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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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 꿈꾼 안중근 의사 2월 14일 사형선고이강연/前 안중근의사기념관 사무처장 오늘로부터 114년 전인 1910년 2월 14일,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일제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은 날이다. 이후 감옥에 수감된다.안중근 의사는 지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을 주도한 인물인 일본 총리대신이자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처단해 살인혐의 피고인 신분으로 일제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았다.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감옥(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의 형장에서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 아직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을 계기로 항일운동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 위안스카이(1859 -1916)는 "몸은 한국에 있어도 만방에 이름 떨쳤소. 살아선 백 살이 없는 건데 죽어 천년을 가오리다."라고 영웅의 길을 추앙했다. 중국 신해혁명을 이끈 쑨원(1866~1925)은 안 의사를 위해 발문을 썼고, 당시 중국의 저망한 지식인 장타이옌(1869~1936)은 안 의사를 "아시아 최고의 의로운 협객(亞洲第一義俠)”이라고 불렀다.중화인민국공화국 초대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1898~1976) 역시 "중·일 갑오전쟁(청·일전쟁) 이후 20세기 초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척결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두 나라 인민의 공동 투쟁이 시작됐다”고 높이 평가했다. 국민당 장제스(1887~1975) 총통 또한 안 의사를 기려 "장렬한 뜻이 천년 길이 빛나리(壯烈千秋)”라는 글을 남겼다. 안 의사는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返葬, 객지에서 죽은 이의 시체를 그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 장사를 지냄)하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1910년 안의사는 일제의 억압과 폭거에 맞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민족의 적 이토히로 부미 척살하면서 "꼬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당당히 그들앞에 눈을 부릅뜨고 섰다. 안 의사는 이토를 처단하고 이후 수감 기간 동안 당당했고 빛나는 유훈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집필했던 ‘동양평화론’의 가치와 세계 평화를 꿈꾸던 안중근 의사의 정신이 시대정신이 되어 우리에게 울림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옥중에 갇힌 약 한 달 반 기간 동안 200여 점의 유묵을 남겼다. 안중근의사가 남겨준 군인정신의 지표인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이 대표적 유묵이다.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행한 일이라 선언한 것이다.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되자 안 의사가 재판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알렸다. "첫번째 죄는 남의 나라 왕비를 시해한 죄"다. 일주일 만에 6차례의 비공개 공판을 몰아치고 안 의사에게 곧장 사형을 언도했다. 정당성과 절차는 모두 무시된 사형 집행 후 안 의사의 유해조차 숨겼다. 무덤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디에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최근 110년 만에 현해탄을 건너 고국의 품에 돌아온 안의사 유묵은 경매에서 19억5000만원에 낙찰이 됐다. 이어서 또 하나의 유묵이 경매를 통해 귀환될 예정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국군정신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통해, 안의사의 애국정신을 한번 되돌아 볼 날이다. 조국으로 돌아온 안의사의 유묵 소식과 함께 언젠가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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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파, 조선의 마지막 소리""소리의 영과 한이 오롯이 살아나 한 편의 아름다운 가사가 되었다. 소리 하나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다시 한번 소리를 위해 미련 없이 무대 밖으로 나온 허금파의 기구한 생을 따라가며 나는 새삼 놀랐다. 원하는 삶을 위해 세상에서 잊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금파가 우리 안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염원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금파의 애절한 소리가 슬픔을 타고 올라 힘이 되어주니, 음악인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운 작품이다. 부디 내 소리도 금파의 소리처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어주면 좋겠다." (송가인/가수) 1902년,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극장에 올라 소리판을 뒤흔든 여성 소리광대 허금파 실화소설."우리 역사소설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개성적 인물을 강렬하게 창출해 냈다”라는 평을 받으며 제1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빛낸 김해숙 소설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금파』. 2021년 제정된 이번 공모의 수상작 『금파』는 구한말 격변의 시대에 판소리와 창극 무대에서 독보적 소리꾼으로 활동한 실존 인물 ‘허금파’의 이야기다. 작가는 여성이 무대에 설 수 없던 시대에, 늦은 나이로 소리판에 들어와 최고의 가객이 되기까지 갖은 고초를 이겨냈던 ‘금파’의 생을 소설로 복원해 냈다금파가 오직 소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고창에 온 뒤로 판소리 학당 동리정사에는 소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의 세력가 주 영감은 금파에게 추근대다 망신을 당한 대가로 동리정사에 후원을 끊고, 소리선생 김세종은 빼어난 외모와 재주에 고개 숙일 줄 모르는 금파를 염려한다. 금파는 소리를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과거에 관청의 가녀가 된 일도 쪽 찐 머리를 풀어 댕기를 묶게 된 속사정도 모두 가슴속 깊이 묻는다. 그러던 어느 날 김세종은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 기념식 무대에 오를 이들을 가리기 위해 소리 경연을 열고, 금파는 단연 제일가는 소리로 관중의 찬사를 받지만 선발 명단에 오르지 못한다. 금파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그와 실력을 견줄 만한 유일한 상대 승윤 역시 결과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이 일에 주 영감이 연결되어 있으리라 직감하는데…….양반가의 자제이나 소리를 위해 집안을 버린 승윤, 그리고 승윤의 스스럼없는 장난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 흔들리는 금파…… 이들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소리를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허금파 (許錦波, 1866~1949)는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조선 후기, 금기를 깬 최초의 명창 진채선 이후 두 번째로 명창의 반열에 오른 여성 소리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연희극장 협률사協律司 무대에 올라 창극 춘향전의 월매 역을 맡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예술 활동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서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철종 또는 고종 재위 무렵 김천에서 태어나 고창 동리정사(桐里精舍)에서 소리선생 김세종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20대에 관기였고 후처가 된 후 뒤늦게 동리정사에 들어가 한성으로 올라갔을 무렵이 이미 30대였던 그는 소리에 대한 꿈을 결코 놓지 않는 예인이었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전국의 소리꾼들과 함께 자리를 겨루던 때에도 남성 중심의 소리판에서 주역을 맡아 권력에 승복하지 않으면서 하층민의 삶을 대변하는 월매로 무대에 선다. 