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국악신문] (71) 옛길에서 보는 서낭당과 장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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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71) 옛길에서 보는 서낭당과 장승 3

이만유 문경사랑 71

  • 특집부
  • 등록 2023.05.20 07:30
  • 조회수 2,713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

 

장승은 우리가 집단으로 삶을 영위했던 전통마을의 대표적인 공동체 신앙물로써 마을 또는 절 입구나 길가에 세워 둔 사람 머리 모양을 조각한 기둥으로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 등이 있다. 장승의 유래와 기원을 살펴보면 고대의 남근숭배에서 나온 것, 고려 시대 재화를 빌려주고 그 이자를 받아 불교 행사나 사찰 보수, 그리고 병자나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쓰기 위해 사찰에서 설치한 금융기관이었던 장생고(長生庫)에 속하는 사전(寺田)의 표지(標識)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목장승은 부족국가 시대의 솟대(소도-蘇塗)에서, 석장승은 선돌[입석-立石]에서, 돌무더기로 만든 제당(祭堂)의 하나인 누석단(累石壇)에서 비롯되었다는 둥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장승의 명칭도 여러 가지인데, 조선 시대에는 한자로 후(), 장생(長栍), 장승(長丞, 張丞, 長承) 등으로 썼고, 지방에 따라 장승, 장성, 벅수, 법수, 당산할아버지, 수살목 등의 이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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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지역과 지역의 경계표 구실과 길가에 장승을 세워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몇 리가 떨어졌고 이웃 고을 이름이 무엇인가를 기록해 두어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 및 이정표 구실도 했으며,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과 개인의 소원성취(득남, 풍년, 풍어, 건강)를 기원하기도 했는데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이정(里程) 표시는 없으며 천하대장군등의 표시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장승을 서낭당, 산신당, 솟대와 동등한 신물(神物)로 인정하며 동제(洞祭)의 주신 또는 하위 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며 액운이 들었을 때나 질병이 전염되었을 때는 장승에게 빌거나 제사를 지내 화를 피하고자 하였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생김새는 인면형(人面形), 귀면형(鬼面形), 미륵형(彌勒形), 남근형(男根形), 문무관형(文武官形) 등으로 나뉜다. 인면형의 경우 남장승은 머리에 관()을 쓰고 눈을 부릅뜨고 덧니와 수염을 단 형상이며, 더러는 몸체가 붉게 채색되기도 한다. 반면 여장승은 관이 없고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고 몸체를 청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귀면형은 왕방울 눈과 주먹코에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미륵형은 불상(佛像)과는 달리 꾸밈이 없이 수수하며 자비스럽고 친밀감이 있다. 이 밖에도 석비형, 입석형, 석적형 등이 있다. 장승의 모양은 장소에 따라 채색, 형상, 크기 등이 다르나 모양이 괴엄(魁嚴)한 점만은 일치한다. 얼굴을 아주 무섭고 험악하게 만든 이유는 염병, 마마 등 병귀나 액귀(厄鬼)를 쫓아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장승의 명문(銘文)으로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 주류지만, ‘동방청제장군(東方靑帝將軍), 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 남방적제장군(南方赤帝將軍), 북방흑제장군(北方黑帝將軍)’ 등의 방위 신장류, 불교의 영향을 받은 호법선신(護法善神), 방생정계(放生定界), 금귀(禁鬼), 수소대장(受昭大將) 등의 호법 신장류, 풍수도참과 결부된 진서장군(鎭西將軍),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등의 비보(裨補) 장승류, 두창(痘瘡) 장승류 등이 있다.

 

