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리뷰] 문진수의 '화엄_광대무변'......전통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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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리뷰] 문진수의 '화엄_광대무변'......전통의 변신은 무죄

조춘영(풍물굿 담론가,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조춘영
  • 등록 2023.02.11 07:30
  • 조회수 15,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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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국가무형문화재전수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이 시대 풍물 광대 문진수를 만났다. 'The 문진수'..... 과연 고유명사 본인의 이름 앞에 정관사를 붙여 하나의 예술인으로, 하나의 브랜드로 증명하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 "화엄: 아름다움과 장엄함으로 꽃을 피우다”라는 문구를 과연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필자와는 20년 넘게 찐한 우정을 쌓은 관계이지만 보기에도 '화엄'이라는 제목이 좀 과하지 않은가 하는 선입견으로 공연을 맞이했다. 문진수라는 연희춤꾼의 작년에 이은 두 번째 야심작이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브랜딩 감각이 대중들과 전통예술인 그리고 연구자들을 충분하게 만족시켰다. 그리하여 전통연희를 예술로 승화시켜가고 있는 한 춤꾼을 목도하고 있다. 필자가 경험하기로 사회자를 맡은 허용호 교수가 시작도 전에 이리 흥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른 이의 개인 발표회에 와서 정성스럽고도 신과 흥이 넘치는 버꾸놀이와 판소리 연행을 보는 것도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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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문진수의 채상설장구, 양향진의 광양버꾸놀이, 남해웅의 판소리에 이어 한 시간 남짓 문진수의 버나놀이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이미 이야기 들은 바 오늘의 판은 버나놀이(춤)이 주제다. 지나고 보니 팜플렛에 남긴 총연출 남정숙 교수의 설명이 명쾌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소개한다. 


버나놀이는 남사당놀이 중에서도 기예와 너름새(몸짓) 그리고 재담으로 이루어진 분야이다. 전통을 재해석한 문진수류 버나놀이는 그가 남사당놀이에서 분파해서 일가를 이룬 연희 춤 분야의 한 종목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독보적인 4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문진수류 버나놀이(춤)은 일상생활에서 쓰던 모든 생활용품을 사용했다는 스승님들 말씀을 단서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재료와 도구를 개발하고 15장까지 약 1시간 이상의 재담과 기예를 복원하고 창작하므로 버나놀이를 하나의 장르로 완성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둘째, 온몸을 사용했다는 스승님들의 말씀을 단서로 오랜 기간 연마가 필요한 고난이도의 신체사용이 이루어지며 동시에 재담으로 관객과 소통하면서 돌리기 기술과 각 과장마다 문진수류 특유의 고품격 연희 춤을 보여주는 종합예술로 펼쳐진다. 

셋째, 구전된 단서들을 토대로 거의 재창작 수준의 재담 15과장을 발표하는데 관객들의 재미와 이해를 돕도록 스토리텔링화 하였다.

넷째, 터프한 남사당놀이의 기예에 아름다운 문진수류의 전통춤을 가미한 문진수류 연희 춤을 감상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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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지점은 문진수 연희 춤꾼에 의해 많은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지금 설명한 내용이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점이다. 팜플렛과 별도로 첨부된 연희 순서 용지에는 1과장부터 15과장에 대한 사위와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버나를 돌리는 채가 대략 2종류인데 비교적 짧은 길이의 앵두나무채 사위가 전편이고 담뱃대 사위가 후편으로 크게 나뉜다. 이야기 구성은 세상 사는 이야기가 7개 사위로 펼쳐지고 팔도강산 유람 이야기로 8개 사위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판을 열고 유람을 떠나고 전국을 돌고돌아 마지막에는 모두에게 복을 비는 소원성취 발원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구조다. 본래 문진수류 버나놀이춤은 꽃다발버나, 청사초롱, 쌍버나를 포함하여 36마당이라 하니 남사당 스승들의 연희력과 문진수의 창작력이 새삼 광대하구나!