진채선의 명성에 힘입지 않고 스스로 최고에 오르고자 했던 그의 소리 인생은 세상을 떠난 지 70여 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불온한 삶을 살면서도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대쪽 같은 소리꾼 금파.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오로지 소리 하나로 인생의 길을 찾고자 했던 금파는 ‘비가비’였던 승윤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지만 그녀는 애써 마음을 접는다. 후일, 나비떨잠으로 연결되는 승윤과의 아릿한 풍경은 장터에서 확인되고 이어지는데……. 남녀를 떠나 진정한 소리꾼이 되고 싶었던 금파의 꿈은 시간의 강을 건넌 지금에도 유효하다. 한곳에 뜻을 두고 정진하는 사람들의 표상이 될 것이다. 소리꾼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시선이 ‘빛나는 예인이었던 금파’를 찾아낸 것 같다." (권비영, 『덕혜옹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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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미 의회도서관 서울사진: 네개의 시선' 발간서울역사박물관은 19번째 학술총서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서울 사진: 네 개의 시선'을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학술총서는 2020년부터 진행된 미국 내 서울학 자료 조사의 세 번째 결과물로, 미 의회도서관 판화·사진 분과가 소장한 조선 말기부터 1960년대까지의 사진 163점을 선보인다. 총서는 미국 외교관과 여행 저널리스트, 조선총독부, 미국 언론사가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의 모습을 분류해 소개한다. 제1장 '조지 C. 포크 컬렉션'은 조선 주재 미국공사관에 외교 무관으로 파견된 미 해군 장교 포크가 촬영한 조선 말기 서울의 사진을 조명한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과 숭례문과 성벽 바깥 민가 사진은 현존하는 숭례문 사진 중 가장 이른 사진들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제2장 '프랭크 G. 카펜터 컬렉션'은 미국의 여행 저널리스트 카펜터의 사진으로 구성된다. 20세기 전반 미국인이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제3장 '무라카미 텐코 컬렉션'은 의회도서관에서 아직 등록하지 않은 미공개 사진으로 해방 직후 미국이 일본에서 입수한 조선총독부 문건의 일부다. 일제강점기 경성을 비롯한 전국의 '생활상태(生活狀態)', '경제사정(經濟事情)' 등에 대한 방대한 양의 사진으로 다양한 지역과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조선총독부가 식민 지배를 위해 조사했던 다양한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연구 가치가 큰 사진이다. 마지막 제4장 '뉴욕 월드 텔레그램&선 컬렉션'에선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1960년대 초반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은 서울책방(store.seoul.go.kr)과 서울역사박물관 내 기념품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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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통의 내밀한 편지들, '어린 왕자'를 꽃피우다"나의 모든 것, 난 당신에게 충실해. 나는 당신을 세계 곳곳으로 데려갈 거고, 우리는 별들을 길들일 거야."(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그의 아내 콘수엘로에게 쓴 편지 중에서)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문학동네)는 '어린 왕자'를 쓴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 실종)와 그의 아내 콘수엘로(1901~1979)가 나눈 격정의 편지 168통을 모은 책이다. 1930년 두 사람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 만난 시점부터 생텍쥐페리가 비행 도중 실종된 1944년까지 15년간 서로에게 보낸 편지들에는 두 사람 간의 오해와 반목, 사랑과 신뢰는 물론 생텍쥐페리라는 위대한 작가의 속마음과 창작의 이면이 생생히 담겼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프랑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장에서 처음 만난 앙투안과 콘수엘로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창조적 분신을 발견하고서 금세 매료돼 짧은 동거를 거쳐 1931년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사랑으로 시작한 둘의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북아프리카부터 남아메리카까지 세계의 상공을 누비던 앙투안의 불안정한 생활 탓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기질 차이도 한몫했다. 엘살바도르 출신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콘수엘라는 자주 고립감을 느껴 친구들과 자유로운 교류를 원했지만, 긴 비행에 지친 앙투안은 그녀에게서 안정을 원했다. 이런 갈등은 때론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앙투안은 자신의 대표작 '어린 왕자'를 인용하면서 "'꽃은 언제나 어린 왕자 탓을 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떠났다!' 이게 바로 내가 불평하는 이유야"라고 쓰기도 한다. 갈등과 반목, 오해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마지막 유일한 안식처를 자처한다. 특히, 비행으로 평탄치 못한 일상을 보내는 남편에게 콘수엘로는 끊임없이 글쓰기를 독려하고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대목들이 눈길을 끈다. "토니오(앙투안의 애칭), 소설 열심히 써서, 아주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봐. 우리의 이별, 절망, 우리 사랑이 흘린 눈물이 당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물들의 신비를 꿰뚫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49쪽) "난 당신이 그 책을 끝내야 한다고 굳게 믿어. 책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전투야. 글을 써. 절대 피하지 말고."(316쪽) 과연 아내 콘수엘로의 지지가 없었다면 전쟁 중 비행사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했던 작가가 '어린 왕자'나 '야간 비행', '전시 조종사' 같은 후대의 큰 사랑을 받은 작품들을 완성해낼 수 있었을까.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꼽히는 '어린 왕자'가 탄생하게 되는 흥미로운 장면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 왕자'는 1943년 초판이 출간됐지만 앙투안과 콘수엘로가 결혼하기 전인 1930년에 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 쓴 편지에서도 이미 그 단초가 있다. "옛날 옛적에 한 아이가 보물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 보물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두 팔로 그 아름다움을 안고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웠지. 그래서 아이는 우울해졌어." 책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부터, 작가가 직접 그린 '어린 왕자' 삽화, 육필 원고와 엽서, 화가였던 콘수엘로가 그린 그림 등 풍성한 자료들은 물론, 편지가 쓰인 당대의 맥락을 상세한 각주로 담아 생텍쥐페리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초상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자국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에서는 이런 종류의 서간 문학이 잘 발달해있고 독자층도 넓다. 생텍쥐페리나 알베르 카뮈 같은 유명한 작가들은 물론 프랑수아 미테랑 등 정치 거물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가까운 사람과 주고받은 내밀한 편지와 엽서 등을 잘 보전해 연구하고 주석을 붙여 갈리마르 같은 명망 높은 출판사가 펴내는 건 이 나라의 오랜 문학 전통 중 하나다. 이 책 역시 생텍쥐페리가 실종되고서 무려 77년이 지나 발견된 편지들이 밑바탕이 됐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나 엽서가 매우 희귀해진 시대에 더 빛을 발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문학동네. 