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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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얼굴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몸 선을 드러내는 새빨간 의상을 입은 우희는 경극 '패왕별희'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동명 영화에서 장궈룽(장국영)이 극 중 경극 배우로 여장했던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이 역을 창극 무대에서 소리꾼 김준수(32)가 맡는다. 다음 달 11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창극 '패왕별희'는 국립창극단의 가장 파격적인 레퍼토리다. 2019년 초연과 재연 이후 4년 만에 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규모를 키워 올리는 공연이다. 김준수는 초연과 재연 때도 우희 역을 맡아 중국 경극의 전설적 배우 메이란팡을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 25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준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더더더더' 노력했다"고 힘줘 말했다. 배역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창극 무대에 서는 소리꾼의 자질이지만, 남자인 그가 여자 캐릭터 우희를 연기하는 데는 '더'가 4번은 들어가야 할 만큼 노력이 필요했다. 캐릭터의 성별뿐만 아니라 손끝으로 세상을 표현한다는 경극의 몸짓을 익히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김준수는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유연함이 필요한 역이라 연습실에서도 계속 치마를 입고 있다"며 "손동작이나 몸동작을 여성적인 선을 살리면서 작게 해야 하고, 보폭을 아주 짧게 해서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요란하면 안 되고, 우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평소 걸음걸이가 빠르다. 사뿐사뿐 걷는다고 걷는데도 남성적인 면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머쓱해했다. 김준수가 여성 캐릭터를 맡은 건 '패왕별희'가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초연한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 역을 맡았다. 다만 헬레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캐릭터였다. 머리 스타일도 가발 없이 짧은 상태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반면 우희는 항우와 슬프고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여성이다. 머리카락도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오고, 진한 화장은 물론 긴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도 칠한다. 의상에서도 호리호리한 몸 선을 한껏 드러낸다. 김준수는 "사실 초연 때는 빨간 매니큐어나 긴 머리, 치마 모든 게 다 어색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지금은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에 얼굴에 뭐라도 하나 더 바를 수 있을지, 네일아트도 뭘 더 해야 할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살도 2㎏ 정도 뺐어요. 의상이 타이트하거든요. 재연 때는 의상을 좀 더 넉넉하게 만들어주셨는데, 핏(모양새)이 타이트할 때보다 안 예쁘니까 도저히 못 입겠는 거예요. 옷 자체에 우희의 예쁜 선이 들어가 있는데, 그 디자인을 포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번에는 핏도 살리면서 팔을 들거나 움직일 때 안 불편할 정도로 옷을 고쳤어요." 우희는 '패왕별희'의 명장면인 '쌍검무'도 소화해야 한다. 양손에 긴 칼을 들고 추는 고난도 검무다. 이 춤의 백미는 허리를 뒤로 90도 가까이 젖히는 장면이다. 김준수는 '쌍검무'를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자 "너무 혹독해요"라며 웃었다. 그는 "허리 꺾는 신이 딱 절정이다. 우희가 항우의 이별을 암시하는 이별의 춤이라 잘 마무리돼야 관객들도 함께 슬픈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허리를 꺾을 때 검이 땅에 닿는 순간까지 꺾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초연 때는 춤추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었다"며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호흡을 알고 있어서, 호흡을 분배할 줄 알게 되니 여유가 좀 생겼다"고 덧붙였다. 창극에는 없는 경극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판소리에도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인 '발림'이 있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마임처럼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차이가 있다. 김준수는 "소리꾼의 발림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정형화돼 있다"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손동작으로 표현한다. '대왕님, 근심을 달래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이 대사도 '근심', '달래다', '어떤가' 하나하나 표현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창극 '패왕별희'가 경극의 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인 부분은 경극의 요소를 살리되, 대사나 음악 등 청각적인 측면은 창극의 매력을 부각했다. 김준수는 "경극의 창법이나 발성은 쓰지 않고, 소리꾼에게 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며 "대신 우희는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제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보통 소리꾼은 단전에서 뽑아 올리는 힘찬 소리를 내잖아요. 슬프면 '아이고∼'라고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희는 전쟁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니, 그 절절한 마음을 누르면서 노래하려고 해요. 절제된 소리를 경극 특유의 동작들과 함께 보시면 새로운 맛이 있으실 거예요." 김준수는 창극뿐 아니라 TV 예능, 뮤지컬 등에서도 활약하며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지만, 자신의 뿌리는 '소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김준수는 방학 때면 스승 박금희 명창을 따라 '산공부'를 다녔다고 했다. 박 명창의 또 다른 문하생 송가인도 함께 산공부를 다니던 멤버였다. 고등학생 때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소리를 안 하겠다며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소리'라는 생각에 몇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이후 2013년 국립창극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고, 2018년에는 3시간이 넘는 '수궁가' 완창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에도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소리 공부를 해왔다. "몇 달 전에 10년 만에 춘향가 공부를 끝냈어요. 국립국악원 유미리 선생님께 배운 6시간 분량이에요. 공부를 게을리해서 이제야 끝냈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끝까지 소리를 놓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소리는 제 근본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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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음악, 巨木’ 오마주! 당연히 感動도오늘의 민속음악 전형성(종목의 세련미)이 형성된 1960~70년대, 큰 그림자를 드리운 이들. 이름하여 巨木! 산조의 서용석, 민요의 안향련, 남해성, 오정숙, 춤 임이조, 호남여성농악이다. 28일 이들의 예술혼을 계승하여 승화시킨 무대가 있었다. 2023 국립민속국악원(원장 김중현) 정기공연 ‘민속음악, 巨木’은 이 명인들의 오마주(Hommage)다. 분위기도 스타일도, 당연히 감동도! 예술감독은 조용안(국악연주단 예술감독), 산조합주 구성은 심상남(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초대단원), 민요연곡 구성: 방수미(창극단 악장), 살풀이 구성은 : 진유림(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살풀이 이수자),연희 구성은 유순자(전라남도무형문화재 호남여성농악 포장걸립 보유자),무대디자인은 박은혜(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무대디자인 강의교수)가 맡았다. ‘거목’들에 대한 헌사(獻辭)다. "민속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서용석, 여류 명창의 시대를 연 안향령 남해성 오정숙 명창, 그리고 선운이라 불리는 임이조 명무의 살풀이, 유랑의 꽃 여성농악까지, 작고한 민속음악의 거목들과 레파토리를 추억하며 오늘의 민속음악으로 다시 만나는 무한한 감동의 무대 한민족 '민속악'의 진수와 신명을 세계로~ ” 산조합주 무대는 1970년대 후반 서용석의 대금과 윤윤석의 아쟁 합주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무대였다. 산조의 특성상 유파별로 다양하여 하나의 산조를 위주로 선율의 짜나가는 형태라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이 번 무대는 심상남 선생의 구성으로 서용석류의 대금 아쟁 피리 해금산조로 빚은 다성(多聲)의 합주 진가를 보여주었다. "불리는 이름이 많은 아이는 사랑 받는 아이다.”