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Pick리뷰] 광장에 울려 퍼지는 실험적 사운드 ‘광광 굉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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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광장에 울려 퍼지는 실험적 사운드 ‘광광 굉굉’

9월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시대를 선도해 온 아티스트들의 실험
“이미지와 음악 형태 모호? 그래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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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 세종 컨템퍼러리 시즌 ‘Sync Next - 싱크 넥스트의 광광굉굉’ 공연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펼쳐졌다. ‘Sync Next - 싱크 넥스트는 매년 여름 세종문화회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예술 무대다무용연극오페라뮤지컬국악미디어아트 등을 통해 시대를 선도해 온 아티스트들의 실험성을 엿볼 수 있었다

 

첫 해에 이어 올해는 일렉트로니카인디, R&B, 트로트락 등 다채로운 음악 장르와 스트릿댄스마임설치미술까지 대중성과 다양성이 더욱 확장된 무대로, 7월부터 시작되었으며 9월 10일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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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세상에 그어져 있는 무수한 경계들을 넘나들고 때로 그사이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가치로 기획된 이 무대는 독보적인 매력과 남다른 관점으로 자신만의 새로움을 찾고자 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여 색다른 무대를 선보인다

 

광복절인 8월 15일 무대에 오른 공연은 성시영x이일우x황민왕-광광,굉굉으로민중의 목소리가 모이는 역사적 공간인 광화문 광장이라는 공간에 흐르는 과거와 현재를 빛과 소리를 통한 실험적 도전으로 나타내고자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모든 곡이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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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인 서울시국악관현악단 피리 연주자 성시영을 비롯하여 5인조 국악 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와 중요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 이수자인 황민왕이 함께 무대를 기획하였고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김지현(생황윤지현(가야금), 미디어 아티스트 윤제호가 협업하여 더욱 다채로운 색을 내고자 하였다

 

성시영과 이일우황민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들이며이들은 모두 경계와 장르를 넘어서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연주자들로 오랜 기간 국악계에서 각자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기에 세 연주자가  모여 만들어 낸 이번 단독 공연이 더욱 기대되었다.


공연 시작 전세종문화화관 S씨어터에는 이 무대가 어떤 소리로 채워질지 모르는 고요한 백색소음만이 감돌고 있었다연주자들이 자리하고첫 무대가 시작되었다곡목은 목소리’. 스크린에 뜬 해설에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다 함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건가 싶을 정도로 큰 소리의 태평소 세 대가 내는 고음이 귀를 찔렀다실제로 관객석의 관객들은 모두 움찔 놀랐고태평소의 어지러운 고음은 무질서하게 서로 섞여 들었다금관 악기의 찌르듯 쏘는 소리가 온몸의 세포를 쭈뼛쭈뼛 서게 하는 듯 하는 그 느낌 그대로 광장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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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모임에 쓰이는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의 광장에서는 정치사회환경개인사를 비롯한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모두 받아내고서로 다른 의견들이 부딪치거나 하나 된다이 무대에서는 억울함과 즐거움흥과 한 등 모든 감정을 드러내는 광장의 이미지를 국악기 중 가장 존재가 잘 드러나는 태평소로 선택하여 연주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고 늘 시끌벅적한 광장의 이미지를 태평소로 연주한 것은 언뜻 직관적이기도 했지만동시에 무질서하기도 했다그런 무질서함에서 광장의 질서를 지켜낸 건 가야금과 장구였다태평소 세 대가 서로 다른 고음을 불어낼 때장구는 기본 장단을 끝까지 지켜 나갔고가야금도 그 장단 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반복적인 리듬 형태를 연주했다그 균형감 있는 연주는 태평소와 함께 연주되며 무질서와 질서가 한데 어우러졌다.


두 번째 무대였던 숨쉬다는 피리가 조용히 연주하며 시작했는데마치 숨을 헐떡이는 듯한 소리의 반복적인 선율이 상·하행으로 반복되었다이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일우는 "화아아아아아 하고 불어달라거나, "목소리를 흐느끼듯이숨을 쉬듯이” 피리를 불어달라는 추상적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아마 이 부분도 그런 의성어와 의태어가 다양하게 쓰인 구간이 아닐까 짐작한다

 