윤진 옮김. 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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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중요한 건 태도…"젊다고 생각하면 장수한다""나이 드는 것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숨은 조금 차지만 풍경은 훨씬 아름답다." 전설적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설 명절 연휴에 노인들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기 쉽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다는 점에서 반갑지만, 음력 기준으로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점에서다. 더 늙어간다는 느낌은 우울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대만의 신경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류슈즈는 그런 태도는 장수에 좋지 않다고 단언한다. 적어도 젊다고 느끼거나 노년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그는 신간 '나답게 나이 드는 즐거움'(더퀘스트)에서 이를 입증하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2015년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린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영국에 거주하는 평균연령 66세 주민 6천489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자신이 몇 살이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설문을 진행했다. 조사 대상자의 70%는 실제 나이보다 3살 적다고 답했다. 응답자 25%는 실제나이와 비슷하다고 얘기했으며 5%는 실제 나이보다 늙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들에 대해 8년간 추적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망률이 41% 높았고, 심혈관질환 발병률도 높았다. 노년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심혈관질환 발병률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국립 노화연구소 연구진이 1968년부터 2007년까지 18~49세 386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노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보다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12%포인트 높았다. 연구진은 노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일종의 만성 스트레스와 같으며 이는 간접적으로 심혈관질환을 유발했다고 결론 내렸다. 장수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책은 소개한다. 2020년 미국의학잡지에 실린 '21세기 장수처방' 논문 저자들은 ▲ 목표를 가질 것 ▲ 적절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것 ▲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닐 것을 장수의 비법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건강한 생활 습관이란 금연과 적당한 음주, 적극적인 뇌 활동과 신체·여가 활동, 과일·채소 다량 섭취, 충분한 수면 등을 포괄한다. 류슈즈는 59세에 병원에서 퇴직한 후 에세이·소설을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다. 그는 대만에서 닮고 싶은 노년 롤모델로 손꼽힌다. 그런 그마저도 노년을 맞이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고 한다. 그는 허리 수술, 백내장 수술, 유방암 수술을 받으며 노화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낙관적 태도만은 잃지 않았다. 현재 상태를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은 후 꾸준히 관리하다 보니 여러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70대인 저자는 의사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이제 작가로서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이 설레고 기대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독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놀러 다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간이 많을 때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도 퍽 만족스럽다." 박주선 옮김.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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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뮤직(Free Music)'프리뮤직'은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즉흥 연주이다.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것으로, 미리 준비된 것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작곡을 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음악이다. 프리뮤직의 정확한 표기는 Free Improvising Music인데, 이는 전위음악의 요소인 우연성, 불확정성과 재즈의 즉흥성이 결합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재즈에서 발전된 프리재즈(Free Jazz)가 현대음악과 접목되면서 프리뮤 직이라는 형태로 발전해온 것으로, 재즈에서의 즉흥성이 미리 만들어진 아우트라인(outline) 아래에서 이뤄진다면 프리뮤직은 그 조차도 없는 완전한 즉흥이다. 악보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연주하여 무대에서의 매우 빠른 계산이 요구되는 음악이기에 상당히 지성에 기반한 작업이기도 하다. 프리뮤직은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공연 당일 연주자의 즉흥, 즉 리듬, 음계, 화성의 고정된 제약을 거부한 상황성에 기초하여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는 청중과 연주인 간의 교감, 공연 장소의 분위기, 연주인에게 축적된 삶의 경 험과 생각, 연주 스타일, 단련된 기교가 한데 어우러지는 음악이고, 생동하는 기(氣)의 음악이며 그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연주자의 내면 세계를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표현하여 연주하는 이의 마음과 음악성이 매우 확실하게 전해지는 프리뮤직은 함께하는 연주자에 따라 현대음악, 민속음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도 융합할 수 있는 폭넓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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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으로 간 최순이"조선시대 진주 최고의 예인 칼춤으로 고종 앞에 선 열세 살 소녀, 궁중 관기에서부터 근대 신여성, 기생의 삶까지 논픽션과 픽션을 넘나드는 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가무 그것은 예술이며, 우리는 예술가로소이다.”-『장한』 기생들이 창간한 잡지 중에서이 책은 조선시대에 태어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현대를 거치며 관기의 삶을 살아온 한 여성에 대한 대서사다. 또한 훗날, 궁중의 검무를 국가무형문화재 ‘진주검무’로 전승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최순이에 대한 ‘헌사’이자 조선시대 전문 예술인이었던 기생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집필되었다. 자주적이며 예술에 헌신적이기까지 했던 조선의 ‘관기’. 남성을 위해 살았던 ‘도구’로서가 아닌, 높은 수준의 가무를 익혔던 전문가로서의 그녀의 인생을 다시 정의한다. 책의 전반부는 최순이의 궁중 생활기다. 그녀가 진주에서 상경하여 궁중의 관기가 되고, 일제강점기, 더 이상 연회가 열리지 않자 낙향하여 진주 권번의 스승이 되기까지의 그녀의 인생을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 말과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궁중 연향(연회) 모습도 묘사한다. 