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Pick리뷰] 전통예술의 합치, 하나 되어 추는 전통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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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전통예술의 합치, 하나 되어 추는 전통춤.

코리아+코레오그라피(Choreography) 프로젝트
구음심무, 겹겹산조, 춤춤발림, 음풍농짓, 박동,
소리와 한국무용이 결합한 다양한 시도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으로 기획한 코리아그라피공연이 127일 저녁 730, 28일 오후 2, 7시 서울남산국악당 무대에서 펼쳐졌다.코리아그라피는 소리와 합체된 한국무용에 관한 안무적 탐구를 기반으로 한 리서치 공연으로, 전통예술의 새로운 창작 콘텐츠 개발을 위해 마련된 무대다.


5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코리아그라피공연에서는 전통춤과 함께 음악, 연희, 판소리, 타악 등 다양한 전통예술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여 기대하는 바가 컸다. 주말 저녁, 마지막 무대.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남산국악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관객들의 기대에 찬 눈빛과 따뜻한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코리아그라피는 한국을 뜻하는 코리아(Korea)’와 안무를 뜻하는 코레오그라피(Choreography)’를 결합한 단어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무용수들은 전통예술의 틀 안에서 한국미를 탐색하고 자신만의 한국춤, 오늘날의 한국춤을 창작하였다. 구음심무, 겹겹산조, 춤춤발림, 음풍농짓, 박동, 다섯 갈래로 나누어 전통음악과 합체되는 한국춤을 선보였으며, 10명의 무용수가 참여했다. 무대는 아홉 번 전환되었고, 무대마다 각기 다른 연주자들이 나와 컨셉에 맞는 음악을 협연함으로써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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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코리아그라피’-구음심무 공연에서 기량을 펼치는 문진수. 2023.01.27.

 

구음심무는 말 그대로 구음(악기의 소리를 본떠서 계명이나 음명 대신 쓴 부호)을 따라 한과 신명을 내보이는 우리 전통춤의 근간을 드러낸 무대였다. 문진수, 서정숙 무용수가 무대를 선보였으며, 구음을 활용한 것만 같을뿐이다. 협연하는 연주자의 색채도, 무용도 서로 다른 힘과 느낌을 주었다. 문진수 무용수는 춤꾼이자 연희자로, 소고입춤(한국의 전통 타악기인 소고를 들고 호흡에 따라 자연스레 감정을 표현하며 즉흥적으로 추는 비정형화된 춤)을 추었는데, 그의 역동적이고 강인한 몸짓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작은 소고 하나를 들고 두드리고, 돌리고, 재치 있는 동작을 선보이는 동시에 장단을 자유롭게, 그리고 현란하게 타고 노는 모습은 신명그 자체였으며, 유연함과 힘이 공존하는 우리 연희의 매력에 빠져들기 충분했다. 그 후 전통의 색을 띠면서도 현대적인 창법과 음색으로 색다른 사운드와 분위기를 선보인 김보라 연주자의 구음에 맞추어 잠잠하게 춘 춤에서는, 마치 굵은 화필로 여유로운 선을 그려내듯, 기본과 중심을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서정숙 무용수는 그 자체에 집중하는 무대를 선보였는데, 무엇보다 블랙스트링의 멤버이자 우리 무속과 맞닿은 예술을 연구해 나가며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황민왕 연주자와의 협연이 돋보였다. 우직하고 무속적인 색이 짙은 전통적인 구음에 맞추어 가련하나 힘있는 춤을 선보인 그녀의 몸짓에는 생명력이 있었다. 노련한 동작으로 춤의 본질을 드러내며 속에 있는 모든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힘은 가히 박수받을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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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코리아그라피’-겹겹산조 공연에서 유정숙 2023.01.27.

 

민속음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 산조우리 민속음악의 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르 중 하나인 산조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겹겹산조’ 무대의 두 무용수는모두 거문고와의 협연을 택했다. ‘내 마음의 사유’ 무대를 펼친 차수정 무용수는 김홍도의 단원도’ 풍경 속 상상의 춤을 추었다북의 우직한 장단과 중후하고 힘 있는 거문고 산조에 맞추어 구사한 자유로운 춤은 화려하면서도 수수하였고풍류를 즐기는 단원도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졌다.

 

유정숙 무용수는 이선희 거문고 연주자의 산조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는데, 손끝까지 전해지는 힘과 집중도가 다분히 드러났다. 특히 기존의 산조처럼 느리게 시작하여 빨라지는 장단이 아닌, 빠르게 시작하여 느려지는 장단으로 구성된 창작 산조에 맞추어 춤을 추었기에 역순으로 배열된 장단감에서 오는 춤의 서사가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온몸으로 장단을 이해하고 그 장단에 맞추어 능청능청 한국의 미를 펼친 두 명인의 무대는 그들이 무용과 함께 지내온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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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코리아그라피’-춤춤발림 공연에서 김수현 2023.01.27.


