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국악신문] 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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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3)

愛國歌의 作詞者는 누구인가? 把守軍

  • 특집부
  • 등록 2021.08.21 07:30
  • 조회수 1,436

김종욱 

 

近日 新聞紙上愛國歌 作詞者 問題癸期하여 文敎當局에서 새 國歌制定한다報道되었다. 여기에서 먼저 愛國歌 作詞者問題하여 새 國歌制定說反對한다.

 

1. 獨立協會愛國歌

 

나는 16愛國歌平壤出身 敎師에게 傳聞하였으므로 安昌浩 先生作詞로 알아왔다. 그런데.... 1951釜山피난 중 "李承晩博士徐 氏 著 傳記에서 愛國歌한 다음과 같은 記事를 보았다. 1898년 지금 57年 前徐載弼 博士中心獨立協會가 조직되었고 얼마 愛國歌이자 獨立協會歌尹致昊 氏가 지어 불렀다 하였고 이 박사는 7년간 獄中苦生을 마치고 1904년 지금 51년 전 30세 때에 미국에 건너 갔는데 在美同胞 歡迎會 席上에서 밤새도록 東海물과 白頭山高唱하였다記錄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4년 전부터 愛國歌 作者調査하였으나 島山 創作이라고 認定할 수 없는 에서 誤解를 두려워서 發表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 美國學界로부터 貴國 愛國歌의 作者가 누구이냐?’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羞恥를 당하고 있으므로 나의 硏究一端發表하지 않을 수 없다.

 

2. 蔡 牧師鮮于 氏의 말하는 作者

 

나는 다시 書面으로 鮮于 燻 長老에게 물어보았다. 선우 장로는 安 先生門下人이요 아들같은 侍從者였고 안 선생의 臨終弟子이었으니 그의 말은 가장 有力證言이라고 믿는다.

 

선우 장로가 信仰誌 主筆에게 答書를 줄 때에 發表할 것을 이미 諒承한 것이요 그 答書는 다음과 같다.

 

"上略 지금 弟 記憶48년 전 평양에서ㅜ小學校愛國志士였던 權美步 선생 指導 하에서 1. ‘聖子神孫 五千年은 우리 皇室이요하는 노래를 2, 3불러본 일이 있습니다. 그 후 5, 6년 만에 大成中學校設立되고 尹致昊 씨가 名譽校長이요 島山이 교장으로 있으면서 尹致昊씨가 創作하신 聖子神孫島山이 고쳐서 東海물과 白頭山으로 하였고 第 末節에 가서 이 기상과 이맘으로 忠誠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임금을 섬기세’(나라 사랑하세) 하는 皇室에 대한 文句를 이었습니다. 이렇게 大成中學校 時代愛國歌完成이 되어 朝會 時 마다 島山히 부르던 것이요 에 각 소학교에서는 슬프도다. 우리 民族四千餘年 歷史國으로하는 唱歌(權美步 作) 늘 불렀던 바를 經驗과 본 것으로 알리어드리오며 後 島山安州 百祥樓로 가서 P, 盧伯麟, 李東輝 3인으로 더불어 오래 전부터 河畔에서 淸川江 흐르는 물을 보고 四人이 일어나서 모래를 파내고 乙支公碑石을 일으켜 세우자 하는 비장한 말씀을 島山이 하였답니다.” (乙支公 碑石이야기는 島山께 들은 말씀.)

 

그 이튿날 安州 高等係에서는 島山을 보고 이제 한 말을 强問하였는데 島山 선생은 그 말이 日警報告된 까닭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1953813敎弟 鮮于 燻 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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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안창호 {安昌浩.1878 ~ 1938) 독립운동가, 교육자

 

以上 鮮于 長老答書하면 愛國歌原作者尹致昊씨요 안 선생이 改訂部分이 있다 함이다. 佐翁의 아들 尹永善씨가 가지고 있다는 1907년의 原稿는 이 박사早期說하여볼 때 그것이 창작 원고는 아닐 것이다. 魯 牧師(忠淸道 75)에게 물어보니 尹致昊 作입니다. 우리 학생시대에 어른들에게 듣고 尹 氏 作으로 알고 불렀소,’ 金在衡 敎師(黃海道 64)에게 물어본 즉 尹致昊 作입니다. 우리 서울서 학생 때에 윤 씨 작으로 알고 불렀소.’ 尹潽善 국회의원(佐翁의 조카)에게 물어본 즉 우리 叔父님 작입니다.’ 이로써 보면 서울서는 윤 선생 작으로 평양에서는 안 선생 작으로 알려진 모양이다.

