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저자: 박관수(민속연구가)
이 책은 정선아리랑에 담긴 사회문화적 모습을 채록하고자 했다. 기존의 입장과 달리 가사만을 채록하지 않았다. 문학적인 입장에서만 정선아리랑을 접하려고 하지 않았고, 정선아리랑의 존재양상을 다각도로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소리를 대하지 않았고, 소리들이 전승하는 그 자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정선 사람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는 정선아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사를 채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그 가사의 존재를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해석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정선아리랑은 본래 가창자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창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이 부르는 소리의 단어나 구절,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다. 이를 ‘향유의미’라고 부를 수 있다. 그 향유의미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 의미의 다름은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존재가치가 있다.
가창자들은 정선아리랑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모든 가창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가사를 만들어 부른다. 자신이 부르는 가사가 다른 사람이 부르는 가사와 동일하더라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그런 가사를 선택해서 부른 것도 지어서 부른 것에 포함된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소리를 부르면, 그것이 바로 ‘지어서 부르는’ 것이 된다. 이러한 드러냄은 자유로움이 바탕을 이룬다.
그러니까 ‘지어서 부른다’는 것은 가창자가 소리를 부를 때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가창자들은 곡조도 마음대로 부른다. 동일한 가사인데도 사람들마다 부르는 곡조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높은 음으로 내지르면서 소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낮은 소리로 부른다. 동일한 사람이 불러도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와 젓가락으로 소반 장단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가 다르다. 나물을 뜯으며 건넛산에서 나무를 하는 총각이 들으라는 소리와, 해가 너웃너웃 넘어갈 때 밭에서 부르는 소리는 같을 수가 없다. 정선아리랑은 고정된 틀에 자신의 소리를 맞춰가며 부르는 소리가 아니다. 상황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르는 소리가 정선아리랑이다.
남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적 관습으로 이를 제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삶에서 사회적 금기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에 육체적인 성적인 만남도 있었고, 정신적인 연애도 있었다. 이러한 가사에는 남녀 간의 만남도 담겨 있지만, 과거 사회의 모습도 담겨 있다.
정선아리랑은 구전되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들어 일본 노래에 그 자리를 조금씩 내줬다. 나아가 ‘노랫가락’, ‘창부타령’, ‘청춘가’ 등은 물론, 유행가에 자리를 내줬다. 이러한 노래들은 주로 전축이나 라디오를 통해 유행이 되었고, 주막에서도 많이 불렸다. 그러다 보니, 정선아리랑은 부르지 못하고 유행가만을 부르기도 했다. 8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정선아리랑을 부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아리랑은 그와 같은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통해 전승이 되었다. 산골에서 밭만 맸던 노인들,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노인들을 통해서나마 과거의 소리가 전승되었다. 그러니까 해방 이후가 될 즈음에는 정선아리랑은 가늘게 명맥을 유지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군에서는 정선아리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정선아리랑제’를 통해 정선 사람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정선아리랑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예능보유자 4명이 전수관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전수조교들은 여러 마을 노인회관등에 가서 소리를 가르치고, 장날에는 소리를 하면서 정선 사람들이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정선아리랑에 담긴 향유의미, 소리를 부를 때 일어나는 가창자들 간의 역동, 소리에 담긴 사회문화적 함의 등을 아는 분들이 드물다. 80세 중반 정도는 되어야 그런 말씀을 해 줄 수 있다. 70대들도 가사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이 드신 분들이 세상을 뜨신다. 정선 구석구석을 좀 더 다녀야겠다. 외롭더라도 갈 길을 가야겠다.
이 책은 정선아리랑에 담긴 사회문화적 모습을 채록하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만을 채록하지 않았다. 문학적인 입장에서만 정선아리랑을 접하려고 하지 않았고, 정선아리랑의 존재양상을 다각도로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소리를 대하지 않았고, 소리들이 전승하는 그 자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다음은 「정선아리랑의 사회문화적 이해」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소리와 일상생활의 연관성 이해
정선아리랑은 가창자들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 ‘소리’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존재한다. 사람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가요와는 다르다. 노래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 정선아리랑은, 소리를 부르는 그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정선 사람들이 정선아리랑을 ‘신세타령’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신들의 삶의 처지를 한탄하는 정도만으로 그 의미를 한정할 수는 없다. ‘신세’는 일상생활과 연관지어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정선아리랑은 밭을 매면서도 부른다. 나물을 뜯으러 가서도 부른다. 모를 심으면서도 부르고, 짐을 매면서도 부른다. 나무를 하러 올라갈 때 작대기로 지게목발을 두드리면서도 부른다. 주막에서 소반장단을 치면서도 부른다. 우물에 물을 길러가서도 부른다.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 부르기도 한다. 시어머니에게 얻어맞고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서도 부른다. 남편에게 얻어맞고 힘든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마실돌이를 하면서 즐거워 부르기도 한다.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모여 놀 때 그들에게 밤참을 해 주면서 옆에서 듣고 배우기도 한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다가 배우기도 한다. 옆집 총각을 생각하면서도 부른다. 이웃집 여인을 생각하면서도 부른다. 시집을 간 뒤에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면서도 부른다. 잔칫집에 가서도 부른다. 호미씻이를 하면서도 부른다. 이처럼 정선아리랑은 삶의 일부다.
