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
지금과 같이 정치가 어지럽고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문화로써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신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메시지는 그래서 가슴에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 역할을 ‘문화’가 담당해야 한다. 정부 부처 중에서도 문체부가 당연히 그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국민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것 역시 국민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문화수준을 정치문화 수준에서 소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를 대상으로 한 정기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는 신선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위에서 제기한 정치문화 수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 장면들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신임 유인촌 장관의 국감장에서의 답변은 마치 10여 년 동안 깊은 산 속에서 도를 닦고 내려온 도사같이 해박한 문화적 소양을 거침없이 드러내 보였다. 많은 공감대를 불러온 유인촌 장관의 발언은 여당 의원은 물론, 야당의원에게서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유 장관은 평소의 지론인 "문화가 광범위한 분야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범부처적인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문화의 영향력을 강조함으로써 야당 의원들에게서 많은 공감대를 끌어내었다. 마치, 문화와 문명사적 테두리 안에서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모든 분야를 바라본다는 이어령 선생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고독감과 사회적 고립' 문제에 대해 문체부의 대책을 묻자, 유 장관은 '문화'를 국정과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뉴시스 기사 참조)
이용호 의원의 질의에 대해 유 장관은 "문체부의 문화 관련 일들이 예전에 제가 장관할 때보다 훨씬 넓어져 있고 문화가 해당 안 되는 분야가 없다"고 밝혔다. 타 부처에서도 문화를 실질적인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다. 유 장관은 MB정부의 장관 퇴임 이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약 7년 정도 법무부의 소년원에서 청소년들에게 연극을 지도하고, 자전거 여행도 함께 다닌 결과 재범률이 실제로 낮아지는 경험을 하였다.
유장관은 "문화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국회가 도움을 주시면 이러한 고독감 문제도 범부처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마무리 발언을 하자 야당 의원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고독감과 사회적 고립' 문제로 인한 서현역 살인 사건이나 지하철 난동 등 은둔형 외톨이 범죄가 증가함으로써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때에 ‘문화’로써 그러한 문제를 정책에 반영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유인촌 장관의 언급은 중요한 시사점(示唆點)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관련하여, 2013년도에 필자가 교육부에서 ‘국악학생오케스트라 사업단’을 지정 받아 운영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국악학생오케스트라의 단원들 대부분은 조손(祖孫) 가정과 결손(缺損) 가정의 아이들 등으로서 불우한 청소년들을 우선 채용하는 규정에 의해 운영되었다. ‘서양오케스트라 사업단’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총괄 지휘했고, ‘국악학생오케스트라 사업단’은 필자가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의 교수로 재직 시 교육부의 지정을 받아 운영하였다. 이 당시의 업적으로 필자는 ‘예술교육 활성화 공로’가 인정되어 교육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국악학생오케스트라 사업은 교육부가 공교육을 통해 균등한 음악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국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자신의 음악적 잠재 능력 및 감수성을 계발하고 신장할 수 있도록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를 지원하는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국악학생오케스트라 사업단은 전국에서 국악학생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는 60개(초등학교 32개교, 중학교 15개교, 고등학교 13개교) 학교를 대상으로 현장 컨설팅, 지도교사 역량강화 연수, 악보뱅크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각 학교에서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교육부의 학생오케스트라 사업단 운영 프로그램은, 베네수엘라의 오케스트라 음악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벤치마킹하여 시행한 것이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총과 마약이 넘쳐나던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경제학자이며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Jose Antonio Abreu, 1939. ~ 2018,) 박사에 의해 빈곤층을 포함한 불우 청소년들을 구출하기 위한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이다.
‘엘 시스테마’의 프로그램은 1977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국제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국제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베네수엘라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마약과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악기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오케스트라 훈련을 실시해 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음악교육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브레우는 2009년 스웨덴 왕립음악원으로부터 ‘음악의 노벨상’인 폴라음악상을 받았고, 2010년에는 제10회 서울펑화상을 수상하였다.
‘국악학생오케스트라 사업단’의 프로그램은 ‘국악진흥법’을 통해서 재시행은 물론, 더욱 활성화시키는 정책으로 반영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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