란 말대로 ‘살품이’는 이름이 매우 많다. 더욱이 무속적 연행에서 ‘내면의 춤’이라는 무대예술로 선 것도 사랑받으며 온 결과이다. 임이조((林珥調, 1950~ 2013)선생은 살풀이 보유자. 2013년 11월 30일 세상을 뜨셨으니 딱히 금년 이즈음이 10주기이다. 오마주의 참뜻이 반영된 무대이다. 이번 ‘살풀이’ 무대는 가히 ‘살풀이 진유림’이란 성가로 활동하는 진유림 선생이 구성하고 함께함으로서 백색 명주의 신성함과 합무의 유려함을 수놓았다. 6인에 의한 여성 민요연곡 무대는 60년대 흑백시대 TV무대로 이끌었다. 한복의 색감과 헤어스타일이 특히 그랬다. 한 때 김소희 선생 제자들 중 두각이었던 안향련의 매력을 오늘의 무대로 재현하였다. 여기에 남해성과 오정숙의 남도적 성음을 더해 세련된 민요 연곡을 선사했다. 마치 60, 70년대 음반 자켓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김치켓’으로 상징되는 서구풍 가요시대의 시간여행을 하게 했다. 그럼에도 힘찬 민속악기 반주가 단순한 유행 재현이거나 유행(통속)의 복고가 아닌, 이 시대 무대예술로 보여준 점이 여운을 크게 하였다. 호남여성농악 무대는 호남좌도풍물의 독특하고 여성적인 풍미를 보여주었다. 오늘의 ‘여성농악대’가 갖고 온 나름의 서사는 ‘상쇠 유순자’의 것이지만, 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부포놀이는 대가다운 진가를 보여준 무대였다. 객석의 추임새로 마무리되었다. 기자의 오랜만의 남원 취재는 한마디로 "남원 답고 국립민속국악원다운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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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현신, 초망자 박강이 굿’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2023 프로젝트 컨템퍼러리 ‘문밖의 사람들 : 門外漢’ 공연을 개최했다. ‘문밖의 사람들 : 門外漢’은 전통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활동하는 다양한 아티스트를 통해 새롭게 해석된 동시대 전통공연예술을 선보이는 공연이다. 그 첫 무대로 10월 20일(금) 저녁 7시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의 ‘현신, 초망자 박강이굿’이 열렸다. 창작탈춤패 지기금지는 전통탈춤의 미학양식을 기초로 오늘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과 시대상을 반영한 창작 탈춤 공연을 제작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탈춤의 세계화를 꿈꾸는 창작탈춤 마당극 전문단체다. ‘현신, 초망자 박강이 굿’은 부산 기장 오구굿 중 초망자굿을 바탕으로 한 창작 탈춤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 강주룡, 이화림과 제주 해녀 김옥련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잘 알려지지 않은 항일 여성 운동가들의 삶을 시와 노래, 춤, 그리고 그림으로써 환생시켜냈다. 무가, 무악, 무구, 탈 등을 활용해 신내림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줄 예정이라 하여 무대에서 보는 굿판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하였다. 무대의 우측에 악기 여러 대가 놓여있었고, 곧 7명의 악사가 나와 자리했다. 해금의 거칠고 덤덤한 경기제 선율과 함께, 부산의 섬을 배경으로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동래여중, 일본 조선학교, 일본여중 학생들로, 춤추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였다. 동래여중 학생이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하고, 각자 춤을 선보인 후 박차정 선생의 동상 앞에서 함께 역사를 이야기하며 함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으로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이 모여 일제강점기 시대를 이야기하고, 마음 아파하며 선조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내용의 흐름은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겠으나, 무언가 어색함이 묻어났다. 학생들이 모이게 된 경로와 소개, 춤을 추는 장면은 억지로 넣은 듯 자연스럽지 못해 아쉬웠다. 중간 중간 흘러나오는 대중음악과 배경 사진도 흐름이 끊겨 집중력을 분산시켰다. 무엇보다 이 세 명의 학생이 등장한 배경은 이후 나오는 굿판 후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 무대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연결했더라면 더욱 깔끔한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프로그램상 셋째 마당부터 각각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굿판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째거리는 강주룡굿이었다. 오래된 테이프에서 나오는 듯한 지직거리는 해금 소리가 무대를 감싸며, 흑백의 바다 영상이 깔렸다. 바다는 파도와 소용돌이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강주룡 선생을 연기한 무용수가 빨간 천을 들고 등장했고, 강주룡 선생에 대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2,300명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해 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다며 죽음을 각오하고 을밀대 지붕 위에 올랐다는 강주룡 선생. 해금의 러프한 선율과 타악 연주 위에 무용수는 감성적인 현대무용을 선보였다. 음악이 점점 고조되고, 태평소가 등장하면서부터 무용수는 빨간 천을 활용하여 더욱 힘 있는 몸짓으로 간절한 염원을 드러냈다. 강주룡 선생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둘째거리는 제주 바다를 지키고 나라를 지킨 해녀, 김옥련 선생을 위한 김옥련굿이었다. 제주도에는 목숨을 걸고 억척같이 물질하는 해녀들이 있었다. 1932년 1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제주 해녀 항일투쟁이 그것이다. 수천 명의 제주 해녀들은 일제의 수탈과 압제에 맞서 3개월간 항쟁하였고, ‘제주 잠녀 항일운동’이라 불리는 이 사건의 중심에 김옥련이라는 해녀가 있었다. 김옥련 해녀를 표현한 무용수는 제주의 해녀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 부르던 민요 ‘이어도사나’를 부르며 등장하였다. 악사들이 이어도사나 음악에 맞추어 추임새를 넣었고, 해금의 간드러지는 선율이 매력적으로 연주되었다. 그 후 제주 민요 ‘너영나영’에 이어 무용수는 바닷속을 헤엄치는 해녀를 형상화하는 춤을 추고, 비 내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극단적이며 처절한 몸짓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때 특히 굿 반주 음악이 다양하게 활용되었는데,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조금의 오싹함을 자아내는 종소리와 쓰러지고도 계속 다시 일어나는 무용수의 모습이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 김옥련 해녀는, 일어나고 쓰러지고를 반복하다 우뚝 일어나 ‘이어도사나’를 부르며 당당히 퇴장했다. 셋째거리는 부녀자의 몸으로 투쟁의 일선행을 결행한 이화림 선생을 기리는 이화림굿이었다. 가족을 두고 어디 가냐며, 후회하지 않겠냐는 한 악사의 물음으로 시작한 이 무대는, ‘후퇴할 이유도 없고,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는 이화림 선생의 말로 열렸다. 강인한 눈빛을 가진 백호를 배경으로 반복적인 징 사운드와 함께 힘 있고 고상한 무용수의 춤이 시작됐다. 그의 춤은 마치 호랑이 같았고, 그 춤 위에는 실로 호랑이 같은 목소리의 중후한 남성 악사의 구음이 얹어졌다. 이 구음은 특히 평소에 무대에서 많이 듣지 못하던 느낌의 결이라 흥미로웠다. 시나위나 무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던 덤덤한 구음이라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우는 듯 질러내고 소리치는 날것의 구음이었다. 조금의 물러섬도 없는, 뚝심 있고 강한 구음과 춤. 그들은 멋 부리지 않았고, 하나의 목적만을 가진 용맹하고 강인한 호랑이였다. 넷째거리 ‘박차정굿’은 광복군을 상징하는 행진곡과 함께 시작되었다. 네 명의 탈꾼이 천천히 한 사람을 들고 등장해 무대에 내려놓고, 피 묻은 흰 적삼을 둔 채 퇴장했다. 기묘했다.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사람은 죽은 자였다. 그를 위한 망자굿(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하는 굿)이 흘러나왔고, 곧이어 죽은 자는 관절을 꺾어가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기괴하면서도 숨을 멈추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살아난 자는 박차정 선생의 탈을 쓰고 있었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무대를 보며 든 생각은, ‘무서울 정도로 민속적이다’는 것이었다. 적삼을 천천히 들어 입고 진짜 망자가 되살아나듯 춤을 추는 장면과 날것의 굿판 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조금의 두려움까지 들 정도로 강렬했고, ‘피가 말라붙은 적삼’을 선택하며 뜨겁게 최전선에서 싸운 박차정 선생을 나타낸 강한 표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용수의 과잉된 감정 연기와 내레이션, 그리고 갑작스레 흘러나오는 신파 영화 스타일의 배경과 오케스트라 음악이 뜬금없게 느껴져 아쉬움을 자아냈다. 영화적 효과로 감성을 자극하려고 한 것 같았으나, 오히려 민속적인 색채감이 극단적으로 다르게 바뀌어 분위기가 붕 떠버린 느낌을 받았다. 네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위한 굿거리가 끝나고, 신받이꾼 다섯 명이 대나무를 들고 나와 신을 받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섯 신받이꾼의 몸짓은 간절하고 절도 있으며 또 한국적이어서, 그 아름다운 춤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후 김복동 할머니의 탈을 쓴 배우가 나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소개하기 시작했다. 