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월)
이만유/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문경지역 서낭당(성황당) 중에서 역사가 오래되고, 일정 규모의 당집에 서낭신을 모시며, 서낭신(성황신) 또한 영험하다 하여 전국에서 무속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서낭당으로 세 곳을 꼽는다면, 문경읍에 있는 ‘문경새재성황당’과 마성면‘돌고개성황당’, 산양면 ‘현리서낭당’이다. 이곳에는 애달프고 재미있는 전설을 품고 있거나 인간의 능력을 초과하는 수많은 이적(異蹟)과 신비한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진남교반(鎭南橋畔)과 고모산성(姑母山城)이 있는 곳에 영남대로 상 가장 험난한 구간 중의 하나인 토끼비리(관갑천串岬遷, 토천兎遷)와 석현성(石峴城)을 지나면, 우리나라 서낭당 고갯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돌고개성황당’이 있다. 이곳은 영남과 한양 간의 중요한 통로로서 200여 년 전 과거 길에 오른 어느 선비가 이곳 주막촌에서 떡을 팔아 살아가는 조그마한 초가집 주막에서 하룻저녁을 유숙하게 되었다.
그 집에는 아버지와 젊고 아름다운 딸이 살고 있었다. 운명인 듯 선비와 딸은 한눈에 서로 반해 백년가약을 맺기로 굳게 약속하게 되었으며 선비는 헤어지기 아쉬워 바쁜 과거 길이지만, 사흘을 더 머물다 가게 되었다. 마지막 날 밤에 꿈속에서 수염이 허연 산신령이 나타나 글귀가 적힌 종이 한 장을 주어 그 글을 몇 번 읽고 난 뒤 잠에서 깨어났는데 생시인 듯 선명하게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었다. 선비는 "참으로 기이하구나” 하며 서둘러 길을 떠나면서 처녀의 손을 잡고 " 내 꼭 장원급제한 후 다시 돌아오리다”하고는 한양으로 떠났는데 과장(科場)에 도착하고 보니 꿈속에서 산신령이 주어서 보았든 그 글귀가 과거시험 시제(詩題)로 나왔고 선비는 당연히 쉽게 글을 지어 대과에 장원급제하게 되었다.
이렇게 장원급제한 선비는 처녀와의 약속을 까마득하게 잊고 출세를 위해 명문 재상가의 사위가 되었고, 삼 년이 지나도 선비가 오지 않자, 돌고개 주막집 처녀는 참다못해 선비를 원망하며 목을 매어 자결한 후 원귀(怨鬼)가 되었고, 때로는 큰 구렁이로 변하여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을 해코지하였다. 10여 년 후 그 선비가 경상감사가 되어 부임하면서 이 고개를 넘다가 옛 생각이나 처녀를 수소문해 보고 난 뒤 그간의 사연을 듣고 크게 후회하며,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 주었더니 이후 원한이 풀려 재앙이 없어지고 평화로운 주막거리가 되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이 이 처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고 이 성황당에 빌면 과거급제도 하고 먼 길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으며 소원성취도 할 수 있다 하여 기원의 장소가 되었다.
