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Pick리뷰] ‘奇譚 夜行2 망혼일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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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奇譚 夜行2 망혼일 축제’

남산국악당, 신개념 극장 투어형 공연
‘연희점(店)추리’ 연희예술 창작팀
“그리운 이의 이름을 그리며 추억하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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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목)부터 19(토)까지,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관객이 직접 참여하여 이야기를 완성하는 신개념 극장 투어형 공연, 남산골 밤마실 ‘기담야행2 : 망혼일 축제’가 펼쳐졌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남산골 밤마실’은 신라 시대 귀신들을 무사히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지냈던 ‘망혼일 축제’를 모티브로 한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망혼일’을 잘치러야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공덕이 돌아가는 것이라 믿었던 옛 전통을 재해석하여 현대적으로 선보인 공연이다. 

 

이 공연의 대본을 쓴 정은영 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좋아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 이 대본을 쓰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이렇듯 누군가를 놓고 떠나는 자의 망설임과 아쉬움 못지않게 누군가를 잃어본 자들이 슬픔은 이 땅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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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소나기가 내렸지만, 공연 시작 직전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맑아진 날씨 덕에 안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관객들은 남산국악당 안쪽 마당에 놓인 캠핑 의자에 하나둘 착석하기 시작했다. 

 

홍보 글이나 리플렛을 통해서는 따로 타겟 층이 확실히 인식되지 않아 몰랐는데, 관객의 절반 이상은 어린이들이었다. 아마 어른 대상의 공연으로 알고 온 관객들은 조금 당황했을 것도 같았다. 공연 시작 전 티켓 배부처에서는 삼색실을 단 사람 모양을 한 ‘넋종이’와 팔찌를 나눠주었다. 팔찌는 빨강, 노랑, 파랑 총 세 가지로 인원수를 나누어 분배해 주었고, ‘넋종이’에는 사랑했던 망자의 이름을 추억하며 쓰라고 하여 관객들은 각자 그리운 이름을 정성스레 종이에 새겨 넣으며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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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부터 상기된 목소리로 배우들이 인사하며 뛰어나왔다. 이들은 일 년에 딱 하루, 저승의 문이 열리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이 이승으로 쏟아지는 날, 귀신들을 무사히 극락으로 보내주는 일을 하는 '삼도천 엔터테인먼트'를 맡은 배우들이었다. 관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반갑게 인사하는 이들 뒤로 ‘연희점(店)추리’ 연희예술 창작팀이 사자탈을 들고, 음악과 함께 걸어 나왔다. 


북청사자놀음의 반주로 사용되는 퉁소 연주와 함께 등장한 이들은 모두 신묘하고 유쾌한 귀신 분장을 한 채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신명나는 음악과 함께 마당놀이 형태로 유쾌한 이야기를 나눈 후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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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관객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는 공연으로, 시작부터 다 함께 줄을 지어 남산국악당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계단에는 드라이아이스가 깔려 있고, 붉고 푸른 조명과 종이로 된 소품들이 사방에 걸려있어 어딘가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야외 마당이었는데, 이곳에 각자 받은 사람 모양의 종이를 긴 줄에 삼색 실을 이용하여 달았다.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없지만 산 사람들의 그리움이 간절히 담긴 그 이름들은 모두 같은 하늘을 보고 매달려 있었고, 관객들은 함께 서 망자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한옥 마당의 작은 공간, 습한 여름 밤공기와 함께 그 자리에서 그리운 자들을 생각하는 시간. 대금과 징, 장구가 시나위를 반주하는 가운데 누군지 모르는 옆 관객들과 함께, 누군지도 모를 망자들의 이름을 한 공간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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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들의 이름을 한 곳에 매단 후 빨강, 노랑, 파랑 팀을 나누어 이동해 간 본 무대의 문은굳게 닫혀있었다. 지난해 한번 망혼일을 넘겨 염라대왕이 화가 나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 이때 붉은 조명과 긴장되는 음향을 활용하고, 굿에 사용하는 방울을 흔들며 대취타 반주가 깔려 어딘가 압도당하는 느낌을 주었다. 


관객들은 그 분위기에 푹 빠져 있었고, 삼도천 엔터테인먼트 직원을 연기한 배우들은 그들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혼령들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동시에 산자의 불행을 막는 축제를 함께 준비하자며관객들을 팀별로 나누어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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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남산국악당 건물의 계단을 내려오며 도착한 곳은 분장실, 연습실이었다. 공연을 보러 왔는데 연습실까지 오게 되다니. 처음으로 겪는 형태의 공연이었다. 팀별로 나뉘어 연습실에 들어가니 연희꾼이 아기동자 분장을 하고 관객들을 맞았다. 붉은 팔찌를 두른 팀원들은 연습실에 놓인 소고를 들고 아기동자 연희꾼에게 간단한 소고춤을 배웠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장구 반주에 맞추어 소고를 치며 전통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관객들은 즐겁게 소고를 쳤고, 그 후 무대 뒤편으로 이동했다. 무대가 열리기 전, 무대 뒤편에 모두 앉아 무대가 열리길 기다렸는데, 원래 관객석에서만 무대를 바라볼 수 있는 관객의 역할이 무대 뒤와 무대 위를 경험해 직접 공연하는 역할로 바뀌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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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열리고, 관객석 의자에는 넋종이들이 붙어있었다. 혼령들이 무대를 보러 온 컨셉으로 흥미롭고 재치 있는 연출이었다. 혼령들을 위한 공연으로 관객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연습실에서 각각 배워 온 공연을 선보였다. 


소고춤과 더불어 사자 탈춤, 한삼을 끼고 추는 춤까지. 관객들과 배우들이 함께 혼령들을 위한 무대를 마치고, 성주풀이, 씻김굿 반주와 함께 줄에 매단 넋종이를 한데 모아 다 함께 혼령들이 가는 길을 배웅하며, 다 같이 앞마당으로 나와 인사하며 공연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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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야행’은 한옥 형태의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민속적인 정취를 몸으로 느끼고, 무대와 무대 뒤를 경험하며 ‘공간’이 주는 색다른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과, 눈앞에서 배우들의 연주와 연기를 생생하게 경험하고 직접 공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공연과는 확연히 구별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타깃(target) 설정이 모호했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로 인해 어른들이 마음껏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반면, 망자를 떠올리고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진지한 연출은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급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로 느껴졌을 수 있다. 


다양한 걸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고자 한 것은 좋았으나, 그만큼 공연이 추구하는 전체적인 관객 연령대가 통일되지 않은 느낌이었기에 정확한 타깃을 설정하고 그에 맞춘 기획이 이루어졌다면 더 확실하고 특색있는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던 관객들은, 그리운 이름, 그리운 얼굴들이 가는 길을 배웅해 주며 많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망자를 떠올리고, 추억하며 만나는 시간 가운데 뜨거움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그 여름밤 ‘기담여행’은 모두에게 따뜻하고 그리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