일제강점기, 연회 담당 인원을 줄이면서 궁중 악사가 무동의 역할까지 하는 과정, 프랑스 왕실 못지않은 조선 왕실 연향의 격식과 예에 맞춘 초호화 궁중음식 코스, 화려한 꽃장식, 그리고 연회에 참가했던 모든 여령이 왕과 같은 종류의 음식을 대접받았던 사실까지, 그 사료를 찾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은 '의궤'와 진찬도병(그림) 등의 기록을 고증하여 궁중의 무희들이 어떤 종류의 춤을 추었고, 몇 명이 추었는지 어떤 복식을 했는지 흥미롭게 서술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마치 궁중의 연향에 참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후반부는 조선의 왕실에서 더 이상 연향을 하지 않자, 설 자리가 없어진 관기들이 궁에서 나와 요릿집에 취업하거나, ‘기생조합’을 만들어 직접 운영하고 경제 활동을 한 이야기다. 조선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는 기생들의 일생을 좇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폐허가 된 1950년의 진주성까지 마주하게 된다.' 최순이를 비롯한 진주 기생들은 모의당이라는 공간에서 의기창렬회를 조직하여 다시금 논개의 제를 지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6.25전쟁 가운데서 개최된 예술제인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의 전신)에서 국립국악단원과 함께 다시금 무용을 선보인다. 시, 서, 화와 인문교육을 받았던 궁중의 관기 출신 기생들은 자주적이며 능동적이었다. 그들은 노동 환경을 개선해 줄 것과 매출을 공개해 줄 것을 사용자 측에 요구하면서 파업하기도 했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하는 노동자였으며,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했던 신여성이었다.최순이는 평양이나 서울의 요릿집 대신 낙향하여 진주의 기생조합에서 궁중에서 배운 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로 마음먹는다. 최순이가 스승의 길을 걸으면서, 최순이 인생 2막이 시작되었으며, 훗날, 이 결정은 진주검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교방문화라는 꽃을 피워내는 데 씨앗이 된다. 국가무형문화재인 진주검무 이수자인 저자는 최순이에 대한 자료와 궁중 교방 문화에 대한 방대한 학식으로 최순이의 인생을 복원해 내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최순이가 직접 가르쳤던 권번 제자들과 김천흥이라는 궁중 악사가 최순이가 진주검무를 전승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말해준다.올해 2023년은 진주에서 천한 신분인 백정이 형평운동을 시작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백정은 형평운동을 통해 그 신분이 해방되었다. 그러나 천민 신분인 백정과 기생, 그들은 여전히 신분에 따른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유독 기생은 아직 단순히 성(性)을 팔고 술을 따르는 이미지로만 소비된다. 이 책은 기생의 예인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고자 했다. 전문 예술인이었던 관기가 아니었다면 궁중의 춤과 노래는 다음 세대에 전승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권번 문화가 들어오면서 일제는 기생을 풍기문란한 존재로 편견을 조장한다. 1941년 일본이 전시 체제로 돌입하면서 ‘기생’이라는 이름이 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접대부’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생=접대부’라는 등식이 생겼다. 1910년 이전의 관기, 선상기, 여령과 같이 전문예술인에 해당하는 한국 기생의 참 의미는 사라졌다. 기생이라는 단어의 오염은 일제에 의해 주도되었다.진주검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탄생하다오늘날 관기를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조선의 연향 문화를 습득한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조선의 체계적인 학습 시스템을 통해 궁중 연향에서 행해지는 모든 퍼포먼스를 익혔으며, 가·무·악과 시·서·화 심지어 예절 교육까지 받았다. 이는 관기 개개인에게는 혹독하고도 힘든 과정이었으나, 아름답고도 찬란한 문화유산이다. 최순이가 평생 제자를 가르친 이유도 이 궁중의 춤이 후대에 널리 전승되기를 간절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1969년, 최순이는 숨을 거둔다. 그녀의 곁에는 몇몇 기생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갑 안 서랍장 안에는 몇 장의 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조차 그 유품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해왔던 일이 결코 자랑스럽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순이는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이했다. 진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진주검무’라는 꽃을 피우고 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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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광대, 문진수의 연희창작 ‘뫼비우스’정형호(전 한국민속학회 회장) 공감과 소통이 멀어지는 이 시대에 전통 연희를 바탕으로 어떻게 새롭게 창작해낼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아시아1인극제-거창2023에서 문진수가 보여준 ‘뫼비우스’는 하나의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당시 거창문화회관에서 처음 선을 보인 ‘뫼비우스’라는 창작 연희극 '일명 흑사 위에 백사' 를 선보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광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통 사회에서 광대인 우인(優人)들은 ‘우희(優戱), 일명 ’소학지희(笑謔之戱)’를 통해 양반관료층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소극을 보여주었다. 1505년 연산군 시절에 우인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놀이(老儒戲)에서 논어를 인용하면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君君臣臣父父子子 君不君臣不臣 雖有粟 吾得而食諸)라고 풍자한다. 왕은 그 말이 불경스럽다고 하여 공길이를 곤장쳐서 먼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한다는 말이 거슬렸을 것이다. 이미 고려 말기 공민왕 시기에 광대들은 권신 염흥방과 시종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자 광대놀이로 이를 비판한 일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때에 어느 광대는 어전에서 정평부사 구세장의 안장 구입 관련 비리를 폭로했으며, 광대 귀석(貴石)은 궁중에서 고관들의 매관매직을 풍자한 일도 있었다. 또한 광대들이며 대장장이인 고룡(高龍)은 술취한 장님 흉내를 잘 냈다고 한다. 따라서 광대의 ‘우희’는 부패한 양반관리를 비판하거나, 현실의 비정상적 인물을 우스광스럽게 흉내 내는 것 등을 두루 포함한다.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는 광대들의 비판 정신은 20세기 후반의 군사독재 시대에 마당극이나 창작 판소리를 통한 문화운동에서 다양하게 선보였다. 문진수의 ‘뫼비우스’를 보면서, 김지하의 창작판소리 ‘똥바다’와 ‘오적’, 또한 1세대 마당극 출신들의 치열한 시대 비판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21세기에 새롭게 깨어난 통렬한 말뚝이의 모습도 연상시킨다. 문진수는 21세기에 이런 시대비판적 광대의 모습을 이어받고 있다. 그는 남사당놀이 이수자 출신으로 춤, 농악, 소리, 재담 등을 두루 익힌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가무악의 가량을 단순히 익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광대의 시대정신을 고민하고 이를 예술혼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뫼비우스’의 작품 내용은 단순하다. 부제인 ‘흑사 위에 백사’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권력을 휘두르는 흑사의 횡포에 맞선 백사가 등장해서 응징한다는 단순한 설정이지만, 그는 다양한 연행요소와 뛰어난 춤과 재담으로 판을 이끌어 가고 있다. 30여분간 진행된 작품에서 관객들은 때로는 그의 멋진 춤에 감탄을 하고, 재담의 시대비판에 추임새로 적극 호응하면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근래에 이렇게 관객과 소통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받은 작품이 있었을까? 그가 말하는 흑사는 권력만을 쫓는 인물로서, 남에게 엄격하고 스스로 관대하며, 힘없는 자에게 온갖 횡포를 부리는 특권층이다. 