아리랑과 동두천아리랑, 지류로서의 왕십리아리랑과 봄내아리랑이가 비교와 교류를 하는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 담론을 형성하여 논의를 확장시키는 장도 마련했습니다. 흠향!" 이에 모든 참가자가 재배하고 공연을 시작했다. 행사에는 특별히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김남기, 김형조, 김길자 선생, 그리고 이현수 전승교육사도 참관하여 뜻을 더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후렴)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정선아라리) 첫 출연은 정선아리랑보존회, 외지 출연단체를 맞는 의미로 정선아라리를 선보였다. 단촐한 장고 반주의 정선아라리는 아리랭이가 피어오르는 봄 누리를 잔잔히 적서 주었다. 아마도 외지 출연자들의 가슴도 적셔 주었을 것이다. 이어 (주)국악신문사 고문 이무성 화백은 주관사로써의 인사말에서 "이 아리랑비가 아리랑의 메카로서의 기능이 확정되어 세계적 명소가 되길 기원하며, 오늘 이 행사가 그 출발이 되길”바란다고 전했다. 아리랑 특강에 나선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은 "기념비 지역은 청동기 유적으로서의 역사성과 한강 최상류 아우라지라는 지역성은 아리랑의 메카로서 이의가 없다”고 하며, "이 시기와 지역은 아라리 형성과 매우 밀접하다”고 '아리랑의 시원설'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런 사실을 4월 24일 주헝가리한국문회원 초청특강에서 구체적으로 알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어진 공연은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 ‘왕십리아리랑’을 들려주었다. 본조아리랑을 근간으로 창작 되어 따라부르기 쉬운, 근래 넓리 불리는 창작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 갈래요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아리랑 고개에를 함께 넘어요(왕십리아리랑) 왕십리 지역성과 역사 문화를 6절의 가사에 "아리랑 고개에를 함께 넘어요”로 아리랑의 형질을 담았다. 이혜솔 이사장 외 15명이 함께했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유은서 회장과 노옥진씨가 ‘동두천아라리’를 선보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후렴) 꽃이야 곱다마는 가지 높아서 못 꺽었나/꽃은 꺾어 머리에 꽂고 잎은 훓어다 입에물고 동산올라 구경하니 길가는 행인 왜 모르나/ 천하일색 나하나와 놀다가지 못하고(동두천아라리) 메나리제 전통 선율을 담고 있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2020년에 결성되어 지역에서 활발한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마지막 무대는 ‘봄내아리랑’으로 장식했다. 이번 무대가 초연인 만큼 많은 관심을 끈 막내 창작아리랑이었다. 춘천지역 전통 선율에 기반한 작곡, 역사적 지명과 유적의 유려한 표현, 창자 오승현의 농익은 목구성으로 불러준 유려한 선율로 신명이 올라가자 관객은 박수로 답했다. 아리아리 아리랑 쓰리쓰리 쓰리랑/아리랑고개가 왠 고개 곰실곰실 넘어간다 오근내 조근내 날아드는 봉황/소양강 맑은물 춘경 좋기로 봄내로군아 반짝이는 별빛 대룡산 눈꽃/의암호 물결 넘실넘실 웃어있네(봄내아리랑) 이번 모임은 작은 공연과 가벼운 강의를 겸한 렉쳐 형식이었다. 여기에 왕십리아리랑보존회가 준비한 맛있는 봄나물 음식과 눈이 시로도록 파란 화창함이 더해져 참가자들은 ‘봄소풍’ 같다고 했다. 가는 길에는 정선아리랑보존회원들이 준비한 정선 특산품 수리취찰떡을 나누어 먹으며 아리랑 꽃을 피웠다. 한편 행사장에는 정선군 여량면 문용택 면장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 자리에서는 이무성 화백의 ‘뗏목 정선아리랑’ 족자를 정선군에 기증하기 위해 전달 받기도 했다. 이무성 화백은 지난해 12월 5일 군수님의 건립식 기념사에 감명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주관사인 (주)국악신문은 앞으로도 ‘아리랑비’ 의 특화를 위해 소규모 모임과 관광객이 찾는 시기에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
'경계를 넘는 동행, 고려인너머 10년'..동포애를 나누다
-
(91) 능소화 / 나태주능소화 나태주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어여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그것도 비 오는 이른 아침 마디마디 또 일어서는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추천인: 김화숙(황실예술단) 높은 담을 뛰어넘어 피어 오르는 아름다운 능소화를 볼 때마다 사연이 있는 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의 여인네들이 임금님이 사랑하는 어린 후궁 소화를 질투해서 탑에 가두었는데 시름시름 아프다가 죽게 된다. 그녀는 죽어서라도 그리운 임금님 지나가는 길에 묻혀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그 자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능소화라고 불러지게 된다. 참으로 슬픈 누이의 전설이 담긴 꽃이다.
-
양평 두물머리 ‘버스킹 연꽃아리랑’
-
[리뷰] 제주의 소리는 다르다, 제주해녀의 아리랑제주돌문화공원사업단이 주최하는 제주 대표축제 2022선문대할망페스티발 무대에 제주도아리랑연구회(회장:장경숙)가 주관하는 제1회 제주도아리랑 발표회가 18일 오후 2시 제주돌문화공원 본무대에서 개최된다. 공연명은 '제주의 소리는 다르다'이고, 주제는 '제주해녀의 아리랑'이다. 작품의 핵심은 제주해녀의 굴곡진 삶과 저항의 역사를 ‘역사의 노래’ 아리랑에 실어 무대화 한다. 이번 공연의 기획의도는 첫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를 주제로 하여 제주 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 '아리랑'으로 형상화 한다. 둘째, 일제강점기 반일반제의 항일운동을 전개한 해녀항쟁운동을 재조명 한다. 셋째.인류무형문화 ‘제주해녀문화’와 ‘제주아리랑’의 컨텐츠화를 시도한다. 넷째,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통해 제주도민의 공동체 결속에 기여한다. ‘제주해녀문화’는 제주도 해녀가 지닌 기술 및 문화로, 2016년 11월 한국의 19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해녀문화’는 우리가 후대에 전승해야 하는 지속가능한 인류 보편 가치를 지닌 문화라는 것을 알리고,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과 연계하여 ‘제주아리랑도 가시화 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녀, 또는 잠녀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는 없는 직업이다. 왕조시대 제주가 당해야 했던 수탈은 제주가 가진 천혜의 가치만큼이나 컸다. 일제강점기 해녀는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제주 특유의 공동체 정서를 바탕으로 반일반제의 항일운동을 전개한다. 섬을 떠나 달아났던 남성들과는 달리 고난을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섬을 지켰다. 우리나라의 해녀들은 모두 제주에서 출가한 뒤,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지역에 출가했다가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피해 한반도를 떠나 일본, 오키나와에서 극동 러시아 사할린 등 국외로 바깥 물질을 나갔다. 이를 ‘출향 해녀’라 부른다. 그들이 불렀던 지역의 아리랑을 무대에 올린다. 장회장은 "1937년 기준 경상·전라·함경도 등에 2,801명, 일본의 도쿄·쓰시마·시즈오카 등에 1,601명의 제주 해녀가 출향 지역에 정착해 물질을 전수하였다. 출향해녀들이 조국을 떠나서 타국에서 디아스포라 한인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제주해녀의 백년사를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으로 형상화 하려고 한다"며, "국외로 나간 출향해녀들이 일본과 오키나와. 사할린에서 접했던 '사할린아리랑'을 제주에서 최초로 소개한다"라고 전했다. 프로그램은 제1부 제주의 아리랑. 제2부 디아스포라 아리랑, 제3부 고개의 노래, 제주아리랑으로 구성된다. 해설이 있는 렉처아리랑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해설은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가 진행한다. 제1부에서는 조천아리랑, 우도아리랑, 서우젯소리, 송악산아리랑이 선보인다. 2부에서는 사할린아리랑, 탄광아리랑, 진도아리랑. 해주아리랑, 1인극 모노드라로 꾸민 '이어도로 간 해녀', 연꽃아리랑, 양산도방아타령.경복궁타령, 3부에서는 왕십리아리랑, 제주아리랑과 함께하는 가무악, 휘날레에는 아리랑대합장으로 관객과 함께 한다. 이번 행사에 초청공연 위촉을 받은 단체는 서귀포아리랑보존회(유재희),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황실예술단(김화숙)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장경숙(1951년생, 제주 출생) 회장은 제주시 최남단 대정읍 보성리에 태어나서 제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교육자이다. 대정여자교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후 '자운당문화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시아버지가 물려주신 고풍스런 자택이 문화도시 서귀포 마을문화라운지 지정(2021년)되면서 옛스러운 제주의 정서를 진하게 풍기는 '자운당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장회장은 초등학교부터 전통춤을 배우면서 늘 우리 춤사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2018년 은퇴후 세계적 무용가 홍신자가 운영하는 제주시니어무용단 단장으로 활동해 왔다. 김기인춤문화재단 써클댄스동아리, 정기발표회, 현대무용 '아우라' 동아리 활동, 제주 돌문화공원 즉흥춤 축제에도 참여해 왔다. 이렇게 마을공동체 리더 활동을 하던 중, 2016년부터 제주도아리랑보존회 강소빈 회장에게 제주아리랑을 전수받고, 2019년 10월 1일 '아리랑의 날'을 기점으로 '제주아리랑연구회'를 결성했다. 이후 아리랑학교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제3회 사할린아리랑제 참가후 본격적으로 제주아리랑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한편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에 매달 정기 후원을 해오고 있다. 장회장은 그동안 배운 한국 전통춤사위 및 모던댄스와 제주아리랑을 제재로 하여, 1인극 모노드라마 '이어도로 간 해녀'작품을 처음으로 발표한다. 이 작품은 제3회 사할린아리랑제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사할린에 살고 있는 제주 출신 동포들에게 공감을 받고 돌아와서 확장시킨 작품이다. 내용은 제주해녀가 여자로써 격어내야만 한 지옥같은 고난을 '이어도'라는 지도에도 없는 섬을 통해 환타지라는 서사를 만들어 현실의 역경을 넘으려고 했다. 이러한 서사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제주민요와 제주신화, 제주아리랑을 부르고 몸짓으로 형상화하는 1인극이다. 기존 공연에서는 몸짓으로만 한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소리도 치고 몸짓으로 이어지는 환타지를 선사하는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1인극전국대회에도 나가려고 준비한 작품을 이번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다고 전한다.
