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연재소설] 흙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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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73>

  • 특집부
  • 등록 2022.01.27 07:30
  • 조회수 446

흙의 소리

 

이 동 희

 

말을 멈추고 <3>

박연이 음악을 정비하기 위하여 먼저 율관律管 제작을 하였다. 얘기한 대로 해주에서 나는 거서로 제작한 율관은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결국 남양의 경석과 함께 악기 제작에 정열을 쏟았다. 율관 제작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박연의 음악적 생애에 닥친 제일 과제였다. 박연은 그 자신이 만든 악기의 소리의 높이에 따른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박연의 악기 제작은 그의 귀로 들어서 음고音高를 판별하였던 것이고 그의 정확한 판별력은 자타가 인정하였다. 세종임금도 박연이 음률音律에 밝음을 인정하였는데 그것은 임금 스스로 뛰어난 음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화를 얘기하였었는데 박연의 율관 제작 악기 제작은 그런 믿음에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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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의 악기 제작에 대하여 상언 상소한 글을 다시 보자.

생황笙篁의 원료인 바가지를 본래의 제도에 의거하여 만들자는 상소

을 옛 제도에 따라 개조하자는 상소

을 옛 제도에 따라 바르게 고치자는 상소

토음土音인 부라는 악기를 분원分院에서 제조하자는 상소

대고大鼓를 제조하자는 상소

대나무로 만든 독이라는 악기를 개조하자는 상소

건고建鼓를 개조하자는 상소

의 소리를 올바르게 교정하자는 상소

편종編鐘을 주조鑄造하자는 상소

방향方響을 추가로 더 만들어야 한다는 상소

말이 상소이지 거기에 악기 제작의 당위성 제작의 원리 방법이 다 제시되어 있었다. 세종 122월에 올린 것이었다. 13년 말에 올린 상소 하나 외에는. 이 악기 제작에 대한 상소로 한 해를 다 보낸 것이다. 악기 제작에 생애를 바친 절정기라고 할 수 있겠다. 52세 때이다.

생 훈 축 부 대고 건고 독 편종 편경 방향 등의 악기를 주례周禮와 진양陳暘 악서樂書 등의 기록 악리樂理에 근거하여 개정하고 제작하자는 청원이었다. 그의 정열적인 상소는 대부분 성과를 거두었고 제향祭享 회례會禮 조회朝會 등에 이러한 악기들이 사용되었다.

그의 상언 상소는 하나 하나 너무나 절절하였다. 마음에 와 닿았고 핵심을 얘기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전적을 바탕으로 고서 고사를 인용하였다.

부라는 악기는 요임금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역대로 폐지하지 않았다. 나라 때에는 더욱 널리 사용되어 악현樂懸의 악기로 사용되었고 세간에서도 모두 좋아했다.

방향이란 악기는 양나라 때 상하가 통용하던 것으로 편종과 편경의 소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 8음 중에 오직 경의 소리만이 사시에 변치 않는 것인데 방향 또한 그렇다. 그 나머지는 속이 비고 구멍이 뚫린 악기이므로 몸체가 얇고 속이 비어 음향의 기운에 감화되기 쉬우므로 한여름에는 건조해서 소리가 높고 한겨울에는 막혀 소리가 낮으니 반드시 경성磬聲에 의해 고른 연후에 음이 어울리는 것이다. 시경내 경성에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훈이란 악기는 옛 말에 길이가 세 치 반이요 둘레가 다섯 치 반이라고 하였다. 진양陳暘이 말하기를 밑이 평평하면 구멍이 여섯 개인데 이는 수의 수를 택한 것이요 속이 피고 위가 뽀족한 것은 화의 형상을 본받은 것이다. 훈이란 악기는 이와 같이 물과 불이 서로 어울리는 소리를 이룬다. 그런 제작의 법을 모두 근거할 바가 있어 함부로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축은 네모난 악기로 그 넓이가 한 자 네 치이고 속이 비고 사면을 빈틈 없이 기워 합치고 가운데에 한 구멍만을 내어 참나무 자루가 드나들게 했을 뿐 다른 구멍이 없는 악기이다. 그런데 오늘날-물론 그 당시를 말하는 것이다-사용되는 축은 참나무 자루가 들어갈 구멍이 있는데도 한쪽 곁에 둥근 구멍이 뚫리어 주먹이 들어갈만하다. 도설圖說을 상고해 보아도 이런 모양은 없다.

박연의 악기를 만들자고 청원하는 논리 이유들이었다. 고사와 고서를 인용할 뿐 아니라 음과 악의 이치를 말하였다. 일상의 감성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생이란 악기는 간방艮方에 속하는 소리인데 그 제도는 길고 짧은 여러 개의 관들이 가지런하지 않게 참차參差, 하나의 바가지 속에 꽂혀 있어 봄볕에 만물이 소생하는 뜻이 담겨 있으므로 생이라 하였다. 또한 바가지를 몸으로 삼아 악기를 이루므로 박이라 하였다. 그런데 반드시 바가지로 만드는 것은 박덩굴이 땅에 뻗는 식물이기 때문에 간방에 속한 연유이다.

"대저 흙으로 만들어진 악기는 두드려서 소리가 나지 않는 것도 있고 소리가 매우 맑아 조화로운 것도 있으며 소리가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습니다.”

 

흙의 소리 토음인 부라는 악기 제작에 대한 설득이었다. 박연 다운 논리였다. 산골 시냇물 소리 같은 사랑방 부엌에 활활 타는 장작불길 같은 조선 악기 제작 원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