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PICK인터뷰] 뿌리 깊은 음악의 가능성. 원장현 명인의 가치 있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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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인터뷰] 뿌리 깊은 음악의 가능성. 원장현 명인의 가치 있는 방향

완연한 4월의 봄, '비하인드 스토리 1'이라는 제목으로 예정된 공연을 일주일 앞둔 대금 명인 원장현 선생님을 안국동에서 만났다. 한평생 대금과 함께한 시간들로 뭉쳐져 있는 그의 삶을 비롯하여 이번에 있을 공연 이야기, 전통 음악이 나아갈 방향과 목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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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근래 어떻게 지내셨나요?

 

A. 곧 있을 공연 준비를 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공연이 아니더라도 늘 오전/오후/저녁에 꾸준히, 쉬는 날일지라도 규칙적으로 연습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연습하지 않을 때는 레슨을 하거나, 공원 산책을 하는 등 루틴을 지켜가며 살고 있어요.

 

Q. 선생님께선 대나무의 고향인 담양이 고향이라고 들었습니다. 대금의 주원료가 대나무이다 보니, 뭔가 선생님과 운명적인 장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릴 적부터 대금 소리를 듣고 자라신 거죠?

 

A. 어릴 적 우리 집 앞엔 대밭이 있었어요. 대밭 속에 집이 있는 거나 다름없었죠. 태어나면서부터, 사물을 보기 시작할 때부터 대밭을 봤고, 아버지가 대금을 부셨기 때문에 대금 소리를 듣고 보며 자랐죠. 아무래도 집안의 환경에 따라 다양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어린 나이 때부터 늘 대금을 들어서 그런지 대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항상 대금 소리가 마음에 와닿고 좋곤 했습니다.

 

Q. 선생님께서 대금을 시작하신 시기는 1960년대라고 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가난하고 힘겨워하던 시절인데요, 사실 먹고 살기 어려운 때에 예술을 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의 전통음악,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나가신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A.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참 어려운 시기였어요. 말 그대로 보릿고개였죠.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실 예술을 하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숙부님 영향으로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금을 시작했는데, 대금이 너무 좋고 재밌었어요. 그래서 어려운 환경이나 시기와 관계없이 그저 악기가 좋아서 악기를 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유명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어렵게 공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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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의 스승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스승님들은 어떤 분들이었나요?

 

A. 따뜻한 분들이셨습니다. 음악을 배우기 참 어려운 시기였지만, 선생님들께선 그 형편을 다 알고 품어주셨어요. 음악을 하고 싶다는 학생을 내쫓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셨죠. 그렇게 은혜를 입었고, 갚아드리고 싶은데 일찍 돌아가셔서 늘 마음에 걸립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Q. 사실, 사제 간이라는 것은 예술계에서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깊이 있고 중요한 관계잖아요. 특히 이 전통 예술계는 다른 분야보다 좁고,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전통 음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제관계는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시나요?

 

A. 요즘은 국악을 배울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이 있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도 있긴 하지만, 우리 국악은 교과서적인 공부 외에도 더 심층 있게 파고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럴 때 선생님의 영향이 굉장히 중요해요. 학생들은 실력있는 선생님을 찾아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과 열정으로 선생님을 귀찮게 할 정도로 찾아다니며 공부해 나가야 해요. 예술은 상품입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음악적 가치가 필요해요.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나가려면 실력을 늘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의 경우도 최선을 다해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음악, 전통 그 자체를 가르쳐야 해요.

 

Q. 선생님께선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창시하신 창시자시잖아요. 어떻게 산조를 창시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A. 예전엔 ‘유파’의 개념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1985년 국립국악원에 있을 때, 상설 공연에서 독주를 맡을 일이 있었어요. 그 당시 국립국악원 악사장으로 계시던 이승열 선생님께서 제게 무슨 유를 하냐고 물어보셨죠. 그런데 그때는 딱히 어떠한 유를 한다고 하진 않았기에 그간 선생님들께 배워 온 음악들과 내 음악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그럼 원장현류네.’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후로 제가 저의 산조를 ‘원장현류’라고 명칭 하였고, 그 이후로 다양한 유파가 정리되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Q. 전통 어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산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요즘도 종종 시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산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사실 ‘조’나 ‘어법’ 등의 틀 안에서 창의성을 드러내야 하기에 새로운 창작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산조, 더 나아가 민속악에 기반을 둔 음악을 만들 때는 어떤 걸 가장 중심에 놓고 작업해야 할까요?

