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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82>

특집부
기사입력 2022.03.3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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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의 소리

     

    이 동 희

     

    되돌아 보다 <5>

    며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대로 서성거리며 하던 일은 놓지 않았다.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그러기만 하였다.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고 대답도 네 아니오 그리고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기만 하였다.

    다래를 만난 것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괴로움이라고 할까 횡액이 그렇게 이동해 갔던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닿았던 것이다. 그만큼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봐야 지난번 불러내어 행군을 하며 얘기하다 돌려보낸 후 처음으로 만난 것이지만 정말 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그러다 어떻게 될려는지 걱정이었다. 딸이 당하는 불행이 그보다 더 할 수가 있을까. 아내가 당하는 고통이 그보다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날 그녀를 뿌리치고 오긴 했지만 줄곧 마음이 거기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불러내어 얘기를 더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았고 그녀에게도 오히려 그렇게 마음이 걸리고 괴롭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고쳐서 생각을 하였다.

    몇 줄 그의 마음을 적어 보내고자 썼다 지웠다 하였지만 다시 구겨버렸다. 그냥 참았다. 스스로 당하는 고통에 그녀에게 닥쳐올 고통이 겹치며 몸부림을 쳤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박연은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다. 그것이 아니었다. 그가 크게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하여 두 가지로 고쳐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대로 악학에 출사하도록 하라.”

    임금은 그에게 제기된 문제를 가르고 명하였다. 대신들 누구 하나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감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요망스러운 말이 어떻고 사람들을 현혹하게 한 것이 어떻고 죄니 벌이니 하는 말들은 하나의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 것이었다. 핵심은 변함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난계-흙의소리82회.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연은 벼슬을 파직하고에만 정신이 꽂혀 실의에 빠지지 않았던가. 그랬었다. 도대체 벼슬은 무엇이고 직이란 무엇인가. 문과 초임으로 생원과에 급제하고 다시 6년 피 말리는 각고 끝에 진사과에 급제, 관직 생활을 하기 시작한 후 몇 년이 되었던가. 스물 여덟 살 때부터이던가. 그 때까지는 또 숨이 넘어가도록 과거 시험 공부를 하였었다. 그 합격 급제의 기쁨도 잠시였고 한 발 한 발 한 단계 한 단계 숨도 크게 못 쉬며 앞만 보고 달려 승승장구乘勝長驅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빠르게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아주 승진이 느리고 말직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균적이라고 할까 일반적으로 봤을 때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어떻든 자신의 자리 그것을 벼슬이라고 하지만, 벼슬 직이라고 하지 않는가, 관직의 토속어인 벼슬은 전통적으로 우리 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쳐 왔다. 벼슬을 차지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좌우간 그 자리에 대하여는 불만이 없었고 또 직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것이 솔직한 것이 아니란다면 그런 내색은 전혀 한 적이 없었다.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한 적도 없었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였다. 그것도 스스로 찾아서 하였다. 또 직이란 직무이기도 하다. 일이다. 일을 하기 위한 자리이다. 벼슬이란 결국 직책이며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파직을 당하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말이 안 되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왕은 그에게 벼슬은 떼고 일은 하라고 한 것이다.

    그는 참으로 자신이 부끄러웠다. 세종 임금은 그 자신을 구해준 것이다. 권도의 제소가 얼마나 합당한 것이었던지 부당하고 사감이 개재 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여부가 어떻든 세종은 박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여 그랬는지 그것이 대단히 정당하고 아니고도 중요하지 않다. 일을 하게 해 준 것이다.

    그것을 며칠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엎드려 사죄하였다.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고 눈물을 철철 흘리었다.

    "더 잘 하겠습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기회를 준 주군 세종 임금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벼슬을 파직한 것에 대하여 감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이라면 그리고 불편이라면 오히려 그것에 대하여 감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고통과 불편이 은혜를 알게 하였고 그것이 현실을 직시하게 한 것이다.

     

     

    그 횡액은 행운이었다.

     

     

     

    경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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