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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소설 '아름아리'] 제4화 “本調가 뭐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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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소설 '아름아리'] 제4화 “本調가 뭐야?”(상)

  • 삼목
  • 등록 2023.01.21 07:30
  • 조회수 4,848

    삼목 作

  

"朝鮮에도 民謠가 있다. 四千年의 오랜 歲月을 두고 이 겨레의 착한 性情이 純一하게 發露한 게 곧 우리의 民謠이다.”


"朝鮮民謠 중에서 가장 널리 普及된 것으로 적어도 朝鮮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사람이면 이 노래(아리랑)를 모르지 않는다.”


겨레의 착한 성정으로 부르는 것이 민요이고, 그 민요 중에 모두가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하였다. 이는 1949년 발행된 ‘朝鮮의 民謠’ 공편자共編 성경린成慶麟과 장사훈張師勳의 인식이다. 전자는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를 수료한 거문고 연주자로 이미 ‘조선의 아악’(1947), ‘조선음악독본’(1947)을 지은이요, 후자 역시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를 수료한 거문고 연주자이다. 그리고 함께 현 KBS의 전신인 경성방송국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이력으로서 당시로서는 민요나 아리랑뿐만 아니라 국악 전반에 대한 해석권解釋權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최근 한 학회에서 ‘‘朝鮮의 民謠’를 들어 기존의 아리랑 명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 논란을 촉발시킨 바가 있다. 이로서 삼목의 ‘한국의 아리랑문화’ 외에서는 거의 인용되지 않았던 이 책의 아리랑 언급이 오랜만에 소환되기에 이르렀다.(문제를 제기한 이도 삼목의 책을 보고 반론으로 제기한듯하다.)


2022년 10월 초, 기奇(찬숙) 선생의 통화음이 다급했다.


"혹시 학술회의 소식 들으셨어요? 방금 끝났는데요. K교수가 논평하면서 '본조아리랑'은 주제가 아리랑이 아니라, 1894년 헐버트 채보 아리랑이고, 주제가 아리랑은 '서울아리랑'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 근거가 제가 듣기로는 성경린과 장사훈 공편 ‘조선의 민요’를 거론한 것 같아요. 그런데요~?”


기 선생이 다급한 어투와는 다르게 조금은 미심쩍은 투로 말끝은 흐렸다.


"그런데라니요? 그게 뭐요? 또 뭐가 있었나요?”


기선생이 이 본조아리랑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바로 한국민속박물관이 펴낸 ‘한국민속문학사전’ 표제어 ‘본조아리랑’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목과 함께 ‘아리랑 스터디그룹’에서 많은 논의를 한 주제로, 다양한 전거典據를 들어 스터디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그 사전 편찬의 책임자 중 한 분이 뒤늦게 자신이 참가한 사전의 내용과 다른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해당 항목의 본문 일부는 이렇다.


"본조(本調)아리랑은 주제가‘아리랑’으로 출발하여 ‘신민요 아리랑’, ‘유행가 아리랑’으로 불리다가 ‘신아리랑’ 또는 수식 없이 ‘아리랑’으로 부르게 된 것을 말한다. 본조아리랑은 성경린·장사훈이 최초의 민요 개론서 ‘조선의 민요’에서 처음 사용된 명칭이다. ‘본조’는 1940년대 말 국악계에서 사용한 용어로, 음악적 원류(源流)나 본류(本流)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랑의 확산 장르에서 본(本)·원(元)·중심(中心)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용어이다. ‘각 장르 아리랑 표제 작품에서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아리랑’이라는 의미에서 다른 아리랑과의 변별을 위해 1960년대에 일반화된 것이다.”(기미양, 본조아리랑,한국민속문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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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본조아리랑은 1926년 개봉된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의 주제가를 지칭함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그 ‘본조’의 의미는 음악적 본류의 의미가 아니라 ‘각 장르 아리랑 표제 작품에서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아리랑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는 지금까지의 학술상에서나 공연분야에서 일반화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틀렸다고 한 것이다. 삼목은 기 선생이 말끝을 흐린 것이 마음이 쓰여서 다시 되물었다.


"아니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어요? K교수가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학술대회에서 서울아리랑으로 하자는 주장은 있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주장한 바가 있는 거 아녜요?


"예 그렇긴 한데요. 이번에는 좀 감정이 실렸어요. 100%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M학회가 있는 한 이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논리나 팩트에 의한 학술적 성과가 아니라 마치 M학회가 유권해석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또 뭐가 있어요? 하필 내가 전화를 받느라 컴퓨터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있어서 듣지 못했는데. 참. 뭐예요?”


"예, 그에 대해서 논평자로 참가한 Y교수도 동의를 했어요. 두 전직 학회장이 이런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그렇다. 우선 감정적인 부분은 두고, 팩트를 다시 체크하기로 했다. 삼목은 다시 서고에 들어가 해방 후에 간행된 국악개론서들에서 아리랑 언급 부분들을 체크했다. 특히 ‘본조아리랑’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성경린·장사훈의 민요 사설집 ‘朝鮮의 民謠’를 찾았다. 이 책의 일러두기에는 참고한 서명이 나오는데, 속가집·조선민요선·가곡보감·가요집성·가요집 등에서 사설을 간추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민요집이 사설 중심의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음악적 창을 주안主眼으로 본 가사, 후렴, 구호 등 확연하게 구별하여” 수록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기 선생의 집필에서 분명히 한 것이 이 가사집에서 ‘본조아리랑’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 것이지, 이 책의 ‘본조아리랑’ 기록(해석과 사설)이 반드시 본조아리랑임을 밝힌 최초의 기록이란 뜻은 아니다. 주관처에서 원고 내용을 줄여달라는 요청에 의해 그 부분은 삭제 된 것이라고 한다.


