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Pick리뷰] 남겨진 사람을 위한 공동체 음악, 상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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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남겨진 사람을 위한 공동체 음악, 상여소리

유지숙 예술감독, ‘꽃신 신고 훨훨’
담담하지만 애절한 소리의 무대
“우리 삶을 마주하고 돌아보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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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목)과 30일(금),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이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지난 5월 부임한 유지숙 민속악단 예술감독의 첫 작품으로, 민속악단의 정기 공연으로는 최초로 상여소리를 주제로 하여 서도, 경기, 남도 지역의 상여소리 등 죽음을 다룬 노래와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지역별로 다른 상여소리를 통해 음악적으로 다양한 정서를 감상할 수 있던 이 무대에서는 민요, 잡가, 판소리, 무속음악 등이 다양하게 엮여 죽음과 삶에 우리 선조들이 대처했던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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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분위기 속 징의 잔잔한 소리 위에 얹어진 유지숙 예술감독의 담담하지만 애절한 소리로 무대가 열렸다. 첫 무대는 ‘서도 상여소리’로, 북녘의 땅에서 불려 온 애잔한 소리이다. 임의 분묘를 찾아가 한탄하고 삶의 회한을 표현한 첫 곡 ‘제전’은 느려서인지 격하게 떠는 음이 많은 서도제의 특징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제전’에 이어 ‘상구소리’에서는 장구와 대금의 수성가락이 얹히며 인생의 덧없음이 더욱 애잔하게 표현되었고, 이어 ‘산염불’이 불렸다. 산염불은 선율의 길이가 서로 다른 앞소리와 2장단으로 된 후렴으로 구성되었는데, 후렴구에 나오는 ‘에헤야 에헤야~나무아미타불’ 등의 후렴구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등의 가사 위에 서도제의 색채가 짙게 묻어 마치 그 떠는소리가 울음 우는 소리처럼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이후 ‘황해도 배천 상여소리, 평양 상여소리’에서는 총 8명의 소리꾼이 나와 함께 노래했는데, 힘 있고 빠른 속도로 언뜻 경쾌하게 흘러가는 듯 들리기도 했지만, 애달프고 슬픈 가사로 인해 오히려 슬픔을 더욱 자아냈다. 북녘의 땅에서 불려 오던 서도제의 상여소리는 이 땅에서 많이 연주되지 않고 그 자료 또한 많지 않지만, ‘한’과’ ‘슬픔’이 서려 마음을 찢는듯한 그 애절한 선율은 공연장에 있던 모두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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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가야금 병창 단가 ‘백발가’가 불렸다. "백발이 섧고 섧다. 백발이 섧고 섧네.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다.” 로 시작하여 세상사 서러움을 노래하는 이 곡은 사실 인생무상만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백발이 되고 보니 인생은 허무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우니 명승지를 구경하며 즐기자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품고 있다. ‘백발가’를 세 명의 소리꾼이 밝은 평우조 음계로 구성지고 시원하게 불러내니, 꿋꿋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의 의지와 힘이 공연장에 가득 울려 퍼지며 관객들의 집중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죽음에 이르지만, 이를 그저 슬픔으로만 대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이 삶에 집중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였던 선조들의 지혜로운 태도가 가득 묻어난 무대였다.

 

세 번째로 경기 지방의 민요와 상여소리가 무대에 올랐다. ‘마음을 돌아보는 노래’라는 의미의 ‘회심곡’과 잡가 ‘이별가’, 그리고 고양시에서 불리는 상여소리로 구성된 ‘경기 상여소리’는 경기 지방에서 불리던 소리의 특징과 힘, 그리고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회심곡’은 불법에 귀의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것을 권하는 내용을, ‘이별가’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경기 지역의 민요이다. 살아가며 맺어지는 부모와 연인과의 관계, 그리고 연 가운데 얽히는 수많은 감정의 소리는 삶을 돌아보게 했고, 그 후 바로 이어진 ‘상여소리’는 인생과 관계의 흐름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바라의 챙챙거리는 소리로 인해 더 민속적이고 한국적이던 ‘회다지소리’에서는 많은 소리꾼이 함께 메기고 받으며 노래하고, 악사들이 간드러지며 힘 있는 반주로 함께 음악을 끌어 나가니 망자를 위로할 뿐 아니라 이 세상과 저승의 경계를 다지는 절연의 의지와 역동적인 몸짓이 잘 드러났다. 인생의 연속성을 나타낸 경기 지역 음악 세 곡을 통해 경제의 기교 있고 차분한 표현을 마주할 수 있었고, 인생과 삶, 사람 간의 관계를 다각도로 생각하며 깊게 감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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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마지막은 ‘남도 상여소리’가 장식했다. ‘진도 다시래기’를 중심으로 엮어낸 무대. ‘진도 다시래기’는 진도지방에서 초상이 났을 때, 특히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며 행복하게 살다 죽은 사람의 초상일 경우 동네 상여꾼들이 상제를 위로하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기 위해 전문예능인들을 불러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노는 민속극적 성격이 짙은 상여놀이이다. 

