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임시정부는 애국가 작사자로 안창호를 염두에 준 바가 없다. 그리고 윤치호가 작사자임을 알면서도 드러내 거론하지 않았고, 다른 길을 걷는다고 매도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 기조를 견지하였다.”
지난 제1회 ‘임시정부 안창호 작사, 인식 없었다’의 결론 부분을 인용하였다. 임시정부의 이 기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해방 후 출현하는 자료에 대한 해석을 할 수가 없다, 즉, ‘金九先生 題 大韓愛國歌’ 악보 해설 부분이나, 1947년 이광수 저술 ‘도산 안창호’의 ‘소이부답(所以不答)’ 대목이나, 1948년 박은용의 동아일보 ‘윤치호의 작사 사실’ 기고문이나. 문제의 1955년 미국 출판사 문의에 대한 정부 입장과 그에 대한 반발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제2회 ‘김구는 애국가 작자를 알고 있었다’에서는 이 기조를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악보의 해설을 살피기로 한다. 해방이 되어 환국을 고대하던 중인 10월 18일 김구의 친필로 제목을 단 악보이다. 비용은 중국국민당 정부와 한중 우호를 위해 설립한 중한문화협회(中韓文化協會)가 담당했고, 악보전문 출판사인 음악월간사(音樂月刊社)가 출판했다. 당연히 원고와 편집 등의 업무는 측근인 엄항섭(嚴恒燮)과 민필호(閔弼鎬)가 전담하였다. 해방을 맞아 귀국을 준비하는 와중에서 애국가 악보를 발행하려 한 것은 애국가의 위상을 홍보하고, 김구 주석을 부각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이 악보가 수록한 ‘한국 애국가에 관한 고사(古事)’ 부분은 매우 주목된다. 비록 단출하지만 애국가의 연혁과 작사자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단 두 문장으로 구성된 전문은 이렇다.
"이 애국가는 50년 전에 한 한국 애국지사의 수필(手筆)로 창작되었는데, 이미 일명(佚名)해 버렸다. 처음에 서양 명곡을 채용하여 가사를 메워 노래를 불렀는데, 그 후 한국의 인사들이 안된다고 생각하여 10년 전에 한국 청년음악가가 새로운 곡조를 지으므로 말미암아 곧 한국 건국운동 중에 국가를 대신하게 되었다.”
내용을 분석하면 다음 네 가지 점을 주목하게 된다.
하나는 작사 시점의 제시다. 즉, 1945년 시점에서 ‘50년 전’을 대입하면 1895년이다. 이는 ‘조선개국 기원 505회’ 기념식에서 애국가와 동일 후렴의 ‘무궁화가’를 발표한 시점과 2년의 차이가 있지만 이 노래의 작사 시점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때는 안창호의 나이가 17세 때이다. 이 연치(年齒)는 국가적 행사에 노래를 지어 발표할 위치가 아니다. 그러나 윤치호는 30세로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상해 중서서원(中書書院)에서 교수로 있다가 귀국하여 외부협판직을 맡는 등의 능력과 직위로 ‘무궁화가’를 지어 발표할만한 인물일 수 있는 것이다.(안창호의 연치 문제는 1955년 4월 서울신문 ‘애국가 작사자는 누구?’ 보도에서 지적된 바이고, 윤치호의 능력에 대해서는 서재필이 ‘무궁화가’를 작사한 윤치호를 ‘한국의 계관시인’으로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다.)
둘은 ‘10년 전~ 새로운 곡조를 지어’란 시점이다. 이는 안익태가 ‘올드랭 사인’ 곡조를 대체할 ‘신곡보 애국가’를 작곡한 1935년과 정확히 일치한다. 임시정부가 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배경은 1940년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요청에 따라 ‘안익태 곡보 사용 허가’를 한 바가 있어 이때 관련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은 이렇게 정확하게 작사와 작곡 시점을 표명하는 상황에서 그 작사자에 대해서만은 "오래전에 숨은 이름으로 지금은 알 수 없다”라는 의미로 "佚名해 버렸다”라고 한 인물의 문제다. ‘일명’이란 낯선 용어는 ‘미상’이거나 ‘모른다’는 표현을 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익명화(匿名化)이다. 이의 주인공은 임정요인으로 활동하다 7년 전인 1938년 작고한 안창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임시정부, 좁게는 김구와 그 측근들이 안창호란 이름을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창호를 ‘한 한국 애국지사’라는 표현은 부적합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시기 윤치호에 대해서는 ‘한 한국 애국지사’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이런 정황은 지난 제1회에서 살핀 임시의정원 ‘애국가 수정안’의 발의와 그에 대한 처리 결과를 통해 윤치호를 작사자로 확인한 과정과 같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악보의 ‘한국애국가에 관한 고사(古事)’ 부분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 해석 외의 결론은 탈맥락적이다. 가령 "북한에 거부감을 주지 않기 위해 안창호가 작사자라는 사실을 숨긴 것”이란 주장 같은 것을 말한다. 이는 의도적인 왜곡이거나 문해력을 의심받을 만한 해석이다.
"1945년 임시정부 김구와 그 측근들은 애국가 작사자를 알고 있었다. 작사자는 바로 윤치호이다. 다만 윤치호를 작사자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50년 전 한 한국 애국지사’로 지금은 ‘숨은 이름’이라고 하여 적대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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