 

A. 무엇보다 음악 안에 기승전결이 있는 게 중요합니다. 시작과 맺음을 한 ‘마루’라고 하죠. 마루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음악이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가며 복잡하게 들려선 안 돼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시작했다면 근본을 두고 확실하게 맺어준 후에 다른 주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해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정해진 기본적인 틀을 잘 세워두고 그 안에서 창의성을 펼쳐내야 합니다.

 

Q. 곧 있을 공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Behind Story 1>이라 하여 공연이 열리게 될 텐데, 공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이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내 음악세계를 풀어나갈 예정이에요. 지금까지 대금을 배우고 연주한 과정과 앞으로 해 나갈 것들을 펼쳐낼 생각입니다. 이 공연은 가족 연주로도 진행이 돼요. 우리 가족은 모두 국악을 하고 함께 연주해 왔긴 하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생각이에요.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춤 산조>를 통해 함께 무대를 꾸립니다. 또 중학생 손자가 만든 곡을 가지고도 연주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Q.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연주해 나갈 때 장단점이 있을까요?

 

A.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이라는 주제만 드러나고 연주실력은 아쉽다는 이야기를 들어선 안 되겠죠.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공연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연주’에 대한 타이틀로 인해 부담될 때도 있어요. 또 각자 연주 활동하는 분야(정악/민속악/창작곡)가 다르기에 호흡을 맞추기 어려운 부분도 있죠. 하지만 그만큼 가족이기에 훨씬 더 다양하고 진중하게 음악적 고민을 하며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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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열쇠없는집 후학들과도 함께 하는 무대로 하셨는데, 열쇠없는집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A. 80년대 후반 삼청동에 있을 때 내게 배우러 오는 제자들이 언제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자 늘 문을 개방해 두곤 했어요. 제가 공부하던 시절, 선생님들 또한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레슨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어요. 선생님 댁에서 가락만 배우고 나와 산에서 홀로 연습하곤 했죠. 그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꼭 국악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었어요. 그리고 80년대부터 편하게 배우고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 열쇠없는집을 개방했죠. 이번 공연에서도 열쇠없는집 후학들 여섯 명 정도와 함께 무대를 꾸릴 예정입니다.

 

Q. 국악, 전통음악은 오랜 세월을 지켜온 그 가치는 분명하고, 계속하여 발전해 나가야 하죠. 이렇게 음악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전통음악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연주하시거나 음악을 창작하실 때, 어떤 가치나 목적을 중심에 두고 음악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원래 저는 음악적으로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민속악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산조/시나위 외에 창작곡은 할 생각도 안 했었어요. 하지만 1998년도에 ‘날개’라는 창작곡 음반을 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담은 곡을 만들어 직접 연주할 때 그 의미가 더 잘 전달될 것이라고 여겼기에 작업하게 된 것인데, 그 음악을 대중들이 정말 좋아해 줬어요. 말 그대로 대박이 났죠. 이 앨범을 내기 전 발매했던 산조나 민속악 앨범은 거의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전공자들만이 주로 들었는데, 창작곡은 그 반대였죠. 그때 느꼈습니다. 우리 전통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쉽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요. 국악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국악이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이 접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거예요. 듣기 쉽고 흥미가 느껴지는 음악일 때 사람들은 관심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저는 음악을 작업할 때 쉽고 편안하게 만드는 걸 가장 중점적으로 두어요. 쉽고 편한 국악을 듣고 관심을 두는 사람은, 점점 더 국악에 빠져들어 결국 전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국악의 발전은 우리 국악인들의 몫이에요.

 

Q. 그렇다면 전통이나 창작음악을 하는 국악인들이 음악 작업을 하며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 그건 간단합니다. 전통이든, 창작이든 어떤 음악을 하든지 내면에는 우리 것을 갖고 있어야 해요. 정통, 바로 기본기죠. 창작곡을 만든다고 해서 서양음악을 흉내 내고 공부하기만 한다면 그저 우리 악기로 서양 음악을 흉내 낸것밖에 안 됩니다. 모든 음악의 바탕에는 우리 전통음악이 확실하게 깔려 있어야 합니다. 초연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연주되는 곡을 만들기 위해선, 우리 음악의 정통성을 잘 공부하여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죠.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나무는 빨리 말라 죽어요. 전통의 뿌리를 잊지 않고 음악을 해 나가는 것.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원장현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전통의 뿌리를 강조했다. 국악인들이 더더욱 최선을 다해 국악을 사랑하고, 배우며 우리 음악의 근본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선생님 본인도 앞으로 계속하여 끊임없이 전통 음악을 연주하며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평생을 대금과 함께 걸어온 꾸준하고 정통성 있는 그의 음악 인생을 귀감으로 삼아, 우리의 뿌리, 전통이 꾸준하게 발전해 나갈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