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Pick리뷰] 여우락 페스티벌 개막작 ‘불문율’,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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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여우락 페스티벌 개막작 ‘불문율’, 신선!

‘축제하는 인간(Homo Festivus)’ 주제, 12편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부채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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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음악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과감한 실험과 도전을 펼치는 국립극장 대표 여름 음악 축제 ‘여우락 페스티벌’이 2023년 6월 30일부터 시작되었다. 


‘축제하는 인간(Homo Festivus)’을 주제로 공연 총 12편을 선보이게 된 이번 여우락의 포문을 여는 개막작, 전통 예술의 매력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무대 ‘불문율’을 관람하였다. ‘불문율’은 판소리 명창 윤진철과 동해안별신굿 명인 김동언이 판소리 강산제 ‘심청가’와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을 번갈아 주고받으며 우리의 대표 고전 ‘심청’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이다. 

 

11살에 소리를 시작해 최연소 판소리 무형문화재에 오른 윤진철 명창과 고(故) 김석출의 셋째 딸로 태어나 9살부터 굿판에 선 김동언 명인, 두 대가가 한자리에서 만난 이 공연은 판소리와 굿은 한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불문율을 깼다는 점에서 공연 전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전통 예술의 맥을 이어 온 명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이 무대는 일생을 바쳐 각자 다른 길에서 최선을 다해 전통의 길을 닦아 온 두 명인이 한 무대에서 무엇이 같고 다른 ‘심청’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지, 어떤 식으로 화합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갈지 큰 기대를 품고 무대를 감상하였다.


둥그런 원형으로 이루어진 아늑한 하늘극장 작은 무대의 왼편엔 굿 반주를 위한 꽹과리와 징, 장구가, 그리고 오른편엔 소리북이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국악 공연을 봐 왔지만, 한 무대에 소리북과 굿 반주용 타악기가 함께 놓여있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왠지 모르게 이질적이고 어색하면서도 새롭고 신선한 그 장면에 가슴이 뛰었고, ‘판소리와 굿은 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새로운 명제를 마주한 벅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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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기운을 쥐락펴락하는 이 시대 최고의 무녀 김동언이 선사한 ‘심청굿’은 동해안별신굿에서 심청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손들의 눈병을 예방하고 효자, 효부가 많이 나기를 기원하는 굿거리이다. 굿을 진행하는 김동언 무녀는 관객들에게 말을 걸거나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유쾌하고 흥미롭게 무대를 끌어 나갔다. 특히 무녀가 춤과 소리로 관중을 즐겁게 하면 관중은 금전을 상급으로 주기도 하는 실제 굿판에서처럼, 관객들은 김동언 무녀의 옷에 돈을 꽂아주며 소원을 빌고, 무녀는 그들을 축원해 주는 시간을 가지며 실제 굿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을 주어 더욱 생동감 있는 무대를 만들어 냈다.


두 명인은 번갈아 가며 심청의 이야기를 각자의 분야인 심청굿과, 판소리 심청가의 대목으로 주고받으며 연결해 나갔다. 공연의 상영시간은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30분으로 매우 긴시간 진행되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심청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특히 판소리 심청가는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고, 다양한 무대를 접해 보았지만,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은 무대에서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심청굿’은 사설 읽듯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특징을 지녔다. 


글을 읽어나가듯 빠르게 심청전의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중간중간 민요의 느낌을 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동부제의 메나리토리로 구성된 선율이 많았고, 질러내는 소리와 속소리가 적절하게 구사되었다. 왼편에 앉아있던 장구와 꽹과리, 징이 그 위에 굿 장단을 치며 반주했는데, 장구 반주자가 무녀의 노래 끝에 받는소리로 짧은 구음을 노래하는 것이 신선했다. 김동언 무녀의 소리는 곽씨부인이 죽기 전 심봉사에게 청이를 잘 부탁한다며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특히 큰 울림을 주었다. 죽음을 앞두고 애절하고 슬픈 마음으로 남겨질 남편과 딸을 걱정하는 애달픈 그 이야기는, 마치 곽씨부인이 바로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사람들을 울렸다.