-
67년 전통 ‘예술꿈나무 등용문’ 호남예술제올해로 67회를 맞은 ‘예술꿈나무들의 등용문’ 호남예술제가 막을 올렸다. 광주일보사의 전신인 옛 전남일보가 지역 예술 꿈나무 발굴과 육성을 위해 창간 4년 째를 맞은 1956년 동방극장(옛 무등극장)과 서석초등학교에서 시작한 호남예술제는 광주·전남 뿐 아니라 명실상부 전국을 대표하는 종합예술제로 수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했다. 이날 개막한 제67회 호남예술제는 5월 31일까지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호남신학대학교 등에서 열린다. 올해는 코로나 19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합창·합주 등 대규모 단체 부문의 경연은 취소됐으며, 미술·작문·만화애니메이션 등 부문은 공모전으로 전환해 진행한다. 이번 경연은 음악(성악·기악·앙상블), 무용(클래식 발레·창작 발레·현대무용·실용무용 등), 국악(기악·성악·가야금·타악 등), 미술(회화·한국화)·작문(산문·운문(시)), 만화애니메이션(칸만화·일러스트레이션) 부문으로 나뉘어 열린다. 미술(회화·한국화)·작문(산문·운문), 만화애니메이션(칸만화·일러스트레이션) 부문은 오는 7월 1일부터 7일까지 호남예술제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접수 후 작품을 우편으로 발송하면 된다. 미취학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새싹 그리기 축제’도 오는 7월 1∼7일 그림을 접수받는다. 부문별 입상자는 호남예술제 홈페이지에 당일 날 공지하며 다음날 발행되는 광주일보 지면(문화면)에도 발표한다. 그동안 참여 인원만 58만 명에 이르는 호남예술제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이들의 꿈을 키워준 텃밭이었다. 각 부문 수상자들은 현재 문화계에서 아티스트로, 교육자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60회 부조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문지영과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김남윤 한예종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바이올린),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 강연균 화백 등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호남예술제를 거쳤다. 특히 의재 허백련, 오지호, 시인 김현승, 무용가 옥파일 등 유명 예술인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예술제의 위상을 높였다. 교육자로는 강숙자·정애련·박계·조수현·길애령·김진숙·김혜경·서영화·박행숙씨 등이 대표적이다. 무용 부문에서는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호남예술제를 통해 꿈을 키웠다. 초·중·고 시절 5차례 최고상을 수상했던 김 교수는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입상한 한성우 등 수십 명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또 무용계 출신으로는 뉴욕 ‘덤보댄스페스티벌’을 열고 있는 현대 무용가 김영순과 서차영·김화례·김화숙·김미숙·임지형·박준희·정희자·박선욱 등이 눈에 띈다. 그밖에 화가 강영균·최영훈, 시인 고재종·양성우 등도 호남예술제 출신이다. 문의 062-220-0541.
-
고려인문화관, '한 야꼬브' 작곡가 특별전고려인 민족음악을 집대성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재즈음악을 개척한 '한 야꼬브(1943-2021) 작곡가 특별전' 개막식이 지난 2일 '역사마을1번지' 광주고려인마을 내 월곡고려인문화관 ‘결'(관장 김병학)에서 개최되었다. 토요일 오후 2시 화창한 봄날, 작년에 코로나로 타계한 고려인 예술가 '한 야꼬브(1943-2021) 작곡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월곡고려인문화관 앞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개최되었다. 이 특별전은 3월 3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펼쳐진다. 이날 행사에는 김삼호 광산구청장을 비롯한 신조야 광주고려인 마을 대표,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월곡동 지역주민들과 고려인 주민들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한 야꼬브의 작품 특별전에 참석하지 못한 한 야꼬브의 아내(한 올가)와 맏아들(한 이고리 야코비치)은 육성 축하 메시지를 통해 "아버지가 평생 그리워 하시던 조국에서 한 야꼬브의 작품 특별전 기획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김삼호 광산구청장은 인사말을 통해 "카자흐스탄 국영TV가 방송을 한다고 하니 고려인마을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가운데 광산구 월곡동에 있어서 자랑스럽고, 나라를 잃은 민족에게 서글픈 삶의 고난을 넘어가려는 중심에 '아리랑'이 있으며 , 그 아리랑에는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한국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며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실현시키고 구전가요를 수집하고, 고려인의 불굴의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예술가 한 야꼬브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준비한 이번 한 야꼬브 특별전을 통해 고려인은 피를 나눈 민족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조야 (사)고려인마을 대표는 "자랑스런 고려인, 천재 음악가 한 야꼬브 작곡가 특별전'이 광주에서 열리게 되어 감사하다. 우리 고려인의 자랑이다. 고려인마을은 월곡고려인문화관을 비롯하여 마을극단, 아리랑가무단, 어린이합창단, 청소년가족오케스트라단, 아리랑극장, 그리고 고려방송(93.5Mhz) 등 다양한 예술관련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광주시 관계자에 감사드린다. 광주에는 2000년부터 고려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현재 7000명이 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려인 난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한국은 인구 밀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싶은 고려인 동포들을 가족으로 따뜻하게 받아주기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병학 관장이 한 야꼬브 작곡가의 이력 소개하고 이어서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축가로 아리랑연합회 이혜솔 명창이 준비한 아리랑,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담은 아리랑메들리를 선사했다. 이어서 축하공연으로 한 야꼬브 창작가요 및 고려인 구전가요 등을 클래식 앙상블 '아마릴리스 칸타빌레'와 하모니테라피, '고려인마을어린이합창단'이 함께했다. 특히 '고려인마을어린이합창단'(단장:김혜숙) 어린이들이 러시아 민요 '춘가찬가', 홀로아리랑, 아리랑을 열창하여 관객들과 고려인 가족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이날 공연에는 바이올린 김은안, 첼로 김시원, 비올라 박선미, 플릇 김재녀, 성악 소프라노 오은주, 김경림, 피아노 신정현이 함께 했다. 이날 선보인 곡들로는 한 야꼬브 작곡가의 대표적 작품인 고려인들이 널리 사랑하며 부르고 있는 ’고려아리랑‘, 엄동설한을 힘들게 이겨내고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농토를 일구며 불렀던 노동요 ’씨를 활활 뿌려라‘, 고려인 구전동요 ’아이들아 놀자‘와 ’자연의 군악‘, 고국을 떠나 독립운동을 하며 타양살이 설움에 불렀던 ’망향가‘, ’고향의 설움', ‘부모 생각’, '강 건너 천리길‘ 등을 선보였다. 이산의 아픔과 조국을 그리는 '망향가'는 함께 한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한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이 박수와 함께 "브라보!"를 연신 외쳤다. '고려아리랑'을 작곡한 한 야꼬브 선생은 살아 생전에 "고려아리랑은 미래의 노래이다. 한민족의 끝없는 이산의 한을 뛰어넘자는 의도에서 기쁘고 행복한 고려인의 미래를 그리며 만든 경쾌하고 신나는 아리랑이다"라고 한다. 가장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은 무대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노래이어서 따라서 부르는 관객들이 많았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러시아, 캐나다,독일 등지에 사는 고려인들에게서 많이 불려진다고 한다. ‘고려아리랑’은 2015년 8월15일 카자흐스탄 알마틔시 고리끼 공원에서 열린 고려인 광복절 행사에서 첫 선을 보인데 이어 10월에는 강원도 정선에서 개최된 정선아리랑축제에서 카자흐스탄 민속악단이 참가하여 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해 큰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해 12월, 카자흐스탄을 답방한 강원도 정선의 아리랑공연예술단과 한 야꼬브 작곡가가 지휘하는 카자흐 민속합창단의 합동공연에서도 재차 선을 보였다. 이렇게 고려인들의 공식찬가로 불리기 시작한 ‘고려아리랑’은 2016년 카자흐스탄 알마틔시 학생회관에서 열린 ‘고려인 설날 큰잔치’에서 애국가로 울려퍼졌다. 2017년에는 안산에서 개최된 '고려아리랑축제'에서 국내외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사는 한 야꼬브 선생의 요청으로 김병학 관장이 지었다. 다음은 ‘고려아리랑’ 노랫말 전문이다. 원동땅 불술기에 실려서 카작스탄 중아시아 러시아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도 우리는 한가족 고려사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려아리랑(후렴) 진펄도 갈밭도 소금밭도 땀흘려 일구니 푸른 옥토 모진 고난 이기고 일어서니 우리는 한민족 고려사람 아버님 남기신 선조의 얼 어머님 물려준 조상의 말 가꾸고 다듬고 지키리라 우리는 한겨레 고려사람 한 야꼬브 작곡가는 고려인 2세로 뛰어난 트럼본 연주자이자 재즈 음악을 사랑한 탁월한 작곡가이며 당대 카자흐스탄 최고의 지휘자로서 오랫동안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및 알마티 시립재즈악단 주임 지휘자로 활약했다. 