리플렛을 통해 이 전 춤이 신받이꾼들에게 점차 격렬한 집단 빙의가 일어나고, 여성 독립투사들을 청혼하는 장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무대만으로는 내용을 알기 어려워 갑작스러운 전개로 이어진 장면에 아쉬움이 남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한 악사와 말을 주고받으며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했다. 그의 몰입도 있는 연기에 관객들 모두 가슴 아파하고 참담한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무대는 할머니의 노래와 함께 막을 내렸다. 이 공연은, 말 그대로 ‘예술’로 말하는 ‘역사’였다.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예술이 굿과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었고, 관객들은 그를 통해 어떠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와 감정을 자극적으로 강요하는 듯한 표현, 과잉된 무대 배경 연출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여성 독립운동가들, 더 나아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전통적인 색채로 기억하며, 기릴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공연은 훌륭했다. 예술가들의 더 많은 다양한 시도와 단단한 연출을 통해, 전통으로 역사를 표현할 힘이 펼쳐지기를, 그래서 전통과 예술의 힘이 이 나라에 오래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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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지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쌀쌀한 가을의 공기가 몸을 휘감기 시작한 10월, 과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내 이름은 사방지’ 공연이 펼쳐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중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혀온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는 ‘양성구유 어지자지’라 모멸 받던 인간, 사내인 동시에 계집이었던 조선시대 실존 인물 사방지의 파란만장하고 처절했던 비극적 인생을 풀어낸 작품으로,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 산실 '올해의 신작'을 시작으로 2022∼2023년 방방곡곡 문화 공감 민간예술단체 우수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다. 탄탄한 현장 연출 경력과 이론으로 한국 국악계를 이끌 재목으로 기대를 받았던 故주호종 연출가의 연출작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김영봉 연출자가 협력, 연출을 맡아 진행했다. 이 작품은 특히 국악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리꾼들이 한데 모여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김수인이 사방지 역을, 유태평양이 화쟁선비 역을, 박애리가 남성적 아우라를 내뿜는 홍백가 역을, 전영랑이 관능적인 기생 매란 역을 맡아 각각의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또 소리꾼 한승석이 음악감독을 맡아 전체적인 음악과 작창을 담당했다. 그는 텍스트의 속뜻을 담되 말맛을 살리면서 새롭고 신선한 조합으로 작창 작업을 해 나가는 소리꾼이다. 평소 그의 소리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번 무대의 음악적인 부분에 더욱 집중하며 감상해 볼 수 있었다. 푸르스름한 무대의 중앙에는 붉은 꽃 소품과 네모난 의자 세 개가, 우측엔 악사들의 국악기가 놓여있었다. 악사들이 먼저 나와 연주를 시작했다. 생황과 거문고의 높고 낮은 몽환적 조화 속에 단소의 바람 소리가 곁들여져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야기는 네 명의 소리꾼이 한 명씩 등장하여 사방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소개하는 대사로 시작되었다. 배경 음악으로 생황과 거문고가 사용된 조합이 특히 좋았는데, 중후하고 남성적이라 여겨지는 거문고와 고음의 날카롭고 아름다운 생황의 조화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인물 사방지를 잘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무대는 ‘내 이름은 사방지. 나 사방지는 거기에 있었다고 이른다.’는 사방지의 대사로 열렸다. ‘있었다고 이른다.’라는 표현을 통해 사방지는 본인을 화자 겸 서술의 대상으로 삼다가도, 다른 소리꾼이 사방지와 이야기의 배경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사방지를 연기하며 표현하였다. 이렇게 사방지와 소리꾼들은 주인공과 화자를 넘나들며 함께 무대를 꾸려나갔다. 철학적이고 직관적인 시점의 변화는 빠른 전개를 끌어냈고, 강한 연극적 요소를 드러냈다. 이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일 수 있는 대사가 지속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민망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사방지를 향한 세상의 차별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서였으리라. 관객들은 사방지가 들었던 말, 그가 겪는 조롱, 비난의 시선을 필터링 없이 들으며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편함과 동시에 그가 겪는 마음을 더 들여다보게 되고, 나는 과연 사방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사방지가 겪는 차별과 이 시대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이 짝을 이루며 언짢지만 꼭 필요한 무언가의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불편한 대사들은, 어쩌면 이 공연의 주제를 생각할 때 필수 불가결한 연출이었다. 무대에는 소품이 많이 차 있지 않아 조금은 비어 보이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막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동양적인 배경은 선과 글씨로 이루어져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이 작품의 주제와 잘 어울렸다. 특히 사방지가 본인을 투영해 내는 코끼리 고상이의 모습을 그려낸 러프한 선의 이미지가 참 아름다웠다. 사방지는 ‘기이한 물건/정상적이 아닌 다른 물질’을 뜻하는 이물(異物) 짐승이라 불린 병든 코끼리 고상이에게 본인을 투영한다. 사방지는 코끼리를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한다. 코끼리를 아껴주다가도 채찍으로 힘껏 때리기도 한다. 이는 본인을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사방지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과연 이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방지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사방지처럼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물론이요,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배척하고 힐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이 아닌 단체, 다수의 힘, 그리고 권력이 차별을 조장한다. 사방지가 억울하게 잡혀 들어가 무릎 꿇고 판결받는 장면에서 사방지는 파란 조명으로, 세 명의 판결자는 붉은 조명으로 연출되었다. 그리고 이런 대사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사방지에게 죄를 묻고, 깔깔 웃었다 이른다.’ 사방지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오로지 보이는 것과 다수의 판단을 통해 사방지를 죄인으로 몰아가며, 소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웃어넘겼던 자들. 이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참담한 굴레를 반복하고 있다. 또 이 작품에서는 신념의 무서움을 경고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오랜 기간 차별을 겪어온 홍백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왜 침을 뱉고 욕하는지 알아?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어야 본인들이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야.” 그리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한다는 종교에게서 버림받은 사방지에게 종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린 신념을 버릴 수 없어요.” 사방지를 차별하고 비난한 다수에게는 그들만의 강한 신념이 존재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이전에, 깨뜨릴 수 없는 것. 가장 단단한 무언가다. 그것이 바로 차별이 횡행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신념’이다. 무대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까? 아쉬웠던 점은, 모호한 대사 설정과 늘어지던 극의 진행, 그리고 음악이다. 사방지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연출은 돋보였으나, 대놓고 주제를 강요하는 듯한 대사나 감성에 호소하는 듯한 몇몇 감정 과잉 장면은 아쉬웠다. 또 사방지가 겪은 일들을 늘어놓으며 흘러가는 스토리는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지루함을 자아내 자연스러운 기승전결을 담아내지 못했다. 음악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흘러갔지만, 특별할 것 없는 소리와 반주가 반복되었다. 소리꾼들이 대사를 하다가 판소리를 하는 부분은 90% 이상이 전통 계면조로 진행됐다. 악기 반주는 기존의 계면조 선법과 시김새를 활용한 특이점 없는 반주였고, 소리는 꺾고, 흘러내리고, 질러내는 세 가지의 창법만을 반복하며 그 안에 가사를 얹어낼 뿐이었다. 