그는 검은색 법복에 검은색 상모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처음에 흑사가 되어 긴 상모의 한쪽만을 쥐고 흔드는데 마치 검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무대 가운데에 앉아서 상모를 천천히 돌리면서 관객을 향해 거만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는 나중에 백사로 변신해서 이번에는 정의의 사도로서 흑사를 응징한 다음에 다시 긴 상모를 돌린다. 이때 돌리는 상모의 큰 원은 포용과 화합을 상징한다. 그는 다양한 연희요소를 바탕으로 판에 변화를 주고 시대풍자의 다양한 장치로 이용한다. 상모 줄은 짧거나 길게 사용하면서, 어떤 때는 사람을 해치는 검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거대한 원을 그리며 사람들을 감싸기도 한다. 심지어 줄넘기 줄로 사용하는 재치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뱀을 파는 약장사로 변신하기도 한다. 뱀이 지닌 정력을 통해 온갖 ‘사’자가 들어가는 목사, 박사, 변호사 판사, 검사 등의 비행과 무기력을 폭로하면서, 사회 특권층을 비판한다. 그는 다양한 고품격의 춤을 선보이며, 보는 이들의 넋을 빼앗는다. 탈춤 춤사위를 응용한 덧뵈기춤, 신칼대신무를 바탕으로 한 넋풀이춤, 상모를 이용한 다양한 상모춤 등의 높은 예술적 완성도의 춤을 선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냥 그의 다양한 춤만을 보아도 손색없는 한 마당의 공연이 된다. 중간에 '아시아1인극제-거창2023 '주제가인 ‘난리버꾸통’에 맞추어 춤을 추고, 익살스런 현대춤이나 어린이의 춤동작까지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무거운 주제를 다양한 연행요소를 섞어 가볍게 풀어가는 재주를 지녔다. 시대풍자의 무거움을 뱀장사로 변신해서 즐거움을 주고, 현대의 "따르릉 전화왔어요”라는 메시지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리기도 한다. 이렇게 관객의 한 사람으로 웃거나 분노하다가, 뒤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임진택이 김지하의 '똥바다'나 '오적'을 창과 사설 중심의 창작판소리로 풀어갔다면, 문진수는 ‘뫼비우스’에서 춤, 재담, 소리, 몸짓의 전통적 연행요소를 혼합해 새롭게 풀어간다. 그는 1인극의 새로운 도전과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혼자서 사물 반주에 맞추어 풀어가는데, 복색은 기본적으로 법복에, 흑사는 벙거지가 검은색, 백사는 흰색으로 구분하고, 상모를 소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근래에 전통 연희의 현대화에 여러 방식의 시도가 이루어진다. 기존에 ‘더광대’, ‘천하제일탈공작소’ 등은 전통연희를 바탕으로 시대 비판의식을 담아내거나, 아니면 무의미한 일상의 인물을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근래에는 외국 고전작품을 한국화하는 작업도 하며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진수는 시종일관 전통 연행요소를 바탕으로 통렬한 시대비판 의식을 담아내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전통연희의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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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날은 9월29일, "악학궤범을 편찬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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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부산 출신 '동백아가씨' 작곡가 백영호 평전 북콘서트부산근현대역사관은 오는 28일 오후 2시 인문학 복합문화공간 별관에서 '작곡가 백영호 평전 북콘서트'를 한다고 22일 밝혔다. 고 백영호 선생(1920~2003년)은 부산 서구 출신으로, 국민가요인 '동백아가씨'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대중가요 작곡가다. 이번 북콘서트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발전을 견인해온 백영호 선생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장남인 백경권씨가 아버지의 일대기를 직접 기록한 책이다. 내과 의사인 그는 음악과 부산을 사랑한 선친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낮에는 환자를 돌보고 밤에는 방대한 자료를 분류·정리하며 글쓰기를 계속해왔다. 2018년 12월부터 시작된 기록 작업은 5년여 끝에 360페이지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책에는 백영호 선생이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배경, 국내 최초 음반 판매 100만장 시대를 연 '동백아가씨'의 탄생에 얽힌 사연, 작곡자로서 전성기 시절 이야기 등 한국 현대 대중음악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백영호 선생은 부산에서 추억의 소야곡(1955), 해운대엘레지(1958)를 히트시킨 후 서울로 상경한 지 1년 만에 국민가요 동백아가씨(1964)를 작곡해 국내 최고 작곡가 반열에 오른 후 100여 곡을 히트시켰다. 울어라 열풍아(1965), 동숙의 노래(1966), 여자의 일생(1968) 등 200여 편의 영화 주제가와 아씨(1970), 여로(1972) 등 50여 편의 TV 드라마 주제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비롯해 수많은 작곡상을 받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북콘서트는 백영호 선생이 한국 대중가요계의 정상급 작곡가가 되기까지 과정을 저자가 직접 소개하는 1부와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특별공연하는 2부로 나눠 진행된다. 김기용 부산근현대역사관 관장은 "이번 행사는 대한민국 현대 대중가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고 백영호 선생의 생애를 살펴보고 대중가요의 메카 역할을 해온 부산의 역할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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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날은 4월 27일, "임금과 민중이 함께 부른 노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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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지은이는 정은미(아동문학가), 펴낸곳은 이지출판사, 펴낸날은 지난해 12월 25일이다. 표제시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 말, 말, 말만 가득한 신문이 말을 내려놓고 신문지가 되었다. 넘치는 김치통의 국물을 받아 주고 고구마, 감자 몸이 시들지 않게 싸 주고 깎아 낸 손발톱을 받아 주고 신발 속 고린내를 잡아 주고 깨지기 쉬운 것들을 보호하고 잠든 노숙자 얼굴을 덮어 주고 그리고 자신을 태워 누군가의 언 손을 녹여 주었다. 이 책은 정은미 작가가 세 번째 펴낸 어른과 함께 읽는 (동)시집이다. 한 편 한 편 오래 발효시켜 완성도를 높인 61편의 작품에는 좋은 시 한 편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촛불 하나 얹어 놓는 일이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작가는 그림을 직접 그린 그림책과 동시집을 내는 꿈을 이루기 위해 SI그림책학교와 그림책상상 그림책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배웠다. 이번 동시집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에 직접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 꿈은 이루었다. ‘신문’은 세상일을 전하는데 참 시끄럽다. 좋은 일보다 전쟁, 마약, 살인, 성폭행,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마치 부정적 사건 사고만 전하는 것이 신문의 역할인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물활론적인 사유를 통해 신문의 역할을 재조명하여 시로 빚어냈다. 신문지의 쓰임에 대한 진술이지만 그 속엔 숨겨 둔 세상의 따뜻함이 들어있다.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온갖 시끄러운 말들을 내려놓은 신문이 신문지가 되어 접히고 구겨지고 뭉치고 찢어지면서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동심을 통해 사유하게 한다. ‘안개’로 인해 막대그래프로 보여지는 아파트.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눈꺼풀 문’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하는 것과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초승달’ 속엔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단단한 ‘검정콩’ 하나를 나누려면 어떤 마음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이 머물게 한다. 