한 야꼬브 작곡가는 지난 2021년 코로나로 인해 사망했다. 그는 마지막 작품 ’영원하라 고려극장‘을 끝으로 생을 마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 김병학 관장은 '백조의 노래'라는 위상을 부여하였다. 이날 초연되어 지인들과 고려인들의 마음이 더욱 울컥했다. 특히 그는 2004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녹음기를 들고 옛소련 전역을 누비며 그때까지 전승되던 고려인 구전가요를 모두 수집하여 집대성함으로써 자칫 사라질 뻔했던 고려인 구전가요를 온전히 보존하고 지켜냈다. 1960년대 말에는 당시 소련 정부 차원에서 금기시하던 재즈 음악을 중앙 아시아에 처음으로 도입해 대중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한 야꼬브 작곡가의 위촉을 받고 '고려아리랑' 작사를 하며. 함께 고려인 구전 가요 및 동요 등을 수집했던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고려인들의 노래를 한 야꼬브 작곡가 특별전을 통해 선보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라면서 "앞으로도 우리 조상들의 구전으로 남아 있고 고려인 학교에서 교직에 계셨던 분들이 작곡했던 곡들도 자주 선보이며 우리 고려인 조상들의 삶과 애환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 후손들이 더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는 "수년전 안산에서 '고려아리랑'을 초연한 한 야꼬브 선생을 2020년 초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하늘도 무심하게 코로나로 애석하게 먼길을 떠나셨다. 고려인이 향유하는 구전가요를 집대성한 천재 음악가 한선생의 업적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의병의 후예' 고려인의 애국심과 의지가 담긴 예술성 높은 '고려아리랑'이 널리 널리 불려지기를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특별전은 월곡 고려인문화관 ’결‘ 2층에서 전시된다. 한 야꼬브 작곡가의 음악 인생을 조명하는 육필 악보, 증명서, 사진, 신문, 서적 등 30여 점의 자료를 전시한다. 특별전은 올해 12월까지 이어지며(월요일 휴관), 오전 10시, 오후 2시 방문객은 전문해설사의 자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단체관람객은 월곡2동 마을해설사들의 안내를 받아 고려인마을과 문화관을 탐방할 수 있다. 김병학 관장과 김경림 해설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김삼호 광산구청장을 비롯한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장, 장원창 전 사할린한국교육원장, 한희원 미술관장, 성심온 전남대명예교수, 김양숙 광산구복지정책과장, 채와라 다문화팀장,박경훈 이북5도위원회광주사무소장, 달빛마을문화탐방 최창인 대표, 정진산 마을해설사 대표, 임용기 홍범도공원조성추진위원회 홍보국장,정미정 월곡2동지사협회장, 마을해설사 이순옥, 송주영·노윤정·이미자·최경화, 그리고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와 김블라디미르 전 우즈벡타쉬켄트대학 러시아문학부 교수, (사)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총장,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과 김화숙 부회장, 고려인마을 주민 등이 참석했다.특별전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월곡고려인문화관(062-955-1925)으로 문의하면 된다.
-
사할린한국교육원, 사할린한글교실 교재 증정김포 통진읍 사할린한글교실 개설 24일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이 올해 경기도 김포 통진읍에 영주귀국한 전영희(사할린한국교육원,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교사) 교사를 찾아가서 사할린한국교육원 한국어 배우기 기초 교재를 20권 증정했다.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으로 김포 통진읍에 영주귀국한 3세 4세 사할린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사할린한글교실이 신설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한 교재를 구하지 못한 전영희 교사가 사할린한글교육원에 요청을 해서 받게 된 것이다. 러시아 비자 연장을 위해 입국한 이병일 원장은 "한국에서는 러시아 동포들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교재를 구하기 쉽지가 않아서, 전영희 선생님이 부탁을 해서 급한대로 들고 나왔지만, 올해부터 영주귀국하는 동포들의 눈높이에 제작된 한국어 교육 교재 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 가르치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익숙한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한글교육이 시작되어야 한국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새로이 신설되는 김포 사할린한글교실은 15년 전 통집읍에 영주 귀국한 최정순(73세, 전 사할린주 여성단체협회장) 사할린동포회 회장의 발의에 의해 개설이 되었다. "이번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에 의해 지난 1월에 1세, 2세 부모를 모시기 위해 3세 4세들이 함께 들어왔다. 그런데 낯설은 한국에서 한국어를 한 줄도 알지 못하고 말을 못해서 슈퍼마켓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러시아 방송만 청취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적십자나 지자체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한국어를 알아야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해서 일을 해야한다. 대학 이상 공부를 한 사람들이 놀고 먹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대학원 진학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며. "새로 취득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한글학교를 개설했다. 다행히 교육 장소도 구했다. 4월 초 사할린한글학교는 개강할 예정이다." 최정순 회장이 시작하는 한글학교 소식을 들은 KBS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제작팀에서 개강을 축하하고, 지난해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을 모은 출판물과 한글학습 교재를 보내 준다는 전언을 보냈다. 이날 사할린한글교실 개설 소식을 듣고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과 회원들이 참석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의 30년 한글교육 활동 전영희 선생은 사할린한국교육협회(회장:임태식)의 30년간 한글교육 활동에 대한 어려움과 열정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퇴직후 사할린한국교육원과 사할린한국교육협회에서 10년간 봉사활동을 해오다가 한국에 영주귀국 했다. 오자마자 최정순 회장의 권유로 사할린한글교실을 준비하게 되어서 기쁜 마음 감출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정기 후원을 하고 있는 이혜솔 회장은 "최정순 회장이 증언하는 사할린 한인의 역사와 증언을 들을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우리도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후원자 모집에 앞장 서겠다"라고 전했다. 함께 자리 한 김화숙, 한정숙, 김정숙은 그 자리에서 정기후원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현재 사할린아리랑축제 이후부터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30여 개 지역 아리랑보존회에서 매월 정기후원을 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전영희 선생이 고마움을 표명했다. "오늘 우리는 사할린 동포들이 2차 영주귀국 소식을 듣고 왔다. 사할린 동포가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할린 이라는 곳이 어딘줄도 몰랐다.(김화숙) 우리 동포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해 80년이 넘도록 마음대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김정숙) 다큐에서 알게 된 사할린 한인의 역사보다도 오늘 이 자리에서 직접 들은 생생한 증언을 들으니 이해가 되고 나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사할린 동포들이 그렇게 타국에서 고생을 하고 살았는지 몰랐다. 매년 아리랑축제 무대에서 불렀던 '사할린아리랑' 가사 한줄 한줄의 의미가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한정숙)"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울먹였다. 이어서 이혜솔 회장의 선창으로 '사할린아리랑'을 모두 함께 따라서 불렀다. 최정순 회장이 조선인 강제동원을 은폐하고 유네스코 등재를 서두르는 사도광산을 반대하는 시위 릴레이를 해야한다는 발의를 하자, 모두 달력을 찢어서 티켓을 만들어서 들고 외쳤다. '사도광산 NO',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들은 다음달 개설하는 사할린한글교실 첫 수업에 와서 아리랑과 전통민요를 불러주기로 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최회장의 배웅을 받으면서 통진읍을 떠났다. 전국 25개 지역에 사할린 동포들이 영주귀국해서 정주하고 있다. 이번에 352명이 영주귀국해서 부모님과 같이 새터를 만들고 있다. 우선 지난 1월과 2월 인천, 김포 지역을 찾아가 보니 가장 시급한 것이 사할린 3세, 4세 대상으로 한 한국어와 한글 교육이라고 한다. 우선 저학년이 읽는 동화책이라도 보내달라고 하는 부탁에 대답을 하고 나오면서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들에 대한 정착 메뉴얼과 교육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사할린주한인협회에 따르면 3만여 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살고 있다. 동포 1세는 500여 명, 2세는 5천여 명, 부모가 생존한 2세는 1천500여 명으로 추산된다.
