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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리뷰]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절창 정선아리랑!’

김삼목 기자
기사입력 2024.04.2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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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공연이 지난 4월 26일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렸다. 20대에서 60대까지의 제자들 20명과 5명의 반주자와 함께 경기잡가, 경기민요, 강원도민요, 아리랑모음, 이렇게 4개 종목 13곡을 선보였다. ‘2024 국가무형문화유산 전승지원 기획공연인 만큼 경기12잡가 중 선유가·제비가·영변가 3곡은 일종의 보유자가 계승해야 하는 의무 곡인 셈이고, 나머지 경기민요를 비롯한 강원도 민요와 아리랑 모음곡은 제자들의 전승 실상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인 듯하다.

     

    이 중에 이호연 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함께 전해준 소리는 12잡가 중의 '선유가'와 '영변가', 그리고 경기민요 '노랫가락'이다. 그리고 보유자가 독창으로 부른 것은 12잡가의 하나인 제비가와 강원도민요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 이렇게 4곡이었다. 이 중에 관객의 반응이나 보유자의 목성대로 구사하여 자신도 만족스로운 표정을 보여준 것은 단연 '정선아리랑'이었다. 이 정선아리랑은 보유자의 10여 종에 이르는 음반 대부분에 수록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연에서도 빼놓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 정선아리랑은 대체로 경기민요 소리꾼들이 선호하는 곡이다. 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서도 명창부가 선택하는 대표적 소리이다. 그러나 누구나 부를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잘 부르는 소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시인 신경림 선생의 다음과 같은 감상평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내게는 노래이기 이전에 내 정서의 깊은 샘”이라고 했다. 곧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소리로서, 이 정서를 표현해 내지 못하면 ’정선아리랑‘이 아니라고 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유튜브 매체를 통해 한 서양음악 전공가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독일과 유럽에서 30여 년 서양 고전음악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을 듣고 한참을 운 적이 있다.”라고 한 것이 그렇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 이 소리는 한국전쟁 말기 당시는 강원도였던 이천 지역에서 있었던 ‘육군예대’(성경린 단장) 공연에 갔다가 ‘정선 아라리’를 듣은 이창배 선생과 김옥심 선생이 돌아와 다시 짜 불러 알려진 소리이다. 이런 탄생 배경은 생전 이창배 선생의 후원자였던 전 종로문화원 반재식 원장, ‘종로 국악로 지킴이 김뻑국 선생’의 증언이 있고, 명고(名鼓) 장덕화 선생이 김옥심 선생과 친했던 명창 이은주 선생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필자에게 전한 말로는 거의 일치한다. 이런 연유에서 음반을 통해 확인되는 정선아리랑은 네 가지 버젼이 존재한다. 전주(前奏)와 간주(間奏)의 유무, 대표사설을 "강원도 금강산~”으로 한 것과 "네 칠자나 내 팔자나~”로 한 것 등이 있기 때문이다.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하고 ‘경기제(서울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명칭을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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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연(국가무형문화유산 경기민요 보유자)

      

    절창(絶唱), 이 말은 ‘다시 없는 명창’ 또는 ‘비할 데 없는 뛰어난 노래’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빼어난 노래이기도 하고, 빼어난 명창을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다”나 "김옥심은 절창이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흔히 김옥심을 ‘하늘이 내린 소리’(La Voix Celeste) 또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명창’이라고 한다. 특히 그 목을 말하면서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표현은 거의 ‘정선아리랑’을 말할 때 동반되는 수식어이다. 그래서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라는데 이의가 없는 것이다.

     

    필자의 단견으로는 동시대 명창들 간의 경기민요 절창은 이렇게 본다. 묵계월은 ‘한오백년’(CD 경기민요의 향연), 안비취는 ‘이별가’, 이은주는 ‘긴아리랑’, 김옥심은 ‘정선아리랑’(오아시스 레코드  1476 경기민요 2집)이라고 본다. 이 네 분의 경기민요 4곡은 가히 다른 소리꾼들이 그 정서를 그만큼 표현해 내기는 쉽지 않을듯싶다.(그 원인의 하나로는 이들 소리가 성창(盛唱)된 시기로 보아 한국전쟁의 민족적 수난이란 정서가 반영된 것을 들기도 한다.)

