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아리랑칼럼] (23)다시 읽는 ‘Song of Arira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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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칼럼] (23)
다시 읽는 ‘Song of Ariran’(5)

기찬숙/아리랑학회 이사

  • 특집부
  • 등록 2021.02.07 10:15
  • 조회수 95,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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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필자가 2005년 김산 서훈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집을 김산서훈기념 토론회에서 무상했다. ‘Song of Ariran’ 에서 김산이 진술한 아리랑 대목만을 뽑아서 영문과 한글 번역본을 묶은 자료집이다. 2005-08-15

 

1930년대 중국 내 항일공산혁명 전선에는 아리랑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결과의 하나가 19409월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정규 국군인 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광복군아리랑이 공식 군가로 불린 사실이다. 19391월 창립된 한국독립당 당군(黨軍)과 기타 독립군 및, 지청천, 이범석 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성립된 군대로 이들에게 이미 아리랑이 공유된 결과이다. 이는 곧 김산이 님 웨일즈에게 아리랑을 불러주고 그 의미를 설명해 준 1937년 상황이기도 하다.

 

21회에서 제시한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한국의 오래된 전래민요 아리랑과 함께 ‘Song of Ariran’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1961년의 한국과 김산의 생애에 관한 주해-나의 연안 비망록에 두 편의 아리랑이 더 있다. ‘아리랑옥중가아리랑연가이다. 충분히 님 웨일즈가 김산으로부터 듣고 영감을 받았을만한 노래이다. 김산으로서는 두 번의 투옥과 중국공산당의 질시(嫉視) 속에서 채화하여 간절하게 심연에 두었던 아리랑이었던 것이다.

 

‘Song of Ariran’ 앞 부분의 진술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대목이 있다. 아리랑고개는 조선왕조의 폭정에 저항한 이들의 처형장으로 서울에 있는데, 이 고개를 오르는 사형수들에 의해 불리는 노래라고 하였다. 아리랑고개를 구체적 처소로 기록한 것은 이 기록이 처음이다.

  

"젊은이 중의 한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민중에게 알려지자, 그 뒤부터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름으로서 자신의 즐거움과 슬픔에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 애끓는 노래가 한국의 모든 감옥에서 메아리 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죽음만이 남게 될 뿐이라고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진술에서 아리랑은 지배자의 '억압'에 대한 피지배자의 ''저항의 노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죽음'이란 표현은 저항의 의미를 극명하게 강조한 것이다.  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아리랑고개의 의미를 설명하고 아리랑을 불러 주었음을 알게 한다. 그 기억의 재현이 바로 다음의 옥중가아리랑이다. 김산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옥중가아리랑'(Prisoner's ballad of Arir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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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Song of Ariran: A Korean Communist in the Chinese Revolution by Nym Wales (1972-06-03) Mass Market Paperback – January 1, 1972

 

 

옥중가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첫번째 고개를 넘어간다.

 

내 들던 막걸리는 어디 있나/이제는 한강에 펌푸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재판장 고개를 넘어간다

 

금시계줄은 어디로 갔나/쇠수갑은 맞지를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감옥행 고개를 넘어간다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며/나이제 생사갈림길에 서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련다

 

아리랑고개에 간이역하나 지어라/집행인기차를 기다려야 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그대 열두고개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열세고개를 넘으리니

  

Prisoner's ballad of Arira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re are twelve hills of Ariran

And now I am crossing the first hill.

 

Where are the wine and beer I used to have?

Now it's the Hankiang Pump for me.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 of my court trial.

 

Where is my wristwatch band of bold?

These steel hand'cuffs do not fit so well.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 that leads to prison.

 

Now I stand on the frontier of life and death,

Waiting for the sentence of doom.

Ariran, Ariran, Arari O!

Soon I'll be crossing the last hill.

 

Make a new way-station on the hills of Ariran,

For I must await the executioner's trai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last of the hills of Ariran.

 

Comrades, comrades, my comrades!

I know you will not stop at the twelfth hill,

Ariran, Ariran, Arari O!