-
KBS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50년 공개방송 ‘행복한 동행’KBS한민족방송은 21일 저녁 6시 KBS아트홀에서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50년 기념 특별방송 ‘행복한 동행’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러시아 사할린·중국 만주3성, 일본 등의 동포를 청취자로 하는 KBS라디오 한민족 방송(사회공헌방송부 박천기 부장)의 간판 프로그램인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가 개시 50주년을 맞아서 유명 가수와 초청 인사들과 함께 하였다. 참석자 중에는 KBS한민족방송 체험수기 공모전 역대 수상자 등이 참석하여 뜻을 더했다.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진행자인 이소연과 작곡가이자 가수인 이호섭이 사회를 본 이날 공개방송에는 사할린 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을 비롯해 사할린동포들의 귀환운동을 펼친 박노학 씨 아들인 박창규 씨, 前 사할린 유즈노사하린스크 14번 고등학교 백하득 교장, 前 사할린 한국교육원 김주환 원장, 사할린 한국어교육협회 공노원 부회장, 사할린아리랑축제추진단 단장인 ㈜국악신문사 기미양 대표이사를 비롯해 한국으로 영주귀국해서 안산, 인천, 김포, 파주, 남양주 등에 거주하고 있는 사할린 동포들, 그리고 아리랑 명창 이혜솔, 김화숙. 중국동포, 고려인, 청취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동포들과 인연이 깊은 가수 설운도, 김국환, 나태주, 설하윤, 소리꾼 박애리, 남상일 등이 출연해 50주년 축하 무대를 꾸몄다. 사할린에서 위문공연을 펼치기도 한 작곡가이자 가수 이호섭이 ‘사할린’을 부를 때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는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징용됐다가 일본 패망 후 귀국길이 막히고 억류되어 남아있던 동포들이 가족 찾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해서 1972년 4월 3일 생긴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사할린 동포에게’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당시 이 방송은 수많은 사할린 한인들이 고국의 가족과 생사여부를 전하는 동아줄 역할을 하였다. 중국 동포 보낸 26만 여 통 편지 DB로 구축 이후 1974년부터 중국 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과 연해주로도 청취 권역을 확대해 중국 동포들의 가족 찾기 사연도 소개했다. 특히 중국 동북 3성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들이 편지를 보내와서 가족 재회 1만 4000여 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1992년까지 중국동포들이 보낸 편지만 해도 26만 여 통에 이르며. KBS 한민족방송은 이 편지를 DB로 구축했다. 박천기 KBS 한민족방송 부장은 "한중 수교가 되던 1992년까지 중국동포들이 보내온 편지가 26만여 통에 이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가족을 찾아준 사례가 1만 4천여 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방송에는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추진 운동의 대부로 꼽히는 고 박노학 씨의 아들 박창규 씨도 참석했다. 박 씨는 "아버님이 KBS에 제안해서 만들어진 방송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니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당시 사할린동포들은 한국으로 직접 편지를 보낼 수가 없어서 일본을 거쳐서 편지를 보냈는데 KBS 한민족방송을 듣기 위해 몰래 숨어서 방송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수진 前 사할린이산가족협회 회장은 "사할린 사람들은 수십 년간 방송을 들으며 고국 땅을 밟게 되기를 학수고대했다. 이렇게 와서 공개방송을 듣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KBS 한민족방송은 사할린 동포들이 잃어버린 수많은 가족을 찾아줬고, 또 책과 달력을 보내주고 노래자랑대회과 위문공연도 실시했다”며 "KBS 한민족방송은 사할린 동포들을 잊지 않고 늘 함께 해왔다. 50주년을 축하한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영상 편지를 남기는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축사를 전했다. 대한고려인협회 노알렉산드라 회장은 "50년 동안 동포들과 함께 해 오면서 한민족동포들을 연결시켜 주고 있는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가 앞으로도 한민족 문화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애청자인 재한동포문인협회 김경애 회장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이 방송을 들었는데 중국동포들 중에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를 통해 가족을 찾은 사람들도 많고, KBS 덕분에 한국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동포들이 많다. 또 KBS 한민족방송이 중국동포들이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고려인협회 채예진 부회장은 "50년 동안 동포들과 함께 해 오면서 한민족동포들을 연결시켜 주고 있는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민족 문화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가족 찾기에서 시작된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는 통일부와 협력해 올해부터 남북이산가족 찾기를 다시 시작해 동포들의 가족 찾기를 이어가고 있다. 첫번째 무대에서는 전 사할린국립대학 박승의 교수와 사할린 전 새고려신문 안춘대 사장이 사할린 동포들의 ‘디아스포라’와 ‘이중징용’에 대한 아픔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고, 2년에 걸쳐 KBS한민족방송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사할린 동포들이 3대에 걸친 가족사 이야기로 대상을 수상한 감동을 전했다. 초대가수의 노래에 눈물 이어서 수차례 사할린 공연에 다녀온 가수 설운도가 첫 막을 올렸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다룬 '잃어버린 30년'을 부른 가수 설운도는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노래로 위안을 줄 수 있어서 그 어떤 무대보다 뜻깊었다"고 말했다. 사할린을 작곡한 이호섭이 부른 '사할린'은 또 한 세대를 넘어가는 '이산의 이산'이 남긴 아픔이 고스란히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졌다. 두번째 무대에서는 방송 덕분에 가족을 찾았던 이승희·박동찬 중국동포이 무대에 올라 "가족을 찾았다는 소식에 동네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기뻐했고, 방송에서 한국 가족의 편지를 들을 때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만나는 날을 고대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편지들을 분석한 동덕여자대학교 문형진 교수는 "이 편지에는 동포들이 한반도에서 연해주 지역으로 어떻게 이주를 했는지 동포들의 이주사를 엿볼 수 있고. 생활상과 문화도 알 수 있어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나태주가 '힘내라 대한민국'을 부르면서 태권도 발차기를 하면서 공중회전을 하자 객석에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으며, 설하윤은 K-뮤직의 아우라와 댄서들의 특급 퍼포먼스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세번째 무대에서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네번째 무대에서는 1세 부모가 가고 2세와 3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다시 시작된 이산가족찾기'에 대한 문의가 오고간다고 전했다. 이어서 판소리 명창 남상일과 박애리사 ‘춘향가‘로 신명을 높였다. 휘날레에는 관객과 함께 뜨거운 가슴을 담아 아리랑으로 대합창을 했다. 이날 공개방송을 연출한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프로그램 김경희 피디는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가 한민족 동포들과 50년을 함께 해 왔듯이 앞으로도 언제나 동포들과 함께 하면서 동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고 말했다. 최연소 방청객으로 온 사할린 4세 신아리나(9세)와 신마이아(14세)는 "한편의 다큐를 보는 것 같다. 사할린 동포와 중국 동포들이 가족찾기 편지를 보내고, 왜 이제야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이날 공개방송을 연출한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김경희 피디는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가 한민족 동포들과 50년을 함께 해 왔듯이 앞으로도 언제나 동포들과 함께 하면서 동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고 말했다. 공개방송이 끝나고, 2020년 KBS한민족상(체험수기)을 수상한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공노원 부회장은 "오늘 50주년 공개방송은 그야말로 사할린의 날이다. 우리 가족 3대가 함께 왔다. 며느리와 손녀들이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 뜻 깊었다.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딸과 사할린에서 친구들이 이 방송을 언제 볼 수 있냐고 전화가 왔다. 국내 영주 귀국한 김포, 양주 친구들이 며칠 전 갑자기 코로나로 못 와서 너무 아쉬웠다. 50주년을 축하하고 최장수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50주년 특집 공개방송 ‘행복한 동행’은 오는 4월 2~3일 오전 7시~8시 KBS 한민족방송(AM 972Khz)에서 방송된다. KBS 한민족방송 유튜브 채널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행사장을 나오는 한 참석자의 말이 귀에 감돈다. "나 60년 행사 때 초청하면 꼭 올랍니다.” 속으로 답해 드렸다. "예 그러셔야죠. 저도 오겠습니다.”