작가는 동심과 유머로 아이들의 생활을 활기차게 표현하고 있다. 엄마를 잔소리쟁이, 마녀 등으로 표현하던 아이들이 막상 편지에는 ‘엄마, 많이많이 사랑해요’라고 쓴 아이들의 진짜 마음은 어떤 것일까? ‘회장’이라면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자꾸 왜 시키기만 하고 대장 노릇만 하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팔다리가 짧은 하마 별명을 가진 명희가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밥 먹을 때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묻는 1학년 인호의 배꼽 빠지는 대답 등에 웃음이 빵, 터진다. 작가는 무거운 주제인 죽음도 동심으로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빠의 죽음, 별똥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함께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누구나 시간 열차를 타고 내려야 하는 존재로 삶엔 늘 죽음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동심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어린이라고 늘 가볍고 재미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때론 가볍고 때론 재밌고 때론 그들의 유행을 따라가야 하지만, 때론 진지한 질문을 통해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넓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의 신념을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에 꾹꾹 담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따라서 일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 곁에서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린이 눈높이에서 궁금해하는 것들을 질문하고 생각하고, 철학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정은미는 1999년 ‘아동문학세상’. 2000년 ‘아동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의 동시문학상’, ‘청소년문화상’, ‘열린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으로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발간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마르지 않는 꽃향기’(2009), ‘호수처럼’(2015),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2023) 등이 있으며, ‘심술쟁이 악어 삐죽이’, ‘냉장고 속이 시끌시끌’ 등 많은 그림책에 글을 썼다.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강의하며 독서 보급에 힘써온 것을 계기로 2019년 ‘독서문화 진흥발전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장을 받았다. 이외에 SI그림책학교와 그림책상상 그림책학교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에 본인의 시와 그림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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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날은 12월1일, "서도소리 문화재 지정 보고서 제출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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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뇌에 들어간 컴퓨터 칩이 몰고 올 변화…신간 '뉴럴링크'(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인간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각종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며 2016년 '뉴럴링크'를 설립했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발상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숭이 등 동물들을 대상으로 칩 이식 실험을 진행하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렇게 7년 동안 고군분투한 끝에 지난해 5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았다. 머스크는 2024년부터 '링크'(Link) 이식 수술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뉴럴링크뿐 아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와 스타트업들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직접 개발하거나 관련 투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뇌공학 전문가인 임창환 한양대학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쓴 '뉴럴링크'(동아시아)는 BCI의 기본 원리부터 최신 현황, 가까운 미래에 이 기술이 미칠 영향 등을 설명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현재 브레인 칩이나 뇌파를 통해 지능을 높이는 뇌공학 기술은 급격히 발전 중이다. 베르니케 영역이나 배측전전두피질 같은 뇌 영역들을 활성화함으로써 집중력이나 암기력, 언어 이해 능력을 크게 향상하는 기술은 이미 수년 내에 인간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상태다. 또한 전기 자극 하나로 괴로운 기억을 지우거나 우울감을 줄이고, 나아가 쾌락마저 생산해 내는 심부 뇌자극 기계 역시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저자는 예쁜꼬마선충의 신경 네트워크를 컴퓨터에 저장하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을 비롯해 시각 정보 처리 과정을 기반으로 꿈이나 상상 속의 이미지를 복원하는 '드림 레코딩' 기술 등의 활용성을 짚어본다. 또한 BCI를 이용해 인터넷 서핑과 게임을 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술,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로봇 팔을 통해 감각을 느끼는 기술 등도 소개한다. 의학, 교육,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관련 산업 생태도 설명한다. 저자는 고령화 시대의 가장 큰 숙제인 치매를 비롯한 각종 뇌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멀게는 인류의 본능인 인위적인 진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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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날은 1월 21일(양력), "아악이 처음 연재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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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세상] 33년 걸친 한 우편배달부의 집념(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그는 작가가 아니었다. 건축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건축물을 보기 위해 세계에서 연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한적한 프랑스 남동부 시골, 오트리브(Hauterives)를 찾는다. 페르디낭 슈발(1836~1934)은 평생 걷고 또 걸은 우편배달부였다. 소중한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하루 약 30km 거리의 궁벽하고 척박한 길을 돌아다녔다. 어느 날 돌에 채 넘어졌다. 돌을 원망하다 돌을 자세히 본 그에게 영감이 떠올랐다. 이후 걷는 걸음마다 주변을 살피며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은 돌로 '짓기' 시작했다. 지으면서 건물의 구조와 형태를 상상하며 자기 머리를 채운 '이상'으로 향했다. 그가 지은 건축물에 '팔레 이데알 (Palais Ideal)', 즉 '이상의 궁전'으로 이름 붙였다. 건축물을 결코 단기간에 지은 것이 아니다. 직업에 충실하며 틈틈이 지었다. 궁전을 지은 시간은 무려 9만 3천여 시간, 약 33년이었다. 1879년에 돌을 모으기 시작해, 외벽을 짓는 데만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멈추지 않고 내부를 꾸며 마침내 1912년 꿈을 이뤘다. 가히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과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오늘날까지 굳건한 아름답고 튼튼한 성을 구축했다. 