춤춤발림에는 판소리가 등장한다. 김수현 무용수의 무대는 박씨전으로 꾸며졌는데, 마치 경쾌한 연극을 보는 듯하였다. 소리꾼의 역할을 넘어 다양한 배역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서정금 소리꾼의 진행에 걸맞은 다양한 춤 동작으로 박씨전의 이야기를 풀어낸 무대 '박씨전, 추어지다', 스토리텔링과 판소리, 춤과 재담이 하나 되어 흥미를 돋우는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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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코리아그라피’-고고천변 공연에서 남수정 2023.01. 27.

 

고고천변을 새롭게 해석하여 춤을 춘 남수정 무용수의 무대 또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무대는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집중되는 무대였는데, 흰옷을 입고 하얀 천을 활용하여 춤을 추는 무용수와 샛노란 의상을 입고 소리하는 소리꾼의 대비, 징과 아쟁의 어긋난 음정 연주 등을 통해 화려한 세상 풍경 속을 지나는 우리의 인생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삶의 유한성과 무상함을 그려내는 인생무상의 주제를 깊이 있게 드러냈다. 소리, , 동작, 의상과 색 등의 요소를 활용하여 한국적인 색채가 짙은 우리의 인생을 그려낸 연출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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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코리아그라피’-음풍농짓 공연에서 최준명 2023.01.27.

 

음풍농짓은 근대민요의 리듬과 노랫말에 담겨있는 한국적 정서를 재해석한 댄스드라마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최준명 무용수의 '춤의 향기가 만리를 넘다'라는 제목으로 펼쳐졌다. 찰리 채플린처럼 자유롭고 재치 있는 표정과 몸짓을 선보인 그녀의 무대는 마치 유쾌한 무언극을 보는 듯했으며, 협연한 아티스트 더튠과 아코디언 연주자 강희수의 반주와도 잘 어울렸다. 더튠의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인 구음과 음악 스타일은 우리나라의 근대 시기를 떠올리게 하였고, 신민요를 오묘하게 편곡하여 전통적인 색이 드러나면서도 서구적 특징과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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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코리아그라피’-박동 공연에서 성윤선과 염현주. 2023.01.27.

 

마지막으로 박동은 우리 고유의 장단에 흠뻑 빠질 수 있던 한국 북춤의 향연이었다. 관객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무대이기도 한데, 공연 중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지음, 지음, 지음은 춤을 통한 시각적 감동을 넘어서 마음에 울림을 선사해 주었다. 삶의 변곡점에 선 두 무용수의 신명 나는 움직임. 삶을 함께 살아냈고, 살아내고 있는 두 친구, 성윤선 무용수와 염현주 무용수의 장구춤과 북춤은 모두에게 벅찬 떨림을 안겼다. 홀로 장구 한 대를 메고 무대 곳곳을 누비며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쏟아낸 성윤선 무용수의 표정은 락() 그 자체였다. 인생을 즐기듯 무대를 즐기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며, 설장구의 너끈함과 화려함을 통해 춤과 우리 장단의 멋까지 즐길 수 있었다


염현주 무용수가 나와 펼친 진도북춤의 카리스마와 힘은 모든 좌중을 압도시켰다. 강인하고 절제된 동작은 힘이 있는 동시에 여유로웠다. 두 무용수가 각자의 춤을 선보인 후 다스름 장단으로 한데 만나 함께 춘 춤은 관객들의 마음 또한 한데로 모았다. 무용을 매개로 인생과 예술이라는 아름답고 진실된 이야기를 전해 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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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 기획한 ‘코리아그라피’ -적벽회전 공연에서 이주희 2023.01.27.

 

휘날레 무대 '적벽화전'은 판소리 적벽가 중 적벽화전 대목을 구고무와 아쟁으로 재구성한 무대이다. 열 세개나 되는 큰 북을 옮기고, 치우고, 활용하며 힘 있는 북춤을 선보인 이주희 무용수의 열정은 대단했다. 특히 아무리 북을 치고, 밀어내도 치워지지 않고 막혀있는 수많은 북은 마치 전쟁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군인의 슬픔과 한이 드러나는 듯했다. 극적 요소가 강했던 박동은 시원한 두드림의 멋, ()의 멋과 장단의 멋이 공존하는 무대였다.


소리와 한국무용이 결합한 다양한 시도가 한 자리에 모여 펼쳐진 공연 코리아그라피’. 총 다섯 갈래로 나누어진 아홉 개의 무대는 서로 다른 갈래의 순서로 진행되어 마치 단편으로 된 무용 발표회를 보는 듯했다. 그만큼 무대마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었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무용수들의 개성 있는 기량과 매력을 뽐낼 수 있던 다양한 무대를 볼 수 있던 것은 좋았으나 공통 되는 주제와 이야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오늘날의 한국 전통춤을 보여준다는 의도에 비해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가 없던 것 같아 유감스럽다. 조금 더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활용한 도전이 있었더라면 더더욱 신선하고 대중적인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렇게 한국의 전통 색채가 가득 드러나는 춤의 무대를 많은 무용수의 각기 다른 몸짓으로 관람할 수 있던 것은 아주 좋은 기획이었고, 좋은 기회였음이 분명하다.


춤을 통한 전통예술의 새로운 창작과 ‘K-콘텐츠의 골격 세우기를 목표로 한다는 코리아그라피의 의지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발전하여, 한국 춤의 멋과 아름다움을 더 오래, 넓게 펼쳐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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