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 명인 초대석 - 전통을 이어가는 전 예 주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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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인 초대석 - 전통을 이어가는 전 예 주 명창

  • 김지연
  • 등록 2008.09.11 11:52
  • 조회수 3,360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전해왔고 민족의 정서를 함축하며 세대를 이어 내려온 우리 문화 우리 것을 지키고 전승해온 예인들의 고단함을 사람들을 몰라주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전예주 명창이 아버지에 이어 전통을 이어 간다는 것은 우리 국악사에 또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박초월 소리바디를 이어받은 전예주 명창 전예주(1952~) 명창은 전북 정읍 출생으로 어릴적 정읍농악의 명인이자 아버님, 전사종 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소리 수업을 받았다. 1960년 이후 아버님을 따라 서울로 상경, 당시 서울국악예술중고등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으면서 종로 교동초등학교 2학년에 전학하면서 박초월 선생께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 전예주의 모친과 박초월 선생과는 각별한 의자매 사이로 지냈다. 미산 박초월 선생의 각별한 애정과 가르침으로 서울국악예술중고등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 고등학교)를 거처 졸업할 때 까지 대 내외 적으로 판소리는 전문으로 맡아 놓고 공연을 했다. 특히 선배인 사물놀이 김덕수 씨와 많은 해외공연들을 함께 했다. 아버님에게 물려받은 예술적인 끼와 타고난 기량은 교내에서도 하였고 일년에 서너번씩 명인 선생님들과 해외공연을 다녔다. 20세기는 여성 명창들의 활약이 돋보였던 시대였다. 김소희, 박록주, 박초월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명창들인데 이들은 새로운 ‘바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여성이 판소리 연창에 참여하면서 얻은 구체적 성과는 판소리 체험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분창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정서적 감응력이 더욱 확장되고, 창극으로의 변신도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계면 성음의 심화와 함께 예술적으로 더욱 세련된 소리로 발달되어 가고 있다는 점도 성과라 할 수 있다. 20세기 여성 명창이 판소리에 끼친 영향의 중심에 박초월 선생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흥보가, 수궁가>는 동편제 소리의 서편화 경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설의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생각된다. 60년대 당시 박초월 선생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사사받은 전예주 명창 또한 선생의 소리를 올곧게 지니고 있다. 2002년도에 발표한 박초월제 ‘흥부가’와 2004년도에 수궁가에서 보여준 계면조의 성음이 그것이다. 대통속 같은깊은 가슴속에서 나와 사람을 소름을 끼치게 만드는 소리, 특히 애원성을 할 때는 독특한 목으로 질러대기 때문에 빨려드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故 박귀희 선생이 정의한 “박초월 선생의 소리성음 또한 대통속에서 나오는 성음이라고 했다. 특히 그 소리에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뱃심으로 밀어 나오면서 내는 높은 소리는 고와서 판소리의 특징인 수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 같은 소리 맛이야 말로 명창의 소리다”라고 정의했다. 이런점에서 전예주 씨가 미산 선생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래서 75년 결혼과 함께 결혼생활에 충실하자. 미산 선생과 부친 전사종 선생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처음 결혼할 때는 국악활동을 계속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막상 시집을 가니 가풍이 엄하여 국악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그런 저런 애들 키우는 재미로 참을 수 있던 것이 세월이 흐르자 못견디게 그리웠다는 전예주 씨, “미산 선생님과의 명동 국립극장 발표 공연, 일본 공연의 창극 ‘흥부가’, ‘엑스포 70’ 한국관에서 6개월간 공연, 1971년 전황 선생님과 삿뽀로 올림픽, 1972년 인도 박람회, 1973년 호주시드니 박람회 같은 해외 무대에서의 추억들이 눈에 선하다며, 지금은 그때의 선택이 후회도 되지만, 미산 선생의 애정과 판소리를 향한 열정이 식지 않았기에 다시금 소리길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1988년 재기를 위한 오랜 인고 끝에 2001년’완도 장보고 축제’에서 종합대상인 국무총리 상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같은 해 ‘목포 국악대전’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상, 이후 2001년 ‘임방을 국악대전’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판소리 명창으로 국악계에 이름을 내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 동문이나 후배들을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게 되면서 과거의 화려한 경력을 추억하게 되었고,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바라보면서 오직 미산 박초월 소리바디를 올곧게 전승하리라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