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PICK인터뷰] 인류무형문화유산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과 과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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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인터뷰] 인류무형문화유산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과 과제 (2)

혀재 송파산대놀이의 연희본 '이병옥본'

인류무형문화유산 '탈춤'이 문화적 전통으로 공동체에 정체성과 연속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탈춤'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과장·유형화한 탈을 쓰고 권력과 사회의 부조리·인간의 이중성 등을 적나라하고 신랄하게 풍자·비판하면서 관객의 동조·야유 같은 능동적인 참여까지 이끌어내 완성하는 적극적 소통 방식의 예술이기도 하다


송파산대놀이는 서울시 송파구 송파동과 가락동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가면극으로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울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근처에 있는 서울놀이마당에 전수회관을 두고 있다. 놀이판은 주로 송파장 마당이었으며, 놀이마당은 장마당의 넓은 터에 둥글게 말뚝을 박고 새끼줄을 쳐서 원형의 야외무대를 만들고, 악사석에는 멍석을 깔고 광목 천막을 쳐 악사와 동네어른들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1925년 7월 대홍수로 인해 송파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모래사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현재 가락동 일대로 이주해 살면서 한두 번 산대놀이를 거행했으나, 이내 전승이 단절되었다. 연희자 허호영(許浩永, 1914-1990)의 증언에 의하면, 송파에 거주하고 있던 허윤(許鈗, 1867-1935)이, 1900년부터 구파발 본산대놀이의 연희자 윤희중(尹熙重, 1840-1923)을 초빙하여 쇠진한 송파산대놀이를 재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1930년대 초부터 돌말이(석촌리)에서 한유성과 이범만 등이 송파의 윤종현에게 가면극을 전수받아 재건에 성공했다. 그 후 일제강점기 말에 단절되었던 돌말이의 산대놀이는 광복 이후 몇 차례 공연되었으나, 다시 전승이 끊겼다가 1960년대에 복원되었으며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서울놀이마당 전수회관에서 전승되고 있다.

송파산대놀이는 오래 전에 채록된 대본이 없고, 1970년대에 들어와 복원되었기 때문에 대사에 현대적인 표현이 많다. 현재 연희 교재로 쓰이고 있는 송파산대놀이의 '이병옥본'연희본은 1975년에서 1980년까지 이병옥이 당시의 예능보유자인 이범만, 한유성, 문육지, 김윤택, 이충선의 구술을 토대로 채록한 연희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송파산대놀이』(2006)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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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옥(전 송파산대놀이보존회 회장, '송파산대놀이' 명예보유자)

 

Q.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으로 등재된 송파산대놀이보존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가치를 평가했는지요.

A.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위원회는 한국의 탈춤이 강조하는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 신분제에 대한 비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주제이며,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특히, 안건으로 올라간 총 46건의 등재신청서 중에서 한국의 탈춤등재신청서를 무형유산의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의미를 명확하게 기술한 모범사례로 평가하였습니다.


Q. ‘한국의 탈춤등재를 위해 언제부터, 어느 단체와 기관이 협력했나요.

A. ‘한국의 탈춤의 유네스코 등재는 10여년전 국가무형문화재 13개 탈춤단체인 대한민국탈춤단체 총연합회 출범 때부터 등재를 추진했던 것이지만 이번에 등재된 것은 민·관이 협력하여 국제사회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쾌거를 거둔 좋은 사례입니다. 특히 문화재청과 외교부, 경북 안동시, 탈춤과 관련한 13곳의 국가무형문화재보존회와 5곳의 시도무형문화재 보존단체 및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이 준비 과정에서부터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Q 현재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어떤 종목의 탈춤이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나요.

A. '한국의 탈춤'은 모두 18개 종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양주별산대놀이·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강릉관노가면극(강릉단오제북청사자놀음·봉산탈춤·동래야류·강령탈춤·수영야류·송파산대놀이·은율탈춤·하회별신굿탈놀이·가산오광대 등 13개의 국가무형문화재와 속초사자놀이(강원퇴계원산대놀이(경기진주오광대(경남김해오광대(경남예천청단놀음(경북) 5개 시도무형문화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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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산대 첫 상좌춤 이병옥 (3) 둘째 상좌 대무

 

Q. 현재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을 하는 회원의 구성원은 몇 분이신가요.

A. 1973년 지정당시 6명이던 보유자가 1995년 이후 1명뿐입니다. 보유자를 늘리고 국가지원 확대가 필요합니다. 송파산대놀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전승자가 줄어 위기를 겪는 현실은 여전하고, 현재 송파산대놀이에는 2006년 보유자가 된 함완식, 지난 7월 명예보유자가 된 이병옥을 비롯해 전승교육사(안병인, 김명하, 이수환, 이영식, 강차욱) 5, 이수자(전수교육을 마친 자)20, 전수자(전수교육을 받는 자) 26명이 있다. 이 중 현재 활동 이수자는 11, 전수자는 23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유자가 하나 둘 사망하면서 1994년 이후 송파산대놀이 초기 보유자는 한명도 남지 않았다가 19955월 김학석(1940~2014)이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작고하여 현재 송파산대놀이 보유자는 함완식 1명에 불과합니다.

