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1 (수)

[Pick리뷰] 한반도의 음악, 이 시대 ‘반도’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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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한반도의 음악, 이 시대 ‘반도’의 음악

‘반도(BANDO)’의 첫 정규 공연
강, 섬, 논, 길 한국의 지형적 특징 소재
“눈빛과 호흡, 미소로 완벽한 합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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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시문, 거문고 황진아, 색소폰 김성완, 드럼  강전호

 

11월 24일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한국 전통 음악의 기원을 알리는 팀 ‘반도(BANDO)’의 첫 정규 공연이 열렸다. ‘동시대 전통예술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2023 Project contemporary 문밖의 사람들:門外漢’ 선정 기획공연으로,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가는 전통예술의 동시대성을 그려냈다. 반도는 "우리 전통 음악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팀이다. 이 무대에서는 네 명의 연주자가 한반도라는 공간적 공통점에서 새로운 한국음악의 실마리를 찾아내 음악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이 시대의 음악을 그려냈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시도를 위해 설립된 곳으로, 갤러리, 라이브홀 등의 시설에서 전시와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작업을 담아내고 있는 공간이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은 연주자의 연주를 거의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친근했고, 푸르스름한 조명을 받은 악기들이 무대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회장을 방불케 하는 느낌 있고 아늑한 무대에는 모던하고 현대적인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왔고, 곧 네 명의 연주자들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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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연주하는 이시문

 

연주는 기타에 이시문, 거문고에 황진아, 색소폰에 김성완, 드럼에 강전호가 함께 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신만의 활동을 펼쳐 온 네 명의 연주자들은 바다, 강, 섬, 논, 길 등 한국의 지형적 특징을 소재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로 연주된 곡은 ‘동해’였다. 반도의 팀 이름과도 잘 어울리는 곡으로, 힘차고 강렬한 사운드로 연주를 시작함과 동시에 공연장 무대의 3면(무대 중앙, 좌측, 우측)이 파도치는 바다 영상으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현란한 미디어 아트 덕분에 무대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음악은 색소폰이 주선율이 되어 자유롭게 연주하고, 그 뒤에 다른 악기들이 힘 있게 받쳐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색소폰이 주가 된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파도치는 영상 속을 헤엄치다 보니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영화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가 떠올랐다. 그만큼 열정적이던 곡 ‘바다’는, 이리저리 휘몰아치며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다의 풍경을 절로 그려냈다.

 

바로 이어 연주된 ‘안개’는 거문고와 색소폰의 여린 사운드가 반복되는 리프와 함께 몽환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이 흐릿한, 안개 낀 것 같은 미디어 아트 영상이 무대를 감쌌고, 휘모리장단을 연주하는 드럼, 독특한 사운드의 색소폰 솔로에 거문고와 일렉 기타가 리듬 형태로 얹히며 뿌옇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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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연주하는 김성완

 

이 공연에서는 중간중간 연주자들이 번갈아 가며 토크를 진행했다. 두 곡이 끝난 후 거문고 연주자 황진아가 마이크를 잡고 반도 팀을 소개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땅에 비슷한 정서로 함께 사는 한국인의 ‘현재의 음악’을 추구한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욱 편안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뭐로 가도 서울만’이라는 곡은 자신의 만취 상태를 그리며 감상해 보라는 멘트와 함께 유쾌하게 시작되었다. 선명한 색감의 네모난 색종이 같은 조명이 연주자들을 하나하나 비추었고, 이는 마치 네이버 온스테이지(onstage) 무대를 보는 듯 모던하고 예술적이었다. 그들은 ‘4+3+3+2’의 리듬 소박을 반복하며 강세를 가지고 선율을 쪼개거나 이어 자유롭게 연주했다. 악기는 각자 솔로를 연주하다가도 다른 악기의 솔로에 맞추어 주고, 절뚝거리는 리듬 소박을 가져가다가도 하나 된 합을 맞추어 연주함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한국적 리듬, 선율의 자유롭고 재미있는 상·하행 진행을 듣고 있자니 유쾌하고 여유로운 서울의 밤이 연상되며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네 번째 무대는 ‘남쪽 섬’으로, 수천 개의 섬이 있는 한반도 남쪽을 그리며 ‘열매 따는 소리’라는 노동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곡이다. 경쾌한 리듬과 일렉 기타의 명랑한 코드 진행 위에 색소폰의 선율과 거문고의 현란한 솔로가 얹어졌다. 관객들은 저마다 리듬을 타며 그루비한 음악에 몸을 맡겼다. 이 곡에서 일렉 기타는 장조(major)를 주로 연주했고, 색소폰은 그와 반대로 단조(minor) 선법을 베이스로 연주하여 서로 다른 이질감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매력을 선보였다. 컬러풀한 패턴의 영상과 함께 음악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산을 따라 사는’은 거문고의 피치카토 연주로 시작됐다. 중후하고 자연 친화적인 낮은 거문고 소리가 무대를 잔뜩 감싸며 차분한 산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무대는 특히 미디어 아트가 음악과 잘 어울렸는데, 흑백으로 된 많은 나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나의 산을 만들어 낸 것이 흥미로웠다. 색소폰의 공기 반 소리 반의 오묘하고 매력적인 사운드에 일렉 기타의 부드러운 소리가 섞이며 신비로운 산의 장관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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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연주하는 황진아

 

‘강’은 관객들의 집중도를 최대로 끌어올린 곡이었다. 색소포니스트 김성완은 강을 생각하면 거리감이나 인생의 시간이 떠오른다며, 강의 깊고 고요함을 색소폰으로 표현하였다. ‘강’은 색소폰의 끊이지 않는 하나의 음정으로 시작했다. 지직거리며 균등하지 않은 사운드의 질감과 흔들림 가운데에도 굳건한 지속음이 아름답게 연주됐다. 고요하고 편안한 강물의 물결 영상 아트는 아주 조용한 어느 강변으로 데려다주었고, 그 앞에 앉아 시를 읽는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다음으로 연주된 곡은 논밭을 가르는 초록빛 영상, 조명과 함께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날 부딪히는 농기구 소리와 농부의 노랫소리를 연상시키는 ‘여름 논’이었다. 드럼은 하이햇(hi-hat)으로 농기구 소리를 표현해 연주하며 흥미로운 리듬꼴을 들려주었다. 또 일렉 기타의 선법이 특히 독특했는데, 단조(minor) 기반의 몽환적인 색이 가미된 음을 추가하여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반도 팀은 이렇듯 곡마다 예상하지 못할 그들만의 음색과 코드, 리듬 형태 등을 자유롭게 구현해 냈다. 뻔하지 않고 독특하면서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 그들의 음악은 대중적이고 현대적이며, 또 한국적이었다.

 

한반도를 돌아다니는 밴드 반도의 모습을 그려낸 마지막 곡 ‘길’을 끝으로 무대는 막을 내렸다. 반도는 그들만의 뚜렷한 색채와 자유로운 연주로 완성도 높은 음악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무대에서 음악보다 더욱 눈에 띄었던 건, 그들의 단합력이었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 주며 존중하는 모습은 토크와 음악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솔로 악기에 자리를 내어주고 양보하며 연주로 뒷받침해 주고, 눈빛과 호흡, 미소로 완벽한 합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 처음 관객에서 선보여진 밴드 반도의 무대는 다채로운 미디어 아트와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더해져 이 시대의 한국 음악이 나아갈 가치 있는 가능성을 끌어냈다. 그들이 앞으로 보여 줄 그들만의 예술, 한반도의 예술을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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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연주하는 강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