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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受驗生)정책과 시험생(試驗生)대책은 국책(國策)의 당면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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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受驗生)정책과 시험생(試驗生)대책은 국책(國策)의 당면과제이다.

  • 관리자
  • 등록 2016.07.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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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受驗生)정책과 시험생(試驗生) 대책은 국책(國策)의 당면과제이다. 「수험생」과 「시험생」은 다르다. 수험생이란 중 고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학생을 말한다. 국악의 경우 수험생을 둔 가정에서는 걱정이 만만치 않다. 국중 예중, 국고 예고의 합격시까지 감당해야하는 수험생이나 학부모의 노력은 한마디로 형설(螢雪)의 공이다. 수험생 부모는 내 아이가 국악계 중고등학교만 합격을 해도 자랑한다. 거기다 공연이 있어 새 옷을 입히고 무대에라도 세우게 되면 무슨 급제라도 한 듯 이웃까지 소문을 낸다. 여기서 수험생도 부모도 힘든 피로를 씻는다. 가르친 선생님도 보람을 찾는다. 그것도 잠시, 그 위에는 대학이 기다린다. 단국대 서울대 수원대 용인대 중앙대 추계대 한양대 한예종 등 국악과를 둔 대학들이 다가온다. 이 때 긴장하는 수험생이나 부모들은 ‘합격’이라는 한마디에 마취 도취된다. 이 때 학교의 위상과 교수의 권위는 하늘같다. ‘메일속의 합격증’을 뽑는 날은 설날이자 해방의 날이다. 대학 졸업식이 있는 날 부모는 공부시킨 보상을 아이의 졸업장에서 받기라도 하는 냥 기념사진을 만들기에 바쁘다. 대학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수험생이 졸업생으로 달라졌을 때 뜻밖의 질문을 받는다. “너 어디로 가지?” 이 때 졸업생에게 붙는 이름이 있다. 바로 시험생(試驗生)이다. 수험생이 졸업을 하고나니 이제 시험생이 된 것이다. 극장 방송 계약직, 시립 도립, 시간수당 출강직 경쟁. 이들은 국악인으로 서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국악인은 ‘직업인’인가. 아니면 ‘예능인’인가.둘 다 “그렇다.”고는 대답할 수 없다. 그저 악기를 안고지고 다니면서 확실한 직업인과 예능인이 되고자 국가와 자신의 사이에서 ‘자기증명’을 하고 있는 시험생일 뿐이다.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이들 시험생들은 다루지 못하는 악기, 못하는 소리 몸짓이 없다.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들은 만능 국악인으로 달라지고 있다. 시험생들의 공연장을 가보면, 대관료 무료 또는 20만원, 객석50명, 입장료 2만원, 연고자는 무료, 관객은 모두 시험생들, 공연은 문화재급 연희를 무색케 한다. 그런데도 출연자는 모두 시험생들이다. 수입은 공수래 공수거. 돈 없는 자신들을 서로가 달래 준다. 그런데 시험생의 사고와 표현은 다르다. 국악의 경지를 무전여행으로 탐험하고 있다. 한편 ‘양악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자 겁도 없이 달려간다. 시험생들은 미혼이다. 결혼은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물을 수도 없다. 수입도 보장도 없는 처지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악의 앞산은 국가(國家)요 뒷산은 가정(家庭)이다. 시험생은 국가와 가정의 사이에서 국악으로 자신을 불사르고 있다. 이들을 방치할 것인가. 버려두어도 되는가. 30세 안팎의 그들이다. 시험생이 국가인(國家人)이 되고 가정인(家庭人)이 되는 날은 언제인가. 그러나 그들의 보장 없는 현 처지는 국가를 경영할 수도, 가정을 운영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수험생활 뒤 이러한 시험단계를 겪고 있는 국악청년들이 만약 가정이라는 뒷산에 올라 자신을 돌아본 나머지 국악의 길을 두고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끝에 악기 악보를 버린 채 다른 길로 간다면 인재 인력상실로 인한 국악계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국악 시험생이 보유한 그들의 실력과 노력은 국가와 가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충정과 열정을 갖고 있다. 다만 그들에게 국가가 열어주는 정책 대책 즉 국책(國策)이 없을 뿐이다. 국악계 중고대학으로 가는 수험생의 수가 얼마이고, 또 국가와 가정으로 가야하는 시험생의 수는 얼마인가. 