 

신명나는 풍물패의 소리와 함께 가상제(거짓 상주 역할을 하는 배역이자 다시래기를 이끌어 가는 진행자 역할)와 풍물패가 관객석에서 등장하여 소란스레 무대로 향했다. 가상제는 유쾌하게 다시래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 명씩 호명해서 개인기를 펼치도록 유도했고, ‘거사’와 ‘사당’이 나와 연극형태의 연희를 벌였다. 이 연희에서는 ‘흥’에 초점을 두어 슬픔을 즐거움과 위로로 승화시켰는데, 재미있는 설정과 유희를 통해 떠들썩하게 즐기며 죽음의 상실감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흥취 가득한 재담과 개사를 통해 유쾌하고 해학적으로 불러낸 소리는 마치 마당놀이의 어느 한 과장을 보는 듯 즐거워 죽음의 슬픔을 어느샌가 밀어내는 힘이 있음을 느꼈다. 특히 마지막 아이를 낳는 장면은 죽음이 있더라도 새로운 삶 또한 함께한다는 인생의 고유 진리, 그리고 상실보다는 연속된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한바탕 관객들과 함께 즐거운 무대를 선보인 후 가상제가 물러나고, 민속음악의 꽃, ‘씻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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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전승되는 망자 천도굿인 ‘진도씻김굿’. 이는 살아생전의 좋지 못했던 기억이나 마음 깊은 곳의 앙금을 깨끗이 씻어냄으로써, 망자가 수월하게 저승으로 가도록 돕는다. 기존 씻김굿은 체계적인 순서에 따라 길게 진행되지만, 이 공연에서는 무대화되어 짧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치 사람이 흐느껴 우는 듯한 진계면으로 이루어진 선율과 소리는 사람의 감정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듯하였고, 무언가 엄숙하면서도 경건하게 만드는 힘 또한 존재했다. 흰 한복을 입고 지전을 든 무용수들이 보여준 망자를 위한 천도 의례 ‘지전춤’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액을 막아주는 춤의 몸짓이 격렬하면서도 진실하여 진도씻김굿의 예술성을 더해주었다. 


지전춤에 이어 소리꾼 정회석이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등장하며 심청가 중 ‘상여소리’를 담담히 불러냈다. 정확히는 ‘곽씨 부인 상여 나가는 대목’으로, 중모리장단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템포 안에서 ‘이제 가면 언제 올거나’ 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그의 소리는 마음 한편을 아리게 만들었으며, 그 깊이 있는 성음은 판소리의 진면모를 드러냈다. 그리고 자연스레 마지막 무대 ‘진도 상여소리’로 음악이 이어졌다. 진도의 상장례는 육지처럼 장례식을 엄숙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사물 악기를 앞세워 흥겨운 축제처럼 이어 나가는 특징을 갖고 있다. 

 

죽음을 그저 슬픔과 아픔으로 여기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떠나간 이를 기억하고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공동체의 따뜻함에 마음이 풍성해졌다. 특히 이 무대에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 27-4호 고양 상여, 회다지소리 보존회의 상여꾼들이 특별출연하여 무대를 꾸렸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장례문화인 상여소리를 서울, 국립국악원의 무대에서 실제 보존회 회원들과 국악원 민속악단의 연주로 볼 수 있어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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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평안’이라는 부제의 공연 ‘꽃신 신고 훨훨’은 지루할 틈 없는 빠른 전환으로 구성되어 삶과 죽음을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는지 지역별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고, 위로와 치유, 넉넉한 마음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무대는 음악을 넘어 우리의 소중한 장례 문화를 무대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전통 예술의 가치 있는 보존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섧고 아픈 죽음이 있기에, 기쁜 새 생명의 시작 또한 존재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옛 선조들의 마음을 깊이 새기며,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마주하고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