혹여 무대가 전환되며 다른 뉘앙스의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무대가 끝날 때까지 거의 계면조로 이루어진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계면조는 단조로 이루어져 있고, 우는 듯한 느낌이 강하여 보통 슬픈 장면에 많이 활용되는데, 이 공연에서도 그러한 효과가 두드러지게 사용되어 웬만한 장면이 전부 슬프고 격한 감정으로만 가득 차 음악으로 감정을 강요받는 느낌을 받아 아쉬웠다. 또 거의 모든 소리와 연주가 비슷한 결로만 반복되어 무대의 흐름이 깨지고 지루함이 더해졌다. 더욱 다양한 창법, 음악적 효과와 뻔하지 않은 장르를 활용했다면 더 다채로운 무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불편하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느낀 감정이다. 자극적인 단어의 사용, 부담스러운 대사와 피하고 싶은 사회의 현실이 계속해서 마음을 두드려 착잡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됐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 사회의 차별을, 다수의 견고하고 단단한 신념을 떠올리며 내가 지금 해야 할 행동에 대해 떠올렸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한 건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여 더 이상의 사방지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사방지는 무대 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이름은 사방지. 나 사방지는,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바로 거기에 사방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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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繡놓은 ‘경기도무형문화재대축제’감악산 양주별산대놀이마당, 농기들이 일렁이고 풍물소리가 가을 하늘을 수(繡)놓았다. 제48호 평택민요와 제23호 김포통진두래놀이 연행으로 식전 분위기를 높여 3일간의 ‘경기도무형문화재대축제’ 개회의 막을 올렸다. 오후 2시, 국민의례에 이어 70인의 영예로운 경기도 지정 기예능 보유자 함자(銜字)를 일일이 호명하는 것으로 경의를 표하자 곳곳에서 화답의 함성이 터졌다. 진정한 축제의 주인공들임을 고(告)한 것이다. ‘경기도무형문화재대축제’는 경기도 31개 시군의 무형문화재 70종목의 전시공연을 통해 독창성을 알리고, 기예능 종목 보유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매년 거행하는 주제가 분명한 전통문화 축제이다. 양주시가 시(市) 승격 20주년을 맞아공동 주관하였다. (사)경기무형문화제총연합회 임웅수 이사장의 개회사는 간명하나 선언적이다. "존경하는 보유자 선생님들과 경기도와 양주시 관계자들을 모신 자리에서 공연과 전시를 통해 무형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보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 문화경쟁력 중심의 디딤돌을 놓는 2023년 대축제의 주제 -경기도 무형문화제 천년을 秀놓다-를 시작합니다.” 답지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축사에서 "예술인과 도민이 같이 행복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발전에 아낌없이 지원하게다”고 했다. 강수현 양주시장은 이 번 행사가 "소중한 문화유산이 미래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계승과 발전을 위한 가교 역할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임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은 "경기도 무형문화재는 경기도민의 정체성이자 자랑”이라고 강조했고, 윤창철 양주시의회 의장도 "양주별산대놀이와 양주소놀이굿은 양주시의 위상을 높여 주는 찬란한 문화유산”임을 강조했다. 정성호 양주시 국회의원은 "무형문화재 68개 개인종목 가운데 39개 종목을 단 한명의 보유자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하고, "전통예술을 지키고 보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 마련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1999년에 시작하여 금년 제25주년을 맞는 ‘경기도무형문화재대축제’는 주재근 한양대 겸임교수의 해설로 펼쳐지고, 양주별산대놀이보존회 로비와 두 곳의 부스에서 기능종목 작품들이 전시된다. 10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이 계절, 가장 풍성한 전통문화 축제가 ‘경기도무형문화재대축제’다. 행사장 인근에 양주성지와 양주관아가 있고, 별미식당들이 있다. 주말 가족나들이로 추천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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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만들어 나가는 곽동현, 서도소리 ‘지금’2023년 10월 6일 저녁 7시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제4회 곽동현의 서도소리 지금 只今‘공연이 펼쳐졌다. 2019년을 시작으로 꾸준히 서도소리를 노래하는 소리꾼 곽동현의 네 번째 독창회로, ’노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을 주제로 잡아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 즉 서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잡가 등 관서(關西) 지방의 소리를 가리키며, 그 가락은 흔히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질러내고, 흘려 내리고 떨며 뻗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구슬프면서도 밝은 느낌을 동시에 내는 서도소리는 아련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이자 국악아카펠라 그룹 ’토리스‘의 리더로 활동 중인 곽동현은 전통 서도소리를 꾸준히 노래할 뿐 아니라, 창작과 작곡 활동을 통해 민요를 국내외에 알리고 대중화하는 데에 힘 쏟고 있다. 아늑하고 작은 코우스 무대에는 방석과 함께 찻잔과 찻주전자가 함께 놓여있었다. 한국적인 소박함이 드러나는 이 무대의 첫 막은 서도송서 적벽부로 시작되었다. ‘적벽부’는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1082년 귀양을 가서 쓴 ‘적벽부’에서 유래한 송서로, 조조의 대군과 오나라의 대군이 일전을 겨룬 적벽대전을 회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 곡이다. ‘적벽’이라 하면 판소리 ‘적벽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강하고 우직한 적벽가와 얼마나 다를지 그 느낌을 기대하며 감상하였다. ‘송서’는 책을 읽으며 내는 것을 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곽동현은 실제로 책을 읽고 넘기며 노래했고, 간드러지면서도 힘 있는 서도 소리를 표현하였다. 소리는 평조로 진행되며 본청을 중심으로 섬세한 시김새와 서도 표현이 잘 드러났다. 함께 한 가야금 반주는 노래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가야금 독주로 또 다른 곡을 연주하는 듯하여 어딘가 노래와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소리가 쉬는 구간에 적절한 풍성함을 더해주었다. 조금은 슬픈 듯한 느낌과 함께 정갈하게 책을 읽어내는 덤덤한 소리에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무대는 ‘서도잡가 제전’이었다. ‘제전’은 북망산에 묻힌 임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며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노래다. 인생무상을 노래한 전통 소리는 많지만 서도 소리로는 익숙지 않아, 어떻게 표현될지 그 감정선에 치중하여 감상해 보았다. 그리운 사람의 무덤에 찾아가 노래하는 소리여서인지, 첫 소절부터 울컥하는 울림이 있었다. 읊조리듯, 그리고 흐느끼듯 노래하는 이 곡은 남도 지방의 계면조처럼 진하게 내는 슬픔과는 또 다른, 덤덤한 슬픔을 자아냈다. 비슷한 음계를 계단처럼 오르내리며 떨고 흔들어 내는 서도소리만의 매력이 확실히 드러났다. 특이한 건 가사가 선율의 음절 수에 맞지 않을 때, 한 음에 빠른 속도로 가사를 붙여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말하고, 글을 읽는 느낌을 주어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사설을 읊조리는 듯하다. 중간 중간 크게 질러내며 감정을 토해내는 ‘제전’에서는 신선한 서도제만의 인생무상을 느껴볼 수 있었다. ‘서도잡가 관동팔경’은 목을 조금 눌러 내는 서도제의 지르는 소리가 특히 인상적인 곡이었다. 대체로 서도소리의 특징은 큰소리로 길게 뽑다가 갑자기 콧소리로 변해 조용히 떠는 소리 등의 장식음에 있다. ‘관동팔경’은 이런 서도소리의 특징이 잘 드러났는데, 시원하게 질러내다 간드러지는 속소리로 변화하는 구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유로운 장단과 함께 밝고 편안한 느낌으로 동해안 바닷가 경치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네 번째 무대 ‘서도잡가 배따라기’는 평안도 영유지방에서 뱃사람의 무사를 기원하는 굿에서 시작하여 변형, 계승되고 있는 곡이다. 뱃사람이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배의 난파와 가족들이 상봉하는 순간까지를 그려낸다. 경제 느낌이 나면서도 조금 더 우직했고, 이전 곡 ‘관동팔경’에서보다 조금 더 목을 조여 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곡에 따라 음색을 다르게 표현하는 곽동현의 표현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 곡은 1도로 해결되지 않는 특이한 본청으로, 단조로 연주되어 서도 소리만의 독특함이 드러났다. 본청이 길게 끌어지는 중에 다른 음들이 가미되어 표현하는 기교가 많아 흔들림 없이 본청을 가져가는 게 중요했기에, 호흡을 적절히 유지하며 본청을 가져가는 게 쉽지 않아 보였지만, 곽동현은 큰 집중력을 발휘해 곡을 마무리했다. 반주의 음향적인 부분은 아쉬웠다. 