-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특별공연'
-
[포토뉴스] 2021 은빛축제 국악경연대회 대상에 이혜솔 명창 수상
-
‘황실예술단’, 함양국제시니어페스티벌 참가함양군이 주최하는 ‘함양2021 국제시니어아트페스티벌’에 이혜솔 단장이 이끄는 ‘황실예술단’이 화려한 무대를 꾸며 주목을 받았다. 세계 시니어들의 다채로운 문화활동을 통해 활력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 힐링 프로그램이다. 산삼항노화엑스포 행사의 일환으로 국제문화공연교류회(회장 양평수)와 공동 개최한 이 행사는 지난 10월 2일 엑스포 메인무대에서 개최되었다. 일본 중국 몽골 우주베키스탄에서 시니어 예술인들이 참가했다. 12개 국내 출연 팀 중에 황실예술단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엑스포는 지역축제가 아닌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은 국제행사로 산삼과 항노화 산업의 새로운 융복합 모델을 제시하며 세계적으로 함양 산양삼의 가치를 알리고 국내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규모 행사로 준비해왔다. 이 행사에 참가한 황실예술단은 단장 이혜솔, 회원 김남렬 김정훈 김화숙 김수영 피옥조 한정숙 문강자 이강수 이영호 장완순 김다루 김아로 김문표 총14인이다. 출연은 본 무대에서 ‘왕십리아리랑’을 선보였다. 이 단체가 빛을 발 한 것은 오후 2시경에 개최된 거리퍼레이드이다. 퍼레이드 첫 행려에 궁중예복과 일산을 받쳐 들고 화려한 황실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혜솔 단장은 "새벽에 출발한데다가 공연과 거리퍼레이드 시간이 부정확하여 점시식사도 못하는 등 힘들었다. 그러나 함양에 오신 전국 관광객들과 세계인들에게 ‘왕십리아리랑을 선보인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
정선아라리를 품고 사는 김길자 명인을 찾아서
-
호국의 달, 독도에서 독도아리랑 버스킹 공연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과 회원들이 호국의 달 6월을 맞아서 독도에서 2박 3일간 작은 독도아리랑 버스킹(busking) 공연을 준비했다. 13일 독도에서 독도아리랑을 열창했다. 작년 5월에 전세계를 멈추게 한 코로나를 아리랑으로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새로 만든 창작아리랑 ‘아리랑코로나’를 ‘독도에서 제주까지’ 알리기 위해 독도를 방문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서 입도를 하지 못하고 돌아와서 일 년동안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가 올해는 회원들이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나서 울릉도행 뱃길에 올랐다. 아리랑코로나 작사.작창:이혜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코로나 택시는 탈만큼 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섭어 도망간다 코로나 마마님은 언제 가시려나 구경일랑 그만하고 가시게나 바다 건너 님 보고싶지만 가고 싶어도 갈수없네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수로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지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네 이혜솔 이사장은 "왜 우리는 한번 가기도 힘들다는 독도에까지 와서 아리랑을 불렀는가? 작년에 왔다가 풍랑이 심해서 독도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입도를 하지 못했다 "라고 하면서 "한반도 바다 끝에서 영해와 영공을 지키는 독도에 들어서자, 우리가 독도에서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다. 우리 조상이 반만년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잠시 35년간 외세에 의해 억압을 받았던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가슴에 담고 왔다. 외세는 우리말과 우리글도 쓰지 못하게 했다. 우리 민족이 억업과 고난을 당했을 때 이 아리랑을 불렀다는 것이 뜨겁게 전해져 온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호국 영령들께 감사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함께 한 회원들 모두 ‘아리랑코로나’를 부르며 울컥했다. 독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은 후렴을 따라서 불러주었다. 이회장은 "코로나로 혼란스러운 시간들이 밝은 태양 아래 모두 걷히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코로나 고개를 아리랑으로 넘어가자는 의미를 부쳐서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라는 울림을 관객들의 눈과 마주보며 공유했다."라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버스킹 공연은 불과 2-3미터 앞에서 바로 관객들과 호흡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혜솔 회장은 버스킹 공연에서 무반주에 관객을 끌어당기는 통성으로 독도아리랑을 불렀다. 작년에 독도를 오르지 못하고 돌아가는 뱃길에서 즉흥으로 만든 독도아리랑이다. 독도아리랑 작사.작창:이혜솔 동해바다 독도야 강치야 지난 밤 잘 잤느냐 독도는 우리가 사는 땅 동해바다 대한민국 땅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중략) 함께 한 오오모 회장은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독도에 오르니 우리는 모두 애국자가 된다. 더욱 감동스런 아리랑이 나온다."라고 감동을 전했다. 김화숙 부회장은 "오늘 공연은 잊지 못하는 공연이 될 것이다. 독도는 하늘이 허락을 해야 입도할 수 있다는데”라며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예년과 다르게 독도를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큰 박수를 보냈다. 호응에 밀려서 울릉도 선착상에서도 즉흥 버스킹 공연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온 관광객은 "독도를 바라보니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지르면서 반가워했다. 독도에서 아리랑을 부르니 애국가를 부른 것 같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이혜솔 회장의 손을 잡아주었다. 함께 한 회원들은 아리랑 전승단체로써 책임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올해 왕십리아리랑보존회는 제12회 왕십리아리랑제를 6월 1일 준비를 했으나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일정이 10월로 연기가 되었다. 회원들과 몇달동안 연습을 한 기량을 독도에서 펼치고 왔다고 전했다. 이회장은 다양한 아리랑 프로그램을 보여주기 위해 오래전부터 회원들에게 춤사위도 배워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회장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여는 버스킹 공연의 즉흥 무대가 더 자신이 있어 보인다. 호국의 달. 아리랑 버스킹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회원들이 "오늘 독도에서 아리랑 공연의 감상이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져서 다음 무대에서 제대로 아리랑을 부르겠다"라고는 전했다. 한편 회원들은 독도 특설무대에서 독도아리랑 공연 일정을 잡아준 봉찬문화원 수산 김호주 스님에게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27일 봉찬문화원에서 작은 아리랑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후 이회장은 작년 1월에 초청을 받은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아리랑학교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동포사회에서 아리랑 실기 수업과 전통 춤사위 기본무 교육을 위촉받았다.
-
아리랑 전승활성화 활로 모색, 아리랑학교 수료식지난 6월 6일,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가 주최하고 아리랑학교가 주관하는 제3기 아리랑학교 수료식이 있었다. 중구 을지로 ‘국악신문’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이날 세미나는 4시간에 걸처 주최 측의 인사와 참석 전승 단체의 현황 등을 소개하고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진지한 주제 토론이 이어졌다.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의 <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가치> 발제 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상의 전형성>, <아리랑 전승 활성화 활로 모색>에 대해 자유토론이 진행되었다. 기미양 이사의 발제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과 ‘국가무형문화제 129호 아리랑’이라는 두 가지 위상과 그에 따른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2012년 등재 심의 과정에서 도출된 아리랑의 가치, 2015년 지정에 따른 해설문의 특징 등에 대해 세세하게 짚었다. 특히 중국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아리랑’의 국가급과 지방급 2중 지정의 의미와 우리의 ‘60여종’, 북한의 ‘41종’이란 표기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더불어 논의 된 내용을 주변에 확산시켜 아리랑의 이해를 높여야 하는 책무가 참석자들에게 주어진다고 강조했다. 기미양 이사는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상의 전형성(典型性)’에 대한 논의에서는 구 법제의 ‘원형성(原型性)’의 대체 이론임으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함을 공유했다. 일반적으로 전형성이란 같은 부류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본보기 정도의 의미로 새로운 법 제2조 1항에서 "전형성이란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하였고, 제2항에서는 "전형성은 무형문화재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하는데 구현되고 유지되어야 하는 고유한 가치, 기법 또는 지식을 말한다"라고 설명하였다. 참가자들이 관심을 모은 주제는 <아리랑 전승 활성화 활로 모색>이었다. 국가무형문화제 129호 아리랑 지정 당시 이의 동력을 받아 획기적인 전승활성이 이뤄지리라 기대했지만, 6년이 지난 오늘의 실상은 심각할 정도라고 진단했다. 그 원인의 하나는 제도권의 무관심으로 전승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청소년 회원의 이탈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3대아리랑’이란 말을 쓰며 아리랑을 서열화하는 일부 관요화(官謠化) 한 지자체 기관과 단체의 활동과 이에 동조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유산 아리랑에 대한 몰이해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은하 회장은 오랫동안 가지고 오는 소회를 피력하여 공감을 얻었다. "아리랑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2015년 이전에 지정된 종목의 보유자들은 많은 혜택이 있다. 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전승의지를 꺾는 요인의 하나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3대아리랑’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니 박탈감이 참 크다.” 이에 동의하는 참가자들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규탄 성명 채택을 결의 하기도 했다. 더불어 지방문화재 지정에 대해 소외되고 있는 실정을 토로하고 이에 대해 소극적인 문화재청에도 대책을 호소하기로 합의했다. 문화재청은 2015년 보유자 없이 ‘129호 아리랑’을 지정하며 이 같은 단서를 표하였다. "다만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정체성을 지닌 아리랑을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전승에 힘쓰는 개인이나 단체를 보유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어느 시·도에서도 지방문화재 아리랑을 지정하지 않은 실정이라고 성토하였다. 이 날 세미나 토론 참석과 수료식에서 증서를 교부 받은 이들은 다음과 같다. 남은혜(공주아리랑보존회)회장, 전은석(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회장, 배경숙(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회장, 최승녀(가평아리랑보존회)회장, 강소빈(제주아리랑연구회)회장, 임옥자(성주아리랑보존회)회장. 이혜솔(왕십리아리랑보존회)회장. 김화숙(왕십리아리랑보존회) 부회장, 유재희(서귀포아리랑보존회) 회장, 장경숙(제주아리랑연구회)회장. 주최 측인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정은하 회장은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무형문화재 129호로 우리와 세계가 항유하는 문화유산이다. 이를 가치화 하여 보편문화로 세계화하기 위해 아리랑의 가치와 전형성과 전승활로를 모색하는 제3기 아리랑학교의 과정을 마쳤기에 이 증서를 드린다."고 명기된 수료증을 수여했다. 한편 아리랑학교 제1기는 2017년 문경문화원 주최로 2년간 이루어졌고, 제2기는 2018년부터 아리랑학회 주최로 사할린 현지와 국내 영구 귀국한 사할린 동포 대상으로 개최되었고, 이번 제3기는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주최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대구와 울릉도 등지에서 개최하고 이번 수료식을 갖게 된 것이다. 주최 측은 이번 세미나 교재 '아리랑의 가치/ 전형성/ 전승활로 모색'을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한다고 밝혔다.
