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이슈 분석] 즉흥음악,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에서 현대의 음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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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즉흥음악,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에서 현대의 음악으로

2023 한국즉흥음악축제
장르 경계 허무는 공존, 확장, 상생 무대
남산국악당과 돈화문국악당 공동기획
‘현장성’과 ‘합’, 그리고 즉흥음악,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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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일부터 19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과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공동기획으로 ‘2023 한국즉흥음악축제가 열렸다


‘2023 한국즉흥음악축제는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클래식, 재즈, 전자음악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공존, 확장, 상생의 무대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약 20명의 예술가들이 즉흥음악에 대한 고민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자유롭고 대담하게 풀어낸 돈화문국악당에서의 프린지공연과, 현재 예술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음악가들의 새로운 조합으로 펼쳐진 서울남산국악당의 한옥 공연’, ‘메인 공연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복합적인 사운드와 퍼포먼스 함께하는 무대

 

즉흥음악이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4일에 걸쳐 펼친 이 공연의 마지막 날,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마지막 메인 공연을 관람하였다. 전통 국악기와 보이스, 전자음악, 현대무용, DJ 등 매우 복합적인 사운드와 퍼포먼스가 함께하는 무대를 만나볼 수 있었으며, 1부는 심은용, 기화, 리차드 두다스(Richard Dudas), 제라드 레드몬드(Jared Redmond), 2부는 박경소, 임용주, 백현진, 김오키, 3부는 왓와이 아트, 모어 모지민, Djilogue(vurt.) DJ의 무대로 펼쳐졌다.


공연을 보기에 앞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현장성’, 그리고 즉흥음악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풀어낼지였다.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여 그 순간의 즉흥이라는 틀 안에서 음악을 만들어 갈 때 서로의 소리를 어떤 식으로 듣고 맞추어 나갈지, 어떤 장르의 즉흥을 선보일지 기대되었다. 즉흥연주의 사전적 의미는 연주자 자신의 감흥에 따라 악곡의 전부나 일부를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어 하는 연주를 뜻한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연주를 뜻하는데, 물론 아티스트들끼리 어느정도의 음악적 약속은 존재하겠지만, 음악성과 자유로움을 순간적으로 가장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즉흥이라는 장르 안에서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발현될지 집중하였다. 또한 어느정도의 대중성이나 특수성을 고려하며 연주하는지 초점을 맞추어 관람하였다.


1부 무대에서는 거문고 연주자 심은용, 하피스트 기화, 전자 음악을 담당한 리차드 두다스(Richard Dudas), 키보디스트 제라드 레드몬드(Jared Redmond) 세 아티스트가 합을 맞추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하프의 활용이었다. 보통 하프 연주라고 하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기법이 가장 많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하피스트 기화의 연주에서는 하프의 새로운 소리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가장 특이했던 건 채를 들고 하프의 현을 치고, 긁는 것이었다. 서걱서걱한 투박함과 동시에 하프에서 나는 청아한 음색이 함께 어우러지며 오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프와 거문고가 서로 비슷한 느낌을 주고받기도 하고, 함께 같은 선율이나 리듬을 연주하며 합을 맞추는 느낌으로 음악이 진행되었는데, 전자 사운드와 키보드의 신스가 그 중간에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음악을 풍성하게 받쳐주었다

 

웅웅대고 깊은 사운드 연출은 마치 동굴 속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느낌이었으며,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강했다. 음악은 끝날 때까지 선율이나 화성에 매이지 않고 오로지 분위기로 진행되는 느낌이었고, ‘사운드에 주력하여 이런저런 소리를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음악은 전반적으로 전자 사운드가 깔린 상태로 무조 음악(無調音樂), 말 그대로 악곡의 중심이 되는 조성(調性)이 없는 음악처럼 화성 진행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minor chord(단조)4음에 #을 붙여 반음계를 활용하는 선법을 연주하며, 동양적이고 묘한 색을 드러내 그들만의 색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아쉬웠던 것은 의 개념이 너무 모호하게 느껴졌던 것인데, 완전히 무조성도 아니고, 조성도 아닌 진행으로 흘러가 중심이 되는 음악의 색이 잘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거문고와 하프를 뜯고, 활로 긁고, 채로 치는 등의 기법을 많이 도입함으로써 신선함은 느낄 수 있었으나, 음악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악기의 고유한 음색은 거의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2부는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 타악/전자음악 임용주, 보컬 백현진, 색소포니스트 김오키가 함께 무대를 꾸렸다. 전자음악이 들어가며 어느정도 1부와 비슷한, 어둡고 웅웅대는 분위기와 사운드가 주를 이루긴 했지만, 악기의 구성이나 음악의 진행은 1부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2부 무대는 귀를 찌르는, 어떠한 소음이라 부를 수 있는 어지러운 사운드 안에서 한 줄기의 높은 데시벨의 음으로 시작되었다그리고 높고 낮은 공간음향 한 가운데에서, 굉장히 낮은 음역대의 투박한 색소폰 연주와 튕기는 농현으로 효과를 내는 가야금 소리가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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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의 고유 색 자유로이 표현

