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흙의 소리
이 동 희
그 소설은 얘기를 바로 하지 않고 이리 저리 둘러 대고 있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 것 같다.
소설을 쓴다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대개 거짓말을 하고 있다 허위 날조다 허구다 라고 할 때 그런다. 소설은 그런 것이 아니다. 허구라는 말은 픽션fiction이란 뜻이다. 픽션이란 말은 소설이란 말로도 쓴다. 그러나 허구란 말을 소설이란 말로 쓰지는 않는다. 소설은 그냥 허구가 아니라 허구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가능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소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진실을 쓰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이 아닐 수는 있지만 진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허구도 아니고 허위나 날조도 아니다. 물론 거짓말도 아니고. 사실과 진실의 차이이다.
이리 저리 둘러대고 있는 가운데 그것은 박연이 지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고 있다. 창작자 창제자가 박연이라는 것을 그렇게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인가 과연 그런 것일까 되물어진다. 그런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기록은 사실이고 진실은 하늘이나 알고 있는 것이다.
좌우간 이 정도의 소설론小說論 가설假說로 기대하는 결론을 이끌어 내고자 한 것이다. 연역법演繹法이다.
왜 이렇게 연설을 하고 있느냐 하면 참으로 하기 어려운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늘 같은 존재에 대한 거론이 아닌가. 어려운 얘기는 어렵게 푸는 것이 방법인지도 모른다.
다시 좌우간 박연의 연보의 기록을 이리 저리 연결하고 규정해 보는 것이다. 결론이라기보다 가정이다. 여기에 다시 과정을 되풀어 놓지는 않는다. 여러 개의 가설은 하나의 정설이 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가설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논문과 하나의 소설.
그런데 박연의 여러 번 수없이 올린 소 가운데 제일 처음 올린 청반행가례소학삼강행실훈민오음소請頒行家禮小學三綱行實訓民五音疏, 널리 가례와 소학 그리고 삼강행실을 가르치고 오음의 바른 소리로 풍속을 바로잡자는 상소의 끝에 이하 누락(此下缺)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과연 박연이 의도적으로 그 다음 부분을 버린 것인지, 무슨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인지, 자의적인 것인지 도무지 궁금하기만 하다.
관리로 하여금 세상을 현혹시키는 불교와 교화를 해치는 풍습들을 금하게 하여야하고 관혼상제에 있어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행하여 국가의 예의를 바로 잡게 하고 소학을 널리 강의하여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가르쳐 선비들의 습속을 바로잡도록 하고 백성들에게 삼강행실을 가르쳐 미풍양속을 이루게 할 것이며 그렇게 아뢰었다. 그리고 오음의 바른 소리를 가르쳐 민풍을 바로잡도록 해야 된다고 아뢰었다.
성조聖朝에서 새 왕조를 열고 예악을 일으켜 바르게 다스리려 하나 개혁의 초기라 세속의 풍습들이 이전과 다를 바 없어 개탄하며 올린 상소上疏이다. 예악의 시대를 여는 대단히 획기적이고 개혁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왜 뒷부분을 누락시켰는지 그보다 그 누락된 내용에 정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부분이 있는지 그래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앞에서 박연의 연보와 관련한 얘기를 하였는데 거기(연보)에는 또 이것(1번 소)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적혀 있지 않다.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왜 이 첫 번째로 상소한 사항은 기록하지 않은 것인가. 어쩌면 대단히 중요할 수도 있는, 소를 올리기 시작한 사항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또 한 가지 연보에 상소한 기록이 세종 7년(1419)부터로 되어 있는데 그 1번 소를 시간적 순서 대로 올린 것이라고 할 때 훈민정음 창제(1443) 반포(1446) 시기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지적된다. 앞의 가설의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아닌가. 글쎄.
말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떻든 이런 일련의 얘기들은 몇 번 말한 대로 박연의 업적이라고 할까, 글을 써서 상소하고 악기제작을 하고 하는 외의 음악적 족적足跡을 더듬어 밝히고자 하는 것이었다. 문소전 악장을 짓고 태평악을 짓고… 그러다 용비어천가의 작사 작곡 훈민정음 창제까지 얘기가 된 것인데 이 소설(『박연과 훈민정음』)은 세종25년(1443) 박연은 훈민정음을 개발 완성하였다고 쓰고 있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지만 자료와 논리가 뒷받침되고 있어 계속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소설론 가설을 기억하기 바라며 이야기의 책임 글의 책임을 같이 공유共有하게 되기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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