-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대표국악신문은 새로운 코너로 ‘이메일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 코너를 통해 더 원활하게 국악인들의 의미있는 활동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첫 인터뷰 인물은 이혜솔 국악인이다. 사할린 동포들로 구성된 사할린아리랑합창단(단장:최나타샤)에게 사할린아리랑을 가르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에서 '은상'을 수상하게 한 국악인이면서 아리랑 전승자이다. 이후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들도 이회장의 활발한 전승활동에 주목하게 된다. 코로나로 세계가 멈추었을 때 지난 3월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서 '독도에서 제주까지' 전국 아리랑전승단체를 찾아가서 아리랑코로나를 알리고 현지 답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에서 처음으로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1952년생) 대표를 객원기자 기미양 선생이 인터뷰했다.(편집자 주) Q. 올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단체와 공연자들이 무대에 서지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를 잘 마치셨습니다. 처음 만나는 무관중 언택트 공연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A.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수하는 가운데 지난 10월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금년의 국악계는 어느 분야보다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모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습니다. 공연의 제1조건이 관객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관객 없이 해야 하는 공연을 위해 극히 제한된 출연자와 스탭과 관객으로 치룰 수 밖에 없는 실정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무대에 20명만 올라와야 하는 조건에서 극장밖에 있다가 다른 공연팀과 계속 교체를 해야했습니다. 어려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모든 회원들이 일사분란하게 협조를 해주어서 잘 마치었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끝나서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날을 기원해 봅니다. Q. 매년 정례화 되고 있는 아리랑축제를 올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와 함께 무사히 치루었는데, 올해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 행사 주제는 무엇입니까? A. 전 세계가 멈춰어져 있는 이 어려운 "코로나19 고개를 넘어가보자”라는 의미에서 어서어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준비를 했습니다. 코로나라는 힘든 고개를 아리랑 고개 넘어가자라는 의지를 가지고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서 보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온 국민과 힘을 합쳐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라는 의지를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 공연에 담아보았습니다. Q. 이번 행사에서는 전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인류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코로나 19사태를 넘고 가야 할 '고개'로 인식하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고 주제를 정하셨네요. 회원들 반응은 어떠했는지요? 난생 처음 실시된 무관중 공연에서 어려운 점이 었었지만, 이런 새로운 형식의 실험적 무대에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요? A. 우리는 코로나를 넘고 가야 할 '고개'로 인식하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고 주제는 바로 통했습니다. 올해부터 모든 공연은 코로나 전후로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그동안 모든 공연은 절대적 관객 대상 공연이었지만 이번에는 관객이 아닌 우리 출연자 스스로를 향한 공연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나섰습니다. 처음으로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Q. 전체 프로그램은 2부로 나누어져서, 제1부는 대동의 노래, 제2부는 상생의 노래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어떠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나요? A. 전국 지역에서는 아리랑의 힘으로 대동단결하여 코로나를 막아내고 우리 모두가 다시 안정되어 함께 잘 살아보자는 상생의 노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지역은 '왕십리에서 제주까지' 불리는 지역 아리랑으로 구성했습니다. 왕십리아리랑을 시작으로 서울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상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제주아리랑 등이 불려졌습니다. 서울에서 활동을 하지만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사람은 아라리를 부르고. 경상도 사람은 밀양아리랑, 제주에서 올라온 이는 제주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제주아리랑은 유재희(서귀포아리랑보존회장) 명창이 불렀습니다. Q. 코로나로 처음으로 개최된 무관중 공연이었지만 제10회를 맞이하는 소감은? A.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이다." 이 두 유산의 해설문에는 아리랑의 수를 ‘50여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 우리 경기 아리랑 선율인 왕십리아리랑도 포함된다고 믿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왕십리아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리극 ‘김소월이 사랑한 왕십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는 준비 중에 있습니다. Q. 왕십리아리랑은 이혜솔 회장이 작사하고, 통일앙상블 대표 윤은화가 작곡한 새로운 아리랑인데, 어떤 내용이 담긴 사설인지 궁금합니다. 국내외 무대에서 왕십리아리랑 반응은 어떤가요? A. 첫 소절은 처음에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라고 시작합니다. 본조아리랑을 선율로 해서인지 일단 경쾌하고 따라서 부르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할린아리랑제에서는 왕십리아리랑을 작편곡 한 윤은화 작곡가와 통일앙상블 밴드(9명의 연주자)가 함께 가서 연주 반주에 맞추어서 불러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미 음반 작업을 하면서 함께 연습을 한 팀들이 그대로 갔기 때문에,,,,..그래서인지 현지 동포들이 후렴을 따라서 부르고 음악가들이 악보를 달라고 해서 부고 왔습니다. 2019년 봄에 왕십리아리랑제에 관객으로 참가한 사할린동포들에게서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 사랑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 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이 아리랑을 만들게 된 연유는 제가 청년기부터 몸담고 살았던 서울 동부의 중심지인 왕십리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알고 부를 수 있는 아리랑 가락에 성동구 지역 역사를 담아 보았습니다. 아리랑의 대동정신으로 지역공동체 결속에 이바지 하려고 합니다. 이 아리랑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미국 순회공연. 일본, 사할린 공연에서 동포들에게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본조아리랑의 위상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포들을 만나면서 아리랑은 결속력을 속성으로 하는 노래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러시아 사할린과 하바롭스크 동포들이 와달라고 했는데 올해 못갔죠. 코로나로......코로나만 종식되면 바로 갈려고, 트렁크 짐은 싸놓은 채 그대로입니다. 작년 2월 초 가려고 비행기표 예약을 했다가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Q. 지난 해 2월초 러시아 사할린과 하바로 바로 가려고 준비를 했다가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각해지자 아리랑코로나를 지어서 코로나를 막아내자고 우리들에게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카다로그 앞에 나와있는 이 가사가 아리랑코로나인가요? 어떤 계기로 해서 만든 아리랑인가요? A. 지난 5월에 새로 만든 ‘아리랑코로나’가 무대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세는 한풀 꺾였지만,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 감염이 이어지면서 신규 확진자가 늘어면서 전국 축제와 예술활동이 거의 중단된 현실에서 이번 무대에서 회원들과 함께 불렀습니다. Q. '아리랑코로나'는 어떤 의미를 담아내려고 했나요? A. 일제강점기 1930년대 종두선전가라는 종두아리랑. 마마아리랑이라는 방역아리랑이 불려졌습니다. 아리랑으로 천연두 전염병을 이겨보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리랑의 힘으로 전세계를 멈추게 하는 이 무서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아보자는 뜻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입니다. 90년만에 나온 방역아리랑, 특별한 아리랑이지요. 이회장은 주먹을 높이 쳐들면서 이번 코로나19를 막아내자는 방역아리랑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부터 독도 울릉도에서부터 제주까지 찾아가는 작은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추운 나라 러시아 동포들에게 녹음을 해서 전해주고 국내 이주하고 있는 동포들과 공유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고려인 청소년과 하바롭스크 사할린 동포들에게 음원과 동영상을 전해주고 있다. 아리랑코로나 노래가 알려지자 (재)아리랑선풍재단 아리랑체조단도 이 음원을 보내주면 집단체조를 해보이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아리랑코로나 작사.작창:이혜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코로나 택시는 탈만큼 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섭어 도망간다 코로나 마마님은 언제 가시려나 구경일랑 그만하고 가시게나 바다 건너 님 보고싶지만 가고 싶어도 갈수없네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수로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지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네 Q. 2년동안 아주 특별한 아리랑 전승활동을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부모님 고향은 어디인이신가요? 부모님 중 누가 소리를 잘하신 분이 계셨나요? 소리를 하시면서 영향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A. 아버님 고향은 청주이시고, 어머니는 경기도 평택이시지만 어릴때 서울로 이사를 하고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공부보다도 소리를 좋아하셔서 판소리 춘향전은 다 외우셔서 사랑방에 손님들 모이면 걸죽하게 뽑아 내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평생 풍류객이라는 소리를 듣고 서울을 오가며 사셨습니다. 우리 형제들 모두 아버지 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모두 다 소리를 잘합니다. 저의 목소리는 아버지를 쏙 닮아서 통성입니다. 나의 인생의 반은 어머니 것입니다. 풍류를 찾아서 서울을 오가는 멋쟁이 아버지는 살림을 나 몰라라 하셨습니다. 갈수록 식구들 입은 늘고 살길이 막막해지지만 청주 사람들이면 다 아는 양반집 친정에서 곱게 자란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친정에서 곡식을 얻어서 우리 식구들 먹이다가.....나중에는 나어린 막내에게 젖을 물리다가 몇번이나 달리는 트럭에 뛰어 들었다가 모진 목숨 건지게 되자, 장남만큼은 반드시 공부를 시키겠다고 7남매를 끌고 생면부지 서울로 상경을 하셨습니다. 간신히 아버지를 찾아 용두동에 하꼬방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젖먹이를 업고 어머니는 묵을 쑤어서 머리에 이고 행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큰언니가 촛불을 키고 바느질을 하다가 집에 불이 나서 이불이고 신발이고 몽땅 다 타버렸습니다. 다시 빈털털이가 되어 창신동으로 이사를 가서 임시 천막을 치고 맨 땅에서 추우나 더우나 어렵게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사를 마치면 이고 나간 함지박에 매일 벽돌을 한 두개씩 사서 이고 들어오셨습니다. 매일 천막안에 사방에 벽돌이 하나씩 하나씩 쌓아서 벽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방을 두를만큼 벽돌이 모아져서 그 자리에 판자집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묵장사로 목돈을 모우신 어머니는 동대문 시장에 나가서 비단을 받아서 이고 지고 나가서 비단 보따리 장사로 우리 7남매 자식들을 힘들게 키우셨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땀으로 우리 형제는 하루 하루 커가는데, 판소리와 경기소리에 미친 아버지는 풍류를 즐기면서 사시느라 어머니는 평생 외롭게 독수공방을 하시면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긴긴 세월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 하시느라 여린 여자의 몸으로 사내 대장부처럼 우리 7남매를 굳건히 키워주셨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세딸 중 막내딸로 태어난 저는 어머니 품속에서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밑으로 남동생이 3명이나 있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을 제가 가장 많이 닦아 드렸습니다. 