 

東大 文學士 蔡弼近 교사(평양 71) "내가 25세 때에 大成學校에서 數學을 가르쳤지요. 그때 내가 島山선생에게 愛國歌本校 名譽校長 尹致昊 선생이 作詞하였습니다란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내가 皇室歌太極歌 등 옛 노래들을 평양서 해방 후까지 保存하였는데 皇室歌愛國歌는 전혀 다릅니다. 내 기억력에 異狀이 없다면 애국가 작사자는 尹致昊씨입니다.”

 

4. 歌詞로 본 作者


東海물과 白頭山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萬歲

무궁화 三千里 화려江山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保全하세


南山우에 저 소나무 鐵甲을 두른 듯

바람 이슬 不變함은 우리 기상일세


가을 하늘 공활한데 맑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마음 一片丹心일세


이 기상과 이 마음으로 忠誠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상 가사는 백두산, 南山松, 秋天月 順序 整然으로 보아 대체가 一人構想分明하다.


"東海물과 白頭山이 마르고 닳도록泰山如礪(칼 가는 숫돌) 黃河如帶토록이란 漢人 山礪河帶誓願을 알고 쓴 것이요 二節南山周京豐鎬終南山을 보고 節彼南山이여 維石岩岩이란 周詩聯想한 것이요 三節 秋夜月月白風淸 如是良夜?’蘇東坡詩句한 것이니 이는 漢學에 무젖은 南方 調라고 본다.


島山 나의 사랑 모란平壤 調라면 南山우에 저 소나무는 서울調. 如海 如山 如松 如月 四重物喩修辭麗句를 만들고 實際 肇國精神을 부르지 못한 것은 實質 本位北方調라기 보다 文華崇尙南方調.


그리고 杜子美界 景 情 事式 私律體模倣한 것은 律詩에 익은 솜씨다. 歌詞吟味하여 볼수록 高句麗尙武氣質이기 보다 百濟崇文才華. 山林 猛虎의 부르짖음 이기보다 月下佳人嘉音이다.


하나님이 보호하사英國國歌 ‘God save our King'하고 愛國歌 舊曲은 영국국가 曲調引用한 것이니 英國歌 는 영국에 留學尹致昊 씨의 作詞라고 본다.

 

5. 島山 선생 沈黙의 뜻


島山선생에게 愛國歌某年에 내가 창작하였다는 사람은 없다. 島山정신의 代辯者 李光洙 著 島山 安昌浩傳記에도 드렸다.’는 말은 없고 鮮于 장로의 書面에도 直聞하였다.’는 말이 없고 姜齊煥 著 安昌浩雄辯全集143 페이지에 愛國歌 作者問題가 있다. 同著의 내용에 의하면 亦 親近弟子인데 그 問答이 다음과 같다.

 

"愛國歌를 안 先生님께서 창작하였습니까? 仰問함에 대하여 선생은 아무 대답도 아니 하셨다. 아마도 謙遜의 뜻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안 선생이 創作하셨다면 直言하셨을 것이다.l 誠一貫의 안 선생이 歷史大 文字에 대하여 謙讓沈黙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왜 原作者를 밝히지 아니하셨을까?


첫째, 日帝 壓迫 하에서 선생을 愛國歌 作者라고 밝히지 못한 것은 그의 身邊을 염려한 것이요 일제 威力 하에 무릎을 꿇고 있는 愛國歌 작자를 밝히면 愛國歌運命危殆로워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윤 씨 작이란 기록을 볼 때 節義感傷處를 받았으나 歷史는 고칠 수 없다.

 

愛國歌 作詞者不幸失節하였으나 國尊 島山 선생의 품에서 기르고 島山 선생의 목소리로 하여 愛國歌로의 大義名分을 잃지 아니하였다.


6. 다른 國歌 制定說反對

 

近日 신문지상에 전하는 새 國歌 制定說이 사실이라면 不謹千萬이다. ‘東海물과 白頭山一節後斂國歌充分하다. 獨立運動歷史를 보던지 首節의 가사는 國歌로의 壯重性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하나님이 보호하사天下로도 바꿀 수 없는 最古最大民族信仰이 아니냐?


本來 東海물과 白頭山으로 우리의 誓願한 것이요 南山松, , 天月 四重物喩衍文인 것 같다. 피로 전하여 오는 愛國歌首節天作國歌로 불려지고 있으니 또 다른 國歌가 있을 수 없다. 所謂 國歌하나님을 빼어버린 金日成賣國歌를 들어보았거든 새 國歌異端을 다시 말하지 말라.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萬歲4천년 信仰讚頌이요 先烈의 피로 기록한 國歌, 하나님의 三千萬 民族魂에게 삭여준 民族頌이다.


東海물과 白頭山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信仰生活>19553. 4. 5월 합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