제목 숨쉬다가 그대로 반영된 숨 쉬듯 불어내는 피리 소리를 듣다 보니 그 호흡을 따라 함께 숨을 쉬게 되며 음악에 빠져들었다이때 조명은 3D 형태로 마치 다른 공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고조용히 피리의 반복되는 리프가 연주되다가 갑자기 북태평소 두 대가 동시에 아주 큰 소리로 한데 매우 센 연주를 시작했다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을 능가하는 강약의 극단적 변화는 공연 내내 계속되어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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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숨을 쉬는 행위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이 음악은 어떤 걸 표현하는 건지 생각하며 공연을 관람하다가어느 순간 생각을 그만두었다이 무대를 표제음악(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예술 음악의 한 종류)이라고 정의 내리기엔 자유롭고즉흥적인 면이 컸기 때문이다생각하는 걸 멈추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음악에만 집중하자 피리가 내는 작은 숨소리부터 째지는 태평소의 고음까지 자연스럽게 감상하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도 광장을 상징하는 소음들’, ‘발자취’, ‘살아간다’ 등 광장을 표현하는 제목의 다양한 곡이 연주되었다이 중 가장 인상적인 무대는 소음들이었다광장 한구석의 조용한 소음과 목소리를 나타냈다는 이 곡에서는 여린 소리로 시작한 피리 소리가 점점 진성이 되고피리는 세 대가 되어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리 세 대가 얽혀 연주하는 중심에는 질서 있는 장구 장단이 자리 잡았고이일우가 연주한 모듈러 신디사이저에서 나오는 고음 주파수와 일렉기타가 무대를 감쌌다그 위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샘플링된 사운드로 흘러나왔으며음향이 점점 커지고 황민왕의 구음이 진계면 형태로 불려 무언가의 한을 위로하는 느낌을 받았다또 고음과 소음으로 가득 찬 이 곡에서 베이스기타는 서정적인 라인을 연주하며 어떠한 감성을 나타내는 듯했다슬픔에 가득 찬 소수자의 간절한 외침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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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공연에서는 성시영과 이일우, 황민왕의 다채롭고 자유로운 시도를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옛날 TV 소리 같은 이펙트의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거나 다양한 단어를 나열하기도 하고, 모듈러 신스를 활용하여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비틀고 뒤집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피리 소리를 녹음하여 쌓아 하나의 코드를 패드 형태로 만들어 깔아놓고 그 위에서 악기들이 연주한 아이디어는 훌륭했다

 

전체적으로 피리와 태평소, 신디사이저 등 전자사운드로 만들어 내는 이들의 음악은 현대적이고 실험적이었지만, ‘국악 즉흥음악이라는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었다. 루프스테이션 등을 활용하여 소리를 쌓아가는 과정은 이미 너무 많은 공연에서 선보인 형태이기에 어떤 식으로 쌓아 나갈지 음악적으로 예상이 가 조금은 진부했고, 계속해서 태평소나 타악, 전자 사운드의 비슷한 형태가 반복적으로 나와 어느 순간부터는 곡들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또 함께 연주한 가야금과 생황 연주자들의 악기 소리는 태평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으며 어떤 음악적 연출을 하려고 한 건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물론 가야금은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비슷한 리프의 장단이나 리듬 형태를 균형 있게 드러내어 음악의 중심을 잡아주긴 했지만 그 외에 튀는 부분은 없었고, 생황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생황의 독보적인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그게 모두 의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주로 태평소와 피리, 전자 사운드로만 음악이 이끌어져 나간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곡이 비슷한 스타일로 가다가 마지막에 서정적인 코드의 기타 연주가 중심이 된 음악은 지금껏 이끌어 온 무대와는 급작스럽게 반대되는 당황스러운 감정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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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악계에서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세 연주자가 모여 광장을 주제로 다양한 사운드를 만들고, 연구해낸 이 연주는 기획과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부터 호흡까지 모두 훌륭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즉흥이 늘 난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운드 메이킹과 악기의 소리, 노래, 무대 연출, 전통음악이 모두 반영된 이 무대는 다양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 연주자들의 마음은 잘 드러났으나, 전체적인 무대를 관통하는 이미지와 음악 형태가 뚜렷하지 않고 모호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했다. 자유롭고 새로운 시도는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지만, 대중들에게 예술가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새로우면서도 대중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또한 이 시대의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중요한 부분이기에, 이들이 다음번에 보여 줄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기대 해 본다.

 

공연 내내 지속적으로 연주된 태평소와 타악, 전자 사운드의 큰 음량을 계속 듣다보니 귀가 굉장히 아파서 마음속으로 제발 그만!’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그 소리가 귀에 계속 맴돌며 내가 생각하는 광장의 이미지를 그리고 음악을 넘어선 그 가치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어떠한 한 주제를 가지고 음악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대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만들어 낸 이번 실험적인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낸다. 성시영은 한 인터뷰에서 하나의 특정한 장르가 아닌 성시영 이일우 황민왕 세 사람만의 장르, 우리들의 색깔을 가진 장르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들의 실험적인 시도가 앞으로 어떤 보편화를 가지고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그들만의 장르와 감동을 줄 확장된 멋진 무대를 기대하며 이 시대의 광장을 다시 한 번 마음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