그의 집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건축물을 자세히 보면 안토니 가우디가 지은 '성 가족 성당'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할 만하다. 평범한 한 시골 집배원 노력에 가족과 주민들은 아마 찬사를 보내기보다 '미친놈' 취급을 했을 것이다. 점차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가족들도 인정하고 도왔다고 한다. 그는 상상을 북돋우기 위해 다른 문화 건축물도 공부했다. 프랑스식 궁전 모양뿐 아니라 이슬람, 중국, 인도 문화 건축물 양식까지 합쳤다. 그는 자신이 지은 이 건축물에 묻히고 싶었지만,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포기할 법한데, 그는 아니었다. 허가조건에 맞게 다시 8년에 걸쳐 자신과 가족을 위한 영묘를 완성했다. 불굴의 의지로 그와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궁전 벽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농부 자식으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온 나는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 중에서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 힘찬 정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또 죽겠노라" 유언으로 남긴 말도 의미심장하다. "나는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선 안 된다고 했던 나폴레옹을 떠올렸다. 그가 옳다" 한 인간이 품은 '자존(自尊)'의 힘은 이만큼 크다. 돌을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스스로 쌓이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고, 자기 생각이 형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세월은 그에게 전혀 장애물이 아니었다. 33년이라는 자존의 시간에 그 어떤 방해가 그를 막을 수 있었을까? 작고한 시인, 신현정에게 '길 위의 우체부'라는 시가 있다. '세상은 온통 나비 떼 나비 떼 정작 나는 행방불명이 되고 싶었다 민들레 옆에 자전거를 모로 눕히고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운다 아, 나는 선량했다' 이 시를 읽으며 슈발을 생각했다. 슈발은 선량했다. 슈발은 건축에 몰입하는 동안 행방불명이 되고 싶었다. 슈발에게 세상은 나비 대신 온통 돌이었고, 궁전이었고,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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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당신의 말하기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우리는 늘 말을 하고 있다. 만 1세 전후로 말문이 터진 이후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늘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냥 말만 한다. 말을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말을 일하게 만든다. 상대방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간 말이 그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때론 지갑도 열게 만든다. 법정에 불려 나온 용의자가 억울한 혐의를 벗는가 하면, 범죄가 드러나 심판도 받는다. 그뿐인가. 말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와 함께 말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마음을 울리며 의견을 명료히 전할 수 있는가? 유튜브 등 SNS를 보면 스피치(말하기) 관련 영상들이 꽤 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봐도 말하기 학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따라 하거나 학원에 다녔다고 말하기 실력이 향상됐을지는 의문이다. 늘어난 실력이 지속됐는지도 마찬가지다. 전부는 아니어도 고개를 젓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유는 강사가 말을 잘한다고 말 가르치기도 능숙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발음, 발성 등 음성 훈련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소통)의 일부분일 뿐이다. 검증되지 않는 정보와 파편화된 훈련을 해 봐야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전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통'의 문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말하는 상황을 접하면서 말하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필자가 수많은 기업에서 스피치 코칭을 하면서 느낀 것은 '셀프 코칭'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말을 하면서 스스로 코치해 발전하는 선순환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스피치의 셀프 코칭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바로 방향성과 의지다. 방향성이란 스피치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나의 말하기를 향상시킬 수 있을지 학문적, 이론적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다. 무턱대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연습해봐야 소용이 없다. 나의 말하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판단해 그에 맞는 훈련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비로소 말하기를 하면서 스피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의지다. 의지도 사실 방향성과 연관이 깊다. 스피치에 돈이 걸려 있거나, 승진과 관련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회로 여겨지면 열심히 연습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장기적, 선순환적 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방향성에 맞는 훈련이 중요하다. 그러면 성취 경험이 생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지를 갖추고 생활에서 훈련할 수 있다. 말하기는 자전거 타는 것과도 유사하다. 무조건 연습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어느 정도의 타기는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고급 수준까지는 오르기 어렵다. 또 이론을 아무리 안다고 해도 실제로 타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제대로 습득한 이론을 바탕으로 연습했을 때 성과가 있다. 필자는 2006년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국내 1호 박사 학위를 받았고 27년간 아나운서로 일하며 17년 동안 스피치 코칭을 해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스피치를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한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스피치, 말하기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통상 스피치라고 하면 나의 주장을 얼마나 논리적이고 막힘없이 말하는가에 집중해 있다. 즉 다변(多辯)과 달변(達辯)이 말 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스피치는 단순히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다. 가장 좋은 말하기는 상황과 때에 맞게 적절히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최고의 말하기일 수도 있다. 그걸 증명한 사람은 바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2011년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추도식 현장에서 현직 대통으로서 오바마는 스토리텔링(이야기)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며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얘기했다. 그 사건으로 죽은 가장 어린 사람은 9살 크리스티나였다. 그녀에 대해 언급하며 스피치를 이어가던 오바마는 유가족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돌연 침묵에 빠졌다. 무려 51초 동안. 다음날 미국 언론들은 '21세기 공감의 스피치'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 장소, 그 상황에서 어떤 미사여구로도 유가족을 위로하지 못한다. 같이 아파해 주는 게 최선이다. 