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Pick리뷰] 여우락 페스티벌 '장:단(長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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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여우락 페스티벌 '장:단(長短)'

길고 짧은 장단 속 하나 되는 예술
'2023 여우락 페스티벌' 7월 8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 실험과 도전

국립극장 대표 여름 음악 축제 '2023 여우락 페스티벌'이 6월 30일부터 7월 22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하늘극장·문화광장에서 펼쳐진다. '축제하는 인간'을 주제로 12편의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이 축제는 전통음악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며 과감한 실험과 도전을 선보이고 있다. 7월 8일 토요일, 타악 연주자 황민왕과 즉흥음악 마스터로 불리는 사토시 다케이시가 서로의 장단을 맞대는 공연 '장:단(長短)'을 관람하였다. 황민왕은 전통음악에서부터 현대의 즉흥음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활동 영역을 보여주고 있는 타악 연주자이며, 사토시 다케이시는 지역적으로는 아시아·남미·중동 등의 여러문화권을, 음악적으로는 민속음악과 재즈 등을 넘나들며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타악 연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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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왕 (사진=국립극장)

 

2015년 7월 여우락을 통해 처음 만난 황민왕과 사토시 다케이시는 공연 이후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왔다고 한다. 황민왕은 사토시 다케이시의 악기 구성과 즉흥연주의 방식에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으며, 사토시 다케이시 또한 황민왕을 통해서 한국의 장단과 그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무대는 8년 만에 뭉친 그들이 오로지 두 사람의 연주로 서로의 길고 짧음을 대보는 시간이었다. 두 연주자는 동양 타악과 서양 타악의 물리적 만남 그 이상의 화학작용을 끌어내며 장단과 리듬, 즉흥과 즉흥이 만나 동서양의 경계를넘어서며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 나가는 무대를 만들어 냈다.


타원형의 하늘극장에는 좌, 우로 나뉘어 연주자들이 연주할 각종 타악기가 놓여 있었다. 황민왕이 연주할 좌측 무대에는 장구와 징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우측 무대에는 사토시 다케이시가 연주할 다양한 종류의 북과 타악기들이 놓여있었다. 공연은 황민왕과 사토시 다케이시가 함께 꾸려나가는 무대 말고도 중간중간 각 연주자가 혼자 연주하는 무대도 있어 개개인의 역량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공연 내내 계속해서 받은 느낌은 ‘청각의 시각화’였다. 그들이 연주한 타악기는 음의 높낮이를 연주할 수 있는 유율타악기가 아닌 무율 타악기가 대부분이었기에 악기의 고유한 음고와 음색이 뚜렷했는데, ‘음’으로 이루어진 선율이 아닌 리듬이 끌어나가는 무대에 다양한 색채의 타악기들이 번갈아 가며 연주되다 보니 타악기가 선사하는 음악에 온전히 귀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악기들의 사운드에 따라 눈 앞에 어떠한 풍경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징 소리로 시작한 첫 무대는 몽환적인 동화 같았고, 심벌즈와 높은 음고의 악기들이 챙챙거리며 연주되는 부분은 마치 동물들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사토시 다케이시가 연주한 낮은 음고의 둥둥거리는 북소리는 고전문학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배경이 그려지며 우렁찬 자명고 소리로느껴졌다. 특히 음색에 더해져 쪼개지거나 늘어나는 역동적인 진행을 ‘리듬’을 통해 감상하니 더욱 신선한 공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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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타케이시 (사진=국립극장)

 

 '장:단(長短)' 무대는 곡에 따라 한 연주자가 선도하면 나머지 한 명이 보조하여 따라가다가 합치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황민왕이 우리 전통 장단을 사토시 다케이시에게 제시하면 그가 자신만의 리듬을 더해 서로의 교집합을 축적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보통 기본 장단을 연주한 후 변형 장단을 연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감상할 수 있지만 장단의 틀 안에서 리듬을 색다르게 변형시키는 연주는 일반적이지 않기에 사토시 다케이시의 연주가 더욱 신선하고 참신하게 느껴졌다.

