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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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초연

작창곡 62곡으로 이야기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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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제작진 및 출연진 (사진=국립창극단)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이 창극으로 재탄생한다.

국립창극단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제작발표회를 열고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컸던 16세기 유럽에서 쓰인 원작을 현대의 감수성에 맞게 탈바꿈해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성열 연출은 "몇백년 전 작품이다 보니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의아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며 "유대인 샤일록에 대한 종교나 인종적인 편견을 과감하게 탈색시키고,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서사를 변형시켜 넣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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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유태평양, 민은경, 김준수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은선)68()부터 611()까지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을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우리 고유의 언어와 소리로 풀어낸 작품이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반으로 밀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 온 이성열이 연출하고, 고전을 지금의 이야기로 치환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 김은성이 첫 창극 극본을 쓴다. 음악은 창극 <귀토><리어> 등에 참여한 한승석이 작창하고,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을 네 차례 수상한 원일이 작곡한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극영화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돼 온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을 동시대적 감수성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극본을 맡은 김은성 작가는 원작이 지닌 시대 배경과 종교적인종적 편견을 과감하게 거둬내고, 사랑과 정의, 자비와 우정 등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재창작했다. 원작의 베니스 무역업자 안토니오는 젊은 소상인 조합의 리더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노회한 대자본가로 바꿨다. 또한,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를 설정해 원작 속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요소를 정제하고, 현대 법정과 같이 법관과 변호사의 역할을 세분화하는 등 지금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각색했다.

 

독점적 대자본에 대항하는 젊은 소상인들의 이야기로 탈바꿈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2017년 창극 <산불>에 이어 국립창극단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추는 이성열이 연출한다. 이성열은 이번 작품에서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벌어지는 가운데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빚어내는 희망을 그린다.이성열은 "원작 제목에 을 붙여 베니스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젊은 상인들이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각하고자 했다라며 "공동체적 연대와 희망에 중점을 두면서도 원작의 희극성을 살려 낭만적이고 유쾌한 창극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작이 지닌 희극성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우리 소리와 만나 극대화된다. 작창가 한승석은 다양한 장단과 음계시김새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역대 창극단 작품 중 최다의 62개 곡으로 이야기 사이사이를 촘촘히 채운다. 2004년 이후 19년 만에 국립창극단의 창극 작곡을 맡은 원일은 국악기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16인조 구성의 음악과 전자음악을 조합해 작품의 몰입을 끌어올린다. 아이리쉬 휘슬, 마림바 등을 활용해 생동하는 베니스와 이국적인 벨몬트의 분위기를 배가할 예정이다. 여기에 개성 있는 움직임으로 정평 난 안무가 이경은이 합세해 다채로운 군무로 관객의 흥을 돋운다.

 

무대는 사랑과 자유가 충만한 환상의 섬 벨몬트와 냉혹한 법이 지배하는 현실의 베니스가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꾸며진다. 31회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무대미술가 이태섭을 필두로, 연극 <화전가><썬샤인의 전사들>조명디자이너 최보윤, 전통한복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의상디자이너 차이킴(김영진) 등이 합세해 볼거리가 풍성한 무대 미학을 완성한다.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울 약 3만 송이의 꽃과 6m 길이의 거대한 범선, 인도의 전통의상 사리에서 영감을 받은 화려한 의상이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품을 이끄는 안토니오와 샤일록 역에는 국립창극단의 대표 스타 유태평양과 김준수가 각각 캐스팅됐다. 벨몬트의 주인이자 지혜로운 여인 포샤는 민은경이,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 바사니오는 김수인이 연기한다. 이외에도 소피아루치오토마소 등 평범한 이들의 강한 생활력을 표현하는 캐릭터들이 새롭게 등장해 작품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가운데, 국립창극단 전 단원을 포함한 총 48명 출연진이 시원한 소리와 익살스러운 연기로 한바탕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원작에서 천대받던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유대인 샤일록을 베니스 무역을 주도하는 대자본가로, 낭만적인 무역 상인 안토니오를 베니스의 소규모 상인들이 모인 조합의 우두머리로 설정했다.

극본을 쓴 김은성 작가는 "대규모 무역 상사 회장인 샤일록과 소규모 상인 조합 간의 대결 구도가 원작과 가장 크게 바뀐 각색 포인트"라고 짚었다.

이 연출은 샤일록과 안토니오에 대해 "샤일록은 3대에 걸쳐 부를 물려받은 인물로 기득권을 계속 발전시키고 확장하려고 한다. 악인이라기보다는 자본가로서 철저하게 충실하다"며 "반면 안토니오는 '흙수저'로 시작해 사람들을 모아서 기득권을 무너뜨리려는 민중이자 시민이다. 이 두 세계가 부딪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샤일록의 대사 중에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 했던 세상이 실현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반면 안토니오는 '끝끝내 굴하지 않고 일어나겠다'고 하는 대사처럼 오뚝이처럼 계속 시련을 이겨낸다"고 덧붙였다.

샤일록과 안토니오는 국립창극단의 대표 스타인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맡았다. 이 연출은 샤일록은 뱀 같이 간교하고 독한 이미지, 안토니오는 바위처럼 든든하고 강직한 이미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극의 주된 이야기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지만, 여자 주인공 포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도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환상의 섬 벨몬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포샤와 안토니오의 의형제 바사니오의 사랑 이야기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대립과는 상반된 분위기로 극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한다. 포샤는 민은경, 바사니오는 김수인이 맡았다.

제목을 원작의 '상인'에서 '상인들'로 바꾼 것도 눈에 띈다. 이는 공동체적 연대를 부각한 것으로 안토니오를 중심으로 젊은 상인들이 진취적으로 살아 나가는 모습을 반영했다.

이 연출은 "작품이 주는 웃음에는 희망이 있다"며 "우리를 가로막는 벽이나 장애물을 젊은이들의 사랑과 패기, 시민들과의 연대와 협업으로 뚫고 지나가는 긍정 에너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역대 창극단 작품 중 가장 많은 62개 곡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62곡 모두 전통 소리를 우리의 장단과 음계를 이용해 만든 작창곡이란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보통 창극에서 작창곡은 전체 곡의 60∼7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번에는 100%를 채웠다. 창 창작에는 소리꾼 한승석과 지난해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비 작창가 2명이 보조로 참여했다.

 샤일록 역의 김준수는 "작창곡은 노래지만 말맛을 살리는 대사 어법으로 짜여있다. 이걸 살려서 연기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은 다음 달 8∼11일 국립극장의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외국인 관객들을 위한 자막도 제공될 예정이다. 티켓은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