수험생(受驗生)에 대한 정책과 시험생(試驗生)을 위한 대책은 국책수립(國策樹立)의 당면과제이다. 인재가 동력이다. 수험생과 시험생에 대한 국가시책이 절실하다. 국악을 직업으로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는 시험생들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수험생」과 「시험생」은 다르다. 수험생이란 중 고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학생을 말한다. 국악의 경우 수험생을 둔 가정에서는 걱정이 만만치 않다. 국중 예중, 국고 예고의 합격시까지 감당해야하는 수험생이나 학부모의 노력은 한마디로 형설(螢雪)의 공이다. 수험생 부모는 내 아이가 국악계 중고등학교만 합격을 해도 자랑한다. 거기다 공연이 있어 새 옷을 입히고 무대에라도 세우게 되면 무슨 급제라도 한 듯 이웃까지 소문을 낸다. 여기서 수험생도 부모도 힘든 피로를 씻는다. 가르친 선생님도 보람을 찾는다. 그것도 잠시, 그 위에는 대학이 기다린다. 단국대 서울대 수원대 용인대 중앙대 추계대 한양대 한예종 등 국악과를 둔 대학들이 다가온다. 이 때 긴장하는 수험생이나 부모들은 ‘합격’이라는 한마디에 마취 도취된다. 이 때 학교의 위상과 교수의 권위는 하늘같다. ‘메일속의 합격증’을 뽑는 날은 설날이자 해방의 날이다.대학 졸업식이 있는 날 부모는 공부시킨 보상을 아이의 졸업장에서 받기라도 하는 냥 기념사진을 만들기에 바쁘다. 대학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수험생이 졸업생으로 달라졌을 때 뜻밖의 질문을 받는다. “너 어디로 가지?” 이 때 졸업생에게 붙는 이름이 있다. 바로 시험생(試驗生)이다. 수험생이 졸업을 하고나니 이제 시험생이 된 것이다. 극장 방송 계약직, 시립 도립, 시간수당 출강직 경쟁. 이들은 국악인으로 서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국악인은 ‘직업인’인가. 아니면 ‘예능인’인가. 둘 다 “그렇다.”고는 대답할 수 없다. 그저 악기를 안고지고 다니면서 확실한 직업인과 예능인이 되고자 국가와 자신의 사이에서 ‘자기증명’을 하고 있는 시험생일 뿐이다.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이들 시험생들은 다루지 못하는 악기, 못하는 소리 몸짓이 없다.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들은 만능 국악인으로 달라지고 있다. 시험생들의 공연장을 가보면, 대관료 무료 또는 20만원, 객석50명, 입장료 2만원, 연고자는 무료, 관객은 모두 시험생들, 공연은 문화재급 연희를 무색케 한다. 그런데도 출연자는 모두 시험생들이다. 수입은 공수래 공수거. 돈 없는 자신들을 서로가 달래 준다. 그런데 시험생의 사고와 표현은 다르다. 국악의 경지를 무전여행으로 탐험하고 있다. 한편 ‘양악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자 겁도 없이 달려간다. 시험생들은 미혼이다. 결혼은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물을 수도 없다. 수입도 보장도 없는 처지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악의 앞산은 국가(國家)요 뒷산은 가정(家庭)이다. 시험생은 국가와 가정의 사이에서 국악으로 자신을 불사르고 있다. 이들을 방치할 것인가. 버려두어도 되는가. 30세 안팎의 그들이다. 시험생이 국가인(國家人)이 되고 가정인(家庭人)이 되는 날은 언제인가. 그러나 그들의 보장 없는 현 처지는 국가를 경영할 수도, 가정을 운영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수험생활 뒤 이러한 시험단계를 겪고 있는 국악청년들이 만약 가정이라는 뒷산에 올라 자신을 돌아본 나머지 국악의 길을 두고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끝에 악기 악보를 버린 채 다른 길로 간다면 인재 인력상실로 인한 국악계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국악 시험생이 보유한 그들의 실력과 노력은 국가와 가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충정과 열정을 갖고 있다. 다만 그들에게 국가가 열어주는 정책 대책 즉 국책(國策)이 없을 뿐이다. 국악계 중고대학으로 가는 수험생의 수가 얼마이고, 또 국가와 가정으로 가야하는 시험생의 수는 얼마인가. 수험생(受驗生)에 대한 정책과 시험생(試驗生)을 위한 대책은 국책수립(國策樹立)의 당면과제이다. 인재가 동력이다. 수험생과 시험생에 대한 국가시책이 절실하다. 국악을 직업으로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는 시험생들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본지고문 하정효 ※ (영) IBC선정, 세계 100대 위인 ※ (미) 인류종족연합(MAWRU) 총재 ※ (러) 모스크바 사범대학교 명예교수 ※ 재단법인 세계총령무술진흥회 이사장 ※ 국제평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