두 언니들은 바로 사회에 진출을 하고 집에 남아있는 저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기에....어머니는 늘 저에게 "곱게 자라야 시집가서 고운 대접 받는다"고 막내딸만큼은 손에 찬물 안 묻히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의 가이없는 정성을 자식을 낳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철없는 막내딸이지요. 이렇게 우리 7남매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눈물을 먹고 자랐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희생하신 어머니를 매일 바라보며, 우리 7남매는 "중용을 지키고 불손한 일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라고 다짐을 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야만 했습니다. 평생 5시가 되면 일어나서 달이 뜰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졌습니다. 그 덕에 모두 일찌기 자수성가해서 서울에서 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쁜 작은댁을 데리고 사시던 아버지는 칠순을 넘기시고 중풍에 쓰러져서야 집에 돌아와 안주하시게 되었지만..... 몇해 동안 앓다가 결국 조강지처 품에서 돌아가셨습니다.(이때 우리 형제는 불같이 일어나서 반대를 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받아 들이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수족이 되어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의 노래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고생하신 슬픈 어머니의 한을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힘들때나 기쁠때 양평에 있는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를 불러 드리고 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지인들의 어머니만 뵈도 가슴이 떨립니다. 어머니, 어머니 불러도 대답없는 나의 엄니.....그래서 저의 인생의 반은 어머니 것입니다. 국악 입문경위 Q. 풍류를 즐기시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미워하는 아버지의 목을 빼닮아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네요. 유년기에서부터 들어온 사랑방에서 장구 장단에 부르는 노래 소리가 서울에 이사와서도 낯설지는 않았겠죠. 유년기에 무대같은 데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나요? A. 어릴 때부터 고향 청주에서는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소풍을 갈때나 학예발표회 무대에서 늘 일등으로 불려나와서 노래를 불러서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소리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스승을 모시고 소리 공부를 하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서울에 이주하게 되자 저축을 하여 돈이 생겨서 제일 먼저 산 것이 녹음기입니다. 길을 지날 때마다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민요를 들으면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음반을 사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민요 가락을 따라 부르는 저를 보고 피는 못속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10대는 소리 공부에 대한 목마름으로 잠 못이루는 밤을 지세웠습니다. Q. 늦은 나이에 국악에 입문을 하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A. 언젠가는 반드시 소리를 배워야지 하다가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정이 안정되고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자, 비로소 마흔살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꿈에도 그리운 소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수업 중에도 녹음을 해가지고 와서 일하면서 반복해서 혼자 연습을 하면서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당시 단순노동에 불과한 자영업을 하면서 소리는 나에게 많은 위안과 꿈을 주었습니다. 테이프를 틀고 들어보니 이 소리들은 자라면서 아버지가 신명나게 불렀던 노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몸서리치게 그리 좋아하시던 그 노래를 이제는 제가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더욱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가 미워서 아버지가 늘 부르시던 노래(민요)를 녹음을 안해 놓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지금도 비오는 날 눈을 감으면 정가, 민요에서 판소리까지 즐기시던 아버지의 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경기민요를 배우게 되고 무대에 서게 되자 집안(남편)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연습 공간을 따로 얻어서 소리 도반들과 같이 매일 모여서 공부를 하는 바람에 점점 소리에 깊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안의 나 자신이 얼마나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지 심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경기민요 전수자들에게 지도하는 정도의 인정을 받고 내공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스승을 찾아서 경기민요부터 서도민요를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은관 선생에게서 서도민요 이수를 받았지만 배움의 길은 끝이 없나봅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샌줄 모른다고..... Q. 늦게 배운 소리에 불구하고 서도민요 이수자까지 했으니 원은 푸셨네요. 경기민요 서도민요는 어떤 스승에게 배우셨나요? 소리 공부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스승이 계시나요? A.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순자 선생님, 김경배선생님, 이은관 선생님,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묵계월선생님, 전숙희선생님, 김혜란선생님께 사사했습니다. 그 중 이은관 선생님이 무대에 많이 세워주셨습니다. 전숙희 선생님과 김혜란 선생에게 혹독한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이제는 자산이 되어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제자들이 전국경연대회에서 많은 상을 타가지고 옵니다. 늘 스승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Q. 경기민요, 서도소리를 이수하고, 강원도 '아라리'도 배우시고, 최근에는 ‘제주민요’도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되어서 제주의 소리도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A. 오랫동안 같이 공부를 했던 제주도 소리 친구 유재희 선생이 제주민요축제에 초청공연으로 자주 가게 되면서 신비로운 서우제소리에 반했습니다.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수십년간 불렀지만, 제주민요는 또 다른 맛이 납니다. 서우제소리를 들으면 배를 타고 신비로운 섬으로 끌려가는 듯한 선율에 넋이 나가더라구요. 이어도 소리는 여자들만이 산다는 섬으로 떠나간다는 내용입니다. 고난의 속세를 떠나서 유토피아로 떠나가는 거지요. 한번 간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전설의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 이엿말 하면 나 눈물 난다. 이엿말은 말앙은 가라. 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한다." 어느새 둥둥 배를 타고 상상속의 섬으로 떠나가는 환타지가 느껴지면서 온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거기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주민요를 들으면 어머니가 더욱 생각납니다. 오랜만에 아주 특별한 외식을 하는 기분으로 제주민요도 조금씩 부르고 있습니다. 나의 레파토리는 사할린아리랑 이회장은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출범 이후 첫번째 지도자로, 국내외 사할린 동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바롭스크 아리랑지부 회원들이 와서 아리랑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때, 바로 출국 준비를 했다가 코로나로 미루어진 상태이다. Q. 지난 해 3월부터 10월까지 지도를 해주신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러시아 동포들에게 지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수상 소감은? 어떤 감동이 들으셨습니까? A. 아리랑학교에서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를 구하는데 1년동안 책임을 지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기도에서 양주까지 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2번 이상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공주나 문경 같은 지방에서는 1번만 와주겠다는 겁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바뀌면 일정한 곡을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리랑학회 위촉을 받고 3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섹스폰 연주하는 친구들과 제자들까지 데리고 와서 수업시간 중 쉬는 시간 10분 동안 선율을 익히게 하기 위해 섹스폰 연주까지 들려주며 지도를 하였습니다. 드디어 10월 14일 전국아리랑경연대회를 위해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서 단원들 12명의 의상을 새로 마추고 소품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렸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사할린 동포들은 난생 처음 입어보는 한복 무대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무대에서 심사위원들도 관객들도 모두 함께 구구절절한 서러운 사할린아리랑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할린에는 왜 왔나 왜왔나 일본놈 무섭어 따라왔지” 강제동원으로 끌려 간 4만명 조선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된 70년의 한을 가슴에 묵혀두고 있다가 터진 것이지요. 심사위원들이 20여 단체의 경연자 중 2등상인 은상까지 주셔서 그분들의 깊은 한이 그날만큼은 치유가 되셨을겁니다. 왕복 7시간이나 되는 왕십리에서 양주를 다니면서 한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힘들었지만, 사할린 동포 어른들이 아리랑을 배우려고 하시는 열망 때문에 더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더욱이 수상까지 해서 개인적으로는 환갑 이후 저의 생애 가장 기쁜 날입니다.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 갈겁니다. Q. 전국아리랑전승단체가 지역적으로 55단체가 존재합니다. 경기도에만해도 10여 단체가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김포, 인천. 가평. 포천, 수원 등등에서 양주끼지 오기는 너무 멀지요. 길이 막혀서 약 왕복 7시간 이상 걸립니다. 드디어 10월 중순 작년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에 이어 올해 사할린 동포들과 아리랑코로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두드러진 아리랑 전승활동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합니다. 올해 계획은? A. "사할린동포분들께 내가 해드릴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리고 싶어요” 사할린 동포분들께 아리랑을 가르치며 보람이 있었습니다. 추운 나라에서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그리운 조국 한국 나와서 아리랑을 배우시고 싶다는데. 아무리 멀어도 최선을 다해서 해드리고 싶어요. 우선 사할린아리랑과 아리랑코로나 2곡을 가르쳐드릴겁니다. 양주와 인전 지역 사할린 동포들과 다문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면 러시아 동포을의 요청을 받아서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동포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러 갈겁니다. 지금은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Q. 사할린 동포들에게 직접 아리랑을 가르친 첫번째 사례입니다. 아리랑 소리꾼으로써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A. 제가 사할린 동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3년 KBS특별생방송 '누가 이사람을 아시나요'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형제 찾는 방송을 보고 울지 않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 영주귀국 해서 사신다는 것은 사할린아리랑축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벌써 조국에 오신지가 15년이나 되셨다는데..... 