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7 (월)
우리는 늘 말을 하고 있다. 만 1세 전후로 말문이 터진 이후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늘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냥 말만 한다. 말을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말을 일하게 만든다. 상대방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간 말이 그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때론 지갑도 열게 만든다. 법정에 불려 나온 용의자가 억울한 혐의를 벗는가 하면, 범죄가 드러나 심판도 받는다.
그뿐인가. 말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와 함께 말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마음을 울리며 의견을 명료히 전할 수 있는가?
유튜브 등 SNS를 보면 스피치(말하기) 관련 영상들이 꽤 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봐도 말하기 학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따라 하거나 학원에 다녔다고 말하기 실력이 향상됐을지는 의문이다. 늘어난 실력이 지속됐는지도 마찬가지다. 전부는 아니어도 고개를 젓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유는 강사가 말을 잘한다고 말 가르치기도 능숙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발음, 발성 등 음성 훈련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소통)의 일부분일 뿐이다. 검증되지 않는 정보와 파편화된 훈련을 해 봐야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전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통'의 문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말하는 상황을 접하면서 말하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필자가 수많은 기업에서 스피치 코칭을 하면서 느낀 것은 '셀프 코칭'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말을 하면서 스스로 코치해 발전하는 선순환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스피치의 셀프 코칭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바로 방향성과 의지다. 방향성이란 스피치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나의 말하기를 향상시킬 수 있을지 학문적, 이론적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다. 무턱대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연습해봐야 소용이 없다. 나의 말하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판단해 그에 맞는 훈련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비로소 말하기를 하면서 스피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의지다. 의지도 사실 방향성과 연관이 깊다. 스피치에 돈이 걸려 있거나, 승진과 관련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회로 여겨지면 열심히 연습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장기적, 선순환적 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방향성에 맞는 훈련이 중요하다. 그러면 성취 경험이 생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지를 갖추고 생활에서 훈련할 수 있다.
말하기는 자전거 타는 것과도 유사하다. 무조건 연습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어느 정도의 타기는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고급 수준까지는 오르기 어렵다. 또 이론을 아무리 안다고 해도 실제로 타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제대로 습득한 이론을 바탕으로 연습했을 때 성과가 있다.
필자는 2006년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국내 1호 박사 학위를 받았고 27년간 아나운서로 일하며 17년 동안 스피치 코칭을 해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스피치를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한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스피치, 말하기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통상 스피치라고 하면 나의 주장을 얼마나 논리적이고 막힘없이 말하는가에 집중해 있다. 즉 다변(多辯)과 달변(達辯)이 말 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스피치는 단순히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다. 가장 좋은 말하기는 상황과 때에 맞게 적절히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최고의 말하기일 수도 있다. 그걸 증명한 사람은 바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2011년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추도식 현장에서 현직 대통으로서 오바마는 스토리텔링(이야기)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며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얘기했다. 그 사건으로 죽은 가장 어린 사람은 9살 크리스티나였다.
그녀에 대해 언급하며 스피치를 이어가던 오바마는 유가족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돌연 침묵에 빠졌다. 무려 51초 동안. 다음날 미국 언론들은 '21세기 공감의 스피치'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 장소, 그 상황에서 어떤 미사여구로도 유가족을 위로하지 못한다. 같이 아파해 주는 게 최선이다.
종종 우리는 말을 잘하는 것은 내 입장에서 무언가를 많이,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걸로 여긴다. 하지만 100% 옳은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고의 스피치는 상황과 때에 맞는 내용으로 적절히 말하되, 때로는 침묵도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결국 말을 잘하기 전에 '소통'이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연재할 스피치 나침반은 바로 '소통력 5단계'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1단계는 '공감력'이다. 공감의 힘을 키워 상대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스피치의 기획, 구성, 전달 모든 과정에서 공감이 내재돼야 한다.
2단계는 '지식력'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하면 상대가 이해할 확률이 떨어진다. 나의 메시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연습해야 한다. 3단계는 '언어구사력'이다. 막힘없이 말할 수 있는 힘을 체계적으로 길러야 한다.
4단계는 '표현력'으로 언어와 비언어에 해당한다.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그 비중이 작아지고 있다. 좋은 말하기는 단순히 아나운서처럼 부드럽고 전달력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5단계는 '상황 통제력'(메타인지)이다. 말하는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대처하는 능력이다. 이 5단계는 여러분이 스피치를 연습할 때 방향성이자 스피치 이후 모니터하는 기준점이다. 아무쪼록 소통력 5단계를 통해 여러분의 답답한 스피치가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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