종종 우리는 말을 잘하는 것은 내 입장에서 무언가를 많이,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걸로 여긴다. 하지만 100% 옳은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고의 스피치는 상황과 때에 맞는 내용으로 적절히 말하되, 때로는 침묵도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결국 말을 잘하기 전에 '소통'이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연재할 스피치 나침반은 바로 '소통력 5단계'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1단계는 '공감력'이다. 공감의 힘을 키워 상대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스피치의 기획, 구성, 전달 모든 과정에서 공감이 내재돼야 한다. 2단계는 '지식력'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하면 상대가 이해할 확률이 떨어진다. 나의 메시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연습해야 한다. 3단계는 '언어구사력'이다. 막힘없이 말할 수 있는 힘을 체계적으로 길러야 한다. 4단계는 '표현력'으로 언어와 비언어에 해당한다.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그 비중이 작아지고 있다. 좋은 말하기는 단순히 아나운서처럼 부드럽고 전달력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5단계는 '상황 통제력'(메타인지)이다. 말하는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대처하는 능력이다. 이 5단계는 여러분이 스피치를 연습할 때 방향성이자 스피치 이후 모니터하는 기준점이다. 아무쪼록 소통력 5단계를 통해 여러분의 답답한 스피치가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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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 그는 누구인가…'건륭 : 63년 4개월의 절대 권력'(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 건륭 : 63년 4개월의 절대 권력 = 장훙제 지음. 조유리 옮김. 청나라 건륭제의 통치 기간은 63년 4개월이다. 89세까지 살았던 건륭제는 인류 역사상 실질적인 권력 장악 기간이 가장 긴 군주였다. 90세까지 살았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에 이어 두 번째로 장수한 건륭제는 위로는 할아버지, 아래로는 고손자까지 자신을 포함한 7대를 이루었다. 책은 검소하면서도 사치스럽고, 인자함과 잔인함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성격을 가진 건륭제의 내면과 사생활을 비롯한 통치자로서 이룬 업적 등 성공과 실패를 다룬다. 건륭제가 나라를 다스린 50년간 중국의 인구수는 그 전보다 몇 배나 늘어 최대 3억명에 달했고, 국내총생산은 전 세계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한다. 건륭제는 변방을 정치적 관할구역에 포함하고 군사적으로 엄격하게 다스리는가 하면, 8만권으로 구성된 총서 '사고전서'를 만드는 등 전무후무한 문화적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60cm 정도의 키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륭제는 체력도 뛰어나 말 타고 활쏘기에 능했고, 평생 4만3천여수의 시를 써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태평성세에 취해 대신들에게 공물을 강요하면서 부패를 주도했고, 반체제 인사에 탄압을 가하는 '문자옥'을 많이 일으켰다. 또 사고전서를 만든 반면에 왕조에 불리한 내용을 담은 책 6만~7만권 불태우기도 했다. 프랑스대혁명, 영국의 산업혁명 등 서양 문명의 획기적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고집불통과 오만함으로 봉쇄 정책을 펴 외교적으로 고립되면서 청나라 몰락에 빌미를 자초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글항아리. 5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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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는 이렇게 말한다"한국 현대사에 또렷이 양각(陽刻)될 DMZ란 과연 무엇인가. 글자 뜻만으로 보면 DMZ란 Demilitarized Zone의 약자(略字)로서, 말 그대로 무장을 하지 않는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를 의미한다. 남·북한을 구분 짓는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을 경계로, 남쪽으로 2km의 거리에는 남방한계선(南方限界線)이 있고 북쪽으로 2km에는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이 있다. 따라서 DMZ의 폭(幅)은 총 4km인데,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쪽 지역에는 북한군의 GP(Guard Post)가 있고 남쪽 지역에는 아군(我軍)의 GP가 있는 분단의 현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DMZ는 참혹했던 한국전쟁을 증언하는 역사적 증표(證票)이자, 한국인 모두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비탄(悲歎)과 정한(情恨)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편 북한 남침 6‧5전쟁 이래 70년의 세월이 흐른 DMZ는 역설적으로 전쟁의 흔적(痕迹)은 사라지고, 무인지경(無人之境)의 싱그러운 대자연(大自然)만이 짙푸른 생명을 구가(謳歌)하고 있는 희한한 구역이기도 하다. 마치 전쟁의 폐허(廢墟)를 딛고 지구촌 일류국가(一流國家)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국운창성(國運昌盛)을 현시(顯示)하듯이! 에필로그 구름이 흐른다. 오늘도 DMZ 허공엔 구름이 흐른다. 구름이 간다. 오늘도 내 나라 분계선 창공에는 구름이 간다. 미련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슬픔도, 하얗게 표백된 청춘들의 백골 위로 무심한 구름은 흐른다. 선사(禪師)들의 법어 같은 육중한 정묵(靜默) 한 자락 남겨둔 채 뭉게뭉게 구름은 간다. 자식 잃은 홀어미의 아픔도, 지아비를 사별한 청상(靑孀)의 설움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유유히 담담히 DMZ에 구름은 간다. 구름 간 공간에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허무(虛無)만이 두둥실 넘실거린다. 그리고 그 허무의 공간 속에는 우리가 되새기며 풀어가야 할 역사적 화두(話頭)들이 호접(胡蝶)처럼 너울댄다. 바로 고도의 수수께끼처럼 나부끼는 암유(暗喩). 피할 수 없이 직면해야 할 우리 시대의 화두들이란 과연 무엇일까? 전쟁의 참극? 전쟁의 역설? 분단의 비극? 이산(離散)의 아픔? 폐허 속의 기적? 통일의 염원?……. 진공(眞空) 속을 유영(遊泳)하는 숱한 표제들 속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DMZ가 품고 있는 하고많은 설화들의 한 단면을 청사(靑史)의 대리석에 희미하게나마 내 나름으로 새겨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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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제1회울릉도전국영창대회, "울릉도아리랑의 전형성" 획득‘경창대회’와 전형성 전세계 41개 아리랑전승단체의 존재는 지남 12월 5일 강원도 정선에 건립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 10주년 기념비’ 기단에 명문화 됨으로써 확인이 된다. 그동안 이 아리랑 전승단체는 명예롭게도 자발적 결성체이다. 이는 명예로운 것이다. (사)울릉도아리랑보존회는 명예로운 울릉도아리랑의 자발적 전승단체이다. 비로소 울릉도아리랑은 제도적 전승 활로를 맞게 된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번 제1회 울릉도아리랑 경창대회 개최이다. 경창대회는 내적으로는 전승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타지 국악인들에게 존재를 알려 전국으로의 확산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1회인 만큼 다른 지역 아리랑경창대회 같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경비 등의 어려움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며 개최하는 용기가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니, 이 행사를 통해 보존회 회원들 간의 결속을 확인하고 해결능력을 점검하는 것으로 성과를 생각한다면 이 역시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울릉도아리랑은 문화재보호법에서 규정한 전형성을 입증받게 되었다. 울릉도아리랑이 독특한 지역성과 다양성을 입증하는 아리랑으로 평가를 받기 바란다. 첫 경창대회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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