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Pick리뷰] 국악관현악, 탐(耽) 탐(探)할 가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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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국악관현악, 탐(耽) 탐(探)할 가치 있는 길

박범훈·김대성·황호준의 창작곡 한자리에
새로운 시작, 함께 할 수 있는 무대
“원영석 지휘,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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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탐(耽)하고 탐(探)하다'가 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국립극장) 2023.03.31.

 

3월의 마지막 날, ‘가장 익숙한 국악관현악을 탐()하고, 가장 낯선 국악관현악을 탐()하다!’를 주제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 시리즈 공연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이번 무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며 사랑받은 레퍼토리를 선정, 해당 작곡가에게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신작을 위촉하여 대표 레퍼토리와 한 무대에서 연주되었다.

 

무대의 작품으로는 한국 창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3인 박범훈·김대성·황호준의 음악이 선정되어, 이들의 대표곡과 위촉 신작을 각 2곡씩 감상할 수 있었다. 원영석 지휘자가 지휘를 맡았으며, 창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정상급 작곡가들의 음악세계를 탐험하는 동시에 낯설고도 익숙한, 국악관현악 레퍼토리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는 무대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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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탐(耽)하고 탐(探)하다'가 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은 황호준 작곡가 (사진=국립극장) 2023.03.31.

 

국악관현악은 국악기만으로, 또는 국악기를 중심으로 서양 오케스트라 악기를 추가 편성하는 대한민국 국악의 관현악 형식을 뜻한다. 조선 후기 서양식 관현악 개념이 자연스레 도입되며 국악계에서도 국악관현악 형식이 생겨났는데, 다양한 악기를 배치하여 소리의 조화와 대비 효과를 노리는 서양식 관현악 형식을 국악기로 연주하는 합주에서도 적용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다양한 악곡이 만들어지고 연주되고 있다.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995년 창단된 이래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다양한 작곡가들과 함께 독자적 양식과 한국적 미학을 탐색하며 한국 창작음악의 시대를 선도해 왔으며, 늘 완성도 있는 연주를 선보여왔기에 이번 무대가 특히 기대되었다.

 

가장 익숙한 국악관현악을 탐()하다

 

공연은 총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세 작곡가의 많이 대표작들이, 2부에서는 위촉 초연작들이 연주되었다. 1부의 문을 활짝 연 음악은 황호준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이슬의 시간이었다. 2021년에 위촉 초연되었던 이슬의 시간은 황호준 작곡가의 동명 자작시 이슬의 시간에 펼쳐진 정서적 전개를 국악관현악으로 형상화한 곡으로, 국악관현악 작품에서 각 악기 군의 음향적 역할에 대해 탐구하며 악기들 각각의 축소와 확장을 교차 진행하여 음악적 색채를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한다.

 

곡 설명처럼, 음악은 시작부터 악기들 각각이 지닌 고유한 음색이나 음향을 뚜렷하게 나타내며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보였다. 화성적인 진행과 나열에 치중하기보다는, 짧은 리듬 꼴을 반복하여 드러내거나 장단 위에서 각 악기의 특색을 도드라지게 연주하며 화합을 이루었다. 하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곡의 초반에 보였던 음향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적이고 서정적인 극적인 요소에 음악이 치중돼 갔다. 단조와 장조를 넘나들며 다양한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훌륭하였으나, 조금 더 하나의 테마나 주제 선율 혹은 악기의 특색이 더 표현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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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탐(耽)하고 탐(探)하다'가 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은 김대성 작곡가 (사진=국립극장) 2023.03.31. 

 

두 번째로 김대성 작곡가의 '금잔디'가 연주되었다. 김대성 작곡가는 민요·풍물·무속음악 등 한국음악의 현장 연구와 체험을 기반으로 현장성 짙은 음악을 선보이며 한국음악의 발전 가능성을 증명해온 작곡가로, 자신의 창작곡에 적극적으로 주제 의식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금잔디는 고구려 산성에 핀 한 송이의 꽃을 보고 험난한 역사를 견뎌온 고구려인과 현대의 민중을 떠올리며 작곡된 곡이다. 굿거리 풍으로 시작되어 3박 계열로 시원스레 연주되는 이 곡을 듣는 내내 국악기로 우리 음악의 고유한 장단과 어법을 연주하는 것이 가장 한국적이고 국악관현악에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 곡에서는 김대성 작곡가가 각 악기의 특성을 뚜렷하게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는 음계의 사용뿐 아니라 적재적소에 각 악기가 활용되어 음악적으로 조화를 이루었으며, 단순하게 흘러가는 선율을 받쳐주는 화성 진행은 뻔하지 않고 독특하면서도 편안했다. 또 확실하게 들려주는 주제 선율은 이 곡의 완성도를 크게 높여주었다. 한민족의 역동적 힘과 굳건한 의지는 이 곡에서 힘차게 그 책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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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탐(耽)하고 탐(探)하다'가 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은 박범훈 작곡가 (사진=국립극장) 2023.03.31. 