2. 가사의 향유의미 이해
정선 사람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는 정선아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사를 채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그 가사의 존재를 연구자의 입장에서만 해석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정선아리랑은 본래 가창자들의 삶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창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이 부르는 소리의 단어나 구절,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다. 이를 ‘향유의미’라고 부를 수 있다.
그 향유의미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 의미의 다름은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존재가치가 있다. 정선 사람들은 서로의 소리가 다름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의 소리가 나와 다르다고 공박하지 않는다. ‘향유의미’가 서로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다름을 수용한다. 다른 사람의 삶이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듯이, 소리의 다름을 받아들인다. 다음 가사를 보자.
지집아새끼 낳는쪽쪽 콩밭골로 긴다
위 소리에서 ‘까투리봉’은 암꿩의 형상을 닮은 봉우리라고 가창자들은 말한다. 대부분의 가창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일부 가창자들은 ‘까투리봉’이라는 가사 대신에 ‘거친 봉’이라고 불러야 된다고도 말한다. ‘까투리봉’을 ‘팔풍받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콩밭골로 긴다.”라는 가사는 여자 아이들이 콩밭골에 들어가 연애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가창자는 여자 아이들이 크면, 일을 하기 위해 콩밭골에 들어간다고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콩밭골’은 ‘공알’을 의미한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가창자에 따라서는 제2행을 "우리 삼동세 팔난봉이 난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소리를 두고 각 가사의 조합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향유의미가 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창자들은 그 다름을 배척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용인하면서, 소리를 즐기기도 하지만 소리가 불리는 상황도 즐긴다.
3. 소리의 자유로움 이해
가창자들은 정선아리랑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모든 가창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가사를 만들어 부른다. 자신이 부르는 가사가 다른 사람이 부르는 가사와 동일하더라도, ‘지어서 부른다’고 말한다. 그런 가사를 선택해서 부른 것도 지어서 부른 것에 포함된다. 그러니까 ‘지어서’는 소리를 개인적으로 창작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소리를 부르면, 그것이 바로 ‘지어서 부르는’ 것이 된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소리에 실어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소리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드러냄은 자유로움이 바탕을 이룬다. 그러니까 ‘지어서 부른다’는 것은 가창자가 소리를 부를 때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가창자들이 정선아리랑을 통해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은 가사만을 마음대로 불러서가 아니다. 곡조도 마음대로 부른다. 동일한 가사인데도 사람들마다 부르는 곡조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높은 음으로 내지르면서 소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낮은 소리로 부른다. 동일한 사람이 불러도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와 젓가락으로 소반 장단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는 다르다.
나물을 뜯으며 건넛산에서 나무를 하는 총각이 들으라는 소리와, 해가 너웃너웃 넘어갈 때 밭에서 부르는 소리는 같을 수 없다. 정선아리랑은 고정된 틀에 자신의 소리를 맞춰가며 부르는 소리가 아니다. 상황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르는 소리가 정선아리랑이다.
4. 소리의 사회적 모습 이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다. 가창자들 모두 이런 말을 한다. 남녀는 12살 정도가 되면, 만남이 금지된다. 과거의 사회적 관습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를 지키도록 강요한다. 가창자 대부분이 이를 지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적 관습으로 이를 제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삶에서 사회적 금기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에 육체적인 성적인 만남도 있었고, 정신적인 연애도 있었다. 아래 소리가 그러한 경우를 드러낸다.
