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PICK인터뷰] 근거 있는 음악, 전통성 중시하는 작곡가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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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인터뷰] 근거 있는 음악, 전통성 중시하는 작곡가 이병욱

‘이병욱과 어울림 악단’ 창단 35년
한·독 수교 140주년 기념공연 준비
국악기와 양악기가 함께하는 창작곡 주력
“우리 전통의 본질을 확실히 세운 후에 창작”

봄이 코끝으로 다가온 3월의 초입,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서원대 작곡과 명예교수이자 국내 최초의 국악기 박물관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을 설립한 이병욱 교수를 만났다. 이병욱 교수는 기타로 우리 전통음악의 신명을 전하는 작곡가로 유명한 이병욱과 어울림이란 실내악단을 창단하여 30년 넘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우리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작업하고, 연주한다. 특히 올여름엔 재독한인총연합회 주최로 독일에서 광복절 및 한·독 수교 140주년 기념공연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끊임없는 열정과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전통 음악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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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조계사에서 지인들과 함께 (사진=김선정 기자). 2023. 03.05.

 

Q. 안녕하세요. 교수님. 다양한 음악적, 문화적 활동을 하고 계신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꾸준히 곡 작업을 하고, 홍천에 있는 마리소리골 박물관에서 귀농 귀촌자들을 대상으로 민요나 기타, 국악 강습 등을 하며 지냅니다. 산속 깊은 곳에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죠. 오래전부터 마리소리골 박물관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통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마리소리골이 그저 전시만 하는 박물관이 아닌 문화 예술적 측면으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어 기쁩니다.


Q.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에 심취하여 전통음악에 빠져들었다는 인터뷰 내용을 보았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현대음악 속에 전통 악기의 색채나 어법을 활용해 넣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셨죠. 특별히 좋아하시는 윤이상 선생님의 악곡이나 선생님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A. 1984년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 윤이상 선생님은 정년 후 베를린 음대 명예박사를 하고 계셨는데, 우연히 길을 가다 역 근처에서 그분을 마주쳤습니다.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품속에 선생님의 사진을 품고 다녔기에 마주치자마자 선생님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죠. 그때 선생님과의 인연이 닿아 선생님 음악회의 세미나에도 가고, 한국 민속음악, 동양사상 등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기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전통음악 어법은 서양음악과 다른 부분이 많아 오선보에 굉장히 까다롭게 표기해야 하는데, 윤이상 선생님은 본인의 악보에 전통음악 어법이나 주법을 세세하게 표기하고 연주자들에게 섬세히 연주하게끔 요구하셨어요. 그런 걸 옆에서 보고 공부하며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은 모두 동양적이고 한국적입니다. 윤이상 선생님의 모든 악곡을 다 좋아할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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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이병욱 교수는 인터뷰 내내 전통은 본질에 대한 기본적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선정 기자). 2023. 03.05.

 

Q. 교수님께서 추구하시는 전통음악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한 음악적 시도가 궁금합니다.


A. 지금까지 저는 민요나 판소리, 전통 악곡을 가지고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서양의 화성, 대위 기법 등을 활용하여 국악기와 양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창작곡들을 많이 썼습니다. 특히 민요를 많이 활용한 음악을 만들었죠.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기쁨이 될 수 있는 창작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세계인이, 그리고 온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전통 음악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고 아우를 수 있으려면 어떤 걸 가장 중요시하며 나아가야 할까요?


A. 요즘은 전통이라는 게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 같습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아직도 정통성을 가장 중시하고, 그대로 연주하며 그 전통적 본질을 발전시키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 전통 음악계를 보면 한국의 정통성이 느껴지는 창작 음악이 비교적 적다고 느껴져요. 우리의 전통을 확실히 중심에 두고 정체성을 세운 후에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음악이나 타 장르와 협업을 하더라도 우선 우리 전통의 본질을 확실히 세운 채로 작업을 해야 하죠. 온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음악에는 기본적으로 ‘전통성이 세워져야 합니다.


Q. 얼마 전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여 즉흥음악을 연주하는 축제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이처럼 전통 음악계에선 다방면의 음악적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참신한 시도를 통해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늘 창작 음악의 결이 비슷하고 유행만을 따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작곡가로서 현 전통 음악계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A. 음악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음악을 감성에 비추어 자유롭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적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음악에 확실한 이유가 없다면, 그저 유행하고 보여지는 음악밖에는 안되죠. 만일 서양음악을 접목시켜 곡을 만든다면, 서양음악의 이론과 체계도 확실하게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른 채로 음악을 창작해내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유행의 흐름만을 좇아 음악적인 기초를 잃어버린다면 그저 흘러가는 유행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듣고, 전통 음악적으로도, 서양 음악적으로도 구체적인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음악에 그냥은 없습니다. 내 음악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모두에게 자신 있게 발표할 수 있어야 해요.


Q. 교수님께서 곡을 쓰시고 작업하시며 중요하게 생각하며 기록하시는 게 있다면 어떤 건가요?


A. 운영하는 어울림 악단이 창단된 지 35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곡을 발표하고 연주를 하며 모든 악곡을 악보로 남기는 작업을 해 왔고, 현재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꼭 발표로, 악보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죠. 그것이 미래까지 이어지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Q. 코로나 때문에 마리소리골운영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A. 물론 공연 횟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를 멈추게 한 지난 팬데믹 3년 동안 깊이 생각해 보면 전염병과 그로 인한 차별, 고난 등.... 모두 인간의 오만과 잘못에서 비롯됐습니다. 자연을 훼손하고, 오염시키고, 사람을 우선에 두는 인본주의적 마음이 사라졌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도덕성, 양심, 사랑 등 인본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주 개탄할 일입니다. 우리는 그럴수록 고전과 음악, 예술을 사랑하며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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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이병욱 교수는 작품 구상을 위해 고택과 사찰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사진=김선정 기자). 2023. 03.05.

 

Q. 정년 퇴직 후 가장 주력하시는 일이 어떤 것인가요?


A. 현재 내 작품은 1,000여 곡 정도가 됩니다. 하지만 이 정도 했다고 만족하고, 인제 그만 쉬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계속하여 힘닿는 데까지 뜻있는 음악 작업을 해 나갈 겁니다. 차후에 누군가 내 음악에 대해 분석 연구를 할 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정체성과 근본을 가지고 나아갈 것입니다.


Q. 이번 여름에 준비 중이신 행사는 어떤 행사인가요?


A. 올해는 8.15 광복절과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입니다. 그 기념행사로 재독한인연합회에서 초청받아 재독한인 동포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문화행사 공연을 준비 중입니다. 음악적인 과정을 통하여 역사적인 일에 기여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것에 뿌리를 두고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우선에 두고 끊임없는 연구와 음악 작업을 하는 이병욱 교수님은, 앞으로도 한눈팔지 않고 음악에 끝까지 집중하겠다고, 뜻 있고 가치있는 음악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묵묵히 걸어온 그의 음악 세계는 그의 피땀 어린 열정과 전통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다. 현재를 사는 음악가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의 음악적 행보를 통해, 근거 있고 정통성이 뚜렷한 현대의 우리 전통 음악이 더 멀리, 깊이 있게 발전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