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이슈 분석] 고려 충절신 충혼 달랜 한글 악장(樂章)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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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고려 충절신 충혼 달랜 한글 악장(樂章) 발굴

‘정선7현제’에서 첫 사용
1936년 景賢祠誌(경현사지) 수록
민간에서, 한글로 지은 악장 주목
1783년 또는 1936년作 추정

47회 정선아리랑제가 15일부터 3년 만에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다.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정선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로 진행된다. 축제는 남면 거칠현동 七賢祠(칠현사)에서 고유제를 지내면서 시작된다. 정선출신 고려유신 전오륜을 비롯한 신안·김충한·이수생·변귀수·김위·고천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들이 율창(律唱) 7편의 시가 정선 지역인들에게 전해지면서 정선아리랑 대표사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와 같은 우국 사설이 지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 시원설과 7인의 인물과 7편의 시가 언급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제는 이들의 위패를 배향한 정선 남면 거칠현동 ‘7현사에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금년 행사에는 특별한 수서가 들어갔다. 고려 충렬신들을 기리는 악장일편이 낭송되기 때문이다. ()아리랑연합회 소장자료인 1936년 간행 景賢祠誌(경현사지) 5권에 수록된 것을 이번에 발굴,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악장은 조선시대 들어 궁중에서 국가행사나 잔치 등에서 행해진 장르이다. 이 번 발굴 작품은 기존의 한문 또는 현토(懸吐) 형이 아닌 국문 중심의 악장이면서 민간에서 행해진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를 계기로 발굴 악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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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경현사지 6권4책, 1936년 간행,

 

고려 충절신은 이른 바 杜門洞72으로 통칭된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세워진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성계에 불복하여 두문동 만수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문신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의 존재와 충절 정신이 세상에 드러나기로는 조선조 후기에 와서다. 1740년 영조 임금이 개성을 행차할 때 만수산 인근 두문동 유래를 듣고 비석을 세워주게 되고, 이을 계기로 자손들이 가승(家乘)에 수록하자 다시 정조 임금이 감탄하여 1783년 개성 성균관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추모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후 두문동72’, ‘3’, ‘9貞忠’, ‘7등의 인물 규정이 생기고, 기리는 문중의 사당 건립과 실기(實記)나 문집 등의 간행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기록이 1809두문동선생실기’(31책 목판본), 1860화해사전’(1931년 재간), 1866채미헌실기’(서산서원 발행), 1904전씨관면록’9전사자본), 1934두문동서원지, 1936'경현사지'(목활자본), 1956'전씨관면록'(鉛活字本) 등이다.


이 중에 채미헌실기전씨관면록은 전오륜 등 정선7관련 시편이 수록되어 주목되고, ‘경현사지는 고려 충절신을 기리는 한글 악장(樂章)이 수록되어 주목된다. 전자는 정선아리랑의 시원설과 관련 있는 시편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후자는 민간의 한글 악장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문헌들이다.


그런데 후자 즉, ‘경현사지에 수록된 악장 작품은 기존에 국가 행사에서 불러진 악장과는 다르게 민간 향사에서, 그것도 한글로 지어진 악장이란 점에서 큰 가치로 평가한다. 특히 실제 불려진 작품이란 점에서 음악적 논의도 필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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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경현사지 제 5권에 수록된 ‘樂章’

 

樂章 享祀 時 擧用

麗季忠賢貞忠大節 죽어죽어 一百番 다시죽어

白骨塵土되고 魂魄이 잇든지엄든지 人君ᄉᆡᆼ각ᄒᆞ난 一片丹心이야 엇지끈칠쇼냐

天命이 도라가이 國事가 이미 글넛도다

王氏鬼神이 차라리 될지언정 李氏臣下난 되지 안컨네

杜門ᄒᆞ기을 甘心하여 죽은 뒤에 말지로다

深山에 드러가면 耕者를 누가 알고

陶河世上머럿시니 슬푸고 슬푸도다

潘溪水에 끄든낙수 周文王을 낙는 ᄯᅳᆺ은 무삼일고

伯夷ᄂᆞᆫ 엇드한 사람이며 나은 엇더한 사람이뇨

齊王蠋忠臣不事二君 말은 나도 敬服하난바라

松嶽山을 도라보니 우리 故國이 아니요 首陽山

바ᄅᆡ보니 차마 한마음을 이질쇼냐

五柳先生淵明千古同志로다

新朝北面마소 二心人이 붓그럽게

高麗山이 어ᄃᆡ잇나 차자가기 이로다

田橫島가 어ᄃᆡ잇나 차질길이 茫然하다

國破君亡아엿시니 나난어ᄃᆡ로 갈고

時代가 이미 글너시니 안이가고 무어설 할소야


정몽주의 丹心歌를 수구(首句)로 충절을 주제로 했음을 제시하고 충신불사이군등의 술어로 출절의 고고함을 찬하였다. ‘新朝’, ‘高麗山’, ‘國破君亡등으로 왕조의 개변이 있었음을 분명이 하고, 충절신들을 천고의 동지로 삼아 살지어라고 한탄하였다. 새로운 우국 악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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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경현사지 제 5권에 수록된 ‘樂章’의 일부

 

악장 전공인 숭실대 조규익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작품을 듣고,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로 상징되는 왕조 악장의 전통에서는 그 반대의 고려조 충신을 기리는 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조 교수는 "享祀時 擧行이란 기록으로 실제 사용된 사실에 대해 음악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하였다.


" 그 곡조가 고려시대 또는 조선 초 민간음악과 관련을 갖고 있다면 메나리조의 중심인 정선아리랑과도 관련지어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국가에서 사용하기 위한 악장이나 현토(한문에 토만 단 형태)악장과 다르게 한글 악장이다. 특히 "享祀 時 擧用이란 표기와 홀기(笏記)이어 수록한 것으로 볼 때 1783년 개성 성균관 표절사(表節祠) 제향이나 1936년 경현사 제향에서 실제 불린 것으로 볼 수 있다.


15일 제47회 정선아리랑제에 맞춰 ‘7현사에서 축제 고유제가 있다고 한다. 이 뜻깊은 행사에 충절신 향사 전통을 이어, 이 번에 곡조를 얹어 부르지는 못 하더라도 낭송으로라도 올린다면 의미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일곱 충신들의 위패 앞에서 제를 지내는 것은 충절 정신을 계승하고, 정선아리랑을 가시화 한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