피리와 해금의 고음 반주가 더해주는 후렴 구간은 음악에 더욱 집중하고 즐길 수 있었지만, 피리와 소리의 음 주파수가 겹쳐 서로 질러내며 반주가 아닌 음악으로 싸우는 느낌이 들어 양보하는 음향으로 서로 반주하고 체크했다면 더 좋은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도소리 ‘축원경’은 집안이 잘되라고 덕담으로 축원하는 풍자적인 노래다. 축원굿의 형태를 띠고 사회를 맡았던 소리꾼 최윤영과 전병훈이 함께 나와 방울을 흔들고, 꽹과리와 바라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경제 선법과 함께 조금은 대중적인 느낌의 익숙한 선율로 함께 노는 듯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요즈음엔 굿판을 많이 찾아보기 어렵기에, 이렇게 서도소리나 굿 음악이 많이 무대화되어야 그 명맥을 꾸준히 이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색있게 느껴진 부분은 꽹과리의 어울림이었다. 곽동현이 들고 친 꽹과리 외에도 장구 연주자가 꽹과리를 한 대 더 땅에 내려놓고 함께 치며 연주했는데, 두 꽹과리의 음색이 서로 달라 장2도 차이를 내며 오묘하고 동양적인 느낌을 물씬 내 더욱 굿의 느낌을 주었다. 전통적인 음색과 유쾌하고 흥취 있는 가사, 장단이 어우러져 즐거운 굿판을 연상시킨 이 무대는 특히 세 명 소리꾼의 음색이 하나 되는 게 돋보였다. 튀지 않고 어우러진 그들의 소리가 편안한 감상을 끌어냈다. 마지막 두 무대는 서도민요 ‘산염불’과 ‘잦은염불’, 그리고 ‘느리개타령’, ‘금드렁타령’, ‘어랑타령’, ‘궁초댕기’였다. 앞 전 무대에서는 계속 좌창(坐唱)으로 소리가 불리다가, 민요는 입창(立唱)으로 진행되었다. 강하고 여린 소리가 동시에 나는 서도민요의 특색 있는 매력이 잘 드러난 ‘산염불-잦은염불’을 지나 소리꾼 최윤영과 전병훈이 함께 부른 서도민요에서도 신명 나고 멋진 서도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무대에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 소리꾼들이 함께 부르는 소리라 더욱 감동이 진했다. 그들은 전혀 경쟁자가 아니었고, 서로 힘과 응원을 주는, 민요를 사랑하는 소리꾼들이었다. 어떤 소리를 해야 할까? 곽동현은 이 독창회를 통해 오랜 기간 소리를 하며 깨달은 것들과 정신에 관해 이야기했다. 차근차근 성실히 본인이 가진 소리를 찾겠다며 포부를 전한 그는, 깊이 있는 예술을 생각하고 그려내는 소리꾼이었다. 전통이, 전통 소리가 이 시대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행복하게 꾸준히 노래하는 그의 이번 무대는 그가 가진 많은 고민과 피땀 어린 노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만의 견고하고 특색 있는 서도소리가 앞으로도 꾸준히, 그답게 표현되며 발전돼 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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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 작창 ‘노인과 바다’ 공력 돋보였다9월 20일,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노인과 바다’가 영등포아트홀 무대에 올랐다. 영등포아트홀 기획공연 '시리즈Q'의 ‘주제극장’ 일환으로 진행된 판소리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소설을 바탕으로 '사천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추물/살인' 등의 작품이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판소리 창작자이자 소리꾼인 이자람이 직접 작창한, 2019년 11월 두산아트센터 초연 이래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난 작품이다. ‘추물/살인’으로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박지혜가 연출하고, 무대미술가 여신동이 시노그래퍼로 참여했으며, 이자람의 목소리와 고수 이준형의 소리북 장단으로 2시간의 무대가 풍성하게 채워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책으로 읽으며 느꼈던 감정은, ‘이건 책이 아니라 영화가 아닌가?’였다. 분명 글을 읽고 있는데 눈앞에는 노인, 그리고 노인과 사투를 벌이는 청새치 두 생명체의 긴장감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당대 최고의 문학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대작을 판소리로 들려줄 때, 과연 눈 앞에 펼쳐지던 영화 같은 장면을 또 경험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이번 공연을 앞둔 나의 가장 큰 궁금증이었다. 오래도록 많은 무대에서 작창이나 소리를 통해 다양한 무대를 만들어 온 이자람은 희곡이나 근현대 소설을 판소리의 다양한 소재와 형식으로 개발하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오랜 시간 그의 다양한 행보에 관심이 있던 터라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작품 ‘노인과 바다’의 무대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10월 관람했던 국립창극단의 ‘나무, 물고기, 달’ 공연에서는 이자람이 음악감독을 맡아 대중적인 무대화와 창극단원들이 주축이 된 신선한 무대를 만들어 보였다. 이번 무대 ‘노인과 바다’는 ‘나무, 물고기, 달’과 다르게 많은 대사나 화려한 무대 연출이 아닌 이자람의 소리로만 무대를 채워 나가기에 어떻게 흥미를 끌어낼지, 어떤 흡입력을 보여줄지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하였다. 외국 고전 소설을 한국에서 무대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가 다른 탓에 공감대를 얻기 어렵고, 그렇기에 그런 부분을 관객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동시에 감동과 이해를 동시에 주기란 어렵다. 이자람은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이 고전, ‘노인과 바다’를 그만의 특출난 상상력과 유쾌함, 관객과 편안하게 소통하며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 능수능란한 재간으로 재해석해 만들어 냈다. 노인이 회를 썰어 먹는 장면에서는 "회는 간장에 와사비를 풀어 먹어야 하는데 그곳엔 와사비가 없다”고 유쾌하게 너스레를 떨며 문화적 차이를 좁혀 나가고자 했고,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말을 건네며 자진모리장단과 추임새를 가르쳐 주는 등 관객들이 극에 편하게 참여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무대를 보고 관람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탄성을 내뱉거나 자유롭게 추임새를 하고, 박수치고 웃기도 하며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작창’은 새로운 이야기에 판소리를 싣는 작업이다. 판소리가 지닌 특성과 문법을 이해한 후, 이를 활용하여 해체하거나 조합하고, 장단을 선택하며 소리를 구성한다. 가사를 잘 전달하기 위해 음고나 운율을 살리고, 가사의 내용에 맞게 소리의 어법이나 특성을 활용해야 한다. 작창 작업은 다양한 음악적 지식 외에도 수많은 관점과 해석을 고려해야 하며, 작창가의 역량에 따라 작품이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이자람은 우리나라 대표 작창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작품에서 작창을 해 왔기에 그 명성은 명실상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일 수 있지만, ‘노인과 바다’ 작품을 통해 그의 오랜 공력이 더욱 돋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그의 독창적인 아니리와 다양한 몸짓이었다. ‘아니리’란 판소리에서 음률이나 장단에 의하지 않고 일상적 어조의 말로 하는 부분을 가리킨다. 일상적 어투로 이루어져 있기에 작품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는 부분으로, 판소리에서의 아니리는 소리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자람은 특히 동화책을 읽어주듯 편안하게 대사를 전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여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또 바지를 움켜잡고 올려 입는 흉내를 내거나 부채를 상대방의 손인 양 잡고 팔씨름하는 모습, 청새치와 힘겨루기를 하는 등의 다양한 몸짓은 유쾌함과 집중력을 끌어내는 무대 장악력이 특히 돋보였다. 음악적인 부분에서의 작창도 훌륭했다. 관객들에게 자진모리장단을 가르쳐 준 후 ‘역시 산티아고-’ 의 가사를 반복해서 부르는 노래에서는 정박, 엇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말 그대로 장단을 가지고 노는 유쾌함을 선보였고, 사람들이 속닥속닥 수군대는 장면은 고음의 속소리로 노래하여 장면과 잘 어우러지게끔 만들어 냈다. 또 청새치를 잡는 장면은 5박인 엇모리장단을 활용하여 긴장감과 몰입감을 최대치로 표현하였다. 그렇게 장면에 맞는 장단과 소리의 톤, 강약과 다이나믹이 한데 어우러지며 매끄럽게 변화하는 가운데 극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무엇보다 이 무대는 소리꾼 이자람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청새치와 긴 힘겨루기를 하며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노인은 멍하니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나는 어부다. 나는 지금 바다 위에 있다.’ 그는 힘들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 본인이 있는 공간과 자기 자신을 자각하며 정체성을 드러낸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바다 위에 있는 어부가 할 일은, 물고기를 잡는 것.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청새치와 싸워 결국 이겨낸다. 이자람은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일’에 노인을 대입하여 이야기했다. ‘버티고 또 기다린다.’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 ‘기다리는 것은 결국 나타날까?’ 