제1과장부터 제15과장까지 등장하는 버나와 채들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채의 종류도 무수히 많고 중간에 들어가는 소품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긴 담뱃대들이 10여 종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하나의 과장이 시작되면 무대 저편 가방에서 꺼내어 나온다. 그리고 연희가 끝나면 꼭 다시 그 가방에 넣으면서 마무리 된다. 그리고 다시 채와 버나를 가지고 나와서 재담을 이어간다. 이러한 의식 절차와 계속되는 반복은 이 판 자체가 하나의 종교의식처럼, 하나의 굿판처럼 쌓여갔으며 관객은 중독성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전국 풍물굿판, 연희판을 두루 찾아다니는 필자는 버나놀이에서 이러한 긴 재담이나, 무수한 채와 소품을 이용한 기예와 품격있는 춤사위를 본 적이 없다. 이렇게 긴 호흡을 가지고 관객들과 소통하며 이야기와 기예를 쌓아가면서 감고 풀고, 맺고 풀고 판을 끌고 가는 판도 오랜만이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꽤 있었다. 역시 문진수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춤꾼이구나 하는 판단과 함께 말이다. 과연 춤인가, 과연 문진수의 춤인가? 필자가 고개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충분히 설득당하였다. 인연을 맺고 20여 년 만에 드디어 그의 진면목을 보고야 말았다. 그가 펼쳐 낸 장르는 분명 춤이 핵심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보통의 풍물굿쟁이, 전통연희자들이 놓치게 되는 부분 중 하나가 연주나 연행이 흘러가되 멈추는 지점이 없거나 부족하다. 문진수류 버나놀이춤은 각 과장을 시작하고 끝내고, 끝내고 다시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맺어주고 정리하는 절차가 있다. 그리고 기예를 선보이는 중간과 사이사이에 그만의 독특한 춤사위가 흐른다. 이야기와 기예를 돋보이게 하는 손동작과 기예에 역동성을 불어넣어 주는 다양한 발디딤새는 판을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관객을 뒤로하여 사선으로 무릎 꿇고 앉아서 2~3초 정지 화면이 있었다. 문진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고통인지, 쉬는 동작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하였고 나는 그 마음에 통해 버렸다.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밀려와 온 마음을 뜨겁게 적셔 버린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소품을 활용한 사위 중에 부채사위, 자세(얼레) 버나, 칼버나, 바늘버나 사위들이 있다. 연 날릴 때 쓰는 얼레 위, 아래로 2개의 버나가 도는 것도, 부채로 노는 사위도 재미있었다. 위험천만하게 보이는 칼버나, 바늘버나에서는 연희자의 어떤 마음자세를 느끼게 되었다. 남사당 재담에 많이 보이는데 "잘하면 살 판이요, 잘못하면 죽을 판인데...” 연희자는 얼굴을 하늘로 하고 턱으로 담뱃대와 담뱃대 사이에 끼워진 칼이 아래로 향한 버나를 받치고 있다. 어긋난 발디딤으로, 흐트러진 호흡 한 끗 차이로 만일 칼이 무너져 내린다면... 화엄이라고 아름다움과 장엄함이라고... 누가 말하였던가? 꽃이 아름다운 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남사당의 스승들은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줄타기에서도, 살판에서도 여기 버나놀이에서도 목숨을 걸고 관객들앞에, 판에 나서는구나! 

그런 남사당 예인들의 화엄 세계와 광대무변이 여기 문진수 안에 들어와 있구나! 

광대는 경계가 없어 광대무변이라는데, 

문진수의 연희춤판과 예술세계가 끊이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넘치길 기대한다. 

전통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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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조춘영 풍물굿연구회장

 

조춘영 박사는 풍물굿 연행자 출신 연구자다.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저서로는 <풍물굿의 원리와 미학>, <새나라로 가는 길굿>, <하늘땅을 열어라 캥마주깽 놀아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