이제 실제 기록을 살펴보기로 한자. 이 책의 첫 아리랑은 경기도편의 本調아리랑·新아리랑·아리랑세상·別調아리랑·긴아리랑, 5편이다. 이어 강원도편의 강원도아리랑·정선아리랑, 평안도편 긴아리·경상도편의 밀양아리랑, 전라도편의 진도아리랑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본조아리랑과 신아리랑, 그리고 긴아리랑이다. 우선 문제의 세 편의 사설과 해설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本調아리랑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세

①이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씨의 팔촌이 되려므나

②남산 밑에다 장충단을 짓고/ 군악대 장단에 받들어 총만 한다

③아리랑고개다 정거장 짓고/ 전기차 오기만 기다린다

④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이냐

⑤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차장되네

⑥말 깨나 허는 놈 재판소 가고/ 일 깨나 허는 놈 공동산 가네

⑦아 깨나 낳을 년 갈보질 가고/ 목도 깨나 메는 놈 부역을 간다

⑧신장로 가장자리 아카낢은/ 자동차 바람에 춤을 춘다

⑨먼동이 트네 먼동이 트네/ 미친님 꿈에서 깨여나네

⑩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⑪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新아리랑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①산천에 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의 청춘은 늙어만 간다

②성황당 까마귀 깎깍짖고/ 정든님 병환은 날로깊어

③무산자 누구냐 탄식마라/ 부귀와 빈천은 돌고돈다

④감발을 하고서 주먹을 쥐고/ 용감하게도 넘어간다

⑤밭 잃고 집잃은 동무들아/ 어데로 가야만 좋을가보냐

⑥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

⑦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소/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⑧쓰라린 가심을 움켜잡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⑨감발을 하고서 백두산 넘어/ 북간도 벌판을 헤메인다

⑩원수로다 원수 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⑪일간 두옥의 우리 부모/생각할수록 눈물이 난다

⑫아리랑고개는 얼마나 멀게/ 한번 넘어가면 영 못오나

⑬우리의 성립 군아/ 뜻과 같이 성공을 하세


긴아리랑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 구료/ 아리랑 고개로 나를넘겨주소

①만경창파 거기 둥둥 뜬배/ 게 잠깐 닻주어라 말 물어보자

②기차는 가자고 왠 고동을 트는데/ 님은야 팔을 잡고 낙루만 한다

③우연히 저 달이 구름 밖에 나더니/ 공연한 심회를 더욱 산란케한다

④달도 밝고 별도 총총한데/ 임은 날 버리고 왜 아니 찾노

⑤물속에 뜬 달과 낭군의 맘은/ 잡힐 듯 하고도 내 못 잡아

⑥누구를 보고자 이 단장했나/ 임가신 나루에 눈물비 운다


이상 세 편에서 해설이 있는 것은 두 편이다. 그런데 이 중 유의미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본조아리랑-"서울의 것을 본조아리랑 그 밖에 밀양아리랑~ ”

긴아리랑-"아리랑에서 가장 일쯕이 생긴 거라고 하지만~ ”


이상과 같이 매우 소략하다. 여기에서 ‘본조아리랑’의 정체성을 발견하기란 부족하다. 그 이유를 짚어 보자. 첫째는 본조아리랑의 해설에서 단지 서울에서 불리는 아리랑이란 정도일뿐이라고 했고, 긴아리랑 해설에서는 헐버트 채보 아리랑 즉 구아리랑 또는 京卵卵打令(서울아리랑타령)의 존재를 무시하고 가장 오랜 긴아리랑이 가장 오랜 것이라고 했다. 정리하면 전자는 지역적 분류 정도이고, 후자는 분명한 오류인 것이다.


둘째는 제시된 本調아리랑과 新아리랑의 사설에서도 '구아리랑'인지 '본조아리랑'인지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구분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奇선생이 본조아리랑 사설로 제시한 것을 대비하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본⑩-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본⑪-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신①-산천에 초목은 젊어나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본④-문전에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동냥의 쪽박이 왠말인가


이상에서 대비한 바와 같이 ‘긴아리랑’을 빼고는 사설만으로는 독자성을 갖지 못함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첫 자료 ‘본조아리랑’은 명칭만 본조아리랑이지 실제는 구아리랑과 또 다른 아리랑 사설들의 모음일 뿐이다. 물론 후렴과 일부 사설들이 ‘구아리랑’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이 명칭들은 특별한 인식 없이 편의적으로 부여한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신’이나 ‘긴’에 대해 변별로서의 ‘본조’를 부여한 것일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K교수가 이 책을 보고 ‘구아리랑’(헐버트 채보 아리랑)을 ‘본조’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주제가‘아리랑’을 본조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 곡명을 ‘서울아리랑’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폈듯이 이 책이 명명한 본조아리랑은 그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임으로 타당성이 없다. 또한 음반 역사에서는 이미 ‘구아리랑’을 ‘서울아리랑’(‘京卵卵打令’/1913년 N6170/1928년 V49047)으로 명명하였음으로 주제가‘아리랑’을 본조아리랑이 아닌 서울아리랑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것도 부당한 주장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