 

황민왕은 주제 장단으로 익숙한 자진모리 장단이라든지 굿 장단, 혹은 색다른 장단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사토시 다케이시는 어떤 장단을 제시받든 자유로운 강세와 밀고 당기는 표현을 더 해 새롭게 연결해 나갔다. 한국의 전통 장단과 세계의 다양한 리듬이 두 연주자의 연주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어디에도 없던 리듬의 새로운 형태가 즉흥으로 연주되다 보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어 더욱 손에 땀을 쥐고 빠져들어 감상할 수 있었다. 

 

이 무대에서 황민왕은 타악기 연주뿐 아니라 태평소를 연주하기도 하고, 구음이나 노래를 얹기도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을 이수한 그답게한국적이고 민속적인 소리로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황민왕이 계면조가두드러지는 태평소 선율을 연주할 때 사토시 다케이시가 그 선율에 맞추어 역동적이고 화려하면서도 뚜렷한 리듬의 색채를 선보인 부분을 통해 전통이 새롭고 다양한 방향으로 섞이고확장됨을 느꼈다.


또 흥미롭던 무대는 황민왕의 ‘구음 장단’과 사토시 다케이시의 ‘즉흥 장단’의 주고받음이었다. 황민왕이 ‘덩- 덩- 더궁-’, ‘덩 더덩 더덩’ 등 장구의 소리를 구음으로 나타내어 입으로 제시하면, 사토시 다케이시는 바로 그 장단을 받아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켜 그만의 장단으로 연주해 냈다. 앞에 놓여있는 악기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양손으로 치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하며 새로운 장단 세계를 만들어 나갔는데, 빠르고 속도감 있거나 여유로운 구음을 멋지게 구사하는 황민왕과 그 구음을 자연스럽게 즉흥으로 받아 연주하는 사토시 다케이시의 연주는 안정적이고 온전한 음악을 만들어 냈으며, 서로 즉흥으로 주고받다가 점점 하나 되어 함께 기본 장단으로 돌아와 연주하는 구간은 완벽한 타이밍과 호흡을 보여주어 숨이 멎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무대 바로 앞 좌식 자리에 앉아있던 관객들이 참여한 관객 참여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황민왕은 무작위로 징, 꽹과리 등의 악기를 네 명의 관객에게 나누어주고, 두 연주자의 느린 장단에 맞추어 자유롭게 연주하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정주를 받은 관객은 타이머를 3분 동안 맞춘 후 시간이 되면 정주를 쳐 맑은소리로 음악의 끝을 알렸다. 그 시간만큼은 그 공간에 있던 모두가 조용히 악기들의 소리에 온전히 집중했고, 연주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여유로운 장단 안에서 본인의 색을 찬찬히 드러냈다. 천천히 귀를 열고 타점을 찍어 나가며 3분 동안 진행된 즉흥 연주는, 불규칙하지만 규칙적인 훌륭한 예술이자 함께 즐기는 축제, 여우락 그 자체였다.


황민왕은 즉흥 연주인 만큼 확실한 사인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이 무대의 조명감독, 음향감독의 수고로움에 박수를 보냈다. 구름이나 바다 같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삼각형을 활용한 고급스럽고 따스한 느낌의 조명은 이 무대에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정도로 잘 어울렸고, 타악기의 특성상 극단적으로 세거나 여린 소리를 편안하고 적절한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던 음향도 훌륭했다.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가 얼마나 섬세하게 잘 준비되었는지 알 수있는 부분이었다.


무대는 황민왕이 관객들을 축원하는 비나리를 하고 두 연주자가 합을 맞추어 현란한 북춤을추는 듯한 힘찬 연주를 선보이며 끝이 났다. 70분의 공연 시간 내내 두 명의 연주자는 각각의 기량을 뽐내며 서로가 가진 길고 짧음을 선보이는 동시에 ‘리듬’, ‘장단’이라는 틀에 맞추어 함께 호흡하고 화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자유로우면서도 완전하던 그들의 합은 관객 모두의 오감을 깨워주었고, 잊지 못할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이번 무대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될 우리 장단과 리듬의 형태를 더욱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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