등의 대사는 이자람이 오랜 세월 소리꾼으로 살아오며 고민했던 물음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우리가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노인과 본인을 빗대어 말해주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어려움과 고민, 힘든 마음이 올 때도, 우리는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이 삶을 계속해서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관객들의 환호성과 벅찬 감동은 무대가 끝나고도 지속되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무대의 빛과 조명, 이자람의 강인하고 단단한 소리, 소리와 가장 조화로운 합을 보여준 이준형의 장단, 노인과 청새치, 그리고 상어와의 사투를 통해 조명해 보는 삶에 대한 의지와 주제 의식까지. 과연 책을 읽었을 때처럼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질 것인가 궁금했던 나는, 책과는 또 다른 색다른 영화 한 편을 경험한 느낌을 받았으며, 전통성과 창의성, 현대성이 가미된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창작 판소리의 발전, 이자람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었다.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나만의 정체성으로 묵묵히 지금 할 일을 해내는 것. 바로 노인과 소리꾼 이자람처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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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공연이 된 제21회 대구아리랑축제무대는 북춤으로 정화되었다. 이어 진행자의 정중한 멘트가 이어졌다. "1956년 영천에서 출생, 60년대 말로부터 80년대 초 까지 서울에서 주경야독으로 전통소리를 연마,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고향 영천과 대구에서 경기민요와 영남민요의 무대화에 노력, 전국아리랑보존회 대구 지회장으로 활동, 2000년부터 본격적인 영남민요와 영남아리랑 전승 토착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계기로 ‘대구아리랑’ 작창과 ‘대구아리랑축제’ 창안, 대구 최계란 명창 추모 행사와 경창대회 창안, '아리랑상'공로상 수상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와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지정에 기여,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결성, 전승자 독려. '아리랑의 날' 선포식 참가 지난 대구아리랑축제 때만 해도 이 공간에서 지휘하던 그 분이 오늘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지난 1월 초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 우리가 사랑하는 아리랑 명인 정은하 선생이십니다. 이제 영정으로 모시고 오늘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출연자들 그리고 관객 여러분, 보내시고 처음 맡는 행사인만큼 정은하 선생에 대해 목례로 추모의 예를 표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23일 대구 달성아트센터 청룡홀에서 21회 대구아리랑축제는 다소 무겁고 숙연한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행사를 준비한 제자들의 마음과 주요 출연자들인 영남지역 아리랑보존회 회원들, 그리고 기꺼이 먼 걸음으로 참여한 명창들과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반영한 듯하다. 오후 7시, ‘대구아리랑축제’ 첫 무대는 ‘최계란명창전국아리랑경창대회’ 명창부 대상 수상자 한승연의 ‘정선아리랑’으로 시작되었다. 정은하 선생의 의지로 시작된 대구아리랑경창대회는 지난해까지 16명의 명창을 배출하고 이번 17회는 정선 출신 한승연이 대상을 받았다. 이들을 통해 ‘대구아리랑’과 대구아리랑축제를 전국에 알렸다. 초청 명창의 무대는 제1회 때부터 첫 무대를 꾸며준 김길자 강원도무형문화제 1호 정선아리랑보유자와 70년대 초 ‘청구성악연구소’에서 함께 수학한 경기민요 이수자 이금미 명창이 긴아리랑으로 무대를 빛냈다. 영남의 아리랑을 대표하는 ‘영천아리랑(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울릉도아리랑(울릉도아리랑보존회 황효숙)’ ‘성주아리랑(성주아리랑보존회 임옥자)’ ‘상주아리랑(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김학영,이상우)’ ‘경상도아리랑 (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 최문희)’ ‘독립군아리랑, 광복군아리랑(대구아리랑보존회 김상준,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허윤도, 김정수)’이 불려졌다. 이어서 ‘최계란 本 대구아리랑(동구지부 오은비)’ ‘정은하 本 대구아리랑(신수진, 전성희, 김천지부 허희자, 남구지부 백선혜, 경산지부 안정인, 달성군지부 성은주)’ ‘신대구아리랑(부회장 오은비, 이사 신수진)’ ‘밀양아리랑(수성구지부 조순남)’이 불려졌다. ‘부산아리랑(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홀로아리랑(이사장 곽동현)’ ‘본조아리랑(출연자 모두)’ ‘진도아리랑(어란이팀)’ 공연이 펼쳐졌다. 특별 순서인 정은하 선생 활동상을 보여준 동영상은 모두를 숙연케 했다. 영남지역 아리랑의 존재 부각을 위한 30여 년의 각고는 아리랑 역사에 길이 남는 역정임을 확인 시켜주었다. 특히 첫 제자인 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대표, 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대표, 울릉도아리랑보존회 황효숙 대표의 무대는 정은하 선생과의 각별한 교분으로 특별했다. 그리고 40여 년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온 이인수 대구교육대 교수, 김상준 외 광복군아리랑 팀의 무대는 정은하 선생에 대한 많은 상념을 떠 올리게 한 무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빛나고 듬직한 무대는 정은하 선생이 남긴 애 제자 곽동현, 신수진, 오은비가 불러준 신구 ‘대구아리랑’ 3곡을 연창으로 꾸민 공연이었다. 정은하 선생이 작창 한 최고의 창작 아리랑 1호인 ‘대구아리랑’을 부를 때는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 정은하 선생의 손길에 의해 소리길을 밟아 어엿한 소리꾼으로 성장하여 이번 두 행사를 꾸린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오전 9시 반 경창대회로부터 저녁 8시 반, 본 행사를 이어가는 동안 서로가 주고받은 눈길은 오는 정은하 선생의 1주기 추모공연을 하자는 합의였다.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역대 출연 명창인 이춘희, 강송대, 이호연 명창 등과 경창대회 배출 17명의 대상 수상자들이 함께하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대구시 ‘대구아리랑’ 보유단체 지정과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단체의 법인화를 이뤄내자는 묵시적 합의였다. 정은하 선생을 보낸 후 첫 행사는 단촐하지만 정성을 드린 무대였다. 진행자가 선생의 영정을 향해 "정은하 선생님 만족하셨지요. 든든하지요!”라는 멘트로 마무리 하였다. 정은하 선생의 부재를 극복하고 그 분이 심어 놓은 유지를 실천하자는 다짐을 가슴에 새기는 계기였다. 주최측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경산아리랑보존회 배경숙 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 대구 시민들과 한국국악협회 대구광역시 김신효 지회장 등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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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고판사)과 '강감찬국악경연대회'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10월 9일 한글날에 제5회 강감찬국악경연대회를 개최를 주관하는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리더 이승한 대표를 통해서 경연대회의 목적과 취지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먼저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전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회사에 오랫동안 매니저로서 기획과 홍보파트를 담당했다. 학창시절 학생회장 출신의 경력과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우연한 기회에 정치에 인연을 갖던 중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사회단체 대표를 맡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도시 빈민, 장애인 등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 왔다. Q.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고판사)라는 단체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A. 저는 타고난 천성이 인문학적 사고이지만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선진 복지 실현을 위해서는 개헌 다당제 등 정치개혁이 우선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뜻을 세웠으나,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결국 21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정치에 거리를 두고 지역에서 심신을 추스르고 있는 차에 세계를 멈추게 하는 코로나가 왔다. 이때 판소리와 고법에 종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듣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판소리와 고법을 접하게 돠면서 국악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Q. '강감찬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게 된 배경은 A.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설립하고, 문화취약 계층에 대한 공연 활동을 지원하고 '강감찬 국악 경연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Q. 왜 고려시대 '강감찬'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주목하게 되셨나요. A. 