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기찬숙/아리랑학회 이사
자기복제로 세대를 이어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생물학적 존재를 DNA이라 한다면, 하나의 완성된 정보(지식/문화)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과 문자를 매개로 보존, 전파되는 것을 밈(Meme)이라고 한다. 밈은 유전자와 매우 비슷한 성격을 지니는데, 아리랑이란 곡을 예를 들면, 미상의 작자가 만들고, 작자는 같은 동네 친구에게 이 곡을 들려줌으로서 아리랑은 친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복제하였다. 그 친구는 주위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줌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이란 곡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아리랑이란 곡을 만든 작자와 친구가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아리랑이란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대를 뛰어 넘어 자기를 보전하는데 성공하였다는 뜻이다.
게다가 밈은 돌연변이(突然變異)도 일으킨다. 이 곡을 들은 밀양에 사는 친척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그 곡을 전하는데 그만 완벽하게 기억을 해내지를 못한다. 스스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보완해서 밀양아리랑이란 제목으로 자기 동네사람들에게 전파한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이와 같이 밈이란 DNA와 같이 새로운 개념의 문화 자기복제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의 아리랑 밈에 대한 설명은 매우 제한적이다. 즉 민요 또는 노래로서의 아리랑만을 한정한 것이기 때문인데, ‘아리랑문화’의 밈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리랑문화’의 개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노래 아리랑은 1926년 영화<아리랑> 개봉과 그 흥행의 여파로 전 문화예술 장르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다. 영화<아리랑>의 자장력(磁場力)에 의해 아리랑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이 형성될 수 있었다. 노래 아리랑뿐만 아니라 전 장르의 문화 공유로 형성된 정서(情緖) 통합체 아리랑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文化)란 한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의미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이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은 유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습에 의해서 습득하고 전달받아 기층화 되고 누적된 현상이다.
그 결과 '습득된 행동'을 비롯해서 '마음 속의 관념', '논리적인 구성', '통계적으로 만들어진 것', '심리적인 방어기제' 같은 것이 바로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다만 문화는 '구체적인 행동으로부터의 추상이고 그 자체가 행동은 아니다'(레슬리 A. 화이트, 「문화의 개념/The Concept of Culture」, 1973,)라는 것이다.
이런 바탕에서 우리의 <대한민국 문화기본법> 제3조에서는 문화를 매우 집약적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즉, 문화예술, 생활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 체계, 전통 및 신념 등을 포함하는 사회나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라고 했다. 이런 정의에 기댄 ‘아리랑문화’에 대한 규정은 ‘감성적 특성’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리랑은 민중적 비애와 한(恨)의 정조(情調)를 수렴한다. 동시에 권력에 대한 저항적 민중의지를 발현한다. 그리고 고통과 모순을 극복하는 미래 의식의 추동체이기도 하다. 이 감성적 특성의 총체가 아리랑문화이다. 이는 노래 아리랑의 정서만으로 축적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전 분야 장르에서의 아리랑 주제화나 소재화로 형성한 정서인 것이다.
예를 들면 1926년 이후 1960년대까지 개봉된 9편의 ‘아리랑’ 표제 영화<아리랑>의 존재이다. 동시에 수많은 장르로 확대되어 정서를 적층시켰다. 1929년 막을 올린 연극<아리랑고개> 이후 10여편, 1927년 시 <아리랑> 이후 문학작품 30여편, 1928년 이후 무용<아리랑> 이후 30여편, 1929년 유행가 <아리랑 우지마라> 같은 유행가 20여편, 1934년 음반 <진도아리랑> 외 창작아리랑 5편 발매, 1931년 카페 <아리랑>과 1939년 <아리랑배> 같은 상호와 상품명이 50여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활문화, 심지어는 해외 동포사회에도 확장, 전승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아리랑문화는 적층을 이루는 문화이면서, 이를 기반으로 다시 자기증식으로 진화하는 문화이다.
이러함에서 아리랑문화의 밈은 단적으로 말하면 ‘아리랑고개’이다. 이 ‘아리랑고개’라는 열쇄말은 앞에서 열거한 전 장르의 작품 표제에 함축된 것이고, 이를 정서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열쇄말은 어디에서 출현하여 ‘감성적 특성’의 문화, 아리랑문화 형질을 촉진시킨 것인가를 묻게 된다.
그런데 이의 해답은 이미 위에서 제시하였다. 돌연변이라는 진화의 단서가 바로 최초의 타 장르화인 1926년 영화<아리랑> 개봉이다. 이 영화<아리랑> 이후의 현상을 "나운규와 영화<아리랑>의 역사적 무게가 노래 장르의 법칙을 압도한 결과”(김연갑, "메아리 원형 가능성 고찰”, 한국민요학회, 1986년)로 표현했듯이 아리랑의 자장력(磁場力)은 공시적 통시적으로 확장되어진다. 이 자장력이 오늘의 메타데이터Meta Date) 아리랑을, 메타인지(Meta Cognition)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아리랑문화는 노래 아리랑의 인지 과정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발견하고 관찰하는 정신 작용을 수반하는 대상인 것이다.
지난 10월 1일은 1926년 영화<아리랑>이 개봉된 역사적 날이다. 동시에 제8회 ‘아리랑의 날’이다. 세계를 멈추게 하는 펜데믹 코로나19에 묻히고, 추석에 밀려 잊고 지냈다. 아리랑의 저항성과 남성성을 부여한 감독 나운규와 전 장르로의 확산을 촉발시킨 영화<아리랑>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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