You will cross the thirteenth hill of Ar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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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Song of Ariran’(1941년) 원전 첫 날개에 이 책의 공동저자 김산과 님웨일즈가 명시되어 있다. 저자 김산의 인간적 면모와 감성, 톨스토이 문학과  막스의 사상을 공부하는 여러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혁명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열정적 혁명활동에 대해 명시되어 있다.

 

이 옥중가는 조선의 정치범들이 자주 부르는 노래로 "1921년 투옥된 한 조선 공산주의자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이 사설은 죄수 경험을 여러 단계로 말하고 있다. 즉 경찰에 의한 체포,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 ‘한강 펌프라고 명명된 물고문, 사형선고의 기다림, 그리고 다른 혁명가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종래의 열두 번째 고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승리 즉 아리랑의 열세 번째 고개를 쟁취할 것을 뜻하는 마지막 구절 등이다. 1921, 어디에서, 공산주의자 누가 작사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김산이 처음으로 투옥되기 이전에 아리랑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한다. 1930년말 북경 경찰에 체포되고, 이후 일본영사관에 넘겨지는 상황을 진술한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10일 아침 여덟시에 형사가 오늘밤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오. 내일이면 천진으로 이송될 것이요. 오늘밤이 친구나 부인을 부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하고 말했다.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군요.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합시다.’ 그날 밤 나는 휴식도 취할 수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았다. 나는 벽 위에다가 이곳에서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고 쓰고 내 이름을 서명하였다. 나는 아침 일찍 경찰서로 끌려갔다.”

 

김산 스스로도 이곳에서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썼다는 사실에서다. 이상과 같은 ‘Song of Ariran’의 진술에서 비록 20년 후에 발간된 한국과 김산의 생애에 관한 주해-나의 연안 비망록에 수록된 다음의 아리랑연가역시 김산이 님 웨일즈(Nym Wales)에게 불러준 아리랑인 것이 분명하다. 이 노래에 대해서도 "남녀가 번갈아 부르는 이 노래는 많은 절로 되어 있다. 그 가사는 약 2백여년 전에 씌어졌다.(This song has many verses, sung alternately by men and girls. The verses was written about twenty years ago.)”라는 코멘트(Comment)를 한 것도 이를 알려준다.

 

아리랑연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구비/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떠나는 님은 잡지를 마라/못보다 다시 보면 달콤하거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에 물새는 못사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에 별들도 많은데/구름 뒤에 날보고 웃는 이 누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Love song of Arira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 of Ariran.

There are twelve hills of Ariran

And now I am crossing the last hill.

 

Never hold back a parting lover-

Absence makes reunion sweet.

Ariran, Ariran, Arari O!

No waterfowl can live on the hills of Ariran.

 

Yet if my lover lets me go freely,

Before walking ten li my foot will be sick.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 moon comes up and the stars come out--

who is that laughing at us behind the clouds?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sl of Ariran.

 

아리랑연가’ 3, 4절은 영화 아리랑주제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설이다. 그러므로 이 4절의 아리랑연가는 영화 주제가의 곡조로 불린 것이다. 물론 앞에서 살핀 두 편 모두 같은 곡조이다. 3음보 21련에 2행 후렴의 형식에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자가 북경에서 살고 있는 김산의 장자 고영광(84·高永光) 선생을 초청하여 가진 리영희 대기자와 함께 한 김산서훈기념 간담회에서도  직접 모친으로부터 들어 배웠다며 불러 확인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은 김산이 처음 투옥되는 1930년 말 이전에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가 중국의 항일전선과 조선의 감옥에서도 불렸다는 사실이다.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주제가 아리랑은 이미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까지도 한민족 공동체를 상징하는 노래로 전형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노래였다는 것이 된다. 이런 사실에서 1941년 발행된 ‘Song of Ariran’은 아리랑에서도 평가를 받는 기록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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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필자가  2001년 중국 북경 방문때 김산의 장남 고영광 선생이 선물로 준 김산의 30대 초반 모습 사진이다.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언어를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잠시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안녕 너머 눈빛에서 강직한 실천적 지성인의 면모가 드러난다.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www.arirangna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