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기미양 / 아리랑학회 이사
2012년 유네스코 아리랑 인류무형문화유산 신청서에 제시한 아리랑의 종류는 ‘50여 종’이다. 이 숫자는 김연갑이 1986년 발행한 ‘민족의 노래 아리랑’에서 제시한 이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어느 기록에서도 50여 종의 구체적인 곡명을 제시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숫자가 갖는 진의는 누구도 정확히 제시할 수 없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즉, ‘셀 수 없다(uncountable)’또는 ‘셀 필요가 없다’(Can not cell)는 말이 된다. 시간이 감에 따라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성에서 종류도 셀 수 없이 많고 기원설(起源說)이나 어원설(語源說)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는 아리랑만의 독특한 성격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문화재청 아리랑 해설 게시문에 따르면 "후렴에서 ‘아리랑’이나 ‘아리’ 또는 ‘아라리’를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노래”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형식의 노래는 전통민요뿐만 아니라 통속민요, 더 나아가 대중가요와 가곡은 물론, 해외 교민들이 작창(作唱)하여 부르거나 외국인들이 창작한 외국어 버전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장르의 아리랑 후렴에는 아리랑, 아리, 아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의 후렴에서 그 전형(典型)이 확인된다.
아리 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아라리가 났네(진도아리랑 노래비)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밀양아리랑 노래비)
이런 실상에서 ‘아리랑’은 후렴에서 ‘아리’와 ‘아라리’와 함께 나타난다. 이런 사실에서 역사나 어원에 접근할 때는 이들과의 관계를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감이 비슷한 것에서 뉘앙스 정도만 다른 것일까? 아니면 속뜻이 같은 것일까? 전자라면 ‘아리랑’만이 대상이나 후자라면 각각의 의미와 변이 관계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아리랑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 시작된 것이 1930년대, 연구 성과가 있게 되는 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는데, ‘아-리-랑’ 3음절의 음가(音價)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성과에 머물렀다. 국문학계 양주동이 그랬고, 역사학계 이병도가 그랬고, 민속학계 서정범과 임동권 역시 기존 연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지만, 오늘의 3음보 2행의 후렴 형성은 17세기 들어 이양법(移讓法)의 일반화로 논농사 작업환경의 형성에 따라 선후창(先後唱)의 필요성에서 조흥소(助興素) 강화로 ‘ㅇ’음이 첨가된 결과 ‘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리랑’이 고유한 술어나 곡명이 아니라 ‘아리’의 2음절에서 안정적인 3음절 ‘아라리’로의 변이, 다시 조흥 음소 ‘ㅇ’의 첨가로 형성된 것이란 말이다. 이의 증거 사료는 1912년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전국 대상 민속조사보고서에서 확인이 된다. 한일합병 후 민정 파악을 위해 실시한 ‘통속적 독물 급 리언 리요 조사에 관한 건’(通俗的 讀物 及 俚諺 俚謠 調査 關件)의 아리랑 관련 자료를 정리하면, 이는 경복궁 중수 공사(1865~1872) 시기 유행한 노래 아리랑을 부역(賦役)꾼으로 참가한 이들이 고향에 돌아와 확산시킨 현상이다. 이 자료에 조사된 아리랑 후렴에는 다음과 같이 20여 종이 도출된다.
①아리랑歌 ②阿朗歌 ③아리랑打令 ④酒色界의 雜歌 ⑤어르렁타령 ⑥아르렁打令 ⑦어르렁타령 ⑧啞而聾打詠 ⑨아리랑타령 ⑩啞聾歌 ⑪阿朗歌 ⑫아르랑타령 ⑬아르릉타령 ⑭啞利聾打令 ⑮아리랑타령 ⑯어르렁打令 ⑰愁心歌 ⑱아르렁타령 ⑲아르랑打令 ⑳아르랑歌
이상과 같이 표기(表記) 상의 곡명은 총 18가지이다. 정리하면 곡명과 후렴에서 오늘의 음가 ‘아리랑’을 쓴 경우는 네 가지(① ③ ⑨ ⑮)다. 이는 비로소 이 시기부터 ‘아리랑’이 중심 술어로 합의를 얻어가고 있는 단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자를 혼용한 것이 13가지, 곡명에 ‘가’(歌)를 쓴 것이 7가지이다. 이는 조사 당시 실제 제보자의 응답이 아니라 이를 기록한 문식 있는 조사자들의 개입 결과일 수가 있다. (실제 기록상의 조사자는 당시 전국 지역 교원들이었다.) 곧 수집과 보고 단계에서 조사자의 수정·가필(加筆)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아리랑의 곡명이 당시 지역마다 다르게 불렸다는 것과 결과적으로 ‘(아리(르)’+’렁’/‘롱’/‘랑)’ 등의 단일화 단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오늘의 음가 ‘아리랑’은 1910년부터 SP 음반으로 발매되어 대중적으로 보급된 1920년대 초에 정착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어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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