‘문경새재성황당’은 병자호란 때 주화론(主和論)을 편 최명길(崔鳴吉, 1586~1647)과 새재성황신과의 인연으로 얽힌 전설 ‘나라를 구한 문경새재 성황신’이란 제명으로 이미 기고한 글이 있어 줄거리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최명길이 소싯적에 안동부사로 있는 외숙을 찾아가게 되었다. 문경새재를 지날 때 소복한 여인으로 변신한 성황신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어느 보부상이 바친 비단 치마저고리를 안동 모 좌수가 자기 딸에게 주려고 가져갔는데 그 옷을 찾고 죗값으로 그의 딸을 죽이려 안동에 간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안동에 도착한 최명길은 좌수의 집을 찾아가니 곡성이 들리고 딸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청년 최명길이 좌수의 딸 옆에 있는 성황신을 만나 "문경새재에서 만난 것도 큰 인연인데 나를 보아 살려주십시오” 해서 딸을 구해주었다.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차 성황신을 찾았더니 "당신은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멀지 않아 국난이 있을 것이니 그때 싸우지 말고 화친(和親)해야 함을 명심하라” 하였다. 뒷날 병자호란 때 최명길은 화의를 주장해 전란의 피해를 줄이고 나라를 구하게 되었으며 성황신의 말대로 큰 인물 영의정이 되었다. 그 후 문경새재 성황신이 영험하다 소문이 나서 지금까지도 전국에 많은 사람이 횡액(橫厄)을 쫓기 위해 기도하러 오고 있으며 무속인들의 내림굿 명소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산양면 ‘현리 서낭당’은 후삼국시대 후백제 왕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이 전투를 했다는 근암산성(近巖山城)이 있는 현리 뒤편 근암산 정상에 있다. 특이하게도 현리 마을에서는 두 곳에 서낭신을 모시고 있는데 마을 안에 있는 ‘구봉당’이라는 신당이 하나 더 있다. 재미있는 것은 현리 서낭신이 남자 신인데 구봉당 서낭신은 여자 신으로 현리 서낭신의 첫째 부인이며, 더 놀라운 것은 둘째 부인까지 금천(錦川) 넘어 멀리 산북면 대상리 ‘한두리당(수푸당)’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산 위에 있는 현리 서낭신과 안 서낭인 첫 번째 부인과의 만남은 마을 안 구봉당에 가마를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현리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밤이 되면 근암산에 있는 서낭신을 마을 사람들이 가마로 모셔 오셨다. 서낭신을 상징하는 철마를 태운 가마를 구봉당 앞에 내려놓고 그 안에 있는 철마와 함께 구봉당에서 하룻밤을 지내도록 하였다가 다음날 모시고 갈 때는 혼례잔치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둘째 부인과의 만남은 마을 사람들이 가가호호 내놓은 볏짚으로 1km가 넘는 긴 새끼줄을 꼬아 근암산 정상에 있는 서낭당에서부터 산북 대상 한두리당까지 연결하여 철마에 서낭신을 태워 보냈다고 한다. 철마 목에 달린 방울의 소리가 달랑달랑 울리면 그곳 마을주민들은 서낭신이 이제 둘째 부인을 만나러 오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예전에는 근암산 정상 서낭당에는 철마 서너 필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고, 최근까지 구봉당에 어른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인 철마 두 필이 남아있었다고 하나 그것마저 지금은 없어졌다. 그리고 서낭신 태운 가마와 철마는 민속신앙에서 나타나는 신승물(神乘物)로 보면 될 것이다.
그 외 현리 서낭당의 유래담과 영험담을 필자가 직접 현지에서 조사 정리한 것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제사를 지낼 때 기름종지불을 당주집에서 떡시루 위에 올려서 당집까지 약 2km 이동하였는데 지금까지 수 대에 걸쳐 한 번도 중간에서 불이 꺼진 적이 없었고 이동 중에는 바람이 불다가도 잠잠해진다고 하였으며, 기름종지불은 당집에 두고 오는 전통이 있는데 그 종지불을 꺼지지 않게 집으로 가지고 와서 안방에 모신 후 합방하면 생남(生男) 한다는 풍습이 있다.
- 근래에도 서낭신이 영험하다 하며 대입, 취직 등 소원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기도처가 되고 있으며 서낭당 동북쪽 50m 밑에 정화수용 우물이 있고 그 우물물을 떠 놓아야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우물이 눈에 띄지 않거나 다른 곳의 물을 사용하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물이 눈에 띄면 서낭신이 대면을 허락하는 것이고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 제사용 음식은 당주집을 떠난 이후 절대로 땅에 놓으면 안 되고 쉼 없이 가야 한다.
- 서낭당 근처에 묘를 쓰고 난 뒤 호랑이가 나타났다.
- 서낭제를 올리기 위해 걸립하여 모은 돈으로 노름을 한 사람이 그날 물에 빠져 죽었다.
- 당주가 제수용 떡을 하러 가다가 생쥐를 밟아 죽게 했는데 동제를 지낸 후 크게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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