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거장 백남준의 90번째 생일에 맞춰 특별전 '바로크 백남준'이 20일 개막했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제2전시실에서 이날부터 2023년 1월24일까지 선보이는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바로크 백남준'은 백남준의 옛 설치작품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서 기획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스틴 성당 ▲바로크 레이저 ▲촛불 하나 ▲비디오 샹들리에 No.1 ▲삼원소 등 그동안 국내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대규모 미디어 설치작업과 레이저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백남준의 빛은 촛불에서 시작해 텔레비전과 비디오, 그리고 마침내 레이저에 다다른다. 백남준에게 레이저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정보와 빛의 전달 매체이며 기술과 예술의 끝없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40여 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한 대규모 미디어작품 '시스틴 성당'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1995년에는 독일의 한 교회 전체에 대규모 프로젝션과 레이저를 설치한 작품인 '바로크 레이저'를 공개했다.
두 작품은 작품이 구현된 특정한 시공간에 강하게 결속돼 있다. '시스틴 성당'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파빌리온의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바로크 레이저'는 독일 뮌스터 외곽에 있는 한적하고 자그마한 교회의 창문을 모두 닫아 캄캄한 공간 속에서 연출됐다.
백남준이 아날로그 비디오를 물질적 공간에 직접 투사해 만들었던 시공간적 경험은 특정 공간 안에서 더 강력해진다.
'시스틴 성당'은 흡사 디스코장을 연상시키는 소음 속에서, '바로크 레이저'는 우리를 이끄는 레이저 빛을 따라 바로크식 커다란 돔 아래에서 관람해야 한다. 관객이 작품 안에 들어서면 비디오 투사와 건축공간의 임의적 조합이 만들어져 그 순간 거기에 존재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완벽한 시공간을 만든다.
1998년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촛불 하나'는 초를 촬영하고 5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해 색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실시간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당시 80㎏에 달하는 삼관식 프로젝터의 구조를 변형해 구현됐다.
이젠 찾아보기 힘든 삼관식 프로젝터는 영상신호를 적색·녹색·청색 브라운관에서 증폭해 이를 투사 렌즈를 통해 스크린에 맺히게 하는 빔 프로젝터다. 이 오래된 기계는 영상의 검은색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지만 해상도가 낮다. 낮은 해상도는 오히려 영상의 미세한 디테일을 부드럽게 표현해 백남준의 아날로그 영상을 더욱 풍부하게 보여준다.
'비디오 샹들리에 No.1'도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최신 기술인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영상을 당시 구소련에서 생산된 텔레스타 흑백 CRT 모니터를 통해 재생한다. 이 모델은 비록 흑백이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무선 휴대용 텔레비전이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흑백 텔레비전 속 오래된 영상과 매체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한편, 촛불을 밝히는 과거의 기술로부터 무선 통신의 최신 기술까지 시간을 넘나드는 백남준의 기술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샹들리에 맞은편에 위치한 '삼원소'는 1997년부터 3년에 걸쳐 만들어진 백남준의 세 가지 레이저 작품 '원', '사각형', '삼각형'을 합쳐 일컫는 말이다. 1995년 무렵부터 백남준은 레이저를 이용해 '천지인'의 사상을 형상화하고자 한다고 종종 밝혔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파랑·초록의 레이저가 프리즘에 의해 굴절·분산되고, 거울에 의해 반사된다. 계속 회전하는 프리즘은 빠른 속도로, 매번 다른 각도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레이저 광선은 한정된 공간을 무한한 깊이의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빛에 천착했던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비디오 이후를 고민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매체 감각을 찾아 레이저로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해 온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레이저가 다시 한 번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 밖에 오래된 텔레비전 내부를 비우고 그 안에 초를 밝힌 '촛불TV', 비디오 조각 로봇으로 형상화된 프란츠 슈베르트· 밥 호프·찰리 채플린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한 이수영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을 바라보는 방식을 넓혀서 백남준의 다양한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 그 중심에는 끝없는 도전을 상징하는 '레이저'가 있다. 또 대형 미디어 설치를 생생하게 선보여 백남준이 다양한 예술을 추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냈다"라고 설명했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한 예술가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일이 모두가 함께 나누고 즐기는 축제처럼 될 수 없을까 생각했다. 백남준은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지금도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작가로, 한계 없는 예술적 도전을 펼쳤던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백남준아트센터는 오는 21~24일 오후 6시 1층 랜덤 액세스홀에서 1960년대 아방그르드 예술가 샬럿 무어먼을 배우 황석정의 1인극을 통해 새롭게 조명한 창작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를 선보인다.
또 서로 가까운 예술적 동지였던 백남준과 요나스 메카스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심포지엄 '우정을 연주하다: 요나스 메카스와 백남준'이 오는 29일 오전 11시 같은 장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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