 

1부 마지막 곡으로는 국악관현악 대표곡으로도 손꼽히는 박범훈 작곡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뱃노래'가 연주되었다. 30년 넘게 끊임없이 연주되어 온 국악관현악 대표 레퍼토리인 이 곡은 경기민요 뱃노래를 주제로 한 국악관현악 곡이다. 나발과 나각, 태평소와 타악의 조합은 힘 있게 출항하는 거대한 배를 연상시켰으며, 우리 전통의 강인한 특색을 그 어느 곡에서보다 대중적이면서도 위엄있게 표현한 부분이었기에 웅장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전통적인 선율, 민요의 어법과 장단이 가장 우선되어 음악이 이끌어 가는 부분에서는 국악기의 매력이 크게 돋보였으며, 이 곡이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사랑받고 꾸준히 연주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낯선 국악관현악을 탐()하다

 

2부 순서는 세 작곡가들의 위촉 초연 곡들로 이루어졌다. 첫 무대는 황호준 작곡가의 '에렌델;. 지구에서 129억 광년 떨어진, 최장 거리의 별인 에렌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고대어로 새벽별또는 떠오르는 빛을 의미하는 에렌델을 바라보며, 우주의 탄생 과정에서 생성되는 빛과 소리를 상상해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우주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니 작곡가 홀스트(Gustav Theodore Holst)행성 모음곡이 떠올랐다. 웅장하고 위엄 있으며 신비로운 우주를 연상시키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으로 연상되는 우주의 느낌을 서양음악으로는 익숙하게 감상해 왔으나 우리 음악, 전통적인 느낌으로는 접하지 못하였기에, 이 음악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되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곡은 더욱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국악기의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음색이 그려내는 에렌델은 강인하고 신비로웠다. 단조 스케일에 b2를 활용하여 어둡고 오묘한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아쟁과 콘트라베이스 등의 베이스 악기는 계속해서 반음계적 베이스라인을 반복 연주해 음악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뻔하지 않은 화성 진행과 대중적이면서도 현대음악적 선율, 확실한 주제 선율과 국악기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음색의 조화는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에렌델의 이미지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다음으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 영감을 받은 위촉 초연작 교향시 동양평화(東洋平和)’가 연주되었다. 음악은 7발의 총성으로 시작했다. 모든 악기가 포르티시모(fff)로 격렬하고 짧게 총성을 울리고, 박자는 2/4, 3/4, 4/4, 5/4, 3/4박으로 마디마다 변화했다. 이는 표적을 향해 쫓아가는 총성의 박자가 고정되고 안정될 수 없다는 표현으로, 마치 진짜 총성이 울리듯 강렬하고 극대화된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7발의 총성 이후 아쟁으로 들려준 어긋난 불협화음에서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설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곡에서는 특히 찰현 악기의 효과가 크게 드러났다. 아쟁의 오묘한 화성으로 진행되는 베이스 라인과 해금의 가냘프지만 굳건한 음색의 조화는 마음을 흔들었다. 깊이 있고 힘 있는 주제 선율과 악기군의 역동적 확장, 계속되는 반음계 진행의 낯섦은 아팠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3국의 전통민요가 어우러진 부분도 크게 와닿았다. 어두운 불협화음의 코드 위에 희망을 나타내는 화합과 상생의 주제 선율이 연주된 부분은 지난 역사를 절대 잊지 않고 자각하는 동시에 평화와 희망을 그려내자는 주제가 확연히 드러났다. 음악으로 메시지를 담는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훌륭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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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탐(耽)하고 탐(探)하다'가 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은 원영석 지휘자 (사진=국립극장) 2023.03.31.

 

마지막 무대는 박범훈 작곡가의 가기게’. 이 곡은 보통의 협주와 달리 별도 독주자 없이 관현악을 이루는 각 악기 군이 서로 독주의 역할을 번갈아 맡는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제목인 가기게는 해금의 가락을 구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자연스레 추임새가 나올 정도로 흥겨운 곡이었다. 실제로 원영석 지휘자는 관객석을 향해 몸을 돌려 추임새와 박수를 유도하고, 연주자들도 가기게얼쑤등 추임새를 외치며 공연장의 모든 이들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다. 악기들이 허튼타령을 중심에 두고 솔로 연주를 펼쳐 악기의 매력을 드러내고, 우리 장단과 우리 음악의 신명과 흥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 무대는 관객과 연주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고민하는 원로 작곡가의 생각과 음악에 대한 사랑이 모두 묻어난 무대였다.

 

특히 이 공연에서는 원영석 지휘자의 지휘가 밝게 빛났다. ‘가기게에서 자연스럽고 신명 나게 관객들을 음악에 동화시킬 수 있던 것도, ‘동양평화(東洋平和)’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며 눈물을 자아낸 것도 원영석 지휘자 특유의 유쾌함과 감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모든 곡을 완전히 분석한 듯한 거침없고 카리스마 있는 그의 지휘는 연주에 온전히 몰입하고 홀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국악관현악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일까. 국악기는 본래 독주 악기로만 연주되었으며 음색이 뚜렷하고 특징이 진해 서양의 오케스트라처럼 자연스레 합주로 묻어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많다. 하지만 오랜 기간 국악관현악은 계속해서 연주되고, 발전되어 왔으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국악인들은 국악기가 지닌 고유한 색채와 전통적인 어법과 대중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국악관현악을 연주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을 우선에 두는 것이 아닐까.

 

3월의 마지막, 날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겨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무대. 우리 음악의 멋과 고유한 본질을 음악적인 우선으로 두고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간다면, 앞으로의 국악, 국악관현악은 익숙하고도 낯선 그 어떠한 예술 형태를 탐()하고 탐()하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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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탐(耽)하고 탐(探)하다'가 3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국립극장) 202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