고려시대 강감찬은 고구려의 을지문덕. 조선의 이순신과 더불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3대 영웅 중 한 분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강감찬 장군의 담대한 기상과 지혜가 필요하다. 강감찬 장군은 문인이다. 게다가 70세의 당시 적지 않은 나이에도 당당하고 굳건하게 외적에 맞선 영웅이다. 굳이 민족주의로 문화적 대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현대는 다양한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4차원의 AI의 기술력 뒤에도 결국 문화 컨텐츠의 싸움이다. 사실 21세기는 문화전쟁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강감찬 같은 도전적 모험과 용기가 필요하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관악구 낙성대이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가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해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별이 떨어진 곳에 장군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신림동의 굴참나무는 강감찬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란 나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관악구에 사는 국악인들이 이러한 강감찬 장군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경연대회 명칭을 강감찬이라고 소환했다.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는 단순한 판소리의 경연대회을 넘어서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성할 첫 단추를 만들어갈 것이다. Q. 관악구에 가면 '강감찬'을 기리는 역사적 공간이 있나요. A. 낙성대공원에는 장군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그 주변에 강감찬 생가터와 장군의 영정을 모신 안국사가 있고, 강감찬 전시관이 자리한다. 안국사 안에는 귀주대첩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해외에서 친구나 비지니스 만남이 있으면 저는 강감찬전시관을 시간 나는대로 1번지로 모시고 갑니다. 외세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온전히 지키게 해준 자랑스런 영웅이시죠. Q. 사업과 정치를 하시던 분이 국악이라는 문화컨탠츠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문화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함께 갖는다. 사업은 상상력과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고 각각의 변화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만들어지지만 결국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인자는 문화이다. 경제 현상이 눈에 보이는 단순한 물결이라면 그 저변에 흐르는 큰 해류는 문화현상이다. 결국 문화가 그 민족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Q. 왜 '판소리'에 꼽히셨는지요 A. 인류문화유산 '판소리'는 한글이라는 최고의 문화와 함께 스토리텔링이 있는 컨텐즈를 가지고 오랜 시간 구전되어 온 우리의 독특한 문화이다. 특히 판소리가 가지지고 있는 음악성과 서사성에 주목했다. 어떤 의미에서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의 K팝의 음악성과 영화 '기생충' '올드보이' '오징어 게임'과 같은 'K-드라마'의 스토리텔링, 또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한류'열풍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이다. Q. 일반인이 '판소리'를 배우기는 어려운데요. 특히나 '고법'은 더욱 어렵지요. A. 판소리는 성음을 습득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판소리와 고법을 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일고수 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는 말이 있다. 판소리에서는 고수가 첫째로 중요하며, 명창은 그 다음이라는 의미의 용어이다. 고수가 지니는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는 말이다. 판소리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장단이고, 숙달된 고수의 장단 즉, 고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만큼 배우기는 쉽지 않다. 해외에서 판소리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작품이 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Q. 고판사의 앞으로 계획은 A.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 전 세 가지의 담대한 계획을 세웠다. 첫째, 테마가 있는 '판소리 순례길'을 만들 것이다. 즉 '한국형 산티아고길'을 구축하는 것이다. 진도에서 출발하여 서편제의 성지 나주 보성을 거쳐 동편제의 성지 남원 순창을 지나 중고제의 뿌리 강경을 경유 해 한양에 입성하는 450km 길이다. 둘째, '강감찬 장군'을 주제로 하는 창극을 만들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시티투어에 포함시켜서 서울대학교를 방문하고 관악아트홀에서 보여줄 것이다. 셋째, 전국에 판소리와 고법을 가르치는 300여 개의 어린이 '판소리 고법 아카데미'를 개설할 것이다. Q. 앞으로 국악 발전을 위해 개최되는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의 취지를 더 한번 설명하신다면 A. 현재 우리 국악은 향유하고 있는 세대가 제한적입니다. 더욱이 트롯트 열품으로 국악 전공자가 그쪽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는 감각적이고 쉽고 다양한 외래문화에 묻혀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전통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서 일반인도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와 상황이 필요하다. 이제 국가가 그리고 행정이 나서야 한다. 한시적이고 일회성이 아닌 진지한 연구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영웅 강감찬의 지혜와 애국정신이 필요하다. 1차적으로 '고판사'의 국악활동과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 개최를 통해 실천하고자 한다. 관악구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고판사가 주관하는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는 관악구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 강감찬 장군의 애국심을 기리고, 문화전쟁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영웅의 지혜와 용기를 배우고자 한다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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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 ‘디스커버리’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Ⅰ ‘디스커버리’가 9월 1일(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올랐다. 이번 무대는 2023-2024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 지휘자 여자경이 발견한 국악관현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만날 수 있었다. ‘디스커버리’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지휘자의 시선으로 국악관현악 명곡을 새롭게 탐미하는 공연이다. 그 주인공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라 여자경이 지휘봉을 잡았다. 여자경은 빈 라디오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유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현재 대전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확한 해석과 연주자와의 호흡, 관객과의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탁월한 무대를 선보여 왔다고 평가받는 여자경은 이번 공연의 전 곡을 선곡하여 지휘자가 선택하여 만들어 내는 무대를 꾸려냈다. 이미 클래식계에서 명성을 크게 얻고 있는 여자경 지휘자의 지휘를 국악관현악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기회였다. 서양음악 지휘자가 국악관현악단과 만나는 건 이전부터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최근 클래식 음악계의 화제가 되는 여성 지휘자 여자경이 국악관현악단과 만나는 것은 이번 무대가 최초였다. 여자경은 똑같지 않게 들리는 국악기의 음을 맞추어 보는 작업에 치중하고, 본인만의 음악적 색깔을 담아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겠다는 포부로 이번 무대를 준비했다고 한다. 연주된 관현악곡은 총 5곡으로,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듣기 편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방향으로 곡이 선정되었다. 이 무대를 통해 무엇보다 지휘자가 끌어내는 음악의 색채감에 집중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내는 관현악곡은 무엇보다 하나 되는 화합이 중요하다. 각자의 연주를 잘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소리를 듣고 조화롭게 음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에 음악의 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곡을 해석하고 지시하는 데 지휘자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한데, 여자경 지휘자는 따뜻하면서 냉철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압도하며 특유의 섬세하고 분명한 지휘법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에 그의 지휘가 국악기의 소리와 울림, 관현악곡과 만나 어떤 표현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공연을 관람하였다. 