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PICK인터뷰] 인류무형문화유산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과 과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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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인터뷰] 인류무형문화유산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과 과제 (1)

지난해 11월 모로코에서 개최 한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문화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탈춤(Talchum,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의 등재가 되었.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한국의 탈춤'은 대일항쟁기 기간에는 일제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법제적 금압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확산과 농민층의 분해로 잠시 농촌공동제의 전승력과 활동이 희박하게 되어 점차 탈춤의 존재양상도 변화하게 되다. 한민족 고유 정서를 표출하는 민속이 일제의 외압으로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해방후 1950년대 후반 다시 복원되기 시작한 송파산대놀이는 1973년 1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다. 탈놀음 12마당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고 32개 탈 중 신할미, 신할애비, 포도부장, 무당 등 송파산대놀이에만 쓰이는 탈이 4개나 있다. 당시 연희자 5명과 악사 1명 등 6명이 보유자(인간문화재)로인정받았다. 202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이 등재된다. 이번 등재로 우리나라는 총 22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송파산대놀이보존회'는 매년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 오고 있다. 또한 청소년, 지역주민,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 체험 활동도 펼치고 있다. 작년까지 보존회 살림을 해온 이병옥 회장에게 그동안 전승활동에 대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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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옥(용인대 명예교수 ‘송파산대놀이’ 명예보유자)

 

Q.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으로 등재된 '송파산대놀이보존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가치를 평가했는지요.

A.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위원회는 "'한국의 탈춤'이 강조하는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 신분제에 대한 비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주제이며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특히안건으로 올라간 총 46건의 등재신청서 중에서 '한국의 탈춤' 등재신청서를 무형유산의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의미를 명확하게 기술한 모범사례로 평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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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로 추정되는 송파산대놀이 사진. 일본 병사가 장구 장단을 치고 있다. (사진=이병옥 교수 제공).

 

Q. '한국의 탈춤' 등재를 위해 언제부터, 어느 단체와 기관이 협력했나요. 

A. '한국의 탈춤'의 유네스코 등재는 ·관이 협력하여 국제사회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쾌거를 거둔 좋은 사례입니다.문화재청과 외교부경북 안동시탈춤과 관련한 13곳의 국가무형문화재와 5곳의 시도무형문화재 보존단체 및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이 준비 과정에서부터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Q. 현재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은 어떤 종목의 탈춤이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나요.

A. 한국의 탈춤은 모두 18개 종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양주별산대놀이·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강릉관노가면극(강릉단오제북청사자놀음·봉산탈춤·동래야류·강령탈춤·수영야류·송파산대놀이·은율탈춤·하회별신굿탈놀이·가산오광대 등 13개의 국가무형문화재와 속초사자놀이(강원퇴계원산대놀이(경기진주오광대(경남김해오광대(경남예천청단놀음(경북) 5개 시도무형문화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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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을 하는 회원의 구성원은 몇 분이신가요.

A. 6명이던 보유자가 1995년 이후 1명뿐이다. 보유자 늘리고 국가 지원 확대 필요합니다. 송파산대놀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전승자가 줄어 위기를 겪는 현실은 여전하고. 현재 송파산대놀이에는 2006년 보유자가 된 함완식, 지난 7월 명예보유자가 된 이 회장을 비롯해 전승교육사(전수교육을 하는 자) 5명, 이수자(전수교육을 마친 자) 20명, 전수자(전수교육을 받는 자) 26명이 있다. 이 중 이수자는 11명, 전수자는 23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유자가 하나둘 사망하면서 1994년 이후 송파산대놀이 보유자는 한명도 남지 않았습다. 이후 1995년 5월 김학석(1940~2014)이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송파산대놀이 보유자는 1명에 불과합니다. 


Q. 왜 보유자를 늘리지 못하나요.

A. 단체 몇몇 사람을 보유자로 인정하는 데 따라 전승자 간에 불화를 조성할 수 있고 예산 관계상 다수의 보유자 인정이 어려워 단체 성격별로 주된 기능을 보유한 자를 1~2명 이내에서 두기로 국가 방침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전수자가 많이 줄어 송파산대놀이가 언제까지 존속할지 걱정이 크죠.

전수자뿐만 아니라 보유자가 돼도 탈춤으로 생계유지가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거리입니다. 국가 지원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공연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하는 제자들을 볼 때가 가슴 아프죠. 겨우 1년에 한번 정기 공연하는 것과 운영비 정도 받는 게 전부죠. 인간문화재가 매달 국가에서 받는 150만원으로는 생계유지도 힘들어요. 더구나 요즘에는 젊은이들도 잘 오지 않는 현실이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쳐도 중학교 2학년을 마치는 순간 안 나와요. 대학 가는 데 도움이 안 되니 부모들이 아무도 자기 자식을 보내지 않는 거죠. 예능을 가장 감수성 있게 받아들이기 쉬운 때를 놓쳐버리고 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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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산대놀이 취발이(이병옥), 해산어멈, (사진=이병옥 교수 제공).

 

Q. 해방이후 탈춤이 가장 활발하게 전승활동이 이루어진 때는 언제인가요

A. 1970~80년대는 대학 탈춤패가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대학마다 문전성시를 이뤄 전수관에도 엄청나게 몰려왔어요. 그 당시 정신없었죠. 20여년 동안 활발한 전승이 이뤄졌다고 봅니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전수장학생 25명 중 5년간의 교육을 마친 18명이 이수자가 됐고. 1986년에는 전수교육 대상이 전수장학생뿐만 아니라 전수장학생 연령을 초과한 일반전수생까지 확대됐습니다.


Q. 전승활동 기간 중 외부의 원인으로 전환기나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나요.

A. 대학 탈춤패가 대부분 운동권 중심이다보니 탈춤 추는 사람들을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봤죠. 당시 탈춤 배우러 가면 경찰에서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 이후 점차 배우러 오는 사람이 줄었습니다.(계속)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현황은 종묘 제례악(2001), 판소리(2003), 강릉 단오제(2005),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2009),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제주해녀문화(2016), 씨름(남북공동, 2018), 연등회(2020), 한국의 탈춤(2022)이다. 


그러나 전승활동을 위한 현실은 많은 과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젊은 계승자가 생계를 위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 보존 단체에서는 기예능 보유자가 세상을 떠나고 전승하는 제자가 없어서 소멸되어가고 있다. 

우리 고유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한편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에 따라 문화다양성과 인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