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한악계 별들 9:소리꾼의 판소리 사설 정립, 송순섭 명창

특집부
기사입력 2020.11.13 07:30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잔잔한 파도가 단조롭듯 인생살이도 순탄하기만 하면 웬지 밋밋하고 권태롭다. 때로는 폭풍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날려야 나름대로 산전수전 세상 좀 살아봤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운산雲山 송순섭宋順燮 선생을 떠올리며 가져본 단상이다. 그때 그 시절 우리 모두가 거의 그랬듯이, 운산 역시 지지리도 가난하고 신산辛酸한 시절을 살아왔다. 웬만한 사람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탄自嘆하거나 좌절하며 인생을 자포자기한다.


    2020101500187_0_20201015134259103.jpg

     

    하지만 운산은 역경에 굴하지 않았다. 파상적으로 밀어닥친 고난은 오히려 그를 강철처럼 굳건하게 담금질해 갔다. 오늘의 자랑스런 운산을 있게 한 토양이요, 원동력도 바로 여기에 있음에 틀림없다.


    무릇 소리나 재주를 앞세우는 재승박덕형은 사탕 맛이다. 가슴 깊숙이 심금을 울려 주는 여운이 없다. 그저 한번 여흥삼아 즐거운 체 어울려 볼 뿐이다. 세상이 부박浮薄하다 보니 너나없이 이처럼 표피적인 감각만을 긁어 주는 사탕발림 예술을 선호하고 추종하며, 심지어 그게 예술의 본령인 양 혼동한다.


    운산의 소리엔 허세가 없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무늬를 담박하게 가락으로 풀어 낼 뿐이다. 관중들은 그런 신실信實한 소리 속에서 혼연일체의 동질감을 느끼며 깊은 예술적 희열에 잠기게 된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고 하듯이, 대가들의 소리는 오히려 싱겁고 어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 음미할수록 그 속에서 진국이 우러난다. 예술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농익은 삶의 얘기들까지 배어나기 마련이다. 마치 운산의 소리가 그러하듯!


    팔십 고개를 바라보는 운산의 소리 역정歷程이지만, 단 두 장의 장면을 그려보면 그의 소리 인생의 대성을 누구나 가늠해 볼 수 있다. 마음으로 그려보는 한 장은, 배고픈 소년 시절의 서러운 소리 공부 장면이고, 또 다른 한 장면은 2007년 조선일보 1면 톱에 실린 중국 장강의 적벽대전 터에서 열창한 회심의 적벽가 장면이다.


    고흥의 한촌寒村에서 광주, 부산, 서울을 거치며 보옥같이 다듬어 온 소리를, 숱한 영웅호걸들이 명멸했던 먼 옛날 적벽대전 역사의 현장에서 화룡점정으로 기염을 토해 냈으니, 이만하면 운산의 삶의 궤적도 남부럽지 않은 다복한 일생이 아니겠는가!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경연대회

    경연대회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