김동언 무녀의 무대에 바로 이어 윤진철 명창은 힘 있는 소리로 단번에 좌중을 압도했다. 그가 열정적으로 뽑아내는 소리는 무대를 넋 놓고 보게 만들었고, 심청가의 배경으로 들어가 그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듯했다. 심청굿의 진행이 민요처럼 자연스레 흘러가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면, 판소리 심청가는 힘 있고 정갈한 고수의 북장단과 위엄 넘치는 판소리의 울림이 강렬한 위압감과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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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동언 무녀가 선보인 ‘상여소리’는 그야말로 ‘상여소리’ 그 자체로, 상여꾼들이 상여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애달픈 한이 절절히 드러나던 심청굿의 ‘상여소리’는 판소리 심청가의 ‘곽씨부인 상여 나가는 대목’과 같은 내용이지만 확연히 다른 구조를 보여주어 더욱 흥미로웠다. 판소리 ‘곽씨부인 상여 나가는 대목’은 진계면의 구성과 중모리장단으로 대놓고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면, 심청굿 ‘상여소리’는 어딘가 담담한 진행으로 음악을 이끌어 간다.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를 흉내 내는 소리는 판소리와 굿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가사인데, 판소리는 느리고 애절한 선율로 노래한다면 굿에서는 정말 종소리를 흔들 듯 빠르게 그 소리를 읊어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곽씨부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굿의 소리로 듣자니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남겨지는 이들의 슬픔이 정통으로 느껴졌다.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어떠한 ‘한’의 공감인 걸까? 반복되어 연주되는 굿거리장단 위에 슬픔 가득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얹어지며, 노래하던 무녀는 저고리의 고름으로 눈물을 훔쳐냈고, 관객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동언 무녀는 중간중간 관객들과 계속해서 소통하고, 윤진철 명창에게도 장난스럽게 말을 거는 등 재치 있게 무대를 장악해 나갔다. 간드러진 기교와 확실한 힘이 있는 노래에 더해 어느 대목에서는 춤을 추기도 했다. 강렬한 굿 장단 위에 어지러운 듯 자유롭고 예술적인 무녀의 몸짓에 눈을 뗄 수 없었고, 이 무대를 서울의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감격스러웠다.


심청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이야기는 절정으로 흘러갔다.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떠나간다며 아버지에게 절하는 부분에서 김동언 무녀는 심청의 역할을 하여 윤진철 명창에게 절하였고, 윤진철 명창은 심봉사가 되어 눈물 어린 부녀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렇게 서로 번갈아 가며 ‘심청전’을 끌어 나가다가, 판소리 ‘범피중류’가 울려 퍼졌다. 심청이가 제수로 팔려 배를 타고 인당수로 가는 대목. 인당수로 가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길게 늘어지는 진양조장단 위에 꿋꿋한 우조로 힘차게 노래한 윤진철 명창의 소리는 관객 모두의 마음을 흔들었고, 질러내는 소리와 속소리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매력적인 소리에 맞추어 연주된 고수의 북 반주는 완벽한 판소리의 합치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왼편의 타악기들이 소리북과 함께 강하게 연주하며 역동적인 전개를 끌어 냈다. 수궁가의 ‘범 내려온다’에서 위엄있는 호랑이를 마주한 것처럼, 거친 파도와 풍랑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강렬함이었다. 굿을 반주하는 타악기와 소리북의 만남, 그리고 그 위를 힘 있게 노래하는 판소리. ‘풍-’하며 부채를 떨어뜨리는 연출과 함께 심청이가 바다에 빠지자, 관객석은 큰 박수와 추임새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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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진행될수록 번갈아 가며 소리를 보여주던 두 명인이 다양한 모습으로 무대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범피중류를 시작으로 ‘방아타령’과 ‘자진방아타령’에서도 좌우의 모든 타악기가 함께 연주되었고, 윤진철 명창은 소리를 하며 흥청흥청 춤을 추며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심봉사 눈 뜨는 대목’에서 김동언 무녀는 심청이가, 윤진철 명창은 심봉사가 되어 극적 요소가 가미된 완성도 있는 장면을 만들어 냈다. 심청이와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서 마주하고, 결국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을 굿과 판소리가 함께 노래한 장면은, 그 어떤 눈뜨는 대목보다도 깊이있고 감동적이었다. 특히 심봉사와 심청이가 손을 마주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본 장면은 마치 불문율로 이루어져 왔던 서로 다른 장르 ‘굿’과 ‘판소리’가 합치되어 드디어 서로를 마주하고, 새로운 시각으로써의 전통 예술 형태를 더욱 넓혀 나가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대는 김동언 무녀가 관객들을 축원하고, 윤진철 명인과 함께 노래하며 막을 내렸다. 두 명인은 무대 내내 소리의 소품으로 ‘부채’를 사용했다. 김동언 무녀의 부채는 화려한 색채의굿 부채였고, 윤진철 명창의 부채는 선비의 느낌이 물씬 나는 판소리용 부채였다. 전통 예술이라는 큰 틀로 묶여있지만, 서로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에서 각자의 예술을 연마해 온 두 명인의 부채가 처음으로 한 무대에서 만났다. 일생을 바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을 만들어 온 두 명인이 전한 ‘심청가’는 두 개가 아닌 하나였다. 

 

‘심청’이라는 하나의 주제 된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은 삶의 한과 흥, 눈물과 해학의 정수를 서로 다른 전통의 화합을 통해 만났고, 상처를 치유 받았으며 또한 위로받았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 전통 예술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듯 끊임없이 명맥을 잇고, 발전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 낼 수 있는 가장 멋진 시도는, 선을 긋고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하나 된 마음. 불문율을 담대히 깨고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용기있게, 그리고 과감하게 해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