 

색소폰과 가야금은 무대가 끝날 때까지 같은 리듬 꼴이나 음의 구성, 효과 등으로 화합하여 연주하는 동시에 각 악기의 고유한 색을 자유로이 표현하여 진정한 즉흥음악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대중음악 장르에서 색소포니스트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오키의 연주는, 지금껏 많이 연주하던 편안하고 멜로디컬한 색소폰 음색과는 조금 다른, 낮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줌으로 더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박경소 가야금 연주자는 엄청난 파워로 가야금의 최대 사운드를 표출하거나, 리듬 섹션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동시에 악기 간의 빌드업, 호흡의 중심을 잡고 이끌어 나가는 음악적 해석이 돋보였다. 그에 더해져 백현진의 약간의 의문이 드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와 그에 따른 전자 사운드가 얹어지며, 음악은 자유롭지만 체계적으로 흘러갔다. 서로의 연주에 귀 기울이고 호흡하며 각자의 기량을 뽐내는 그들의 무대는 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3부 무대는 왓와이 아트, 모어 모지민, Djilogue(vurt.) DJ의 무대로 꾸며졌다. ‘왓와이 아트앙상블은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아티스트 김웅식, 유홍, 강지은, 황진아로 이루어진 한국적 현대음악 단체로, 혁신적인 음악 탐구를 시도하는 팀이다. 무대는 장구 장단의 리드로 대금, 해금, 거문고가 조화롭게 남도제 계면조를 연주하는 시나위(즉흥성이 강한 전통 기악 합주)로 열렸다. 한국 전통음악의 대표적인 즉흥음악인 시나위를 연주함으로써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들의 연주에서 장단이나 조의 진행은 기존 전통의 시나위와 동일했으나, 각 악기의 특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이했다. 대금은 텅잉 기법(혀를 리드에 대는 것에 의해서 숨의 흐름을 막는 관악기 특유의 연주 기법)등을 활용하여 대금의 바람 소리나 효과를 드러내었고, 해금 또한 농현을 더 짙고 굵게 연주하고 활을 강하게 쓰며 사운드에 강세를 두었다


시나위가 연주되는 동안 함께 띄워진 영상에서는 무용수가 지하철역이나 거리에서 자유로운 몸짓으로 춤을 추었으며, 음악과 영상의 합이 잘 맞아떨어져 현대의 시나위를 보는 느낌이었다. 시나위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전자음악 사운드가 무대를 휘감았다. 그리고 연주자들이 악기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해금을 눕혀 활로 끼긱대는 사운드를 연출하고, 심벌과 거문고는 전자음으로 비틀어진 소리를 냈다


점점 기괴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무용수 모어 모지민이 등장했다. 괴로운 듯한 동작과 뒤틀린 몸짓,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연기가 가미된 그의 독무는 관객들 모두의 집중을 이끌어냈다그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는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냈으며,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듯하였다. 음악 또한 기묘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특히 대금의 높고 센 바람 소리와 반음계를 많이 활용한 연주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란<Ran, 1985>에서 샤쿠하치가 사용된 음악이 떠오르기도 했다. 무용수의 내면 연기와 자유로운 동작들, 그리고 자유로이 흘러가며 합을 맞추는 연주가 즉흥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던, 동양적이고 어두움과 환희가 공존하던 그 무대는, 예술 그 자체였다.


동시대 음악, 무한한 상상력 자극


한국즉흥음악축제는 고정된 음악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소통하는 즉흥음악을 통해 동시대 음악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주최 측은 이야기했다. 전반적으로 모든 무대의 음악은 예술성이 높았으며 연주자들의 실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과연 이 무대가 관객과 음악으로 원활히 소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대중적이기보다는 난해함에 가까웠고, 악기가 낼 수 있는 다양성은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음악적으로 쉽게 듣고 공감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물론 난해하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즉흥이라는 장르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익숙한 화성과 리듬을 적절히 조화롭게 섞어가는 등의 시도 또한 존재했다면 더욱 다채로운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통과 전통 예술이 점차 주목받고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방향을 뚝심 있게 가져가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난해하다고 치부되는 현대음악을 넘어서 현대의 음악, 현대의 전통을 지향하는 고민을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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