간난이아버지 질떠나면서 잘뒀다달라 했는데
이웃총각 구구한사정에 잘뒀다 주지못했네
한질담너메 두질담너메 꼴비는에 저그대
눈치만 있거시거든 내손에외받어 잡숴요
이러한 가사에는 남녀간의 만남도 담겨 있지만, 과거 사회의 모습도 담겨 있다. 과거에는 딸자식을 이름 대신에 ‘간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길을 떠나면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조그마한 담 너머에서 꼴을 비는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오이에 담아 건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집안에 건네줄 게 없으니, 울에서 자라는 오이라도 따서 자신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둥둥재말랑 맷둔재말랑 새밭파지말구
당신하구 나하구야 화전놀이갑시다
위 소리를 부르는 사람은 ‘둥둥재’나 ‘맷둔재’가 정선에 있는 재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다른 가창자들이 부르는 대로 불렀기 때문이다. 단지 ‘말랑’이라는 단어 때문에 높은 재라는 사실 정도밖에 모른다. 하지만, ‘새밭’이라는 단어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는 화전을 말한다. 화전은 나무를 불태워 만들기 때문에 거름을 주지 않아도 곡식이 잘 자란다고 한다. 화전을 할 때의 고달픔도 얘기한다.
새밭을 만드는 방식도 말하고, 새밭에는 서숙을 뿌리기도 하지만, 조를 뿌르는 것이 좋다는 말도 한다. 조는 씨앗에 비해 소출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를 심은 새밭을 맬 때는 다른 곡식을 심은 밭을 맬 때보다 힘은 많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새밭을 ‘새조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밭은 몇 년 정도를 일구다가 묵밭을 만든다고도 말한다.
둥둥 두만아 새밭파지말고
대화방림 멋다리로 들병장사가세
제1행은 자신의 마을에 사는 두만이라는 사람에게 말하는 형태로 가사를 바꾸었다. 두만이는 실명이라고 한다. 그는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가사는 그를 놀리는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가사는 두만이처럼 열심히 일을 하지 말고 대화, 방림, 멋다리에 가서 들병장사를 하자고 말하고 권하고 있다. 보따리장사나 두부장사보다는 술장사를 하는 것이 돈 벌기에 가장 손쉬웠다고 말한다.
이 가사는 용탄리나 가수리 인근에서 채록된다. 정선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화나 방림을 모른다. 대화나 방림에는 술집이 많다. 원주에서 정선이나 강릉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다. 그래서 술집이 많았고, 장사도 잘됐다. 이처럼 정선아리랑 가사에는 과거 사회의 모습이 응축되어 있다.
5. 소리의 문화적 모습 이해
정선아리랑은 구전되었다. 그러다가 일제 시대에 들어 일본 노래에 그 자리를 조금씩 내줬다. 나아가 ‘노랫가락’, ‘창부타령’, ‘청춘가’ 등은 물론, 유행가에 자리를 내줬다. 이러한 노래들은 주로 전축이나 라디오를 통해 유행이 되었고, 주막에서도 많이 불렸다. 그러다 보니, 정선아리랑은 부르지 못하고 유행가만을 부르기도 했다. 8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정선아리랑을 부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아리랑은 그와 같은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통해 전승이 되었다. 산골에서 밭만 맸던 노인들,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노인들을 통해서나마 과거의 소리가 전승되었다. 그러니까 해방 이후가 될 즈음에는 정선아리랑은 가늘게 명맥을 유지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군에서는 정선아리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정선아리랑제’를 통해 정선 사람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정선아리랑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예능보유자 4명이 전수관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전수조교들은 여러 마을 노인회관등에 가서 소리를 가르치고, 장날에는 소리를 하면서 정선 사람들이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정선아리랑을 채록하는 동안 여러 모로 도와주신 가창자들이 고맙다. 집에 찾아가도 커피를 타 주시면서 다양한 질문에 답변을 해 주시는 분들이 고맙다. 10여 차례 찾아가도 짜증을 안 내신 분들이 고맙다. 한 마디라도 더 일러주시려고 했던 분들이 고맙다. 정선군청 군수님, 아리랑 계장님이 고맙다. 정선문화원 원장님, 사무국장님이 고맙다.
정선아리랑에 담긴 향유의미, 소리를 부를 때 일어나는 가창자들 간의 역동, 소리에 담긴 사회문화적 함의 등을 아는 분들이 드물다. 80세 중반 정도는 되어야 그런 말씀을 해 줄 수 있다. 70대들도 가사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이 드신 분들이 세상을 뜨신다. 정선 구석구석을 좀 더 다녀야겠다. 외롭더라도 갈 길을 가야겠다.
*책을 필요로 하시는 독자게서는 정선문화원(033 562 5471)으로 연락하시면 무료로 보내드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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