근래에 와서는 장승 본연의 기능도 변하였고 명문도 다양화되었다. 마을 이름이나 안내판 또는 전시물, 장식물, 통일을 기원하는 상징물과 신앙체로서 시국 장승을 깎아 세웠고 명문은 민족통일 대장군’, ‘백두대장군, 한라여장군등이 있으며 지리산 노고단과 문경새재, 계룡산 등지에 민족통일 대장군, 평화통일 여장군을 세웠다. 이는 전통적인 형식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고 마을과 국가의 단결을 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부터 전해지는 장승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그중 장승이 마련해 준 삼백 냥이라는 이야기는 박문수 어사 행장기 중 하나로 전해지는 작가 미상의 이야기인데, 암행어사 박문수가 거지 모양새를 하고 여기저기 팔도를 돌아다니던 때였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서 주막에 들었는데, 봉놋방에 들어가 보니 웬 거지가 큰대자로 퍼지르고 누워 있었다. 사람이 들어와도 본체만체하고, 밥상이 들어와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튿날 아침 거지가 "보아하니 댁도 거지고 나도 거진데, 이럴 게 아니라 우리 같이 다니면서 빌어먹는 게 어떻겠소?” 하고 말을 거니 박문수도 영락없는 거지꼴이라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고 생각하고, 짐짓 "좋소, 그럽시다하고는 그날부터 둘이 이곳저곳을 같이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마을 큰 기와집으로 썩 들어선 거지가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지금 이 댁 식구 세 사람 목숨이 위태롭게 됐으니 두말 말고, 지금 당장 마당에 멍석 깔고 머리를 풀고 곡을 하시오. 안 그러면 세 사람이 죽소라고 하였다. 여인은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 엉겁결에 시키는 대로 했다. 그때 이 집 남편은 아들 둘을 데리고 뒷산에 올랐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자, 비를 피하기 위해 큰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 그때 저 아래서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보다. 어서 내려가자.” 급한 마음에 부리나케 내려오는데 뒤에서 큰 바위가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모면하고 내려온 남편은 전후 사정을 듣고 거지에게 절을 열두 번도 더 하면서 "우리 세 사람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소? 내 재산을 다 달라고 해도 내놓으리다” ", 정 그러면 돈 백 냥만 주구려그래서 돈 백 냥을 받았다. 받아서는 대뜸 박문수를 주는 게 아닌가. "이거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테니.” 박문수가 가만히 보니 이 거지가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돈 백 냥을 받아서 속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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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어떤 마을로 가게 됐다. 그 동네 큰 기와집에서 온 식구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거지는 망설임 없이 박문수를 데리고 그 집으로 쑥 들어갔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 슬피 우시오?” 하니 "우리 집에 7대 독자 귀한 아들이 지금 병이 들어 다 죽어갑니다” "어디 내가 한 번 봅시다.” 그러더니 병 든 아이가 누워 있는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사랑채로 들어가선 주인에게 말했다. "아이 손목에 실을 매어서 그 끄트머리를 가져오시오.” 미덥지 않았으나 주인은 아이 손목에다 실을 매어 가지고 왔다. 거지가 실 끄트머리를 한 번 만져보더니 "뭐 별것도 아니구나. 저기 바람벽에서 흙을 한 줌 떼어 오시오하더니 동글동글하게 환약 세 개를 지었다. 주인이 환약을 받아 아이한테 먹이니 다 죽어가던 아이가 금방 말짱해졌다. 주인이 그만 감복해서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7대 독자 귀한 아들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내 재산을 다 달란 대로 드리리다.” ", 그런 건 필요 없고 돈 백 냥만 주구려.” 이렇게 해서 또 백 냥을 받아서는 다시 박문수를 주었다.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거요.”

 

다시 길을 가다가 보니 큰 산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웬 행세깨나 하는 집에서 상을 당해 장사를 지내는 것 같았다. 기웃기웃 구경하고 다니더니 마침 하관을 끝내고 봉분을 짓는 데 가서는 "에이, 거 송장도 없는 무덤에다 무슨 짓을 하나?”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네 이놈! 그게 무슨 방정맞은 소리냐? 그래, 이 무덤 속에 송장이 있으면 어떡할 테냐?” ", 그럼 내 목을 베시오. 그렇지만 내 말이 맞으면 돈 백 냥을 내놓으시오.”

 

일꾼들이 달려들어 무덤을 파헤쳐 보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과연 송장 든 관이 없었다. "내가 그걸 찾아 주려고 온 사람이오. 염려 말고 북쪽으로 석 자 세 치 떨어진 곳을 파보시오.” 그곳을 파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거기에 관이 턱 묻혀 있었다. "여기가 명당은 천하명당인데 도둑혈이라서 그렇소. 지금 묻혀 있는 곳에 무덤을 쓰면 복 받을 거요.” 이렇게 해서 무사히 장사를 지내고 나니 상주들이 고맙다고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묫자리를 이렇게 잘 보아주셨으니 우리 재산을 달란 대로 다 내놓겠습니다.” ", 그런 건 필요 없으니, 약속대로 돈 백 냥만 주구려.” 그래서 또 돈 백 냥을 받았다. 그리곤 역시 박문수를 주었다. "이것도 잘 간수해 두오. 반드시 쓸데가 있을 거요.”

 

어느 날 첩첩산중이라 한참을 가도 사람 사는 마을이 없는 곳에서 갑자기 거지가 ",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만 이별해야 하겠소” ", 이 산중에서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오?” "염려 말고 이 길로 쭉 올라가시오. 가다가 보면 사람을 만나게 될 거요.” 그러고는 거지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니 고갯마루에 장승 하나가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웬 처녀가 물을 한 그릇 떠다 놓고 빌고 있었다.

 

"장승님! 장승님!, 영험하신 장승님!. 우리 아버지 구원 백일 정성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꼭 제 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처녀에게 박문수가 "무슨 일로 이렇게 빌고 있소?” 하고 물으니, 처녀가 울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관청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인데, 심부름 중에 나랏돈 삼백 냥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까지 돈 삼백 냥을 관청에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아버지 목을 벤다는데 돈을 구할 길이 없어 여기서 백일 정성을 들이는 중입니다하였다.

 

박문수 어사는 거지가 마련해 준 돈, 삼백 냥이 떠올랐다. 반드시 쓸데가 있으리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생각했다. 돈 삼백 냥을 꺼내어 처녀한테 건네줬다. ", 아무 염려 말고 이것으로 아버지 목숨을 구하시오이렇게 해서 억울한 목숨을 구하게 됐다. 그런데 그 처녀가 빌던 장승이 비록 나무로 만든 것이지마는 박문수 어사가 가만히 바라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아까까지 같이 다니던 그 거지 얼굴을 쏙 빼다 박은 게 아닌가!

 

이렇듯 장승은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선하고 정 많은 우리의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