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도자의 여로 (96) 분청철화연당초문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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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96)
분청철화연당초문병편

  • 특집부
  • 등록 2023.05.19 07:30
  • 조회수 9,079

직접 습득을 한 것은 아니고

 

         이규진(편고재 주인)

 

여기 사진 한 장이 있다좌측 인물이 아사카와 노리타카중앙이 야나기 무네요시우측이 한복을 입은 여인이다이들 앞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세 점의 도자기가 보이는데 중앙의 것이 저 유명한 백자청화진사연화문호다지금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이지만 당시만 해도 사진에 보이는 인물인 노리타카의 것이었다이 사진이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자기 전시회가 열린 장소에서 이를 주최한 인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야나기 무네요시가 아사카와 노리타카 및 다쿠미 형제와 함께 경복궁 집경당에서 조선민족미술관을 개설한 것이 1924그에 앞서 22년 경성의 조선귀족회관에서 '이조 도자기 전람회'를 개최하는데 사진은 바로 이 때의 것이니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도록에서 볼 수 있는 이 사진은 '이조 도자기 전람회관련 자료로서는 흔치 않은 것이다그런데 근래 지인의 소개로 이와 관련된 재미난 자료 한 점을 입수했다이름을 대면 알만한 원래의 소장자는 이미 작고를 했지만 이 자료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듯 봉투에는 귀중문서라는 글씨가 명시되어 있다이 글씨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최초의 도자기 전시회인 '이조 도자기 전람회안내문은 귀하고도 귀한 자료가 아날 수 없다.

 

[꾸미기]도자의 여로 (96) 분청철화연당초문병편.jpg
분청철화연당초문병편(편고재 소장) 가로x세로 11x10Cm

 

자료는 가로 33 세로 25Cm 크기의 종이인데 여기에 등사판 글씨가 들어 있다이 것을 세 번 접으면 담배 갑보다 약간 커 보인다앞은 영문과 한자로 이조 도자기 전람회가 표기된 가운데 중앙에는 분청호가 그려져 있는데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솜씨가 아닐까 생각된다뒤에는 작은 도자 문양이 그려져 있다이 것을 모두 펼치면 네 면이 되는데 표지와 뒤가 한 면이 되고 한 면은 전람회장 평면도가 그려져 있고 두 면에는 한자와 일본어를 병용한 "이조도자기전람회에 대하여라는 안내문이 실려 있다그런데 내용을 보면 조선민족미술관 개관에 앞서 1922년 10월 1일 경성 조선귀족회관에서 이조 도자기 전람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구체적인 안내문이니 이 얼마나 흔치 않은 귀중한 자료랴근래 구입한 도자기 자료 중 이보다 더 나를 흥분시키며 즐겁게 한 것은 아마도 없었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의 민예품과 도자기에 대해 야나기 무네요시는 많은 물건을 수집도 하고 글도 썼지만 사실 도자기 전문가는 그가 아니라 아사카와 노리타카다. <조선도자명고>를 펴낸 동생 다쿠미보다도 실은 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가마터 답사를 체계적으로 한 것도 노리타카요 분청이 고려 것이 아닌 조선조 것이라는 것을 최초로 밝힌 것도 그였다자료를 뒤적이다 보면 이들이 1928년 계룡산 가마터 앞에서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우측이 아사카와 노리타카 중앙이 야나기 무네요시 좌측이 아사카와 다쿠미다일제 강점기 시절이었으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이들이 서 있는 발치에는 가마터이다 보니 도편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왜 그런 것들 까지도 부러워지는 것인지그래서 오늘은 계룡산 가마터에서 나온 도편을 한 점 찾아보았다.

 

도편은 굽도 주구도 없어 정확한 기형은 알 수 없지만 내면에는 유약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병의 일부가 아닐까 추측된다남은 조각도 크기가 작은 편이기는 하지만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연당초 철화 문양만은 그야말로 압권이다흡사 덤벙을 연상시키는 흰색의 귀얄문 바탕에 철화로 그려 넣은 연당초문은 실물은 물론이거니와 도록 같은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것이어서 흥미로우면서도 신기할 뿐이다.

 

이 분청철화연당초문병편은 계룡산 가마터에서 인연을 맺은 것이다직접 습득을 한 것은 아니고 동네 어른께 얻은 것이다오래 전 일인데 추석 연휴를 맞아 계룡산 가마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허름한 옷차림의 키 큰 사내가 산기슭이랑 밭고랑 등을 기웃거리며 살피는 것이 안 되어 보였는지 교회 옆 민가에 사시는 어른께서 가지고 계시던 것을 건네 준 것이다따라서 이 도편을 보고 있노라면 그 날의 내 행색이랄까 남루함이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이다그러나 행색이 초라하고 남 보기에 안쓰러워 보인들 어떠랴지나간 세월과 더불어 그 때 그 시절의 열정이 없어진 듯싶어 그 것이 오히려 내게는 그립고 안타깝고 아쉽기만 할 뿐이니 이를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