4천명이 오셔서 전국 25지역에서 살고 계신다는데,,,,,,,,,작년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아리랑퍼레이드에서 함께 행진을 했던 100여 분의 사할린 동포들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양주에 영주귀국하신 김세르게이 음악가가 살고 계시는 곳에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있고, 인천에 영주 귀국하신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공노원 부회장님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한국어와 아리랑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3월 아리랑학교에서 위촉을 받고 망서림 없이 수락을 하고 사할린아리랑에 이어 올해는 아리랑코로나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아리랑학교 수업을 통해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국외로 강제이주한 동포들이 조국을 그리는 노래로 불리게 되면서부터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리랑 전승자라는 이름을 걸고 동포들을 찾아가면서 가르치고 싶습니다. 제가 남은 시간 동안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Q. 사할린 동포 중 이번에 제자로 삼은 어린이가 있으시다는데 소개를 해주세요. A. 제가 신아리나를 처음 본 것은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축제 ‘디아스포라 아리랑’ 무대에서 무반주로 사할린아리랑‘을 독창으로 부른 당시 5살 먹은 당차고 씩씩한 신아리나(8세)입니다. 이번에 아리랑코로나를 함께 불렀습니다. 영주 귀국한 사할린 4세로서 할머니를 따라서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직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언니(14세)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아리랑코로나를 가르치면서 영민한 신아리나 어린이를 제자로 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회원들과 함께 장학금도 보내 줄려고 합니다. Q. 전국55단체 아리랑전승단체 중 왕십리아리랑보존회는 후발주자이지만, 작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55개 지역 아리랑워크샾, 경복궁아리랑고,사할린아리랑제 등 국가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느낀점은? A.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아리랑퍼레이드에서 각 지역 아리랑보존단체 50여개 지역단체가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현장에서 국악인으로서 아리랑을 선택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수많은 노래가 있지만 각각의 지명을 달고 창출된 **아리랑은 충격이었습니다. 학술적으로도 60여종 아리랑이 전국에서 불려진다는 것.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가 연대한다는 것은 전세계에 없다고 봅니다.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에 자부심이 앞섭니다. 거기에는 책임같은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 일년 전에 일본 땅에서 개최된 안중근의사추모제에서 가슴이 벅찼어요. 처음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연락을 받고 출발을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간거지요. 추모제를 준비하는 주관단체가 일본 사람들이라는 것. 구름같이 모여든 마을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자발적으로 준비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일본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어려웠던 시절 일본 농촌이나 오지로 시집을 간 한국 여성들이 우리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도라지타령과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서로 손 잡자마자 바로 눈물이 앞섰습니다. 저는 안중근의사의 의병활동을 추모하는 '아무르아리랑'을 헌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아리랑은 동포사회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민족의 노래‘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아리랑의 세계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국악인으로 살면서 ’노래의 힘‘을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A. 아리랑을 통해 노래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물론 한민족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은 ’애국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폭압에 대한 저항의 노래를 불렸고, 강제이주한 사할린 동포들이 부른 디아스포라 아리랑인 사할린아리랑은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고 봅니다. 사할린아리랑제에서 만난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통해 절절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말을 모르는 러시아 동포 3세 4세들도 아리랑을 부르고 알더군요. Q. 그렇다면 가장 자극을 받은 아리랑축제는? A. 2018년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제에서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무대에서 러일남북중 5개국에서 향유하는 아리랑이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부른 양상을 보고, 아리랑의 다양성에 대해 감동과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은 흥얼거리는 민요가 아닌 바로 애국가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나만의 아리랑을 만들어야겠다. 나의 소리길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할린아리랑합창단 결성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 간 것입니다. Q. 30여 년 국악인생을 살면서 오롯이 담아낸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 음반은 녹음을 마친 걸로 아는데 언제 발매가 됩니까? A. 처음에는 왕십리아리랑(작편곡:윤은화)을 중심으로 4년전 서울경기 지역 아리랑을 녹음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사할린을 다녀오고 나서 사할린아리랑을 편곡하여서 넣으려고 합니다, 추가로 아리랑코로나도 넣고 싶고, 그래서 4년이나 끌었습니다. 이제는 아리랑에 욕심이 납니다. 내년에는 나올겁니다. Q. 최근 3박 4일 동안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회장과 함께 제주도아리랑답사에서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요? A. 서귀포아리랑보존회 회원들과 서귀포 역사 유적지를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습니다. 제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아리랑 역사에서 사할린과 제주도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본조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본조아리랑이 대유행을 했습니다. 1940년 전후 제주에서도 사할린이나 일본, 오키나와에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본조아리랑을 불렀지요. 문헌에 있는 제주아리랑 선율은 본조아리랑입니다. 어업에 종사하거나 강제동원된 사람들이 가지고 간 아리랑이라고 봅니다. 출가 해녀들이 대마도나 홋가이도로 동원되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부른 아리랑도 본조아리랑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일본 사람들이 부쳐준 아리랑고개가 존재한다는 것, 이번 답사에서 민족 고난이 있는 곳에 아리랑이 불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역사의 노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Q. 앞으로 계획은? A. 내년에는 왕십리아리랑전국경연대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올해 준비를 했다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사회적 거리가 강화되는 바람에 부득불 취소를 했습니다. 국내외 이주한 다문화 어린이들과 러시아 동포들에게도 아리랑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에도 아리랑학교 아리랑 지도자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로 알려지게 되면서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동포사회에서 수업 요청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러시아 아리랑학교가 성사되어 아리랑배우기 수업이 완수되기를 기원합니다. 연혁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2016년 왕십리아리랑보존회 결성 2018년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설립/이혜솔 이사장 취임 안중근의사추모제(주관:일본 미야기현 대림사) 초청명창 위촉 제8회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발표회(주최:성동구청) 2019년 아리랑학교 지도자 위촉(아리랑학회)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 위촉 (공동주관:아리랑학회) <찾아가는 사할린아리랑> 공연 (양주사할린동포협회, 율정마을) 제9회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발표회(주최:성동구청) 제7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 초청공연 및 아리랑퍼레이드 참가 전국아리랑전승단체(55개 지역단체) 워크샾 참가(주관:문화재청) 경복궁 아리랑고유제(45지역 아리랑전승단체) 참가 제3회사할린아리랑제 아리랑명창 초청공연(이혜솔의 아리랑) 2020년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 주관(주최:성동구청) 전국아리랑전승단체협의회 가입단체 아리랑코로나 발표회 독도에서 제주까지 ‘아리랑코로나 부르기’성료 (공동주관:아리랑학회) www.arirang129.com 아리랑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이다. 이 두 유산의 해설문에는 아리랑의 수를 ‘50여종’이다. 기관과 학계에서는 50여 종의 아리랑 곡명을 누구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함의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제시한 수는 명목상의 수이지 자체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셀 수가 없다’는 의미다. 사실 최근의 한 연구논문에는 음반에서 정리한 곡명 수를 192종이라고 하였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사 기관과 목적에 따라 그 수가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리랑은 자기 복제라는 속성을 갖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다음 세 번째는 이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여지를 표현한 것이란 점이다. 어쩌면 이 세 번째를 함의한 것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그 가치 향유를 목적으로 한 아리랑 전승단체가 더 형성될 것이고, 그 범위가 세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결성과 창작 활동은 이 세 번째의 함의를 실증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래되는 전통민요만 알고 있는 ‘밀양아리랑’은 1926년 9월 창작되었고, 그해 10월엔 영화 나운규의 아리랑에 등장한 ‘본조아리랑’이 탄생되었으며, 1934년엔 ‘진도아리랑’, 1936년에는 대구아리랑, 1972년엔 ‘상주아리랑’이 새롭게 세상에 나왔다. 아리랑은 댓구 형식이라서 기억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2줄의 사설, 2줄의 후렴만 있으면 되는 것이라서, 외국인들도 한번 들으면 누구나 기억하기 쉬어서 각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지어 부르기도 쉬운 노래다. 이는 아리랑이 가진 창작과 개사의 속성을 지닌 '노가바' 형식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랑의 속성에 맞게 ‘왕십리아리랑’도 시대적 요청에 의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정은하 회장은 아리랑코로나 가사를 받고서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를 이기자는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서 알리고, 사할린 동포들에게 사할린아리랑을 가르치는 아리랑동지! 다시 한번 우리는 이혜솔 회장의 자발적 전승활동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반겼다.(기미양:국악신문 객원기자)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여설뎐(女說傳)- 창작하는 타루의 ‘정수정전’
- 2날씨도 영웅시대를 막을순 없다<br> 임영웅 "팬들과 큰꿈 펼칠게요"
- 3토속민요의 힘, ‘일노래, 삶의 노래’
- 4'새 국악진흥법' 시행령·시행규칙 공청회 31일 개최
- 5전란 속에 피어난 춤, 김동민 일가의 춤4代가 이어준 '오래된 인연'
- 6영남의 '강태홍류 산조춤' 전승하는 보존회장 김율희
- 7"과거춤 복원해 다시 추는 기분"…김매자 '한국무용사' 재발간
- 8제10회 전국공주아리랑민요경창대회 대상 서승연 수상
- 9日닛산서 9주년 세븐틴, 이틀간 14만명 환호<br>"후회없이 불태웠다"
- 10성산효대학원대학교 박사논문<br> '동두천 이담농악의 전승과 발전방향'(김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