 

Q. 왜 보유자를 늘리지 못하나요.

A. 문화재청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단체 몇몇 사람을 보유자로 인정하는 데 따라 전승자 간에 불화를 조성할 수 있고 예산 관계상 다수의 보유자 인정이 어려워 단체 성격별로 주된 기능을 보유한 자를 1~2명 이내에서 두기로 내부적인 방침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존단체의 시각은 다릅니다. 보유자를 1명 이내로 두게 되면서부터 내부갈등은 더 첨예해졌고 인정되지 못한 전승교육사들은 자괴감에 빠져있고 이수자나 전수자들은 미래희망을 잃고 전승활동을 중지하고 떠나는 사례가 더 많아져 회원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리하여 몇 개의 인기있는 개인종목을 제외한 단체종목 대부분이 전수자가 많이 줄어들고 있으며 송파산대놀이도 언제까지 존속할지 걱정이 크죠. 전수자뿐만 아니라 보유자가 돼도 탈춤으로 생계유지가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거리입니다. 국가 지원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공연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하는 제자들을 볼 때가 가슴 아프죠. 겨우 1년에 한번 정기 공연하는 것과 운영비 정도 받는 게 전부죠. 더구나 요즘에는 젊은이들은 살기 어렵다고 잘 오지 않는 현실이고,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쳐도 중학교 2학년을 마치는 순간 안 나와요. 대학 입시에 도움이 안 되니 부모들이 아무도 자기 자식을 보내지 않는 거죠. 예능을 가장 감수성 있게 받아들이기 쉬운 때를 놓쳐버리고 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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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산대 첫상좌춤 이병옥 (1)삼진 춤사위

 

Q. 명예보유자는 공식적으로 받는 어떤 혜택이 있나요.

A. 또 하나의 문제는 명예보유자에 대한 시각과 대우입니다. 명예보유자는 전수활동에서 은퇴하는 것으로 전수의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양성이나 전수자 교육을 인정받지 못해 해당종목 이수자 추천이나 신청을 할 수 없는 직함입니다. 평생을 몸 받쳐 전승활동을 했는데 명예보유자가 되는 순간 뒷방노인으로 전락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보유자가 건강이 악화되어 전수활동을 못해도 명예보유자로 가지 않으려 하는게 현실입니다. 그 이유 중에 중요한 것은 보유자가 10년전에 120만원을 받았으나 조금씩 인상되어 현재 150만원이 되었고 전승교육사는 50만원에서 현재 90만원으로 인상되었지만, 명예보유자는 전승비도 특별지원금이라하여 10여년 전에 지급하던 100만원이 10년이 지나도 한푼도 인상하지 않고 그대로 현재도 100만원입니다.

대를 이어 면면이 이어 온 전통문화는 본연의 가치가 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평생 동안 천착 해 온 원로(보유자)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인간문화재입니다. 그런데도 존재 이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전수활동 의무만 강조하는 시각은 속히 바로 잡아야할 대목입니다. 일부 원로들은 지병과 노환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서 명예를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가족과 제자들의 짐만 안겨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수자들이 살기위해 생업을 택하고 떠나가는 추세입니다. 계승하는 제자들이 없어서 일년에 소멸되는 문화유산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국가에 평생 봉직하고 퇴임한 분들에게 지급하는 연금도 물가상승에 따라 매년 조금씩이나마 인상지급하는 형평성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Q. 해방이후 탈춤이 가장 활발하게 전승활동이 이루어진 때는 언제인가요

A. 1970~80년대는 대학 탈춤패가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대학마다 문전성시를 이뤄 전수관에도 엄청 나게 몰려왔어요.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강사를 초청하여 이수자들을 여러 대학에 파견하여 산대놀이 탈춤강습을 집중시켜 탈춤발표회를 가졌고 지방대학까지 전수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당시는 정신없었죠. 20여년 동안 활발한 전승이 이뤄졌다고 봅니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전수장학생 25명 중 5년간의 교육을 마친 18명이 이수자가 됐고, 1986년에는 전수교육 대상이 전수장학생뿐만 아니라 전수장학생 연령을 초과한 일반전수생까지 확대됐습니다.


Q. 전승활동 기간 중 외부의 원인으로 전환기나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나요.

A. 대학 탈춤패가 일부 운동권 학생이 중심이다 보니 탈춤 추는 사람들을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봤죠. 당시 탈춤 배우러 가면 경찰에서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 이후 점차 배우러 오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대학가에서도 탈춤외에 풍물, 민요 등 다른 전통문화를 배우려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전수자가 줄어들었고, 다양한 문화향수와 개인취향의 대중문화와 현대문화에 관심이 높아지는 2000년 밀레니엄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젊은이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점차 약해져 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IMF 이후 경제적인 문제가 더욱 현실적으로 두드러지는 시대를 맞이하자 젊은 전승자들은 생계를 위해 더욱 줄어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부 종목이나 보존 단체에서는 기예능 보유자가 세상을 떠나고 전승하는 제자가 없어서 소멸되어가고 있는 것이 무형문화재의 실정입니다

 

우리 고유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한편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에 따라 문화다양성과 인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지속적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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