첫 번째 무대는 이해식 작곡의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이었다. 전통춤·민속음악·무속음악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전통적 요소를 잘 활용하여 대중적으로 사랑 받아온 곡으로, 춤과 바람을 주제로 자유로운 바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역동적인 선율이 특징인 곡이다. 경쾌한 가야금의 소리가 시작할 때부터 여자경의 깔끔하고 확실한 큐(cue) 사인이 도드라졌다. 특히 타악기가 반복적인 장단의 리듬꼴을 연주하는 부분, 피리와 대금이 점점 커지는 농음을 연주하는 부분, 해금이 고음에서 짧은 리듬 형태를 연주하는 부분 등 악기의 특수한 특성이 드러나는 연주를 할 때 정확한 타이밍에 손과 몸동작을 다양하게 사용한 큐 사인은 음악을 확실하고 섬세하게 끌어 나갔다. 이 곡은 도드라지는 리듬꼴로 이루어진 빠른 선율을 악기들이 유니즌으로 연주하기에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어려운 곡으로도 느껴졌는데, 리듬 하나, 음정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깔끔하고 완전한 지휘에 매료당할 수밖에 없었다. 특색 있는 국악기의 듣기 쉽고 귀에 맴도는 선율의 경쾌한 반복과 여자경 지휘자의 섬세한 지휘는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고 편하게 음악에 푹 빠져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두 번째 무대는 최지혜 작곡의 첼로 협주곡 ‘미소’. 우리 선조들의 삶을 바꿔 준 의료 선교사이자 교육자 ‘로제타 셔우드 홀’에게 감명받아 그녀의 삶을 담아낸 작품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을 지내고,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주연선이 첼로 협연자로 나섰다. 이 음악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눈앞에 그 당시 조선의 배경이 그려지는 듯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곡이었다. 대금과 해금, 피리가 얽히며 만들어 내는 단조와 반음계 선율은 제물포의 습한 새벽과 어울렸고, 사극 영화를 보는 듯한 서정적인 관현악과 첼로 솔로의 선율은 한국적이며 감성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곡은 국악기로 연주하는 전통 어법을 첼로로 구현해 내고자 한 부분이 많아 흥미로웠다. 첼로는 메나리토리의 하행 진행을 연주하거나, 부드럽게 꺾어 내리는 퇴성, 쳐서 내는 표현, 농현 등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는 첼로의 중후하고 우는 듯한 소리로 한국적인 색채를 감상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새로운 전통적인 시도라고 느꼈고, 작곡가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며 곡을 만들어 냈을지 그 섬세함에 감탄했다. 더 나아가 시김새 등 전통 어법을 구현하기 위해 소리를 연구하고 훌륭하게 연주해 낸 첼리스트 주연선 첼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휘 또한 훌륭했다. 국악기와 다른 원료, 특징을 갖고 있기에 합주로 묻어나기 어려울 수 있는 서양악기와의 협연이었음에도 관현악이 첼로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적재적소에 등장하고 빠지며, 받쳐주는 역할을 부드럽고 깔끔한 지휘로 만들어 냈다. 첼로의 카덴자(독주) 이후 첼로의 하모닉스 연주와 관현악단의 연주가 자연스럽게 하나 될 때는 희생과 섬김의 삶을 마친 선교사의 미소가 눈앞에 그려졌고, 관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2부 무대의 첫 곡은 김백찬 작곡가의 ‘Knock’로 시작했다. 2021년 <리컴포즈>에서 위촉 초연된 이 곡은 한국 전통음악의 5음 음계(도·레·미·솔·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 전통음악만이 가진 고유의 호흡과 리듬감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음악이다. 여자경 지휘자는 이 곡이 표제음악처럼 어떤 형상을 소리로 만들어진 곡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색다른 시도가 곡에 많이 묻어났는데, 단3도 화음 형태의 선율 진행이나 자연스러운 전조 진행 가운데 반복되는 선율, 베이스의 반음계 빠르고 느린 반음계 진행 위에 얹어지는 악기들의 깔끔한 투티(tutti)(다 같이 합주함),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리듬꼴 등 다채로운 변화에 귀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다양한 반복 때문인지 음악을 따라가느라 급급해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 선율이나 장단이 귀에 남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으나, 음악의 셈여림, 다이내믹을 깔끔하게 지시하고 다양한 몸짓과 방법을 통해 음악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지휘를 포함하여 색다르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흥미로웠다. 네 번째 무대는 2021년 초연된 성찬경 작곡가의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금희악기점’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경영했던 유일한 악기점인 금희악기점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피아노 협주곡으로, 피아노 협연은 작곡가·피아니스트·음악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은철이 함께했다. 앞서 첼로가 국악관현악과 자연스럽게 묻어 어우러진 것에 비해 피아노의 음색은 국악 관현악과 잘 맞지 않고 튀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작곡가가 의도한 ‘더 새로운 소리’와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느꼈다. 새로운 접근과 음색을 통해 오늘날의 음악, 더 새로운 소리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나누고자 한 작곡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음악은 오묘하면서도 현대적인 사운드가 잔뜩 묻어났으며, 특히 국악기로는 많이 시도되지 않던 선율 진행이 흥미로웠다. 어딘가 신비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금희악기점’은 꿈속을 그려낸 이미혜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생각나기도 하고,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rhapsody in blue’가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 전통 음악, 창작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겸손하게 말하고자 하는 작곡가의 음악적 가치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무대였다. 마지막 무대는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아리랑을 테마로 만든 국악관현악 ‘아리랑 환상곡’. 국내뿐 아니라 미국·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여자경 지휘자가 서양 오케스트라와도 꽤 자주 연주했던 곡이라고 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국악기를 가지고 서양악기의 앙상블을 만드는 쪽으로 접근했다고 하는데, 곡 전체를 관통하는 아리랑의 선율이 ‘국악기’가 만들어 내는 음색에만 치중되지 않아 그 해석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났다. 이는 특히 해금 연주에서 잘 보였다. 해금은 바이올린 등 서양 현악기보다 상대적으로 거친 소리가 나고, 활을 바꿀 때 조금 더 세게 마찰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곡에서 해금 연주자들은 일부러 활을 동일하게 나누어 균등한 소리를 연주하고, 끝까지 활을 마찰시켜 바꾸며 부드러운 ‘선율’을 만들어 나가는 데 치중했다. 악기의 색이 튀지 않게 ‘아리랑’ 선율을 만들어 나간 관현악단의 연주는 특히 여자경 지휘자의 지시를 믿고 집중하며 더 큰 빛을 발했다. 깔끔하고 화합된 합주에 하나의 통일된 톤은 흡입력 강한 여자경 지휘자의 지휘와 더불어 국악 관현악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전통 음악의 현대적인 재해석, 한국의 정신과 정체성을 담은 사운드, 전 세계의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는 현대적인 레퍼토리를 담은 차별화된 무대를 선보여 나간다. 그들의 연주는 해가 갈수록 더욱더 빛이 난다. 월등한 연주 실력과 더불어 지휘자를,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믿고 음악에 집중하여 하나 된 소리의 감동을 보여준 그들의 이번 무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해 주었다. 여자경 지휘자는 ‘청중이 없으면 무대도 없다’는 신념으로 낯선 길을 마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그가 이번에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보여준 무대는, 국악에 익숙한 관객도, 익숙지 않은 관객도, 또한 서양 음악 지휘에 익숙하거나 익숙지 않은 관객도 모두 음악 아래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해 주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발견’한 지휘자 여자경이 ‘발견’한 국악관현악 무대, ‘디스커버리’에서는 무엇보다 ‘화합’과 ‘상생’이 도드라졌다. 음악이라는 주체 아래 서로 다른 장르 사람들의 해석이 합쳐지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우리 국악 관현악은 앞으로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