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이동순(李東洵/1950~ )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추천인:배경숙(영남민요연구회 회장)
"설을 보내고 설레임이 멀어질 때쯤이면 문득 음력설을 맞는다.
그리고 음력설의 의미를 묻게 된다. 몇 년째이다.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에 답을 찾고 있다.
내년에는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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