     

    # ‘2024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이호연도 정선아리랑도 절창이다. 이호연의 활동 이력이나 수상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러나 그가 해낸 공연과 음반 취입과 방송 출연 레파토리 이력을 꼽아보면 알 수 있다. 매우 실험적이었고, 파격적이기도 했다. 공연으로는 1999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통일의 소리 옥피리’ 초연을 들 수 있다. 이 공연 메세지는 야심찬 ‘밀레니엄 프로젝트-’한국의 소리가 바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전공 종목으로 전체 국악판을 견인하겠다는 뱃심은 경기 소리꾼으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음반 발매로는 2015년 발매한 광복 70년 주년 기념 발매 ‘통일아리랑’이 있다. 리딩통월드 오케스트라와 어린이 합창단을 동원한 음반이다. 이는 ‘분단 70년 남북 이산가족 예술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공연으로 전환해 4년간이나 지역 순회공연을 한 원천이었다. 국악인으로서 민족문제를 자신의 소리 주제로 반영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창작 작품을 취입, 발매하는 기획력이나 경제적 여유만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나름의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어 2008년 취입, 발매에 이은 ‘이호연 唱 경기12잡가’ 음반과 악보집을 2021년에 내놓았다. 경기민요 전승 능력과 전수 활동의 최종 결정체를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경기 12잡가 전승자로서의 의무감과 그간의 전수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있다. "우리 세대의 역할이 무형문화재 1세대 스승님들의 예능 원형을 보존, 계승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교육 과정에서 갖춘 지식을 기반으로 앞 세대에서 보존, 계승한 원형을 연구해 경기소리의 유래와 유형을 밝혀 학문으로서 정립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음반과 악보집의 신뢰를 담보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화려한 이력의 종결판을 확보했다. 지난해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사실을 말한다. "국가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종목의 전승능력,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 등의 탁월”함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1968년 이창배, 정득만 선생 사사와 1970년 안비취 선생 경기민요 전수, 1984년 제1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민요부문 장원으로 기량을 인정받고 활동. 다소 늦은 67세에 보유자 인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더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민속극장 ‘풍류’에서의 ‘이호연 경기소리 숨’ 공연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해설이 다소 밋밋했고, 음향이 너무 커서 앞자리에서 듣기에 불편한 정도 외에는 그렇다. 그러나 이 무대를 더욱 빛내준 것은 단연 보유자의 독창 ‘정선아리랑’이다. 이 소리는 1979년 한국음반의 ‘한국고전민요 제3집’(안비취 이은주 묵계월 3인 녹음)까지의 전주 형태 버젼이다. 1995년부터 연주되는 목탁소리와 합창의 인트로 버젼이 아니다. 이 버젼은 처음부터 감정을 고조시켜 다소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은데, 원래의 버젼은 후렴을 먼저 부르고 "강원도 금강산~”으로 시작하여 온전히 정서를 수용할 수 있게 하는 버젼이다. 보유자의 이번 정선아리랑은 원래의 버젼 그대로이다.

      

    보유자가 부른 정선아리랑은 두 번째의 독창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은 중반쯤의 무대로 관객들의 호응은 준비된 상태였다. 여유와 관록이 배인 자태였다. 첫 음도 그렇고 전체적 요성(搖聲)이 매우 안정적이었다. 고음이 보유자의 특징으로 매우 청아했다. 사설의 해석도 담담하여 오히려 전달이 쉬웠다. 보유자에게 따르는 목성 평가, '청아 담백'이 충분히 전달된 정선아리랑 무대였다. 

     

    절창, 이호연, 그리고 정선아리랑! 그 여음이 오래갈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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