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네 사는 일상이 그러하듯 함께 지낼 때는 무덤덤하다가도 떠나고 나면 새삼 빈자리가 커보이고 생전의 소임이 막중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박동진 명창의 2주기를 맞는 자리가 꼭 이와 같다. 평범했던 자리도 비고 나면 허전커늘, 하물며 한 시대의 대중적 우상이었던 박 명창의 위치였고 보면, 오늘 고인의 빈자리를 두고 느끼는 남은 자들의 정회는 만감이 교차하며 통절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을 것이다.
박동진 명창은 소리의 달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인을 소리 외의 측면에서 더 높이 평가한다. 바로 그의 정신세계다. 소성에 도취되어 부화뇌동하는 얼빠진 대가들이 득실대는 세태 속에서, 그는 올곧고 강인한 예인 정신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군계일학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한결같이, 그처럼 집요하게, 그처럼 근면하게 평생을 소리 공부에 독공을 쏟은 명창은 아마도 판소리사에 전무후무할 것이다.
말년의 국립국악원 시절, 팔십 대 고령에도 고인은 엄동설한이나 삼복더위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골방에서 소리 연습에 골몰했다. 늦은 출근에도 지각을 하는 단원이 있는 풍토 속에서도 고인은 아침 7시면 출두하여 연습하고 다시 귀가했다가 출근하곤 했다.
어느 핸가 고인은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았다. 예정된 지방공연을 극구 만류했지만, 박 명창은 굳이 링거를 맞아가며 합류했다. 과연 오늘날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명인 명창들, 과연 이 같은 투철한 예인정신과 책임의식을 갖춘 이들이 많을까? 아니 있을까 없을까?
아무튼 고인은 노래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우리를 감동시켰다. 뿐만 아니라 특유의 익살과 풍류적 여유로움으로 각박한 세상살이에 살맛을 불어넣었다. 어디 그뿐이랴. 더 크게는 투철한 예인정신은 후학의 사표가 되었고, 근검한 생활신조는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속물들에게 따끔한 죽비가 되었다.
음악으로, 예술가 정신으로, 검박儉朴한 삶으로 한 시대의 귀감이 되었던 박동진 명창의 오늘의 빈자리에는 그래서 큰 별을 잃은 상실감과 함께, 그분에 대한 사모와 존경의 정념情念들이 밀물처럼 고여들고 있는 것이리라.
짧은 지면으로 박동진의 음악 세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그의 음악 세계는 넓고 깊다. 특히 그의 판소리 음악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수음악적인 측면 말고도 그의 입지전적인 인생 역정을 이해해야 하고, 철두철미한 삶의 소신과 의지를 이해해야 하며, 그가 처했던 20세기 후반의 한국적 시대상을 감안해야겠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명창이기에 그에 관해서는 할 얘기도 많고, 각자 기준에 따라서 강조되는 내용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명창 박동진 하면 우선 이런 이미지가 머리를 스쳐간다.
그는 누가 뭐래도 판소리계의 스타라는 점이다. 여기 스타라는 말은 소리 기량도 군계일학으로 뛰어남을 뜻하지만, 그와 동시에 스타적인 끼가 있음도 함축된 말이다. 박동진은 소리도 잘한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그는 청중을 매료시키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스타적인 기지와 해학과 완숙미 없이는 불가능한 그만의 장기다.
사실 박동진의 판소리음악에서 스타적인 매력이 배제되었다면 모르긴 해도 한국의 판소리음악은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 판소리는 구성진 소리 위주의 고답적인 무대로 치달으며, 판소리 본연의 종합적인 예술성은 상당히 퇴색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판소리의 구수한 재미는 되살릴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새삼스레 그의 판소리 무대가 고맙게만 여겨진다. 지리멸렬하던 판소리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기를 되찾게 해 준 이가 곧 그이기 때문이다. 기실 박동진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판소리가 이처럼 괄목할 만큼 대중들의 아낌을 받을 수가 없었음에 분명하다.
전통예술을 모르는 것이 오히려 교양인인 양 처세하던 시절에 전통예술의 진미를 번뜻번뜻 일깨워 주던 이가 곧 박동진 명창이다. 소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입담과 재담으로 끌어들이고, 공연을 접해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는 불원천리 마다않고 찾아다니며 소리로 익살로 뚝심으로 판소리의 진수를 터득시켜 왔다. 이처럼 쇠잔해 가는 판소리를 회생시킨 주역이 곧 박동진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20세기 후반의 우뚝 솟은 스타요, 명창이요, 한국 음악사의 공훈자다.
한편 그에게는 명창 이전의 인간 박동진으로서의 숙연함을 느낀다. 예술을 향한 그의 불굴의 집념과 초인적 정진 때문이다. 그가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뛰어난 노력가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성에 자족하며 대성에 이르지 못하는 철부지들이 많은 세상에 그의 진지한 삶의 자세는 많은 예술인들에게 하나의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도 박동진 명창은 국악계의 훌륭한 사표요 선구자다.
박 명창은 마음씨 착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체취를 풍긴다. 흔히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인물들이 지니기 일쑤인 자만이나 오만 같은 흔적은 티끌만큼도 없다. 언제나 편안하고 온화하고 겸손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 시대가 그토록 갈구하는 따듯한 인간미가 물씬 느껴진다. 얼마나 우리 이웃과 사회가 그로 하여금 포근해지고 정스러워지는가. 지극히 인간적인 한 예인의 정서적 감화에 우리는 고마울 뿐이다. 음악가적 예도와 인간적 감동을 겸비한 박동진 명창과 함께한 오늘의 동시대인들은 그래서 행복하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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